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Picked a Mobile From Another World RAW novel - Chapter 296
304화. < 다른 세계에서 왔습니다. >
어두운 세상이 아이의 눈앞에 펼쳐졌다.
등 뒤에서 들어오던 빛은 금방 사라지고, 아이는 어둠 속에 남겨졌다.
어디에도 빛은 보이지 않았다.
아빠를 찾아가라고 했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가야 할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겁을 먹은 아이는 다시 훌쩍였다. 몸속에 돌아다니는 이상한 힘도, 눈앞에 펼쳐졌던 마법도 이곳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곧 따라온다고 했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엄마는 오지 않았다.
이리저리 몸을 휘젓던 아이는 결국 허공에 누웠다. 엄마가 올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아이는 감았던 눈을 떴다.
“엄마?”
분명, 누군가가 자신의 등을 밀고 있었다.
하지만, 어디에도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아이는 자신의 몸이 점점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느꼈다.
무척이나 친숙한 느낌이었다. 엄마는 아니었지만, 아이가 생각하기에 엄마 이상으로 가까운 느낌이었다.
아이는 자신을 미는 힘에 몸을 맡겼다.
콰콰콰콰!
아이는 점점 빨리 움직였다. 공간이 점점 일그러지고, 시간 축이 엉겨갔다.
아이 앞에 미래로 향한 선이 보였지만, 아이를 미는 힘은 그 선을 따라가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를 반대로 밀었다.
과거로, 과거로.
훨씬 더 과거로.
‘아, 아파!’
시간이 꿰뚫기 시작하자, 아이는 크게 비명을 질렀다.
아쉽게도 차원 회랑에는 사람이 없었다. 그의 비명을 듣는 사람은 없었다.
온몸이 아팠다. 조금 전 의자에 묶였을 때 만큼 몸이 아팠다.
아이가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는 순간,
화아아악.
또 다른 힘이 아이를 감싸 안았다.
아이를 밀던 힘과 다른 힘이었다. 마치 포근한 담요처럼 느껴지는 힘.
새로운 힘은 아이를 감싸, 밀려드는 압력을 줄여주었다.
이제는 아프지 않았다.
그때.
-괜찮나요?
아이의 머릿속으로 여성의 음성이 들려왔다.
부드럽게 편안한 목소리였지만, 엄마는 아니었다. 더구나 아이는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잘 버텼어요. 이제 조금만 참으면 돼요.
목소리는 아이를 안심시켰다.
아이는 목소리의 주인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봤다.
공간이 빠르게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빛도 없이 깜깜한 세상이었지만, 아이는 어둠 속에서도 자신이 움직이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아이는 자신 옆에서 함께 날아가는 인영을 보게 되었다.
뒤가 비쳐 보이는 반투명한 사람이었다.
유령 같았지만, 아이는 다르게 보았다.
“천사님?”
아이의 머릿속으로 미소가 스며들었다.
-천사는 아니랍니다. 아니, 지금은 별 차이가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반투명한 여성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어났다.
아이도 조금씩 미소를 지었다.
아이의 미소를 본 여성이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그녀는 아이에게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괴물들과 싸우는 사람들 이야기와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낚시를 즐기는 로봇 아저씨 이야기.
망해버린 세상을 다시 일으켜 세운 소녀와 개의 이야기.
그리고, 여러 세상을 여행하는 여행자와 그의 비서 이야기 등,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다.
넋을 놓고 이야기를 듣던 아이는 자신이 언제 멈추었는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모두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여성은 동화 같은 마무리로 이야기를 끝맺었다.
이야기가 끝나자 아이는 급하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멈춰선 세상은 아직도 어둠에 덮여 있었다. 환한 별빛도 보이지 않았고, 아이가 들어왔던 문도 보이지 않았다.
길을 잃은 것일지도 몰랐다. 아이는 울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물었다.
-주인님 차례에요.
천사님이 다른 곳을 보며 말했다.
아이는 천사가 보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남자가 서 있었다. 천사처럼 반투명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무척이나 거대해 보이기도 하고, 이상해 보이기도 했다.
그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열려라.]그그그긍.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아이는 무척 큰소리가 들린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별이 나타났다.
별이 점점 커졌다.
작은 점이, 주먹만 한 달이 되고, 다시 커다란 문이 되었다.
환한 문 뒤에는 목장이 보였다.
-자, 저리로 들어가면 돼요.
“아빠가 있는 곳인가요?”
아이의 물음에 천사는 슬픈 미소를 지었고, 남자는 아이를 돌아보았다.
돌아본 남자는 아이와 무척이나 닮아 보였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남자의 대답에 아이는 문을 향해 나아갔다.
10m, 9m, 8m.. 그리고, 1m.
아이는 문을 나서기 전에 몸을 돌려 둘에게 고개를 숙였고, 이어 문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이가 문을 나섰다.
*
아이가 문을 넘어가자, 문이 점점 줄어들었다.
그리고, 흐릿한 빛만 남았다.
남자는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있었다. 감정이 마모되고, 기억은 깊이 묻혔었다.
하지만, 다시 꺼낸 기억은 바로 어제처럼 생생했다.
이제, 사람들에게 신으로 불리고 있었지만, 아직도 경훈의 마음속에는 인간의 감정이 남아 있었다.
-저도 아직 천사는 무리인가 봐요.
이브가 반투명한 얼굴에 미소를 띄웠다.
경훈이 몸을 돌렸다.
[돌아가자.]-네.
경훈은 걸음을 옮겼다.
콰콰콰콰콰!
한걸음 옮기는 순간, 시간 축이 접히고, 공간이 밀려왔다.
아이가 느낀 것과는 차원이 다른 힘이 경훈을 후려쳤다.
콰아아아앙!
하지만, 경훈은 쉽게 받아넘겼다.
괜히 사람들에게 차원의 신으로 불리는 게 아니었다.
충격이 지나가자, 경훈 앞에는 별이 가득 펼쳐져 있었다.
원래의 시간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는 별 하나를 끌어당겼다.
별은 그의 앞에서 차원문이 되었고, 경훈은 이브와 함께 문을 넘었다.
문을 넘은 뒤에도 주변에는 별이 가득했다.
이번에는 진짜 별이었다.
경훈은 우주로 나온 것이었다.
멀리 태양과 부서진 달이 보였다.
달 아래에는 탑 대신 적도에 링을 두른 지구도 보였다.
이곳은 멸망한 고대 왕국이 있던 차원이었다.
경훈은 오랜 세월 동안 이 멸망한 지구를 복구해온 것이다.
마지막 할 일을 마쳤으니, 이제 이웃에게 인사를 할 차례였다.
-링을 가동하겠습니다.
이브의 말과 함께 적도 상공을 지나가는 거대한 링이 빛나기 시작했다.
경훈이 오랜 세월에 걸쳐 탑 대신 만든 링이었다.
마나 공학과 과학 기술을 모두 모아 만든 궤도 링.
링이 마나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주의 시선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링을 바라보던 경훈이 몸을 돌렸다.
그가 손을 들어 올렸다.
화아아아악!
경훈의 뒤로 수많은 검은 구멍이 만들어졌다.
구멍 하나하나가 엄청나게 큰 구멍들이었다.
쿠구구구구.
구멍 속에서 우주 전함들이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길이가 수 킬로가 넘는 거대한 우주선들이었다.
그의 부름을 받고 다른 차원들에서 달려온 전함들이었다.
각 전함 옆에는 멋들어진 문양과 함명이 적혀 있었다.
이사벨. 셰인, 진혁. 로잘리아…….
전함들은 오래전 동료의 이름을 달고 있었고, 동료들의 후손이 타고 있었다.
수십 척의 우주 전함이 우주 공간에 늘어섰다.
그리고, 멀리 목성 궤도 밖으로 은빛 구멍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신입의 등장에 놀란 이웃집들이 찾아온 것이었다.
“텃세가 얼마나 센지 볼까?”
구멍을 빠져나오는 거대한 이형의 생명체를 보며 경훈이 오랜만에 미소를 지었다.
***
구멍을 빠져나온 아이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이의 눈앞에는 구름에 덮인 구릉이 펼쳐져 있었다. 아이가 있는 곳도 안개 같은 구름이 지나가고 있었다.
이곳은 무척이나 높은 곳 같았다.
구름이 주변을 뒤덮었다. 안개가 가득해 몇 미터 앞도 보이지 않았다.
아이 발밑으로는 굽이굽이 이어진 국도가 지나가고 있었지만 아이는 알지 못했다.
아이는 지금 도로 한복판에 서 있었다.
이제 몸속에 꿈틀거리던 힘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곳은 그런 힘 자체가 없는 것 같았다.
엄마도 오지 않았고, 아빠처럼 보이는 사람도 없었다.
아니, 안개 때문에 보이지 않은 걸지도 몰랐다.
아이는 눈을 감고 귀를 기울였다.
멀리서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부르르릉.
차 소리였다.
역시 소리를 듣는 게 맞았다. 아이는 다가오는 소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아이는 걸음을 멈추고 다가오는 차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엄마에게 배운 대로 한 것이었지만, 이 안개 속에서는 달려오는 차도 아이도 서로를 볼 수 없었다.
끼이이익!
쾅!
안개 속에서 튀어나온 차가 손을 흔드는 아이를 치고 말았다.
아이는 멀리 튕겨 나갔고, 차는 급히 멈춰 섰다.
사람들이 밖으로 나왔다.
“아이에요! 어린애를 치었어요!”
“맙소사. 애가 왜 여기 있어? 어른은 없어?”
어른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쉽게도 엄마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다행히 아프지는 않았다. 놀란 목소리를 들으며 아이는 눈을 감았다.
아이가 다시 눈을 뜬 곳은 병원의 침대 위였다.
조금 낡아 보이는 침대였다.
아이의 몸과 머리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다.
아이는 머리도 아프고, 몸도 아팠다.
“정신이 들어?”
다행히 옆에 사람이 있었다.
중년 여성이 깨어난 아이를 보고, 문밖으로 달려나갔다.
“오빠! 애가 일어났어요!”
잠시 뒤, 여성은 의사와 간호사와 그녀의 오빠와 함께 병실로 돌아왔다.
의사는 아이의 몸을 살피고, 고개를 끄덕였다.
“무척 건강한 아이네요. 큰 사고인데도 회복이 빠릅니다.”
중년 남자와 여동생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아이의 신상명세만 알면 되겠군요.”
간호사가 아이에게 물었다.
“이름이 뭐니? 아빠하고 엄마 이름도 알려줄래?”
아이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저었다.
“기억이 안 나요.”
아이의 말에 사람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사는 곳은, 전화번호도 몰라?”
여동생이 재차 물었지만,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이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했다.
말도 이상이 없었고, 일반 사물은 다 알아보았지만, 과거의 기억은 하나도 떠올리지 못했다.
진찰을 마친 의사가 남매를 안심시켰다.
“사고로 인한 일시적 기억 상실일 겁니다. 시간이 지나면 돌아올 겁니다.”
실제로는 간단한 사고가 아니었지만, 의사는 알 수 없었다.
남매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 아이는 원에 데려가야겠지?”
오빠의 말에 여동생이 한숨을 쉬었다.
고아원 운영비도 빠듯한데, 아이가 한 명 더 늘어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여동생도 반대하지 않았다.
그녀가 기억을 잃은 아이를 외면할 리가 없었다. 그런 사람이었으면 오빠와 함께 고아원을 운영하지도 않았다.
오빠인 원장이 아이를 보며 중얼거렸다.
“96년은 귀인이 찾아온다고 했는데. 이 아이가 귀인이려나?”
여동생이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1996년 다른 해처럼 고생길이 열린 모양이었다.
아이가 귀인인지는 모르겠지만, 먼 곳에서 온 것은 맞았다.
아이는 이 세상이 아닌 다른 차원에서, 미래에서 과거로 넘어온 것이었다.
이 세상은 마나가 존재하지 않았다. 괴물이 나타나고 마나가 등장하려면 아직 20년은 더 지나야 했다.
여동생이 아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기억을 잃었는데도 침착하게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
“이상한 아이지? 보호자도 없이 대관령 한복판에 불쑥 나타나다니. 하늘에서 뚝 떨어진 걸까? 아니면 다른 세상에서 날아온 걸까?”
여동생이 원장을 노려보았다.
“하이텔 좀 그만 봐요! 저번 달에 전화비가 얼마나 나왔는지 몰라요? 이상한 판타지 소설 좀 그만 봐요!”
동생의 핀잔을 귓등으로 넘기고, 원장은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아는 이름은 없니? 기억하는 지명이나 연예인 이름도 괜찮아.”
보험 처리에서부터 고아원 등록까지. 모두 아이의 이름이 필요했다.
기억을 잃은 아이의 이름을 아무렇게나 지어줄 수는 없었다.
한참을 생각하던 아이는 이름을 하나 기억해 냈다.
“….경훈.”
이름을 들은 원장이 급하게 되물었다.
“혹시 네 이름이 기억난 거야?”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기억나는 이름일 뿐이었다.
남매는 무척 아쉬워했다.
“끙, 어쨌거나 이 이름으로 해야겠다. 이 이름을 알아보고 찾아오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임시지만, 이제부터 네 이름은 경훈이야. 성은 내 성을 붙이고. 그럼 강경훈이 되는 거지.”
아이는 이름을 불러보았다.
“강경훈.”
무척이나 낯익은 이름이었다.
“경훈. 강경훈.”
경훈은 자신의 이름을 계속 되뇌었다.
304화. < 다른 세계에서 왔습니다.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