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possessed a villain with nothing but a death flag RAW novel - Chapter 118
사망 플래그밖에 없는 악역에 빙의했다 118화
118
—여러분들의 멘티는, 각지에서 추천된 마법의 재능을 가진 학생들입니다.
—당연 멘토링은 기본적으로는 마법에 대해 알려주는 것인데…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요. 여러분이 막, 교수님들처럼 강의하는 게 아니랍니다.
—마법사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나, 여러분이 어떤 식으로 수련하는지 등을 알려주는 걸로 충분하답니다.
나르샤 교수의 간단한 사전 교육이 진행되는 와중, 나는 가시방석이라는 말의 의미를 절절히 느끼고 있었다.
지이이.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오는 게 아닌가, 싶을 만큼 레베카가 노골적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는 척을 하려는 건지, 책상에 머리를 묻은 채 고개만 돌려 이쪽을 보는데.
—어머, 저 둘 뜨거운 거 봐.
—어머어머.
—한시라도 눈을 떼고 싶지 않은가 봐.
—거, 거참. 교실 안인데…….
—그런데 왠지… 숨 막히는 거 같지 않아?
주변의 기묘한 반응까지 더해지니, 아주 죽을 맛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 이상한 대치가 얼마나 이어졌을까.
50분으로 예정되었던 교육이 500분으로 느껴질 무렵, 나르샤 교수가 평소보다 조금 피로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흠흠, 사전 교육은 여기까지입니다. 여러분의 멘티는 조금 있다가 게시판을 통해서 공지될 거고… 혹시 질문할 거 있나요?”
“………….”
“………….”
학생들은 모두가 한 몸이 된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원래 대학생이란 시키면 대답하되, 먼저 질문은 잘 하지 않는 생물이기에.
나르샤 교수는 그럼에도 프로답게 미소를 잃지 않으며 말했다.
“지금이 아니더라도 궁금한 게 생기거나 힘든 일이 있다면 언제든 절 찾아오세요. 그러면 멘토링 사전 교육은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짝짝짝!
질문은 없었지만, 말끔한 마무리에 학생들이 짧게나마 박수를 보냈다. 그리곤 모두가 자기 가방을 챙기며 우루루, 교실을 빠져나갔다.
“………….”
“………….”
10초 정도 지났을까.
교실에는 나와 레베카만이 남았다.
누가 남자고 한 것도 아니건만, 우리 둘은 그렇게 자리를 지킨 것이었다.
잘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벌려가며 나는 목소리를 내었다.
“레베카. 본인의 얼굴에 뭐가 묻기라도 했는가.”
“그렇지는 않다만.”
“헌데 왜 그리 뚫어져라 쳐다보는가.”
얘가 뭘 잘못 먹었나.
나는 진지하게 그런 고민을 했고, 레베카는 아주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연인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 뭔가 이상한 일이던가.”
“50분가량 미동 없이 그러고 있는 건 뭔가 이상하지 않겠나.”
“그런가.”
“………….”
이상하다.
분명 내가 아는 레베카 꺼무위키에 ‘4차원’ 같은 키워드는 없었을 텐데.
대체 뭐가, 어디서,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
“류리크. 이건 사실, 교육하는 내내 자네가 이쪽을 보지 않아서 그렇게 된 거라네.”
“그건 또 무슨 참신한… 소리인가.”
“원래 자네와 눈이 마주치면, ‘이제야 이쪽을 보는구나.’라고 말할 참이었거늘. 자네 생각보다 눈치가 없군그래.”
이건 어쩌면, 레베카가 진지하게 나를 엿 먹이기 위해 고안한 기만 화술의 일종이 아닐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할 말은 그게 끝인가. 더는 용건이 없다면 본인은 먼저 가보도록 하지.”
“잠깐. 함께 의논할 것이 있네.”
“…………?”
“우리의 미래에 관한 얘기라네.”
* * *
미래에 관한 얘기.
그 긴밀한 대화를 위해 레베카는 간단하게 밀실을 만들었다.
—밤하늘의 커튼.
내가 그녀에게 고백했을 때(?) 사용했던 그 아티팩트였다.
약간의 마력을 불어넣어 일시적으로 시야, 소리, 후각 등이 차단되는 괜찮은 게 나타났다… 만.
이 안에서 나오는 화제는 결코 괜찮은 내용이 아니었다.
“류리크, 우리의 관계를 재설정하고자 한다.”
그야말로 폭탄선언.
나는 의도적으로 눈썹을 찌푸리며 약간의 불쾌감을 드러냈다.
“뜬금없는 소리군.”
“그렇지 않다네. 이 화재의 시발점은 자네가 제공했으니.”
“…이번 달의 데이트를 거절했던 일 때문인가.”
레베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네. 유감스럽게도 그 귀책이 자네에게 있음은 명확하지.”
“허나 레베카, 그건 부득이한 사정으로…….”
“황금연휴 때, 로스월드의 심처(深處)에 갔던 것은. 결코, 부득이한 사정이 아닐 텐데?”
순간 말문이 막혔다.
“류리크. 정보부의 분석에 따르면, 대개 연인은 주기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그와 같은 사정에 대해서는 사전에 상대에게 알리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하더군.”
“………….”
“또한 보고서에 따르면, 14일간의 연락 두절은 명백한 이별 사유라는 통계 역시 제시되어 있었네.”
“………….”
“다시 말해, 자네는 지금 우리의 계약관계를 일방적으로 파기한 거나 다름없는 수준의 기만을 범했다는 얘기다.”
“…………….”
“이에 책임을 통감한다면, 본녀의 요구조건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네만.”
논리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엔 가장 근본적으로 잘못된 대전제가 깔려 있다.
—너와 나는 진짜 연인이 아니다.
아마 그 통계라는 건 실제 연인, 커플 등을 대상으로 한 설문을 근거로 할 터다.
당연히 데이트를 요식행위로 여기는 계약 연애 관계인 나와 그녀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이야기다.
그러니 진짜 커플의 통계를 여기 들먹이는 건, 잘못된 것이다만…….
‘그래도 여기선 비위를 맞춰줘야겠지.’
나는 바보가 아니다.
레베카가 정말로 나와 데이트하고 싶어서 저러는 게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아까부터 느꼈던 그녀의 기묘한 행동은 일종의 분풀이일 터다.
나름 신경 써서 데이트 장소를 조사하는 등 부수적인 노력을 했건만,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라 ‘보복’을 하고 싶은 것일 테지.
“그래. 레베카. 그 건에 대해서는 본인의 과실이 큼을 인정한다.”
“다행이군.”
“하여, 자네의 바람은 무엇인가.”
그 순간, 레베카의 눈이 먹이를 포착한 맹수처럼 빛난다.
“주 3회 함께 식사를 하거나, 가벼운 외출을 하고, 거기에 더해 주 1회는 제대로 된 데이트를 할 것.”
“………….”
“류리크, 어찌하여 가타부타 말이 없는가.”
이상한 일이다.
괴이한 환청이 들리는 걸 보니, 귀가 맛탱이가 간 모양이다.
“레베카. 본인의 귀가 잘못 들은듯한데, 한 번 더 말해줄 수 있겠나.”
“본녀의 바람은 간단하네. 주 3회 함께 식사를 하거나, 가벼운 외출을 하고, 거기에 더해 주 1회는 제대로 된 데이트를…….”
“기각한다.”
레베카가 눈살을 찌푸렸다.
“방금 과실이 큼을 인정한다 하지 않았던가.”
아니, 그렇다고 해도 정도가 있지.
주 3회 밥 먹고, 주 1회 데이트를 한다고 치면, 일주일에 네 번은 레베카랑 만난다는 소리다.
그쯤 되면 적당히 기분 전환 겸, 시간을 낭비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무엇이 되었든, 내가 하려는 여러 일에 차질이 빚어질 게 뻔하다.
‘이건 레베카도 마찬가지일 테지. 그녀 역시, 공사다망한 와중일 테니까.’
그런고로, 아마 레베카도 진심으로 하는 소리는 아닐 터다.
그저 자신이 바라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처음에만 크게 지르는 흔해 빠진 협상술일 게 당연하다.
“레베카, 우리 사이에 뻔한 협상술은 삼가도록 하지. 자네가 원하는 진짜 조건을 말해 보게.”
“………….”
“왜 그러지?”
“본녀는 진심으로 주 4회를 생각했네만. 앞서 말했다시피, 정보부의 통계가 그러하지 않던가.”
“………….”
아니, 저기요. 아니, 아니… 예?
“레… 베카? 자네답지 않게 판단이 흐려진 듯하다만, 상식적으로 생각하게. 데이트 같은 요식행위를 주 4회나 한다니. 대체 얼마나 시간이 낭비될 거라 생각하나.”
“본녀는 무척이나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근거에 따라 판단하고 있다네.”
“………….”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야.
나는 밀려오는 두통을 꾹꾹 참아가며 입술을 뗀다.
“레베카, 그건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이라네.”
“허나 본녀는 달리 바라는 것이 없다. 그대가 받을 제안은 하나뿐이라는 게지.”
“…내가 거절한다면?”
“글쎄. 그대가 과연 거절을 할 수 있을까.”
—째릿.
무심(無心) 안에 칼을 벼려낸 듯한 레베카의 시선과 태연한 척하면서도 당혹을 담아낸 내 시선이 맞부딪친다.
“류리크 아스트레이….”
“레베카 이실리엔….”
우리는 동시에 서로의 이름을 한 번씩 불렀고, 이내 장대한 토론의 서막으로 이어진다.
30분 뒤.
단순히 말을 주고받았을 뿐인데, 레베카도 나도 구슬땀을 흘리며 숨을 몰아쉬고 있다.
“…제법이군. 류리크.”
“그대야말로.”
평행선을 달릴 뿐인 토론은 사실 무슨 말을 기워 붙인들 결론이 날 수 없었다.
결국, 누군가가 양보를 해야만 했다.
문제는 그 타협점을 찾기란 요원해 보인다는 점이다.
내 입장에서는 레베카와 이렇게까지 합치를 이루지 못한 것은 처음이라, 꽤나 곤혹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때 레베카가 무언가를 결심한 듯 말했다.
“류리크. 우리 둘이 말하는 것은 사실, 가능과 불가능의 얘기가 아니다. 할 것인지 말 것인지, 의지의 문제지.”
“동의한다.”
“그런 이유에서, 이를 승부로 결착을 지으면 어떨까 싶네만.”
갑자기 이건 또 무슨 전개인가.
“승부?”
“어차피 서로 타협을 볼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으니, 차라리 승패로 이를 결정하자는 것일세.”
이치에는 맞다.
어차피 나지 않을 결론에 말싸움으로 시간 낭비를 하느니, 이편이 낫긴 하다.
하지만,
“종목을 선택하는 데에서, 다시 한번 굉장히 긴 얘기가 될듯하네만.”
“동감이네. 그런 의미에서, 자네도 나도 유불리를 따지기 어려운 종목으로 선정했으면 하네.”
“이를테면?”
“때마침 그대도 나도, 같은 멘토링 활동을 하고 있지 않은가. 이걸로 승부를 보는 걸세.”
그 순간, 지금껏 복잡했던 머리가 한순간에 맑아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 말인즉, 멘티들의 경연으로 승패를 가리자는 것인가.”
“그렇다네.”
방심하는 순간, 입술이 제멋대로 씰룩거릴 것 같다.
나는 바로 어제 있었던 리아와의 문답을 떠올린다.
—일단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이번에 어떤 멘티와 이어질지에 대해, 로비를 하셨다 들었습니다만. 그게 맞는지요.
—그렇다만, 무슨 문제라도?
그렇다. 나는 이미 누가 나의 멘티가 될지에 대해 손을 써둔 상태이다.
그리고 나와 함께하게 될 녀석은, 내년도에 샤프란에 입학할 사기적인 재능의 메인급 NPC.
‘이 승부, 절대 질 수가 없다.’
한편 이런 내 속내를 알 리 없는 레베카는 천연한 얼굴로 묻는다.
“류리크, 이 정도면 유불리를 쉽게 따질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혹 다른 방법이 낫겠나?”
“아니, 좋네. 그걸로 하지.”
나는 말려 올라갈 것 같은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내리며 담담한 척 말한다.
“경연에서 누구의 멘티가 더 우수한 성적을 거두는지… 그것으로 승부를 보지.”
* * *
작일(昨日), 아르메이어 대공가.
수천 평에 이르는 드넓은 화원의 가운데 서 있는 대저택.
사람이 오지도, 가지도 않기로 유명한 이곳에 오랜만에 외지인이 발을 들였다.
저택 안에서 티타임을 즐기고 있던 아르메이어의 당주, 노르먼 아르메이어는 다소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잔을 내려놓았다.
“레베카 이실리엔이… 갑자기 찾아왔다고?”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인가.
노르먼은 천천히 자리에 일어서며 말한다.
“레베카라면… 황태자 저하의 여식 아니던가.”
“예, 그렇습니다. 당주님.”
“그런데 왜 갑자기 여길 찾아온 거지?”
설마, 하면서도 얼핏 짚이는 구석이 있었다.
노르먼은 조금 굳은 얼굴로 시종에게 물었다.
“손님은 지금 어디 계시는가.”
“저택 입구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으음, 일단은 접객실로 안내해드리게. 아무리 그래도 손님을 박대할 순 없는 노릇이니.”
말은 그리했지만, 그의 마음은 안개가 낀 것처럼 갑갑했다.
‘갑작스레 황태자의 여식이 이곳을 찾아오다니……. 폐하께서 위중하단 소문이 사실이란 말인가.’
그는 손님을 맞기 위해 가볍게 옷을 갈아입으며 애써 굳은 표정을 풀었다.
별일 없을 거다.
스스로에게 주문을 외듯 되새기며 접객실로 향한다.
‘그게 아니고서야 갑자기 황태자의 여식이 여길 찾을 리가 있나.’
머릿속으로 이미 최악의 시나리오를 그리던 노르먼은 짧게 심호흡한 뒤, 접객실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기품 있게 홍차를 들고 있는 레베카가 있었다.
“당주, 이렇게 직접 찾아오는 건 처음인데… 본녀의 이름을 기억하는가 모르겠군.”
“레베카 이실리엔 양. 바타체스의 재녀로 이름난 분을 어찌 모르겠나.”
“그 정도는 아니라네. 그나저나 대공께선 건강하신가.”
대공.
그 단어가 나오자 노르먼의 몸이 살짝 굳었다.
“무례를 용서하게. 대공께선 현재 몸이 편찮으시어 내가 이리 나왔네.”
“당주께서 이리 몸소 나왔는데, 무례는 무슨 무례인가. 구태여 따지자면 예고 없이 찾아온 본녀가 불청객이지.”
당주의 눈가가 가늘어지고, 이를 의식한 듯 레베카가 말한다.
“저런, 당주께서 무언가 오해하고 있는 듯한데, 본녀는 아르메이어의 선제후(選帝侯)를 뵈러 온 것이 아닐세.”
“………….”
“어릴 적부터 아버지께 아르메이어 대공은 지혜로운 분이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네. 결코 눈앞의 무언가에 현혹되지 않으며, 오래 보시고, 길게 생각하시는 분이라고.”
“………….”
“본녀가 지금 이렇게 찾아와 무엇을 말한들, 흔들리실 분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게지.”
저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니, 대놓고 황태자를 지지하라든가 같은 얘기는 아닐 듯했다.
노르먼은 약간이나마 경계심을 풀며 조심스러운 어조로 입을 연다.
“허면 여기엔 무슨 일로 왔는지….”
“당주의 고민을 약간 덜어주고자 왔네.”
그 고민이 혹시, 결국 황태자인지 2황자인지에 대한 근심을 덜어주겠단 건 아닌가.
노르먼의 의심병이 재차 도지는 가운데, 레베카가 말한다.
“소문에 당주께서 소애(少艾)의 문제로 마음고생이 깊다 들었는데.”
“소애라 하면… 본인의 여식을 말하는 것인가.”
“그렇다네. 여느 부모가 그렇지 않겠냐마는, 당주의 경우는 조금 특별하다 들어서 말이지.”
노르먼의 얼굴이 다른 의미로 컴컴해졌다.
“후우… 딸자식의 소문이 황실에까지 퍼졌던가.”
“오해 말게, 당주. 이는 그저 본녀의 귀가 밝아 들은 것이고, 작게나마 도움이 될듯하여 찾아온 것뿐이니.”
“…혹여 본인에게 은(恩)을 쥐여 주고 싶은 마음이라면, 미안하지만 도움이 될 수 없다네. 내 어쩌다 보니 가문의 당주직을 맡긴 했으나, 아르메이어의 대공이자 로마노프의 선제후는 여전히 아버지시니까.”
고귀의 13가문은 엘베드가 아니면 당주직을 이을 수 없듯, 선제후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쉽게 계승되지 않는다.
불가분의 관계처럼 보이는 가문의 당주와 대공을 나눠 당주직을 물려줄 순 있어도, 선제후와 대공의 작위만큼은 쉽게 물려줄 수 없다.
—제국의 선제후, 그 이름은 결코 가볍지 않으니까.
물론 레베카는 결코 그런 목적을 위해 여기에 방문한 것이 아니었다.
“당주. 그대의 오해가 쉽게 풀리지 않는 듯해 말하네만. 본녀는 결코, 은(恩)으로 거래를 하지 않아. 이 점은 명확히 해야겠군.”
“………….”
“믿건 믿지 않건, 당주의 마음이네만. 그래도 여기까지 온 김에 이유는 말해야겠군.”
이건 그렇게 심각한 얘기가 아니다, 레베카는 적당히 너스레를 떨 듯 말한다.
“사실 대단한 도움을 주려는 것도 아닐세. 그저 괜찮은 가정교사를 추천하려는 것뿐이니까.”
“가정…교사?”
“그렇다네. 자네의 여식에게 잘 맞는 가정교사가 있을 듯해서 말이지.”
“으, 으음. 소문을 듣고 왔다니 알겠지만, 내 여식은 별로 학업에 관심이 없다네.”
말 자체는 덤덤히 했지만, 그게 꽤나 속을 썩였는지 노르먼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운다.
“어차피 알 테니 하는 말이네만… 아카데미에서는 징계를 밥 먹듯이 받다가 결국 퇴학당했고, 가정교사들은 들이는 족족 일주일을 버티지 못했지.”
“이미 들어 알고 있네.”
“여하간 공부와는 연이 먼 아이라네. 마음은 고맙네만, 아마 그 교사가 누구인들 쉽게 버티지 못할 테야.”
후우, 노르먼이 짙은 한숨을 쉰다.
레베카는 기다렸다는 듯이 미소 지으며 말한다.
“당주, 본녀는 그 모든 걸 알고 자네를 찾아온 것이며 이렇게 제안하는 것이라네.”
“그런…가?”
“혹시 요루아라는 이름을 들어보았는가.”
“으음, 처음 듣는데.”
“로스월드의 비밀병기라면, 들어본 적 있겠지.”
그거라면 노르먼도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어느 모임에서든 로스월드의 인간들이 그렇게 자랑하고 다녔으니까.
“언제인지는 기억 안 나지만, 가르테고가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던 기억이 나는군. 최연소 헤루인이 될 인재라고 했었나….”
“본녀가 추천할 그 가정교사는 무려 가르테고의 신임을 사, 그 비밀병기를 직접 가르치고 있다네.”
그 말에 노르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게 정말인가? 그 가르테고가 로스월드의 비밀병기를 남에게 맡겼다고?”
“참고로 그자는 현재, 샤프란에서 학년 수석이기도 하지.”
“오, 오오….”
별다른 기대 안 하던 노르먼의 얼굴에 묘한 기대감과 희망이 감돌기 시작한다.
“이 정도면 어떻게, 믿음이 가지 않는가.”
믿음 정도일까.
알음알음 소개받은 별 시답잖은 가정교사들보다 훨씬 괜찮게 들렸다.
“무, 물론 그 가정교사가 우수하다는 것은 알겠는데……. 내 여식과 잘 맞을지는 또 모르겠군.”
“어차피 밑져야 본전 아닌가. 편한 마음으로 한번 맡겨 보게.”
처음엔 체념하는 듯했지만, 노르먼도 결국 평범한 부모처럼 자식 교육에 열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노르먼은 의욕적인 눈빛을 띠며 레베카를 바라본다.
“값은 그 가정교사와 직접 얘기를 하면 되겠나?”
“아니, 돈은 한 푼도 들지 않을 걸세.”
“…응? 그게 무슨 소리인가.”
그리고 레베카가 웃었다.
“이건 샤프란에서 진행하는 멘토링 과정이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