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Killed the Play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76
화란(2)
“화란 학생이 구속되었습니다.”
“······.”
단체전에서 돌아오니 화란이 구속됐단다. 개인전에서 사고를 쳤단다.
다행히 다친 사람은 없지만, 문제는 화란의 금계에 대해 알고 있는 이들이 이 자리에 몇몇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구교 제루엠 대성당에서 파견된 주교 르노 리쥐냥.
그는 안전하다고 자신하던 화란의 금계가 그녀의 폭력성에 의해 쉽게 풀렸다며 지적했다.
엄밀히 말하면 금계는 제대로 작동했다. 화란의 금계는 정신을 안정시키는 부적과 폭주로 끌어 올린 오러를 먹어치우고 오히려 구속하는 신교의 성물 ‘지온의 쇠사슬’로 이루어져 있다.
부적은 화란의 오러를 견디지 못해 불탔어도 쇠사슬은 훌륭히 그 역할을 다했다.
“금계 중 하나가 무력화됐다는 것만으로 꼬투리를 잡을 수 있는 상황이니까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죠.”
하지만 역시 명분 자체는 약하다. 그래서 부적을 다시 새긴다는 명분으로 강륜에게 맡긴 거겠지.
“······.”
단체전 일정 때문에 늦었다. 이것도 내 나비효과인가.
본래라면 부적을 붙일 계기를 조절할 계획이었지만······.
뭐, 좋아. 내 이럴 줄 알았지. 마리에 사건과 태풍박쥐 사건을 겪으며 뼈저리게 깨달은 건 언제나 작전 B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부적을 붙이는 일정이 어떻게 되죠?”
“재료 수급과 더불어 공방에서 새로운 금계의 부적을 제작한다고 하더군요. 그쪽으로 화란을 이동시켜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그렇군요.”
거짓말이다.
그 부적은 이미 준비됐을 터. 내가 훔친 기물 때문인가? 마무리는 대라멸진 안에서 해결하고 싶다는 걸까?
뭐가 됐든 단체전에서 화란을 ‘핵’으로 사용하기 전에 수작질을 벌여두고 싶은 거겠지.
거기까진 넘어가 줄 수밖에 없다. 문제는 나도 그 전에 화란에게 뭔가를 해두긴 해야 하는데······.
“화란과 면회 가능합니까?”
“성가시게도 구교의 성전기사단이 붙었습니다.”
성전기사단이 틀어막고 있다. 역시 정치적 무리를 해주시는군. 뭐, 이번에는 딱 그 정도로 날뛰어주는 게 적당하다.
“코린 학생.”
지금까지 잠자코 지켜보던 에리우 이사장··· 에린 스승님이 내게 다가왔다.
“코린 학생은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니?”
“아······.”
눈치챘다. 스승님 정도의 통찰력이라면 내가 뭘 숨기고 있는지 모를 리가 없겠지.
“뭐, 알만큼만 압니다.”
“······이번 사태. 화란 학생의 구속은 피할 수 없어도 메르카바에서 전담할 수 있었단다.”
“책임소재를 추궁당하는 메르카바에서 상당히 강압적으로 나갔으면 그랬겠죠.”
그건 별로 좋은 안이 아니다. 메르카바 아카데미에 월야성 사태의 주범인 마족을 무리해서 입학시킨 건 에린 스승님이다.
금계를 통해 안전을 보장하고 마인을 학생으로 받아들였는데, 이 사달이 났다.
그런데 메르카바에서 화란을 싸고돈다면 무슨 말이 나올까?
“리스크는 나도 알고 있단다. 허나, 화란 학생은 무조건적으로 보호할 수 있었겠지.”
나도 알고 조제핀도 알고 에린 스승님도 안다.
이번 사태, 구교와 보라매의 강륜 교수가 무언가를 벌였다는 걸.
화란이 폭주한 게 하필이면 투각견 사진혁과의 대련. 그것도 르노 주교가 요청한 페스티벌 참여에서 벌어진 일.
우연이라기엔 공교롭다. 처음부터 의심의 화살을 돌리고 있었기에 이번으로 확신했다.
부적을 보강한다는 명목으로 화란에 대한 통제권을 일시적으로 틀어쥐고 그사이에 무언가를 벌인다.
“코린 학생. 우리는 같은 목적지를 보고 있는 걸까요?”
“100% 확신하죠. 우린 같은 곳을 보고 있어요.”
“그렇다면 어째서 이런 위험을 부담하는 거니?”
무엇을 의심하는지 안다. 내가 부탁했다. 이번 사태에서 스승님과 조제핀 여사에겐 감시 그 이상을 하지 말아 달라고.
완벽하게 컨트롤할 순 없어도 ‘결과’만큼은 내가 원하는 대로 끌어내야 한다. 그를 위해선 적당한 ‘과정’이 필요하다.
내 생각을 모르는 에린 스승님으로선 당연히 이런 의심이 들 것이다.
내가 결과만을 위해 과정을 지저분하게 처리하고도 남을 놈인지를.
스스로 완전무결한 사람이 아님을 알고 있다. 어설픈 행동으로 전 회차보다도 안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내 행동에 의심을 품지 않을 거다. 내가 선택한 이 길은 적어도 틀리지는 않았으니까.
“내가 바라는 결과에는 모두가 들어가 있어야 해요. 빠지는 사람 없이요.”
[메인 퀘스트 : 화(火) / 란(蘭)]※ 난이도 : A+
※ 달성조건 – 화(火) 소멸시 실패 / 란(蘭) 소멸시 실패.
내가 추구하는 왕도에는 화도, 란도, 당신도 들어가 있어야 해.
* * * *
제 3막 보스 비천야차는 지금까지 등장한 여느 보스들과 배경이 살짝 다르다.
캐릭터와의 호감도, 쌓아온 서사 또는 선택을 두 가지 선택을 강요받는다.
화(火)를 구할 것인가, 란(蘭)을 구할 것인가.
빌어먹을 이지선다. 그야 스토리의 무거움이나 서사를 위해서 이건 꽤 유효한 장치다.
실제로 이런 게임 내 분기 선택지에 의해 2회차, 다회차 플레이를 하는 유저들이 수두룩하니까.
의 고인물 플레이어들이 모인 커뮤니티에서는 ‘만약’이라는 전제하에 이러한 이지선다를 어떻게 완벽한 해피엔딩으로 만들 것인가, 라는 토론이 오가기도 했지.
이건 게임에서는 증명할 수 없는 설정상의 갑론을박. 누구도 증명하지 못했던 일이다.
‘사실 가장 편한 건 박시후처럼 게임 감각으로 둘 중 하나를 선택하면 그만이야.’
어느 쪽이 됐든 희생자는 한 명. 한 명만 희생하면 되는 편리하고 효율적인 선택지.
거듭 말하지만.
난 효율적인 플레이는 관심 없다.
* * * *
단체전에서 돌아오고 이틀째. 단체전 참가자들에게는 수업 면제와 휴식시간이 주어진다.
이들 중에는 개인전과 복식전에 참가하는 이들도 있기에 나즈레아에서의 피로를 씻고 컨디션을 충전하라는 의미도 있다.
“코린, 이쪽이야!”
싱그러운 물빛머리 소녀가 작은 손으로 날 붙잡고 대로를 걸었다.
아카데미 내부의 대로와 시설들은 페스티벌에 어울리는 축제판이다.
“코린! 여기 감자전 먹을래?”
“아니, 평소에도 많이 먹잖아요. 제가 간 감자만 창고 하나 채우겠구만.”
“그, 그 정도는 아닐걸?”
“우리 둘이서 까먹은 감자면?”
“······쪼큼 인정.”
이 감자돌이 감자황녀를 어찌할꼬.
“모처럼이니까 닭꼬치나 저기 은화 1장짜리 소고기 꼬치도 먹어보죠. 와··· 꼬치 하나가 은화 한 장이라니.”
관광특수라지만 가격이 너무하군. 관광특수하니 또 생각나는 게 있다.
“선배, 우리 여관 앞에 노점 설치한 거 어떻데요?”
“우물우물. 그거켁켁!”
“아, 감자 작작 드시라니까.”
목이 막힌 마리에에게 음료수를 먹여준다. 축제 노점에 와서까지 회오리 감자라니··· 생각해보니까 회오리 감자 파는구나······ 이러니 향수병이 안 걸리지.
“으, 고마워. 노점이라면 어제 종합보고서를 받았어.”
“오오, 수익이 얼마나 났대요?”
“그게 말이지.”
-속닥속닥!
-휘둥그레!
-끄덕끄덕!
“아··· 내게도 이런 날이 오는구나.”
“헤헤, 코린이 좋아하니 나도 좋다.”
여관 건설부터 100명이 넘는 보라매 일원들을 유치하고 그 앞에 노점을 쫙 깔았다.
식재료는 듀나레프 가문에서 직송되는 것을 썼고, 알바생들을 고용해 대애충 꼬치소스 찍찍 바른 꼬치 같은 걸 3배 가격에 팔았지.
너무 비싸다고? 아 관광특수라니깐!
어차피 보라매에서 온 녀석들은 대륙을 넘어서 온 거라 이쪽 물가도 잘 모른다.
그리고 이게 또 큰돈 오가는 것도 아니고 푼돈 거래라 은근히 체감하기 힘들거든.
“선배! 오늘은 내가 쏜다! 하고 싶은 거 다 해!”
“와아~!”
오늘은 나도 마리에도 별다른 일정이 없으니 신명 나게 놀 수 있겠지. 무엇보다 이 노점들 사이에서 구할 것도 있고.
“코린! 저기 봐! 마력석 던지기야!”
“가서 얼른 해봅시다!”
“응!”
찾았다. 역시 올해도 왔군.
노점들 사이사이에 마련된 상인들의 미니게임장.
현대의 두더지 잡기와 비슷한 혼랫 잡기(기사용)나 마나다트 던지기도 하고 왔지만 이 마력석 던지기는 특별하다.
“코린 마력석 던지기 할 줄 알아?”
“처음이에요.”
“내가 알려줄게!”
전 회차에서 한 건 경험으로 안 쳤다. 마리에가 알려주고 싶어서 근질거리는 것 같기도 했고.
“아저씨, 마력석 주세요!”
“어이쿠, 예쁜 아가씨네. 서비스로 하나 더 드리지.”
마리에는 주인장에게 은화를 지불하고 제 손가락만 한 돌멩이 6개가 든 쟁반을 받아냈다.
-아저씨, 저는 왜 더 안 줘요?
-학생, 거울 보게.
“잘 봐. 이 마력석들은 광산에서 불량품 판정을 받은 것들을 쪼갠 거야. 봐봐, 만져보면 물렁하지?”
“오, 진짜다.”
솔직히 불량 마력석보단 마리에의 손가락이 더 말랑거렸지만.
“돌이 이렇게 물렁해도 되는 거예요?”
“원래는 안 돼. 마력석은 마력을 잘 흡입해서 속성이 변하기도 쉬워. 그래서 마법 스태프 재료로 잘 사용되고.”
마리에는 자신의 옥구슬 같은 지팡이를 텅텅 두드렸다. 이 안에도 마력석이 섞여 있다면서 말이다.
“근데 이렇게 물렁거리면 금방 폭발하거든. 봐봐!”
마리에가 마력을 주입하기 무섭게 광택을 빛내며 부풀어 오르는 마력석. 마치 터질 것처럼 말이다.
“터지기 전에 던져야 해!”
마리에는 부풀기 시작한 마력석을 솜씨 좋게 게임장 내부를 향해 던졌다.
-뻥!
뻥튀기 터지는 것 같은 요란한 소리와 함께 터지는 마력석.
물렁한 표면 때문인지 파편 수류탄보다는 물을 가득 채운 물폭탄이 터진 것처럼 사방에 마력을 흩뿌렸다.
“오··· 팔십 점. 아가씨, 솜씨가 좋구먼?”
마리에가 던진 마력석은 정확히 아주 극소량의 범위에만 마력을 흩뿌리며 표적지에서 마력잔흔이 벗어나지 않았다.
지구로 치면 비석치기에 물폭탄을 섞은 느낌일까?
불량 마력석 던지기는 얼마나 세밀한 마력주입과 표적지에서 마력잔흔이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관건이다.
뭐, 그런 설정을 가진 미니게임이었지.
캐릭터의 명중률 보정 값에 따라 물폭탄의 범위가 좁아지고 넓어지는 느낌.
이게 또 재밌는 게··· 전 회차에서 나와 박시후가 던진 물폭탄은 아예 다른 효과가 나왔다는 거지.
“제가 던져보죠.”
나는 마리에에게서 받은 마력석에 마력을 주입했다.
“코린! 부풀어오른다! 얼른 던져!”
“얼른 던지시게!”
마리에와 사장의 재촉에도 나는 한계까지 마력을 집중했다. 물폭탄에 물을 한계까지 집어넣은 느낌으로 부푸는 마력석.
그것을 손가락을 튕겨 던진다. 투창과 투석 연습을 하며 생긴 요령으로 미니게임장의 좁은 거리라면 내 명중률은 한없이 100%에 가깝다.
-꽝!
정확히 표적지 위에서 터지는 마력석. 그러나 마력잔흔은 마리에보다도 훨씬 좁은 범위에서만 터졌다.
마리에가 던졌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은 마력을 주입했음에도 말이다.
“구, 구십 오점······.”
좋아, 이만하면 완벽하다. 서브 플레이어라고는 하나 나도 엄연히 플레이어 시스템창의 보정을 받는 존재라는 거지.
명중률이 높으면 높을수록 ‘축제용 불량 마력석’의 확산범위는 좁아지고, 낮으면 낮을수록 확산범위는 늘어난다. 게임에서는 온갖 디버프 장비와 마법을 덕지덕지 발라 ‘명중률 0%’를 만들었더니 최대 100m까지 확산범위가 늘어났을 정도다.
참 할 짓 없어. 고인물들. 시간이 남아도나? 네, 그 할 짓 없는 양반이 접니다.
“아저씨.”
“어, 어어?”
“여기 마력석 다 저한테 파세요.”
“뭐, 뭐?”
“돈은 두 배로 쳐드리죠.”
나는 그 자리에서 금화 주머니를 사장에게 건넸다.
“코린, 그런데 저건 왜 산 거야?”
“다 쓸데가 있죠. 마리에 선배, 개인전 나가기 전에 퍼거스 그 양반한테 가볼 일이 있다고 했죠?”
“응! 스태프도 정비받고, 방호코트도 수리해야 하거든.”
“코린 로크가 부른다고 퍼뜩 뛰어오라고 해요. 일감 준다고.”
“???”
“맞다, 선배. 마차 운수는 선배네 자회사였죠?”
“응. 그런데?”
“마차 시간표 좀 구할 수 있어요?”
“코린······.”
연이은 내 부탁에 마리에의 표정이 게슴츠레하게 가늘어진다.
“또 무슨 일 꾸미고 있어?”
“흐흐, 벌써 알아챘어요?”
“코린 표정만 봐도 다 아는걸~”
“‘그’가 돌아올 때가 됐습니다.”
“그?”
마리에가 깜찍하게 눈을 깜빡였다.
* * * *
“이동이다.”
화란은 자신을 찾아온 세 사람을 보며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강륜. 강유화. 사진혁.
보라매 아카데미의 세 사람이 자신을 찾아온 것은 그녀를 도시 외곽의 여관으로 이동시키기 위해서다.
지온의 성물 ‘지온의 쇠사슬’에 의해 꽁꽁 묶인 그녀는 굴욕적이게도 사진혁에게 들쳐져 이동해야 했다.
명목상으로는 강륜의 공방에서 그녀의 금계를 보수할 부적을 만든다는 명목이다.
강시의 움직임을 제약할 수 있는 부적은 특수한 재료를 사용해야만 한다.
강시의 피부 조각이 들어가 말려진 누런 종이, 검정 개의 피로 만들어진 먹물.
여기에 부적에 글을 적으면서 주문까지 외어야 하니 실력 있는 도사라도 자신의 공방에서 만반의 준비를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곳은 외딴 타지. 강륜은 도시 외곽의 여관에 학생들의 숙소를 빌리면서 이번 단체전에서 사용할 진법을 위해 임시공방을 설치했다.
화란을 그 임시공방에 끌고 가 부적 제작에 필요한 재료를 얻고 곧바로 금계의식을 치른다는 모양이다.
“마차에 태워라.”
강륜의 말에 화란을 든 채 마차에 탑승하는 사진혁. 두 사람을 따라 강유화와 강륜이 마차에 탑승했다.
“유화.”
“네, 숙부님.”
그때였다. 유화가 쇠사슬에 묶여 옴짝달싹 못하는 화란의 입을 벌렸다. 그러자 그 안에 무언가를 집어넣는 강륜.
“으윽···!”
그것이 나뭇조각이라는 걸 깨닫자마자 타는 듯한 고통이 내장에서 끓어올랐다.
전신의 힘이 빠지고 무기력해지는 감각. 마치 ‘대기 명령’을 받았을 때처럼.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화란이 옴짝달싹 못하도록 옥죄고 있던 쇠사슬이 스르륵 풀려버리더니 미약한 힘만으로 화란을 감쌌다.
그녀가 무력화되면서 쇠사슬이 흡수할 오러조차 부족하게 된 것이다.
“와우~”
순식간에 무력화된 화란을 보며 신기한 듯 강륜에게 질문하는 진혁.
“지금 먹인 게 뭡니까, 스승님?”
“복숭아 나무를 깎아 만든 도목(桃木)패다. 강시들의 천적 같은 물건이지.”
“그런 게······.”
그럼 지금이라면 이 녀석을 죽일 수 있다? 그런 생각을 읽었는지, 강륜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그를 응시했다.
“허튼, 생각하지 마라. 이 괴물 수준의 강시라면 도목을 체내에 먹이고서도 단순히 몸살 정도로 그칠 뿐이다. ‘비천야차’의 경지에 오른 강시를 얕보지 마라. 언제 ‘후’로 진화해도 이상하지 않지. 까딱하면 용(龍)보다도 더한 괴물이 된다.”
“칫···.”
“혁, 명심하세요. 우리의 목적은 사특한 존재를 란에게서 떼어내는 것이지, 죽이는 게 아닙니다.”
“압니다, 알아요.”
유화의 말에 안색이 새파래진 것은 화란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말한 대로예요, 화(火). 강륜 숙부님께서 란의 육신에서 당신을 떼어낼 테니까요.”
“그, 그런 짓을 하면···!”
“육신을 잃은 당신은 소멸하겠죠. 아니면 마령으로 전락하거나.”
“이, 이 몸은······!”
“결코 당신 것은 아니죠. 알고 있지 않나요?
도목패의 영향으로 식은땀을 흘리는 화란에게 유화는 평소의 온화함은 온데간데없이 매서운 표정으로 그녀를 내려다볼 뿐이다.
“당신에게서 란을 돌려받을 겁니다.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당신에게 그 몸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보시나요?”
“나는······.”
화란이 아무 항변도 못 하는 사이, 마차는 어느덧 도시의 끝에 다다르고 있었다.
“스승님, 이제 곧 도착합니다.”
“그래, 서둘러 공방에서 일을 마치──!!”
-둥두루둥둥! 둥둥!
-끼요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옷!!!!!
-으, 으아아악! 이런 미친 새끼!
마부의 외마디 비명. 다음 순간, 웬 거대한 마차가 강륜이 탄 마차를 들이박았다.
-꽈직! 꽈지지지직!
-끼이이이이이익!!
거침없는 두 마차의 충돌. 요란한 소리와 함께 자빠진 것은 강륜이 탄 마차 쪽이었다.
“좋아! 보스, 어쩔깝쇼?”
“흐하하하하! 돈 될 만한 건 다 챙겨라!”
누가 봐도 도적들이나 할 것 같은 대사. 그러나 문짝이 열리며 보인 도적들의 대장과 눈이 마주치자 화란은 커다래진 동공을 닫을 수 없었다.
“너······.”
붉은빛의 눈동자와 특유의 꽁지머리. 복면을 쓰고 있긴 하지만 모를 수가 없는 소년이다.
“오이오이! 미소녀잖아!”
“어?”
“이거 완전 횡재했군! 애들아! 이 계집을 챙겨라!”
“예이! 형님!”
자빠진 마차 속에서 화란을 낚아채는 복면남자.
“유화, 진혁!”
정신을 차린 강륜의 외침에 두 기사가 자빠진 마차에서 뛰쳐나왔다. 바로 그 순간──
두 사람이 뛰어오른 경로에 설치된 수폭. 막대한 물의 압력이 폭산하며 두 사람을 튕겨 낸다.
“큭··· 마법사? 혁! 마법사의 위치를···!”
“시가지야! 건물 어디에 숨어있을지 몰라! 일단 화란 그 녀석부터···!”
두 사람이 판단을 내리기 무섭게 펼쳐지는 선홍빛의 결계. 피의 권역은 사진혁을 포함한 세 사람을 마적단과 완벽히 분단시켰다.
“뭐야, 이게?”
“결계?”
그들은 알지 못한다. 마인 중에서도 특히나 희귀한 흡혈귀. 그것도 피의 권역을 다룰 수 있는 장로급 흡혈귀가 가진 힘에 대해서는 생소할 수밖에.
“흐하하하! 작전 성공입니다, 형님!”
“이만하면 됐다! 가즈아!”
“가즈아!”
바햐흐로 임모탄 로크의 귀환이었다.
·········
······
···
‘으음······.’
코린을 도와 권역으로 보라매의 세 사람을 격리시킨 마리에는 예상외의 사태에 당황했다.
“설마··· 권역을 뚫을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니······.”
본래라면 1시간 정도는 묶어둘 생각이었지만, 상가건물을 통해 내려다본 세 사람이 권역에 무언가를 했다.
정확히는 강륜이 무언가를 벌였다.
그가 쥔 부채가 쫙 펼쳐지며, 사방에 뱀꼬리 거북이, 흰무늬 호랑이의 기물이 세워지더니 권역에 일시적으로 작은 구멍을 내버린 것이다.
“유화.”
“제가 쫓겠습니다.”
마리에가 화들짝 놀라며 권역을 보수했지만, 그 찰나의 틈을 타 강유화가 권역을 빠져나왔다.
자신은 여기서 더 나설 수 없다. 코린이 신신당부한 일이었으니까.
‘코린··· 조심해.’
* * * *
“뭐라고요?”
메르카바의 치안 경비대로부터 긴급보고를 받은 조제핀은 얼척이 없어 되물었다.
“나, 납치사건입니다.”
“······누가 누구를요?”
“5분 전, 정체불명의 마적단이 보라매의 귀빈들이 탄 마차를 급습. 화란이라는 학생을 납치했다고 합니다.”
“······.”
조제핀은 치안 경비대원을 물러나게 한 뒤, 수석교수실의 사무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뭐 하는 지랄인데?”
조제핀 여사 근 삼십오년 만의 욕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