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Killed the Play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87
입동(2)
“화란. 아무래도 먼저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영환술사와의 만남은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미리 준비해둔 부적을 쇠사슬에 착, 하고 붙이니 끝이다.
란 덕분에 정신을 안정시키는 부적은 그리 필요하지 않게 된 덕분이다.
애초 금계의 핵심은 신교의 쇠사슬. 성녀의 기도로 강제되는 이 ‘지온의 쇠사슬’이었으니까.
“회의?”
“네, 데려다드릴까요?”
“······응.”
평소라면 화란은 대충 뛰어가겠다고 하고 말았겠지만, 오늘은 어쩐지 1분이라도 빨리 기숙사로 돌아가고 싶었다.
‘빨리 가면 오빠하고 같이 점심 먹을 수도 있을 거야!’
란의 보챔은 그녀의 의사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았다. 적어도 화는 그렇게 생각했다.
-지이이이잉!
기숙사의 코앞. 조제핀의 공간마법으로 훌쩍 뛰어내린다.
“들어갈게.”
“네, 저도 저녁 전까지는 들어올 겁니다.”
다시금 공간이 열리며 사라지는 조제핀.
‘가자가자!’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평소보다 1.3배 정도 빠른 보폭으로 걷는 화란.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뒤뜰에서부터 풍기는 구수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감자.”
‘가보자!’
저벅저벅, 청소가 끝난 뒤뜰에는 밟히는 낙엽이 없다. 코린과 마리에 둘이서 청소를 깔끔하게 끝낸 모양.
현관문을 거치지 않고 뒤뜰에 도착한 화란은 낙엽으로 피운 모닥불에서 감자를 굽는 거대견인을 볼 수 있었다.
-컹.
자신을 발견하고 짤막한 소리를 내는 덕구. 이내 화란의 시야에 썬룸 너머가 보이기 시작한다.
‘······.’
유리창 너머, 익숙한 실루엣의 두 사람이.
코린 로크와 마리에 듀나레프가.
서로를 부둥켜안고 바짝 밀착해 있다.
“······.”
화란은 가만히, 뒤뜰에서 그 모습을 지켜본다.
서로의 심장 소리가 들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맞닿은 가슴.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은 물빛머리 소녀가 헐떡거리는 숨소리를 내며 소년의 목덜미를 탐닉한다.
소년은 어깨를 토닥이며 꾹꾹 눌러오는 소녀를 끌어안는다.
그것은 얼마나 특별한 행위인가.
저러한 행위를 망설임 없이 행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유대와 시간을 쌓아 올렸을까?
‘······흡혈이야. 평범한.’
“······.”
알고 있다. 마리에 듀나레프의 종족적 특성상 흡혈행위가 필요함을.
특히 인간의 생피를 흡혈하는 행위가 힘의 축적과도 연결되기에 재생능력이 탁월한 그의 피를 빌리는 것쯤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해와 납득은 다른 영역이다.
필요성과는 별개로 그것이 비겁하다고 느껴졌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
화란은 멍한 사고로 느릿하게 그 모습을 지켜본다. 맞닿아서 그를 탐닉하는 소녀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다.
같이 찾아보자고 했으면서.
도와준다면서. 함께해준다고 했으면서.
안다. 알고 있다.
이 오지랖 넓은 소년이 선의를 베푸는 대상은 자신뿐이 아니라는 걸.
그러한 선의가 흡혈귀 소녀에게도 향한 것일 뿐.
알고 있는데, 욱신거렸다.
자신만이 특별하다는 오만을 가졌던 걸까.
애초에 왜 두 사람의 모습에서 가슴이 욱신거리는 걸까.
이해하지 못한다. 화(火)는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위태롭게 그 모습을 지켜볼 뿐이다.
그리고.
마주친다.
흡혈귀 소녀의 붉게 물든 요사스러운 시선이 저와 교차했다.
상대방도 제 존재를 눈치챘다.
마리에의 시선이 화란을 향한다. 그 붉은 시선에 가득 찬 것은 ‘너와 난 다르다’는 과시욕.
입가에 묻은 피를 혓바닥으로 훔쳐내며 아직 피가 멎지 않은 목덜미를 할짝거린다.
교차하는 붉은 시선들.
길게 찢어진 날카로운 시선은 선후배를 보는 시선은 결코 아니었다.
* * * *
정보업이라고 하면 인텔리한 엘리트들의 집합체일 것 같지만, 실상은 거리가 멀다.
귀중한 마법사와 마법사 간의 통신마법 정도가 원거리 통신의 전부인 이 세계에서 정보란 사람의 발품과 손때를 타야 하는 것.
이러한 정보들의 1차적인 수집처는 정보요원 같은 게 아니라 술집 작부들이다.
입이 굳은 사람들도 작부들 앞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입을 떠벌리기 마련이니까.
“언니···!”
사각사각, 리듬 좋게 움직이던 만년필이 멈춘다.
“뭐냐.”
술집 점원이라기에는 날카로운 이지를 담긴 여성. 레냐 클레어는 사무실에 들이닥친 접대원에게 시선을 보냈다.
“호구요! 호구 잡았어요!”
호구. 도박판의 돈 많은 개미를 말한다.
본디 술집이란 여러 가지를 겸하는 법. 매춘업이나 도박판 등이 형성되는 건 자연스럽다.
하지만 뒷골목의 술집이란 건 기본적으로 음지여서 돈 많은 귀족 나으리나 상인들은 저들만의 사교장에서 노니는 법이다.
즉, 귀족의 하우스가 아닌 뒷골목 술집에서 도박판을 벌일 돈 많은 호구라면······.
“가디언?”
“기사인 것 같던데요?”
“골치 아픈데. 적당히 따고 적당히 잃어줘. 접대 모드로 가라고.”
기사란 것들은 말 그대로 초인이다. 주먹질 한 방으로 성인 남성의 머리통을 날려버릴 수 있는.
돈 잃었다고 난동이라도 부리다간 뒷골목 건달들로는 감당이 안 되는 것이다.
“저······.”
“뭔데?”
“이미 금화 주머니를 털었어요.”
“······.”
오케이. 이렇게 되면 그 호구 양반이 점잖은 성격이길 바랄 수밖에.
-콰앙! 콰지이익!
-사장 나오라 그래애애애···!
망할.
오늘 재수가 옴 붙었나 보다. 레냐는 한숨을 쉬며 사무실을 나왔다.
“혹시 모르니까 렌, 론 남매를 데려와.”
최근 ‘장기의뢰’로 맡게 된 늑대수인 남매들을 가르치는 중이었다. 기본적인 잠입이나 정보수집 등을 가르치라 들었지만, 이 정도 일에는 써먹어도 되겠지.
레냐는 지하의 불법 하우스로 향했고, 그곳에서 난동을 부리는 기사라는 작자를 볼 수 있었다.
“내가 누군 줄 알고! 어! 니 내가 누군 줄 아나! 마···! 내가 느그 사장이랑 이캉내캉 마! 다 했엄마!”
“아악, 선생님, 이 손 좀 놓으시고···!”
확실히 기사는 기사였다. 그것도 레냐가 아는 기사.
야성적인 인상의 꽁지머리 소년. 얼핏 보면 청년으로밖에 보이지 않기에 나이를 의심하는 이들은 없었나 보다.
“······대체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아카데미 학생이기도 한 코린 로크. 그는 레냐가 하우스에 손님으로 위장시킨 전문 타짜의 손목을 붙잡고 난동을 피우고 있다.
“하아··· 모셔와라.”
“어어. 언니? 저 갔다가 맞아 죽으면요?”
“됐으니까 모셔오라고. 내가 불렀다고 해.”
잠시 후.
“어이~ 레마담. 신수가 훤혀?”
“하아··· 미성년자가 드나들 곳이 아니야, 보스.”
레냐 클레어. 정보 길드의 초급 간부.
현재는 공로를 인정받아 중급 간부가 된 그녀의 보스라면 정보길드의 길드장을 말할 것이다.
하지만 코린 로크는 정보길드의 직원도 간부도 아니다. 메르카바 아카데미에 재학 중인 잘나가는 네임드 기사일 뿐.
그럼에도 레냐는 코린 로크를 보스라 부르고 있었다.
“사업장 차렸다기에 구경 좀 왔지. 쓸만했지? 내 정보는.”
“그래, 서부 마뇨시카 백작의 비밀스러운 여장 취미나, 명망 높은 장인 키리 더 레이디버그의 장비 강화 사기극··· 같은 것 말이지.”
8월 즈음부터 접촉한 코린 로크는 그녀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길드의 대간부까지 오를 수 있도록 귀중한 정보를 알려줄 테니, 자신의 3년 동안 자신의 수족이 되어라.
정보로 정보를 산다. 그러한 개념에 가깝지만 레냐로서는 다소 당황스럽다.
코린 로크가 가져온 정보들은 하나 같이 1급이나 2급으로 분류될 정도로 가치 있는 정보들.
그러한 정보들이라면 정보길드의 대간부들 상대로도 딜을 할 수 있을 텐데.
왜 자신을 처음부터 키워서 정보길드의 요직에 앉히려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중급간부 정도면 어느 정도의 권한이 있는데?”
“이 도시에서라면 어지간한 정보는 모두 접근할 수 있어. 가령··· 조제핀 클라라가 비밀리에 후원하고 있는 테디베어 장인이라던지?”
“그건 이미 알고 있어.”
“······준1급 정보였는데.”
역사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준특급 마법사 공간의 마녀의 사생활 정보다. 그걸 이자가 어떻게 아는 건지 영문을 모를 일이다.
“공로를 높일 추가 정보다. 너희들 기준으론 최소 1급, 잘하면 준특급 정보지 않을까 싶네.”
“······진심이냐?”
“왕실 공무원 에드나 4급 사무관. 성은 일루산이야.”
“평범한 사무관이잖아?”
“그 사무관이 왕실 고위 공무원 십수 명과 귀족들까지 지배하는 SM여왕이라면?”
“·····················.”
침묵은 길었다. 이 바닥에서 말하기 어려운 성벽을 가진 자들의 정보는 쉽게 접할 수 있지만, 이건 차원이 다르다.
고위 공무원과 귀족들을 채찍질하는 도미넌트라니?
이건 엄청난 스캔들이고 접근하기에 따라서 무궁무진한 사용법이 있다. 이게 사실이라면 당장 그 높으신 양반들을 ‘협박’할 수 있는 재료가 될 테니까.
“이게 사실이라면······.”
“사실이고 말고. 내가 직접 겪어봤거든.”
“뭐?”
“암표범 같은 여자였어. 진짜 잡아먹힐 뻔했다고.”
“······보스는 정말 뭐 하는 사람이야? 이만한 정보를 알아낼 정보력이라면 내가 필요하긴 한 건가?”
“아는 것만 알아. 아는 것만.”
레냐는 일단 이 충격적인 정보를 머릿속에 기억해뒀다. 이만한 정보라면 혼자 독식해야 한다. 윗선에 보고하지 않고 혼자 먹어서 소화해야지.
“이 정보. 공식적으로 보고해.”
“······왜지? 이건 혼자 먹어야 이익이야.”
“그렇지도 않아. 너는 이 정보를 보고한 공로만 인정받아. 이걸 이용하는 건 다른 녀석이 하면 돼.”
“아까운데······ 이유는?”
“상대는 고위 공무원과 귀족까지 채찍질하는 말 그대로의 여왕이야. 어설프게 접근했다간 박살 나지.”
높은 확률로 정보길드도 풍비박산 날 거라며 소름 끼치는 예언을 하는 코린.
“그렇군. 그만한 일이 터지면 대간부들도 갈려 나갈 테고······.”
“그 자리를 네가 채워야지.”
“크레이지한 보스야. 그래서··· 그렇게 나를 대간부로 올려놓고 원하는 정보가 뭐야?”
“지금 단계에서는 접근도 못 할 정보야. 일단 지금 내가 시키는 거나 해둬.”
“좋아, 그러고 보니 공식적으로 ‘가디언즈’ 신청서가 왔던데.”
“내가 유령상단 하나 만들어두라고 했지? 명목상으로는 네가 우리 가디언즈의 보급 담당관이야.”
“나와 보스의 관계를 의심할 텐데?”
“의심하라고 한 거야. 넌 공식적으로 내 보호 아래 있다는 증거지. 사실 내 끗발만으로는 조금 불안한 감이 있긴 한데.”
“마리에 듀나레프. 남부 감자제국의 적장녀. 그녀가 있는 가디언즈의 소속원을 건드릴 바보는 없어.”
“망할, 왜 나만 모르고 있었던 거지? 정보의 편향성이 이런 데서······.”
통한의 한탄을 터뜨리는 보스. 설마 마리에 듀나레프가 그 감자제국 듀나레프라는 걸 몰랐을 리는 없으니 자신이 모르는 뭔가가 있겠지.
“······무슨 소리야?”
“별거 아니야. 이번에 부탁할 건··· 동부 쪽 정보인데.”
────
잠시 후, 코린은 사무실을 나가려 일어섰다. 레냐는 그가 준 정보를 정리하고 그의 지령을 충실히 수행할 것이다.
“맞다.”
“또 뭔데?”
“타짜들 교육 좀 다시 시켜. 밑장 빼는 소리가 너무 컸어.”
“나가라 좀.”
“나한테 딴 돈으로 비용처리하고!”
“······.”
* * * *
심야, 조제핀은 취침시간에 맞춰 단장을 정리했다.
묶은 머리를 풀고 편한 란제리로 갈아입은 그녀는 화장대 앞에서 메이크업을 정리하는 것이다.
일상의 마무리. 잠자리에 들기 전 마지막 일상을 수행하고 있던 찰나였다.
-똑똑
누군가가 방문을 두들겼다. 문을 두드리는 단단한 소리에 코린 로크인가, 싶었지만 그 친구는 오후에 외박 신청서를 내고 아카데미를 나간 상태다.
“마리에 학생?”
“······나야.”
목소리의 주인은 의외의 방문자였다. 그도 그럴 게, 이 소녀는 금년도에 단 한 번도 자신의 방을 방문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들어오세요.”
같은 여성이니 굳이 맨살을 가릴 필요도 느끼지 않은 조제핀은 소녀의 방문을 허락했다. 깐깐한 사감 선생이긴 해도 밤에는 느슨한 셈이다.
-끼익
화란은 문을 열고는 성큼성큼 방 안으로 들어왔다. 평소의 수녀복과는 다른 귀여운 파자마 차림이다.
“별일이군요. 당신이 이 시간에 방문할 줄이야. 란의 부탁인가요?”
“······아니.”
화의 의지라는 것인가. 더더욱 영문을 모르겠는 조제핀이었다.
“어쩐 일인가요?”
“······.”
화란은 한동안 답하지 않았다. 침묵하는 그 모양새는 평소대로지만, 입을 뻐끔거리거나 방 구석구석으로 동공이 움직이는 것이 위화감을 느끼게 한다.
“······.”
조제핀은 오랜 교수 생활을 해왔다. 그만큼 관록이라는 게 생기는 것이다.
보통 말하기 어려운 상담을 하기 위해 찾아온 학생들. 막상 용기를 냈어도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경우다.
그 전형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화란이라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지만, 이럴 땐 어른의, 교수로의 의무로서 쉽게 말을 꺼내게 해주는 게 관건이다.
사뿐사뿐, 맨발바닥으로 카펫이 깔린 방을 걸으며 침대에 걸터앉는 조제핀. 그녀는 톡톡, 하고 옆자리 매트를 두드렸다.
“······.”
그 신호를 이해하고 조심스럽게 찾아와 앉는 화란.
“상담인가요? 고민하지 말고 말해보세요.”
“이건 친구 이야긴데.”
“······.”
여기서 조제핀은 당신 친구 없잖아요, 라는 가혹한 지적을 할 정도로 냉혈녀가 아니다.
“그··· 친구가 뭐라고 하던가요?”
“어떤··· 사람하고 있으면 마음이 둥실둥실해진대.”
“그, 그런가요?”
철혈의 여걸. 조제핀 클라라 수석교수는 마녀사냥 때도 무너지지 않은 포커페이스를 철저하게 유지하고 이야기에 집중했다.
“응. 구름 위에 올라탄 것처럼 뭉실뭉실하대. 안겨있으면 쿵쾅거리는 게 시끄럽대. 어쩔 땐 가슴이 욱신거리고 늪에 빠진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렇···군요.”
너무나 진지한, 아니, 화란이 하는 상담이란 점에서 진지하지 않을 리가 없지만.
전혀 예상외의 것이라서 조제핀은 뭐라 맞장구도 치지 못했다.
아직 그녀 안에 있는 화란의 이미지는 여전히 특급의 마인.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것이다.
하지만 이다지도 가련한 첫사랑을 맞이한 소녀를 보고 있노라면 새삼 깨닫는다. 이 아이도 결국 한 사람의 소녀이노라고.
‘교육자 실격이군요.’
조제핀은 스스로의 부족함을 통감했다. 마음을 가다듬은 철의 여인은 따뜻한 미소로 화란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래요. 화란 당··· 아니, 화란의 친구가 그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거군요. 즉, 그 사람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런 거지요?”
“······응.”
이것은 연애상담이다.
첫사랑을 맞이한 소녀가 어렵사리 내민 구원요청이다.
조제핀은 소녀의 청춘 첫 페이지를 멋들어지게 장식할 아리따운 추억을 위해 100년 하고도 17년의 관록을 100%로 발휘하리라.
‘대상은··· 뭐, 코린 로크겠죠.’
그 기이한 여복을 가진 창술사 소년. 화란이 접촉하는 남성이라면 그 말곤 없다.
그 성실하고 어른스러운 신입생은 2학년 여학생으로부터 제비에 사기꾼일지도 모른다는 신고가 들어올 정도로 타고난 난봉꾼이다.
물론 그 인격과 도덕성이야 조제핀도 인정하는 바이지만, 필시 여성 경험이 많을 늑대 같은 소년은 화란 같은 새내기 병아리에겐 가혹한 난이도일 터.
“그 친구의 연모하는 상대가······.”
“연모하는 상대라고는 안 했어.”
“아무튼요. 필시 주변에 같은 여자가 많다는 거겠지요?”
“······.”
화란은 떠올린다. 낮에 보았던 충격적인 장면 외에도 공통수업이나 생활 전반에서 두루두루 아는 여자가 많다.
가정시간에는 태연하게 끼어들어 결과물을 얻어먹거나 도시로 나가면 묘령의 여성들과 살갑게 인사를 나눈다.
곁에서 이성이 없었던 시간은··· 없었던 것 같다.
-끄덕
역시.
짐작은 했지만, 타고난 난봉꾼이다. 조제핀은 솜털 같은 새끼 고양이를 늑대에게 보내야 한다는 것에 탄식을 흘렸지만, 당면한 과제에 집중했다.
“잘 들으세요, 화란. 기회란 자주 오지 않습니다. 주변에 이성이 많은 남성은 스스로 상대방에게 다가가지 않아요. 알아서 여성이 다가오니까요.”
100년 전쯤, 한창 청춘을 구가하던 초보 마녀가 읽은 인기 연애소설 「그 남자를 함락하는 101가지 방법」은 당대 소녀들의 연애 교과서였다.
“행동은 과감하게, 가열차게, 화끈하게. 그러지 않으면 사랑을 쟁취할 수 없습니다. 방해되는 이들은 단숨에 치워버리는 겁니다.”
청춘을 맞이한 소녀들에게 안타까운 점은.
상담 상대가 동네 암컷 개들을 누비고 다니는 난봉견과 연애경험이라곤 100년 전에 읽은 연애소설이 다인 117세 골드미스 마녀라는 것이다.
화(花)도 란(蘭)도 경험이 턱없이 부족한 소녀들이기에 질척질척한 연애소설을 기반으로 한 조언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버렸다.
‘들었지? 연애는 직구야. 직구!’
“······연애?”
그게 무슨 소리냐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화. 란은 속이 답답해서 가슴을 쳤지만, 화는 너도 가슴이 욱신거리냐며 물을 뿐이다.
‘봐봐, 조제핀 교수님한테 빌려온 그 남자를 함락하는 101가지 방법을···!’
“······함락.”
화란은 딱히 코린을 두들겨 패고 싶은 게 아니다. 애초에 코린을 함락시키는데 백 가지가 넘는 방법도 필요 없었고.
“그냥 내가 가서 자빠뜨릴게. 내가 코린보다 힘쎄.”
‘짜빠뜨려?’
“왜?”
‘음··· 그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책을 넘겨봐. 117페이지.’
란의 말에 조제핀에게서 빌려온 「그 남자를 함락하는 101가지 방법」 33쇄본을 펼치는 화.
「필요하다면 강행수단. 침대 위에 그를 자빠뜨려라.」
그런 소제목이 있었다.
‘하지만 이건 섣부리 쓸 수 없는 카드네.’
“왜?”
코린이라는 성을 함락하자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냥 힘으로 짓눌러버리면 되는데, 뭐가 문제란 말인가?
조별과제 때, 이미 침대에 자빠뜨린 전적이 있는 것이다. 그때의 기억은 흐릿하지만, 코린이 기뻐하며 머리를 쓰다듬어줬다는 기억이 남아있었다.
‘여기 봐봐. 이건 최후수단이라는 여주인공의 말이 있잖아.’
“······최후수단.”
‘그러니까 이건 최후수단. 그때가 되면 화에게 맡길게.’
“······알았어.”
겨우 진정한 란이 척, 하고 있지도 않은 안경테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성을 공략하려면 먼저 성벽이야. 마리에 언니, 그 사람은 문지기인 거고.’
“······문지기.”
성을 공략하려면 문지기를 쓰러뜨려야 한다. 그리고 그 문지기는 마리에 듀나레프다.
“때려?”
‘그런 짓을 하면 오빠가 싫어할 거야.’
“어떻게 해?”
‘나한테 맡겨. 내가 해치우겠어.’
결전의 때는 머지않아 찾아왔다.
“언니, 저 맘에 안 들죠?”
바야흐로 제1차 대전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