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Obtained a Mythic Item RAW novel - Chapter 469
외전 18. 엔딩 – 헬라(1)
이것은.
어쩌면, 진짜일지 모르는 세계선의 이야기.
그 마지막 번째, 목적 그 자체가 사랑이 되어버린 여자에 대하여…….
* * *
사랑의 방향이 평등하게만 흐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는데, 이것은 큰 착각이라 말하고 싶다.
이를테면 지금의 내가 처한 상황이 그렇거든.
“하아… 어쩌자고 제가 재현 군에게 제 마음을 고백한 걸까요.”
두 손을 화악거리는 얼굴에 짚고 떼어내기를 벌써 몇 번이나 반복했지만 달라지는 것이라고는 전혀 없다.
그래. 이쯤 되면 인정하겠다.
나는 재현 군을 사랑하고, 그것의 느낌이 다른 이들과 조금 다를지언정 진심이란 것을 말이다.
더구나 그는 나에 대한 마음이 거의 없어 뭐라 할 수 없는 상태고.
그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은 내가 너무 늦게 내 마음을 그에게 전해주었기 때문에 생긴 일.
애석하게도 다른 누구에게 탓할 수도 없는 것이다.
나는 과거, 태어남과 동시에 배정된 나의 역할과 시절을 되돌아보았다.
헬라.
그것은 헬을 본떠 붙여진 내 이름이었다. 재현의 안내역으로 태어나 지금껏 그를 제대로 보필해 목표에 도달하게 할 존재.
명령에 어떤 의문도 가져서는 안 되는 존재인 나이지만 당연하게도, 최근 나를 신경 쓰이게 하는 고민은 존재했다.
불성실하다고 날 욕해도 좋다.
하지만 어찔 수 없다. 감정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가장 주체되지 않는 것은 바로 이것임을 막 알게 된 참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사랑… 그리고 재현 군에 관한 이야기였다.
‘뜬금없이 고백을 해 버린 탓에 걱정이 더 늘었겠지? 그렇지 않아도 재현 군은 지금 미치도록 바쁠 텐데. 거기서 나까지 일어서서 일을 더 만들어 줬으니…….’
이건 존재 자체의 실격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태어난 목적과 맞지 않는 행동.
비록 이제는 라그나로크가 모두 종료되었으며, 상황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어쨌거나 나는 보호자로서 재현의 곁에 존재해야 한다.
그럴 이유가 사라지면, 나의 존재는 자연히 더는 가치를 잃어버리게 되어 소멸을 기다리는 상황이 돼 버리는 것이다.
헬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으나, 내 생각은 다르다.
나를 유지하기 위해 꽤 많은 마력을 소모해야 하는 것이 바로 헬 아닌가?
완전히 독립했다 하더라도, 내게 일부 자신의 권능을 나눠준 상태.
어쨌거나 지옥의 지배자로서 군림하는 자에게 힘의 손실은 뼈아플 것이다.
때문에, 나는 오직 재현을 위해 존재해야 하며. 일종의 수행비서처럼 그를 돌봐야 하는 인물이다.
그래야만, 헬이 그 정도 고통을 감내하는 데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한데… 대체 어떻게 이런 상황에 부닥칠 수밖에 없게 되었는지 의문이다.
재현 군을 내가 엄청 사랑했는가?
“…인정하고 싶지는 않은데 맞긴 해. 어느 순간부터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 신성 찬탈. 재현 군이 로키의 힘을 각성한 때부터였겠지.”
재현 군은 자신을 구하기 위해 헤임달의 파편을 처치했다.
이는 당시 재현 군의 경지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으나. 끝의 끝에 도달한 그는 마침내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과업을 해내며 스스로 가치를 입증했다.
어째서 미미르와 로키가 자신을 선택했는가? 를 비롯해 왜 자신이 대적자일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유까지.
하물며 그 과정에서 나는 재현 군에게 목숨을 빚졌다.
사실 최악의 상황이 다가오면 내가 그를 구하기 위해 헬의 힘을 받았었는데… 그것이 되레 폭주해 버리며 나를 죽여나갔기 때문이다.
이때 재현 군은 오로지 나를, 아니 모두를 구하기 위해 힘을 썼다. 그것이 자신의 목적 그 자체이며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그는 간절했으며. 단 하나도 잃지 않고자 노력했다.
어쨌거나.
내 진부한 짝사랑 이야기는 여기서 마친다 하더라도, 분명 괜찮다고 여겼다.
그럴진대.
재현 군은 어느 날 갑작스레 충격적인 이야기를 나를 비롯한 모두에게 전해주었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은 헬라입니다.
대체 왜?
라는 의문이 불쑥 끼어들었으나 차마 입 밖으로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이제 와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재현 군은 어째서 그런 말을 내뱉었으며, 가장 마지막에 참전(?)한 자신을 선택하며 이 이야기를 더 복잡하게 만들었는가?
애초에 반쯤 포기했지만 후련해지기 위해서 꺼낸 말이었다.
내게서 떨어지라는 듯 이야기하는 그가 야속해서 그런 것도 반쯤은 있다. 최대한 오래 내 마음을 숨기고 드러내지 않을 계획이었는데, 나를 자유롭게 풀어준다고 이야기하니.
그것은 되레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고, 내 지금까지의 노력과 가치가 너무 한순간에 짓이겨지는 뜻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현은 나를 선택했다.
나와 연애를 하겠다 말한 것이다.
‘아직도 쉽게 이해는 가지 않지만… 왜 그랬을까.’
왜.
의문은 깊어지고 있으나. 시간은 더할 것 없이 빠르게 흘러가는 중이기도 하다.
이미 11시 정각이 된 시점. 오늘은 재현과 함께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데이트.
미드가르드에서는 남녀가 서로 시간과 애정을 나누는 일이 바로 데이트라 했다.
특별히 그로 인해, 재현 군의 어머님인 이선화 님께서도 나를 적극 지지해주고 있기는 한데…….
어째서인가 방법이 약간 이상한 것 같다.
“우리 헬라는 역시 고양이일 때도 예쁘다구. 그러니까, 다른 애들은 못 하는 걸로 승부를 봐야 하지 않겠어? 일단은 이 귀여워 보이는 목걸이부터. 어때?”
목걸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재현 군의 어머니가 내게 내민
것은 약간 목줄(?)에 더 가까웠다.
아무래도 나를 정말 고양이로 인식하고 계신 것 같은데.
이걸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가 사람으로 변한 모습을 많이 봐오셨지만, 그럼에도 아직 나는 고양이 형태로 자주 그녀의 곁에 머무는 중이다.
“그… 옷은 제가 고를…….”
“아들이 무슨 취향이려나~”
재현 군의 어머니는 내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으셨다.
하여간 누구에게 물려받은 것인가 했더니 역시 이유는 있는 건가.
아무리 헤니르 시절의 기억을 되찾았다고는 하지만 결국 재현은 누군가로부터 파생된 존재가 아닌가.
나는 하는 수 없이 재현 군의 어머니가 수십 벌을 내게 입혀보고 벗겨보고 하는 과정을 두 눈에 담았다.
결국 마지막 선택은 다 내가 하게 될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어휴~ 우리 헬라는 이것저것 다 잘 어울려서 내가 선택을 못 해주겠네. 어떻게, 네가 잘 고를 수 있겠니?”
“…네엣. 물론이죠!’’
이제 남은 시간은 20분.
시간적 여유는 없지만 이미 옷은 모두 골라둔 상태다. 이대로 입고 나가기만 하자.
그러면 어떻게든 최소한의 격식은 갖춘 채 그를 만날 수 있겠지.
* * *
결과적으로, 헬은 자신과 꼭 어울리는 검은 옷들을 주로 입었다. 이선화가 말해주었던 목의 초커 역시 유지.
다른 부분은 유려한 몸의 곡선을 자랑하듯 아름답게 장식된 몇몇 부분들이 도드라지게끔 설계돼 있었다.
별것 아닌, 평상복이 검은색일 뿐이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도저히 소화하지 못하거나.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 그녀와 같이 핏이 나오지 않을 심플하지만 가장 파괴력 있는 옷 조합이었다.
한데, 하나 의문이 있었다.
재현과 헬라가 만나기로 한 곳은 다름 아닌, 지옥의 수장인 헬이 머문 거처였기 때문이다.
헬의 신전.
예전에 재현이 나이트 셰이드를 쓰러뜨리며 첫 번째 테스트를 치렀던 장소이기도 하고, 라그나로크 직전에는 함께 동료들이 모여 회의를 하던 곳이기도 했다.
여러모로 재현과는 첫 번째로 악연이 있어 왜 힘든 기억이 남은 곳.
하지만 재현이 구태여 미드가르드가 아닌 이곳을 먼저 들린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헬이 흥미롭다는 듯 재현을 보며 말했다.
재현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쨌든 헬라를 만든 게 너잖아. 그러니까 허락은 받아야 도리에 맞지 않겠나. 뭐 그런 생각을 한 거지.”
[어차피 헬라는 이제 자유의 몸이 되었다고 일렀을 터인데.]“기분이 그렇다는 거지. 그리고 귀찮다는 듯이 그렇게 대답하지 마라. 혼나기 싫으면.”
“…….”
재현은 장난처럼 말했으나, 헬의 표정은 싸늘히 굳었다. 이제 과거의 나약했던 그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시점이 아닌가.
자칫 자신이 실수했다가는 지옥의 지배자가 바뀔 수도 있었다.
[…크흠. 실례했군.]“알면 됐다. 그래서 허락할 건가? 말 건가?”
[아까 내 의견과 다르지 않다. 허락하지.]“헬?! 하지만 저는 어디까지나 분신이잖아요. 누군가와 맺어진다는 것 자체가 불가한 일이 아닐지….”
헬라는 그렇게 말했으나, 헬은 귀찮다는 듯 고개를 숙이며 어서 나가보라 말했다.
어차피 이미 자신의 손을 떠났다 말하면서.
그렇게 두 사람은 간단한 인사를 하고 헬헤임을 우선 벗어났다. 더 이야기할 부분은 크게 없었고 재현도 그리 말을 길게 하는 편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재현과 헬라가 떠나고 남은 자리.
앉은 옥좌에서 톡톡 손가락으로 의자를 두드리던 헬이 얼굴에 미미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잘 살아야 해. 헬라.]귀찮아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저들은 여겼겠지만 사실 그게 아니었다.
헬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참고 있을 뿐이었다. 어느새 저렇게 자신의 삶을 찾았고, 목적을 이뤄가고 있는 헬의 모습을 보자니 꼭 자신의 아이가 성장해 어른이 되는 것을 보는 것 같았다.
기쁨과 복잡한 감정이 뒤섞여 묘한 감정과 흐름을 만들어냈다.
헬이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 * *
“헬라. 이제 우릴 구속하는 것들은 딱히 없죠?”
헬헤임을 빠져나와 미드가르드의 한적한 거리를 걷던 재현이 문득 그렇게 말해왔다.
헬라는 잠시 고민하더니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네…… 하지만 아직도 저는 잘 모르겠어요. 어째서 그렇게나 예쁜 사람들 사이에서 저와 함께 연애를 생각하신 건지. 또 왜 저여야만 했는지.”
“음… 딱히 그런 게 중요할 것 같지는 않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래요. 저는 저랑 오래 함께 시간을 보낸 사람한테 엄청 끌리는 것 같거든요.”
“그렇다면 유정 양이 있잖아요?”
“개는 이성으로 서로를 인식하고 지낸 시간은 헬라 당신만큼 길지 않아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당신이랑 같이 데이트하고 있는 거고.”
“……?”
헬라는 잠시 걷다가 문득 재현을 보며 고개를 들었다.
이게 무슨 소리지? 판단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니… 그렇다면 대체 언제부터 저에 대한 마음이 있으셨던 거예요?”
헬라의 자신도 채 알 수 없는 직구에 재현이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여러모로 꺼내지 않으려 했던 이야기였는데.
아무래도 이제는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같았기에.
“하하, 그게 그렇게나 중요하, 할까요……?”
재현은 그렇게 운을 뗀 뒤, 자신이 미리 찾아온 파스타 집에 헬라를 밀어 넣었다. 동시에 그는 차분히 머리를 식히며 생각했다.
대체 어떻게 하면 말 안 하고 넘어갈 수 있지?
하지만 어림도 없다는 듯 헬라는 재현을 빠안히 바라보고 있었다.
이건 아무래도 도망칠 수 없겠구나.
재현은 결국 포기하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쨌거나 방법이 없다.
이제는 자신이 언제부터 그녀에게 이끌리기 시작했는지를 말하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