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Killed the Play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71
나즈레아, 죽은 자들의 도시(2) 삽화有
칸나 여관의 학살 현장은 참혹한 시체들을 남겼다.
“으··· 대체 무슨 일이야?”
“예거, ······이 시체들 좀 봐.”
“뭐가··· 으헉!?”
어버버하다 머리통이 날아가고 심장을 꿰뚫린 시체들의 변모를 눈치채는 학생들.
사람의 생살이라기엔 너무나 쭈글쭈글하고 음산한 사기를 뿜어내는 부패한 시체. 아직 상황파악이 덜된 학생들을 위해 사제와 수녀들이 앞으로 나섰다.
“300년 전 사건 이후로 이 도시는 같은 시간을 반복하고 있지요.”
“낮에는 평범한 일상이, 밤이 되면 도시 전체가 망자들의 땅이 됩니다.”
정화가 불가능한 땅.
저녁 7시를 기점으로 12시간 동안 이 도시는 죽은 자들의 도시가 된다.
멸망 당시 나즈레아에 만연한 언데드의 숫자는 실로 120만.
어떤 기사도, 마법사도, 종교세력과 국가권력도 반나절 만에 120만에 달하는 언데드를 정화 시킬 순 없다.
“낮에는요? 낮에 정화를 한다던가······.”
“이곳이 평소에는 정상적인 도시의 형태를 한 것을 보셨을 겁니다. 도시를 지키는 군대도, 당시의 기사와 마법사들도 상주하고 있지요.”
즉, 허튼 짓거리를 하면 도시의 적으로 분류되어 공격받는다.
“물론 시도를 안 해본 건 아닙니다. 지금까지 서른 차례에 달하는 대규모 정화작전이 실행되었지요.”
그러나 실패했다. 다시 밤으로 회귀한 지금의 도시가 그 증거다.
“지금부터 단체전 내용을 발표하겠다.”
강륜의 목소리에 언데드의 시체 속에서 학생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각 팀은 다음과 같이 나뉘며 나뉜 팀은 ‘월명석’을 회수해야 한다. 기간은 지금부터 세 번째 아침까지. 중도 포기도 가능하다.”
【보라매 아카데미】
갑 조 : 강유화, 신조우, 와타나베 준, 지운영
을 조 : 최석민, 한진, 진화, 제갈수아
병 조 : 진하랑, 이현도, 정석권, 김종인
정 조 : 람리 더 크로커다일, 옥창환, 당진석, 스기야마 젠지로.
【메르카바 아카데미】
A 조 : 마리에 듀나레프, 이자벨 키르민, 러셀 크롬벨, 에리스티나 록웰
B 조 : 레이나 아델, 아이라 크로우, 르네 젤위거, 클라크 아리우스
C 조 : 유엘, 막시무스 데시무스 메리디우스, 주카바르, 티그리스 유엘리움
D 조 : 코린 로크, 아리샤 아덴, 예거 힌츠페터, 라크 버그만
이 자리에서 발표된 팀원들은 약간의 설명과 필수품이 담긴 배낭만 들린 채 여관 바깥으로 내보내 졌다.
죽은 자들의 도시, 나즈레아.
그들은 120만의 언데드 사이에 고립되었다.
* * * *
밤이 시작된다.
시체들의 곡성이 노래처럼 울린다.
죽음을 기만한 자들의 낙원이 달빛에 비쳐 모습을 드러낸다.
태양이 지고 달이 뜨는 밤. 300년 전의 종말을 알리는 종소리가 도시 전체에 울렸다.
그 귀곡성의 이름은 나즈레아.
멸망한 도시 전체가 부패한 부활을 퍼뜨린다.
슈퍼 블루 블러드문의 발생으로 시작된 대의식.
불사군단을 불러일으키는 암흑의 시대.
생자들아, 도망칠 수 있다면 도망쳐봐라.
이 밤을 넘길 수 있다면 너희들의 승리. 그게 아니라면 모든 경우의 수가 너희들의 죽음으로 패배를 장식하리라.
120만 망자가 32명의 살아있는 것들을 향해 질투와 악의를 퍼붓는다.
절망적인 싸움의 개막선언은 도시 전체가 절그럭 거리는 뼈 소리로 대신했다.
“달려!”
“으아악···! 좀비! 망할 구울도 섞였어!”
“라크 씨, 앞에 스켈레톤!”
“뭐, 뭐야! 이 규모? 너무 말이 안 되잖아!”
절그럭 거리며 다가오는 스켈레톤.
부패한 살점을 떨어뜨리는 구울.
푸른 안광을 빛내며 몰려드는 망령들.
마물이나 마령 등으로 분류되는 이들의 등장은 가디언이라면 그럭저럭 익숙한 일이다.
하지만 이 숫자, 이 규모는 말이 되지 않는다.
마법이라는 것도 엄연히 현상의 법칙을 연구하는 학문. 결론이 나오기 위해서는 과정이라는 수식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이 도시는 섭리를 부정하는 마(魔)의 가마솥. 질량 보존 따위 관심 없이 무한히 솟구치는 무언가다.
“허억···! 허억! 이, 이게 말이 돼?”
라크 버그만. 4급 마법사로 진급한 그지만, 그 경험은 생각보다 질이 높다.
마리에 듀나레프라는 불합리한 특급의 적에 맞선 귀중한 경험을 소지한 그지만, 이번 건 아예 격이 다르다.
“소, 소울 워리어!”
메르카바의 대도서관. 숨겨진 그리므와르를 통해 얻은 비장의 마법을 발동한다.
단숨에 생겨난 유령 기사가 마법사를 태워 기사들에 지지 않는 기동력을 손에 넣고 선택한 건 망설임 없는 도주.
특수한 사정으로 령을 인지하지 못하는 코린이지만, 허공에 뜬 친우의 상태를 보고 대강 짐작했다.
“라크! 저쪽 종탑 보여?”
“어, 어어!”
“우리가 길을 뚫어야 해! 최대화력의 마법을 캐스팅하고 달릴 준비해!”
“아, 알았어!”
라크가 유령마에 탄 채로 캐스팅을 시작하자 사방에서 덮쳐드는 언데드들.
“예거 에너지 꾸준히 축적해! 아리샤, 3시 맡아!”
세 명의 기사들이 사방에서 몰려오는 언데드들을 처리한다.
그러나 차곡차곡 쌓이는 언데드의 수는 심상치 않다.
골목에서, 건물에서, 대로에서··· 심지어 2층 주택 창문에서까지 덮쳐오는 무수한 이매망량.
“코린 씨! 역시 라크 씨의 화력 지원이 있어야 하는 게?!”
“종탑을 확보하는 게 우선이야! 길 하나 틀어막으면 돼!”
코린의 전략대로 라크는 언데드들을 무시하고 자신이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마법을 캐스팅 중이다.
“길을 뚫는다! 바로 달려!”
표범처럼 뛰어오르는 창병이 상체를 젖힌다. 그를 아는 이라면 다음에 발해질 기술을 알고 있다.
-꽝!
공중에서 내리치는 창. 순간속도 마하. 공기를 터뜨리는 소닉붐과 함께 대로를 가로막는 언데드들을 향해 번개가 쇄도한다.
코린 로크의 오러를 잔뜩 머금은 창이 새하얀 은하수를 새기며 언데드의 무리를 일소. 육편을 사방에 휩쓴다.
“라크, 지금이다!”
그 순간, 지면을 박차는 유령기수.
창의 노호와 같은 일격에 휩쓸리긴 했어도, 잔여물처럼 남은 언데드들이 진로를 방해했다. 여기에 결정타를 가하는 라크 버그만.
“날려버려!”
발해진 마법은 케인의 불타는 해골.
유령기수의 코앞에 큼직한 이빨을 와그작와그작 불에 취약한 언데드들을 집어삼키고 질주하는 해골.
라크의 마법솜씨는 대단찮으나 속성을 공략한 마법은 최대의 효율을 발휘했다.
“내가 선두에 선다아아···!”
호령보다는 괴성에 가까운 목소리와 함께 유령기수가 바닥을 때려 부수며 네 개의 다리로 달려들었다.
기병의 돌격. 그 돌파력은 녹아내린 언데드들 따위가 막아설 수 있는 게 아니다.
-다그닥다그닥!
-콰악! 콰직!
불타는 해골이 지나간 자리. 녹아내린 구울이나 타오르고 있는 좀비가 어설프게 유령 기사를 막아보지만, 충돌의 여파로 붕 뜨고 기사가 휘두른 칼에 내장을 토해낸다.
“나아아아르르으으을! 따르라아아아···!”
한껏 고양된 라크의 외침에 세 친구가 맞장구쳐줬다.
“멋집니다, 라크 기사님!”
“멋져요!”
“끝내준다 야!”
세 기사와 유령기수가 달린다. 한껏 휩쓸고 간 자리. 네 사람은 단숨에 종탑 입구까지 도달했다.
“문 열어어어어어···!”
달리던 기세 그대로 입구로 몸을 처박는 네 사람.
“입구 막아!”
코린의 판단은 입구를 막아 물리적으로 진입을 차단하는 것이었다.
물론 언데드 중에는 괴력을 가진 개체도 있으니 시간 벌기에 가깝지만, 어쨌든 상황을 인지하고 판단할 시간을 벌 생각이다.
-콰르릉!
쫓아오던 스켈레톤과 좀비들은 버둥거리며 닫힌 입구를 두드리나 튼튼한 철문이다. 꽤 버텨줄 것이다.
“하아~”
단체전 시합이 시작된 지 35분. 코린 로크의 D조는 비로소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 * * *
“미쳤구만.”
페스티벌이 초인집단인 가디언들의 자웅을 겨루는 시합인 만큼, 미성년자 상대로는 좀 위험한 짓을 많이 벌이긴 한다.
하지만 설마 이 도시 한복판에서 월명석 채취를 걸 줄이야.
“어우~ 숨 돌렸다. 뭔 고생이야, 이게.”
“이거 괜찮은 거예요? 진짜 사상자 나오면 어쩌려고 이런 시험을 치른 데요?”
“······일단 우리들 HP 측정장치가 있으니까. 위험하면 강제 소환될 거야.”
“그나저나 월명석이란 게 뭐냐? 코린 너는 좀 아는 거 있냐?”
“달의 마력을 잔뜩 머금은 돌이야. 나름 희귀 마석에 속해. 등급으로 치면 2급 정도 될걸. 상태가 좋은 건 1급도 돼.”
“헉! 엄청 비싼 거잖냐. 그런 걸 도시에서 채취할 수 있어?”
“원래대로라면 화산이 폭발해서 생겨난 칼데라 호수 깊숙한 곳에서나 발견할 수 있지만··· 이 도시에서는 썩어 넘치지.”
“뭐?”
“이곳은 매일 밤 달의 마력이 충전되는 곳이니까.”
오오~ 예거와 아리샤가 기대 섞인 눈빛을 했다. 무슨 생각하는지 뻔히 보이는지 라크가 핀잔을 줬다.
“여기서 얻은 월명석은 어차피 도시 바깥으로 반출할 수 없어.”
“뭐? 그럼 개고생이잖아!”
“당연하지, 멍청아. 나즈레아는 바깥과는 다른 법칙으로 돌아가는 도시라고.”
도시 바깥에서 내부에 개입할 수 없는 것처럼, 도시 내부의 것도 도시 바깥에서는 의미를 잃는다.
언데드 시티 나즈레아를 연구하면서 마탑과 종교혁명 전 교단이 내린 결론이다.
“하··· 달달한 꿀알바는 없었다 이건가.”
“그럼 그 월명석은 어떻게 얻나요?”
“으음~ 책자에 따르면 언데드들이 월명석을 곧잘 집어삼킨다고 하더라고. 월명석을 집어삼킨 언데드는 녹색야광빛을 빛낸다던데?”
“아, 저 오면서 그런 언데드 몇 마리를 본 것 같아요!”
참고로 강력한 언데드일 수록 크고 품질 좋은 월명석을 얻을 수 있다. 어차피 품질은 상관없지만, 이번 단체전에서는 중요한 점수로 매겨질 것이다.
“일단 주변을 살피자. 예거하고 아리샤는 1층을 방비하고 있어. 라크는 나하고 같이 꼭대기로 올라가고.”
“으··· 꼭대기까지?”
인텔리 마법사에게는 계단을 오르내리는 게 고역이겠지만, 어쩔 수 없다.
나는 중간쯤부터 헐떡거리는 라크를 억지로 끌고 종탑까지 올라왔다.
올려다보면 커다란 청동 종이 보이는 종탑 꼭대기. 땀을 연신 흘리며 올라온 라크는 주변에 보이는 풍경에 아연실색했다.
“으아··· 완전히 포위됐는데?”
종탑 주변은 완전히 언데드들로 가득 찼다. 그야말로 불사군단이라는 이명에 어울릴 정도로.
이조차도 극히 일부다. 나즈레아에서 벌어지는 좀비 웨이브를 생각하면 말이지.
“쫄 거 없어. 그래봤자 4, 5급 마물들이야. 진짜 위험한 건 도시 중심부에 있거든.”
이곳은 나즈레아라는 스테이지에서 D나 E에 해당하는 외곽 스테이지다.
이 언데드 시티는 사신의 퀘스트를 통해 점차 내부로 진입할 수 있는 구조라 저레벨 지역에서 위험한 언데드는 등장하지 않는다.
“근데 우리··· 어떻게 나가? 아침까지 버틸 거야?”
“그럴 리가. 그랬다간 꼴등일걸. 여기서 가장 빛나는 월명석 언데드를 찾아내. 그리고 네가 플라이 마법을 걸어주면 돼.”
“······그거 비행 30초도 안 돼.”
특히 네 명 전원에게 걸려면 그럴 수밖에 없다며 난색한 표정을 짓는 라크.
“30초면 충분해. 여기서 뛰어내리면 대충 안전한 곳에 착지할 만큼은 벌 수 있잖아.”
“······그렇긴 한데.”
우리 중에 고소 공포증이 있는 녀석은 없겠지.
“근데 가장 빛나는 월명석 언데드라면?”
“스테이지 보스. 그놈을 잡아야지.”
“으··· 사서 고생이긴 한데, 너하고 아리샤라면 충분히 가능하겠다.”
“전투는 맡겨둬.”
“원경의 마법을 사용해서 살펴볼······.”
-그르륵!
특유의 땅 긁는 소리는 종탑 꼭대기까지 들렸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종탑 아래 언데드 무리를 향한다.
“어······.”
커다란··· 아니, 이걸로도 모자라다. 무식하게 거대한 5m짜리 대검을 질질 끌며 이쪽으로 다가오는 거한이 있었다.
덩치는 나나 예거보다 네댓 배는 거대했으며 얼굴은 불길에 녹아내린 것처럼 기괴하게 무너져 내려 겨우 한쪽 눈만 뜨고 있는 괴인.
“코, 코린. 저거······.”
“레버넌트··· 타이탄······.”
나즈레아 중심부의 스테이지 보스. 저, 저놈이 왜 여기 있어?
“망할! 바로 도망쳐야 해!”
저 괴물 앞에서 무너진 입구 같은 건 순식간에 날아갈 거다. 예상보다 빠르지만 라크의 플라이 마법으로 종탑을 벗어나야 한다!
“······어.”
그때였다. 라크가 문득 ‘이변’을 눈치챈 듯 위로 시선을 향했다. 그리고 채 반응하기도 전에 부웅 하고 젖혀진 ‘종’이······.
“개좆됏!?”
-꽝!
하고 라크를 날려버렸다.
“뭐?!”
라크를 날려버린 종. 마치 의지를 가진 것처럼 움직이는 청동 종을 보고 깨닫는다.
“가이스트라고!?”
물체에 빙의하는 타입의 령. 그것이 종을 움직여 라크를 꼭대기에서 튕겨 버린 것이다.
“으아아아아악···!”
완벽하게 튕겨 나간 라크. 내가 구해보기더 전에 라크에게 달린 긴급 송환장치가 작동했다.
허공에서 빛이 새겨지고 라크의 육신이 사라진다. 아마 칸나 여관으로 송환됐을 것이다.
저게 무슨 뜻이냐? 이번 단체전에서 라크는 탈락했다는 뜻이다. 즉, 라크 없이 3인 파티로 단체전에 임해야 한다는 뜻이고.
“첫날부터 미쳤네···!”
나는 재차 부유하더니 내리꽂히는 종을 피해 계단으로 몸을 던졌다.
가이스트라니! 이놈도 이곳에 나올 놈이 아니지 않나!
“예거어어! 아리샤아아아···!”
“코린 씨?”
“당장 튀어 올라와! 레버넌트 타이탄이다아아···!”
“그게 뭔······.”
순간, 내 직감이 위험을 경고했다. 뭔가 공기가 파헤쳐지는 감각. 불길한 직감은 더 할 나위 없이 적중하여······.
-콰아아앙!
입구를 박살 내며 무언가가 날아 들어왔다.
“우오오오옷?! 뭐, 뭐야?!”
“대, 대검?!”
레버넌트 타이탄이 입구를 향해 대검을 던져버린 것이다!
“당장 튀어 올라와!”
내 말에 지체없이 계단을 오르는 두 사람. 아슬아슬한 타이밍에 스켈레톤과 좀비, 구울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뭐, 뭐해, 코린! 우리보고는 올라오라면서 왜 너는 내려와?”
“위에 가이스트 때문에 막혔어!”
“뭐, 뭐라고요? 라크 씨는요?”
양팔을 겹쳐 X 표시를 하자 두 사람은 더 설명을 요구하지 않았다.
“어, 어떡하지? 아래는 언데드들이 올라오고 위는 막혔잖아!”
예거는 아연실색한 표정이었다. 나와 아리샤라면 종에 빙의한 가이스트를 박살 내고 꼭대기에서 뛰어내린다는 방법이 있긴 하다.
하지만 문제는 예거다. 오러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는 우리와 다르게 예거는 그 정도 경지까진 아니니까.
무엇보다 꼭대기에서 뛰어내린다 한들 종탑 주변을 가득 메운 언데드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아리샤! 아래에서 올라오는 좀비 놈들을 저지해! 예거는 나랑 종탑을 부순다!”
“무슨 뜻이야?”
“벌목 정도는 해봤지? 같은 원리야! 한쪽을 박살 내서 종탑을 무너뜨리는 거야!”
“이런 미친 짓을 첫날부터 하게 될 줄이야!”
그러나 반론은 하지 않는다. 예거는 자신의 오러와 대미지를 축적하여 발산하는 특성을 십분 발휘했다.
“날아가라···!”
힘을 잔뜩 축적한 예거의 메이스가 종탑 한쪽 면을 단박에 날려버렸다.
-콰앙!
박살 나긴 했어도 미동도 하지 않는 종탑. 예거의 일격은 종탑에 커다란 구멍을 냈을 뿐이다.
“남은 곳은 직접 때려 부순다! 메이스질로 박살 내!”
“알았어!”
꽤나 견고한 종탑이지만 기사들의 괴력으로 부수기 시작하자 서서히 흔들리는 종탑.
그때였다. 계단을 오르는 언데드들을 베어내던 아리샤에게 레버넌트 타이탄이 5m의 대검을 휘두른 것이다.
“타이탄···!”
식겁하며 뒤로 도약하는 아리샤. 헛방질로 끝난 레버넌트 타이탄의 대검이 종탑의 벽을 완전히 허물어버렸다.
그 말은 즉슨, 안 그래도 흔들거리던 종탑에 결정타를 가했다는 소리다.
“······오우.”
유감이라는 듯 예거의 탄식. 쿠구궁, 하고 무너지는 종탑.
“뛰자!”
우리는 종탑이 무너지는 방향으로 벽을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콰르르···!
건물이 무너지는 전조가 이런 느낌일까?
종탑의 허리가 꺾이며 끊어지듯 기우뚱거린다.
-콰르릉!!
무너진 종탑은 도심 한복판을 가로지르듯 쓰러졌다.
-쿠왕!
무너진 벽돌 더미 속 우리들은 간신히 바깥으로 솟구쳐 나왔다.
“와하하··· 쿨럭! 쿨럭! 너하고 다니면 진짜 별의별 일을 다 겪는구나?”
“친구 잘 사귀었지?”
“그런 걸 잘 사귀었다고··· 쿨럭! 하나요?!”
먼지를 잔뜩 뒤집어썼지만, 덕분에 길이 생겼다. 우리는 종탑 대로를 달리며 서로의 꼴을 보고 웃어버리고 말았다.
“아무튼, 첫날은 망했어! 라크가 너무 빨리 탈락한 데다, 이상한 놈한테 찍힌 모양이야. 일단 날이 밝을 때까지 달려보자고!”
“오우···! 어떻게든 되겠···!”
-콰악!
예거가 말을 하다 만다. 뭔가 해서 뒤를 돌아보니··· 예거가 무지막지하게 거대한 언데드 박쥐에게 낚아채여 허공을 날고 있었다.
“예거 씨이?!”
“······어비스 쉬리커?”
-캬아아아아아아악···!
비명소리 같은 괴성이 밤하늘을 찢을 듯이 울려 퍼졌다.
“와~ 나올 거 다 나왔네?”
이제 와이트 킹만 나오면 나즈레아 삼대 보스 총집합이잖아.
“코린 씨. 저쪽이요.”
아리샤가 내 어깨를 툭툭 치더니 무너진 종탑대로의 끝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켰다.
“그래, 이 정도로 분위기 띄웠으면 너도 나올 것 같더라.”
면류관을 연상시키는 뼈다귀 왕관을 쓰고 해골마에 탑승해 이쪽을 노려보는 언데드 기수.
레버넌트 타이탄.
어비스 쉬리커······
마지막으로 와이트 킹.
나즈레아 삼대 보스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코린 씨··· 우리 끝난 거 같은데요?
“환장하겠네, 진짜.”
앞에는 와이트 킹, 뒤로는 레버넌트 타이탄. 위로는 어비스 쉬리커가 돌아다니는 밸런스 따위 개나 줘버린 사태.
단체전 포기하고 그냥 송환될까 싶을 정도로 일촉즉발의 순간, 하늘에서 섬광이 내리꽂혔다.
허공에 막강한 은빛 오러를 새기는 창. 그 특유의 잔향은 내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찬란한 빛을 자랑했다.
“이 창은···?”
투척의 여파로 주변에 막대한 흙먼지를 일으키는 빛. 공격이 아닌 파괴를 통한 연막을 노린 거다.
매캐한 흙먼지 속, 웬 팔이 우리를 향해 뻗었다.
“이쪽으로!”
반짝거리는 은발이 나와 아리샤의 눈에 들어왔고··· 우리는 그 빛을 따라 필사적으로 달렸다.
··················
············
······
망자들의 추격을 피해 얼마나 달렸을까? 명백히 초심자 스테이지를 벗어난 어딘가의 건물 안.
우리는 겨우 숨을 돌릴 장소를 찾을 수 있었다.
“허억··· 허억···! 코린 씨, 어디 안 다쳤어요?”
“나는 괜찮아. 너는?”
“저두요. 예거 씨가 걱정이긴 한데······.”
예거라면 아마 진즉 송환됐을 것이다. 문제는 우리를 도운 사람이다.
“도와준 건 감사하지만, 방금 그 창술은······.”
“아가야말로 어떻게 ‘내’ 창을 익히고 있는 거니?”
목소리가 익숙하다. 청아하고 맑은 목소리. 나는 흠칫 놀라 그녀를 향해 돌아보았다.
우리를 구해준 건 로브 차림의 여인.
특유의 은으로 짠 것 같은 머리카락과 청정수처럼 맑은 벽안.
몸가짐에서 드러내지 않아도 어른스러움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솔직히 놀랐어. 사신이 이렇게 관심을 가진 아이는 처음이거든.”
사뿐사뿐 걸어오는 발걸음에는 ‘소리’가 없다. 극도로 단련된 무인들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기척을 숨길 때 사용하는 무음의 보법.
요령 없이 오직 반복된 훈련으로 차곡차곡 쌓아 올린 스킬은 너무나도 익숙한 것.
“당신이······.”
왜 여기에.
“흐음··· 그렇구나.”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나를 엿보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간다. 그녀는··· 추억이 된 몸가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너는 먼 미래의 내 제자구나.”
에린 다누아.
300년 전의 스승님이 눈앞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