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Killed the Play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64
박쥐효과(2)
거대하고 초고속으로 회전하는 태풍. 그 앞에 선 우리는 재해 앞에 놓인 무력한 인간처럼 작아 보였다.
다른 게 있다면 태풍박쥐 알반이 일으킨 인공적인 태풍이라는 점. 실제 태풍처럼 이동하지 않는다는 점일까.
어찌됐든 저 광오한 대폭풍 안으로 무작정 진입하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다. 대형 마물이라면 모를까 일단 인간은 버티지 못하고 휩쓸리고 말 것이다.
“지원조와 이야기는 끝났습니다. 남은 건 타이밍만 맞추면 됩니다.”
이번 토벌작전의 파티장인 에드거 교수의 계획은 돌입조와 지원조로 나뉜다.
지원조가 태풍을 일시적으로 무력화시켜 길을 만들고 돌입조가 빠르게 진입해 태풍의 핵인 알반을 토벌한다. 심플 이즈 베스트다.
지원조.
마리에 듀나레프.
루라라 마스.
에리우 카사르.
데이나 아리엔느.
돌입조.
하먼 웰스치.
오우겐 렌트리.
에드거 린튼.
베아재커.
코린 로크.
이상 4명의 기사와 한 명의 마법사다.
“급조한 파티라 팀웍은 기대 못 하겠지만, 각자 1인분씩만 하면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파티장은 에드거 린튼 교수가 맡았다.
전 1급 마법사이자 대륙 각지를 돌며 범죄자들을 심판하던 치안판사인 그는 노련한 파티장. 이번 작전의 파티 리더를 맡을만했다.
“하먼 교관님과 오우겐 교수님이 전위를. 코린 학생과 베아재커 학생은 후위를 맡아주십시오.”
파티의 구성원은 호화롭기 짝이 없었다.
에드거 린튼이라는 노련한 1급 마법사와 준1급 기사인 하먼 영감과 오우겐 교수.
학생인 나와 베아재커 둘 다 젊은 나이에 1급 기사라는 걸출한 인재다.
우리는 지원조가 태풍을 해결할 마법을 준비하는 잠깐 정적의 시간을 가졌다.
“코린 후배.”
그런 와중 내게 말을 건 것은 베아재커 2학년이다.
“안녕하세요, 베아재커 선배.”
그는 우락부락한 거한이었다. 짐승의 가죽으로 대충 덮은 그의 새하얀 근육질 몸은 대부분이 노출되어 있었다.
북부의 노스 아일랜드 야만부족 출신의 . 네임드다.
“되도록 내 뒤에 있어라. 방해된다.”
“아··· 예.”
나도 키가 꽤 큰 편인데, 베아재커는 나보다 두 배는 컸다.
“키 엄청 크시네. 하프 거인족이셨던가요?”
“······신경 꺼라.”
부족이 특유의 ‘광폭화’ 특질과 난폭한 성정으로 유명한 것과 달리 베아재커는 무뚝뚝하게 내 질문을 받아넘겼다.
“하지만 베아재커 선배. 이번 작전, 우리는 어디까지나 후위입니다.”
“······내가 더 강하다.”
“그렇겠죠.”
-찌릿!
나를 내려다보는 푸른 눈이 사납다. 우습게 여겼다고 본 모양이다.
“착각하지 마세요, 선배. 이번 작전, 핵심은 에드거 교수님입니다. 우리 역할은 베테랑 교수님들의 후방을 보좌하는 거예요.”
“······.”
“물론 학생을 전방에 세운다는 것이 교수님들 입장에서 용납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겠죠. 그들은 어른이니까요.”
“헛된 객기다.”
베아재커의 말이 맞다. 에드거 교수를 제외하면 하먼 영감은 진즉 전성기가 지나쳤고, 오우겐 교수도 베아재커와 같은 파워 탱커 타입이지만, 스펙에서 밀린다.
현 상황에서는 베아재커가 이 파티 최강. 나도 계율의 백업을 받지 않으면 이 남자한테서 이길 수 없다.
“뭐, 일단 지켜봅시다. 적어도 경험 면에서는 우리보다 나은 어른이니까요.”
“······너는 나를 아이로 보는 건가?”
그렇게 볼만한 비주얼이 아니긴 하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마리에나 베아재커나 똑같은 고삐리다.
“아직 성인식도 안 치른 어린애 맞잖아요. 아, 물론 선배네 부족식 말고 왕국 기준입니다.”
“······.”
나를 내려다보는 베아재커의 시선이 묘하다.
“슬슬 준비가 됐군요. 마리에 학생의 대규모 마법입니다.”
금발의 미중년 에드거 교수는 시가에 불을 붙이며 시작을 알렸다. 동시에 저 멀리서 거대한 마법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인간의 것이라기엔 지나치게 거대한 초거대규모 마법진. 저만하면 규모만으로 대마법이라 불릴 만한 수준이다.
“하··· 대단하긴 하군요. 마리에 학생.”
마리에의 특성 ‘마력증폭’이 듬뿍 들어간 마법은 초급마법조차 대마법 비스무리한 흉내를 낸다.
저건 마리에의 특기인 연금마법 ‘결빙’. 그 마법에 끝없이 증폭을 건 셈이다.
비바람을 머금은 거대태풍에 스며드는 마력. 그리고 불과 1초도 안 되는 순간······.
-꽝! 꽝꽝!
아무런 전조현상도 없이 나타난 거대태풍.
태풍박쥐가 스스로의 목숨을 태우며 만들어낸 이 태풍은 웬 기상학 씹어먹는 소리냐며 기상청 관계자가 전력으로 태클을 걸었을 법한 태풍이 통째로 굳어버렸다.
아니, 정확히는 얼어붙었다고 해야겠지.
“그야말로 ‘마법’이군.”
신의 분노처럼 느껴졌던 거대한 자연이 꽁꽁 얼어붙어 전위적인 조형물이 되어버렸다.
“루라라 교수 차례군.”
에드거 교수가 말하기 채 무섭게 밤하늘을 비추는 별빛처럼 반짝거리는 연기 무리가 얼어붙은 태풍을 향해 흘러 들어갔다.
“다들 엎드려.”
말이 채 끝나기 무섭게 바짝 엎드리는 우리들. 동시에 에드거 교수가 반구 형태의 장막을 펼쳤고, 반짝이는 것들이 태풍에 닿은 순간.
-쾅! 콰콰콰쾅!!
요란한 굉음과 함께 얼어붙은 태풍에 폭발이 일어났다. 그 거나한 충격에 유리병이 깨지듯 와르르 무너지는 얼음들.
-꽝! 꽈르르르꽝!!
워낙 거대한 태풍이었던지라 깨져서 쏟아지는 것만으로 무슨 폭격이 일어난 것처럼 요란하다.
그 장대한 폭발의 여파를 지켜보면서 오우겐 교수가 흠칫거리며 하먼 영감에게 질문했다.
“루라라 교수, 현역 때 별명이 뭐였소?”
“연쇄폭탄마. 폭탄에 미친년으로 유명했지.”
“지난주에 데이트 신청했다가 차였는데··· 천만다행이오.”
“진입한다.”
루라라 교수의 폭탄연금으로 얼어붙은 태풍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돌입조는 작전대로 뚫린 구멍을 통해 태풍 안으로 진입했다.
* * * *
-콰직!
-콰드득!
-퍼억!
돌입조가 태풍으로 진입하자마자 그들은 몰려드는 마물들과 격전을 벌였다.
태풍박쥐 알반을 잡아먹기 위해 몰려왔다가 태풍 속에 갇혀버린 마물들.
알반이 생명을 불태우며 생성한 태풍에도 무게와 뚝심으로 버티던 준대형 마물들이 돌입조를 보자 사납게 달려든 것이다.
“그오오오오오오···!”
외눈의 거인이 몽둥이를 들며 달려들었다.
내리치는 거대한 네이처 웨폰. 그것을 받아낸 건 노구의 기사다.
-쿵!
아찔한 소리. 사이클롭스가 곤죽이 됐을 인간을 상상하며 사악한 미소를 짓는다.
-뚜둑! 뚜두둑!
바들바들 떨리는 몽둥이. 끝부분에서부터 쩌저적 갈라져도 사이클롭스는 몽둥이를 회수하지 못한다. 자신 이상의 괴력에 붙잡혔기 때문이다.
“눈깔병신은 오랜만이군.”
무게와 기세를 던져 내리친 네이처 웨폰을 맨손으로 받아내고 그것을 붙잡은 것은 하먼 웰스치 영감.
현역시절 강완의 하먼이라고 불렸던 그의 괴력은 노쇠했어도 외눈거인이 비할 바가 아니다.
-꽝!
허공을 강타하는 하먼. 그의 주먹질이 만들어낸 파공성이 사이클롭스의 왼쪽 무릎을 강타한다.
-우지직!
아찔한 소리와 함께 사이클롭스가 괴성을 지르며 무릎을 꿇었다. 하먼은 사이클롭스가 제 몸을 지탱하는 네이처 웨폰을 툭툭 차며 말했다.
“이건 지팡이로 쓰면 딱이겠군.”
“우오오오···!”
그 뒤를 따르는 거한의 남자. 2m가 넘는 거대한 도끼를 휘두르는 오우겐 교수가 단숨에 사이클롭스를 내리찍었다.
-꽈지직!
통나무 쪼개듯 갈라지는 사이클롭스의 머리.
“시이이······.”
사이클롭스를 해치우자 나타난 건 쇳소리를 내며 기습의 순간을 노리는 가고일.
-사아아···!
“참(斬).”
-콰득!
에드거 교수의 시가에서 피어오른 연기가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가고일의 목을 단박에 잘랐다.
“깔끔하군요.”
“······.”
에드거 교수를 지키듯 후위에 선 코린과 베아재커는 뭘 할 것도 없었다.
준1급 기사 하먼과 오우겐 교수. 1급 마법사 에드거 교수는 그야말로 압도적인 실력을 선보이며 덤벼드는 마물들을 압살하고 있었으니까.
“생각보다 별거 없군.”
“뭐, 이놈들도 며칠째 폭풍에 갇혀 아무것도 먹지 못했을 테니까요. 중간중간 상처 입은 걸 보면 자기들끼리도 싸운 모양이고.”
“······그걸 다 본 건가?”
베아재커의 시선이 코린에게로 향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5급 기사였던 최하의 열등생치고는 노련하게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분석과 공략. 이쪽은 제 특기입니다.”
“좋은 재주다.”
베아재커는 이 신입생의 특기를 솔직하게 인정했다. 겉모습 때문에 힘과 폭력만을 추구하는 야만전사라 오인되기 쉽지만, 그는 생각보다 이지를 갖춘 전사다.
“그래도 항상 나갈 준비를 하세요. 슬슬 진짜들이 옵니다.”
“흠······.”
그 말대로다. 동기인 마리에가 얼려버린 태풍 속에 갇힌 몇몇 마물들이 자신을 얼린 얼음을 깨뜨리고 사방팔방에서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만한 태풍과 대마법에 준하는 결빙 속에서도 살아남은 개체들이 다들 기본은 할 터.
“시에에에···!”
“퀸 타라텍트입니다···!”
명백히 대형 마물의 축에 드는 준1급 마물 퀸 타라텍트. 덩치도 덩치지만 가장 위협적인 능력은 즉석에서 새끼를 까는 가공할 번식능력이다.
-파파팍!
퀸 타라텍트가 포탄 쏘듯이 쏘아낸 알들이 착착 지면에 떨어진다.
깨지지 않고 떨어진 것으로 임무를 다했다는 듯 곧장 갈라지는 알들. 그곳에서 수십 마리의 작은 거미 마물들이 우수수 쏟아지기 시작했다.
군집을 이룬 거미들은 그 자체로 폭력이다.
어미에게 공을 다투듯이 달려드는 거미 마물들을 향해 시가의 연기가 접근했다. 안개처럼 갈무리된 연기를 뚫고 접근하는 순간······.
-키에에?
-키이익!?
갑작스럽게 발작하며 쓰러지는 거미 마물들.
“안개에 미약한 독성이 있습니다. 안 닿게 조심하세요.”
뿌연 안개가 머금은 연금 독성. 어지간한 하급 마물들이 견딜 수 있는 게 아니다.
-시이이이이···!
-키야아아아···!
사방팔방에서 들려오는 마물들의 합중주. 웨이브의 전조다.
“슬슬 진짜군!”
“코린, 베아재커! 에드거 교수를 지켜라!”
“드디어 손을 벌리시는군.”
“음······.”
돌입한 지 15분. 처음으로 은창을 뽑은 코린과 2m의 대검을 우악스럽게 쥐는 베아재커.
-크콰아악!
땅 밑에서 솟아나는 무언가들. 폭풍을 피해 땅속에 숨어있던 것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샌드 드라군들인가?”
수십 개의 다리를 가진 지네 같은 마물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오랫동안 굶주린 그것들은 눈앞의 신선한 고기가 반가운 듯 거침이 없다.
-카카칵!
뱀의 어금니가 지네들을 분쇄한다.
샌드 드라군 특유의 둔탁한 상부 껍질을 피해 교묘하게 눈과 입, 부드러운 배 밑을 신속하게 꿰뚫는 독사의 창.
상대가 지옥에서 기어 올라온 아귀들이라면 그걸 막아서는 건 독니를 가진 지상의 용이다.
오러의 사용을 최소한으로 자제하며 호흡이 꺼지기도 전에 네 번 이상을 찌른다.
신속필살, 정확무비라 하면 바로 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시에에에에!
-캬아아아악!
그러나 점의 일격으로는 부족하다.
사방에서 몰려오는 아귀들의 행군은 일개 개인만으로는 당해내기 어렵다.
“후읍···!”
그러나 여기, 굉격의 호흡을 들이켜는 야수가 있다.
-콰아아아아아아···!
-꽈앙! 꽈지직···!
-꽈드드득!
거칠게 휘몰아치는 선풍.
달려오는 모든 것들을 향해 별다른 조준도 없이 닥치는 대로 베어버리고 휘둘러 쳐내 사방팔방으로 비산시킨다.
“휘유~”
산전수전 다 겪은 코린 로크지만, 이 전사의 대폭력은 여전히 인상적이다.
2m가 넘는 대검과 본인의 막강한 힘이 자아내는 압도적인 면의 폭력.
광전사 베아재커. 광화의 전사라고도 평가받는 하프거인이나 이 아연실색하는 폭력의 현장 속에서 날뛰고 있는 건 광전사가 아닌 한 마리 야수일 뿐이다.
“와우······.”
그 어마어마한 폭력에 감탄한 건 에드거 교수를 비롯한 교수들도 마찬가지. 후위로만 돌렸던 학생들의 화려한 선전에 교수들도 아집을 갖는다.
“학생들에게 밀릴 순 없소이다.”
“이따가 검사 맡지, 오우겐 교수. 학생들보다 못 잡았으면 내 특별수업을 들어야겠네.”
“영감님이나 잘 하시오.”
“하··· 기사들이란.”
폭력의 열기 속, 다섯 명의 가디언들이 마물의 태풍을 뚫고 나아간다. 목적지는 태풍의 핵. 닿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
············
······
“역시······.”
에드거 교수를 비롯한 파티원들은 눈앞의 현상에 기가 질린 모양이다.
알반이 일으킨 거대한 태풍 속. 마리에의 결빙에 의해 얼어버린 이 태풍의 중심지에서 또 다른 태풍을 마주하게 될 줄이야.
“알반이라는 개체가 이만한 역량이 있었소?”
“모성애라는 거겠지. 짐승이지만 칭찬해줄 만하군.”
“그런 비이성적인 논리는 나중에 따로 주장하시죠.”
작은 태풍 속. 그 안에 커다란 박쥐의 형상이 필사적으로 이쪽을 경계하는 것이 보인다.
침입자의 접근을 눈치채고 최후의 여력을 짜내 만들어낸 작은 태풍까지 만들어낸 것이다.
“뚫고 지나갈 수 있겠나?”
“무리오. 온몸이 갈려 나가는 상처를 감수한다면야······.”
“저희도 소모가 큽니다. 무리할 필요는 없죠.”
세 명의 교수들은 빠르게 판단을 내린 뒤 하늘을 향했다. 그리고는 준비한 신호탄을 발사한다.
-쉬이이이이이이~ 팡!
태풍의 중심. 하늘에서 터진 신호탄. 동시에 에드거 교수가 지시했다.
“데인저 클로즈 바깥까지 물러납니다.”
그들이 물러나자마자 하늘에서 우뢰가 울린다.
지글거리며 요동치는 천공. 주변의 먹구름을 끌어들이며 ‘굉람(宏濫)’하기 시작한다.
-콰쾅! 콰콰콰쾅!
구름 위에서 연달아 치는 벼락. 상층대기에서 쏟아지는 벼락들이 기현상을 일으키며 ‘색’을 띄기 시작했다.
“······에드거 교수님. 저거 쫌?”
“위험하군요. 젠장, 데이나 교수 적당히 할 것이지···! 이 화력바보가!”
이 괴현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전격 마법사 데이나 교수다.
가디언으로서의 활약보다는 이론파로 유망한 이 젊은 마녀─40대─는 전격의 선두주자.
그 크고 아름다운 슈퍼셸과 선더스톰은 하나하나가 대마법이라고도 여겨지는 화력만능주의 포격 마법사다.
그리고 지금 내리치려고 하는 건 . 광속의 30분의 1. 약 1만 km/s의 속도로 내리친다는 파멸의 붉은 뇌운이다.
“쳇, 실드를 전개합니다!”
에드거 교수는 모든 마력을 다해 파티를 두르는 방어막을 펼쳤다. 곧 붉은 뇌운이 지상을 강타했다.
* * * *
신호탄에 따라 화력지원을 맡은 데이나 교수의 대폭격이 폭풍을 휩쓸고, 마리에가 얼린 폭풍마저 박살 낸 잔해 속.
“난 이래서 마법사들이 싫어. 놈들은 기사를 죽이는 것들이야.”
“백번 동감하오.”
까맣게 그을린 땅 위에 일어나는 하먼 영감과 오우겐 교수. 그 뒤로 에드거 교수가 불만을 내비쳤다.
“데이나 교수, 그 마녀와 같은 취급 안 해줬으면 좋겠습니다만.”
전 치안판사로서 스마트한 방식을 선호하는 에드거 교수는 이 취급이 참을 수 없는 모욕인 모양이다.
“어쨌든 잘 해결된 것 같네요. 이만한 번개니 주변도 다 박살났겠──”
“저기를 보시오.”
베아재커가 손가락을 따라 시선이 옮겨지는 파티원들. 그들의 시선이 경악으로 일그러졌다.
태풍이··· 아직도 유지되고 있었다.
“뭐지?”
“벼락을 직격타로 얻어맞았을 텐데, 어떻게 살아있는 거요?”
“잠깐, 그보다 아까보다 태풍 속 형상이 커진 것 같지 않습니까?”
“······진화.”
마지막으로 꺼낸 코린의 말에 모두가 이를 악물었다.
진화.
마족들의 성장. 경험과 생명의 축적 과정에서 일어나는 특이현상.
그것은 단순히 무리의 리더인 알파 개체 같은 것이 아니라 종 그 자체의 그릇이 승화하는 단계다.
결코 흔한 현상이 아니기에 이 그릇의 승화를 마친 마족은 가끔 예상치 못한 존재가 되기도 한다.
“키야아아아아아아······!”
폭풍의 핵이 되었던 태풍박쥐 알반은 데이나 교수의 뇌운폭격을 견뎌내고서 기어코 진화까지 해버리고 말았다.
그야말로 폭풍과 뇌운의 왕으로 승화하기 직전인 셈이다.
“저게 모성애면··· 정말 위대하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요.”
“이럴 때가 아닙니다. 당장 처리해야···!”
하지만 어떻게? 출산까지 버티고자 생성했던 작은 폭풍은 이제 뇌격까지 두르고 있다.
저 말도 안 되는 폭풍을 뚫고 지나갈 만한 이가 누가 있단 말인가?
“정면돌파는 무리겠군.”
하먼 교수의 결론은 지당했다. 데이나 교수의 맹폭격조차 견뎌낸 알반이다. 독기가 올라 삶을 불태우며 형성한 태풍에 정면돌파를 하는 건 도박수였다.
저마다 비장의 수 한두 가지쯤은 있지만, 확실한 결론을 내리기엔 계산이 부족하다.
“물러납시다. 데이나 교수가 됐든 마리에 학생이 됐든 지원조의 힘을 빌리죠.”
에드거 교수의 합리적인 주장을 거부할 만한 초심자는 없다. 그들이 정면돌파를 포기하고 돌아가려는 순간······.
“가세요.”
날카로운 금발 교수의 목소리. 무언가가 허수공간을 뛰어넘어 폭풍의 중심으로 파고들었다.
-캬흑···! 끄르륵··· 끄르게에에엑···!!
폭풍과 뇌운을 동반한 아비규환 속, 원통하고 끔찍한 괴성이 연달아 터져 나왔다.
무언가가 저 폭풍 속에서 날뛰고 있다는 것쯤은 살과 가죽이 찢어지는 소리로 알 수 있다.
-카아아아아아아······!
채 사라지지 않은 칼날폭풍이 가녀린 인형(人形)을 연신 두들긴다.
전신을 찢는 폭풍도, 폭풍에 들어찬 뇌격도 금강의 신분을 흔들지는 못했다.
-뚝! 뚝!
떨어지는 핏방울. 그러나 이는 그녀의 것이 아니다.
제 몸보다도 거대한 진화 알반의 머리통을 질질 끌고 오며 수녀복의 소녀가 태연하게 걸어나온다.
“뭐해?”
비천야차 화란. 그녀는 언제나처럼 무심한 표정으로 코린과 파티원들을 응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