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Played the Role of the Adopted Daughter Too Well RAW novel - Chapter 188
188화
주변이 시꺼멓게 물들기 시작했다.
어둠이 내리깔렸다.
해가 지고 저녁이 되는 느낌과는 사뭇 달랐다.
툰드라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둠이 내려앉는 것 같군.
정령왕 퐁퐁이는 헉~ 헉~ 하고 거친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다.
비올라가 황급히 물었다.
“퐁퐁이, 괜찮아?”
“아니, 안 괜찮아.”
퐁퐁이의 발밑이 조금씩 흐려지기 시작했다. 반투명화가 진행되었다.
퐁퐁이가 이를 악물었다.
“안 되는데. 내가 곁에 있어줘야 하는데.”
퐁퐁이는 직감했다. 지금의 이 세계에 정령이 있을 자리는 없었다.
이 세계는 정령을 거부하는 세계였다. 퐁퐁이의 하체 전체가 반투명화되었다.
“비올라, 잘 들어. 지금 이 세계는 정상적이지 않아.”
그건 설명을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빛 하나 닿지 않는 우주가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빛이 닿지 않는 세계가 다가오고, 있어.”
비올라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빛이 닿지 않는 세계?’
그와 유사한 설정을 이미 알고 있었다. 「악령들의 왕 바하카룬은 차원 너머’빛이 닿지 않는 곳에 봉인되었다.」
내려앉는 어둠. 빛이 닿지 않으며 정령을 거부하는 세계.
‘설마…!’
퐁퐁이의 몸이 절반쯤 사라졌다. “도망쳐야 해.”
비올라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반드시 도망쳐. 바다를 건너야 해.
악령들의 왕은 바다를 건너지 못해.
제발. 제발 그러겠다고 약속해 줘.”
퐁퐁이의 몸이 어깨까지 사라졌다. 그의 눈에는 염려가 가득했다. “제발 도망쳐.”
이내 퐁퐁이의 몸이 전부 사라졌다. 툰드라가 조심스레 비올라 옆으로 왔다.
“어떻게 할까요?”
“손, 잡아줘.”
점점 어두워졌다. 눈보라가 몰아칠 때보다 훨씬 더 어두웠다.
퐁퐁이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 세계와 ‘빛이 닿지 않는 곳의 일부가 연결될 것이다.
그곳은 무려 악령들의 왕을 봉인할 수 있는 차원 너머의 차원 감옥.
길을 잃게 되면 영영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툰드라가 비올라의 손을 잡았다.
“잡았어요. 퐁퐁이의 말대로, 도망을 쳐야 할까요?”
비올라는 고민했다. 원작 속에서 바하카룬은 결국 부활하지 않는다.
원래 백룡 페일라를 무너뜨리고 나면 ‘옛 무인들의 성지’에 묻혀 있는 거대한 심장 조각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것은 바하카룬의 심장 조각 중 가장 커다란 것이었고, 비올라는 ‘태양검’으로 그 심장 조각을 부순다.
「“옛 무인들의 성지도, 이젠 안녕이 네.”
사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옛 무인들의 성지에 담긴 마지막 관문은 원작 속 비올라를 이겨내는 것이었다.
「“백룡 페일라를 죽였으니, 이제는 나 스스로를 이겨내라?”」
버림받았던 기억.
처절하게 노력하여 만살 공녀로 거 듭나는 과정.
그 과정에서 잃게 된 가족애. 더없이 차갑고 잔인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세계.
내 손으로 나를 사랑한 남자를 죽이고, 내 손으로 나를 아끼던 언니를 죽였으며, 내 손으로 나의 오빠를 죽여야만 했던 세상.
원작 속 비올라에게는 그 모든 것이 트라우마였고 저주였다.
「비올라는 황제로부터 반쯤 빼앗은 ‘진실석’을 꺼내 들었다. 진실석에서 영롱한 빛이 새어 나와 비올라를 둘러싼모든 어둠을 몰아내었다.」
비올라는 진실석의 힘을 이용하여 자신의 과거를 보여주는 환상을 모조리 몰아내게 된다. ‘옛 무인들의 성지’에피소드는 그렇게 마무리된다. ‘원래는 그렇게 되어야 했는데.”
얘기가 바뀌었다. ‘나 때문이야.”
악령들의 왕, 바하카룬이 부활하고 있다.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다.
머리카락이 쭈뼛쭈뼛 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거대하고 불길한 무엇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바다를 건너 도망치면?’
그게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았다. 최소한 가족들과 함께 서대륙이나 동대륙으로 도망칠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그럼 악령들의 왕 바하카룬이 부활한 이 땅은? 이 땅에 살아가는 수많은 엄마 아빠는? 그 엄마 아빠들을 따르는 아이들은? “나는….”
툰드라가 비올라를 바라보았다. 허리를 살짝 숙여 비올라와 눈을 마주쳤다.
“저는 공녀님이 어떤 선택을 하든 곁을 지킬 거예요.”
도망치라 명령하면 도망칠 것이고, 싸워달라 명령하면 싸워줄 것이고. 지켜달라 명령하면 지켜줄 것이다.
“나는….”
비올라는 결정을 내렸다. “내가 벌인 일에 책임을 지려 해.”
비올라는 이제 알 수 있었다. 어째서 바하카룬이 부활하고 있는 건지.
‘나 때문에 툰드라가 성장했어. 소설 극후반부의 비올라조차 도달하지 못했던 경지.
‘소멸’의 경지에 툰드라가 올라섰었다. ‘그래서 세계의 일부를 소멸시킬 수 있었던 거야.’
여전히 그 증거가 눈앞에 남아 있다. ‘빛이 닿지 않는 곳’ 처럼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무(無)의 공간. 툰드라가 만들어낸 검로가 아직도 선명히 새겨져 있었다.
‘세계에 균열을 만들어내면서 단단했던 봉인이 흔들렸어.’
악령들의 왕 바하카룬이 그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만약 태양왕 칸이 재림한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봉인을 다시 시작하겠지만, 이 자리에 칸은 없었다. 소설 속에도, 설정집 속에도 자세한 봉인 방법은 나와 있지 않았다.
비올라가 입술을 깨물었다.
‘별로 바랐던 건 아니지만 나는 주인공이니까.’
때가 찾아왔다고 말했다. 잘못을 바로잡겠다고 말했다.
그러니 그렇게 해야 했다. 그것이 주인공 비올라가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툰드라, 네 모든 힘을 다 끌어내서 싸워.”
태양왕 칸과 동료들조차 없애지 못했던 바하카룬. 소설 극 후반부에서도 등장하지 않았던 바하카룬.
그 바하카룬이 다가온다. 그렇지만 비올라에게도 달라진 것이 있었다. ‘소설 극 후반부 비올라보다, 네가 더 강해.’
그리고, “진심으로 명령하는 거야. 진심을 다해 싸워.”
지금의 툰드라도 원작 속 툰드라와 달랐다. 툰드라는 비올라의 말을 진심으로 받들기로 했다.
툰드라의 눈이 황금색으로 물들었다.
“그게 당신의 명이라면.”
* * * 세상에는 철혈 성녀가 ‘눈이 부는 곳’의 눈을 멈추기 위해 움직였다고 알려졌다.
‘눈이 부는 곳에 악령들의 왕과 관련된 단체가 있는데, 그 단체가 6마탑과 관련이 되어 있다는 소식도 전해진 지 오래였다. -6마탑의 잔혹한 인체실험. 6마탑에서는 잔혹한 인체실험이 자행 중이었고 인간들에게서 마나와 생명력을 뽑아내는 연구 자료가 한가득이었다. 이곳에서 옛 무인들의 성지’로 마나를 전송하기 위한 연구 자료도 많았다.
바하카룬을 부활시키기 위한 수많은 연구를 진행했었다.
광인과 오염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너무나 많은 증거가 나왔다. -6마탑을 제외한 6명의 마탑주는 공동성명을 발표하여 6마탑을 규탄하였으며…. – 마탑주들은 이것을 6마탑주 시르송 개인의 잘못된 일탈로 규정지으며…. 6마탑의 마탑주 시르송에게는 사형이 내려졌다.
그러던 어느 날. -눈이 부는 곳에서 눈이 멈추었다. 철혈 성녀 비올라가 ‘옛 무인들의 성지’를 찾아 업적을 이루었다고들 말했다. 곧 비올라가 돌아올 거라는 소식이 소식지를 가득 채웠었다.
그렇게 1년이 흘러버렸다. 그사이, ‘눈이 부는 곳에는 더 이상 눈이 불지 않았다. 얼어붙어 있던 땅이 녹아내렸고 꽃이 피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쏟아져 나오던 수많은 마물이 하나둘 자취를 감추었다.
– 행방이 묘연한 철혈 성녀. -이제는 그녀를 추모해야 할 때인가. 사람들은 철혈 성녀를 일컬어 영웅이라 불렀으나 살아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살아 있었다면 여태껏 나타나지 않을 리는 없었으니까.
-황제 폐하의 엄명으로 현재 ‘눈이 부는 곳은 금지된 구역으로 지정되었으며…. 눈은 더 이상 불지 않았지만 그곳은 금단의 구역이 되었다.
그래도 몇몇은 특별히 허락을 받았다. 카이저는 그중 한 명이었다.
“쳇, 오늘도 허탕인가.”
카이저는 ‘눈이 부는 곳’을 한참이나 수색했으나 오늘도 결국 허탕이었다. 비올라는 하늘로 솟구친 건지, 땅으로 꺼져 버린 건지, 작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매일같이 ‘눈이 부는 곳’을 수색하는 바람에 그는 어느새 이곳의 길을 익히게 되었다.
혼자서도 길을 잃지 않고 잘 돌아다녔다.
눈이 부는 곳을 정처 없이 헤매는 사람은 카이저뿐만이 아니었다.
힉슨도 애타게 비올라를 찾아다녔다.
“비올라! 어디 있는 거냐아아아!”
그는 동굴에 짐을 풀고 잠시 쉬기로 했다. “빨리 찾아야 할 텐데.”
힉슨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조금만 더 있으면 헤론이 돌아버릴 거야.”
지금은 검제 넬라크와 창천무후 아셀다가 함께 헤론을 감시하고 있다. 그 두 사람이 함께하지 않으면 헤론을 막을 수 없었다. 헤론은 이미 이성을 잃어버린 상태.
수많은 세월 마물과 싸워오면 감정이 모두 닳아버렸다 알려진 헤론이었으나, 사랑하는 딸의 행방불명 앞에서 이성이 모조리 사라져 버렸다.
도저히 수색 작업을 진행할 수 있을 정신 상태가 아니었다.
“어쩌면 그게 열풍이 원하는 것일지도 모르고.”
지금도 절대자인 헤론이 미쳐서 오염된다? 그거야말로 열풍이 원하는 것 아니겠는가.
사부작, 사부작.
발소리가 들려왔다.
“제논이냐?”
“그렇습니다. 혹시 진척이 있으신가요?”
“전혀.”
하아~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제논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편히 쉬십시오.”
“제논, 너. 인마.”
힉슨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얼른 뛰어가 제논의 뒤통수를 탁!
쳤다.
그와 동시에 제논은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에효, 이놈이나 저놈이나.”
힉슨은 제논의 두 다리를 질질 끌고 동굴 안으로 들어왔다. 제논이 이토록 무력하게 쓰러질 사람은 절대로 아니었다.
“며칠 밤을 새운 거냐?”
그 강인한 무인 제논이 이 지경이 되었다. 못해도 두 달은 잠을 안 잤으리라. 아마 식사도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정신 차려야지. 그래야 비올라를 찾지.”
힉슨은 모닥불을 피웠다. 본래 튼튼한 그에게 모닥불은 필요하지 않았지만 지금의 제논에게는 필요해 보였다. “도대체 어디 있는 거냐, 비올라.”
힉슨은 눈을 감고 다짐했다. “내가 반드시 찾아주마, 세상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그런데 동굴 안쪽에서 미묘한 기척이 느껴졌다. 무엇인가가 꿈틀거리는 듯했다.
‘곰 새끼라도 있나?’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 보았다.
‘이게…… 뭐지?’
수많은 경험을 가진 힉슨조차도 처음 보는 ‘불길한 것’이 그곳에 있었다. 입양딸 역할을 지나치게 잘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