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Killed the Play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92
검술명가 아덴(4)
아덴의 국경선 너머에는 높디높이 솟아오른 산봉과 숲이 혼재한 마경이 존재한다.
구름과 맞닿은 봉우리에서 으슥하게 흘러내리는 안개가 부엽토를 적시며 가득 찬 음기는 마(魔)를 불러들이니.
산짐승부터 숲의 주인을 자처하는 마수들이 구역을 나누고 고착화되어 조화로운 균형마저 설립한 산맥.
그 조화가 무너지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
적어도 고봉(孤峯) 위에서 마물의 빗장뼈를 이쑤시개 삼은 노로의 검사 탓은 아닐 것이다.
새까만 묵빛의 장발을 정리하지도 않은 채 산발로 기르고, 다 헤진 도복은 의복의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
날카로운 나뭇가지와 독초, 독사, 독수가 가득한 산맥을 맨발바닥으로 답보하는 늙은 검사는 때아닌 신선놀음을 멈췄다.
“뫼산이 높다 한들 하늘 아래 뫼이리라만. 어찌 오르지도 않고 하늘바다부터 유영하려 하느냐.”
“············.”
노인은 짧게 자른 수염을 쓰다듬으며 자신을 응시하는 독귀를 내려다 본다.
날렵하게 뻗은 표범 같은 다리와 갑옷의 등갑처럼 어깨를 보호하는 견갑골. 그 사이에서 뻗은 팔은 다섯 개의 손가락으로 갈라진다.
짐승보다는 인간에 가까운 생김새로 간혹 등장하는 인간형 마물. 그들이 마인이라고 불리지 않는 건 태생이 인간인 마인과 다르게 짐승의 본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지혜와 적응력은 인간과 그리 다를 게 없다.
“쯧쯧, 언제부터 정말 인간 흉내를 내기 시작해선.”
놈이 들고 있는 것은 날이 서린 장검.
몇 번이나 부서지고서도 기어코 어딘가에서 새 검을 구해오는 것이 산맥을 넘는 무기 상단이라도 털어온 모양이다.
-철컥!
인간의 흉내를 냈으나 인간의 것이 아닌 소리를 내며 움직이는 독귀.
“그래, 전번에 뽑은 빗장뼈는 다 나으셨는가?”
독귀에게서 뽑은 빗장뼈로 치간을 긁는 노인. 가란드 아덴은 제 검 중 한 자루를 들었다.
그 검은 파산검(破山劍)이라 하여 능히 모든 것을 가르는 천하명검. 이 보물이 입신(入神) 검객의 손에 쥐어지는 순간, 어떤 위력을 발휘할 것인가.
그 결과는 오래지 않아 드러났다.
··················
············
······
안개에 젖은 부엽토가 갈라진 틈 속으로 추락한다. 깔끔하게 절단된 숲의 절경은 다음 산맥까지 이어진다.
지도에 자를 대고 쭉 긋는다면 이러할까 싶은 상흔은 봉우리를 넘어 하늘마저 갈랐다.
단 일격.
단 한 번 검을 휘둘러 참으로 산을 파한 이 광경은 대체 어떤 상식으로 납득해야 할까.
이 높디높은 산맥에 봉우리가 하나 남은 이유를 검사 한 명의 칼질로 설명해야 하는 난해함은 또 무엇일까.
“쯧쯧쯧, 또 자연을 훼손하고 말았구먼.”
가짜 신선놀음을 즐기는 선인은 갈라진 하늘과 산맥에 혀를 끌끌 찼다. 안타까움보다는 쉽사리 잘려나가는 자연의 나약함을 탓할 테지만.
“근성 있는 놈이로고.”
어느 날, 산맥의 균형을 무너뜨리며 나타난 초신성. 숲의 주인이라 불리는 작자들을 하나하나 때려죽이는 꼴을 보자하니 싹수가 보이더랬다.
오래 알고 지난 드루이드의 부탁이 아니었다면, 이 귀신 같은 마물이 어디까지 성장할지 지켜봤을 테지.
그러나 아무리 강한 마물이라 한들, 입신경지에 이른 검제(劍帝) 가란드 아덴의 상대는 되지 못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상대한 것의 재능을 발견한 것은 놈의 뼈 한 대를 뽑아냈을 때였다.
재능.
멈춰진 세상에서 홀로 한 걸음을 나아가는 타고난 이상성.
빛나는 원석을 앞에 두고 마음이 빼앗겨 놓쳐버렸다.
자신도 이제 늙은 것인가, 하고 늙음을 탓하기도 전에 놈이 다시 도전해왔다.
그렇게 패배하고 도주하고, 패배하고 도주하기를 반복. 고봉 위 무수히 많은 뼈를 방석 삼아 엉덩이를 붙이는 노인.
기어코 살아남아 또다시 도전하는 독귀를 보자면 제 손녀딸들이 떠오른다.
한쪽은 재능이 있으나 악바리가 없고, 한쪽은 악바리가 있으나 재능이 없다.
그 모두를 합친 것 같은 완벽한 재능을 앞에 두자니 탐이 날 수밖에.
“크크크큭··· 오늘은 어째 몸놀림이 유하다 싶더니.”
그는 자신의 등 뒤. 산봉우리에 박혀있던 검들을 둘러봤다.
천하오검 중 부부검 쌍룡이검이 사라졌다. 어째 움직임이 어색하다 하더니 처음부터 이것이 목적이렸다.
“그래, 내 쌍검을 사용할 때마다 움찔거리더니 못내 갖고 싶었던 모양이구나.”
재미있는 일이다. 마물이 검에 흥미를 보이다니.
아니, 이는 검제가 자극한 것이리라.
백번을 넘는 패배 속에서 놈 스스로 검제를 죽이기 위한 도구가 필요함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 검··· 검이란 말이지. 마물이 검술을 익힌단 말이지.”
뭇 사명감 있는 가디언이라면 당장 놈의 목을 쳐 후환을 없앴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검제(劍帝). 검에 미친 귀신. 검을 익히는 마물의 존재를 어찌 스스로 벨 수 있을까.
도전과 패퇴가 계속된다. 검제 스스로만 생각하는 사제관계가 이어지기를 여드레.
그는 친히 마물을 검귀(劍鬼)라 칭하였다.
“아리샤 아덴을 제5검각의 각주로 임명해라. 이상.”
그가 산을 내려온 것도 그 뒤의 일이다.
* * * *
아덴 본가에 도착한 지 아흐레째 되는 날. 신년이 밝았다.
“후아아아암~”
녹빛머리의 소녀는 해가 중천에 떴음에도 피곤한 기색으로 기지개를 켰다.
“피곤해 보이네.”
“신년행사를 치른 건 오랜만이거든요.”
어젯밤, 우리는 아덴 본가에서 진행되는 신년행사에 참여했다. 한국의 제야의 종 행사와 비슷했지.
“아리샤도, 유엘도 옷 입은 거 예쁘더라. 돈 쓴 보람이 있네.”
“그래요? 저는 좀 거추장스럽던데.”
참고로 이 동네 전통복은 한복이다. 그것도 과감하고 화려한 퓨전 계통. 감사합니다, K 제작진 여러분! 아바타 패키지 팔아먹으려는 시도인 건 알지만!
“그보다 유엘. 숲에서 연락 온 건 없어?”
“안 그래도 이야기할 참이었어요. 정령님이 찾아오셨거든요.”
우리가 동부로 온 본래 목적은 드루이드들의 비경 핀디아스를 찾아서였다.
하지만 핀디아스는 아덴이 관리하는 국경선 너머에 있었고, 우리는 국경을 넘기 전에 절차를 밟아야 했다.
“코린 씨, 안 그래도 이제 일은 전부 마무리됐어요. 동부 가디언 협회에는 국경선 너머 산맥의 생태조사라는 거로 신청해 뒀구요!”
아덴 동부 국경의 너머는 광활한 자연경관이다.
마물과 산맥이 줄지어 선 천혜의 땅. 워낙 마물이 많고 위험한 산맥인지라 누구도 진입하지 않는 일종의 공백지대.
일단 국경을 넘는 일이라 왕국 국경관리관 또는 담당 권한자를 통해 허가를 받을 필요가 있었다.
“국경관리는 저희 가문에서 했으니까요! 이제 허가서에 도장만 찍으면 돼요!”
“오, 그래? 그게 누군데?”
·········
······
···
“안 된다.”
바로 반려 당했다.
“어··· 음.”
국경 담당관이 누구인가 하면 바로 우리 앞에 있는 동부 최고의 현역 기사.
아덴 가문의 실질적인 차기 당주. 루니아 아덴이시다.
“국경담당까지 맡으실 줄은 몰랐는데요.”
“왕실은 이 귀찮은 마경을 관리하기 싫어하지. 애초에 관리할 수 있는 스케일도 아니고.”
일반적인 국경이라면 그러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온갖 마물들이 뛰쳐나오는 마경이다.
대륙에서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나는 단 두 곳.
최종결전에서 플레이어는 지금껏 양성한 파티, 메인 시나리오 클리어를 통해 온존된 세력으로 동부와 북부 웨이브 전선을 틀어막아야 할 정도니까.
“국경 너머로는 어째서 가려는 거냐?”
“그, 그게··· 마물의 생태조사··· 요?”
우물쭈물하며 대답하는 아리샤에 옅은 탄식을 흘리더니 볼따구를 꽈악 꼬집는 루니아.
“거짓을 고할 거라면 허리를 펴고 진실을 말하는 양 당당해라. 그것이 아니라면 거짓이 밝혀져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조성해.”
“우으예에에···!”
아리샤를 들어 올릴 기세로 볼따구를 잡고 올라가는 손. 곧 손이 놓였지만, 퉁퉁 불은 볼따구를 붙잡으며 아리샤가 울먹거렸다.
“그래서 코린. 국경 너머는 어째서 향하는 거냐?”
역시 눈치챘나.
“국경 너머에 드루이드의 비경이 있습니다. 저는 그곳으로 갈 생각이고 목적은 말해주기엔 좀 비싸네요.”
루니아 같은 드라이한 성격이라면 훼방을 놓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얻고자 하는 게 그 4대 비보다. 루니아는 둘째치고 수하들이 얌전히 있을 거란 보장도 없고.
“뭐, 좋아. 하지만 너희들은 미성년자다. 성인이 되는 건 3학년 때부터지. 가디언이라곤 하나 미성년자들을 홀로 국경 너머에 보내는 건 이치에 맞지 않아.”
“같이 가주시게요?”
“뭐, 나의 피앙세가 가는 길이다. 보호자를 자처할 자격은 있겠지.”
“부하들은요?”
“저런. 나와 단둘이 가고 싶었던 건가?”
“그것도 나쁘지 않지만, 필요 이상으로 숫자가 불어나는 것도 경계해야죠.”
나쁜 일은 아니다. 아직 화란과 마리에도 도착하지 않은 시점. 그 둘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루니아가 합류해준다면 전력상 엄청난 상승이다.
애초에 어중간한 가디언들은 저 마물산맥에서 짐덩이지. 이건 전 회차에서도, 게임에서도 원정 임무를 나갔을 때, 톡톡히 깨달은 사실이다.
“그럼 그렇게 알고······.”
“어, 언니···!”
“으음?”
드물게 나선 아리샤가 여전히 자존감 낮은 눈으로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피, 피앙세라던가··· 그런 말은 안 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어째서지?”
“아니, 그··· 주변에서도 이상하게 보고······.”
“타인의 시선은 내게 그리 중요하지 않다.”
“코린 씨도 곤란해하고······.”
“그건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지.”
“친구··· 인걸요. 코린 씨에 대한 소문도 이상하게 퍼지고 있고······.”
“······.”
그야 루니아와 정말 결혼할 생각으로 이러는 건 아니지만, 세간에는 내가 루니아를 꿰찬 제비 비슷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그야 갑자기 나타난 아카데미 1학년이 차기 아덴 당주를 꿰어버렸다는 액면은 여러모로 상상을 자극했으니까.
아리샤는 그런 소문이 싫었던 모양이다. 착한 녀석이로고.
“어, 언니가···! 정말로 코린 씨를 책임질 것도 아니면서 자, 장갓길을 막는 것도 좀··· 아니라구 생각해요오오오······.”
한순간, 루니아의 눈동자가 날카로움을 띠었다. 적의라기보다는, 의외의 것을 마주한 맹수의 눈빛일까.
“뭐, 자제하지. 그보다 떠날 준비를 해라. 소수 인원으로 국경을 넘을 것이다.”
그렇게 순순히 받아들이면서도 루니아는 어딘가··· 성격 나빠 보이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 * * *
아덴 본채 용마루 한가운데의 대청.
찻상이 올려져 있는 대청마루 바닥에 고아한 여인이 주전자에서 차를 쪼르르 채웠다.
소피아 아덴. 현 당주 제이드 아덴의 사모. 젊었을 때는 동부 제일의 여검객으로 드높았던 그녀는 제 앞의 하나뿐인 딸에게 차를 권했다.
“드세요, 루니아.”
편한 자세로 앉아있는 그녀와 달리 무릎을 꿇고 찻잔을 옮기는 루니아 아덴. 뜨거운 찻잔을 홀짝이다 조심스럽게 찻상에 내려놓는다.
“최근 한 남아와 교류를 가지고 계시다지요.”
“인연이 그리 닿게 되었습니다.”
“밤놀이라면 이후에 하면 될 것을.”
“······.”
정 만나고 싶다면 혼약자를 구한 뒤에 하라며 대놓고 핀잔을 주는 소피아. 그 넓은 포용력이라 해야 할지, 그릇된 결혼관이라 해야 할지.
아마 친부인 제이드 아덴의 혼외정사 이후로 포기해버린 거겠지.
돌이킬 수 없는 부정의 증거, 제 이복누이는 소피아에겐 치울 수 없는 가시 같은 존재였다.
그 뒤로 친부가 불륜을 저지르는 일은 없었으나 한 번 무너진 신뢰는 그녀의 결혼관 자체를 바꿀 정도로 충격적인 사건이었으리라.
“루니아. 결국 남자란 가문의 격을 올리는 도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당신은 당신에게 가장 이득인 상대와 맺어져야 합니다.”
“어머님의 의견에는 나름 동의합니다.”
“나름?”
“네, 설마 백퍼센트 동의하리라 과신하시지는 않으셨으리라 믿습니다.”
“······.”
소피아는 건조하게 루니아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이것은 그녀의 입장. 그녀 나름의 딸이 잘되기를 바라는 어른의 지혜다.
딸이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것도 충분히 있을 법하다고 납득하고 있다.
그럼에도 자신이 옳다는 견고한 자아만큼은 딸만큼이나 소피아도 똑같다는 것이지만.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그이가 맞선 팸플릿에 적힌 쭉정이들보다 훨씬 가치 있는 무사라는 걸 확신하니까요.”
“호오··· 그 정도인가요?”
그러나 소피아 또한 한 때는 동부를 풍미하던 무인. 그 사고방식은 루니아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약관의 나이에 영역에 진입했습니다. 무인으로서의 재능은 할아버님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습니다.”
“······루니아. 그분의 재능은.”
“예, 이질이지요. 알기 쉬운 힘의 파괴력뿐이 아닌 영역··· 아니, 승리를 이끄는 이질의 재능. 그것의 재능은 그런 종류입니다.”
소피아는 솔직하게 감탄했다. 그러한 재능을 가진 자가 이 세상에 또 있을 줄이야.
오십 평생 수많은 무인들을 봐온 그녀가 보기에도 이질적인 재능. 한 시대의 정점을 노래하는 입신 경지.
루니아의 눈을 믿는 소피아로서는 코린 로크가 정말로 그만한 재능의 소유자라면 혼약의 대가로 보석 광산을 가져올 남자조차 내팽개칠 생각이다.
“그리고······.”
“그리고?”
드물게 말에 뜸을 들이는 루니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소피아. 그녀는 곧 제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한마디를 들었다.
“잘생겼습니다.”
“······예?”
“얼굴이 제 취향입니다. 덧붙여··· 여동생이 원하는 걸 빼앗는 재미까지 더해졌군요.”
“????”
처음 보는 딸의 반응에 어떤 대답을 들려줘야 할지 갈팡지팡하는 소피아.
“그··· 다른 사람의 연인을 빼앗는 건 도덕적으로 옳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로서 지극히 상식적인 답변이었다.
* * * *
유엘과 아리샤, 그리고 보호 역으로 나선 루니아까지.
우리 네 명은 국경을 너머 산맥에 진입했지만, 산길은 생각보다 거칠지 않았다.
“고마워요. 과자 드실래요?”
허공에 대고 쿠키를 권하는 유엘. 정령이 먹어치운 건지 허공에서 쿠키가 사라지자 흐뭇한 미소를 짓는 유엘.
“드루이드가 있으니 편하군. 이 수해(樹海)에서도 헤매지 않다니.”
드루이드 유엘이 가는 길은 시야를 방해하는 나뭇가지마저 스스로 길을 비킨다.
위험한 길은 배제되고, 안전한 길을 정령이 안내했다.
실로 자연의 사랑을 받는 존재. 나면서부터 오직 자연을 가꾸고 수호하는 것에 진력하는 고마운 존재에게 베풀어지는 호의.
그리고 그런 드루이드의 안내를 받는 우리들은 길을 잃을래야 잃을 수가 없었다.
“저는 그저 안내를 받고 있을 뿐이니까요. 곧 도착해요.”
얼마나 걸었을까? 아마 평범한 사람이라면 드나들지 못할 길들을 정령의 안내로 손쉽게 걸으며 찾은 산길.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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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의 순간, 어긋나 가는 감각.
무언가를 경계로 어떤 곳에 진입했다는 걸 명백히 알 수 있었다.
“······당했군.”
주변을 둘러보니 아리샤도, 유엘도, 루니아도 보이지 않는다.
“흔한 수법이긴 한데.”
어느 경계를 기점으로 진입자를 현혹시키는 술법. 당장 페스티벌에서 경험한 팔진도가 바로 그 예다.
과연, 현자급 드루이드가 수호하는 숨겨진 비경이니 이런 사람 물리기 술법 정도는 있겠지.
아마 마물도 비슷한 수법으로 현혹해 다른 곳으로 되돌릴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술법이 다른 방식으로 작동했으리라.
그 증거로 내 시야에서 동료들이 사라졌다. 단순히 현혹해 도시에 진입하지 못하게 할 거라면 시계(視界)를 장악할 필요가 없다.
이건 일종의 시험이다. 드루이드와 함께 온 이들이 비경에 입장할 자격을 시험하는.
‘보통 이런 건 트라우마나 공포, 또는 의지 비스무리한 걸 시험하던데······.’
비슷한 경험을 전 회차에서도 해본 적 있기에 마음을 다잡고 주변을 살핀다.
내 오감을 믿지 않는다. 믿어야 할 건 규명할 수 없는 여섯 번째 감각. 직감만이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감각이다.
“자, 와라. 환영이든 몬스터든 뭐든 상대해주······.”
형아.
-소오름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