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Killed the Play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59
수상할 정도로… (4)
파티 당일. 도착한 정장과 구두, 시계까지 장착한 나는 거울 앞에 섰다.
“······더럽게 편하네.”
전생이나 전 회차에서도 정장을 입을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다. 면접이나 왕실인사와 고위관료를 만날 때면 나름대로 차려입었으니까.
그래도 본업은 어디까지나 기사. 싸우는 자로서 정장에 돈을 투자할 만큼, 여유롭진 않았지.
‘동네 양장점에서 은화 70장짜리 기성복 입고 갔었는데.’
아··· 그래서 2왕녀가 나한테 따로 금일봉을 하사한 건가? 궁상스럽게 입고 다니지 말라고?
“나름 큰맘 먹고 산 거였는데.”
지금 내가 입은 정장만 백금화 한 장. 시계나 구두, 타이까지 합하면 백금화 한 장 반 정도는 된다.
마리에가 사준 게 이걸로 끝나지 않는다는 게 무서운 점이다. 평생 입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쌓여서 돌아갈 때가 문제다.
이거 어떻게 들고 가지?
“코린! 준비됐어?”
“네.”
신록의 방과 연결된 마리에의 방. 연결문을 열고 마리에가 나타났다.
“오······.”
숨이 턱 막혔다.
바닥이 비칠 정도로 투명한 유리 구두에 군데군데 상아색과 물빛으로 포인트를 준 스타킹과 드레스까지.
어깨와 가슴골을 과감하게 노출한 것은 절대적인 자신감의 표현일까.
평소와 달리 마리에의 얼굴은 분칠을 한 흔적도 보였다.
안 그래도 백옥같던 피부를 꾸민 화장은 별 비치는 밤처럼 마리에를 반짝거리게 만든다.
“어때? 오늘 도착한 거야!”
순백의 오페라 글러브로 감싼 양손이 드레스 자락을 붙잡고 스윽 들어 올려 빙그르르 도는 마리에.
춤추는 요정처럼 싱그럽고 신비로웠다.
솔직히 말해서 뿌듯하다.
내가 이 소녀를 구하지 않았다면, 오늘 이런 모습을 볼 날도 영영 없어졌겠지.
남부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사랑하는 공주님을 잃었을 것이다.
“할 만했군.”
“응?”
갸웃거리는 마리에. 나는 망설임 없이 그녀에게 다가갔다.
「아리따운 레이디를 앞에 두었으면, 응당 입 맞추고 춤을 신청하는 것이 젠틀맨의 예의라네. 나이트 코린.」
전 회차에서 한 소리 들었었지. 여기선 신사의 도리를 다하는 게 예법일 터.
마리에의 오페라 글러브를 낀 손을 부드럽게 붙잡고 그녀보다 낮은 시선에서 우러러보듯 올려봤다.
“오늘 첫 춤은 제게 허락해주시겠습니까, 레이디?”
“어, 어엇···! 읏! 아?!”
마리에의 발개진 얼굴이 보인다. 귓가까지 빨개진 것이 영 면역이 없어 보였다.
귀엽구먼.
“오늘 이렇게 춤 신청할 거니까 받아주면 좋겠네요.”
“어응? 응! 그래! 그래야지! 응! 아라써! 꼭! 받을게!”
마리에의 등 뒤. 한창 단장 중이던 시녀들이 수긍거리는 게 보인다.
“······역시 선수.”
“아가씨가 제비한테 물렸어.”
“위험한 거 아니야? 간이고 쓸개고 다 내줄 기세시던데.”
기사의 뛰어난 청력으로도 시녀들의 대화는 알아듣기 어려웠다. 거의 묵음으로 대화하는 것이 보통 솜씨가 아니다.
가끔 부동산, 여관 어쩌고가 나오던데··· 관심 있는 걸까?
하긴 돈 불리는데 부동산만 한 게 없지. 부동산은 무패신화니까!
나중에 한 번 투자를 권유해봐야겠다.
“자, 그럼 출발할까요?”
“어, 어어! 에, 에스코트 부탁할게.”
“아무렴요, 아가씨.”
“그, 그르지마···!”
“그럼 감자제국 황녀님이라고 불러드릴까요?”
“······??”
방금 솔깃했다.
“아무튼, 별명으로 부르지 마! 내가 선배니까 내 말 들어!”
“그러죠, 공주님.”
“코린 너어···!”
마리에가 토닥거리면서 팔을 때렸는데··· 솔직히 아팠다. 마리에 힘 장난 아니야······.
아무튼, 우리는 마리에 선배의 거대야수 흐레스벨그의 객실에 탑승해 남쪽에 있는 백작의 성으로 향했다.
야아~ 마차 타고 며칠 거린데, 이놈 타니 몇 시간도 안 걸리는구먼. 편하다.
“어유, 이놈 한 마리 맞춰야 하는데.”
“응? 줄까?”
“······그런 말 하지 말아요. 애 버릇 나빠지니까.”
이 누나는 달라고 하면 진짜 줄 것 같아서 더 무서워.
사실 받는다고 해서 쓸 수도 없다. 와이번도 그렇지만 흐레스벨그 같은 대형야수는 어디 정박해둘 곳도 없으니까.
당장 메르카바 시티만 해도 보안상의 이유로 길들인 비행야수족의 출입을 금지한다.
“우린 중간에 내려서 마차 타고 갈 거야.”
“그냥 뛰어내리면 되지 않아요?”
공수부대처럼 촤악~! 전 회차에서 자주 해본 일이다.
“안돼! 그러면 드레스 핏하고 머리 만진 거 다 망가진단 말이야.”
“선배 정도의 마법사면 그 정도는 다 막을 수 있을 텐데.”
“그리고 다른 사람들 놀라! 매너가 아니야.”
“그것도 그렇네요.”
아무튼, 우리는 적당한 벌판에 착륙한 뒤, 시간에 맞춰 미리 대기하고 있던 듀나레프 가문의 마차를 타고 성으로 향했다.
“아아, 마리에 영애! 어서 오십시오!”
마리에를 오매불망 기다렸는지, 듀나레프의 황금 감자꽃 문장이 보이자 허둥거리며 달려오는 카시우스 백작.
‘저 양반이 저런 양반이었던가······.’
씨 서펜트 안 잡아오면 성문도 안 열어줄 거라며 뻗대던 그 양반이 맞나?
“안녕하세요, 카시우스 백작님!”
“약속하셨던 대로 방문해주셨군요. 저희 블랑드리아는 영애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그렇게 말하던 카시우스 백작은 성으로 들어가는 입구, 검문을 받으며 줄을 서고 있는 길옆으로 안내하더니 우리를 프리패스로 통과시켰다.
“어머, 정말 마리에 영애야.”
“듀나레프 가문이 온다더니, 소문대로였어.”
“블랑드리아 백작이 잘나가긴 잘나가나 봐.”
요 며칠 실감한 건데, 이곳 남부에서 듀나레프 가문의 영향력은 가히 절대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만 헥타르라는 초유의 농장규모는 둘째 치고 스물다섯 개 도시의 실질적인 지배자이자 대륙의 유통망을 장악한 거상인 것이다.
카시우스 백작의 본거지인 다도해는 엘 라스 왕국 산하는 아니지만, 그래도 대륙에서 유통업을 하려면 듀나레프 가문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
그런 상황에서 듀나레프 가문의 적장녀가 백작의 파티에 초대됐고, 그에 응했다? 블랑드리아 가문에 청신호가 켜지고 순풍만범한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된 거다.
‘확실히 씨 서펜트 잡는 것보다도 마리에가 한 번 얼굴 비치는 게 이득이긴 하네.’
씨 서펜트는 돈으로 가디언 협회를 구워삶던 어쩌건 해결 가능한 문제지만, 제국의 황녀를 움직이는 건 돈으로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어휴······.”
“왜 그래, 코린?”
“그냥 새삼 마리에 선배가 대단하다는 걸 깨달았을 뿐이에요.”
“그, 그래? 엣헴! 코린의 선배가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야!”
마리에의 코를 꾸욱 눌러준다.
“왜, 왜 그래?”
“선배 콧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길래.”
“나, 나는 그래도 괜찮지 않아?”
“뭐, 그렇긴 하죠. 감자제국의 황녀님이시니.”
“······좋은 이름이긴 한데. 놀리는 거라서 솔직하게 좋아해야 할지 모르겠어.”
아, 이 얼마나 감자를 사랑하는 소녀인가.
그렇게 안에 도착해 짐을 푸는데, 마리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코린, 무기 챙겼어?”
“네, 선배는요?”
천으로 돌돌 말아 감싼 창은 둘째 치고, 마리에에게는 별다른 장비가 보이지 않는다.
“혹시 모른다고 해서 일단 마차에 실어놨어.”
“그런데 무기 들고 다녀도 괜찮을까 모르겠네.”
“가디언들은 무기 들고 다니면 오히려 좋아해. 멋지다고. 무엇보다 가디언들은 언제 마물과 싸우게 될지 모르니까.”
“아하~”
연회장까지 무기를 들고 갈 순 없겠지만.
“마리에 공작영애! 나이트 코린 로크 경! 입장하십니다!”
하여튼 시종의 우렁찬 소개와 함께 문이 열리자 화려하게 꾸민 회장이 눈에 띈다.
수정으로 만든 샹들리에에는 곳곳에 야광석이 박혀있고, 창문은 싹 스테인글라스에 태피스트리들은 블랑드리아 가문의 문장과 남부 지대의 상징물들이 새겨져 있다.
“어······.”
“왜 그래, 코린?”
“아무 것도 아니에요.”
전 회차 때와는 많이 달랐다. 일단 물건들이 다 새거고 전 회차에서 봤던 것들보다 고급졌다. 설마 마리에 온다고 새 단장 했냐?
“어머, 마리에 영애예요?”
“최근에 준특급 마법사로 승급했다죠?”
“준특급? 그러면 사실상 검호 루니아 아덴과 동급 아닌가요?”
“그렇지요. 듀나레프 가문은 아주 좋아 죽겠어요.”
“우리 아들이 내년에 메르카바에 입학하는데··· 한 번 붙여 볼까요?”
“어렵지 않겠어요? 창고가 쌓일 정도로 청혼서가 날아온다던데.”
“그나저나 저 파트너 남성은 누구죠?”
마리에는 등장만으로 큰 파문이 되어 연회장을 흔들었다.
아카데미에서야 다 같은 학생이니까 덜했지만, 홈그라운드인 남부에서는 가히 절대적인 위치라고 할 수 있군.
곧 중요한 입장객들은 모두 모이자 주최자인 카시우스가 단상에서 인사를 시작했다.
“카시우스 블랑드리아 백작입니다. 오늘은 저희 가문의 파티에 참여해주신 귀빈분들께 감사드리며 특히 마리에 듀나레프 영애께서 자리를 빛내주시어 감읍할 따름입니다.”
역시나 마리에를 언급하고 넘어지는 카시우스 백작. 아! 내가 듀나레프 가문하고 이렇게 친하다! 라고 과시하는 것 같다.
마리에는 자신에게 주목된 인파들에게 손을 흔들며 웃어주었고, 곧 파티가 시작되자 오케스트라 악단의 연주가 연회장에 울려 퍼졌다.
“마리에 영애. 저는 로테난 지역의 백작부인──”
“오늘 드레스 너무 아름다우셔요. 저는 세바스티안에서 작은 상단을──”
귀족이 됐든, 지역의 유지가 됐든 모두가 마리에를 향해 몰려들었다. 마리에는 화사한 미소로 능숙하게 대화를 시작했고, 다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역시 인간 카피바라. 대화하고 호감을 끌어내는 게 자연스럽다.
「사교계는 혓바닥으로 만들어진 칼이 춤추는 곳이야, 경. 항상 언행에 조심해야 하지.」
전 회차에서 봤던 둘째 공주님의 말처럼 사교계는 언제 돌변할지 모르는 칼잡이들의 전장이라던데, 그것도 마리에한테는 해당하지 않는 모양이다.
하긴, 정치적 입지와 세력이 갈린 왕궁과 다르게 듀나레프가 남부에서 가진 힘과 명성은 절대적인 수준이니.
‘남부에 한해 마리에 선배는 언터쳐블이나 마찬가지겠군.’
중앙과 다르게 견제할 세력이 아예 무방한 수준이니 당연한가.
나는 한창 대화 중인 마리에에게 다가가 조용히 속삭였다.
“선배, 조금 즐기다가 집무실로 가보죠.”
“응···!”
나와 마리에는 무장을 착실하게 챙긴 상태다. 파티가 무르익을 즈음엔 백작과 이야기하고 맡긴 무기를 찾아 집무실로 가볼 생각이다.
그렇게 악단의 연주가 바뀌기 시작했을 무렵, 마리에에게 웬 말끔한 청년이 카시우스 백작과 찾아왔다.
“마리에 영애.”
화려한 순백색 기사 예복을 걸친 청년. 아들이었지 아마?
“카시우스 백작님.”
“파티는 즐기고 계시는지요. 이쪽은 제 아들입니다.”
“안녕하세요, 블랑드리아 영식.”
“레벤트 블랑드리아입니다. 영애.”
레벤트는 허리를 굽힌 채로 고개를 들었다. 녀석의 반짝거리는 눈빛이 마리에를 향한다.
“하하, 제 아들이지만 아주 출중한 실력을 가진 기사입니다. 최근에 준1급 기사로 승급했지요.”
오~ 준1급 기사라··· 아직 20대 초반으로 보이는데, 저만하면 천재 소리 듣는 인재다.
“그러시구나···! 축하드려요!”
“마리에 영애에 비하면 부족할 따름입니다.”
겸양을 떠는 레벤트. 카시우스 백작이 헛기침을 하며 운을 띄웠다.
“허허, 그럼 저는 다른 귀빈들을 맞이하러. 젊은 사람들은 젊은 사람끼리 어울리도록 늙은이는 빠지도록 하지요.”
오~ 카시우스 백작의 은근한 권유에 마리에는 자연스럽게 레벤트 백작 영식과 대화를 시작했다.
“메르카바 아카데미를 다니고 계시죠? 저도 메르카바 출신입니다. 하먼 교관님은 아직도 정정하신가요?”
“선배님이셨구나! 네, 요즘도 이노옴! 하고 엄하게 가르쳐주시거든요.”
“하하, 여전하군요. 실례가 안 된다면 후배님께 말을 편하게 해도 될까요?”
“그럼요, 선배님.”
“그럼 지금부터는 편하게 대할게.”
자연스럽게 거리를 좁히는 레벤트. 그는 일상적인 대화를 하면서 은근히 추파를 던지기 시작했다.
“방학은 막 시작했지? 괜찮다면 우리 가문이 보유한 소금광산을 한 번 구경해볼래? 암염을 깎아놓은 광산 내부가 마리에 후배처럼 예쁘고 아름답거든.”
“아, 저희 집에도 있어요. 20개 정도.”
“응? 아아··· 이, 있구나? 그럼 최근에 구매한 해변가가 에메랄드 빛으로 유명하거든. 그곳에서······.”
“와~! 엄마가 귀퉁이 땅 팔았다고 했는데, 선배님네에서 산 거였군요?”
“그, 그렇구나······ 그, 최근에 리조트 공사를 하고 있는?”
“맞아요! 요즘 건설 쪽 일이 없다고 일감도 줄 겸 관광지 개발을 좀 하겠다고 들었어요. 제가 거기 이사직도 있거든요!”
“······그렇구나. 아, 마물들로 만든 박제들 보는 건 좋아해? 집에 내가 잡은 마물들로──”
“좋아해요! 아버지가 따로 박물관도 만들 정도거든요. 도시마다 있는 듀나레프 박제관이라고 들어보셨어요? 거기 있는 거 제가 잡은 것들이에요! 아, 선배님 뒷말을 못 들었어요.”
“아, 아니야. 아무 것도······.”
그만해, 마리에! 레벤트의 라이프는 이미 제로라고!!
뭐지? 지금 작정하고 맥이는 건가? 그렇다기엔 마리에의 표정에 악의라곤 티끌 하나 보이지 않는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다고, 돈 자랑 하기에는 재력이 비교가 안 되고, 무용을 자랑하기에는 상대가 준특급 마법사다.
안타깝게도 이 대륙에서 마리에 앞에서 뭔가를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시피 하지 않을까?
그러나 레벤트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말을 붙였다. 주변에서는 이미 마리에를 노리는 하이에나들이 수두룩하다.
그들은 탐욕스러운 시선을 노골적으로 보내왔으나 감히 행동에 나서진 못했다. 그런 그들에 비하면 자신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이란 걸 인지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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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바뀌는 악단의 연주소리. 파티에 참석한 이들이 파트너를 찾는 움직임을 보아하니 춤을 출 시간이다.
“마리에 영애,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스윽, 손을 내미는 레벤트. 그 뜻은 말할 필요도 없다. 다소 눈치 없이 그를 맥이던 마리에도 이것만큼은 의도를 눈치채고 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와 그녀의 시선이 교차하려던 순간, 누군가가 그 사이를 가로막으며 한 청년이 불쑥 끼어든다.
“마리에 영애! 론디니움의 갈리라고 합니다! 평소 흠모해왔습니다! 부디 첫 춤을 춰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오~”
술만 홀짝이며 눈치만 보길래 말도 못 걸어볼 줄 알았는데, 제법 패기가 있네. 이제 막 스무 살쯤 되나?
“마리에 영애! 저도!”
“부디 첫 춤의 영광을 제게!”
“아닙니다! 저를···!”
갈리라는 친구가 봇물을 터뜨리자 여기저기서 하이에나처럼 달려드는 사내들. 일제히 몰려든 남자들에 마리에도 대처하지 못하고 당황했다.
“아, 저기··· 그게······.”
다들 패기는 좋은데. 매너가 덜 됐구먼.
그나마 나은 선택지는 마리에가 주최자의 아들인 레벤트와 첫 춤을 시작하는 거지만··· 사실 무도회에서 첫 춤은 파트너와 하는 게 기본 매너다.
-또각또각
“마리에.”
“어, 코린?”
내가 다가오자 화색이 된 마리에. 빨리 이 곤궁에서 자신을 구해달라는 신호를 맹렬하게 보내는 중이다.
“당신은······.”
“코린 로크입니다.”
“로크 영식이군요. 마리에 영애의 파트너인······.”
내가 마리에의 파트너란 걸 알고 레벤트를 비롯한 남자들이 바로 경계하는 게 느껴진다.
“로크 경이라고 부르시죠. 귀족은 아니라서.”
“······귀족이 아니라고요?”
두 번 말하는 거지만, 이 세계에서 작위는 명예직에 가깝다.
진작 중앙집권화와 군권 분리가 완료된 이 세계에서 귀족은 구시대의 계급. 조세권도, 사병을 양성할 권리도 없다.
무력이 없는 작위는 근본적으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법이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사회적 위치를 알려주는 명함으로서의 역할은 남아있다.
마리에만 봐도 자기가 어떤 작위를 승계할지 관심도 없지만, 온갖 수식어를 다 달고 다니지 않나.
요컨대 작위가 있다는 건 그만큼 부자거나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다는 걸 의미했다.
“하···.”
순식간에 나를 깔보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여기 있는 양반들은 다 한 가닥 하는 양반들이니 일개 기사 정도는 우스운 모양이다.
“준1급 기사 레벤트 블랑드리아입니다. 로크 경. 마리에 영애의 학우인 듯한데?”
준1급에 힘줘서 말하는 거 보소. 귀엽네.
“후배입니다.”
“하~ 그렇군요. 마리에 영애께서 후배에게 좋은 구경을 시켜드리려고 온 겁니까?”
“그런 것도 있죠.”
명목상은 듀크 성을 구경하러 온다는 거였으니까.
“마리에 영애의 후배라면 제 후배이기도 하지요. 코린 후배. 실례가 안 된다면 영애의 첫 춤을 추고 싶군요. 양보해주시겠습니까?”
얘가 하는 말을 종합해보면 이렇다. 나 준1급이다. 그리고 네 선배다. 주제 파악 끝났으면 알아서 짜져라.
이런 사교계식 말투를 번역하는 것도 피곤한 일이다. 공주님들은 다들 어떻게 이러고 산 데.
당연하지만 내가 돌려줄 말은 하나다.
“싫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