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Killed the Play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74
나즈레아, 죽은 자들의 도시(5)
사신과의 계약.
계율과 마찬가지로 설정상으로만 존재하는, 스토리와 보스 캐릭터의 서사를 위한 설정이다.
계율이 엄청난 힘과 리스크를 지닌 것처럼 사신과의 계약도 비슷하다.
사신과 계약한 순간, 계약자는 사신에게 영혼이 묶이며 계약을 어기는 순간, 영혼 그 자체가 소멸한다.
《죽음의 기만자인 네가, 죽음과 거래를 트려 하느냐?》
내가 계약을 언급한 순간, 나와 사신은 그 누구의 인식에도 들어서지 않는 아공간 속에 들어섰다.
계약의 방. 대충 그런 느낌인가.
“젠체하지 마. 할만하면 할 거면서.
의외지만, 사신은 생각보다 유도리가 있는 놈이다.
미래에 망가질 순환의 가능성과 당장 순환되지 않는 120만의 영혼. 그것을 저울질해 에린의 계약을 받아들였다는 점이 증거다.
120만을 영영 포기하는 대신, 미래의 가능성을 선택했다. 이 저울의 차이를 계산할 만한 유도리가 사신에게는 있다.
《흥미롭구나, 기만자여. 어디 한번 말해 보아라.》
봐라, 지금도 나를 죽음의 기만자로 규정했으면서도 내가 내밀 계약의 추를 저울질하고 있지 않나.
“에린 다누아가 맺은 계약의 소멸. 그리고 선불로 ‘명계의 보물’을 내놔. 최소 10번대를 원한다.”
《네놈이 치를 대가는?》
“반년 안에 나즈레아를 정화해주지.”
《·········네게는 불가한 일이다.》
“그걸 판단하는 건 네가 아니야. 넌 저울에 추만 올리면 돼. 어때? 내 계약은 합당한가?”
────
침묵하는 사신. 그는 해골 턱을 쓰다듬다 입을 열었다.
《부족하다.》
“······.”
《네가 받을 대가가 부족하다. 120만의 영혼을 정화하는 대가로는.》
“그렇다는 건?”
《싱글넘버로 골라라. 그 정도는 되어야 잔돈이 남지 않아.》
더할 나위 없는 최상의 시나리오다!
나즈레아 ‘반복 퀘스트’에서 사신의 호의를 계속 쌓으면 레전드리 또는 에픽 아이템과 교환할 수 있다.
본디 명계의 물건이라 이승에서는 그 능력과 권능이 반감한다지만, 그 점을 감안해도 강력한 장비가 많다.
싱글넘버란 사신이 소유한 최상위 열 가지 에픽 아이템들을 말한다. 사신에게서 보물을 받을 수 있는 건 단 한 번뿐.
고인물들이 나즈레아에서 불사왕을 수백 번 때려잡으며 기어코 얻어내는 싱글넘버. 그러나 그건 시간의 제약이 없는 게임에서가 가능한 일이다.
전 회차에서도 시도해봤지만, 게임과 다르게 시간 제약이 있는 현실에선 시간상 30번대가 한계였지.
“좋아, 내가 원하는 보물은······.”
* * * *
사신의 아공간에서 나오자 안색이 새파래진 에린이 나를 발견했다..
“무, 무슨 짓을 한 거니?”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와 땀이 흥건한 손바닥으로 나를 붙잡는 에린.
“계약을 했습니다.”
“어떤? 어떤 계약을!”
초점 없이 흔들리는 눈동자. 내가 꺼낼 계약내용 단어 하나하나 놓치지 않으려는 듯 신경을 곤두세운다.
“반년 안에 나즈레아의 정화. 성공하면 당신의 계약도 소멸할 겁니다.”
“이, 이이···!”
핏기가 오르는 얼굴과 거친 숨소리. 언제나 온화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그녀였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네가···, 네가 미쳤구나···!”
“제정신입니다.”
“사신과의 계약이··· 어떤 의미인지 아는 거니? 실패하면 네 영혼조차 남지 않아! 윤회의 순환도 포기하는 거야!”
분노와 당혹으로 부들거리는 에린. 내가 그녀를 향해 실없는 웃음을 짓자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대체··· 왜 그러는 거니?”
“당신한테 그렇게 배웠으니까.”
“······.”
“저는 영웅놀이에 심취한 애새끼였어요.”
“으응?”
“이 세상은 놀이고, 내가 알고 있는 대로 흘러가고, 게임처럼 즐기면서 남들한테 칭송도 받고 싶고.”
분명 처음에는 완전히 게임을 하는 감각이었을 것이다. 조금씩 조금씩 이 세계를 현실로 여겨가면서 사람들을 구했다.
그 과정에서 부르는 칭송이나 환호성에 내심 우쭐했다.
그럭저럭 강해졌고, 조금 과하게 오만해졌다.
“분명, 아직 애새끼였던 거겠죠. 자신이 영웅이라 착각하는 애송이요.”
“······.”
“당신이 제 앞에 나타났어요.”
가장 어려울 때, 가장 두려울 때.
실력에 과분한 짓거리로 위험에 빠졌을 때, 그녀는 시체로 쌓인 산을 뒤로하고 내 앞에서 손을 내밀었다.
「괜찮니? 어디 다친 데는 없고?」
구해졌고, 처음으로 진짜 어른을, 영웅을 만났다.
대가 없이, 이득 없이 헌신적으로 아이를 위해주는 어른의 등을 보았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나는 그 등을 지켜만 봤다.
그저 지켜지는 아이라는 건··· 무력하고 뼈아프다.
내가 지키지 못한,
나를 지키다 가버린 영웅.
“이번엔 제가 당신을 구하고 싶어요.”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밀어도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멍하니 나와 시선을 교차할 뿐이다.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을 겁니다. 시도조차 못 했던 나약한 제가 아니에요.”
“아······.”
내 안에서 당신이 얼마나 커다란 존재인지, 지금의 당신은 모르겠지.
당신이 나를 두고 가버린 그 날이 얼마나 내 심장을 후벼팠는지. 얼마나 내 무력함을 탓했는지.
이번에는 그렇게 두지 않는다.
“저는 당신의 등을 쫓는 게 아니라··· 나란히 옆에 설 수 있어요.”
“······.”
“이것이 꼭 세상을 구한다느니 그런 거창한 게 아니라도······.”
그녀에게서 너무나 많은 걸 받았기에.
“돌려드리는 겁니다.”
너무나 존경하고 사랑했던, 지금도 그리워하는··· 나의 영웅.
“그냥··· 돌려드리는 거예요.”
* * * *
그로부터 얼마 뒤의 나즈레아.
300년 전부터 계속돼왔던 일상은 오늘도 반복되고 있다.
언제나처럼 사흘째의 밤. 은빛의 창술사가 불사왕을 쓰러뜨리고 무사히 새로운 루프를 기다린다.
조금 달라진 게 있다면 일을 해결하고 나면 항상 같은 장소에서 도시의 전경을 내려다본다는 것이다.
언젠가 이 도시를 방문한 소년과 마지막 담소를 나누던 이곳에서.
“······.”
은빛의 창술사. 에린 다누아는 도시를 내려다 본다.
여전히 도시는 아비규환의 지옥 구렁텅이. 300년 동안 반복해온 기계적인 일상이다.
그녀는 이 끔찍한 일상과 300년을 싸워왔다.
이유는 별다를 게 없다. 그녀가 영웅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 땅에 남은 마지막 신족의 말예. 이제는 저편으로 사라진 낙원. 그림자 왕국의 여왕이다.
에린 다누아는 스스로가 특별한 인간임을 알고 그 소임을 다하며 살아왔다. 300년 전의 선택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영원을 사는 다누의 일족. 그 마지막 여왕으로서··· 꼭 그렇게만 보지 않더라도.
사람은 너무 쉽게 죽어버린다.
야만의 시대에서 인간의 삶이란 너무나도 당연한 듯 쉽게 쓰러지는 것이다.
외면하고 싶지 않았다.
살아간다. 슬프고, 괴롭고 또는 행복하고 화창한 삶이라는 것을.
지켜주고 싶었다.
그녀가 처음으로 영웅이 되었던 건 그런 마음이 시작이었을 것이다.
“잊고 있었네······.”
오랫동안 그 시작을 잊고 있었다. 싸움에 지쳐, 연속되는 투쟁 속에서 잊고 있었던 걸 먼 미래의 제자가 일깨워줬다.
「이번엔 제가 당신을 구하고 싶어요.」
처음이다. 누군가가 자신을 구하고자 하는 건.
그녀는 영웅이기에 항상 누군가를 구하는 삶만을 당연시해왔다.
영웅의 삶을 살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당연하게 여기며 자신을 돌보지 않게 된다.
내가 희생하는 게 당연하니까.
내가 지켜야 하는 게 당연하니까.
수호 받는 자가 아니라 수호하는 자이기에. 필연적인 고독을, 너무 오랜 삶을 반복하며 당연하게 여겨버렸다.
「저는 당신의 등을 쫓는 게 아니라··· 나란히 옆에 설 수 있어요.」
삶이라는 당연한 것을.
기나긴 고독 속에서 잊어버린 것을 그 소년이 일깨워주었다.
자신의 옆에 서겠다고 말해주었다.
그때의 말을 떠올리면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벌리며 바보 같은 함박웃음을 짓게 된다.
발갛게 물든 얼굴이 여름 햇살처럼 화끈거린다.
어찌 사랑스럽지 않을 수 있을까.
오랜 고독을, 자신의 삶을 구해주고 싶다고 말하는 소년이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차마 그 말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코린, 코린이라······.”
이제는 감미롭고 달콤쌉싸르한 그 이름을, 스스로 품은 감정의 정체를 깨닫지도 못한 채 재차 곱씹었다.
··················
············
······
사신은 오늘도 사흘째의 밤을 보내는 오랜 친우를 지켜봤다.
천년을 넘게 알고 지냈건만, 오랜 친우의 소녀 같은 표정에는 사신도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뭐, 나쁘진 않군.》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기질적인 표정으로 언데드를 도륙하던 오랜 친우의 조각은 그로서도 유쾌하다고는 할 수 없는 모습이어서.
지금은 친우의 긍정적인 변화를 얌전히 지켜봐 주기로 했다.
《하지만 대체 무슨 생각이지? 기껏 싱글넘버를 줬건만······.》
새삼 생각나는 그 전사의 선택. 수많은 명계의 보물들을 두고 그가 선택한 건 두말할 것도 없이 최악의, 코린 로크에게는 가장 쓸모없을 아이템이다.
[사신의 보주]– 반드시 명중한다.
– 육(肉)과 령(靈)을 분리한다.
– 방어력을 무시한다.
무기에 ‘장착’함으로서 사신의 낫 효과를 발휘하는 필중필살의 절대보구.
이 보주를 장착한 무기는 인과율을 비틀며 반드시 결과만을 가져온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사신이 사용했을 경우다.
인간이 사용하면 효과를 어느 정도 유지하는 선에서 조금 좋은 수준으로 영락하는 그저 그런 보물.
기사나 마법사··· 하물며 인간 정도의 령(靈)만 지녀도 그럭저럭 저항이 가능한 애매한 물건이다.
육과 령의 결속이 약한 골렘류나 하위 언데드류라면 말도 안 되는 위력을 발휘하겠지만······.
『나는 령(靈)을 인지하지 않는다.』
사신의 계약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강력한 계율의 힘에 의해 코린 로크는 영체에 간섭할 수 없다.
이말인즉슨, 그 보주의 능력을 사용하면 공격은 무조건 빗나간다는 소리다.
《그러나 저울은 기울지 않았다.》
사신은 계약에 걸맞은 대가를 치렀음이다. 그렇다는 건······.
《재미있군.》
사신은 실로 오랜만에 기대할 만한 전사를 만났음을 인정했다. 그 남자라면, 자신의 오랜 친우를··· 영락한 여왕의 운명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르지.
* * * *
다시 며칠 전, 나즈레아 초입 칸나 여관.
밤이 끝나고 아침이 되어가는 칸나 여관에는 속속 학생들이 도착하기 시작했다.
“슬슬 끝나가는군.”
이번 단체전의 기획자. 강륜 교수는 당초 예정되었던 단체전의 결산을 발표하기로 했다.
단체전의 내용은 사흘 동안 언데드들에게서 살아남으며 최대한 월명석을 수집하는 것이다.
생존 서바이벌과 언데드들의 추격을 피할 수 있는 기민함. 무수히 많은 언데드의 파도 속에서 월명석을 색적할 능력 등 여러 종합요소가 결과로 결정될 것이다.
보라매와 메르카바 통틀어 총 8개 팀 32명. 이중 절반인 4개 팀만이 다음 단체전에 나갈 수 있지만··· 메르카바 쪽은 영 분위기가 안 좋았다.
“으··· 우리는 첫날부터 탈락했는데.”
“······첫날 탈락한 녀석들은 대개 우리 아카데미잖아.”
첫날, 난데없는 나즈레아 삼대보스의 총집합으로 어이없는 탈락을 당한 예거와 라크.
문제는 초기에 대거 탈락한 게 예거와 라크의 D조만이 아니란 거다.
“우리 망한 듯?”
“하긴··· 미친 짓으로 운 좋게 이기긴 했지.”
“만드라고라 산적단도 여기까지인가······.”
그렇다.
메르카바 아카데미의 단체전 참가자들은 전원 ‘임모탄 로크 산적단’ 출신이다.
숫자를 불려 자신들 이외의 모든 학생을 무차별로 공격하고 점수를 독점했던 이들.
다르게 말하자면 집단으로 다구리는 잘 치는데, 평균 실력은 영 아니올시다 하는 학생들이 많았던 것이다.
그렇기에 철저하게 정예로 선발해온 보라매와 달리 메르카바 아카데미는 첫날부터 탈락자가 속출했다.
“메르카바는 마리에가 있는 A조하고 코린이 있는 D조 말곤 희망이 없구나······.”
“D조도 첫날부터 두 명이 탈락했어. 이건 가망 없지······.”
실질적으로 마리에 듀나레프가 있는 A조 말고는 믿을 곳이 없다. 즉 단체전은 높은 확률로 보라매와 메르카바의 3:1.
-끼익!
여관의 문을 열고 누군가가 들어온다. 주변 언데드들은 교수와 성직자들이 정리해놨으니 학생일 것이다.
“저희가 좀 늦었군요.”
6시 50분.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보라매 아카데미의 갑조. 강유화와 그 조원들이었다.
보라매 최강. 검주 강유화의 조는 척 봐도 어마어마한 양의 월명석이 들었을 보따리를 질질 끌고 왔다.
기사인 와타나베 준과 신조우 두 사람이 끙끙거리며 들고 온 월명석 보따리가 부욱 찢어지며 내용물을 쏟아냈다.
“이런.”
“죄송합니다, 회장. 금방 줍겠습니다.”
묵묵하게 쏟아진 월명석을 줍는 조원들. 그러나 그 모습을 지켜본 메르카바 쪽에서 탄성이 쏟아져 나온다.
“미친··· 뭐 저리 많아.”
“이거 완전 독점한 수준인데?”
강유화의 갑조가 획득한 월명석은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실제로 그럴 만도 하다.
허공답보를 펼치며 월명석 언데드만 효과적으로 퇴치한 강유화는 이번 단체전 최고의 효율을 자랑했다.
그녀가 수천의 언데드들 사이에서 선녀처럼 비행하며 언데드들의 목을 딴 것은 여러 학생들이 목격했을 정도다.
[갑조 : 558점.]“최고득점이군.”
월명석의 질과 양을 측정한 강륜의 말에 학생들이 경악했다.
아직 귀환하지 않은 메르카바 A조와 D조를 제외하더라도 현 2위인 160점과는 비교도 안 되는 수준이다.
“수고했다, 학생회장. 이번 단체전은 네 압도적인 1위겠군.”
“글쎄요.”
“흐음?”
유화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짓는 강륜. 여관에서 언데드를 쫓는 진법을 구축하던 그와 다르게 유화는 월명석을 찾아 안전지대를 벗어났었다.
“메르카바에는 괴물이 있네요.”
-꿍!
“안녕하세요~ 핫! 저희가 좀 늦었나요?”
이번에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싱그러운 물빛머리가 인상적인 마리에와 그 조원들이다.
A조. 메르카바의 유일한 기대주가 귀환한 것이다.
“오오! 마리에 선배다!”
“A조가 가져온 월명석도 만만치 않아!”
마리에와 이사벨. 러셀과 에리스티나 4명 전원이 생존해서 귀환한 A조는 강유화의 갑조보다 곱절은 될 법한 보따리를 질질 끌고왔다.
얼마나 무겁고 많았으면 권수인 덕구까지 소환되어 보따리를 나를 정도.
“읏차!”
마법사라곤 믿기지 않는 괴력으로 월명석 보따리를 들고 오는 마리에. 수석교수인 강륜만이 유일하게 냉정을 유지 중이다.
“기다려라. 점수를 계산하지.”
“네~ 어머, 라크와 예거구나! 코린은 어디 있니?”
[A조 : 499점]“어어? 뭐야?”
“이게 어떻게 된 거지?”
“A조가 곱절은 가져왔는데!”
“측정기 고장난 거 아니야?”
메르카바 쪽에서 반응이 격하다. 이 점수만으로 단체전 통과는 따논 당상이지만, 자존심이라는 게 있는 것이다.
“진정해라. 측정기는 고장나지 않았다. 봐라.”
강륜은 노련하게 학생들을 진정시키곤 생각보다 훨씬 낮은 점수의 증거를 보여주었다.
완전히 박살난 월명석 덩어리. A조의 보따리 안에는 아예 가루가 된 월명석이 한가득이다.
“무게는 많이 나가지만, 반절 이상이 마석으로서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부서져 있다.”
“아하하··· 그르쿠나~”
“거봐, 마리에. 너무 강한 마법들이었다니까.”
그 실체를 A조를 비롯해 갑조는 알고 있었다.
수백, 수천의 언데드가 몰려와도 마리에는 압도적인 화력의 마법으로 그들을 쓸어버렸고 그럴 때마다 월명석을 삼킨 언데드들도 사이좋게 박살난 것이다.
“뭐, 일단 스테이지 보스도 여럿 쓰러뜨려서 다행이지.”
오히려 하급 언데드보다 준1급이나 2급은 쳐줄 스테이지 보스 쪽이 더 상대하기 쉬웠다며 하소연하는 이자벨.
아무튼, 이로써 점수 순위는 다음과 같다.
갑조 : 558점
A조 : 499점
병조 : 160점
을조 : 155점
정조 : 126점
C조 : 98점
B조 : 55점
사실상 보라매 세 팀. 메르카바 한 팀 진출이 결정된 상황. 아직 D조가 귀환하지 않았으나 첫날부터 두 명이 탈락한 D조에 대한 기대는 버렸다.
“안녕하십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어어, 저희가 많이 늦은 거 같은데요?”
그리고 귀환한 D조의 생존자. 코린 로크와 아리샤 아덴.
학생들과 교수들은 자연스럽게 그들이 들고온 보따리에 시선을 보냈고 이내 그럼 그렇지, 하고 같은 반응을 보였다.
두 사람이 가져온 보따리는 다른 조에 비해 턱없이 작았기 때문이다.
“늦었군, 코린 학생. 아리샤 학생.”
“59분. 아슬아슬했네요.”
“그러니까 밥은 끝나고 먹자고 했잖아요.”
“도시 나가서 밥 먹으면 한세월이야. 언제 기다려?”
“코린 학생. 보따리를 가져오게. 점수를 측정하지.”
어차피 별 의미도 없겠지만, 강륜은 성실하게 소임을 다했다.
“넵~ 여기 제가 꺼내겠습니다.”
코린은 보따리에서 월명석을 꺼냈다. 그것도 한 개만.
-쿵!
묵직한 월명석 덩어리가 탁자 위에 놓인다. 모습을 드러낸 월명석에 모두의 시선이 빼앗겼다.
달빛을 머금은 것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 월명석은 영롱한 은빛을 뽐내고 있었다.
특상품이다! 누구나가 인정할 정도로 크기와 빛깔에서 완벽한 월명석이다.
“이, 이백 오십점······.”
측정기에서 나온 점수에 모두가 놀라움을 숨기지 못했다.
겨우 월명석 한 개로 단숨에 3위로 치고 올라왔다. 도대체 얼마나 강한 스테이지 보스를 쓰러뜨려야 저런 월명석을 얻을 수 있는 것인가?
“으웅? 코린? 도시 중심부는 가면 안 되는 거 아니었어?”
마리에는 안전지대를 완전히 벗어난 위험지대로 향한 것에 의문을 가진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위험하다고 했지, 가지 말라고는 안 했거든요.”
“그르쿠나!”
나도 갈 걸 그랬다, 하고 손뼉을 치는 마리에.
“흠··· D조, 250점으로 3위······.”
“제가 가져온 게 이게 끝이 아닌데요?”
“더, 더 있단 말이야?”
연이어 꺼내지는 두 개의 월명석. 이전과 비슷한 크기의 월명석에 모두가 경악한다.
“코린하고 아리샤 녀석. 도대체 어디까지 갔던 거야!”
“도시 중심부면 나즈레아 삼대보스라도 잡고 온 거 아니야?”
“미친······.”
각각의 월명석은 246점. 272점을 기록.
“자, 이게 마지막입니다.”
마지막으로 꺼낸 월명석은 기존과는 완전히 ‘급’이 달랐다. 기존 월명석과는 달리 불길할 정도로 새빨간 빛을 자랑하는 월명석.
월명석이라는 카테고리조차 벗어난 것 같은 불길한 빛이었다.
“1,000점.”
모두가 침묵한 순간이었다.
D조 : 1,768점
갑조 : 558점
A조 : 499점
병조 : 160점
을조 : 155점
정조 : 126점
C조 : 98점
B조 : 55점
이상 단체전 통과자가 결정되었다.
* * * *
나즈레아를 떠나는 길. 객실 창문으로 나즈레아의 도시 전경이 보였다.
저 도시에는 여전히 에린이 있다. 300년 전 분리된 스승님의 분신 같은 존재.
“다사다난했네요.”
“그러게.”
아리샤는 내 옆자리에 앉아 마리에가 삶아준 감자를 건넸다.
“또 가실 거죠?”
“그래야지.”
아리샤는 박제된 에린을 구하러 내가 갈 거라는 걸 눈치챈 모양이다. 사신과 계약까지 했다고 하면··· 화내려나?
“그때는 마리에 선배하고 저도 같이 가요. 코린 씨가 뭘 꾸미는지는 몰라도 도움이 될 테니까요.”
“고맙다.”
기꺼이 돕겠다는 말이 기특해서 아리샤의 머리를 잔뜩 헝클어줬다. 윽! 엑! 윽! 하고 아리샤가 볼멘소리를 냈지만.
“핵심은 다음 단체전이야. 아리샤, 네가 일 좀 빡세게 해줘야겠다.”
“······알뜰하게 부려먹으시네요. 그런데 우리 돌아가면 복식전 해야 하지 않아요?”
“그것도 있지.”
복식전에는 강유화와 사진혁이 팀으로 출전한다. 본래라면 사진혁은 개인전에도 나가므로 단체전에는 나오지 않지만······.
이게 다 강륜의 꼼수가 있단 말이지. 뭐, 일단 걸려줘야지.
“어쨌든 지금은 쉬자. 너무 일만 하면 피곤하니까.”
사신에게서 얻은 힘도 활용할 방법을 찾아야지.
조금 예정 외로 명계의 보물을 손에 넣었지만, 잘하면 이번 3막은 ‘사신의 보주’가 히든카드가 될 수도 있다.
“화란 녀석, 뭐 하고 있으려나?”
나는 이번 메인 시나리오의 핵심이 될 녀석이 걱정됐다.
··················
············
······
메르카바로 돌아온 바로 그날. 나는 조제핀 여사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화란 학생이 구속되었습니다.”
············벌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