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Killed the Play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65
박쥐효과(3)
도시 외곽을 타격한 태풍박쥐 소동은 도시에 작은 피해를 남긴 채 소멸했다.
조기진압을 한 덕에 가도 외에 도시는 큰 타격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비바람 때문에 이재민이 좀 생겼지만··· 금방 복구할 수 있을 것이다.
“식사 받아가세요! 오늘 메뉴는 감자하고 양파수프입니다!”
가디언은 군대 이상으로 마에 대적하는 영웅적인 이미지,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그들 개개인이 초월적인 무력을 발휘하는 초인인 만큼, 이러한 영웅주의는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분위기다.
이재민들에게 식사를 나눠주는 봉사활동은 그 이미지 메이킹의 일환이다.
“감사합니다, 기사님!”
“어여 드세요.”
졸지에 집을 잃고 이재민이 된 시민들이 내가 주는 배식을 받아간다.
“감자 하나만 더 주시면 안 됩니까? 수녀님?”
저 부탁을 하는 이재민은 내심 기대했을 테지.
신교의 성직자들은 신도뿐 아니라 비신도들에게도 온화하기로 유명하다.
쇠사슬로 구속되어 있다는 점이 넌센스이긴 해도 어쨌든 겉보기엔 수녀님인 화란이다.
“주는 대로 먹어.”
“······넵.”
싸늘한 화란의 목소리에 축 늘어져 돌아가는 이재민.
정량이 정해진 만큼, 더 주는 건 어렵지만 그래도 말이 아 다르고 어 다른 법이다.
“화란 수녀님, 좀 친절하게 하는 게 어때요?”
“시끄러.”
“이왕 봉사활동 나온 거 열심히 해봐.”
“하고 싶어서 온 것도 아니야.”
화란의 신분은 가디언이자 신교의 견습수녀. 이 표면상의 신분 탓에 이런 봉사활동에선 1순위로 차출되는 모양이다.
“······왜 사람을 돕는 거야?”
“뜬금없이 뭔 소리야?”
“대가 없이 돕는 이유를 모르겠어.
이 소녀에게 인간사회의 봉사활동이라는 개념은 익숙지 않은 것인가. 수녀님이 할 소리는 아닌 거 같지만.
“돕고 사는 복지사회라는 거 아니겠냐. 힘들 때 서로 돕고 도움으로서 이 사회가 건전하게 돌아가는 거라고.”
“???”
도대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이 수녀님의 사회성은 3년 전에 여전히 머물러 있는 걸까.
“돌아가실 때는 주스 한 잔씩 챙겨가세요. 저~어쪽 물빛머리 아가씨가 챙겨줄 겁니다.”
“고맙습니다, 기사님.”
“이 감자들은 저 물빛머리 아가씨네 집에서 차떼기 해다 주는 거니까 잊지 마시고!”
“아이고, 감사합니다. 마법사님.”
“으웅? 별거 아니에요!”
배식을 계속하면서 화란에게 사회성이란 걸 학습시키자.
“인류가 ‘문명’을 형성하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일 거 같냐?”
“······너 교수 같은 소리 하지 마.”
뭐라도 좋으니까 아무 대답이라도 해줘······.
화란의 앙칼진 태도를 보자니 들을 생각은 있어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이건 나도 어디에서 들은 썰인데. 문명의 시작은 부러졌다 붙은 흔적이 있는 다리뼈가 발견됐을 때라고 해.”
“······.”
듣지도 않으며 삶은 감자덩이를 배식판에 얹어놓는 화란. 하지만 쫑긋거리는 귀가 이쪽의 썰을 확실하게 듣고 있다.
“약육강식, 적자생존인 야만 사회에서는 다리가 부러지면 곧 죽은 거나 마찬가지야. 위험으로부터 달아날 수도, 물을 마시러 강을 갈 수도, 사냥을 할 수도 없으니까.”
지금도 짐승들의 사회가 그렇다. 상처 입은 짐승은 다른 짐승들을 위한 손쉬운 사냥감일 뿐이다.
“하지만 부러졌다 붙은 흔적이 있는 다리뼈는 누군가가 그 사람이 치유될 때까지 곁에서 도와주었음을 뜻해. 누군가가 곤경에 처했을 때, 그 사람을 돕는 것. 그게 문명의 시작······이라는 모양이야.”
“결국 인간이 약해서라는 거네.”
“안 듣는 척하더니 다 듣고 있었네!”
“······조용히 해.”
귓불이 살짝 붉어진다. 이런 반응을 보면 귀엽긴 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어쨌든 서로 돕고 사는 것이 인간의 생존전략 중 하나였다는 것. 이런 것도 그 일환 아니겠어?”
태풍으로 곤경에 처한 주민들을 돕는 것. 나름 직설적으로 잘 설명했다고 생각한다.
“나한텐 의미 없어. 날 도울 인간 같은 건 없으니까.”
“내가 도와주지 뭐.”
“······.”
처음으로 이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는 화란. 그녀의 붉은 시선이 내게로 향한다.
“약한 주제에 멋대로 지껄이지 마.”
화란의 시선이 싸늘하게 식었다. 내 도움 따윈 필요 없다는 듯이. 하지만 흔들리는 동공은 숨기지 못했다.
슬슬 배식도 끝나가나. 마지막 이재민의 수프를 얹어주고 화란에게 감자를 건넸다.
“두고 보면 알겠지.”
나를 응시하는 시선이 따갑다. 이래 봬도 널 위해 걱정 많이 하고 있다. 오빠한테 너무 그러지 마라.
마침 배식장소가 된 공터에 이재민 가정의 아이들이 활기차게 놀고 있다.
아이들만큼은 이 우울한 상황을 건전하게 넘겨짚을 포지티브 파워가 있는 모양이다.
“애들아! 여기 수녀님이 같이 놀아준댄다!”
“멋대로···!”
“축구해, 축구. 살살해라···!”
“수녀님 우리랑 놀 거야?”
“쇠사슬 대박!”
“너···!”
“그럼 난 이만.”
몰려든 아이들에게 둘러싸이는 화란. 수녀복은 아이들에게도 친근한 복장인 게 확실하다.
··················
············
······
벤치에서 분말커피를 타 마시고 있는데, 에린 스승님이 찾아왔다.
“잘하고 있니?”
“오셨습니까?”
벤치에 앉는 에린 스승님. 에리우 이사장이란 청년의 껍데기를 한 그녀에게 굳이 커피를 권한다.
“배려 있는 청년이구나.”
“자주 듣습니다.”
“후후···.”
룬석으로 된 스페어 바디는 식사를 할 필요가 없지만, 위장이라는 측면에서는 필요하다.
“화란은······.”
그녀의 시선이 공터를 향한다. 수녀복을 입은 소녀와 이재민 아이들이 공을 차고 놀고 있다.
화란은 억지로 참여하고 있는 기색이 역력하지만, 공놀이 자체에는 흥미가 있는 모양이다. 힘 조절도 잘하고 있다.
“저 아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니?”
“생강시라는 건 들었습니다.”
마리에도 마족이 되자 발표한 것이지만, 마족의 특성은 숨기려고 하려면 할 수 있다.
하지만 에린 스승님은 그녀들의 종족을 숨김없이 밝혔다.
투명한 학사운영이란 측면도 있지만, 내심 마족이라 박해받는 이들이 당당하게 학교를 다니길 원하기 때문이겠지.
마물인 거인족의 하프인 베아재커,
흡혈귀인 마리에 듀나레프,
살아있는 강시인 동방대륙의 화란도.
마족이라도 학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그녀의 사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저 아이를 동대륙에서 데려올 때, 많은 반발이 있었단다. 사실 지금도 고운 반응은 아니지.”
마리에가 흡혈귀가 됐을 때도 마탑이니 구교니, 왕실이니 돌아다니며 그녀의 안정성을 증명했던 스승님이다.
하물며 동대륙 성 하나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비천야차라면, 입학 과정에서 어떤 잡음이 있었을지 상상도 안 된다.
“저 아이는 많은 사람을 다치게 했고, 큰 잘못을 저질렀단다. 클라라도, 다른 교수들도 저 아이가 위험한 존재라고 했지.”
그윽히 내게 시선을 보내는 스승님. 그녀는 내 의견이 어떨지 묻는 것 같았다.
“오~ 골 넣었다. 보세요. 저 아이요.”
우리는 공터에서 골대에 멋들어지게 공을 넣은 화란을 보았다. 귀찮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순혈 인간이든 하프든, 마족이든 중요합니까? 누군가를 돕고 걱정하고, 웃을 수 있는 감정이 있다면······.”
혹 제가 찬 공에 아이들이 다칠까 애써 힘 조절을 하는 것을 보면··· 저 아이의 본성은 분명 그릇되지 않았다.
“그거면 충분해요.”
“······.”
충분했다. 그거면.
“발타자르의 제자라기에는 참 감상적인 아이구나.”
“흐하하하.”
누구 제자인데요.
* * * *
“후우~!”
서서 일하느라 굳어진 등의 근육을 스트레칭하고, 화란 쪽으로 슬쩍 시선을 보냈다.
“안 피곤하냐?”
“별로?”
점심시간 때는 배식 봉사. 오후에는 태풍으로 부서진 잔해를 처리하는 일을 했다.
철저한 육체노동이라 마리에와는 나뉘었고 오후 시간은 내내 중노동이었다.
“밥 먹으러 갈까?”
“······스시.”
스스럼없이 저녁 메뉴를 의논할 사이 정도는 됐다.
전 회차와 비교해보면 이 정도면 화란과 꽤 친한 거 아닌가?
“가자.”
“괜찮데?”
“이사장님이나 여사님이라면 괜찮아. 오늘 저녁 먹고 오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해뒀어.”
기본적으로 화란이 도시만 벗어나지 않으면 추적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는 거겠지.
“좋아, 스시 먹자.”
“······아.”
저녁메뉴가 결정됐는데, 화란이 탄식 섞인 한탄을 내쉬었다.
“왜 그래?”
“지갑··· 안 가져왔어.”
“됐어, 임마. 내가 사줄게.”
“······.”
기본적으로 화란과 밥을 먹으면 더치페이다. 참 바람직한 태도이긴 한데, 그래도 얘 덕분에 지킨 재산이 얼마냐.
후··· 태풍박쥐 때문에 날아갈 뻔한 금화를 생각하면······.
아, 후일담으로 말해두자면 태풍박쥐의 사체는 화란을 포함해 그 자리에 있던 모두에게 골고루 분배될 예정이다.
돈이 쪼들리는 데이나 교수가 울면서 곤죽이 된 박쥐 시체를 끌어안았지.
“좋아, 가볼까! 오늘 아주 비싼 대뱃살로다가 대접해주지!”
“······대뱃살.”
오랜만에 이랏샤이마세, 한 번 들어보러 가자!
「오늘은 휴업입니다.」
·········
······
···
돌아온 특별 기숙사. 화란과 코린은 어두컴컴한 건물 안에 들어섰다.
“다들 없군.”
조제핀은 아직 일하는 중일 테고, 마리에는 봉사 끝나고 친구들과 놀다 온다고 했으니 늦게 들어올 것이다.
화란은 휴업으로 문을 닫은 스시집에 큰 실망을 한 탓에 당장 방으로 올라가 자고 싶었지만, 소년이 불러세웠다.
“밥해줄게.”
대뱃살을 못 먹게 됐는데, 그까짓 것이 제 실망감을 만회시킬 수 있을까? 화란은 거절의 한 마디를 내뱉으려 했지만······.
“이왕이면 한꺼번에 많이 만드는 편이 좋지. 마리에 선배나 조제핀 여사님 몫까지 한 번에 만들어둘까.”
코린은 화란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부엌으로 향했다. 뭔가 말하기에는 늦어버렸다.
“하······.”
화란은 구태여 부엌까지 따라간다는 귀찮음을 감수하지 않았다.
사실 배고픈 게 맞기도 하다. 이 허기를 채울 만한 것을 알아서 가져다줄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합리적이다.
굳이 만들어준다며 기다려주지 못할 것도 없다.
“고기.”
들리지 않을 말을 삼켰다. 지난번에 오뎅볶음과 멸치볶음, 시금치 등의 오색반찬으로만 가져왔을 때는 실망을 금치 못했다.
대량으로 반찬을 해둔 뒤, 먹을 때마다 꺼내먹는다는 버릇을 버리지 못한 탓이지만.
대뱃살을 먹지 못한 만큼, 적어도 그 4할 정도는 필적할만한 물건을 가져오지 않으면······.
‘3할까진 괜찮을지도.’
일단 프로 요리사는 아니니까.
묘하게 오늘 하루, 코린에게 관대한 화란이었다.
사실 말하자면, 소년이 그녀에게 한 말은 조금은 마음을 흔들었다.
「내가 도와주지 뭐.」
그 말이 마치 언제든지 자신을 도울 거라는 약속 같아서. 그 허무맹랑한 가벼운 말에 쓸데없는 의미를 둔 탓이겠지.
그녀는 살아있는 강시다.
살아있는 인간을 이용해 만든 마물에 가까운 존재다.
그녀의 ‘아버지’가 바라던 것을,
이웃사촌들이 바라던 것을,
관리들이 바라던 것을,
황제가 바라던 것을······.
비천야차라는 강시를 손에 넣었을 때도 이 소년은 똑같은 소리를 할 수 있을까?
모두가 탐욕에 젖어 휘두르기 급급했던 괴물을?
“웃기지도 않아.”
화란은 안다. 자신이 가진 마성을 알기에 더더욱 소년의 말을 부정한다.
그런 화란의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코린은 부엌에서 조리를 계속하고 있다.
「너는 괴물이다, 화(火).」
제 과거를 안다면, 제 본질을 안다면 저리 태연하게 등을 보일 수 있을까?
“멍청이.”
가차 없는 혹평을 흘리면서, 화란은 칙칙한 어둠 속에 혼자 있다. 그 시선은 밝게 빛나는 소년의 등을 계속 향하고 있었다.
‘돌려줘! 화(火)···! 내 몸을 돌려줘!’
“윽···!”
머리가 지끈거린다. 또다. 여전히 포기하지 못하고 발악한다.
“시끄러워··· 이건 내꺼야. 내 몸이야.”
알고 있다. 제것이 아님을.
“절대 돌려주지 않아.”
이래도 정말 ‘나’를 도와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