I Killed the Play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47
철산의 왕(3)
철산의 왕.
영웅 살해자.
딩글 반도의 마저(魔猪).
아마 가장 유명한 특급 마물 중 하나로 손꼽힐 이 멧돼지는 지금으로부터 88년 전, 북부 대륙의 극지, 딩글 반도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혹한의 대지이나 수많은 천연자원이 매립된 이 동토(凍土)에서 철산(鐵山)이라 불릴 정도로 방대한 광산을 자랑하던 산맥.
철과 금은 따위를 찾아 극지를 개척하던 광부들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까득! 까득!
철광을 탐욕스럽게 먹어치우던 거대한 멧돼지.
그야말로 모든 것을 탐식하는 철산의 왕. 그 첫 목격담이었다.
* * * *
“특급 마족과 그 이하 마물들의 차이점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마리에 학생?”
“······강하다는 걸까요?”
데이나 교수의 질문에 마리에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생각에 잠겼다.
‘특급’. 극소수의 존재에게만 랭크되는 이 등급은 자신과도 무방하지 않기 때문이다.
“강하다는 건 특급의 당연한 패시브 같은 거예요. 이들이 가진 가장 강력한 특성 중 하나는 바로 ‘지배’의 힘이죠.”
“지배의 힘이요?”
“특급의 마족은 평범한 마족들과는 다른 기운을 뿜어낸다고 해요. 이론상으로는 ‘알파 특성’이라고 하죠.”
“알파 특성이요?
“2급이나 1급 마물 중에도 종종 무리의 알파 개체가 나오죠? 평범한 동족들보다 더 강하고 명령도 내리는 개체 말이에요.”
그 말대로였다. 동족끼리 무리 지어 다니는 마물 중에는 종종 알파 개체로 대표되는 무리 대장이 등장한다.
이런 개체들은 같은 등급의 동족보다 더 강하고 간혹 동족에게 평가된 등급의 벽을 돌파하기까지 한다.
“그래도 이 알파 개체들조차 자신과 다른 마족에게 명령을 내리진 못해요. 지배력이 닿지 않는 거죠. 하지만······.”
“······특급은 모든 저위 마족을 상대로 명령을 내릴 수 있어요.”
“맞아요. 경험이 있죠?”
마리에는 자신이 헌팅 그라운드로 도망쳤을 때, 숲속의 마물들을 지배했다.
팽보어에게 먹이를 줄 때도 그랬다. 팽보어들은 감히 자신의 말을 어길 생각을 못 했으니까.
“으응? 하지만 교수님. 저··· 생각해보면 지배했다는 것하고는 거리가 좀 먼 것 같아요.”
마리에는 헌팅 그라운드 때를 떠올렸다. 자신이 숲속의 마물들을 저항하지 못하고 피를 상납하게 한 건 사실이지만, 그건 자신이 의식적으로 명령을 내린 게 아니다.
공포에 사로잡힌 마물들이 자신의 행동에 저항하지 못한 것뿐이다.
팽보어 때도 그렇다. 마리에가 배식이 용이하도록 지시를 내리긴 하지만, 그게 지배하고 있느냐와는 좀 다르다. 팽보어들은 그저 마리에에게 압도당해 두려워할 뿐이니까.
“맞아요. 하지만 그건 마리에 학생의 종족 탓이 커요.”
“종족이요?”
“마족의 세 분류로 나뉘지요? 마물, 마령, 마인. 이 세 분류는 심플하지만, 알파 특성이 끼치는 영향도 달라지죠. 가령?”
교수는 교수인지 데이나 교수는 자연스럽게 마리에에게 답을 맞혀보라 권했다. 눈치가 빠른 마리에는 곧바로 답을 내었고.
“종족에 따라 알파 특성이 끼치는 지배력이 달라지는 건가요?”
“바로 그거예요.”
즉, 특급 마물은 저위 마령에게 명령을 내리가 힘들고, 특급 마령은 저위 마물에게 명령을 내리기가 힘들다. 이러한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각 종이 가진 ‘언어체계’ 탓이라는 모양이다.
“으음··· 그럼 전 다른 마인들 상대로 명령을 쉽게 내릴 수 있게 되나요?”
“그 부분에서는 연구가 필요하지만, 일반적으론 아니라고 하네요.”
“아닌가요?”
“네, 마인들은 대개 인간이었던 사람들이 마족으로 각성한 거잖아요? 기본적으로 지성이 인간 이상이라서 그런지 마기나 귀기에 의한 지배력이 통하지 않는 모양이거든요.”
“······그렇구나.”
요컨대 자신이 다른 마인을 만나게 돼도 명령을 내리는 건 안 된다는 모양이다.
‘쪼금 아깝나? 마인은 튼튼하니까 농사일 잘할 것······!!’
“마리에 학생?”
“아, 아뮤 생각 안해써요?!”
“누, 누가 뭐라니?”
방금 뭐였지?
마리에는 자신이 떠올린 무시무시한 생각을 떠올리곤 기함을 토했다. 자신은 이런 폭력적인 생각을 하는 아이가 아니다!
“교, 교수님!”
“왜 그러나요?”
“제, 제가 요즘 실험동에서 영약을 만드는 실험을 하고 있거든요!”
“예, 듣고 있어요. 마법학부 학생들이 마리에 학생의 영약을 구입하고 싶어서 줄도 섰다면서요?”
“으··· 저는 좀··· 그래요.”
“어째서죠? 고위 흡혈귀의 영약은 부르는 게 값일 텐데요?”
솔직히 피만 팔아도 평생 돈 걱정 안 해도 될 거라며 데이나 교수는 너스레를 떨었다.
“······부끄러워서요.”
“아······.”
데이나는 마리에가 아직 10대 소녀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확실히 자신의 피를 누군가에게 먹인다는 건 거부감이 크겠지. 특별한 사람이라면 모를까.
“그런데 그게 왜 그런가요?”
“실은··· 영약을 좀 더 맛있게 만들어보고 싶어서요.”
방금 거부감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그걸 또 맛있게 만든다고? 데이나 교수가 의문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째서요? 그냥 가공되지 않은 피만 줘도 금화를 들고 찾아올 텐데?”
“실은 이러이러해서 저러저렇게──”
“호오, 호오··· 이, 이건 또 새로운 발상······ 분명 조합법에 따라 효과가 달라지긴 하지만 이건······.”
“가능할까요?”
“이론상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요. 자재와 고도의 실험이 필요한 문제네요. 임상실험도 해봐야······ 특히 최종적으로는 기사급 인재가······.”
“한 번 도움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음···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 저도 나름 비싸고 바쁜 몸이라. 마리에 학생이 피를, 조금만 나눠주신다면?”
“이 정도 나눠드리면 될까요?”
-속닥속닥!
-끄덕끄덕!
데이나 교수와 마리에 2학년은 협상체결의 상징으로 굳건한 악수를 나눴다.
“크흠···! 아무튼 이야기가 샜군요. 이번 철산의 왕 실험은 특급 마물이 가지는 알파 특성이 어디까지 발휘될 수 있느냐는 거예요.”
“그래서 마물들을 대량으로 매입하신 거죠?”
“그렇죠. 만약 이 알파 특성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된다면··· 이론상 대다수의 마물과 마령들을 인류가 ‘컨트롤’할 수 있다는 거니까요.”
생각보다 굉장한 실험이었다. 그리고 마법사로서는 정말 혹하는 내용이기도 했고.
만약 성공한다면 인류는 마족의 위험을 사전에 차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 실험을 위해 1급 마물인 킹 타이런트와 훼룡 같은 아류용종까지 구해왔어요. 내년 마탑 학술지에 제 논문을 당당히 제출할 계획이라구요!”
1급 마물. 어지간한 1급 기사와 마법사들도 파티로 잡는 게 안정적인 고위 마물이다.
준특급 마물들도 존재하기는 했지만, 이런 걸 생포할 수 있는 집단은 없디시피 하니 실험 예산으로 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솔직히 저 둘보다는 팽보어 수백 마리가 더 비싸지 않나?’
물론 구입은 싸게 했다. 지금은 번식기라 생포하기가 쉬웠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유지비다. 1급 마물쯤 되면 먹지 않아도 공기 중의 마력으로 영양분을 채울 수 있는 고위 마물.
반면 팽보어들은 매일 제 몸무게만큼의 먹이를 먹어야 했다.
실험이 며칠만 더 계속되어도 팽보어의 사육 유지비만으로 예산이 금방 동날 것이다.
마리에가 예산이 동나기까지 얼마나 걸릴지 가볍게 계산해보고 있는데, 데이나 교수의 실험실 안에 새로운 조력자가 찾아왔다.
아프로 머리에 검은 선글라스가 인상적인 근속 10년 차 교수 페르막 다만이다.
“왓썹! 데이나 교수님, 저 왔슴다~”
“어머, 제시간에 딱 맞춰 오셨군요.”
“좀 더 빨리 올 걸 그랬슴까?”
“아뇨아뇨, 아주 좋은 타이밍이었어요. 안 그래도 ‘철산의 왕’에게 새길 룬에 대해 정리가 끝났거든요.”
“룬이요?”
데이나 교수의 말에 마리에가 갸웃거렸다. 알파 특성을 연구한다더니 룬은 또 뭔가?
“아, 이 부분은 아직 설명 안 했군요. ‘철산의 왕’이 지금 봉인된 상태라는 거요.”
“그건··· 알고 있는데요.”
“그 봉인이 룬으로 행해진 것이거든요. 80년 전, 전전대 이사장이셨던 비렌 님과 조제핀 수석교수님··· 그리고 당대 최강의 기사라 칭송받던 타테스 발타자르가 봉인했다고 해요.”
“봉인을 풀려면 룬 마법이 필요한 건가요?”
“네, 그것도 아주 수준 높은 룬 술사가 필요하죠.”
“그러네요. 페르막 교수님은··· 아주 유명한 룬술사니까.”
가디언 협회에서 발행하는 잡지 ‘가디언즈’에서도 알려진 유명한 이야기다.
격투술에 룬 마법을 조합한 스타일리시한 고위 기사. 아카데미에 들어오기 전에는 파티와 함께 준특급 마물 바질리스크를 토벌했다는 영웅이다.
“하지만··· 봉인을 풀면 위험하지 않나요? 상대는 특급 마물인데······.”
“하하, 이곳 실험동에는 엄중한 군단급 포박 마법과 중력 마법으로 압박하는 칠중 압력진이 설치된 걸요. 아무리 특급 마물이라도 오랫동안 봉인되어 쇠약한 상태로는 이 마법진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데이나 교수의 자신 있는 말투에 마리에는 도리어 불안감에 휩싸였다.
‘으응··· 소설에서는 이럴 때 꼭 문제가 생기던데.’
그래도 어쩌겠는가? 일개 실험 조교 입장으로선 믿고 넘어갈 수밖에. 무엇보다 코린이 넌지시 한 말이 있었다.
「저한테 다 계획이 있어요.」
지금은 도시 바깥으로 나간 그가 어떻게 계획을 실행할지는 몰라도 마리에는 의심 없이 소년을 믿었다.
* * * *
한가로운 하루하루가 계속된다.
청명한 봄바람이 지고 기분 좋은 온기가 스멀스멀 땅바닥에 내리쬐는 초여름.
뜨거운 튀김기 안, 펄펄 끓는 기름 속에서 건져지는 감자 크로켓이 채망에 걸러져 기름을 빼고 있었다.
“자, 여기 받으렴.”
아카데미 부지 내, 노점상에서 구입한 감자 크로켓을 받아 한입에 베어 문다.
앙다문 입에서 잘게잘게 부서지는 감자와 기름의 농후한 맛이 퍼져나갔지만, 어딘가 아쉬운 부분이 있다.
‘코린 씨하고 자주 먹었는데.’
체단실에서 단련이 끝나고 나면 열량보충을 겸해 군것질하던 곳이다. 항상 함께 먹던 소년이 없기 때문일까?
체단실에서 단련을 하고, 군것질하고, 서로의 기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금방 시간이 가서 자연스럽게 식사까지 함께하게 된다.
고작 한 달. 언니와의 일을 매듭짓고 한 달동안 코린은 아리샤 안에서 커다란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다.
‘돌아가서 로맨스 소설이나 읽을까.’
최근 생긴 새로운 취미다. 조별과제를 하면서 도서관에도 들리다 보니 우연이 발견한 로맨스 소설 코너를 발견했는데, 이게 또 괜찮은 소일거리가 되었다.
특히 남주인공에 누군가를 이입시켜 읽어보면 꽤나······.
-툭툭!
그때였다. 그녀의 어깨를 툭툭 건드는 이가 있었으니.
“누구··· 흐악?!”
시뻘건 늑대인간··· 아니, 개 인간의 형태를 한 혈견이 제 어깨를 두드리고 있었다.
“더, 덕구니?”
-끄덕.
마리에의 흡혈귀로서의 권능 중 하나. ‘피의 권수’. 그녀의 피에서 탄생한, 이른바 자식이자 권속이라고 부를 수 있는 존재다.
이름은 살갑기 그지없지만, 이 권수가 괴물 같은 힘을 가졌다는 걸 아는 아리샤는 겁이 날 수밖에 없다.
-까딱까딱!
“어어? 따라오라고? 마리에 선배가 날 부르는 거야?”
-끄덕끄덕
왜냐고 묻고 싶었지만, 덕구가 사람의 말까지 할 줄 아는 건 아니므로 아리샤는 잠자코 따라가기로 했다.
가끔 덕구가 코린을 찾아 데리러 오는 경우가 몇 번 있었기 때문에 익숙하기도 했고.
‘그런데 덕구는 어떻게 코린 씨가 있는 곳을 귀신같이 찾아내는 걸까?’
개과처럼 생겨서 그런가? 그렇다기엔 생긴 것이 생물보다는 마법적인 무언가에 가깝다.
내부에 생물과 같은 장기나 후각 기관이 있을지도 의심스러운 판국.
-컹!
“아, 알았어! 따라갈게!”
서두르라는 듯 윽박지르는 덕구에 허겁지겁 따라가는 아리샤. 그녀는 금방 아카데미 서쪽의 실험동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무슨 일로 부르셨담?”
아리샤는 2학년 선배인 마리에와는 그다지 접점이 없다.
코린과 어울리다 보니 은근히 자주 만나게 되는 인사 정도는 하게 된다.
‘코린 씨와는 무슨 관계지? 되게 친해 보였는데?’
아리샤는 코린이 마리에를 구하기 위해 했던 일들을 알지 못했다.
에리우 카사르 이사장과 조제핀 수석교수가 왜곡하여 발표한 내용만을 알았기에 마리에와 코린의 접점을 알 수 없을 수밖에.
하지만 그녀가 확신할 수 있는 건, 마리에와 코린의 관계가 보통 선후배 관계와는 아득히 먼 관계라는 것이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코린의 인간관계라는 점에서 아리샤는 마리에에게 묘한 거리감을 느끼고 있다.
이것이 어떤 감정인지는 그녀 자신도 잘 알지 못했다.
“컹!”
실험동의 지하 1층. 보통 학생들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마법학부 교수들의 영역이건만, 덕구가 인솔하는 아리샤는 손쉽게 검문소를 통과했다.
경비원도 덕구를 보곤 바로 프리패스라는 느낌이다.
그렇게 도착한 실험동 지하의 풍경은 칙칙하리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별천지에 가까웠다.
“와아······.”
지하는 광대한 크기를 자랑하는 공동.
지하 1층부터 3층까지 뻥 뚫린 공간을 중심으로 암벽을 깎아내 만든 것 같은 견고한 공간에는 저마다 마법사들이 실험을 벌이고 있다.
연금학, 마물학, 영체실험, 마법생물 재배소, 해부학, 마도공학 등 각종 분야에서 연구를 진행하는 듯하다.
견학이나 보조로 참여한 듯 학부생들도 여럿 있었다.
과연, 마법사들에게 꿈의 직장 중 하나라고 불리는 이유라더니,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다.
“컹!”
“아, 알았어요! 짖지 말아 줄래요? 무섭단 말이에요······.”
아리샤는 지하 1층 실험실 중 하나에 도착했고, 뭔가 구수한 냄새에 의아함을 느꼈다.
“음식 냄새? 아~”
마물들도 먹을 수 있는 마물이 있다고 하니 그에 관해 연구하는 것도 마법사들의 몫이라 들었다.
일반인들은 먹으면 독이 되지만, 저항력이 있는 기사나 마법사들은 오히려 영약이 되는 부산물이 있었으니 말이다.
“저기요··· 마리에 선배님?”
실험용 비커 안에서 탁한 무언가가 부글부글 끓으며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실험실 한가운데, 마리에가 진지한 눈으로 비커를 응시하고 있었다.
“으음··· 여기서─우···를 더 넣으면? 아냐, 너무 많지 않나? 메인 재료가 먹혀버리잖아.”
실험에 열중하고 있는 물빛 머리 소녀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말을 거는 아리샤.
“마리에 선배님?”
“헛···!”
귀여운 소리를 내며 화들짝 점프하는 마리에. 그녀는 어느새 접근한 아리샤를 보더니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다.
“아덴 후배님이구나···! 놀랐어!”
“죄송해요··· 실험에 열중하고 계신 것 같아서. 중요한 실험이었나요?”
“벼, 별거 아니야! 잠시 휴식시간에 겸사겸사 해보는 것뿐이니까!”
별거 아니라는 마리에의 말에 아리샤는 안심했다. 마법사들은 실험을 방해받는 걸 끔찍하게 싫어한다는 풍문을 자주 들어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쩐 일로 부르신 건가요? 덕구가 오래서 오긴 했는데요.”
“응응, 코린이 이맘때쯤 설명을 대신해 달라고 했거든!”
“코린 씨가요?”
며칠 전부터 등급 재측정을 위해 나간 코린이 남긴 말이 있다니··· 아리샤는 경청했다.
“맞다, 그전에 이거 먹을래?”
마리에는 비커에 담긴 액체를 보며 가리켰다. 약초 같은 것이 잔뜩 들어간 비커 속, 탁한 액체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어··· 영약인가요?”
“그, 그르치? 따지고 보면······.”
“몸에 좋은 거라면야 저야 좋지만요.”
“몸에 좋은 건 확실해! 몸에 좋은 재료만 넣었거든!”
“와아~ 저 이런 거는 오랜만에 먹어봐요. 가문에 있었을 때는 꽤 자주 먹었는데요, 아카데미 와서는 생활비 버느라 바빠서 신경도 못 썼거든요.”
“그으래? 하, 한 번 먹어볼래? 맛도 있을걸?”
맛? 언제부터 영약을 맛 때문에 먹었던가? 한 번 먹으면 중복된 효과를 내기 힘든 영약들에서 맛은 고려대상이 아닐 텐데.
하지만 비커 속 영약에서 끓어오르는 구수한 연기가 마리에의 말이 허언이 아님을 강조했다.
“뜨, 뜨거우니까 천천히 먹으렴. 안전한지도 확인해야 해서······.”
“네, 방금 뭐라고 하셨나요?”
“아무것도 아니야! 튼튼한 후배 님을 둬서 기쁘네!”
뒷말이 좀 이상했지만, 아리샤는 팔팔 끓은 영약을 조심스럽게 마시기 시작했다. 설마 위험한 걸 줬을까.
“으읍?!”
“왜, 왜 그래?”
“맛있어요! 뭔가 고향의 맛? 그런 것도 느껴질 정도예요!”
“저, 정말?!”
마리에는 기뻐하며 메모를 시작했다.
맛, 체크.
안정성, 체크.
독성, 체크.
만약을 위해 추가 임상시험이 필요함.
* * * *
“저곳일세.”
협회 직원의 안내를 따라 도착한 곳은 산속에 지어진 커다란 별장이었다.
미션 내용상 이 별장의 소유주가 사업 실패로 인생을 비관하고 일가족과 함께 자살했다던가.
현대 지구였다면, 담력시험 명소 정도로 입소문을 탔을 테지만, 이곳은 판타지 월드.
이곳에서 마령은 죽은 자의 원혼으로 인해 생겨난다. 즉, 일가족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끝은 마령을 발생시킬 확률이 꽤 높다는 걸 의미하지.
“단순 지박령 정도일 테지만, 터가 좀 안 좋았네. 이곳은 예전부터 마물의 터전과 영맥의 중심지였던지라 대량의 마기를 흡수해버린 모양일세.”
“잘도 이런 곳에 별장을 지을 생각을 했군요?”
“그런 감각이니까 사업이 망하지 않았겠나?”
비극과 해프닝이 섞인 탓에 단숨에 위험도가 올라가 버린 일명 ‘유령의 집’.
지박령의 속성을 가진 탓에 이동하지는 못하지만, 자신의 홈그라운드에서는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타입이다.
즉, 이번에 토벌해야 하는 마령은 저 ‘유령의 집’ 자체라는 소리다.
“어떤가? 이번에도 조사를 좀 할 텐가? 참고로 불을 지르는 것 정도로는 저 집은 사라지지 않는다네.”
하먼 영감은 내게 기대하는 눈치로 대답을 기다렸다. 이번엔 어떤 치밀한 작전으로 마족을 농락할 거냐는 듯이 말이다.
공교롭게도 내게 마령을 조사하는 행위는 별 의미가 없다.
내게 새겨진 세 가지 규율 중 구속 『나는 령을 인지하지 않는다』로 인해 마령을 인지할 수 없으니. 그러니까······.
“30초 컷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