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earned alchemy RAW novel - Chapter 146
146화
서울 종로.
한때는 죽어가는 상권이라는 평가를 듣던 종로는 과거 전성기를 모두 회복한 듯했다.
길거리를 가득 채운 사람과 조금만 맛집이라고 소문이 난 곳은 모두 줄을 서 있을 정도였다.
그중에서 눈에 띄게 사람이 많은 곳은 단연 연금술 빌딩, 일명 아르케 타워였다.
아르케 타워 정문 출입구부터 시작된 줄은 건물 끝까지 이어질 정도였다.
“오늘은 문 닫지 않았어요?”
지나가는 행인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줄을 서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
“지금은 당연히 문 닫았죠. 시간이 몇 시인데요.”
그 말에 말을 건 행인이 시계를 보니 저녁 9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그런데 왜 서 있어요?”
“오픈런이에요. 내일 새로운 연금술 제품이 나오는데, 이번 건 한국에서만 한정판으로 판매한다고 해서요.”
“아 그래요? 무슨 효과가 있답니까?”
행인은 줄 서 있는 사람이 귀찮아하는 표정을 보면서도 궁금한 건 못 참겠는지 또다시 물었다.
“아직 정식 발표는 안 했어요. 그냥 한정판이라는 이야기만 하고, 너튜브에서 찾아보니 이번에도 신체 강화 시리즈일 것 같다고는 하던데요?”
“그건 들어봤어요! 아마 바로 직전 시리즈가 악력 강화였죠?”
“맞아요. 그러면 영상은 보셨겠네요. 맨손으로 쇠몽둥이도 그냥 우그러뜨리는 거요.”
“아마 본 것 같아요. 그래서 어디에 효과가 있는지는 확실하게 알기가 힘들겠네요. 궁금한데.”
누가 보면 일행으로 착각할 정도로 행인은 어색함 없이 대화를 이어 나갔다.
“제 생각엔 청각이나 후각을 강화해주는 시약일 것 같아요. 지난번에 강수겸이 인간의 오감에 대해서 말한 인터뷰를 봤거든요. 그리고 세 달쯤 됐나? 미각 강화도 한 번 나온 걸 보면 이제 타이밍 같아요.”
“그거 말 되네요. 근데 이렇게 줄 서서 사면 돈이 되나요? 한정판으로 만든 시약들은 대부분 재미를 위한 것들이라 효과 시간도 짧다고 들은 것 같은데.”
“희귀하다고 하면 무조건 돈이 되죠! 그것도 해외에는 출시도 안 한다는 국가 한정판인데요?”
“그런가?”
행인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계속 의심하자 줄을 서 있는 남자가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 그러면 안 사면 되지. 누가 아저씨더러 사라고 합니까? 왜 초를 치세요?”
본인의 열정이 헛된 노력이 아닌가라는 의심이 불쾌한 듯했다.
“미안합니다. 대답 고마웠어요. 덕분에 알았네요. 그리고 아마 시력일 겁니다.”
“뭐가요?”
“내일 판매한다는 시약이요. 시력이 일시적으로 3.0까지는 올려주는 시약일 것 같은 예감이 드네요. 귀찮게 해서 미안해요.”
행인은 예언가마냥 한마디 툭 던지고 이내 자리를 떠났다.
다시 북적이는 길거리.
좀 전의 행인이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앞에 연금술 샵이 보였다.
아르케 타워가 세워지고 정부 차원에서 서울 곳곳에 세운 상점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최고로 많은 연금술 제품 종류를 가지고 있고 가진 재고도 제일 많은 건 강수겸이 직접 운영하는 타워 내 상점이었지만, 그곳은 이미 일종의 관광 상품처럼 된 지 오래.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시약을 사러 가기엔 줄도 길고 너무 번잡스러웠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르케 타워를 찾기보다는 연금술 샵을 애용하고 있었다.
행인이 연금술 샵 창문에 써 붙인 글씨를 읽었다.
[힐링 포션 원액 있음. 어웨이큰 품절.]연금술 샵 안을 보니 비좁은 공간에 덩치 큰 외국인이 여럿 서서 이 앰플, 저 앰플을 집어 장바구니에 담고 있었다.
‘딱 보니 외국에서 시약을 사러 온 상인들이구만. 구하기가 힘들어서 소매가로 사재기를 한다더니 그 말이 맞나 보네.’
행인은 이내 시선을 거두고 다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행선지가 정해지지 않은 듯 거리를 방황하는 느낌으로 길을 걸었다.
그때 고개를 들어보니 옥외에 설치된 전광판에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대한 제약 신약, 아토피성 피부염에 극적인 효과를 인정받아…….]행인이 피식 웃었다.
아나운서의 타이틀 소개가 끝나자 아나운서 옆에 앉아 있는 남자가 화면에 비췄다.
대한 제약의 이찬수 실장이었다.
“안녕하세요. 대한 제약의 이찬수입니다.”
“이번 신약의 효과가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인지와 또 신약 개발의 비결이 궁금하네요.”
아나운서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찬수에게 물었다.
“우선 효과를 말씀드리자면 기존 아토피성 피부염 치료법을 스테로이드를 사용하면서 증상을 완화시키는 정도밖에 없었습니다. 확실한 치료제가 없었죠.”
“그렇죠. 그래서 치료하기 어려운 질병 중 하나로 손꼽히죠.”
“맞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개발한 신약은 여러 차례 반복해서 증상이 발현된 부위에 도포할 경우 완전히 치료가 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재발하는 경우는 현재까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말 그대로 정복한 셈이로군요?”
“예. 아나운서님 말씀대로 저희는 이번 신약으로 아토피성 피부염에 대해서는 완전히 극복해냈다고 보고 있습니다. 이 같은 성과는 연금술 영역과 현대 인류의 기술을 접목한 덕분입니다.”
“그 말은 전 세계 유일의 연금술사 보유국인 우리 대한민국이 향후 제약업계의 선두주자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처럼 들리는데요?”
아나운서가 단어 하나하나마다 힘을 주어 표현했다.
“그리 과장된 표현이 아닙니다. 이미 연금술사이신 강수겸 씨는 저희 대한 제약과의 적극적인 협업에 동의하셨고, 저희는 그 덕분에 좀 더 적극적인 자세로 연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이찬수는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강수겸 씨,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그 뒤에 몇 가지 질문과 답변이 이어졌지만, 이미 행인은 관심을 꺼버린 지 오래.
행인은 길을 걷고 또 걸었다.
그리고 발걸음을 멈춘 곳은 다시 아르케 타워였다.
다만 좀 전과는 다른 것은 정문이 아닌 관계자만 출입이 가능한 옆문이라는 것.
삑―
행인은 지문으로 문을 열고 곧바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도착한 곳은 3층. 스마트팜 설비가 된 곳이었다.
“왔냐?”
민환이 엘리베이터 도착음을 듣고는 고개를 돌려 누군지 확인하며 말했다.
“응. 뭐 하고 있었어?”
“뭐하긴. 뉴스에 이찬수 실장님 나오길래 다 같이 좀 보다가 여기 식물들도 살피고 했지 뭐. 넌 어땠는데?”
민환은 행인, 아니 수겸에게 물었다.
“밖에 거의 한 시간을 돌아다녔는데 아무도 못 알아보네. 성공인 것 같아.”
“거봐. 내가 무조건 성공이랬잖아. 나도 지금 네 얼굴을 보고 있지만 진짜 묘하게 낯선 게 길에서 만나면 못 알아볼 것 같다니까?”
“진짜 신기하네. 내가 만들었지만 이건 좀 대박인 것 같아. 위장 물약이 이런 것일 줄이야?”
수겸이 주머니에 넣고 들고 다니던 앰플을 꺼냈다.
진한 초록색의 시약이 들어 있는 앰플이었다.
“그냥 바르기만 하면 보는 사람의 착시를 유도해서 다른 인상착의의 사람처럼 보인다고?”
민환이 앰플을 낚아채며 되물었다.
“응. 실제로 얼굴이 바뀌는 건 아니고 착시야. 그러니까 진짜 대박인 거지.”
수겸은 높아진 톤으로 재차 강조했다.
“사장님!”
“사장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아르케 멤버들이 한꺼번에 내리며 수겸을 불렀다.
그들은 아직 수겸이 무슨 종류의 시약을 테스트했는지 모르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은 수겸의 뒷모습만 보고 있어 전혀 눈치챌 수 없는 상태.
수겸이 뒤돌아봤다.
“응?”
“사장님이 아니셨네.”
박동현은 곧바로 뭔가 이상하다는 눈치를 챈 것 같았고, 최영지는 대번에 태세 전환을 했다.
“나야. 하하.”
그런 모습을 보니 수겸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어떻게 된 겁니까?”
조태규 역시 영문을 알 수 없기는 매한가지.
“새로운 시약을 테스트하고 온 참이에요. 이건 제가 누군지 알아볼 수 없게 하는 시약이거든요.”
그러자 조태규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좋긴 한데, 너무 위험한 것 아닙니까?”
“그건 그렇죠.”
수겸 역시 생각을 못 한 것은 아닌지라 웃음기를 거두며 답했다.
“사기꾼 같은 범죄자들 손에 들어가면 옷에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라. 사기꾼이 남, 녀 성별은 못 바꿔도 이것만 있으면 새 이름만 파면 활개를 칠 겁니다.”
“혹시 모르죠. 어떤 사기꾼은 남, 녀도 바꿀지도?”
조태규는 진지하게 말했지만, 민환이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개소리 좀 작작해. 그리고 이건 애초에 저만을 위한 시약이에요. 남들은 주지도 않을 거고, 판매도 안 합니다.”
수겸이 민환을 질책하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면 왜 만드셨습니까?”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은호가 손을 번쩍 들며 물었다.
“너희는 가끔 나를 무시하고 있지만, 내가 생각보다 좀 유명해져서 말이야.”
수겸이 어깨를 으쓱했다.
“저희가 언제 무시를 했다고…….”
“아무튼 평소에 시약 제작하고 일상 생활할 때는 그닥 불편하지 않는데 말이야. 뭘 맘먹고 하려고 하면 얼굴이 팔린 점이 불편할 것 같아서.”
“또 무슨 짓을 하려고 그러냐?”
민환이 수겸을 째려보았다.
“이제 동현이 형이 힐링 포션 정도는 생산이 되니까 나도 바깥 활동을 시작할까 해.”
“오! 동현이 형, 진짜예요?”
수겸의 말에 모두가 박동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으응. 얼마 전에 처음으로 성공했어.”
박동현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무래도 아직은 연금술사로서의 모습이 쑥스러운 모양이었다.
“연습하다 보면 속도도 나고 생산량도 늘겠죠. 제가 이 순간을 위해 형을 가르친 것이 아니겠습니까?”
수겸의 너스레에 박동현은 어안이 벙벙했다.
약간 뒤통수를 맞은 듯한 느낌이랄까?
“너?”
“에이. 장난이에요. 장난. 다른 건 아니고 의뢰가 하나 들어와서요.”
수겸이 앞으로 걸어 나가 모두의 앞에 서며 말했다.
“무슨 의뢰입니까?”
“사장님! 또 해외에 나가요?”
“응. 이번엔 중국으로 가야 해.”
“왜요?”
최영지의 눈빛이 똘망똘망 빛났다.
“전염병이 돌고 있다고 하네. 아마 중국 내에서는 이미 유행이 시작된 모양인데, 대외적으로는 쉬쉬하는 것 같아.”
“증상이 어떻답니까?”
조태규가 물었다.
“기본적으로는 감기랑 비슷하긴 한데 전염성이 엄청 강한가 봐요. 원인은 아마도 잘못된 식재료라고 하던데.”
“근데 왜 사장님이 가요? 비밀이라면서요.”
“내가 안 가면 어떻게 해결을 하겠어? 원래대로 하려면 역학조사도 하고 연구도 해야 할 텐데 그게 조용히 되겠어?”
“하긴, 네가 가면 혼자서 원인을 좀 살펴보고, 증상도 보면 끝이긴 하지.”
수겸이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응. 기본적인 건 힐링 포션으로 해결이 되기도 할 테니까.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내가 딱이긴 하지.”
수겸이 문득 고개를 돌려 밖을 쳐다보며 생각했다.
‘리카르도 아저씨. 이제야 이곳에서 연금술이 인정받고 퍼지고 있어요.’
수겸은 백발의 할아버지를 처음 본 날을 떠올렸다.
크림빵 하나.
‘고작 크림빵 하나의 인연으로 대뜸 연금술을 배우고, 여기까지 왔어.’
수겸이 다시 고개를 돌려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아르케 멤버들을 하나씩 살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함께해준 민환으로 시작해 최영지, 이은호, 조태규, 동철 그리고 박동현까지.
여기까지 온 건 전부 이들 덕분이었다.
‘아직 끝이 아니야. 이제 시작이지.’
수겸은 미소 지었다.
이제 지금까지는 다른 수겸의 여정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