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Killed the Play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96
태양 – 클라우 솔라스(4)
영역.
무인들의 꿈의 경지.
정지된 세계에서의 한 걸음.
전 회차에서는 이 영역에 진입조차 못 했으나 이번 회차에서 나는 여러 번 영역에 진입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아리샤에 비하면 완벽한 영역이 아니다.
전투의 열화 속에서 예열된 육체가, 경각에 달한 생존본능이 나를 영역에 진입시킨다.
아리샤처럼 경계안이라는 특이 케이스와 타고난 집중력이 아니라면 아무런 전조 없이 영역에 진입하는 건 가히 불가능에 가깝다.
그마저도 일보일격(一步一擊). 내가 아는 상식은 그랬다.
정지된 세계에서 펼쳐지는 여덟 개의 검수. 검귀 초절의 재능을 엿보게 하는 검의 궤적.
동시에 대응한다.
영역에 맞서 영역으로.
생명의 위기에 내 생존본능이 영역으로 진입시킨다.
──!
──!
맞부딪히는 영역의 궤적들.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놈의 영역은 완전하지 않다. 공격횟수를 늘리기 위해 검이 가벼웠다.
최적의 궤도를 계산해 우리에게 쏟아지는 여덟의 궤적을 상쇄한다.
그러나 우리가 상쇄할 수 있었던 건 다섯뿐.
그 순간, 내 시야에 아리샤의 동공이 비친다. 그녀의 마름모꼴 동공. 그것이 경악으로 일그러졌음을 깨닫는다.
막을 수 없다.
루니아의 영역은 완벽하지 못했다. 영역을 인지할지언정, 그녀의 걸음은 검귀보다 반보 느리다···!
따라서 선혈을 흩뿌리며 쓰러지는 루니아의 모습만이 상상된다.
-카앙!
“??!”
순간, 귀신의 검이 멈춘다. 그녀의 주변에 두둥실 떠 있는 검은색 기운. 그것들이 검귀의 검을 가로막고 있었다.
“······압축된 강기?”
호신강기.
아리샤가 최종경지에서나 습득하는 초절정 히든스킬. 강력한 어태커 성능에 비례해 빈약한 방어력을 커버하는 기술.
그것이 루니아의 느린 반보를 커버하고 검귀를 향해 내리치는 패도의 일격이 내리친다.
아덴류 일검(一劍) 거짓 영역베기.
콰드득, 오른쪽 어깨부터 베이는 검귀. 그러나 얕다. 놈은 그 찰나에 약간 몸을 비트는 것만으로 루니아 회심의 일격을 빗겨냈다.
“칫···!”
끝장내기 위해 휘두른 패검이 만족스럽지 않자 혀를 차는 루니아. 다만 어깨 한쪽이 중파된 놈이 우리를 응시했다.
“Kuki──”
그리고 웃는다.
“KUKIKIKIKIKI──!”
그것은 제대로 된 언어가 아니었다. 단지 자신이 웃고 있음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발성.
소름 끼칠 정도로 적나라한 웃음. 무언가에 홀린 듯한 마성은 누군가를 떠올리게 한다.
“위험한 놈이다. 여기서 처리해야 해.”
“동감입니다.”
검귀는 아직 ‘천수무쌍(千手武雙)’에 도달하지 못했다.
녀석의 최종비검은 그야말로 모든 것을 벤다. 그 범위는 실로 반경 1km.
즉, 지금이 녀석을 해치울 몇 안 되는 타이밍. 예정에 없지만, 차라리 태양을 포기하더라도 검귀를 없앨 수 있다면 이득일 터.
제2차전. 녀석이 덤벼들려는 순간.
“안뇽, 친구야?”
스카이스가 검귀의 등 뒤에서 방긋 미소 지었다.
──!!
우수검과 좌수검이 춤춘다. 자신의 등뒤로 접근한 무방비한 자를 베어내기 위해.
-칵···!
순식간에 깎두기처럼 썰려 나가는 스카이스. 놈의 육신이 후두둑 바닥에 떨어진다.
당연히 즉사··· 였을 터인 스카이스의 육신이 허물어지며 수백 마리의 뱀들이 쏟아져나온다.
“······!?”
그 기상천외한 모습에는 검귀조차 당황한다. 검을 휘둘러 뱀들을 베어내지만 수백··· 아니, 수천으로 증식된 뱀들을 모두 베기에는 역부족.
결국 후퇴하는 검귀. 그 뒤로··· 땅끝에서부터 솟구친 날카로운 목재파편들이 사방에서 덮쳐왔다.
“······.”
검귀에게 베였을 터인 둠노릭스가 로브로 가리고 있던 상반신이 드러나며 나무가 대신한 뼈와 살을 드러냈다.
현자급 드루이드 중에서도 오랜 세월을 살아 자연 그 자체와 동화된 드루이드는 저런 몸이 된다고 한다.
즉, 드루이드 자신이 곧 자연. 정령과 땅 위에 있는 이상 둠노릭스는 죽지 않는다.
수왕 둔 스카이스와 입법자 둠노릭스.
왕의 수하 중에서도 불사에 가까운 생명력을 가진 존재들.
오롯이 신체능력과 검뿐인 검귀가 상대하기엔 최악의 상성이다.
“······괴물들이군.”
두 사람의 기이한 능력에는 루니아도 기겁했다. 그럴 만도 하다.
잠입을 위해 ‘신위’를 받지 못한 페르막과 달리 저 둘은 ‘신위’를 수여 받은 차기 낙원의 신들.
인간의 도리와 상식으로 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니까.
“KRrrrrrr──”
결국 이길 수 없다 판단한 놈이 후퇴하기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다.
* * * *
“······.”
드루이드의 치료실. 그곳에 치료를 받고 나온 우리는 어두운 안색으로 기다리고 있던 유엘을 만날 수 있었다.
“······죄송해요. 아무것도 하지 못했어요.”
유엘의 안색이 어두운 건 그 탓인 모양이다. 하지만 탓할 수는 없다.
검귀와의 공방은 불과 십수 초 남짓. 거기다 주력인 정령은 둠노릭스가 이미 끌어다 쓰고 있었기에 유엘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신경 쓰지 마.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
“하지만······.”
“괜찮아요! 어디 크게 다친 것도 아닌걸요!”
검귀를 마주하고도 누구 하나 죽지 않았다. 이것만으로 크나큰 기적이다.
실상은 둠노릭스와 둔 스카이스가 아니었다면 누구 하나는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그 마물··· 아덴의 검술을 사용했다.”
루니아가 이를 악물며 치를 떨었다. 그런 언니의 분위기를 읽고 아리샤가 조심스럽게 말한다.
“검술서라도··· 읽은 걸까요?”
“멍청한 소리 하지 마라. 그건 실전으로 다져진 기술이었다. 정식으로 교육받은 정석적인 움직임은 아니었으나 상당한 실력의 검사와 부딪히며 스스로 습득한 거지.”
“네? 그, 그렇다면······.”
“저만한 마물과 몇 번이고 싸웠다면 한 명밖에 없지 않나.”
“껄껄껄, 우리 손녀딸들이 눈치챈 모양이로고.”
목소리의 주인은 노회한 남자의 목소리. 그러나 둠노릭스처럼 갈라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맹한 기운마저 품었다.
“”······.””
모두의 시선이 목소리의 근원을 향한다. 그 끝에는 흑발의 노구가 밉살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서 있다.
“하, 할부지······.”
헝클어진 머리와 낡은 도복은 문명인보단 야인에 가까운 존재.
검제(劍帝) 가란드 아덴.
그가 우리들 앞에 나타났다.
“무슨 미친 짓을 벌인 거지, 영감?”
아덴의 정신적 지주. 아직도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는 검제에게 루니아는 거침없이 몰아붙였다.
그러나 그조차도 검제에게는 손녀딸의 앙칼진 재롱 정도로 보이는 모양이다.
“노후의 심심풀이지.”
“마물에게 검을 가르치다니. 그러고도 가디언인가?”
“클클클, 말을 바로 하자꾸나, 손녀야. 나는 놈에게 검을 가르친 적이 없다. 놈이 스스로 배운 것이지.”
“그게 무슨···!”
“흥미롭지 않느냐. 칼잡이 마물이라니. 그것도 내 영역을 보고 스스로 영역에 진입할 희대의 재능 말이다.”
알고 있었다.
검제 가란드 아덴. 이 노구의 검사가 가진 광기를.
녀석은 검의 높은 경지를 볼 수 있다면 아무래도 좋은 부류의 인간이다. 그에게 중한 것은 혈육이나 세상 따위가 아니라 그저 검의 끝을 보는 것이니까.
“미친 영감이······.”
부아가 치미는 듯 으르렁거리는 루니아. 그러나 아리샤는 조금 다르게 반응했다.
“할아버지. 검··· 알려주세요.”
무언가에 자극받은 듯. 아리샤의 동공은 영역을 전개했을 때의 그것이었다.
“그래. 가르쳐 주고 말고.”
검제. 검귀. 아리샤.
검에 홀릴 수 있는 광인들. 서로가 서로를 자극한다.
각성이 시작된다.
* * * *
“마지막 과업을 발표하겠네.”
현자 우스키아스의 방안. 자리에 모인 것은 나와 유엘 그리고 스카이스와 둠노릭스다.
검귀와의 격전을 치른 흔적조차 남지 않은 두 사람은 태연하게 본래 모습으로 돌아와 내 맞은편에 앉았다.
“저희는 마가목 열매를 획득하는데, 실패했습니다만. 괜찮은 겁니까?”
유엘에게 넘지시 들었지만, 우스키아스는 우리에게도 과업을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사실 마지막 과업은 머릿속에 때려 박아진 퀘스트 정보로 예상하고 있었지만.
“상관없네. 마가목 열매는 스카이스 공과 둠노릭스 공에게 커다란 어드밴티지이지만, 없다고 해서 수행이 불가능한 건 아니니.”
예상대로 우스키아스는 과업 실패를 탈락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마지막 과업일세. 이 과업을 끝마친 뒤에는 그대들은 자유로이 태양을 손에 넣으시게.”
마지막 과업. 그것은······.
“과업으로 제작한 지팡이를 키워 하늘에 닿으라. 그리하여 태양을 수호하는 거인을 마주하라.”
일식까지 앞으로 3주.
우리는 그때까지 하늘에 닿을만한 나무를 키워내야 한다.
* * * *
왕국 서부에는 두 개의 성지가 존재한다.
제1성지 제루엠.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이제는 ‘구’교라고 불리게 되는 쇠락해가는 종교의 성지.
그들의 성지에서 벗어나 마차를 타고 하루만 더 달리다 보면 제2성지 지온이 보인다.
왕년에 잘나가던 국밥집이 원가절감과 배짱장사로 휘청거리는 사이, 비법과 직원들을 빼돌려 세워진 따끈따끈한 자칭 원조국밥집.
시대의 흐름에 따라 교리를 바꾸고 귀족과 지식계급의 향유에서 벗어나 만민평등을 노래하게 된 그들은 전보다 폭넓은 교도들을 흡수하여 막대한 부와 인구를 집중시켰다.
그렇게 세워진 제2성지 지온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화려하고 성스러운 성지를 건설했다.
당대의 가장 뛰어나다는 건축가들을 불러모아 지어진 반짝이는 도시를 보자면 다소 속물적인 부자의 도시를 연출하는 것이다.
한 때, 가장 번영하고 사치를 일삼았던 제1성지의 입장에선 천박하고 추악함이 가득 찬 타락의 도시라며 입장이 역전된 셈이다.
“······.”
하수 시설과 시민들의 유희를 위한 예술의 거리, 상점가, 주택단지가 이어져 쭉 걷다 보면 그 끝에는 존재하는 대성전.
“지온 대성전 방문을 환영합니다.”
고급 대리석과 보석으로 치장된 대성전은 성지순례를 위해 찾아온 교도들로 북적거린다.
「신께서는 모든 이를 포용하신다.」 라는 캐치 프레이즈를 위해 다소 위압적일 수 있는 경비병조차 배치하지 않은 덕이다.
덕분에 자신 같은 마인도 대성전의 성지를 밟을 수 있다, 라는 교육을 받은 화란이었다.
“화란. 바로 들어갈 셈인가요?”
“······응.”
그녀의 감독역. 조제핀 클라라 수석교수는 초조함까지 느껴지는 그녀의 태도에 의아해했다.
이 성지에서의 일정을 끝내고 나면 왕국 반대편인 동부로 가는 길이 바쁘긴 하다. 하지만 느긋한 화란의 성격을 생각해보면 서두른다는 인상 자체가 신기한 것이다.
“오늘 못 보면··· 이틀 뒤에나 볼 수 있으니까.”
“일개 견습수녀가 이렇게 쉬이 그분을 만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특별취급입니다만.”
조제핀이 투덜거렸지만, 화란은 들은 체 만 체했다. 곧 그녀의 방문을 알리는 목소리가 방안으로 전해졌다.
“성녀님. 견습수녀 화란입니다.”
“그래요? 어서 들어오라고 해.”
곧이어 알현의 시간. 백색 대리석과 붉은 비단 융단, 태피스트리가 줄지어진 길을 따라 도착한 곳.
그곳에 성녀가 있었다.
“성녀님을 뵙습니다.”
“조제핀 자매님···!”
화사하기까지한 핑크빛 머리카락에 성녀 특유의 새하얀 법복. 신비로움과 성스러움이 공존하는 그녀야말로 지온 대성당의 성녀.
“와~ 화란이다!”
벌컥 달려와 얼싸안는 성녀. 매몰차게 피해버렸다면 저 예쁜 얼굴이 비단 융단에 처박히는 꼴을 보고 말았겠지.
“키가 조금은 자랐군요? 우유는 많이 먹고 있나요? 멸치는 챙겨 먹어요?”
화란의 볼따구를 찹쌀떡처럼 만지작거리며 귀여워하는 성녀.
“······치워.”
“부끄럽나요?”
에스텔 하닷사 엘 라스.
엘 라스 왕국의 제1왕녀이자 신교 지온 대성당의 성녀.
여왕조차도 함부로 대할 수 없다는 종교계의 심볼이기도 하지만······.
“페스티벌에서 큰일을 겪었다고 들었는데 괜찮은가요?”
대외적으로 범접할 수 없는 왕권과 신권의 상징 같은 존재지만, 이렇게 실상을 까고 보면 동네 언니 같은 후줄근함마저 느껴진다.
“금계부터.”
화란은 이 상대하기 불편 성녀에게 본론부터 요구했다.
마인이자 월야성 사건의 주범인 그녀가 엘 라스 왕국에서 활동하기 위해 필요한 것. 지금도 그녀를 옥죄고 있는 금계의 조정이다.
“제한. 풀어줘.”
“으응?”
화란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에스텔. 그녀의 시선이 조제핀과 화란을 오간다.
“제한을 풀어달라는 건 무슨 의미일까요?
“1호 봉인까지는··· 풀어줘.”
화란을 제약하는 지온의 쇠사슬. 그것의 제약을 풀어달라는 의미가 담긴 짤막한 요구. 이를 보충하려는 듯 조제핀이 나섰지만, 에스텔이 손짓으로 제지했다.
“이유는?”
“······답답해.”
“그런 이유라면 풀어주지 않을 거예요.”
지금까지 서글서글한 태도는 온데간데없이 단호하게 거부를 피력하는 에스텔. 화란은 그 단호함에 입을 열듯말듯 망설였다.
“······난 답답해서야. 그런 거야. 그리고··· 이건 네가 해.”
변화는 순식간이었다. 화란의 선혈빛의 눈동자와 머리색이 싱그러운 청색으로 변모했다. 그 존재를 에스텔은 보고받아 알고 있다.
“당신이 란이군요.”
“안녕하세요, 성녀님.”
퉁명스러웠던 화와 달리 란의 태도는 부드럽다. 그러나 단도직입적인 어법은 달라지지 않는다.
“힘이 필요해요.”
“흐음? 이유를 물어볼게요. 어째서죠?”
에스텔의 질문에 란은 앙큼한 표정으로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낭군님의 힘이 되는 조강지처가 되고 싶거든요.”
············
·········
······
화란이 떠나간 대성당. 에스텔은 그녀가 떠나간 자리를 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신기한 일이에요.”
에스텔은 처음 화란이 대성당에 입교했을 때를 떠올렸다.
먼 동방의 땅에서 에리우 이사장과 조제핀 교수가 데려온 마인 아이.
그 선홍빛의 눈동자를 대부분은 불길하고 두렵다고 했지만, 그녀의 시선에는 상처 입은 어린 맹수가 보였다.
불안에 빠지고 보이지 않는 것을 두려워하며 들리지 않는 것에 겁먹는··· 그런 아이.
그녀를 본 순간, 에스텔은 엘 라스 왕국의 왕녀로서가 아닌, 지온 대성당의 성녀로서의 의무를 선택했다.
제2왕녀인 여동생과 대립하면서까지 그녀를 신교의 이름으로 품었다.
아카데미에 입학해 배우고 사람들을 지키며 괴물이 아닌 영웅으로 불리기를 기대했다.
그런 그녀라도 화란이 이렇게나 빨리 사람의 마음을 깨우치리라곤 예상치 못했다.
그저 잘 되기를 기도했을 뿐이나, 아이의 성장은 상상 이상으로 빨랐고, 사랑을 말했다.
상처 입었던 아이는 이제 눈부신 청춘을 보내며 낭만을 품는 소녀가 되었다.
“코린 로크.”
그 변화의 중심은 메르카바 아카데미의 1학년 소년.
흡혈귀가 된 마리에 듀나레프를 구하고, 검호 루니아 아덴에 맞서 동급생인 아리샤 아덴을 도왔으며 봉인에서 풀린 철산의 왕까지 토벌한 기사.
성서에서 말하는 전사의 신당으로 능히 입성할 어린 영웅.
그의 무엇이 저 빙산 같던 소녀를 녹여버렸을까.
“온갖 사건사고에 엮여있단 말이죠. 그 ‘후배’님.”
에스텔은 다소 음흉하고도 싱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
············
·········
······
“진심입니까?”
“어.”
조제핀은 새로이 ‘기도안수’를 받은 화란이 곧장 짐을 챙기는 것을 보고 기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소녀가 곧장 지온을 떠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보호자 없이는······.”
“제한, 풀렸잖아. 성녀가 해줬어.”
“그렇지만······.”
이해는 한다. 란의 존재가 돌아온 화는 이제 전처럼 불안정한 존재가 아니다. 그러니 감시의 수준을 낮춰도 된다고 생각하지만.
“이곳에서 동부 국경선까지 2,400km입니다. 그 거리를··· 뛰어서 가겠다고요?”
“돼.”
“아니, 와이번이라도 타고 가시지요. 저도 함께하겠습니다.”
“내가 더 빨라.”
“······.”
그야 그렇겠지. 하지만 지형이나 그런 문제가 있지 않은가.
조제핀은 차라리 자신의 초장거리 공간이동 마법으로 이동시켜줄까 했지만, 초장거리 마커는 1년에 걸쳐 제조되는 비장의 루트다.
함부로 사용을 결정할 비술이 아니다. 하지만······.
“어째서죠? 무슨 중요한 일이라도 있나요?”
그것이 이 소녀에게 중요한 과제라면 거들어주어야 할까 고민되는 것이다.
“······.”
침묵하는 화란. 이 소녀의 침묵은 언제나 있는 일이지만, 살짝 상기된 귓불은 드문 현상이다.
부끄러워하듯, 본심을 말하고 싶어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란이······.”
“란이요?”
“란이 그 여자보다 늦으면 안 된대··· 내가 아니라 란이.”
“아······.”
사랑문제였군.
“그냥··· 와이번 타고 가시지요. 3주 정도면 도착할 테니.”
“뛰어가도··· 돼. 그럼 이틀이면 가.”
“퍽이나 그러시겠습니다.”
길이라도 잃으면 어쩌려구요, 조제핀은 화란을 지리수업을 병행하면서 2시간에 걸쳐 설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