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possessed a villain with nothing but a death flag RAW novel - Chapter 10
사망 플래그밖에 없는 악역에 빙의했다 010화
010
―어쩌다 저런 덜떨어진 아이가…!
―고귀의 13가문에서 우리 마스체니가 떨어지기라도 한다면…!
―너는 마스체니의 수치다! 그런 실력으로 샤프란 대학에 입학은 할 수 있을까!
―마탑에게 뇌물을 줘 벨테인 등위는 따냈다지만….
―후인의 반지로 샤프란에 입학을 하더라도, 금방 들통날 게 뻔하다!
―샤일러만 멀쩡했어도…!
마스체니의 연무장.
지난 과거를 떠올리며 샤일라 벨테인 폰 예미리야스 마스체니는 검을 휘둘렀다. 잡념을 떨치고자 육체를 혹사시키는 것이었지만, 한 번 피어난 생각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오라버니….’
가문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유망주, 샤일러 헤루인 폰 올고랜드 마스체니. 그는 어려서부터 영약을 먹고, 고위 마법사의 1대1 과외까지 받는 등 가문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으며 성장했다.
덕분에 어린 나이에 헤루인 등위를 얻는 영애를 거머쥐기까지 했다. 하지만 어느 날 모종의 사건에 휘말려 큰 내상을 입고, 깊은 잠에 빠지게 되었다.
―미안… 하다…. 샤일… 라….
마스체니 가문이 사활을 걸고 키웠던 그가 혼수상태에 빠지자, 모든 짐이 동생인 샤일라에게로 쏟아졌다.
―네가 우리 가문을 일으켜 세워야 한다!
―이대로 가다간 샤이칸 그놈에게 가문을 빼앗기게 된다!
―마법을! 똑바로! 쓰란 말이다!
그녀는 열심히 공부했고, 또 노력했지만, 선천적인 재능이 압도적으로 모자랐다. 적어도 마도에는 그러했다.
휙, 휘익!
진검이 아닌 목검을 휘두르는데도 그 검세가 날카롭다.
―아가씨의 재능은 정말 탁월합니다. 검술 교사인 제가 보증합니다. 이대로 꾸준히 수련하시고, 제대로 된 교육만 받으신다면 카바예르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정말? 내가 카바예르의 훈장을 받을 수 있다고?
―어쩌면… 슈발리에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르고요!
그때는 웃어넘겼다.
―잠깐만. 그 말은 알테온까진 안 된단 말이잖아?
―하하, 알테온은 마법사로 따지면 이테아 같은 위치. 평범하게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 아니니까요.
그런 얘기를 주고받던 것이 어제 같은데.
“…어째서!”
격해진 감정에 검세가 흔들리고, 그와 동시에 누군가 연무장으로 들어왔다.
“또 검을 휘두르는 것이더냐.”
“아버지….”
샤일라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버지의 얼굴이 노기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영월화를 빼앗겼다. 이제 네 마도에 대한 재능을 높일 수 있는 건 오로지 수련뿐이다. 그러니 이따위 검을 휘두를 게 아니라 한 번이라도 더 마법을 써야 할 것 아니더냐!”
“아버지, 제가 정녕 마법사가 되어야겠습니까?”
흠칫, 샤이먼의 어깨가 떨렸다.
“마스체니는 마도의 명가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래왔다.”
“최고의 기사 대학, 칼라모르라면 윤허한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때는…! 그때는 샤일러가… 멀쩡했을 때의 얘기다!”
샤일러. 그 이름이 나온 순간, 샤일라는 숨이 멎는 것 같은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그리고 그것은 샤이먼 역시 다르지 않았다.
마스체니의 당주는 참담한 심정을 억눌러가며 입을 열었다.
“네가 검을 좋아하는 것은 알지만, 그 한계를 생각하거라! 당장에 베철러 훈장조차 받지 못하지 않았더냐!”
“그건 기사 가문들의 압력 때문에…!”
기사와 마법사는 오래된 견원지간. 서로의 영역에 침범하는 걸 극도로 꺼린다. 그렇기에 샤일라는 자신의 실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훈장도 얻지 못했다.
샤이먼은 그 부분을 날카롭게 찔렀다.
“그래서 결국 네가 훈장을 얻었느냐? 칼라모르에 들어갈 자격을 얻기라도 했느냐?”
“………….”
“들어가서는 고립당할 것이고, 시기 질투에 휩싸일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왜 어리석은 길을 택하느냐!”
샤일라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마법 대학이라고 다를까요.”
“무어라?”
“마탑에 뇌물을 줘서 벨테인 등위를 따내고, 실력을 속여 들어간들 거기서라도 뭐가 다르겠습니까! 언제 제 실력이 들통날지 노심초사하며 하루하루 살아가겠죠!”
비극, 그 밖에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가문을 이어야 할 후계가 깊은 잠에 빠지고, 그 권좌를 노리는 이들은 사납게 이를 갈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짐을 짊어지게 된 딸에게는 저만의 사정이 있다.
샤이먼은 차오르는 눈물을 삼키며 고개를 돌렸다.
“…쓸데없는 짓은 그만하고, 마법 수련이나 하거라!”
화륵.
샤일라가 쥐고 있던 목검에 불이 붙었다.
“아버지!”
하지만 그녀는 검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단단하게, 굳건하게 그를 쥐고 있었다.
“뭐, 뭐하는 것이냐! 빨리 검을 버리거라!”
“………….”
“이익!”
결국 다급한 마음에 불을 끈 건 샤이먼이었다. 하지만 거세게 번진 불은 이미 샤일라의 손을 검게 그을린 뒤였다.
샤이먼은 토해낼 수 없는 답답함을 씹어 삼키며 치유사를 불렀다.
“치료… 해 주거라.”
* * *
마스체니 가문의 저택은 일견 평온해 보였다. 정문에는 아무도 지키고 있지 않았다. 안에 말을 넣는 거라면 마법 통신 구슬이 저택 정문에 설치되어 있고, 경계는 높은 수준의 마법 결계가 이미 그 역할을 하고 있었으니까.
“쉽게 문을 열어 줄 거 같진 않은데, 어디 한번 부숴 보겠나?”
“너 저거 씨발, 요새 도시의 성문급 결계인 건 알고 하는 소리냐?”
“못 하면 말고.”
으그극, 류아라가 이빨 가는 소리가 들린다. 자존심에 사소한 스크래치가 난 듯 분한 기색이었지만, 그래도 결계에 주먹을 때리는 무식한 짓거리는 하지 않았다.
“일단은 처음이니 정중하게 가 보도록 할까.”
나는 차에서 내리며 류아라에게 고갯짓했다. 그녀의 얼굴이 산뜻하게 일그러졌다.
“뭐, 내가 하라고?”
“그럼 내가 해야겠나.”
자세한 경위는 모르나 리아의 말에 따르면 류리크는 마스체니와 그다지 좋은 관계가 아닌 듯했다.
그리고 이미 망원경으로 내 모습을 봤을 테니 어지간해선 문을 열어주지 않겠지.
“아니, 씨발 반지는 니가 얻는 거니까 니가 말해야 하는 거 아냐?!”
“음, 너에게 지불하기로 했던 의뢰 대금이 얼마더라….”
이익, 류아라가 뭔가 마뜩찮은 듯 성질을 냈지만 곧 저택의 정문 앞에 섰다. 그리곤 통신 구슬에 손을 얹었다.
“열어.”
어우, 짧군.
역시 예상대로였다. 여기선 막무가내로 불도저처럼 밀어붙일 수 있는 인재가 필요했단 말이지.
한편 저쪽에서 뭔가 곤란하다는 대답을 한 건지, 문은 열리지 않았고 대신 류아라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너, 씨발 지금. 이걸로 나랑 얘기하자는 거냐?”
“…………!”
“너 이름이 뭐니, 개새끼야?”
“…………!”
“찾아서 죽여 버리기 전에 열어. 씨발 새끼야.”
상대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대충 대화의 맥락은 유추할 수 있었다. 마침내 저택의 문이 열리고 류아라가 ‘이러려는 게 아니었는데…’ 라며 푹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터져 나올 것 같은 웃음을 참으며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까 차 안에서는 13가문에 쳐들어가는 걸로 뭐라 하지 않았던가?”
“씨, 씨발. 이건 그냥 돈 값한 거지.”
맞다. 나 혼자 여기 왔다면 저 통신 구슬 단계에서 막혔을 터다. 이건 류아라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류아라를 다독이며 저택의 안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마스체니 저택의 정원에는 화엽(火葉)의 수목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잎들이 불타 사라지고, 소생하며, 다시 불타는… 그 일련의 과정을 영원히 반복하는 나무들.
마치 죽고 다시 날아오르기를 반복하는 불사조처럼, 나무들은 유구의 순환을 이어가고 있었다.
“겁나… 예쁘네.”
“연기도 나지 않고, 불티가 마치 축포처럼 흩날리는 걸 보니 상등품이로군.”
“이것도 등급이 있어?”
“여기 있는 화엽목들은 자연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 마법적 처리를 거쳐 만들어낸 인조의 산물이다. 성공과 실패에 따라 등급이 나뉘어지지.”
진짜 화엽목이 이런 곳에 나뒹굴 리가 없지, 나는 그대로 정원을 가로질러 걸었다. 그렇게 30초 정도 지났을까, 정원의 저 너머에서 누군가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었다.
“류, 류아라 카바예르 폰 예르파드 아스트레이 님! 마스체니엔 어인 일로….”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류아라가 씨익 웃으면서 답했다.
“이 집 딸 면상 좀 보러왔다.”
“아, 아니. 샤일라 님은 현재 부재중… 아, 아! 그 옆에 계신 분은….”
나는 시종으로 보이는 이를 흘겼다.
“미쳐 돌았군.”
미안하지만 난 여기에 한가롭게 수다나 떨자고 온 것이 아니었다. 내 얼굴을 몰라 이름을 묻는다는 약간의 불경죄, 그리고 기선 제압의 의미를 담아 그를 노려보았다.
“감히 본인의 이름을 묻는가?”
장난기 없는 뚜렷한 적의를 품는 순간, 자연스럽게 A랭크의 위엄이 발동되면서 그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어, 으윽, 그… 죄, 죄송….”
“본인의 시간을 낭비하게 만들지 말라.”
시종은 입에서 거품이라도 물 것처럼 바들바들 떨며 움직이질 못했다. 평범한 이가 감당하기엔 위엄 A의 효과가 상당한 모양이었다.
나는 재빠르게 용건을 설명했다.
“본인은 마스체니에 후인의 반지를 걸고 결투할 것을 요청한다. 이 말을 당주와 결투 상대인 샤일라에게 전하도록.”
“아니, 그… 저….”
“연무장에서 기다리겠다.”
그 말을 끝낸 즉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아쉬운 듯 화엽목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던 류아라가 샐쭉였다.
“야, 근데 연무장이 어디 있는지 알아?”
“물론이다.”
“…왜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하는 건데.”
까놓고 말해 이 집 수장고가 어디 있는지도 알고 있다. 물론 거길 털 생각은 없지만.
나는 익숙한 길을 걷듯 앞장서 마스체니의 저택을 가로질렀다. 뒤따르던 류아라는 저택 여기저기를 죽 훑으면서 넌지시 물었다.
“야, 근데 너 진짜로 이길 수 있어?”
“무슨 소리냐.”
“…너 병신이잖아.”
그 말은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내가 검을 제대로 휘두를 수 없다는 점. 그리고 현재 마법사로서의 역량이 벨테인은커녕 에일레르만도 못한 수준이라는 점까지도.
그녀는 이미 알고 있을 터였다. 그만한 실력자니까.
“이건 생사결이 아니다. 평범한 마법 결투이고, 어지간해선 누군가 죽을 일은 없겠지.”
“그러면 질 수도 있단 생각으로 왔다고?”
“현재 내 수준은 대강 짐작하고 있잖나.”
“아니 씨발. 나는 뭔가 계획이 있는 줄 알았지!”
계획은 물론 있다. 네가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겠지만.
“썅! 니네 집에 리아인가 뭔가 그랬다면서. 후인의 반지를 노릴 거면, 차라리 로스월드를 찾아가라고!”
“후인의 반지만이 목적이었다면 그랬겠지.”
“뭐? 반지만이 목적… 씨발, 그건 또 무슨 븅딱 같은 소리야?”
“나는 마스체니에서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리고 그 순간, 연무장의 입구에 누군가 나타났다.
“그 해야 할 일이 속죄라면, 이미 늦었습니다.”
붉은 장발에 주근깨 있는 여인… 아니, 소녀. 내 기억에 있던 그녀의 모습은 지금보다 더 성숙한 나중이었기에, 지금의 모습이 조금 낯설었다.
하지만, 그녀가 그녀라는 것은 알아볼 수 있었다.
“샤일라 벨테인 폰 예리미야스 마스체니.”
나는 그녀를 알았다.
마도 가문의 자녀로 태어나, 그 운명을 강요받은 자. 하지만 훗날 마법사가 아닌 ‘기사’로서 카바예르를 넘어 슈발리에의 훈장을 거머쥐게 될 자.
샤일라 슈발리에 폰 예리미야스 마스체니.
―당신을, 죽이겠습니다.
영상에서 봤던 그녀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류리크의 심장은 타닥타닥 불티를 날리며 타들어 가고 있었다.
나는 그 운명을 바꿔보기로 했다.
“네게 베철러의 훈장을 내어주겠다. 그 대가로, 후인의 반지를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