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Need to Raise My Sister Right RAW novel - Chapter (175)
외전 9.
***
렉서빌 대공성, 연회장.
초대를 받고 찾아온 귀족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사교계와 정계에 진출하겠다는 뜻일까요? 갑자기 파티라니.”
“아그너스가와 불화가 있다던데, 혹시 새 황제 폐하에 반하는 세력으로 자라는 건 아닐지 우려되는군요.”
“그것도 그렇지만, 저는 좀 걱정되는군요. 대공 전하가 참석한 자리에서는 꼭 무슨 일이 터졌으니까요.”
“그래도 좋은 기회라는 건 분명합니다. 이번 기회에 대공가와 연을 만들어 두면…….”
대부분 귀족들의 관심사는 이번 파티 이후 대공가가 보일 행보였다.
음료를 서빙하는 고용인들은 이 파티의 목적이 정치와 전혀 연관이 없음을 알기에 속으로 웃을 뿐이었다.
대공가의 앞날에 대한 이야기로 꽃피운 지 얼마나 지났을까.
“아그너스 공작 각하와 공작영애가 드십니다!”
시종이 문밖에서 귀빈의 도착을 알렸다.
사람들의 이목이 연회장 입구로 쏠렸다.
굴곡진 몸매를 감싼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레이첼과 리즈를 발견한 이들의 눈동자에 온갖 욕망이 떠올랐다.
내전으로 시끄러웠던 제국을 안정시킨 일등공신.
아름다운 데다가, 심지어 독신 공작이다.
부와 명예, 권력을 바라는 자들은 그녀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레이첼은 고고한 표정으로 턱을 치켜세운 채 안으로 입장했다.
‘이 인간은 드레스 코드 맞추자고 해놓고…….’
파트너로 입장할 것처럼 굴더니, 정작 도착했을 땐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를 맞이한 건 미안한 기색이 가득한 집사 커티스였다.
“대공 전하의 연회복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 준비가 늦어지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먼저 연회장에서 기다리시지요.”
그리하여 대공 없이 리즈의 손을 잡고 입장하게 되었다.
원래 예정대로였다면 대공, 저, 리즈.
이렇게 세 사람이 함께 입장했어야 하건만.
어쨌든 가뜩이나 꼬인 심사가 더 꼬이게 되었다.
편지로 그렇게 배려라는 걸 해보라고 말했는데도 이 모양이라니!
“사람들이 많은 곳엔 오랜만이지?”
“으응. 노스 공작님 생신 파티 때처럼 진짜 많아…….”
쏟아지는 시선에 부끄러웠는지, 리즈가 볼을 발갛게 물들이며 그녀의 뒤에 숨었다.
“앞으론 사람들이 많은 곳에 익숙해져야 해. 리즈도 언젠간 사교계에 데뷔해야 하니까.”
“응. 근데 오늘 쌍둥이들은 안 와요? 오랜만에 보고 싶은데…….”
“노스 공작도 참석한다고 했으니까 쌍둥이도 볼 수 있을 거야.”
쌍둥이를 찾기 위해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리즈의 어깨를 감싸며 걸음을 옮길 때였다.
“공작님! 리즈!”
쟈엘이 해사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공작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간 무탈하셨는지요? 할아버지로부터 공작님이 세운 공에 대해 듣고, 다시 뵐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누가 봐도 외운 대사로 인사하는 노엘까지.
“못 본 사이에 많이 컸구나.”
레이첼이 쌍둥이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내 살다 보니 이런 일을 다 보는군. 대공성에서 파티라. 허허…….”
“노스 공작, 오셨군요. 황실의 일은 잘 마무리되었습니까?”
노스 공작이 허허 웃으며 다가왔다.
“물론이네. 한데 대공은 어디 있는 건가? 올 손님들은 거의 다 온 것 같은데 주인이 얼굴을 내밀지 않는군.”
“그러게 말이에요.”
레이첼은 노스 공작과 대화를 하다가, 저를 발견하고 다가온 앨런과 체이스와도 인사를 나누었다.
그에 기다렸다는 듯이 다가온 귀족들 사이에 둘러싸이고 말았다.
그녀와 짧게 안면이라도 트고자 하는 이들로 인해 피로와 짜증이 치솟을 때쯤이었다.
“렉서빌 대공 전하께서 드십니다!”
시종이 대공의 등장을 알렸다.
그가 등장한 순간, 시끌벅적하던 연회장이 정적으로 가득 찼다.
검은색 연회복을 입은 그를 필두로 갑주 차림의 기사단원들이 연회장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이 오로지 레이첼 한 사람뿐인 것처럼, 단숨에 그녀를 발견하였다.
“…….”
순간, 그가 숨을 들이켰다.
평소보다 과감하고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레이첼에게 고정된 눈동자에 붉은 기운이 감돌았다.
갈증이 나는 사람처럼, 그의 목울대가 위아래로 울렁거렸다.
이내, 마른침을 삼킨 그가 레이첼을 향해 망설임 없이 직진했다.
거침없이 다가서는 대공으로 인해 겁에 질린 귀족들이 기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대공, 이게 무슨…….”
레이첼이 제 앞에 선 그에게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강렬한 눈빛에 담긴 드레스 속에 감추어진 속살을 낱낱이 훑을 듯 농도 짙은 욕망에 입안이 바싹 말랐다.
두 사람 사이에 감도는 묘한 긴장감은 대공이 갑자기 한쪽 무릎을 꿇으면서 조각났다.
“대공……?”
황제 앞에서도 무릎을 꿇지 않는 남자가 아니던가.
렉서빌 대공은.
한데 그런 그가 신에게 헌화하듯 경건한 표정으로 무릎을 꿇었다.
귀족들이 헛숨을 들이켰다.
뒤에 일정한 간격으로 도열한 기사단원들 또한 그를 따라 무릎을 꿇었기 때문이다.
주군을 향해 보이는 기사의 예였다.
대공가의 모든 것을 그녀의 손아귀에 쥐여주겠다는 선언이자, 그녀의 적이라면 누구든지 맹렬하게 짓이기겠다는 맹세.
그에 압도당한 레이첼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레이첼.”
그가 그녀의 이름을 나직하게 부르며 고개를 들었다.
검은 눈동자 속에 담긴 긴장감.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아, 심장이 기대감으로 쿵쿵 뛰었다.
“당신을 만나기 전까지는 삶의 의미가 없었다. 전장을 떠돌며, 언제 죽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었지. 그런데 당신을 만나고 나서 변했어.”
살고 싶어졌다.
감히…….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고 싶어졌다.
다른 누구도 아닌, 당신과.
테오는 마음 깊숙한 곳에 묻어 놓았던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으며, 품에서 반지를 꺼냈다.
“……내 모든 것을 바치고 싶다. 당신을 위해 살고 싶으니, 부디 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어 줄 수 있겠나.”
간절함을 꾹꾹 눌러 담은 목소리에 레이첼의 눈동자가 촉촉하게 젖어 들었다.
“……기다렸잖아요.”
이렇게 곧장 풀어지면 안 되는데.
남들 앞에서 공개 청혼을 해버리니까, 마음이 약한 저로서는 풀어주는 수밖에 없잖은가.
레이첼이 손을 내밀자 그가 희미하게 웃으며 반지를 끼웠다.
***
쾅!
침실 문이 거칠게 열리며 벽에 부딪혔다.
안으로 성급하게 들어선 테오가 입술을 부딪쳐 왔다.
“잠깐, 그거, 으응…….”
갈라진 입술 틈새로 혀가 들어오자, 하고 싶었던 말이 잡아먹히고 말았다.
다급하게 따라붙는 입술로 인해 이리저리 흔들리는 여체를 안아 들고, 침대로 향했다.
털썩.
여기까지 뛰다시피 온지라, 가슴이 들썩였다.
레이첼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저를 잡아먹을 듯이 내려다보는 사내를 향해 물었다.
“그거, 보좌관한테 반지는 왜 준 거예요?”
“그 반지는 단테가 고른 거야. 당신에게 청혼하라고. 하지만, 당신에게 줄 반지만큼은 내가 고르고 싶었다.”
“그럼, 침실에서는 왜 그런 모습으로 있었어요?”
“그건…….”
테오가 잠시 대답을 머뭇거렸다.
그것도 잠시.
“걱정할까 봐 말하지 않았지만, 옆에 당신이 없으면 아직도 잠을 잘 못 자. 그래서 그랬어.”
“아…….”
그녀는 자신을 서운하게 했던 사건의 전말이 실은 제 편견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깨닫자 탄식했다.
우리가 서로 연인이나 다름없는 사이였을 때도 관계를 명확히 정의내리지 못했던 남자였으니까.
사귀자는 고백 또한 보좌관이 언질을 주니까 등 떠밀리듯 했었으니까.
그랬었는데…….
그 또한 저와의 미래를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니, 가슴에 따듯하고 몽글몽글한 기분이 차올랐다.
“서운하게 했다면 미안하다. 숨김없이, 내 마음을 다 말하고 싶지만 아직은…… 서툴러.”
“…….”
“노력할 거야. 당신과 함께 있을 때 느끼는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게 연습할 거니까, 조금만 참아줘.”
오만하고 거만하던 남자가 저자세로 나오니까 어색하기 그지없다.
줄곧 하던 대로 했다면 그것도 문제지만, 다정하니까 또 다정한 대로 어색해서 닭살이 돋았다.
그녀는 어색한 기분을 환기하기 위해 일부러 가벼운 화제를 던졌다.
이렇게 있다간 가슴이 터지겠다.
“그, 근데 조금 전에 저한테 한 말이요. 다른 사람… 이 대본 짜 준 거죠?”
“……뭐?”
“그게 아니고서야, 말도 안 되니까요…….”
테오는 그녀의 의심이 기가 막혔는지 헛웃음을 치며 부정했다.
“아니야. 온전한 내 마음이다. 왜 못 믿는 거지?”
“과거를 돌이켜보세요. 분명, 보좌관의 도움을 받았을 거야.”
사귀자는 말도 결투 신청하듯이 하는 남자다.
그런 남자의 입에서 멀쩡한(?) 고백이 나오다니.
믿는 게 더 이상한 일이 아닌가?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은 속마음이야.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았어.”
그가 지그시 내려다보며 물에 잠긴 듯 욕망에 가라앉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못 믿겠다면 보여줄까.”
그가 귓불을 잘근잘근 씹으며 뭉근한 열감이 맴도는 하복부를 바짝 붙였다.
“내가 당신을 얼마나 원하고 있었는지.”
“……읏.”
예민해진 감각에 어깨를 움츠리며 신음하자, 그가 작은 소리로 웃었다.
“아까 내 마음을 표현하는 연습을 하겠다고 했었지.”
그녀의 위에 올라탄 테오가 느릿하게 상의 단추를 풀어내며 중얼거렸다.
“지금 하면 되겠군.”
벌어진 옷깃 사이로 육감적인 가슴이 드러났다.
오밀조밀하게 꽉 짜인 단단한 복근까지도.
자신의 얼굴을 핥듯이 훑어 내리는 야릇한 눈빛에 담긴 정염 때문일까.
아직 아무 일도 시작되지 않았지만, 둔덕이 가파르게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당신의 몸에 내 흔적을 새기고, 나로 가득 채우고 싶어. 연회장에서 당신을 봤을 때부터 줄곧 이 상태였어.”
레이첼이 그의 볼을 매만지며 말했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면, 믿을 수 있게 만들어 주실 건가요……?”
그녀의 말에 족쇄가 풀린 맹수처럼, 테오가 고개를 숙여 입안을 거칠게 헤집었다.
뜨거운 살이 입안을 문지르자, 얕은 신음이 간헐적으로 터져 나왔다.
드레스로 파고드는 성마른 손바닥, 얼굴 위로 쏟아지는 뜨거운 숨에 그녀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한없이 뜨거우면서도, 다정하고도 사나운 애정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