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possessed a villain with nothing but a death flag RAW novel - Chapter 111
사망 플래그밖에 없는 악역에 빙의했다 111화
111
저택에는 무사히 도착했다.
플랑도르의 실종(?)은 돈의 힘으로 무난히 해결했다. 애초에 주점 주인은 플랑도르가 마녀의 패밀리어라든가, 말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르기에 적당하게 타협을 볼 수 있었다.
다만,
“날이 저물기 전에 돌아오라… 말씀드렸을 터입니다만.”
새벽 2시.
이미 대부분의 시종인들은 모두 잠든 시각.
저택의 현관에서 리아가 평소보다 31% 정도 싸늘한 눈으로 나와 실비아를 노려보고 있었다.
“비에자 숲의 밤은, 유독 위험하다는 것. 류리크 님도 충분히 이해하고 계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리아, 그래도 우리 둘 모두 무사히 돌아오지 않았는가.”
“…소인과 결과론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하고 싶으신지요.”
아니.
피곤해 죽을 것 같은 이 새벽 2시에, 심지어 내일 학외 실습까지 있는 마당에.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고 싶을 리가.
나는 이 상황을 모면할 수 있는 가장 올바른 대답을 내놓았다.
“미안하다.”
“다음부터는 꼭 주의… 하라고 말씀드려도, 무시하시겠지요. 후우.”
“미안하다.”
“…정말 곤란합니다.”
그때 적당히 눈치를 보던 실비아가 스윽, 몸을 낮추며 옆길로 빠진다.
“아, 하하… 저~기 둘이서 할 말이 많은 거 같은데 나는 이만….”
“실비아 양.”
“히윽. 넵.”
“…류리크 님이 상처하나 없으시니, 호위로서의 당신에게 할 말은 없습니다.”
의외의 반응에 실비아는 휴우, 가슴을 쓸어내린다.
“하지만 주군이 위험할 상황 자체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 또한, 호위의 일입니다.”
“사, 사정하겠습니다.”
“시정이겠지요.”
나는 얄미운 동생처럼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요 근래 요루아랑 놀더니 지능이 비슷해졌구나.”
“뭐, 뭣! 아니거든?!”
목소리가 커지자, 리아는 머리가 지끈거렸는지 이마를 짚으며 말한다.
“후우… 일단 밤이 깊었으니, 둘 다 적당히 세안한 뒤 침소에 드시길.”
실비아는 이때다 싶었는지, 잽싸게 자리를 빠져나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그녀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질 즈음… 입술을 뗀다.
“리아. 하나 묻고픈 것이 있다.”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말할 수 없다면 답하지 않아도 좋으니, 적어도 진실하게 답해다오.”
내 진지한 모습에 리아가 입을 다문다.
그리고 나는 묻는다.
“실비아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가.”
“…비에자 숲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
나는 답을 않았지만, 리아는 그 질문 한 마디에 제멋대로 추리를 시작한다.
“류리크 님은 마녀를 만나러 가셨고, 비에자 숲의 마녀라면 바바야가뿐이지요.”
“………….”
“마녀 바바야가와 실비아 양, 혹은 반즈에 대한 연관성이라면… 소인 역시 아는 바가 없습니다.”
역시 리아.
명석한 두뇌에 직감이 섞이니, 무섭도록 빠르고 정확하다.
“달리 아는 것은 없는가?”
그 뒤로 리아와 나는 실비아에 관해 서로 아는 정보들을 맞춰나갔다. 하지만 그녀도 나도, 새롭게 알고 있는 것은 없었다.
―위르겐하이 도박장의 대장.
―아버지가 어둠 마법을 연구하던 마법사.
―루나사 수준의 마법사.
―이단.
물론 이것이 실비아의 전부는 아닐 터다. 그녀에겐 나나 리아의 조사로 알 수 없는, 꺼무위키에도 기록되지 않았을 역사(歷史)가 존재할 터다.
다만,
그것이 무엇인지.
거기에 무엇이 숨겨져 있는지.
그 앞은 마치 입을 벌린 심연과도 같아서 알 도리는 없지만.
‘아주 작지만… 힌트는 얻었다.’
첫째는 바바야가의 말.
—류리크. 아스트. 레이. 잘. 부탁한다.
—실비아를.
—우리. 마녀들의. 영원(永遠)을.
둘째는 김아무개수무개가 발견했던, 단 하나의 가능성.
—끝나지 않는 밤(Endless Night) 실비아 임볼릭 옥스턴 반즈.
반즈가 마녀와 교류했다는 기록은 없다. 애초에 반즈는 흑마술과 거리 있는 ‘어둠 마법’만을 세상에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던 것뿐이기도 했고.
하지만 분명 그 사이에 무언가 있었다.
‘영원, 그리고 끝나지 않는 것… 인가.’
나는 생각한다.
‘지금 깊게 생각할 것은 아니다. 실비아가 어떤 역사를 짊어지고 있든… 지금의 그녀는 내 편이니까.’
지독한 충성.
집요한 신뢰.
악착스러운 마음.
바바야가가 말해주었던 실비아의 마음. 나는 그것을 믿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상한 점? 실비아에 관해서 말인가?”
“예.”
리아는 오래된 기억을 천천히 더듬듯,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는 것처럼 말한다.
“아시다시피 실비아 양은 류리크 님이 바뀌시기 전부터 곁에 있던 인물입니다. 그렇기에 꽤나 공들여 조사했습니다만….”
그리고 나는 깨닫는다.
실비아라는 개인을 알아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퍼즐이 하나 빠져 있었음을.
“…그녀의 어머니만큼은, 누군지 알 수가 없더군요.”
* * *
다음 날 아침.
나는 넌지시 실비아에게 그녀의 어머니가 누구인지 물었다만, 그녀도 아는 바가 없었다. 애초에 그녀를 낳은 뒤 사라졌다고 하며. 얼굴은커녕 이름도 모른다고 했다.
거기에 그녀의 아버지 또한 생전에 어머니의 얘기를 별로 하지 않았다고 하니.
“그런데 그건 왜?”
“글쎄. 특별히 이유는 없다만.”
“아하, 이게 그거구나? 결혼하기 전에 상대방 집안이 어떤지 알아보는 호구조… 사악! 끄약! 야윽!”
실비아를 가볍게 타작하자니, 이번에는 요루아가 끼어들었다.
“보스, 오늘이 보스네 분반이 약초학 실습 가는 날이지?! 돌아올 때 약초학 실습 꿀팁 알아 와!”
“…알아 와는 반말이다.”
“아, 알아 와 주세요?”
거기에 왜인지 자기 기숙사를 쓰지 않고, 저택에 머물고 있던 메이린까지.
“류리크 씨. 애가 모를 수도 있지, 뭘 그렇게 인상 쓰고 그래요.”
“너는 언제 또 요루아랑 친해졌다고 편을 드는 거냐….”
“그, 그게 이 집안에서 만만한 게 요루아밖에 없어서….”
“무, 무엄하다! 인간! 요 며칠 같이 놀아줬더니, 감히 이 로스월드의 비밀병기인 이 몸을 만만하다고…!”
“…요루아의 말에 따르면, 너랑 놀아줬다고 한다만.”
“저래도 심부름시키면 말 잘 들어요… 하하.”
그런 작은 헤프닝이 있고 난 뒤, 드디어 기초 약초학의 학외 실습이 시작되었다.
학교 측에서는 학생들의 편의를 위해, 임시로 워프게이트까지 만들어 단번에 비에자 숲 근처까지 이동하게끔 했다.
(부총장이 샤르미넨을 죽일 듯 닦달해서, 하루 만에 만들어냈다는 풍문이 전해진다.)
워프게이트는 애초에 값이 비싸고, 대도시 단위로만 있는 교통수단이라, 귀족이라 해도 좀처럼 쓸 일이 없는 물건이었다.
그 때문인지, 학생들은 워프게이트를 이용할 때부터 꽤나 들뜬 기색이었다.
—오랜만에 나오니까 좋다! 아, 가끔은 외출도 하고 그럴걸.
—비에자 숲에서 사람들 가끔씩 실종되고 그런다던데.
—에이, 별일 있겠어?
몇몇은 불안감을 표했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워프게이트를 타고, 넘어가자마자 20여 명의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학생 여러분, 비에자 숲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우리가 있는 한, 여러분은 절대로 안전할 겁니다!
—와하하! 젊은 친구들을 보니, 나까지 젊어지는 기분인데!
아마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고용한 것으로 보이는 용병들. 거기엔 길잡이도 섞여 있었다.
“그러고 보니까 류리크 씨. 메이린 씨한테는 아직 설명 안 하지 않았어?”
“응? 그게 무슨 소리예요?”
나는 메이린을 보며 말한다.
“오늘, 아마도 높은 확률로 이곳에서 사고가 발생한다.”
나는 메이린이 꽤 놀랄 거라 생각했는데, 그녀는 의외로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그렇게 당당하게 말한다는 건, 준비가 되었다는 거네요?”
“그렇긴 하다만.”
“에이, 그러면 뭐 걱정할 거 없네요!”
당장 여기서 사고가 터진다는데 뭐 저리 태연하단 말인가.
나는 조금 어이없어 왜 저러나, 하는 눈으로 보자니 메이린이 당당하게 덧붙인다.
“류리크 씨는 사기잖아요.”
“………….”
“뭔가 막 다 계획이 있고, 어떻게든 잘 해내겠죠! 류리크 씨는 그런 사람이니까요!”
그 믿음이 뭔가 플래그 같아서 불안하다만.
* * *
모란 교수는 평소처럼 어딘가 늘어지는 듯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에에… 오늘은 공지했던 대로 레드 만드라고를 직접 눈으로 보고, 캐는 작업을 해 볼 겁니다.”
그녀의 말에 80명의 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이런저런 말들을 떠들기 시작한다.
―레드 만드라고, 그거 꽤 비싼 약초라면서?
—캐는 대로 자기가 가져갈 수 있다던데?
—약초과에서는 매입도 해준다더라.
용병들 때문에 안심이 되었는지, 학생들의 분위기는 흡사 피크닉을 나온 듯했다.
모란 교수 역시 꽤나 기분이 좋은 듯, 은근히 미소 띤 얼굴로 말했다.
“에에… 그 전에 일단 레드 만드라고가 왜 중요한가… 이걸 알아야, 여러분이 열심히 하겠죠?”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레드 만드라고는 그야말로 약초학의 기본이자 필수라고 볼 수 있으니까.
“에에… 결론부터 말하자면 레드 만드라고는, 회복 포션의 주요 소재입니다. 그런데 인위적인 재배가 안 되고, 약초꾼들이 보는 족족 뽑아대니… 에, 대규모 군락지가 좀처럼 없죠.”
게임에서도 약초학과 포션 제조 스킬은 곧잘 사용되는 편이다. 특히 높은 난도에서 전투 직업을 선택할 경우, 두 스킬은 거의 필수 요소로 자리매김한다.
“에에… 물론 다들 알겠지만, 꼭 힐링 포션의 소재가 레드 만드라고만 있는 건 아닙니다. 고급 포션의 대표주자는 역시 설원 트롤의 피로 만든 거죠.”
“에에… 그렇지만 레드 만드라고는 가장 쉽게 만들 수 있고, 가장 대중적으로 이용되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반드시 알아야 한다는 거죠.”
“에에… 야전 상황에서 부상을 당했을 때, 레드 만드라고만 잘 찾아도 치료할 수 있게 만드는 것. 그게 바로 이 실습의 주된 학습 목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내게도 꽤나 의미 있는 수업이라 볼 수 있겠다.
게임에서야 ‘이론적으로’ 레드 만드라고의 취급법을 안다지만, 실제로 만지거나 채취해 본 적은 없기에.
“에에… 일단 실습하기에 앞서, 제가 직접 시범을 보여드릴 겁니다. 모두 잘 지켜보도록 하세요.”
모란 교수는 발치에 있던 레드 만드라고 쪽으로 몸을 숙인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 마법 주머니에서 아이템을 꺼냈다.
“실비아, 메이린. 둘 다, 내가 신호하면 이 귀마개를 껴라.”
“넵!”
“알겠어!”
둘 중 한 명쯤은 ‘네? 왜 갑자기 귀마개를….’ 소리를 하길 바랐는데. 뭔가 싱숭생숭한 기분이다.
한편, 모란 교수는 레드 만드라고를 가리키며 본격적인 설명을 시작한다.
“에에… 레드 만드라고는 약초임과 동시에 마법 생물이기도 합니다. 본체가 외부의 충격을 받으면 미량의 마력을 발산하며 소리를 지르죠.”
“에에… 그 목적은 자신을 해치려는 짐승들을 쫓는 것입니다만, 레드 만드라고가 소리를 지르면 포션 소재로서의 가치가 떨어집니다.”
“에에… 레드 만드라고가 비명을 지르는 원리는 간단합니다. 흙에 파묻혀 있는 본체의 마력을 줄기를 통해 잎사귀로 보내서, 소음을 내는 거죠.”
“에에… 그렇기 때문에 레드 만드라고를 채집하기 위해서는 주변의 흙을 살살 판 뒤… 쨘. 이렇게 줄기를 잡아 한 번에 뽑아내면 됩니다.”
모란 교수가 어렵지 않게 레드 만드라고를 뽑자, 학생들 사이에서 작은 탄성이 흘러나온다.
“오, 오오….”
“생각보다 간단한데?”
“어렵지 않게 따라 할 수 있겠어!”
그 순진한 반응들을 보며, 모란 교수가 어딘가 사악한(?) 미소를 짓는다.
“에에… 그러면 이제, 여러분이 알려준 방법대로 채집하지 않았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볼까요?”
그리고 나는 말한다.
“메이린, 실비아. 지금이다.”
—삐에에에에에에엑…!
모란 교수가 레드 만드라고의 줄기를 놓자, 뇌를 직접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저주파가 장내에 울려 퍼진다.
괜히 게임에서도 레드 만드라고를 채취 때는 음소거가 국룰, 이라고 알려진 게 아니었다.
“교, 교수니이이임?! 귀가 너무 아픈데요오오오!”
“으아아아악!”
“제바아알! 누가 저 소리 좀 멈춰 봐아아아!”
우리는 미리 준비해 둔 귀마개로 화를 면했다만, 된통 당한 학생들 일부는 바닥을 뒹굴면서까지 고통을 호소한다.
모란 교수는 그대로 한 10여 초 정도 학생들을 괴롭힌 뒤, 다시 레드 만드라고의 줄기를 잡아 제압했다.
“에에… 이렇듯 레드 만드라고는 채집할 때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왜 꼭 실습을 해 봐야 하는지 알겠죠?”
유감스럽게도 그 설명을 들어야 할 학생들은 대부분이 만신창이 상태다.
몇몇은 침까지 질질 흘리고 있다.
모란 교수는 이런 광경이 익숙한 듯, 동요하지 않은 채 설명을 이어간다.
“뽑은 뒤에는 줄기를 잡은 채, 발성 기관인 잎사귀를 하나씩 떼면 됩니다. 잎사귀를 다 떼면 자, 이렇게 줄기를 놓아줘도 소리가 나지 않죠.”
―살려줘어어….
―우욱, 토 쏠린다….
―느웨에엑… 머리가 어지러워….
학생들이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있을 때, 설명을 마친 모란 교수가 짝짝 박수를 쳤다. 그러자 그녀의 몸에서 정신을 맑게 하는 약기운이 흘러나왔다.
약초를 촉매(觸媒)로 삼아 자연 계열, 축복 계열을 뒤섞은 모란의 고유 마법이었다.
[ 모란 교수의 마법이 몸 안에 활력을 불어넣습니다. ] [ 모란 교수의 마법이 정신을 맑게 합니다. ] [ 모란 교수의 마법이 건강을 소폭 회복시킵니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학생들은 그제야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모란 교수는 히죽, 웃으며 어느 나무 그늘에 몸을 기대어 앉았다.
“에에… 그러면 다들 흩어져서 레드 만드라고를 채집하도록 하세요. 각자 하나씩만 채집하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