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possessed a villain with nothing but a death flag RAW novel - Chapter 102
사망 플래그밖에 없는 악역에 빙의했다 102화
102
힉스가 묻는다.
“그런데 그 반즈의 여자애가 이단인지는 어떻게 판명합니까? 사실 샤프란의 샤르미넨 총장도 증거가 없어서 어쩌지 못하는 거지 않습니까.”
마녀라고 지목하면, 증거 없이 처형하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마녀라 해도 재판을 거쳐야 하며, 반드시 물증이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류리크의 동행인이 이단인지를 어떻게 증명하는가… 이것은 또 다른 문제인 것이었다.
“후후, 거기서 등장하는 게 바로 이 시약이죠.”
“그게 뭡니까?”
“원로 중 한 명이 개발한 시약인데, 이걸로 이단인지 아닌지를 판별할 수 있다더군요.”
아타샤가 히죽 웃는다.
“이걸 음식에 뿌리는 거죠.”
힉스는 감탄의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오… 그렇군요.”
“효과는 하루 정도 지나면 나타난다고 했으니, 내일 놈들이 샘을 나올 때… 모든 걸 심판할 수 있겠죠!”
적어도 원로회의 입장에서, 이건 틀어질 여지가 없는 완벽한 계획이었다.
“아스트레이의 인간을 이단 혐의로 날려버리면, 가르테고는 당주직을 사퇴할 정도의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을 테고, 13가문 안에서도 우리의 발언권은 강해지겠죠!”
“오, 오오…!”
“원로회의 입김이 강해지면, 일단 당주 쪽 인간들의 연구비 예산을 줄이고, 우리 원로회 쪽 사람들에게 연구비를 몰빵해서….”
대충 흘러가는 판세를 읽은 힉스 로스월드가 어딘가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헤헤, 아타샤 님… 저도 원로회 쪽의 인간인 거죠?”
“후후, 제가 잘 말해줄게요. 우리는 동기잖아요! 당신은 주방에서 탈출하고, 저도 이 샘지기에서 탈출하고… 우리 모두 즐겁게 마법 연구를…!”
그리고 그때, 둘은 이상한 것을 보았다. 아고니아의 샘의 입구에, 일단의 무리가 있는 것이었다.
‘설마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침입자가…?!’
경악한 아타샤는 지팡이를 뽑아들며 앞으로 달려가는데, 그 면면들이 무척 낯이 익었다.
“아타샤, 뭘 그렇게 황급히 달려오나?”
“류리크… 아스트레이?”
“그렇다만. 왜 새삼스레 본인의 이름을 입에 담는가.”
아니, 너는 저 안에 있어야 하잖아. 거의 2주 가까운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샘 밖으로는 나온 적이 없잖아.
그러면서 먹을 것이니 옷이니, 빨래니… 죄다 나한테 시켜 놓고서!
아타샤 로스월드의 목 뒤로 식은땀이 흐른다.
‘지금 왜 밖에 나와 있는 거냐고!’
당황한 감정과 반대로,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양 표정을 관리하며 말한다.
“아, 저녁을 가져왔는데 웬일로 나와 있나 해서요.”
“이제 나가려고 해서 말이지.”
쩌적.
아타샤 로스월드의 얼굴이 균열이 일었다.
“에… 어… 네?”
“뭘 그리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있나. 때가 되었으니, 나가는 것인데.”
아니아니, 아니!
그러면 안 되지! 갑자기 말도 없이 그러면 안 되지!
아타샤 로스월드는 당황을 숨기지 못한 채, 손바닥을 내밀며 말한다.
“자, 잠깐만요. 샘의 축복은 아직 하루 더 남아 있잖아요? 그런데 왜 미리 나간다는 거죠?!”
그에 대해 류리크는, ‘자네 정말 머리가 나쁘군.’하는 표정으로 말한다.
“그야, 연휴는 내일로 끝이 아니던가.”
“…………?”
“우리 셋 모두 샤프란의 학생이다. 당연 등교를 하려면, 지금에라도 저택으로 돌아가야지.”
아차.
이 셋은 외부인이었다.
그동안 아고니아의 샘은, 로스월드의 입양아 중에서도 ‘빛나는 아이’만이 회의를 거쳐 들어갔다.
당연 이들은 로스월드에 머무는 아이들이니, 15일을 꽉 채워 나왔었기에.
‘이 녀석들도 당연히 보름 내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타샤는 생각한다.
—이 녀석들이 여기를 빠져나가면 어떻게 되는 거지?
—시약을 탄 밥을 먹지 않으면, 저 분홍 머리가 이단이라는 걸 어떻게 증명하지?
머릿속이 혼란스러운 가운데, 이상하리만치 그 뒤의 미래는 선명하게 그려졌다.
원로회에서 무슨 말들이 오갈지.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될지.
—아타샤, 이건 전적으로 샘지기였던 자네의 책임이네! 당신이 책임을 져야지!
—대체 이 일을 어떻게 할 셈인가!
—흐음, 아타샤… 아무래도 자네 앞으로 책정되어 있던 연구비를 대폭 삭감할 필요가….
끔찍하다.
그 사태만은 막아야 한다.
“아타샤. 왜 그러고 서 있는지 모르겠다만, 할 말이 없다면 비켜주겠나.”
아타샤는 고개를 돌려, 힉스를 바라본다. 자신의 머리가 돌아가지 않으니, 혹시 힉스에겐 무슨 수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제, 제가 뭘 어쩌겠습니까?
역시 도움이 안 되는 남자네! 아타샤는 다시 류리크를 바라본다.
“뭐, 거기 계속 서 있겠다면 그러고 있게나. 축하하네. 자네는 황족의 발걸음을 10보 정도 돌아가게 만들었네.”
“자, 잠깐만요! 할 말이 있어요!”
“그, 그건…!”
* * *
—이 요리들, 만든 사람의 성의를 봐서라도… 밥은 먹고 가는 게 어떨… 까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파악했다.
‘며칠 전부터 묘하게 이상하다고 느끼긴 했다만… 나를 붙잡아두려 한다면, 그 이유는 뻔하지.’
원로회와 당주 간의 마찰.
아마 그 사이에 나와 요루아가 끼어 있으니, 이걸 어떻게든 이용해 보려는 것일 터. 그리고 이때 저들의 노림수는, 사실 뻔할 뻔 자였다.
‘당주도 그랬지만, 저들은 내가 요루아를 제대로 훈육할 수 있냐에 대한 근본적인 의구심을 품고 있다.’
‘저들이 생각하는 상식선에서, 보름 만에 요루아가 흑염룡을 통제한다는 건 있을 수가 없을 터.’
‘파고든다면 분명 요루아의 성장에 대한 것일 테고, 그것을 통해 가르테고를 견제하거나 입지를 약화시키는 방향을 노릴 터.’
사실 이건 내게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원로회가 무엇을 노리든.
가르테고가 어떤 입장에 놓이든.
‘그건 내 알 바가 아니니니까.’
다만,
“보스….”
요루아가 있다.
아타샤가 어색하게 길을 막는 순간부터, 몸이 살짝 굳어버린… 요루아가.
“실비아.”
적당히 눈치를 주자, 실비아가 요루아의 앞을 막아서듯 그를 지킨다. 물리적인 위협은 없겠지마는, 안심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나는 말한다.
“아타샤. 자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것인가.”
“저, 저는 그냥 저녁을 먹고 가라는….”
“정녕 본인이 누구인지 잊었는가.”
오랜만에 위엄 A를 전력으로 내비치며, 굳은 얼굴로 아타샤를 노려본다.
“로마노프 제국의 심장을 품고, 바타체스의 피를 흘리는 본인에게… 감히 시종 따위가 만든 요리를 정성이라 여기며 먹으라고?”
물론 시종이 만들지는 않았을 터다. 정확히는 조리실에서 일하는 로스월드의 인간이 만들었겠지.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말하는 게 먹힐 터.
“그, 그….”
“더 할 말 없다면, 본인은 이만 가도록 하지.”
내가 아예 지나치려 들자, 아타샤가 마지막으로 발악하듯 말한다.
“새, 샘에서 나가기 전에, 작성할 서류가 있어요!”
“………….”
“다른 건 몰라도 그것만은 작성을 해줘야 하는데요!”
급조해낸 것치고, 꽤나 그럴싸한 거짓말이다.
아마 로스월드를 모르는 다른 누군가였다면, 홀랑 속아버렸을 테지. 하지만 나는… ‘플레이어’다.
당장 아타샤의 나이, 혈액형을 포함해 온갖 신상명세를 죽 읊을 수 있는 내게. 이런 거짓말이 통할 리가 없다.
“…본인을 바보로 아는가?”
—꿀꺽.
아타샤는 무의미한 블러프를 밀어붙이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강경한 어조로 말한다.
“그 이상 헛소리를 하면, 황족에 대한 기만죄로 법무국에 신고를 넣겠다.”
“그러면! 그러면 호, 혹시… 필요한 건 없나요?”
그 말에 앞을 향하던 걸음이 멈춰 섰다. 드디어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 나왔으니까.
나는 슬쩍, 간을 보듯 고개를 돌려 묻는다.
“왜? 무언가 내게 줄 거라도 있나?”
“네? 아, 아니… 그건…!”
이런이런.
망설이는 걸 보니, 아직 뜸을 덜 들인 모양이다.
“아니라면 돌아가지.”
“줄게요! 뭐, 뭘 줄진 모르지만 일단 줄게요! 그러니까 일단! 일단! 좀 멈춰 볼래요?!”
저런저런.
여기에 이르러서도 아타샤는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나는 그런 그녀를 위해 친절하게, ‘그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설명해주기로 했다.
“아타샤. 뭘 줄지도 모르는데 본인이 멈출 거라 생각하나?”
“그, 그… 필요한 게 있으면 맞춰서 준다는 거죠!”
“아니, 그런 어물쩍한 거론 부족하다.”
이건 아주 오래된, 역사와 전통이 있는 화법이자 상술이었다.
“마도서이든 영약이든, 아니면 다른 무언가이든… 네가 줄 수 있는 가장 귀한 것을 말하라.”
“네, 네에?”
“그게 내 마음에 들면, 물건을 받기 위해 잠시 여기에 머물러주지.”
“………….”
“허나 그렇지 않다면, 나는 두 번 다시 네 말을 듣지 않고 떠나겠다.”
혹자들은 이것을 두고, 이렇게 말한다.
선제시(先提示)라고.
* * *
나는 생각했다.
여기서 아타샤의 의도대로 시간이 끌리면, 원로들이 우르르 몰려올 터였다. 그 뒤에는 요루아의 실력을 검증한다며 뭐라고 떠들 테고.
녀석들의 시나리오는 그 자리에서 내가 당황하거나, 요루아가 성장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 터.
‘하지만 요루아는 샘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뤄냈다.’
고로 나는 반대로 생각했다.
—이건 요루아의 ‘실력’을 내보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딱히 가르테고를 돕거나 할 생각은 없지만, 이를 통해 요루아가 트라우마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을 터였다.
‘가문의 인간들만 보면 몸이 굳어버리는 것이… 별로 좋은 건 아니니까.’
이때 저들을 무시한 채 요루아를 슥, 빼내면 의구심을 품은 로스월드가 괜한 일을 벌일 수도 있으니까.
차라리 여기서 확실하게 요루아의 실력을 증명하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 라는 계산이었다.
“자네 정말로 가진 게 없군그래.”
“대체… 대체 저한테 왜 그러는 거예요….”
참고로 아타샤의 사재(私財)를 터는 건, 순전히 보너스 같은 느낌이었다.
“이 정도 챙겼으면 된 거 아녜요?!”
“글쎄.”
나름 챙긴다고 이것저것 챙겼다만, 특별히 돈 되는 건 없었다. 물론 아이템은 쓸 만했지만, 팔아먹기는 애매하니 그냥 직접 써야겠다는 정도?
물론 이 시원찮은 느낌은 내 입장인 것이고, 아타샤의 입장은 꽤나 다를 터였다.
“아까는… 아까는 지팡이 하나면 된다면서요…!”
그녀는 거의 울다시피 소리쳤다. 그에 대해 나는, 흔한 사기꾼처럼 답했다.
“정확히는 생각해 봄직하다, 라고 말했지. 그리고 애당초 본인은 지팡이를 받은 뒤 돌아가려 했네. 헌데 자네가 더 주겠다면서 붙잡은 것이지.”
“크흑. 그, 그건… 그렇… 지만!”
저런.
아타샤의 표정을 보아하니, 슬슬 피눈물이라도 흘릴 것 같은 느낌이다.
“뭐, 그렇다면 이제 슬슬 돌아가 볼까 하는데.”
“그, 그으… 으으으…!”
“뭐, 이 수정 구슬을 준다면 조금 더 머무를지 고려해 볼 수도 있고.”
“다, 당신은 정말로 악마인가요?! 벼룩의 간을 빼먹지, 어떻게… 어떻게…!”
뒷목 잡는 아타샤를 보며, 이제는 실비아와 요루아가 걱정스런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으우… 류리크 씨, 이거 괜찮은 거 맞아?”
“보스, 후환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 있는가.”
“지금 마음껏 골라두어라. 공짜로 지팡이 바꿀 기회는 그리 많지 않으니까.”
나는 그리 말하면서, 테이블 밑을 훑어보았다.
설마 여기서 뭔가를 숨겨 두었을까 싶긴 했는데,
“호오, 월장석이라. 이거 참, 희귀한 재료로고.”
“아앗! 그, 그건 연구 재료예요! 그건 안 된다고요!”
“…음, 이게 안 된다면 본인이야 뭐… 돌아갈 수밖에 없지.”
“으, 으그으으윽…!”
월장석까지 얻어내면 수지타산이 맞…, 아니지. 애초에 이건 일방적으로 삥을 뜯는 것이니, 무조건 이득이긴 하다만.
그때였다.
“자자자자, 잠까아아안! 동작 그만! 다들 동작 그마아아안!”
아타샤가 새빨개진 얼굴로 씩씩거리고 있었다.
“모두 거기까지예요. 더 이상은, 그 어떤 것도 줄 수 없어요.”
“태도가 그야말로 돌변하는군그래.”
“이, 이렇게까지 뜯길 줄은 몰랐지만… 목표는 달성했거든요.”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래, 자네의 목표는 내 발을 묶어두는 것이었지.”
“그렇죠. 그렇죠. 제 목표는… 에?”
창밖을 슬쩍 내다보니, 까마귀 떼처럼 모여든 수많은 인간들이 보였다.
“엉덩이 무거운 원로들이 많이도 찾아왔군. 이전에는 요루아의 폭주를 그리도 두려워하더니만.”
“후후, 원로들이 이만큼이나 모이면 폭주든 뭐든 틀어막을 수 있… 가 아니라, 아니! 잠깐만요!”
내 태도에서 이상함을 감지한 듯, 아타샤가 잔뜩 긴장한 얼굴로 묻는다.
“당신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죠?”
“내가 틀린 말이라도 했는가.”
“아니…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녀의 얼굴을 보며 나는 더없이 확신했다. 지금, 그리고 앞으로 벌어질 모든 상황은 내가 예측한 대로 흘러갈 것이라고.
“아타샤, 혹시 나를 붙잡아두기만 하면 무엇이든 되리라 생각했나. 어차피 연구비를 받을 테니, 이 모든 손해를 메울 수 있을 거라고.”
“………….”
“그리 생각했다면… 으음. 안타깝게 되었군그래.”
“류리크… 당신, 설마…!”
파르르, 아타샤의 눈동자가 떨린다. 하지만 그녀의 입술은 소리조차 되지 못한 무언가를 달싹일 뿐. 결국, 설마를 끝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어차피 엎질러진 물.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선물 고맙네.”
—저벅. 저벅.
연구실을 빠져나온 나는, 고개를 돌려 로스월드 원로들의 면면을 죽 훑어본다.
“………….”
“………….”
“………….”
달이 시리게 차오른 밤이었다. 그 월광을 뒤로, 수많은 이들이 숲의 그림자처럼 떠올라 있었다.
누군가는 허공에 띄운 의자에 앉고.
누군가는 골렘의 어깨에 올라타 있고.
누군가는 까마귀처럼 나무 위에 걸터앉아 있고.
마치 기인(奇人)들이 모인 숲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은 가운데, 팔짱을 낀 근육질의 거한도 하나 있었다.
‘가르테고….’
그는 아무 말 없이, 그저 진지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당당히 마주 보며 말한다.
“이 늦은 시간에, 자네들의 얼굴들을 보게 되어 반갑네.”
“………….”
“아마 이렇게들 모인 것은, 모두 요루아가 샘에서 얼마나 큰 성취를 이루었는지… 그것을 알고 싶어서겠지.”
원한다면 당신들의 눈으로 직접 확인해라, 나는 그리 말할 심산이었다.
그런데 끼어든 목소리가 있었다.
“류리크 아스트레이, 네가 무언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여긴 요루아의 실력을 가늠하는 경연장이 아니다.”
“…………?”
“너는 이단의 존재를 샘에 들였다.”
원로들 중 젊은 편에 속하는 중년의 남성이, 형형한 눈빛으로 이쪽을 노려보며 말한다.
“우리는 지금 그 책임을 물으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