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Killed the Play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57
수상할 정도로… (2)
남부 평야 지대로 진입하는 초입.
마차들의 플랫폼 역할에서 점차 작은 마을로 발전한 듀프 마을은 이 관련 사업으로 먹고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와이번 착륙장을 관리하는 맥도 바로 이 케이스. 그는 와이번 착륙장의 관제와 ‘여객수’가 안전히 착륙하도록 통제하는 역할을 맡았다.
「여기는 레프 원. 여기는 레프 원. VIP 수행을 위해 착륙 준비 중이다.」
“맥 관제사님! 레프 원입니다!”
“나도 들었어!”
레프 원. 이 드넓은 남부의 평야 지대를 통째로 소유한 하이퍼 메가 플랜테이션을 총괄하는 듀나레프 가문의 여객수와 와이번 호위 편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번 달에 듀나레프에서 뭘 하던가?”
“어~ 아카데미 방학 아닙니까?”
“그럼 공주님의 귀환이군.”
대륙의 남부에서 듀나레프는 왕국의 로열 패밀리보다도 압도적인 유명세를 자랑한다.
하물며 아카데미 방학시즌에 정기적으로 귀환하는 천재 마법사라면 그들이 모를 수가 없다.
동부를 대표하는 가디언이 검제 가란드와 검호 루니아라면 남부에서는 마리에를 차기 지역 대표로 밀고 있다는 은근한 지역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었으니까.
“아아, 여기는 듀프. 착륙지 정리를 개시하겠다. 캣1. 캣1. 200피트 상공에서 비주얼 래퍼런스를 확인 바란다.”
「알겠다. 10분 내로 도착 예정이다. 천천히 고도를 내리겠다.」
-체크.
맷은 마법 통신구를 통해 와이번 착륙장을 향해 공지를 읊기 시작했다.
“레프 원. 레프 원 착륙 예정 중. 착륙지의 와이번들 순차적으로 격납고에 진입시키길 바란다. 청소도 깔끔하게 하고.”
VIP가 뜨면 주변 정리가 필수다. 다른 와이번들의 이륙과 착륙을 정지시키고, 착륙장은 그들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여기는 레프 원. 곧 하강한다.」
“알겠다, 레프 원.”
맥은 점차 고도를 내려가는 몸체를 보았다.
“자자, 곧 레프 원이 당도한다. 그렇다는 건 마리에 아가씨도 온다는 이야기지! 다들 환영인사 격하게 준비해!”
마리에를 데리러 오는 와이번 편대를 위해 이날, 와이번 착륙장은 모두 업무를 중지하고 그들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 * * *
와이번은 비싸다.
아니, 내가 그냥 막연히 비싸다고 하는 게 아니라 진짜 현실적으로 겁나 비싸다.
왜 뉴스를 보면 전투기 가격이 어떻냬, 헬기 가격이 어떻냬 이러잖아?
와이번이 딱 그렇다.
금화 550장. 백금화로 5.5장. 지구 돈으로 환산하면 대충 5.5억. 이게 시작가고 혈통이 좋은 와이번은 백금화 열 장을 넘어갔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와이번의 유지비용이 보통이 아니라는 거다.
관리비, 라이더 고용비, 조련비, 식비 등 종합적으로 따져보면 와이번 한 마리는 연간 금화 60장의 유지비용이 든다고 한다.
게임에서는 그냥 구매하면 끝인 걸, 현실에서는 유지비용까지 신경 써야 했으니까 현실적으로 와이번을 구입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닌 셈이다.
“와··· 저게 떼로 다니네.”
그러니까 즉, 저어기 하늘에서 몰려오는 와이번 12마리는 최소 금화 6,600장짜리에 매년 720장의 유지비용이 발생한다는 거군.
이게 최솟값이라는 게 너무 두렵다.
“어라? 뽀삐가 안 보이네? 8교대 쭌이하고 교대했구나~ 몸이 안 좋은가?”
오키. 지금 이 순간, 마리에 선배의 집안이 보유한 와이번 숫자가 96마리까지 치솟았다. 96마리면 최소 63만 5천 6백장······.
“어우 씨··· 토 나올 거 같아.”
상상을 초월하는 금액에 그냥 말이 안 나왔다. 근데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게 더 문제다.
“여, 여객수··· 도 있네요?”
천천히 하강해오는 건 와이번 뿐만이 아니다. ‘집’ 한 채를 싣고 날아오는 여객수도 있었다.
여객수.
거대 비행야수를 오랜 시간의 조련과 개종(改種)을 통해 양성하는 거대 비행괴수를 말한다.
본디 마물로 취급받으나 숱한 유전자 개량을 통해 순한 개체만을 남긴 여객수들은 무려 50톤이 넘는 중량을 싣고도 안정적인 비행이 가능하다.
지금 내려오고 있는 건 하얀색이 특징적인 독수리였다. 그 크기가 와이번 6마리를 합친 것보다도 큰.
“······흐레스벨그 종.”
“코린, 잘 아는구나?”
알다마다. 저거 끝판왕 탈것 중 하나였으니까.
노가다 자원 수집, 특수 알 영입 퀘스트, 조련 퀘스트, 전용 둥지건설 등 온갖 노가다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아르한 영웅전설 최종 노가다 엔드 컨텐츠.
저 흐레스벨그 한 마리 정도는 있어야 어디 가서 나 고인물이요, 소리칠 수 있었지.
가격? 저 와이번 편대 전체보다 비싸다고만 해두겠다. 최댓값 기준이다. 괜히 엔드 컨텐츠가 아니라니까?
-구웅
흐레스벨그가 걸고 내려온 큼직한 사각형 모양의 ‘건물’을 큰 소리도 나지 않게 살며시 내려놓는 것만 봐도 엄청난 조련도를 자랑했다.
곧이어 와이번들도 차례차례 착륙하고 대장 와이번으로 보이는 개체에서 중후한 중년 남성이 내려왔다.
“마리에 아가씨!”
“베르그 아저씨!”
마리에가 곧장 베르그라는 남자에게 다가서려 하자 그가 정중히 제지하고 눈짓으로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빵빵!
요란한 악기소리와 함께 ‘건물’에서 급사 차림을 한 노년의 남성과 여성이 돌돌 말아진 레드카펫을 풀며 다가왔다.
“학업 활동,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마리에 아가씨.”
“폴 할아버지~ 아이참. 매번 이런 거 안 해도 된다니까요.”
“그럴 수는 없지요. 아가씨는 남부 듀나레프 가문의 적장녀시니 말입니다.”
푸근한 인상의 급사 폴은 마리에와 인사를 한 뒤, 내게로도 시선을 보냈다.
“여기 이분은?”
“아, 코린이에요! 코린 로크! 1학년 후배요!”
“아~ 이분이······.”
폴은 내게 다가오니 갑작스레 내 손을 잡았다.
“감사합니다. 저희 아가씨를 구해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귀인이시여.”
“어··· 네.”
마리에의 소식을 들어 알고 있었던 건가. 폴뿐만이 아니라 와이번 라이더들과 사용인들이 일제히 내게 고개를 숙였다.
“가, 감사합니다?”
솔직한 심정으론··· 눈앞의 와이번들과 흐레스벨그에 압도당해 있는지라 뭐라 대답도 못 했다.
“자! 어서 객실에 드시지요. 최고의 서비스로 모시겠습니다.”
“다들 수고가 많으세요!”
마리에는 사용인들과 와이번 라이더들에게 한 번씩 인사를 한 뒤, 자연스럽게 레드카펫을 밟아 객실이라 불린 건물로 들어갔다.
“뭐해, 코린? 빨리 들어와!”
“······.”
‘객실’ 위. 흐레스벨그가 푸드덕거리며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다. 와··· 씨, 한 마리 가지고 싶다.
참고로 내가 흐레스벨그를 얻어본 건 게임 시나리오가 끝나고 나서다. 저 멋쟁이 독수리를 끝물에서야 겨우 한 번 타봤다고······.
* * * *
듀나레프 가문.
총면적 200만 헥타르의 거대한 땅을 소유한 슈퍼 메갈로 팜을 운영하는 대륙 남부의 실질적인 지배자라고 한다.
오랜 선조 때부터 이어진 거대한 토지를 배경으로 왕국의 1차 산업을 지탱하며 그 규모는 엘 라스 왕국 전체 소출량의 3분지 1을 차지한다.
감자와 목화 같은 작물, 직물을 생산하는 밭과 아름다운 초목지에 방생한 수십 만 단위의 가축들이 뛰노는 목축.
만드라고라 같은 마법작물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플랜트 팩토리까지.
아니, 그냥 이런 말 할 필요 없이 마리에의 해설을 들어보자.
“쩌어기부터~ 쩌어기까지는 밀가루를 재배하고, 어 쩌어~쪽부터 지평선 너머라 안 보이네. 음, 와이번 타고 30분 정도 거리까지는 감자를 재배해! 저쪽 산은 금년도 방목지! 내년에는 다시 저어~쪽 산으로 옳길 거야! 맞다. 금광도 저기 있었나?”
“아가씨, 금광은 좀 더 북쪽에 있습니다. 저곳에는 다이아몬드 광산이 있지요.”
“맞다맞다!”
과연, 단위 수가 1만 헥타르가 되면 해설조차 스케일이 달라지는구나.
“······저거 옥수수 밭인가요?”
“응! 아~ 아움두라를 봤구나!”
객실에 달린 창문 밖. 아득히 떨어진 거리에서도 눈에 띄는 소 비슷한 것들은 눈앞에서 보면 도대체 얼마나 클까?
“저건 아움두라라는 종인데, 딥따 커! 음~ 우리가 타고 왔던 마차보다 두 배 정도 크겠다!”
그러니까··· 대충 철산의 왕보다 크다는 거군.
뭔가 상상을 초월한 것들이 목에 수확기를 달고 옥수수를 쓸어 담고 있었다.
저런 괴물 스무 마리가 이동하는 모습은 참···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이, 이게 진짜 부자의 스케일인가··· 아니, 부자 수준이 아닌데?
눈 앞에 펼쳐진 어마어마한 스케일에 놀라는 사이, 객실의 주방에서 큼직한 칠면조 구이를 가져오는 급사 폴 씨.
“두 분을 위해 준비한 특별식입니다.”
노릇하게 구운 칠면조 구이, 그 밑을 장식한 감자 퓌레. 칵테일 위에는 타이거 새우들이 꽂혀있다. 나 이거 영화에서 본 적 있어!
지상에서도 맛볼 수 없는 최상급의 서비스를 받고 한 시간 만에 도착한 대도시 레프 시티의 와이번 착륙장.
나는 아직 더 놀랄 게 남아있다는 걸 깨달았다.
“마리에 아가씨! 방학을 축하드립니다아아아아!!!”
“준특급 승급을 축하드립니드아아아아아아아!!!”
착륙장 주변. 아마 천 단위일 인파들이 레드카펫을 밟은 마리에를 열렬하게 반겼다.
“어, 어어······.”
이쯤 되면 두려울 정도다. 박가놈하고 한창 세계를 구하고 영웅으로 떠올랐을 즈음일까.
도시를 침공한 특급 대마수를 쓰러뜨리고 귀환했을 때도 이런 격렬한 환영을 받진 못했던 거 같은데.
“으음, 폴 할아버지. 다들 왜 이렇게 모여있어요?”
“아가씨의 일이 알려졌거든요.”
“음··· 다들 걱정이 많았나부다.”
마리에도 매번 귀환할 때마다 이런 환영을 받는 건 아닌지, 멋쩍은 표정이다.
“베르그 아저씨. 도대체 몇 분이나······ 그리고 저 승급한 건 어제인데.”
“그야 소식을 듣고 바로 선발 라이더를 보내서 알렸지요. 너무 많아서 대부분은 돌려보냈습니다.”
돌려보낸 게 저 정도라고요?
“다들 바쁘실 텐데, 좀 미안해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아가씨. 마리에 아가씨는 저희 남부의 얼굴이나 다름없으시니까요.”
반응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이 시대에서 가장 인기 있고 유명세를 타는 직업은 다름 아닌 가디언이다.
기본적으로 소수인 그들은 마물들에 맞서 인류를 지키는 수호자로서 이미지 메이킹을 해왔기 때문이다.
전 시대의 대표 가디언이 검제 가란드 아덴이었다면 당대의 대표 가디언은 동부 아덴가 출신의 검호 루니아 아덴.
서부와 북부에도 유명세를 타는 가디언들이 있지만, 남부에는 별다른 유명인이 없다.
천재 마법사로 유명한 마리에는 그 시대의 아이콘이 되기에 충분한 인재였겠지.
다른 지역에 밀리기 싫다는 지역감정도 한몫했겠지만.
“자, 그럼 바로 저택으로 가시지요. 가족분들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착륙장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 마차였다.
크리스탈로 움직이는 마차(魔車)가 아닌 말이 끌고 다니는 마차(馬車) 말이다. 이게 여기까지 오면서 처음으로 본 평범한 가축이라는 게 놀랍다.
그렇게 진입한 레프 시티 시내. 아니, 그러고 보니까 도시 이름이 레프잖아. 설마?
“마리에 선배. 혹시 도시 이름이······.”
“우리 집 이름이긴 해! 동쪽으로 좀 더 가면 듀나 시티도 있구!”
“······.”
생각해보니까 플랫폼 이름도 ‘듀프’ 마을이었잖아?
내가 지금까지 이 사실을 몰랐다는 게 놀랍다. 남부에는 자주 오지 못했지만, 이런 사실을 지금까지 눈치 못 챘다니.
시내의 모습에서도 듀나레프의 영향이 확실하게 보였다.
「듀나레프 이발소」
「듀나레프 식품점」
「듀나레프 우체국」
「듀나레프 농업협동조합」
「듀나레프 프로레슬링 협회」
와 씨··· 그냥 도시가 다 듀나레프 천지네. 프로레슬링은 또 뭐야.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도착한 도시에 우뚝 선 저택은··· 음, 이제는 스케일 가지고 안 놀라려고 했는데, 안 놀랄 수가 없네.
예전에 엘 라스 왕실에 초빙된 적이 있다. 판타지 세계의 왕실은 이렇게나 화려하고 엄청난 규모구나··· 라고 실감했는데.
“왕국하고 비교해도··· 손색이 없네요.”
“와~ 코린 왕궁도 가봤어? 나도 몇 번 안 가봤는데!”
저택 입구에는 감자꽃을 그려 넣은 문장과 장식물들··· 저 장식 꽃술은 황금으로 조각한 건가?
입구에서부터 펼쳐지는 광대한 정원과 분수대. 중간중간 유명한 조각가가 만들었을 조각상이나 예술품들이 길을 다채롭게 꾸미고 있다.
장관인 건 정원에 만개한 꽃들인데, TV에서 네덜란드 튤립 농장을 봤을 때나 들었던 압도적인 꽃밭이란 게 바로 이런 거구나 싶다.
다른 점이라면, 그땐 FHD 화질이었고 지금은 리얼 16K쯤은 된다는 걸까.
게다가 입구에는 수많은 방문객들이 줄을 서고 있다. 저 사람들은 뭐 하는 사람들이지?
마리에도 궁금했는지, 폴 씨에게 물었다.
“오늘 무슨 파티 있나요?”
“아~ 아가씨의 승급 소식을 듣고 레프 시장님을 비롯해 남부 각지에서 손님들이 오시고 계십니다.”
거듭 말한다.
방학식은 어제였고, 마리에가 승급했다는 소식은 대충 두 시간 전, 듀프 플랫폼에서 마리에가 알린 게 전부다.
와이번이 먼저 날아와서 소식을 전하는 시간을 생각하면 소식 듣고 삼십 분도 안 되서 몰려왔다는 소리지?
“지금은 자가용 와이번을 가지고 계신 분이나 가까운 분들만 찾아왔지만, 곧 다른 손님들 오실 겁니다.”
“에구구··· 다들 바쁘실 텐데.”
그렇게 말하는 마리에도 그다지 이 상황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자신을 축하하러 오는 게 당연한 것처럼 말이다.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오신 겁니까, 마리에 누나······.
“마리에 선배. 왜 부자인 걸 말 안 했어요?
“음, 부모님이 부자인 거지, 내가 부자인 건 아니잖아.”
“부자들은 다들 그렇게 말하더라!”
이 저택만 물려받아도 100대가 먹고 살겠구만!
“하하, 어차피 아가씨께서 물려받으실 재산 아니십니까? 아가씨는 듀나레프 가문의 적장녀시니까요.”
“폴 할아버지도 참.”
부정은 안 하는 마리에. 뭔가··· 배신감까지 느껴져.
“대대로 가문에서는 데릴사위를 들이고는 했지요. 물론 사위를 들인 가문에는 엄청난 지원과 듀나레프 가문의 사업에도 한 자리씩은 마련해드렸습니다.”
그··· 렇군요? 근데 그걸 왜 저를 보면서 말씀하시나요?
“저희 마리에 아가씨께서는 어렸을 때부터 총명함과 아름다움으로 남부의 꽃이라 불리신 분. 아가씨의 데릴사위가 되고 싶다며 온 청혼서는 감자 창고를 가득 채워도 모자랄 지경이었습니다.”
“아··· 예.”
“전전대 데릴사위셨던 레르겐 님의 경우 당시 가주님이셨던 레티시아 님께서 보석으로 만들어진 별장을 선물하기도 하셨지요. 하하하, 그마저도 감자농장 8헥타르의 가치밖에 되지 않았습니다만.”
이 할아버지도 듀나레프 가문 사람이구나. 비유가 감자라니······.
“포, 폴 할아버지! 그런 얘긴 왜 하시는 거예요?!”
“하하하하, 그렇다는 겁니다. 하하하······.”
나를 보는 폴 씨의 표정이 심상찮다. 부담스러웠던 나는 화제를 돌렸다.
“선배. 제가 얘기했던 그 성 말인데요.”
“아~ 듀크 성 말이지?”
수백 년 전, 남부의 영웅으로 손꼽히던 세반시아 듀크. 그 사람의 성에 대해 알아봐달라고 부탁했다.
“그 성, 최근에 누가 샀대!”
확실히··· 전 회차에서도 듀크 성은 누군가가 소유한 성이었다. 아마··· 남부 끝자락 다도해 출신의 무역업자였던가?
“듀크 성이라면 다도해에서 무역사업을 하시는 카시우스 백작이란 분이 구입하셨지요.”
“와~ 귀족이시구나?”
참고로 이 세계관에서 귀족은 딱 명예직에 가깝다.
왜 현대에서 유명 배우에게 기사 서임을 하고 오래된 귀족이 TV에 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아가씨, 저희 듀나레프 또한 작위를 승계하고 있습니다.”
“에구, 맞다. 어떤 게 있었죠?”
“가주님께선 레프의 공작이시자 랭올의 후작이시며 카드리올 지방의 백작이시고 크란시아의 자작이시며──중략──이상 총 스물다섯의 작위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런 거 다 외우고 계시는 분은 폴 씨밖에 없을 거예요.”
“듀나레프의 집사장인 이상 당연한 일입니다.”
그래··· 작위란 게 지방마다 따로 있어서 겸임할 수 있긴 하지······. 영국 왕 윌리엄 1세가 영국의 왕이자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의 공작이기도 했고.
아무리 그래도 스물다섯은 너무 많지 않나?
“코린이 백작님의 성에 가보고 싶은 모양인데요?”
“이거 운이 좋군요. 카시우스 백작님은 사업차 레프 시티에 방문하신 상태입니다. 본 저택에 초대를 하면 기뻐하며 달려올 테지요.”
“그렇구나! 코린, 잘됐네! 오늘 만나서 이야기 해보면 되겠다!”
카시우스 백작.
전 회차에서도 듀크 성의 소유자였다. 근데 이 퀘스트가 이렇게 쉽게··· 진행되는 거였나?
아무튼, 마차를 타고 30분. 겨우 본 저택에 도착할 수 있었다.
“폴 할아버지, 아빠하고 엄마는요?”
“가주님과 사모님은 오늘 밤에서야 오실 예정입니다. 미안하다 전해달라 하셨습니다. 도련님들과 아가씨들의 방학식은 사흘 뒤부터지요.”
“그럼 그때까지는 쉬어도 되겠네요! 코린, 나 따라와! 쉴 방을 소개해줄게!”
마차에서 내린 나는 폴짝폴짝 계단을 오르는 마리에를 따라갔다.
“여기 1층은 직원분들 일하시는 곳이구! 방은 2층서부터 있는데, 우리 가족들은 3층에서 지내!”
“그럼 2층에서 자면 될까요?”
“아니! 코린은 이쪽!”
마리에는 나를 3층의 한 방으로 데려왔다. 폴 씨도 함께 따라온다.
“여기가 내 방이구! 코린 방은 여기!”
“신록의 방이군요.”
“신록의 방이요?”
“예~ 대대로 가문을 이을 차기 가주님의 약혼자 분을──”
“포, 폴 씨! 그런 건 말 안 해도 돼요! 그냥 제일 좋은 방이라서 주는 거니까!”
마리에는 그렇게 말하더니 신록의 방이라는 곳을 이것저것 설명해주다가 신록의 방과 연결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혼자서 눕기엔 너무 큰 퀸사이즈 침대다. 처음 봤어. 이런 호화스럽고 커다란 침대는.
-똑똑!
방에 딸린 욕탕에서 씻고 나오는데, 문을 두드리며 누군가가 찾아왔다.
“누구십니까?”
“본 저택에서 마사지사를 겸임하고 있는 윌슨이라고 합니다.”
“어··· 들어오세요?”
찾아온 남자는 고급 스파에서 볼법한 전문 마사지사. 그는 방에서 마사지를 받을지, 전용 룸에서 받을지 제안했고 나는 방에서 받기로 했다.
-뻐걱! 뻐거걱!
“어우, 시원타아······.”
“하하, 많이 뭉쳐있으시군요. 지금부터 어깨를 풀어드리겠습니다.”
“부탁드립니드아아아아······.”
기, 기가 빨리는 거 같아······.
여기가 천국인가.
진짜 평생 여기서 살고 싶다.
* * * *
같은 시각, 마리에는 오랜만에 시녀들의 시중을 받으며 몸을 풀어주고 있었다.
“어머, 아가씨. 피부가 마치 아기 피부 같아요!”
“정말 곱네요. 겨울 때보다 훨씬 고와지신 것 같아요!”
찹쌀떡처럼 포실포실한 마리에의 피부를 관리해주며 재잘재잘 떠드는 시녀들.
주인이 항상 기분이 좋도록 듣기 좋은 말들을 해주는 건 시종인들의 소양이지만, 마리에에 한해서는 진심이다.
실은 마리에가 도착하기 전에, 이 저택에서 사용인들끼리 정해진 합의가 있었다.
‘다들 알고 있지? 절대 마리에 아가씨 앞에서 흡혈귀 관련해서 이야기하지 않기!’
마리에가 흡혈귀로 각성해버렸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어찌나 놀랐던가?
이 세계에서 마족으로 각성하는 일은 왕왕 있는 일이지만, 그 취급과 시선은 결코 곱지 못하다.
그러나 그건 그거고 마리에는 마리에다.
마리에를 아는 이들은 누구나 이 소녀의 사랑스러움과 친절함을 안다.
오랜 기간 그녀를 보아온 시녀들은 딸자식을 떠나보내는 심정으로 아카데미에 가는 마리에를 환송했는데, 마족이 되서 돌아왔다니!
그들은 무언의 합의를 통해 이 소녀가 주눅이 들지 않도록 언행에 주의하기로 했다.
실은 듀나레프가 지분을 가지고 있는 신문사에서도 이 부분을 의도적으로 두루뭉술하게 넘어가기도 했고.
이 세상. 자본과 권력이 있으면 연쇄살인마도 성자로 만들 수 있는 법이다. 하물며 감자제국의 황녀님께 그 누가 태클을 걸겠는가.
“마리에 아가씨, 아카데미 생활은 불편하신 점이 없나요?”
“으응··· 옷을 다시 맞춰야 할 거 같아. 가슴이 많이 답답해졌어.”
“어머~ 아가씨께서 아직 성장기란 증거지요. 최고의 디자이너와 예장 장인들을 대기시켜둘게요.”
“음··· 하는 김에 남성용도, 괜찮을까?”
“남성용이라 하시면?”
“아~ 같이 오신 학우분 말씀이시죠?”
이거다! 시녀들은 눈을 마주치고 단숨에 화젯거리를 합의했다.
“정말 잘생긴 분이시던데요? 싹싹하고 성격도 좋아 보이고요.”
“응. 좋은 사람이야.”
마리에의 귓가가 벌겋게 물들며 얼굴을 슬쩍 파묻었다. 그 눈에 띄는 변화에 등허리를 풀어주던 시녀도 멈칫거렸다.
‘봄이군.’
‘봄이구나.’
‘그 도련님 정보 아는 사람?’
‘5급 기사래. 아가씨 반려로는 좀 그렇지 않나?’
‘아냐아냐, 1급 기사라고 베르그 씨가 말씀해주셨어. 동부의 검호 루니아 아덴하고도 필적하는 실력자라던데?’
‘오······.’
주인 앞에서 3.7초 만에 묵음으로 정보를 교환하는 시녀들. 방향성이 정해졌다.
“어머~ 아주 듬직한 분이시던데. 어떤 분인가요?”
“음··· 일단 잘생겼고······.”
‘잘생겼나?’
‘객관적으로는 그렇지?’
‘그래도 우리 아가씨만큼은 아니지.’
“책임감도 강하고, 착하고···!”
‘성격은 합격점인가 보네.’
‘집안은 어떨까?’
‘돈이 무슨 소용이야. 아가씨가 듀나레프인데.’
‘하긴.’
“내가 행복했으면 좋겠대. 나보고 좋은 사람이고, 착하고, 예쁘다고 했어···! 헤헤······.”
“”············.””
마지막 말에 뭔가 싸함을 느낀 시녀 세 사람.
‘멘트가··· 좀 치네?’
‘뭐지, 선수인가?’
‘에이··· 설마.’
시녀들은 불길한 생각을 공유했다. 이 듀나레프의 아가씨는 남부에서의 절대적 위치와 주변의 보호 덕에 남자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았다.
청혼서로 감자 창고를 채우면 뭐하나? 내 딸의 재산만 보고 덤벼드는 후레잡놈들 따위 필요 없다고 다 태워버렸는데.
다시말해 마리에 듀나레프는 남자에 대한 내성이 전혀 없다는 소리다!
“저··· 혹시, 아가씨. 이런 말씀 드리기 좀 그렇습니다만······.”
“응? 뭔데?”
“혹시 그 도련님과 금전적인 지원을 했다던가··· 돈을 빌려달라는 이야기가 나왔던가······ 그런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는지요?”
‘바, 바보야! 그렇게 직구로 물어보면 어떡해!’
‘아냐, 아가씨는 이렇게 안 물어보면 대답도 못할걸?’
공교롭게도 그녀의 판단은 정확했다.
“음~ 사업투자는 좀 했어!”
“오우······.”
시녀 중 한 명에게서 터져 나온 육성은 누구도 타박하지 못했다. 그녀들은 바들바들 떨리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느덧 종아리를 두들기던 팔도 멈춘 채.
“그··· 사업이라면 혹시?”
“여관업을 하겠대! 수익도 무조건 세 배 보장해준댔어! 코린이 참 유능하고 똑똑해!”
‘······쉣.’
시녀들은 같은 감성을 공유했다.
* * * *
시장을 비롯해 각 지역 유지가 초대된 것치고 파티 자체는 평범한 가든파티였다.
물론 그 규모가 가히 듀나레프 스케일이라서 그렇지.
“코린···! 여기 맛있는 거 많아! 감자전 먹을래?”
“오우.”
가벼운 원피스 차림의 마리에가 내 손을 이끌었다. 파티의 주인공과 함께 다니니 주변에서 주목하는 게 장난 아니다.
“파티라고 해서 무슨 귀족들의 무도회 같은 걸 생각했는데, 의외네요.”
“으웅? 뭐, 다들 인사만 하러 온 거니까~”
지역유지들이 인사하러 오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는 마리에.
마리에에게 말 한 번 걸어보려는 이들이 수두룩한 걸 보면··· 그녀에겐 당연한 일상일지도 모르겠다.
“맞다맞다! 코린 일부터 해결해야지!”
“카시우스 백작이요?”
“응응! 마침 저쪽에 계시네!”
마리에는 내 일을 우선적으로 해결해주려는 모양이다.
“본인 파티인데 좀 즐기시죠.”
“음~ 구지?”
“······.”
뭐지, 이 품격은? 나에겐 너무나 일상 같아서 굳이 즐길 필요도 없다는 이 태도는? 이것이 대륙을 지배하는 농업재벌의 위용?
마리에와 함께 향한 가든 한편. 그쪽에는 다도해 특유의 꺼뭇꺼뭇한 피부를 가진 남성이 초대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카시우스 백작.
대도서관에 봉인된 특급 마령 세반시아 듀크의 퀘스트를 깨다 보면 필연적으로 마주치게 되는 네임드 캐릭터.
세반시아의 부인과 딸인 루이나 듀크와 세실리아 듀크의 이야기를 찾다 보면 듀크 성에 들어갈 필요가 있는데, 플레이어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하나는 잠입. 카시우스 백작의 듀크 성에 몰래 잠입해 단서를 찾는 것이다.
물론 들키면 위병이 공격해오고 살해시 악명이 올라가는 덤이라서 은신 특화가 아니면 리스크가 크다.
정석적인 구도는 카시우스 백작의 퀘스트를 깨고 그에게 정식으로 허가받는 것이다.
이 퀘스트가 다도해를 어지럽히는 마물 씨 서펜트를 잡아달라는 의뢰라서 골 때리는 게 문제지만.
아무튼, 카시우스 백작은 노회한 상인답게 노련하고 까다롭기 짝이 없는 NPC다.
상대방이 전쟁영웅이든 뭐든 간에 내 부탁 안 들어주면 안 도와줌! 이라는 태도였으니.
“안녕하세요, 백작님!”
“마리에 영애?”
뭐야? 저 할아버지 얼굴이 왜 저리 밝아? 우리가 찾아갔을 땐, ‘가디언이라고? 내 골치를 썩이는 문젯거리를 해결해주면 허가 못 해줄 것도 없지.’라는 태도였으면서!
“마리에 듀나레프예요!”
“카시우스 블랑드리아입니다.”
자연스럽게 악수부터 건네는 마리에. 카시우스도 흐뭇하게 웃으면서 악수를 받았다.
“듀나레프 건설의 명예이사예요.”
“블랑드리아 운수업의 상단주입니다.”
“와, 정장단추가 멋지네요. 흑요석을 깎은 건가요?”
“네, 항구마다 보석을 취급하는 상점도 입점하고 있지요.”
“어쩐지! 저한테 여객수가 있어요. 흐레스벨그라는 종이죠.”
“그렇군요. 오는 길에 봤습니다. 아주 멋진 야수더군요.”
“실은 객실의 침대가 흔들려서 불편한 게 많아요.”
“저런. 제 아내가 가구 사업을 운영합니다. 흔들리지 않는 침대도 있지요.”
“멋지네요. 저도 한 번 만나 뵙고 싶어요.”
“조만간 제 성으로 오시죠. 영애께 제 아내를 소개해 드리고 싶군요.”
“와~ 듀크 성 말씀이시죠? 전쟁영웅 세반시아 듀크의! 집무실 구경도 해봐도 되나요?”
“안 될 거 뭐 있겠습니까. 이번 주중은 어떠십니까?”
“금요일이 좋을 거 같아요! 혹시 바쁘시다면······.”
“아뇨,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영애를 위해 시간을 비우도록 하지요. 금요일에 꼭! 뵈었으면 좋겠군요.”
“그럼 금요일에 봬요!”
순식간에 카시우스 백작과 약속을 잡고 온 마리에가 싱긋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약속 잡았어! 금요일이래!”
“······.”
나 저 성 한번 들어가 보자고 배 타고 잠수해서 60m짜리 바다뱀하고 사투를 벌였는데······.
“코린, 내일 나랑 쇼핑하러 갈래? 백작님이 파티를 연다니까 복장을 갖춰야 할 것 같구! 심심하기도 하니까?”
“네, 그럼요. 그래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