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Played the Role of the Adopted Daughter Too Well RAW novel - Chapter 59
060화
비올라의 시선이 얇은 검날을 향했다.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피 냄새!’
심장이 두근두근했다. ‘아니야. 나대지 마, 심장아.’
비올라는 원작 속 비올라가 튀어나 오지 않게 하기 위하여 무던히 애를 써야만 했다. 그래서 오히려 자작 쪽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못했다. “놀라지 않으시는군요.”
“제가 놀라야 할 이유라도?”
사실 비올라는 지금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이성의 끈을 다잡고 있느라 아무 말이나 떠오르는 대로 내뱉었다.
무표정을 유지한 채 코끼리 한 마리, 코끼리 두 마리를 세었다.
‘지금은 평화로운 상태야, 비올라야.’
갑자기 튀어나와서 자작의 목이라도 그었다가는 일을 그르치게 된다. 지금은 그냥 조용히 있어 주라.
네가 필요한 순간이 있으면 그때 부를게, 제발.
비올라의 염원이 통했는지 두근대던 심장이 어느덧 가라앉았다.
‘후우.
그제야 목소리가 좀 들렸다.
었습니다.”
“뭐라고 하셨지요?”
“제 아내에게 복수하고 싶었습니다.”
자작은 차갑게 식은 눈동자로 피가 뚝뚝 흘러내리는 검날을 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쯤 되자 비올라도 조금씩 긴장되기 시작했다.
‘뭐라는 거야?’
복수하고 싶었다고? 그래서 복수를 했다는 거야? 지금 피 묻은 칼은 뭔데?
‘설마…….’
아니겠지. 자작이 외도한 아내를 죽였다거나.
그런 끔찍한 짓을 벌인 건 아니겠지. ‘아닐 거야. 소설대로라면 그럴 리 없어.
소설대로라면 그럴 리가 없다.
작가의 설정값이라는 건 이 세계에서 지대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 않던가.
그럴 리 없지만, 자꾸만 뚝뚝 떨어지는 저 피가 눈에 박혔다.
‘그래, 아니야.”
아무도 모르게 깊게 심호흡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세알 자작이라면 그럴 리 없다.
“그래서 어떤 복수를 원했나요?”
비올라는 떨리는 속마음을 감춘 채 눈웃음을 지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여유롭고 차분해 보였다.
“제 복수는…….”
“자작님 스스로의 죽음이, 자작 부인에게 내리는 형벌이었나요?”
자작은 순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어린 공녀에게 마음속을 모조리 읽힌 것 같았다.
저 예쁜 눈동자가 자신의 마음을 샅샅이 훑어보는 것 같은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아들을 잃어보았으니 알았겠지요.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다는 것이 얼마나 아픈 건지. 그래서 자작님은 자작님의 죽음을 선택하려고 했을지도 몰라요.”
복잡했을 거다. 아내를 사랑하지만 한편으로는 밉고, 용서하고 싶지만 용서할 수 없고, 그래서 결국 명예를 지키는 전쟁을 하러 가서 장렬하게 전사했겠지.
소설을 읽었던 비올라가 정곡을 찔렀다.
“정말 복수가 하고 싶었던 건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세요.”
그 말에 자작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내가 정말 복수를 하고 싶었던 걸까.
아내가 너무너무 미워서, 그래서 그냥 내가 죽어버리려고 했던 것일까.
“많이 혼란스러워 보이시네요.”
칼끝이 바들바들 떨리는 것이 보였다. 자작 스스로도, 자작 스스로의 마음을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그냥 알려줬다. “자작님은 아내에게 복수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자작님 본인에게 복수하고 싶었던 거예요.”
“……저한테 말입니까?”
“본인이 잘못해서, 그래서 아내가 외도했다고 자책하고 있을 거예요.”
내가 아내를 좀 더 사랑했더라면. 내가 아내를 좀 더 기쁘게 했더라면.
내가 아내를 더 행복하게 해주었다.
면.
내가 아내를 조금 더 재미있게 해주었다면.
그랬다면 내 아내가 외도하지 않았을 텐데.
세알 자작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그런 마음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자작님의 사랑은 틀리지 않았어요. 자작님의 잘못이 아니에요.”
“…….”
순간, 자작은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자작님의 잘못이 아니에요.”
어쩌면 세알은 저 말을 가장 듣고 싶었던 것일지도 몰랐다. 비올라의 저 말이 큰 위로가 되었다.
“잘못을 한 사람은 자작 부인이 죠.”
잘못은 자작 부인이 했다. 분위기에 취해서, 배우자로서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질렀다.
“결혼의 책임과 의무를 저버린 사람은 자작님이 아니라 자작 부인이라는 걸 잊지 마세요.”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인을 벌할 수는 없을 거예요.”
세알이라는 캐릭터는 그런 캐릭터다. 아내를 너무 사랑해서 자살하고 마는 캐릭터.
“쫓아낼 수도 없을 거예요.”
왜냐하면. “자작님은 아내를 너무 사랑하니까.”
자작이 검을 떨구었다. 검을 쥐고 있던 손바닥에서 핏물이 뚝뚝 흘러나왔다.
아직도 지혈이 안 된 것으로 보아 꽤 깊은 상처인 것 같았다. 몇 시간 전.
자작은 이렇게 소리쳤다.
‘나는 당신을 용서할 수 없소!’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고백을 들으니 참을 수가 없었다. 순간 이성을 잃고 허리춤에 차고 있던 칼로 자신의 손바닥을 그어버렸다.
자작 부인은 꺄악! 비명을 지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그게 자작의 복수였다.
자신의 몸을 상하게 만드는 것.
그게 아내를 아직도 사랑하는 남편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복수였다.
“자작님의 짐작대로 모든 것을 제가 말해주었어요.”
“어째서입니까? 차라리 아내 입으로 아무것도 듣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진실을 마주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까.”
비올라가 떨어진 검을 주워 들었다. 두 손으로 받쳐 들고 자작에게 다시 건네주었다.
“당장 용서할 수 없다는 건 잘 알아요. 시간이 필요할 거예요.”
사랑했던 만큼 배신감도 컸을 것이다. 그 마음은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다. “자책하지 마세요. 잘못은 자작 부인이 했어요. 잘못을 한 자작 부인 이 자작님께 잘못을 고백하였고 솔직하게 용기를 내서 용서를 빌었어요.”
“이제 선택권은 자작님에게 있어요. 용서를 할지. 용서를 하지 않을지.”
“저는…….”
비올라가 건네는 검을 받아 들었다. 비올라와 눈을 마주쳤다.
열두 살에 불과한 비올라의 눈동자에는 강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굳은 심지. 혹은 강한 확신 같은 것. 그 눈동자를 보자 괜히 마음이 놓였다. “저는 용서할 겁니다.”
비올라의 말이 맞았다. 아내를 벌하거나 쫓아내기에는, 자신이 아내를 너무 사랑했다.
“저는 맹세코 이 불미스러운 일을 외부로 발설하지 않을 거예요. 자작님의 명예가 실추되는 일은 없을 거예요. 벨라투의 이름으로 맹세합니다.”
“벨라투의 이름으로 맹세를… 하신 겁니까?”
“제 약점을 하나 가지셨네요.”
일부러 약점까지 쥐여주었다. 소문내지 않겠다는 약조였다.
그 약속에 세알 자작은 깊은 감동을 받았다. 비올라가 왜 이렇게까지 해주는지 모르겠다.
“무엇을 원하시는 겁니까? 왜 저에게 이렇게까지 해주시는 겁니까?”
“저는 자작 내외께서 밝은 길로 나아갔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한다. 그래야 배 속의 아이가 평화로운 환경에서 무럭무럭 자라 나의 보험이 되어주지!
그 시커먼 속마음은 숨겼다. “들으셨을지 모르겠지만 자작 부인의 아이는 마법의 재능이 탁월하리라 예상돼요.”
“그렇습니까?”
“물론 확실하지는 않아요. 이건 어디까지나 냄새와 감의 영역이니까.”
아니. 확실해요. 소설에서 그렇게 언급돼요.
실제로 벨라투를 위협하는 강대한 적이 되어서 나타난다고요.
역시 그 말은 삼켰다.
“그렇군요. 아내의 아이에게……
투자하시겠다는 거군요. 불확실성을 가지고서.”
자작은 그 아이가 싫고 밉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아내의 아이 이기도 했다. 사랑할 수 없지만 사랑하게 될 것 같았다.
복잡미묘하고 알 수 없는 감정이 온몸을 지배했다.
“제 이름은 비올라 벨라투입니다.”
비올라가 자리에 일어서서 반쯤 무릎 꿇은 자작을 내려다보았다. 지금은 벨라투로서 얘기해야 했다.
“저. 비올라 벨라투가 새로이 태어나는 아이의 후견인이 되기 원합니다.”
* * * 비올라는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다 이뤘다!’
이곳에서 목표했던 것은 다 이루었다. 벨라투-세알가의 전쟁을 막았고, 끔찍한 상황을 모두 없앴다.
이제 벨라투의 위험한 적인 벵가스가 태어날 일도 없을 거고, 오히려 벵가스의 후견인 자리까지 얻게 되었다.
심지어 세알 자작은 이렇게까지 얘기했다.
‘비올라 공녀를 저의 은사로 생각하겠습니다.
비올라가 움직여 준 덕분에 아내가 스스로의 죄를 고백했다.
‘시간은 조금 필요하겠지만 방향을 잡았습니다. 우리는 옳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겁니다.’
‘방향만 맞으면 돼요. 방향만 맞다.
면, 천천히 가도 괜찮아요.’
방향만 맞으면 조금 느려도 결국엔 옳은 길로 갈 테니까. ‘세알 자작가와는 두터운 친분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 같고.
힉슨을 시작으로 하여 폭풍 요새의 재칼. 그리고 세알 자작까지 한편으로 만들었다.
여기 와서 이룰 수 있는 건 다 이룬 것 같았다.
제논이 딸기 에이드를 만들어 왔다.
“맛있네.”
“요즘 솜씨가 늘지 않았나요?”
“늘었어.”
“기존에 사용하던 마비 독을 살상독으로 바꾸니 맛이 더 부드러워졌어요.”
켁! 비올라는 하마터면 딸기 에이드를 뱉을 뻔했다.
맛이 아주 미묘하게 바뀌었더라니, 마비 독이 아니라 살상 독을 넣었단다.
“다음번에는 양을 조금 더 높여볼게요, 공녀님.”
제논이 빙그레 웃었다. 굉장히 행복해 보였다.
그러고는 비올라를 관찰하는 듯한 눈동자로 오랫동안 쳐다보았다. “코끼리도 죽일 수 있는 맹독인데, 역시 공녀님은 아무렇지도 않으시네요.”
하루가 지났다. 살상 독 때문인지 비올라는 약간 배탈이 났다.
“풉! 천하의 비올라가 배탈이라니.”
힉슨은 재미있다는 듯 킥킥대고 웃었다. “배탈이라니!”
“하이고, 하이고, 배야! 천하의 비올라도 배탈이 나는구나! 이럴 땐 애 같다니까?”
제논이 빙그레 웃었다. “저희 공녀님은 배앓이도 하십니다.”
힉슨은 한참을 킥킥대며 웃다가 어디론가 나가서 흙투성이가 되어 돌아왔다. 도라지같이 생긴 이상한 약초였다.
“네가 먹은 삼보 독을 중화시켜 주는 약재야. 배탈을 가라앉혀 줄 거야.”
제논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건 온열초의 뿌리 아닙니까?”
“맞아.”
“굉장히 구하기 힘들뿐더러……….”
“됐어. 그냥 오다가다 주웠어.”
비올라도 온열초에 대해서 알고 있다. 희귀할 뿐만 아니라 채취하는 사람의 열을 빼앗아, 순식간에 저체온증으로 사망에 이르게 만드는 식물이었다.
그래서 온열초는 식인 식물로도 유명했다. 오다가다 주울 수 있는 약재는 절대로 아니었다.
“자. 독성은 내가 다 없앴으니까 먹어.”
힉슨이 투박한 손길로 온열초의 뿌리를 비올라의 입속에 넣어주었다. 비올라가 인상을 찡그렸다.
“맛없어.”
“몸에 좋은 건 원래 써.”
비올라의 예리한 눈썰미에 힉슨의 손이 가볍게 떨리는 게 보였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지만 온열초를 채취하면서 빼앗긴 열 때문에 약간 몸이 추운 것 같았다.
‘모르는 척해줘야겠지?’
괜히 아는 척했다가는 민망해할 것 같았다. “다음부터는 맛있는 걸로 갖다줘.”
“갖다 줘도 난리냐, 너는?”
힉슨은 퉁명스레 굴었지만 비올라의 몸이 괜찮아지는 것을 끝까지 확인한 뒤에야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저씨. 어디 가?”
“자작 놈에게 사과하러.”
어린 시절 세알을 많이 괴롭혔던 힉슨이다. 철없던 행동에 용서를 구하려 한다.
고 했다.
“성질머리 죽이고, 상대가 받아줄 때까지 진심으로 용서를 구해.”
“그럴 거야.”
“내 마음 편하려고 하는 건 사과가 아니야. 상대가 용서할 때까지 하는 게 사과야. 알겠지?”
“어우, 저 애늙은이. 알았다!”
힉슨은 귀찮다는 듯 손을 대충 휘젓고 나가 버렸다. 그리고 그날 저녁. 자작 영지를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벌어졌다.
입양딸 역할을 지나치게 잘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