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Killed the Play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86
입동(1)
[내가 봤어! 내가 다 봤다니깐!]격한 감정의 파도 탓인지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지만, 중요한 의미는 전달됐다.
평소였다면 아빠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니? 하고 타박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덕구야.”
[!!!!]확실히 짐승은 짐승인지, 저변에 깔린 어미의 음성에 움츠러드는 김덕구 1세.
“처음부터. 끝까지. 천천히. 하나하나. 곱씹어서 말해봐.”
보통 어린애가 부부싸움에서 엄마 편을 드는 경우가 많다지만, 덕구의 경우엔 아빠 편을 들 생각이 무한수인 나유타 분의 일조차 없다.
덕구는 흥분하며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쳤고, 마리에는 부들부들 떨며 감자를 삶았다.
“그, 그러쿠나. 그러쿠나아······.”
청천벽력 같은 아빠의 외도. 아니, 일방적으로 당한 것에 가까우나 그렇게 싫은 티도 내지 않았다···, 고.
물론 마리에 듀나레프는 퍽 이성적인 편이다. 자신이 코린 로크와 정식으로 교제하는 사이가 아님을 안다.
‘그치만! 그치만···!’
정식으로 사귀지만 않았지, 할 건 다 하지 않았는가?
물론 그것이 조금 야릇한 포식행위였음을 알고 있지만, 마리에에게··· 흡혈행위는 각별한 의미를 가졌다.
마리에는 코린 외에 다른 사람의 피를 빤 적도 없고 빨고 싶지도 않다. 흡혈 행위의 생리적인 거부감이 오직 그에게만은 적용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주기적으로 행하는 이 행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건 당연하다.
“방심했어···!”
그것이 통한의 실책이다. 자신에게 그가 특별하듯, 그에게도 자신이 오롯이 특별한 사람이라는 자만을 하고 말았다.
이전부터 코린의 주변에는 여성들이 많지만, 그들이 자신의 경쟁자라곤 생각지 않았다.
아리샤 아덴은 코린에게 명백한 호의를 보이고 있지만, 그건 친구에게 향하는 것에 가깝다.
화란도 지금까지 덤덤한 태도를 고수했고.
코린 로크의 인간관계는 넓게 펼쳐져 있지만, 그 안에서 자신의 위치는 독보적이었을 터.
실제로 그가 가장 의지하고 먼저 부탁해오는 대상이 자신임을 생각하면 무난하게 기정사실이 될 터인데.
‘설마 화란이··· 화란이 그렇게 나올 줄은 몰랐어···!’
골대에 골키퍼가 있다고 해서 골이 안 들어갈 거라 착각한 셈이다. 설마 이중인격··· 그것도 코린에게 이렇게까지 적극적인 존재가 생겨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안녕하세요. 오빠.」
이 말에 뻑갔단다. 아주 헤실헤실 쳐웃는 것이 경악스러울 정도였단다, 라는 덕구의 과격한 증언.
덕구의 거친 언변에 대한 지적도 잊은 채, 마리에는 요망하기 짝이 없는 새 식구의 언변에 집중했다.
“오빠······.”
그래, 코린이 오빠 소리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긴 했다.
마리에가 보기엔 어른스러워서 좋은 인상이지만, 어쨌든 또래보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인상과 행동거지 탓에 고대하던 그 호칭을 듣지 못했지.
하지만 그렇다고 오빠 소리에 그렇게 넘어가 버리다니! 마리에는 배신감에 어깨를 부들부들 떨었다.
오빠에 이어 ‘지아비’. 합법적으로 두 명? 이 표현에는 가당찮았다.
결혼이 어디 할인매장의 원 플러스 원인가? 행사처럼 떨이를 주게?
“난··· 감자 농장하고 다이아 광산도 줄 수 있는데······”
제 명의의 다이아 광산이 세 개쯤은 있었을 것이다. 제일 채산성이 좋은 광산이 이번에 그가 여관으로 벌어들인 총수익의 97배 정도였나.
돈 욕심이 아예 없는 건 아니던데, 이거 하나 선물하면······.
“아니아니. 아니야. 이건 너무 속 보이잖아···!”
그녀가 바라는 코린과의 관계는 그런 계산적인 것이 아니다. 좀 더 알콩달콩하고 단내가 풀풀 풍기는 로맨스의 그것이다.
느닷없이 치타처럼 나타난 경쟁자만 아니었어도 무난하게 쟁취했을 텐데!
“안 되겠어. 특단의···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 해···!”
화란처럼 과감한 행동을 한다? 그것도 방법일 것이다. 하지만, 훨씬 과격한 행위를 전부터 하고 있다. 과연 그게 해답일까?
도움이 필요하다.
마리에 듀나레프.
태어나서 잡아본 남자 손이라곤 아빠와 남동생들 외에 없는 규중처녀에게 연애 문제란 헤쳐나가기 어려운 주제다.
‘······상담할까?’
다행이라면 그녀에게는 친구가 많다. 최근 한 사람에게 특별히 친절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사랑받는 소녀.
친구들에게 연애상담을 하는 건 어렵지 않으리라.
“안 돼! 들킨다구!”
그러나 소녀의 감성이 그것을 허락지 않는다.
사실 그녀 주변의 이들은 마리에의 연애 전선에 대한 낌새를 진작 눈치채고 있었지만, 어쨌든 이 소녀는 자신의 비밀스러운 썸이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았다고 근거 없는 자신에 휩싸여 있는 것이다.
고로 정보누출은 있어선 안 된다.
그럼 누구에게 상담해야 할까?
친구들은 안 된다고 못 박았으니 차치하고 그럼?
후보군으로 당장 기숙사 사감이기도 한 조제핀 클라라 여사가 떠오른다.
어른의 매력을 듬뿍 쏟아내는 그 미녀 교수님이라면 자신의 상담에 원숙한 조언을 해줄지도 모르지.
‘음··· 쫌 아니다.’
그러나 조제핀 클라라. 병 없이 하늘이 내려준 나이라는 상수(上壽) 100세를 넘어 방년 17세.
역사책에서도 나오는 위인이지만, 아카데미 내에서는 은밀하고도 새삼스러운 별명으로 불린다.
노처녀.
남자 손 한 번 못 잡아본 레전더리 골드미스.
연애 문제에 관해서 무언가 물어볼 상대는 결코 아니다.
“으으······.”
그럼 대체 누구에게 물어본단 말인가? 부모님? 아니, 절대 아니다. 이미 여름방학 때의 전례가 있다.
아빠는 쌩난리를 피웠고, 엄마에겐 침대에 깔아 눕히면 모든 게 자연스레 해결될 거라는 말만 들었다.
극과 극으로 나뉜 조언은 도움이 안 된다.
“좀 더··· 연애경험이 많고··· 남자 마음을 잘 아는······.”
문득, 뇌리에 기가 막히는 상대가 떠오른 마리에. 하지만 이내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나.
“아니아니, 그래두··· 그래두 이건······.”
대체 얼마나 쇼킹한 상대가 떠올랐기에 이리도 격하게 반응하는가.
자존심과 위엄 모든 게 망가지는 상담 상대. 하지만 결코 정보가 새나가지 않으며 풍부한 연애경험을 가진 난봉꾼.
“컹?”
김덕구 1세.
최근 아카데미 부지 내 길 강아지 사이에서 질펀하고 시끄러운 소리로 민원이 들어올 정도로 청춘을 구가하는 난봉견.
이런 부분은 또 아빠를 닮아서 문란한 사생활을 누리고 있는 혈통적 자식을 향해 시선을 향하는 마리에.
“그··· 덕구야?”
“컹?”
“수, 수컷이 좋아하는 게 뭔지 알아?”
[섹──]“그런 거 말구! 건전하게! 평범하게 좋은 거!”
[············.]그 말에 덕구는 잠시 고민하더니 아! 하고 떠오른 것을 가감 없이 말했다.
[뼈다귀.]이 조언을 써먹을 기회는 그리 멀지 않아 찾아왔다.
* * * *
다사다난했던 페스티벌도 끝이 나고 아카데미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후······.”
주말 아침. 식당에는 동거인 세 명과 식사 중이다.
조제핀 클라라 여사.
마리에 듀나레프.
화란 등.
특급 마인인 화란을 따로 관리하기 위해 지어진 이 기숙사에 내가 살게 된 것은 마리에의 전담, 이라는 느낌이지.
최근에는 화란까지도 내가 전담한다는 느낌이 되어 넷뿐인 기숙사의 부사감 노릇을 하는 것이다.
“뒤뜰 청소나 좀 할까요?”
달에 금화 다섯 장을 추가로 받는 만큼, 성실함을 어필하자.
“뒤뜰 청소··· 입니까?”
조제핀 여사의 반응에 내가 말을 잇는다.
“낙엽이 많이 떨어졌으니까요. 깔끔하게 치우고 겸사겸사 낙엽으로 군고구마 구워 먹으면 괜찮을 거 같은데.”
“응응! 낙엽에 구워 먹는 감자는 별미야!”
“군고구마요, 선배.”
“감자도 맛있어!”
“······.”
조제핀 여사는 잠시 고민하는 눈치였다. 이걸 학생에게 시켜야 하는가, 하는 그런 고민.
이 기숙사가 지어지고 내가 전입하기 전에는 모든 관리를 조제핀 여사가 했다는 모양이다.
이 특별 기숙사는 여러모로 숨기는 게 많다. 특급 마인을 상주시키기 위한 기숙사인 만큼, 외부인의 침입을 기본적으로 금한다.
청소를 담당하는 몇몇 아주머니들이 있지만, 그녀들에게 낙엽청소까지 시키는 건 또 별개의 문제.
“······저는 지금부터 교무회의가 있어서 돕지 못합니다만, 다음 주말에 어떤가요?”
“그때까지 쌓이게 두는 것도 뭣하죠. 그냥 제가 할게요.”
“저도 도울게요!”
“······나도.”
“화란은 안 됩니다. 교무회의가 끝나고 저와 함께 초빙한 영환술사를 만나야 해요. 금계의 부적을 보강해야 하니까요.”
“······.”
“와, 그럼 어쩔 수 없네! 나랑 코린이랑 단둘이서 할 수밖에!”
“마리에 선배는 쉬어도 괜찮은데요.”
“아니아니, 그럴 수는 없지! 코린 혼자서 일하게 하면 미안하잖아! 그리고 덕구도 도울 수 있구!”
덕구만 있어도 괜찮긴 하겠지만, 뭐··· 노동력이야 많아서 나쁠 게 없지.
············
·········
······
스윽, 스윽 낙엽잎을 쓰는 대빗자루 소리가 바닥을 긁는다.
붉은빛의 적양을 뽐내던 가을의 상징들이 시들어 떨어진 정원은 모래사막의 사토가 밀어닥치는 모양새다. 쓸어도 쓸어도 쉽사리 끝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도 없다. 11월. 슬슬 쌀쌀해지기 시작했고, 곧 겨울이 찾아오겠지.
그때가 되면 벙어리 장갑이라도 끼지 않으면 작업이 진행되지 않을 거다. 장갑을 낀 손으로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고.
“후우~”
그래도 함께 일하는 사람이 있어 다행이다. 마리에는 고사리 같은 손으로 익숙한 듯 쓸어모은 낙엽을 봉투에 담아간다.
아침 10시부터 2시간. 나나 마리에나 페이스가 흐트러지는 일 없이 묵묵히 일하고 있다.
“덕구야! 연못에 있는 잉어 먹으면 안 돼! 혼날래?!”
비양심적인 참가자 한 명이 겨울에 얼어붙을 연못에서 잉어를 구출하는 게 아니라 먹어 치우려고 하는 걸 말리는 일도 있었다.
“컹···!”
싱싱하고 팔딱팔딱 뛰는 잉어를 물어뜯지 못하는 게 불만스러운지 하울링을 터뜨리는 덕구.
“나중에 내가 참치 한 마리 사주마.”
극적인 협상으로 잉어들의 생명이 연장된다. 미리 준비된 수조에 잉어를 집어넣자 마리에가 연못 앞에 서 있었다.
“연못도 청소하려고요?”
“응. 이왕 하는 김에.”
“쉽지 않을 텐데······.”
“그렇지도 않아!”
마리에는 지팡이도 없이 손짓으로 마법을 구사하더니 연못 안에 있던 물들을 죄 끌어 올렸다.
조금 전까지 연못 안을 가득 메웠던 물들이 이제는 한 방울도 찾아보기 힘들다. 이라는 마법이었던가.
“농업용수를 끌어다 쓰는 저수지 관리도 왕왕했었거든. 배수로 연결작업 할라구. 그거 알아? 저수지 물을 끌어 올리면 그 안에 온갖 생선들이 있다?”
그날은 온 마을 사람들이 생선으로 포식하는 날이라며 소녀는 흔치 않은 농가의 경험담을 푸는 것이다.
“후~ 이만하면 다 된 걸까?”
장장 세 시간. 덕구라는 큼직한 지원군의 도움도 있어 정원의 정리는 연못까지 깔끔하게 완료된 것이다.
“그럼······.”
“응. 준비됐어.”
광주리에 수북이 쌓인 감자와 고구마.
약속이라도 한 듯 빠르게 모닥불의 준비를 마친다. 낙엽을 모아오는 건 내 역할. 불을 붙이는 건 마리에의 마법.
“헤헤, 맛있겠다.”
“컹!”
우리들은 낙엽으로 만든 모닥불에 쭈그리고 앉아 따뜻한 온기를 쬐었다.
“아리샤나 라크 녀석들도 부를까요?”
“으웅··· 다들 점심 먹고 있지 않을까?”
“그럴 시간이긴 하네요. 감자도 감자지만 하는 김에 밥도 먹을까요?”
과식이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들은 기본적으로 초인이다. 신진대사가 일반인들하고 비교할 수준이 아니지.
당장 가녀린 마리에도 보통 사람보다 2배는 너끈히 먹는다. 흡혈귀가 된 이후론 더더욱 먹성이 좋아졌지.
“덕구는······.”
“덕구는 따로 양목뼈 줄게. 그거 좋아하거든. 내가 밥해올 테니까 기다려!”
빨딱빨딱 뛰어가는 마리에. 그 모습을 지켜보며 나는 감자와 고구마를 모닥불 사이로 집어넣었다.
“컹···!”
타닥타닥하며 타는 낙엽 더미 앞에서 나와 덕구는 그것을 멍하니 바라봤다.
“소금 뿌려줄까?”
“컹!!”
소금 말고 설탕, 라는 모양이다. 마리에와 달리 마력패스가 연결된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이 녀석의 말이 읽힌다.
우스갯소리로 아빠를 자처하지만, 이 녀석과는 나름의 유대가 느껴진다. 어찌 됐건 이 녀석의 몸을 이루는 피는 대부분 나한테서 나온 거니까.
“맞다, 덕구 너. 최근에 옷 입고 다니더라?”
그 증거로 당장 눈앞에 있는 녀석의 차림새는 묘하게 귀여운 「I LOVE POTATO」 라는 글씨가 적힌 몽티조 브랜드의······.
“몽티조?!”
그··· 지구로 치면 구찌 같은 명품 브랜드다. 그 옷을 얘가 왜 입고 있어?!
“더, 덕구야··· 그 옷은 뭐냐?”
“컹?”
덕구만한 덩치의 옷을 팔 리가 없다. 그러니까 오더 메이드라는 건데··· 그, 그게 가능한 건가?
지구로 치면 구찌에 가서 내가 입게 옷 한 벌 지어봐. 아이 러브 포테이토라고 적어서··· 수준인데?
도대체 옷 한 벌에 얼마나 쓴 거야··· 하는 걱정이 들었지만, 마리에의 집안을 생각하면 푼돈이려나, 하고 넘어간다.
-타닥타닥!
슬슬 감자와 고구마가 익어가는 가운데, 담벼락 너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이~! 있냐?”
라크의 목소리다. 지나가다 들렀나 보다.
“어여 들어와! 감자하고 군고구마 한두 개 정도는 챙겨줄 테니!”
잠시 후, 대문을 통해 더벅머리 소년이 걸어왔다.
“청소했네? 군고구마?”
“감자도 있어.”
태연하게 모닥불 앞에 서는 라크. 자연스럽게 덕구에게도 인사를 건네지만, 퉁명스럽게 고개를 홱 돌리는 덕구였다.
라크는 엉덩이가 더러워지는 게 신경 쓰였는지, 낙엽들을 모아 로브를 깔고 방석처럼 깔고 앉았다.
“점심 먹었냐?”
“어. 예거하고 먹었어.”
“그래? 예거는?”
“요즘 썸 탄데.”
“오, 누구?”
“메이아 양. 뭐, 본인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지만.”
“혈기왕성하네.”
그나마 썸이란 걸 타보려는 예거. 그에 반해 라크는 시큰둥하다.
“너는 뭐 없냐?”
“공부하느라 바빠.”
이 녀석, 범생이니까. 활동적인 기사들과 어울리느라 나돌아다니기 일쑤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공부하는 데 쓰고.
“그보다 너는?”
“응?”
“여자애들하고 한 지붕 안에 살잖아. 그럼 정해진 거 아니야?”
“너도 참 진부하구나.”
그야 두 소녀가 매력적인 이들이긴 하다. 최근 적극적으로 들이대는 란을 보자면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고.
“뭐, 지금은 좀 할 일이 많아서.”
연애에 흥미가 없는 건 아니지만, 역시 시기가 좋지 않다. 3년이라는 타임 리미트가 걸린 상황에서라면 더더욱.
그런 나를 보며 라크는 한숨을 토해내면서 고개를 푹 숙이는 것이다.
“건전하네.”
“건전하지.”
마리에의 흡혈행위를 제삼자가 본다면 그렇게 말하진 않겠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긴급피난행위다.
“그런데 진짜로 아무런 생각 없어?”
“······그럴 리가 있겠냐.”
마리에가 목덜미를 물때는 묘한 흥분감이 치솟고, 닿는 면적이 너무 넓다.
흥분한 마리에가 꾹꾹 눌러올 때면 솔직히 반응을 안 할 수가 없지.
“최근에는 화란하고도 가까워진 모양이던데. 뭐, 애초에 화란한테 말 거는 건 너밖에 없었지만.”
“말하자면 길어.”
화란의 또 다른 영혼에 대해서는 공표되지 않았다. 란의 존재에 대해서 굳이 숨길 필요는 없지만, 그걸 밝히는 건 내 역할이 아니지.
“뭐··· 너 하는 거 보면 연애할 시간이 없다는 게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내 일정표를 아는 라크는 납득하고 넘어간다. 체단실에서 단련과 창술 연습을 하는 걸 아니까.
이래저래 지금의 난 연애라는 걸 할 틈이 없는 것이다.
그렇게 구운 감자와 군고구마를 꺼내 라크 몫을 넘겨주는데, 썬룸의 유리문을 열고 마리에가 나타났다.
“코린~ 밥 다 됐··· 어라, 라크구나?”
“안녕하세요, 마리에 선배님.”
“너무 딱딱하게 굴지 마. 밥 먹었어?”
“넵. 감자하고 군고구마 몇 개 챙겨가도 괜찮을까요?”
“그럼! 생으로 몇 포대 줄까?”
“아니, 그건 좀······.”
사양하며 군고구마와 군감자가 든 봉투를 챙겨가는 라크.
“덕구야, 감자하고 고구마 먼저 먹고 있어! 코린, 먼저 밥부터 먹자!”
조금 늦은 점심이지만, 우리는 썬룸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오늘 점심은 뭐예요?”
기숙사에서 식사를 담당하는 건 나와 마리에다.
조제핀 여사야 워낙 바빠서 아침을 간간히 돕는 정도고 화란은··· 란은 모르겠고 화란이 요리를 하는 모습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응, 지난번에 코린이 다 잘 먹는다고 했잖아. 그래서 이번에는 동방에서 전해져온 특식···!”
그러고 보면 예전에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벌레나 혐오식품으로 분류되는 것들도 잘 먹느냐고.
아 없어서 못 먹는다고 했지. 메뚜기 튀김이나 번데기도 잘만 먹었는데, 여기선 안 보였으니까.
“그··· 내가 오랫동안 연구한 거야. 코린 주려고!”
“도대체 뭐기에······.”
-쿵!
썬룸의 식탁 위에 놓이는 돌솥 그릇. 흔히 된장국류의 국 요리를 담는 그릇이다.
고춧가루와 소기름 국물에 우거지와 콩나물을 끓여 넣은 매운 우거짓국. 여기에 특별한 재료를 넣어 완성되는··· 추억의 요리.
“그··· 우리 목장에서 직원 아저씨들이 해 먹는 요리야. 코린이 좋아할 것 같아서······.”
좋아하다마다. 그, 마포갈비라고 아시나? 내가 그 고깃집을 20년을 다녔는데, 꼭 서비스로 된장국이 아닌 이 국 요리를 주었지.
“어, 어때? 건강만점 영양만점 특제 ‘선짓국’이야······.”
몸을 배배 꼬며 움츠러드는 마리에. 본인도 이건 아닌가, 싶은 자신감 없는 반응이지만.
“저 선짓국 완전 좋아합니다. 어떻게 아셨대!”
백반 정식처럼 내온 동방식 스푼을 들어 선짓국물을 떠먹었다. 붉고 선명한 소기름국이 따뜻하게 몸을 뎁혀준다.
“크~ 시원하다.”
얼큰한 국물맛이 식도를 자극한다. 숟가락으로 툭 베어 자른 선지는 블랙푸딩 같은 색을 띄고 있다.
“그··· 피로 굳혀 만든 거라 좋아할지 모르겠네.”
“에이~ 없어서 못 먹죠. 이 부드러운 덩어리가 맛있는 건데요.”
“그, 그래? 다행이다! 어서 먹어봐!”
마리에의 재촉과는 관계없이 나는 이 선짓국에 매료됐다. 선지 특유의 미끌미끌한 식감과 잘 베어 들어간 후추와 소금. 여기에 소기름 우거지국물까지.
“완전 맛있──”
-띠링!
[특급 피의 영약을 섭취하셨습니다.]※ 특별한 재료를 사용한 영약입니다.
– 괴력(怪力)을 습득합니다.
– 근력이 30포인트 상승합니다.
어? 뭐야? 이게 왜 지금 떠?
자르륵, 씹히는 선지. 꿀꺽 넘기자 생강을 넣어 비린내를 잡은 고소한 냄새가 스물스물 올라온다.
“선배······.”
“응?”
어째선지 상기된 붉은 뺨이 어색하게 씰룩거린다.
그렇기에 직감한다. 가능성을 깨닫고 만다. 이 선지를 만드는데 사용된 동물의 피는 돼지나 소가 아닐 거라고.
하지만 동시에 내 눈에 들어온 시스템 메시지가──
– 괴력(怪力)을 습득합니다.
– 근력이 30포인트 상승합니다.
미친··· 미친미친미친미친······! 누나, 사랑해요!!
==============================
【괴력(怪力)】
– 일시적으로 ‘근력’을 200% 상승시킨다.
– 다른 버프와 중복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