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possessed a villain with nothing but a death flag RAW novel - Chapter 100
사망 플래그밖에 없는 악역에 빙의했다 100화
100
이른 아침, 나는 실비아와 요루아를 연무장으로 불렀다. 그리고 둘을 앞둔 채, 짐짓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로 8일 차다.”
“에엑, 8일? 아직 8일밖에 안 지났다고? 나는 무슨 한 달은 있었던 거 같은데?!”
실비아가 기함을 터뜨리고, 요루아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근데 보스는 오늘이 8일 차인지 어떻게 아는 건가?”
“아, 그건 류리크 씨의 생체 시계(?) 때문에 그래.”
“생체… 시계?”
실비아가 요루아의 귓가에 대고 속삭인다.
“류리크 씨는 눈을 뜬 순간부터, 초 단위로 시간을 기억하거든.”
“…………?”
“류리크 씨가, 여기에 들어온 뒤로 잠을 안 잤잖아? 깨어 있는 동안 수련하면서, 1초씩 시간도 세고 있었다는 거지.”
방금 내가 뭘 들은 거지? 그런 표정을 짓던 요루아가 설마, 하는 어투로 말한다.
“에이. 누님, 거짓말도 그럴싸해야 속는 법입니다. 세상에 어떤 미친 인간이 그런 게 가능하겠습니까?”
“상대는 류리크 씨야.”
“…마, 말이 되는 것 같기도…!”
덤앤더머.
그 단어가 딱 어울리는 두 바보의 만담을 보고 있자니, 이쪽이 기가 질려버렸다.
더는 못 들어주겠군.
나는 흠흠, 헛기침을 하며 둘을 향해 말한다.
“후우, 실비아. 요루아. 생각해 보아라. 애당초 아타샤가 하루 세 번, 매일 먹을 걸 가져다주지 않던가.”
“아.”
“아.”
“설마 하루에 세 번 밥 먹는 횟수조차 세지 못하는 건 아니겠지.”
내가 한심하다는 듯 둘을 바라보자니, 실비아가 말한다.
“그, 그러면 지금이 몇 시인지는 모르는 거야?”
“지금은 8시 13분이다만.”
“역시 괴물이잖아! 괴물! 괴물! 괴에에에에… 푸갸아아악?!”
이젠 실비아를 혼내주는 것도 귀찮아, 그냥 녀석의 머리 위에 비바람의 구슬을 터뜨렸다.
“누, 누니이임?!”
에휴.
녀석들을 성장시켜 나를 지키게 하는 게 맞는 것인가.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후우, 쓸데없는 잡담은 그쯤하고, 오늘부터는 둘 다 다른 수련을 시작할 거다.”
“다른… 수련?”
“실비아는 명상과 함께 흑창을 사용한다.”
갑작스러운 선언에, 한창 열풍 마법으로 몸을 말리던 실비아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여, 여기서? 흑창을?”
“이 샘에는 우리뿐이 없고, 감시용 수정 구슬 같은 것도 없다.”
“그, 그치만 연무장에서 쓴다고 해도 무언가 흔적이 남으면….”
“그 점이 중요하다. 도깨비불로 연습했듯, 흑창을 투사하지 말고, 그대로 유지만 하는 거다.”
설령 컨트롤에 실패해 흑창을 쏘아낸다고 해도, 내가 시간 조금 들이면 마법의 흔적이야 깔끔하게 지울 수 있다.
“잘 붙들고만 있으면 되는 거야?”
“그리고 내가 거두라고 할 때, 그 즉시 거둘 수 있어야 한다.”
이건 요루아의 수련과도 직결되는 문제이다.
요루아의 흑염룡은 실비아의 어둠 마법에 반응한다. 당연, 어둠 마법을 거두면 흑염룡의 반응도 사라지게 된다.
‘그러니 요루아가 통제 수 있을 만큼, 적당히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거지.’
나는 고개를 돌려 요루아를 바라본다.
“요루아, 어제 말했다시피 오늘부터는 흑염룡을 통제하는 훈련을 할 거다. 마음의 준비는 되었나?”
“어, 음. 그게….”
“그러면 실비아, 흑창을….”
“자, 잠깐!”
갑자기 요루아가 눈을 질끈 감은 채, 내 바지를 붙잡는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요루아를 내려다본다.
“왜 그러지?”
“흐, 흑염룡을 다룰 수 있게 연습하는 건 좋지만… 그… 혹시… 내가 통제를 못 하면… 여기가 파괴되거나… 하지 않을까 해서….”
정말 쓸데없는 걱정이다. 애초에 그걸 우려했다면, 이들을 여기 데려오지도 않았겠지.
나는 가볍게 무시하며 실비아에게 말한다.
“실비아, 흑창을 써라.”
“아니, 잠…!”
요루아가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실비아가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녀의 다시 뜨여진 순간,
—스슷…!
발동과 거의 동시에 허공에 흑창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크, 읏! 오른손의 흑염룡이…!”
요루아의 오른손에서 검은 기운이 일렁였다. 한없이 불길하고, 본능적인 위기감을 불러일으키는… 순수한 어둠과도 같은 힘.
나는 잔뜩 인상을 찌푸린 요루아를 보며 말한다.
“요루아. 제어해라. 통제해라.”
“보, 보스으읏…!”
“정신을 집중해라. 단 한 번. 단 한 번만 통제하면 된다.”
물론 내가 말한다고 그게, 쉽게 되진 않을 터다.
“큭! 흑염… 룡이…! 보스으으으으으…!!”
“…실비아, 흑창을 멈춰라.”
내 말이 끝나게, 흑창이 사라지면서 흑염룡의 기운이 한층 사그라졌다. 다만 아직도 그의 오른팔에는 흑염룡의 잔재처럼 남은 마력이 날뛰고 있었다.
요루아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소리친다.
“보, 스읏! 이, 이거… 이거… 더 이상은 못 견딘다!”
“요루아, 그 정도면 되었다. 남은 마력이 날뛰든 말든 내버려 두어라.”
“하, 하지만… 큭!”
요루아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의 통제에서 벗어난 마력이 검은 연기처럼 퍼져 나온다.
그리고 나는,
—마력 간섭.
오랜만에 주특기를 활용해 그를 무효화시켰다.
‘흑창이 사라지면서 흑염룡도 존재감을 감췄다. 그러면 남는 것은, 페어링이 끊어진 마력의 덩어리뿐. 적어도 내겐 그리 위험한 게 아니지.’
거기에 적당히 내 마력을 섞어 넣으면, 허공을 부유하다 세계로 환원된다.
물론 ‘마력을 섞어 넣는다.’라는 것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다. 그게 쉬운 일이었다면 개나 소나 마력 간섭으로 남의 마법을 디스펠하고 다녔을 거다.
솔직히 말해, 이건 나니까 가능한 것이라고 보면 될 터다.
“…이, 이걸 어떻게….”
방금까지 ‘폭주’에 대한 우려로 떨던 요루아가, 충격에 휩싸인 눈으로 이쪽을 바라본다.
그에 대해 나는 자애로운 스승이 된 것처럼 말한다.
“요루아. 걱정하지 마라. 너는 그저 안심하고, 최선을 다하면 될 뿐이다.”
* * *
샘에 들어온 지, 10일 차.
여기서부터는 지루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현재까지 약물 중독은 F에서 멈췄고, 그 밑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혈석 역시 마찬가지였다. 기어코 남아있는 그 작은 부분은 어찌해도, 해결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은 그저 명상을 통해 마력량을 늘이는 것만 하는 상황이었다.
‘혈석의 상당 부분을 부쉈는데도, 마력량이 예상치보다 낮다.’
본래에는 혈석을 모두 부쉈을 때, 거뜬히 루나사 등위 이상의 마력을 얻으리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헤루인과 루나사 사이의 어딘가에 있는 정도였다.
‘물론 헤루인 정도의 마력만 있어도, 샤프란의 교육 과정은 무난하게 통과할 수 있겠다만….’
여기가 참 애매한 구석이었다.
—본편은 시작하지도 않은 시점에 헤루인을 달성했다.
이건 사실, 엄청난 어드밴티지였다. 다시 말해, 본편의 메인스토리를 시작할 땐 게임으로 플레이할 때보다 월등히 좋은 조건에서 시작한다는 소리이기도 하니까.
‘성냥 불꽃이나 간신히 쓰던 내가 반년 남짓한 시간에, 헤루인 등위를 달성했다는 건… 솔직히 치트 수준의 성장세이긴 하다.’
분명, 객관적으로 따졌을 땐 그러할진대.
—여긴 게임 속이되, 현실이기도 하기에.
도저히 안심할 수가 없다.
태평하게 여유를 부릴 수가 없다.
‘심지어 모든 걸 철저하게 계산해왔다고 생각하는데도 꼭 변수가 발생했었으니까.’
나는 생각한다.
‘정진(精進). 지금은 오롯이 그뿐이다.’
스스로에 대한 평가를 마친 나는, 가부좌를 풀고 일어났다.
“후우….”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서 고군분투하는 실비아와 요루아를 바라본다.
‘실비아… 이젠 흑창에 대한 컨트롤이 거의 완벽해졌군.’
실비아는 내 예상치보다 빠르게 흑창에 대한 숙련도를 높였다.
애초부터 그녀의 주력기이기도 했다만, 어쨌건 빠르게 흑창을 마스터하면서, 할 것이 없게 되었다.
이로써 나도, 실비아도 내 플랜에 따른 목표치를 달성했다.
“실비아.”
“어, 류리크 씨.”
“흑창은 이제 더 이상 건드리지 않아도 될 듯하다.”
실비아가 배시시 웃었다.
“에헤헤… 그런가?”
“이미 앉아서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남은 게 있다면… 실전에서의 어떻게 어디까지 활용할 수 있냐는 것일 터.”
나는 중얼거리듯 말한다.
“다음으로 넘어가도 되겠어.”
“으응? 다음이 있어?”
필수는 아니고, 여유가 생길 때 천천히 알려주려던 게 있었다. 그런데 실비아가 목표치를 달성했으니….
“너도 느꼈겠지만, 요루아는 너 못지않게 큰 재능을 가진 아이다.”
“으응. 그렇지. 저번에 망령 날려버린 거 보면… 정말 대단하긴 하더라.”
최상위 유령종인 ‘죽음을 먹는 망령’을 일격에 날려버린 힘.
물론 그건 망령이 신성마법에 의해 오래 노출되어 약화되었고, 당초 상성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을 터였다.
실비아에게도 말한 바 있다만, 금단의 숲에 서식하는 망령은 ‘어둠’에 약하니까.
“그런 요루아가 내 곁에 있다면 큰 도움이 되겠지. 하지만 녀석의 진가는, 네가 옆에 있어야만 발휘될 수 있다.”
“…아, 그렇지. 흑창….”
반드시 흑창이어야 하는 건 아니고, 어둠 마법이라면 뭐든 반응하는 것 같다만.
“대중들 앞에서 네 흑창을 선보이는 건 아직 위험하다.”
“…응. 그렇지.”
실비아의 표정이 어딘가 쓸쓸해진다. 나는 혹여나 그녀의 우울 회로가 굴러갈까 싶어, 재빨리 말을 이었다.
“그러니 네게 마법 하나를 알려주겠다.”
“마법? 어떤 마법?”
“어둠 마법이다.”
“…………!”
일순, 실비아의 눈동자가 놀란 토끼처럼 동그랗게 변했다. 소리 없이 벌어진 그녀의 입에서 약간의 떨림이 느껴졌다.
“류, 류리크 씨가 어떻게 어둠 마법을….”
“그건….”
“아, 그렇네. 류리크 씨는 류리크 씨지. 응. 납득했어.”
“………….”
묘한 패배감이 느껴졌다.
뭔가 여러모로 어떻게 변명할지를 고민한 내가 바보 같아졌고, 제멋대로 납득한 실비아는 진짜 바보처럼 느껴졌다.
‘실비아가 멍청한 건지, 나에 대한 믿음이 너무 강해진 건지….’
이걸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나는 복잡한 심경을 뒤로, 그녀를 보며 말한다.
“앞으로 요루아의 힘을 끌어낼 땐, 알려주는 마법을 쓰면 된다.”
“응? 하지만… 누군가는 어둠 마법이라고 알아볼 수 있는 거 아냐? 우리 학교의 교수님들만 되어도, 다 간파할 텐데….”
아니.
절대 그럴 일은 없다.
“실비아, 어둠 마법이라는 것은 어둠의 속성을 띈 마법을 뜻하는 것뿐이다.”
“그건 나도 알아.”
“사령이나, 심령 계열처럼 보는 순간 이질감을 느끼긴 어렵지.”
“으음, 하지만 그렇다 쳐도….”
부정하려는 실비아를 보며, 나는 단호하게 말한다.
“그리고 이건, 세상 누구도 알지 못하는 마법이다.”
다른 건 몰라도, 이것만큼은 장담할 수 있었다.
이 마법은, 샤프란의 교수들은 물론 샤르미넨이라도 알아차리지 못한다. 한다고 해 봐야 약간의 냄새를 느껴 의심하는 정도뿐일 터.
“에이, 세상 누구도 모르는 어둠 마법이라니. 그런 마법이 어디 있어? 류리크 씨, 어디 오래된 유적에서 마도서라도 발견한 거야?”
“아니.”
“그러면… 뭔데?”
나는 말한다.
“이건 내가 창안한 마법이다.”
한유진.
원래 세계에서의 나는 루시아사가를 주로 플레이하는 게임 스트리머였다. 동시에 루시아사가의 열렬한 팬이었고, 미친 듯한 중독자이기도 했다.
수백 회차를 거듭하면서 샤프란을 포함해 마법 대학을 몇 번이고 졸업했으며, 그 이름 높은 아드리아에도 간 바 있다.
나는 ‘플레이어’일 때도 샤르미넨의 논문을 읽었던 인간이고, 현실에 살면서도 이 루시아사가의 마법이라는 것을 학문으로 익혔었다.
그랬던 나이기에 한 일이 있었다. 너무 해 보고 싶은 일이기도 했고.
‘300만 원짜리 미션이기도 했지.’
여하간 나는, 플레이어 시절 마법을 만든 바 있었다. 당연 현실 세계에서는 300만 원짜리 미션이라는 것을 빼면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다만.
‘…당시 게임 속에서는, 실제로 사용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마법은, 당시 그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했었다.
“…아니, 잠깐만. 그러니까 류리크 씨가? 정말로? 마법을? 창안했다고?”
“그렇다만.”
“뭔가 나 스스로 데자뷔가 느껴지는데… 류리크 씨… 나랑 동갑 맞지?”
“그 뒤에 70살 먹은 노친네를 운운하면, 네 발등을 잘근잘근 밟아주지.”
내 엄포에 실비아는 푸욱, 한숨을 쉬었다.
“노친네는 아니고, 미친놈이네. 정말 제대로 미친… 악! 아악! 아으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