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Obtained a Mythic Item RAW novel - Chapter 130
129화 잠깐의 휴식(2)
“……뭐야. 쟤 노래 왜 이렇게 잘해?”
재현의 입에서 얼빠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서이나의 노래는 실로 충격적이었다.
미성이 부드럽게 울려 퍼지며 분위기를 압도했고, 고음은 막힘없이 부드럽게 올라갔다.
재현은 넋을 잃고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동료들의 반응 역시 같았다.
“이나 뭐야?! 노래 왜 이렇게 잘해?! 가수야?”
“저 목소리를 지금까지 아끼고 있었다니…….”
김유정은 놀라움을, 안호연은 분통하다는 듯 주먹을 쥐었다.
이재상은 아예 손뼉을 치며 고개를 까딱거리고 있었다.
‘평소에 내성적이라 전혀 기대도 안 했는데, 왜 이렇게 노래를 잘하는 거지?’
재현은 넋을 놓고 서이나의 노래를 계속 감상하면서도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곳에서 배우지 않고서야, 저런 음정과 완급 조절은 나올 수 없었다.
잠시 후. 노래가 모두 끝나고, 서이나에게 다가간 재현이 물었다.
“이나, 너 어디서 노래 배운 거야?”
“……응? 아니.”
“근데 노래를 이렇게 잘 부른다고?! 미친. 이게 재능인가…….”
김유정이 끼어들며 충격을 받았다는 듯 도리질을 했다.
서이나는 잠시 고민하더니 되물었다.
“……내가 잘하는 편인 거야?”
“당연하지!”
이번에는 이재상을 제외한 일행 모두가 동시에 대답했다.
서이나는 얼굴을 약간 붉힌 채 자리에 돌아왔고, 김유정과 안호연은 그녀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불러 달라며 예약을 하기 시작했다.
서이나는 옅게 웃으며 마이크를 쥔 손을 꼼지락거렸다.
“……고마워. 내 노래를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는 건 두 번째야.”
재현은 그렇게 말하는 서이나를 보며 잠시 웃었다.
모처럼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 * *
며칠 뒤, 서울. 재현의 집.
“……그러니까. 웬만하면 조심하면서 일해야 한다. 알겠지?”
“알았어요. 그 소리 지금 한 스무 번은 들은 거 같거든요.”
재현은 이선화의 잔소리에 투정하며 소파에 앉아 TV를 보는 중이었다.
밀레스는 2주간 운영이 불가하므로 집으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말이야.’
재현은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도 TV 예능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러다, 불시에 그가 이선화에게 자신이 가져온 것을 건넸다. 작은 파우치에 담긴 물건이었는데, 안을 제대로 볼 수 없어 무엇인지 곧바로 알 수 없었다.
“이거 선물이에요.”
덤덤한 아들의 말에 이선화는 고개를 갸웃하며 파우치를 받아들었다.
‘재현이가 웬일로 나한테 선물을 다 주지?’
평소 착하지만 애정 표현이 거의 없던 아들이었다.
한데, 웬일로 자신에게 이렇게 선물을 챙겨주는 걸까?
들어보니 무게는 가벼웠다.
이선화는 손을 움직여 파우치의 지퍼를 당겼다.
잠시 후. 이선화의 동공이 수축하며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건…… 통장?”
“네. 저도 이제 돈 버니까. 뭐, 용돈이에요.”
재현의 말에 이선화는 어느새 그렁그렁해진 눈으로 아들을 바라보았다.
‘언제 이렇게 자라서 벌써 용돈도 주는 걸까.’
기쁘면서도 내심 마음이 아팠다.
일반적인 제 또래라면 아직 자신의 학창시절을 마음껏 즐기고 있을 것이다.
돈이 있다고 해도, 친구들과 놀러 다니기 바쁠 텐데.
‘……재현이는 항상 이런 애였지.’
아들은 언제나 이런 사람이었다.
자신보다 자신이 믿는 주변인들을 훨씬 더 챙기고 배려한다.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철벽을 치기 때문에 시니컬해보일지 모르지만, 자신의 사람에게만큼은 손해를 보더라도 맹목적으로 희생하는 사람.
이선화는 재현을 잠시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본 뒤 통장을 열어보았다. 조심스럽게 벗겨낸 겉표지. 그 내부를 확인하던 그녀의 손이 점차 떨려오기 시작했다.
“재, 재현아! 이게…… 정말 너 혼자서 번 돈이라고?!”
이선화는 경악을 금하지 못한 채 소리쳤다.
재현이 건넨 통장에 찍힌 금액은 아무리 적게 봐도 10억이 훌쩍 넘는 액수였다.
재현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전부 엄마 쓰고 싶은 대로 쓰세요.”
무뚝뚝하게 건넨 말.
그 말을 하는데, 어째서일까.
마음 한편이 아릿한 생소한 감각이 휘몰아쳤다.
예전에 그토록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아들 성공했어요. 라고 말하며 어머니를 꼭 안아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못난 아들이라. 전선에서 끊임없이 구르면서도 어머니를 챙겨드리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재현은 회귀 후. 지금껏 끊임없이 현재를 바꾸었고, 여기까지 도달했다.
이제 남은 것은 자신의 가족과 동료들을 지키는 것. 그리고.
‘오딘을 죽이고 모든 비극을 끝맺는 것뿐.’
오딘은 언제가 됐든, 미드가르드를 침공해 올 것이다.
또한 재현은 되찾은 삶을 빼앗길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이제 돈 걱정하지 마시고 좀 편하게 사세요.”
재현은 그렇게 말한 뒤, 멋쩍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선화는 그런 아들을 꼭 껴안아 주었다.
어머니는 말했다.
“많이 힘들었지.”
재현은 어머니의 말에 어떻게 대답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회귀 전. 자신은 언제나 이 질문에 같은 거짓말을 했었다.
아니요, 안 힘들어요.
실은, 어머니 당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재현의 말이 거짓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이번에는 조금 다른 답을 하기로 했다.
“힘들었어요.”
“……알아. 엄마는 다.”
이선화는 아들의 등을 두드려 주며 그렇게 말했다.
괜스레 눈물이 차올랐지만, 고개를 들어 눈을 끔뻑이며 애써 삼켰다.
그렇게.
집이 눈물바다가 될 뻔했던 그 순간.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
딩동―.
재현은 채 흐르지 못한 눈물을 소매로 닦아낸 뒤,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색 후드를 입고 있던 탓에 소매 끝이 조금 거무튀튀하게 물들었다.
“제가 나가 볼게요.”
재현은 재빨리 현관으로 향해 문을 열어주었다.
그러자.
“어?”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재현이 어버버 하는 사이 앞에 선 여자가 재현에게 인사를 건네왔다.
“……안녕.”
재현의 머릿속에 한 가지 사실이 또렷이 새겨졌다.
어떻게 얘가 우리 집을 알지?
문 앞에 서 있던 사람은 다름 아닌 서이나였다.
재현은 곧바로 이게 누구의 소행인지 깨달았다.
“뒤에 숨어 있지 말고 튀어나오지?”
“에이. 뭐야, 들켰네.”
재현의 말과 함께, 서이나의 뒤에 숨어 있던 김유정이 모습을 드러냈다.
재현이 어이가 없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이번엔 또 무슨 일인데?”
“아~ 우리 집에서 오늘 고기 파티할 거거든. 너도 오라고.”
“맞다. 너희 부모님 오늘 한국 들어오시는 날이었던가?”
재현이 생각이 났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김유정이 긍정했다.
“엉. 엄마가 맨날 신세 진다고 너 꼭 불러 오랬단 말이야.”
재현은 잠시 고민한 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하긴, 네가 평소에 신세를 좀 많이 지긴 하지. 반성 좀 해라.”
“뭐래. 아주머니한테 신세 지는 거지. 내가 언제 너한테 신세를 졌냐?”
‘벌써 시기가 그렇게 됐구나.’
재현은 옥신각신하면서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벌써 4월 말. 밀레스 아카데미에 입학한 지 두 달이나 되었다.
‘그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지.’
재현이 잠시 고민하자, 김유정이 채근하며 말했다.
“야. 웬만하면 오지? 우리 엄마 아빠도 너 오랜만에 본다고 좋아하시던데.”
‘뭐…… 오늘은 쉬기로 한 날이니까.’
“알았어. 갈게.”
“그래. 그럼 좀 이따 씻고 우리 집에 와. 저녁 여섯 시에.”
재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섯 시면 아직 시간은 충분했다.
좀 더 쉬다가, 적당히 낮잠이라도 자고 일어나면 되겠지.
“알았어. 이따 보자.”
재현이 가볍게 인사를 나눈 뒤 문을 닫으려던 찰나.
서이나가 잠시 멈칫하더니 물어왔다.
“……재현아. 너 혹시…… 울었어?”
자세히 보니 서이나의 시선이 거뭇하게 젖어버린 재현의 소매로 향해있었다.
“어?”
재현은 당황한 듯 재빨리 제 소매를 가리며 말했다.
“아니. 그냥 엄마 설거지 돕다가.”
“……그렇구나.”
잠시 머문 침묵. 재현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저녁 여섯 시랬지? 이따 보자.”
“……응.”
재현은 멀어지는 두 사람을 배웅해 주었다.
잠시 후. 점처럼 찍힌 둘을 바라보던 재현이 작게 중얼거렸다.
“이나…… 의외로 관찰력이 좋네.”
회귀 전 읽었던 기사 속 서이나는 타인에게 무관심하고 냉정한 데다, 자신의 길드원에게도 차가운 사람이었다. 어떻게 봐도 지금 그녀의 모습과는 괴리가 있는 셈이었다.
“역시 기사는 기사일 뿐이라니까.”
재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문을 닫았다.
* * *
샤워를 마친 뒤 옷을 갈아입기 위해, 재현은 옷장 앞에 섰다.
현재 시각은 오후 5시 40분.
곧 두 사람과 약속했던 시간이 되기에 서둘러야 했다.
옷장을 열어 내부를 둘러보던 재현이 작게 한숨을 내 쉬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올 때 옷이라도 좀 사오는 건데.”
안에는 입을 수 있는 사복이 거의 없었다.
밀레스 아카데미의 고된 수업 덕에 중학교 시절 입었던 옷은 거의 맞지 않았다. 어깨와 허벅지에 근육이 붙은 탓에 옷 사이즈가 커진 탓이었다.
“아카데미 입학 후에는 주구장창 교복만 입어 댔으니. 사복을 살 일이 딱히 없었지.”
잠시 고민하던 재현은 어쩔 수 없이 옷장에서 가장 품이 넓은 옷을 꺼냈다.
흰색 무지 후드와 검정 슬랙스. 또 그 위에 걸칠 흑청 재킷이었다.
옷을 갈아입은 뒤. 다시 시계를 보자 어느새 6시 정각까지 2분이 남아 있었다.
재현이 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 또 김유정 늦었다고 잔소리 엄청 하겠네.”
재현은 바로 집을 나선 뒤, 조금 빠르게 걸어 김유정의 집 앞에 도착했다.
집은 10분 거리. 그다지 멀지는 않았다.
문 앞에 도착해 초인종을 누르자. 아니나 다를까 김유정이 툴툴거리며 문을 열어주었다.
“너 7분 지각이야. 지각비 내.”
“개소리하지 말고 문 열어라.”
재현의 말에 김유정이 칫, 하며 짧게 혀를 찼다.
물론 행동과 다르게 문은 순순히 열어주었지만.
“이야. 너희 집은 어째 볼 때마다 더 넓어지는 것 같냐.”
“뭔 소리야? 가만있는 집이 왜 넓어져?”
재현의 말에 김유정이 어이가 없다는 듯 조소하며 말했다.
재현은 괜히 한 대 쥐어박아 주고 싶은 것을 겨우 참으며 쥔 주먹을 내렸다.
안으로 들어서자 열 명은 족히 앉을만한 고급 소파가 눈에 들어왔다. 거실에 걸려 있는 갖은 명화들과 바닥에 죽 깔린 유명 브랜드의 러그들.
재현은 새삼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김유정이 부잣집 딸이 맞긴 하구나…….’
김유정은 금수저까지는 아니더라도 은수저 정도는 되는 부잣집의 자재다.
부모님이 마수의 사체를 처리하고 거래하는 일을 하는데, 이 직종은 위험한 대신 수익성이 매우 높았다.
매년 벌어들이는 수익이 최소 20억이 넘어간다고 하니 더 말할 것도 없을 정도.
재현은 새삼 혀를 내두르며 집 내부를 죽 훑어보았다.
“……재현아 왔어?”
소파에 앉아 있던 서이나가 물어왔다.
재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아 맞다. 아까 묻는다는 게. 이나 너는 왜 여기 있어?”
“……그게. 딱히 갈 곳이 없었거든.”
“아…… 미안.”
재현은 서이나의 작아지는 목소리에 재빨리 사과했다.
이제 와서 기억해낸 거지만, 서이나는 현재 가족이 없다.
하나밖에 없는 할머니가 돈이 없어 돌아가신 이후. 그녀에게 가족은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딱 봐도 김유정이 미리 알고 자기 집에 초대한 거구만. 의외로 섬세한 구석이 있단 말이야. 안 어울리게.’
아마 김유정은 갈 곳 없는 서이나의 편의를 봐주고자, 그녀를 제집에 데리고 온 것일 터였다.
재현이 피식 웃으며 분주히 움직이는 김유정의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별안간 익숙한 목소리가 그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오! 재현이 왔냐! 오랜만에 아저씨 보네?”
“안녕하세요.”
재현은 인사를 하며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에게 인사를 해온 상대는 다름 아닌 김유정의 아버지였다.
“뭐? 재현이가 왔다고?”
이어 거실로 나오는 중년 여성은 당연히 그녀의 어머니.
덧붙이자면, 두 사람 모두 재현을 잘 챙겨주던 사람들이었다.
정이 많고 따뜻하던 이들.
‘회귀 전에 엄마를 잃은 날 잘 챙겨주시던 분들이지…….’
새삼 떠올리니 괜스레 코끝이 찡해졌다. 허나, 그때.
“아악!”
이내, 아저씨의 헤드락이 재현에게 직격했다.
아프진 않았지만, 덕분에 눈물이 깔끔하게 증발해 버렸다.
재현은 실없이 웃으며 생각했다.
‘다짜고짜 헤드락 거는 건 아무래도 집안 유전인가 보네.’
“재현아~ 진짜 오랜만이다. 온 김에 많이 먹고 잘 놀다 가~.”
“아, 네.”
아주머니도 재현을 환대해 주었다. 아저씨는 팔꿈치로 재현의 옆구리를 찌르며 말했다.
“요즘은 유정이가 너 안 괴롭히냐? 옛날에 초등학교 때는 맨날 네가 맞아서 나한테 일러주러 오고 그랬는데…….”
“……그걸 아직도 기억하고 계시네요.”
재현으로서는 벌써 수십 번도 넘게 들은 이야기였다.
김유정이 식기를 나르며 제 아버지의 발을 꾹 밟았다.
“아빠는 그런 헛소리 할 시간 있으면 빨리 음식 재료나 좀 나르지? 무겁단 말이야!”
“아, 알았다. 하여간, 누굴 닮아서 성격이 저리 괴팍한지…… 나중에 데려갈 남자가 있으려나 모르겠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하던 그가, 불시에 재현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어떠냐. 재현이 너라도 유정이 데리고 갈 생각은?”
아저씨의 말에 일순, 소파에 앉아 있던 서이나와 식기를 나르던 김유정의 시선이 재현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