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Need to Raise My Sister Right RAW novel - Chapter (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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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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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잠을 깨운 건, 눈을 감아도 파고드는 햇살이 아닌 뜨거운 손바닥이었다.
레이첼은 이 손바닥의 주인을 알고 있었다.
등살을 느릿하게 어루만지다가, 그래도 깨어나지 않으면 예민한 귓바퀴를 잘근잘근 씹어대는 남자.
그는, 레이첼의 남편이었다.
“으응. 조금 더 자고 싶어…….”
레이첼이 칭얼거렸다.
그녀의 체력은 새벽까지 땀을 흘려도 멀쩡한 테오처럼 대단하지 못했다.
집안에서 가볍게 운동하고, 건강을 생각해 균형 잡힌 식단을 먹어도 테오의 체력을 따라갈 수 없는 게 당연했다.
“이제 슬슬 일어나야지. 5분만, 5분만 이따가. 이러는 사이에 벌써 1시간이나 지났으니까.”
“헉! 진짜?”
세상에.
한 시간이나 늦잠 자버린 거야?
레이첼이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몸을 가린 이불이 스르륵 흘러내리자, 목덜미 한가득 피어난 붉은 반점이 훤히 드러났다.
지난밤, 본인이 새긴 자국을 지그시 바라보던 그가 느른하게 웃으며 그녀를 감싸 안아 다시 침대로 뉘었다.
“엥?”
“어차피 밥 먹을 시간이 지났으니, 차라리 점심을 든든하게 먹는 게 더 효율적일 것 같은데……”
나른한 목소리로 말꼬리를 흐린다는 건 불이 붙었다는 신호다.
‘이 인간이 아침부터 증말……!’
얌전히 있었다가는 점심도 늦게 먹을 각이다.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오늘 약속 잊었어요?”
오늘은 1년에 단 하루뿐인 ‘기념일’이었다.
특별한 날인데 아침잠에 취해 아까운 시간을 날리다니.
‘이러다가 계획이 틀어지겠어!’
위기감을 느낀 레이첼이 그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황급히 침대 밖으로 벗어나려 했으나.
화악.
그가 팔을 뻗어 허리를 끌어안았다.
“놔 줘요! 나 진짜 힘들단 말이야. 어제 그렇게 해 놓고 아침까지 그러면 진짜 양심 없는 거라고요!”
순식간에 그의 품에 안겨 버린 그녀는 어떻게든 벗어나기 위해 팔다리를 휘저었다.
“난 원래 양심 없어.”
“아, 진짜!”
테오가 레이첼의 귓가에 입술을 가까이 가져가며 갈라진 목소리로 속삭였다.
“미안한데…….”
솜털이 곤두설 만큼 색기 어린 목소리에 레이첼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내 품 안에서 그렇게 바르작거리는 것은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야.”
움직일 때마다 마찰하는 살결로 인해 자극만 더해질 뿐이니까.
움찔.
레이첼이 붉어진 얼굴로 입술을 감쳐 물었다.
자신의 등에 닿는 남자의 가슴 아래서 뛰고 있는 심장 박동이 그대로 전달되어 왔기 때문이다.
쿵, 쿵, 쿵.
“젠자앙. 샤워만 하고요…….”
이미 계획이 틀어졌겠다.
따뜻한 눈으로 저를 지그시 바라보는 남편의 유혹에 져버리고 말았다.
결혼한 지 3주년.
그들은 애타는 신혼이었다.
***
레이첼은 테오에게 청혼받은 후 반 년 뒤에 결혼식을 올렸다.
두 사람의 결혼식은 성대했다.
예식장을 값비싼 생화로 도배하고, 홀 안의 샹들리에를 전면 교체했을 뿐만 아니라, 하객 명단 또한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노스 공작부터 시작해, 황제의 학문 스승이 된 윈체스터 백작과 황군을 통솔하게 된 머스크 백작 등등.
황제 또한 결혼식에 참석하고 싶어 했지만, 황궁을 비울 수 없기 때문에 선물을 보냈다.
그것도 일국에서 제국에 보내는 공물 양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어쨌든, 오늘은 그런 두 사람의 ‘결혼기념일’이었다.
“아우, 짜증 나. 정말. 이번에는 정말 제대로 챙길 예정이었는데……!”
레이첼이 입술을 삐쭉 내밀며 툴툴거리자, 앤이 배시시 웃었다.
“작년에도 그리 말씀하시지 않았나요?”
“끄응. 그러니까 이번에는 정말 계획대로 기념일을 즐길 생각이었다고.”
“공작님, 원래 인생은 계획대로 흘러가는 게 아니에요.”
“……그건 나도 알지만, 조금 속상해서 그렇지.”
새벽 내리 격렬한 운동을 시킨 남편을 탓해야 할지, 그도 아니면 늦잠을 잔 제 탓을 해야 할지.
‘어차피 일찍 일어났다 해도 그 인간은 순순히 날 놓아줄 사람이 아니니까. 무조건 테오 탓이야.’
그도 그럴 게, 작년과 재작년 모두.
오늘처럼 남사스럽게 이른 아침에도 어른의 시간을 보낸 터라 계획이 모두 망가져 버렸다.
올해는 다를 줄 알았건만…….
너무나 건강한 남편 때문에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럴 수밖에 없기는 하지만, 뭐…….’
결혼한 지 3년이 지났으나, 레이첼과 테오는 아직 따로 살고 있었다.
주말부부랄까.
리즈가 성인이 되어 공작 위를 물려받기 전까지는 아마 합가하지 않을 것이다.
그도 그렇지만, 저 또한 영지를 다스리는 영주인지라.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떨 때 보면 리즈한테 참 고맙단 말이야.’
만약 합가했다면 저는 매일 같이 저 욕망 덩어리 남편한테 시달리느라 기력이 남아나지 않았을 테니까.
“리즈, 오래 기다렸어?”
앤의 시중을 받아 외출 준비를 마친 레이첼은 리즈의 방으로 갔다.
리즈는 화려한 레이스와 프릴로 장식된 살구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인형처럼 귀여워서, 볼을 비비적거리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다.
“아구구, 누구 동생이길래 이렇게 예뻐?”
“언니이 동생!”
리즈가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레이첼에게 안겨들었다.
그러면서 손안에 슬쩍 무언가를 만들어냈다.
“언니, 결혼기념일 축하해요.”
리즈가 눈꼬리가 접힐 만큼 한껏 미소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
얼음으로 만든 장미 한 송이였다.
“녹지 않게 마력을 꽉꽉 눌러 담았으니까 걱정하지 마요. 모자 핀으로 쓰면 예쁠 거 같아.”
“……고마워. 너무 예뻐.”
리즈는 어느덧 경지 높은 마법사가 되어 있었다.
3년 동안, 대공에게 마력을 컨트롤하는 방법을 배우고, 루퍼트와 아서와 대련을 하면서 실전 연습을 하더니…….
이젠 웬만한 기사단은 홀로 쓸어버릴 수 있는 능력자로 성장했다고, 루퍼트의 보고를 받았다.
괜히 눈물이 핑글 돌았다.
‘역시 리즈는 대단해…….’
공작 위를 물려받으면, 아마 저보다 훨씬 영지를 더 잘 꾸려나갈 것 같다.
“대공 전하는?”
“곧 올 거…… 아, 저기 온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던가.
말하기 무섭게, 복도 끝에 서 있는 그가 보였다.
포마드로 머리를 깔끔하게 정돈하고,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그는 한 마리의 흑표범처럼 우아했다.
괜히 입맛을 다신 그녀는 리즈의 손을 잡고 그의 앞으로 휘적휘적 걸어갔다.
“웬일로 예쁘게 입었네요.”
“기념할 만한 날이니까.”
3년 전과 달리, 테오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을 수 있는 남자가 되었다.
애정이 한껏 묻어나는 입술로 볼에 입을 맞춘 그가 손에 깍지를 꼈다.
“그래서, 부인. 오늘의 계획은 뭐라고 했지?”
“근린공원 앞에 있는 레스토랑에 갈 거예요. 3층에 앉으면 공원 안에 있는 인공 호수가 잘 보이거든요. 분위기도 좋고.”
사실 기념일이라고 해서 뭔가 특별한 데이트를 하는 건 아니었다.
그저 테오와 리즈.
이 두 사람과 함께 외식하고, 산책하다가 연극이나 오페라를 관람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
그게 전부였다.
특별할 것 없지만, 그럼에도 특별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나랑 테오, 리즈. 모두 다 이런 평범한 일상을 누리지 못하며 살아왔으니까.’
그래서 기념일 날 평범한 일상을 즐기는 건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완전히 평범한 일상만 보내는 건 아니었다.
기념일 당일에는 세 사람이 단란하게 외출하고, 그로부터 며칠 뒤에 가문 자체적으로 파티를 열었으니까.
***
“어서 오십시오. 세 분입니까?”
레스토랑의 직원이 다가왔다.
“레이첼이란 이름으로 예약이 되어 있을 거예요. 3층 자리로 잡았는데.”
“아, 예약 손님이시군요. 바로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세 사람은 직원을 따라 3층으로 올라가 창가 자리에 자리 잡았다.
창문이 활짝 열려 있어서 그런지, 시원한 바람을 타고 은은한 나무 냄새가 들어왔다.
“어때? 자리 잘 잡았지?”
“응. 진짜 좋다. 언니, 근데 저기 저 공원 예전에 우리 피크닉 갔던 곳 아니야?”
“응. 맞아.”
공주님 놀이한다고 같이 갔었지.
대공은 낮잠을 잤고, 저는 리즈와 실컷 공주님 놀이를 하다가 집으로 돌아왔었다.
그날의 기억이 떠오르자 설핏 미소가 떠오른 것도 잠시.
“음……?”
한 직원이 스테이크를 들고 올라왔다.
앞자리에서 시킨 모양이다.
그런데 왜 이러지?
분명히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고기 냄새인데…….
왠지 속이 역하다?
“우욱……?”
레이첼이 입술을 황급히 틀어막았다.
젠장, 이게 무슨 일이야?
그렇게 고대했던 외출인데 갑자기, 어째서, 왜?
“레이첼?”
“언니?”
테오와 리즈가 동시에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우웨에에엑.”
***
고대했던 기념일이었는데!
집으로 돌아왔다.
훌쩍, 훌쩍.
세 사람의 외출이 자신으로 인해 망했다고 생각한 레이첼이 훌쩍거렸다.
“울지 마.”
테오가 엄지로 다정하게 눈가를 문질러 닦았다.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안색이 창백하군. 정말 괜찮은 건가?”
“며칠 전부터 속이 더부룩하기는 했는데. 급체했나 봐요. 별일 아닐 테니까 걱정하지 마.”
“언니이. 진짜 괜찮아? 식은땀 흐르는 거 봐…….”
리즈가 손수건으로 레이첼의 이마를 콕콕 찍어 닦으며 울상을 지었다.
그렇게 구토를 해댔으니, 리즈가 걱정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별일 아닐 거야. 그렇지? 루먼.”
아그너스가의 주치의, 루먼 튜더스는 그저 체했다고만 생각하는 레이첼을 향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축하드립니다. 임신입니다.”
“어……?”
루먼의 진단에 레이첼과 테오, 리즈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뜨였다.
“임신이라고?”
“한 2개월 정도 되신 것 같군요. 허허.”
루먼이 풍성한 수염을 쓸어내리며 미소 지었다.
“임신……?”
레이첼은 살이 살짝 도톰하게 오른 배를 문지르며 중얼거렸다.
‘뱃살이 조금 붙은 거 같기는 했는데…….’
워낙 잘 먹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는데.
“언니. 그럼 리즈한테 동생이 생기는 거야?”
“으음, 동생이 아니라, 조카. 리즈, 벌써부터 이모가 되게 생겼네. 하하…….”
레이첼은 자신의 배를 말간 눈으로 응시하는 리즈를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 중일까.
오늘따라 유난히도 리즈의 감정이 읽히지 않았다.
마치 부러 꼭꼭 감춘 것처럼.
“그럼 리즈한테 언니 말고 또 가족이 생기는 거네?”
“어때?”
“아직 잘 모르겠어. 그냥…… 기분이 이상해.”
“실은 언니도 그래. 아기를 가졌다는 게 믿기지 않고 그러네.”
언젠가는 이런 날이 올 줄은 알았지만, 적어도 몇 년은 더 지난 뒤일 줄 알았는데.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아서 그런가.
그저 멍하기만 했다.
“……당신은 어때요?”
한참 동안 배를 매만지던 레이첼이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는 테오를 돌아보았다.
그는 뒤돌아선 채 아무런 대답도 없었다.
순간, 그의 표정을 확인하고 싶어 팔을 붙잡았다.
“아…….”
그는 왜인지 갈 곳을 잃은 사람처럼 황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두려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작년, 전 대공의 기일에 방문했을 때.
그에게 옛날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눈앞에서 스스로 돌아가셨다고 했었지…….’
어쩌면 오늘 들은 이야기가 있는 줄도 몰랐던 트라우마를 자극한 걸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안쓰러운 마음에 그의 손에 깍지를 꼈다.
자신이 보는 눈앞에서 부모님이 자진한다는 건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다.
그 어떤 말로 위로할 수 있을까.
“레이첼.”
그가 물에 잠긴 듯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응?”
“나는 아버지와 달라.”
“…….”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과 아이도 무책임하게 남겨두고 떠나지 않을 거야.”
자기 자신에게 하는 다짐 같기도 하고, 세상을 향한 선언 같기도 했다.
레이첼은 그의 어깨를 잡아 고개를 숙이게 했다.
“알아요.”
그는 본인의 속마음을 더 이상 숨기지 않겠다고 약속한 그 날부터, 그 말을 지켜왔다.
그러니까 늘 곁에 머물러 줄 거라는 약속 또한 지킬 것이다.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녀가 빙그레 웃자, 리즈가 질투가 났는지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허리를 끌어안았다.
“언니, 나도 평생 언니랑 같이 있을 거야.”
“흠흠, 그 마음 변하면 안 된다?”
나중에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마음이 바뀔지도 모르겠지만.
사랑하는 두 사람이 평생 곁에 있어 줄 거라고 약속하는데 어찌 행복하지 않겠는가.
그녀는 리즈와 테오를 끌어안으며 활짝 웃었다.
‘아직 엄마가 되는 건 무섭지만, 그래도, 행복해.’
최악의 결혼기념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최고로 특별한 날이었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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