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possessed a villain with nothing but a death flag RAW novel - Chapter 121
사망 플래그밖에 없는 악역에 빙의했다 121화
121
오필리아 벨테인 폰 프탄파나 아르메이어.
—아르메이어 대공가의 장녀.
—샤프란 마법 학교 학생. (내년)
—성장의 한계치는 벨테인 등위.
—연기 특성 A랭크.
여기까지가 그녀의 대외적인 프로필.
그리고 그 이면에서 그녀를 바라보는 세간의 시선은,
—수많은 사고를 치며 아카데미에서 퇴학당한 망종.
—그 어떤 가정교사도 일주일을 채 못 버티게 만드는 악동.
—건방진 말투에, 남을 업신여기며 온갖 사건사고를 몰고 다닌 인간 말종.
거기에 화룡점정을 찍듯 더해진 그녀의 별칭은,
—아르메이어의 작은 악마.
“하아?”
“………….”
“너, 뭐야. 그걸 어떻게 알았어?”
—화륵.
발밑에서 날아든 불덩이는 애초에 그리 위협적이지 않았다. 덩어리는 내 몸뚱어리만 하지만, 화력은 성냥불 정도에 불과했으니까.
아마 직격 한들, 약간의 화상을 입는 정도일까.
“류리크 씨!”
당연 그런 어설픈 마법은 실비아에게 간단히 가로막혀 사라졌다.
“올~ 반응이 빠른데.”
카펫과 벽지가 조금 그을렸다만, 나와 실비아는 실오라기 하나 타는 일 없이 무사했다.
물론 무사한 것과 별개로 실비아는 잔뜩 성이 난 모습이었지만.
“너… 이게 무슨 짓이야!”
“무슨 짓이냐니, 그냥 신고식인데 왜 그렇게 예민해? 설마 화났어?”
“이게…!”
“장난인데 왜 그래? 별거 아니잖아. 너희들 다친 것도 아니고.”
방금까지만 해도 선생님 운운하며 처연하게 굴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사람 놀리는 데 열중인 소악마의 모습이 드러난다.
얄밉게 건들거리는 모습에 실비아가 부들부들 떨었다만, 섣불리 움직이진 않았다.
더 기고만장해진 오필리아가 피식 웃었다.
“그런데 방금 그거. 아버지가 알려줬어? 아니면 전에 있던 가정교사들이 경고라도 했어?”
나는 짧게 답했다.
“느낌.”
“정말?”
“………….”
더 대답할 가치가 없는 문답이었다.
나는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실례하지.”
“방금 발밑에서 화염구가 날아들었는데, 꽤나 속 편하네.”
“나는 그리 예민한 편이 아니라서 말이지.”
“………….”
오필리아는 의자에서 내려오며 쭉 기지개를 켰다.
“으으~ 아버지가 또 가정교사를 들인 모양인데, 네가 누구이고 무슨 소리를 하든 나는 수업 안 들을 거니까~.”
“………….”
“그딴 거 들어봤자 의미도 없고. 듣고 싶지도 않고.”
대충하는 말 같지만, 사실 여기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아이는 자신을 잘 숨기지 못한다.
아이는 아이의 언어로 솔직하게 말한다.
그 부분을 잘 생각해보면, 저 말에는 오필리아의 본질과 직결된 문제가 나타나 있다.
그러니 나는 말한다.
“듣지 마라.”
“…응?”
“나는 너를 가르칠 생각이 없으니까.”
* * *
수업 듣기 싫은 학생(멘티).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는 선생(멘토).
이 둘은 마치 묘한 이원 관계처럼 잘 맞물렸다.
“흐응. 너 바보긴 해도, 꽤 괜찮은 녀석이잖아.”
침대에 누워 있던 오필리아가 천장 쪽으로 손을 뻗으며 말했다.
나는 마법 주머니에 챙겨두었던 역사서를 읽으면서 답했다.
“나는 원래 썩 괜찮은 녀석이지.”
“근데 이 시간에 책 읽는 거 마음에 안 드는데.”
“………….”
“아빠한테 돈은 받으면서, 너 책 읽는 거잖아.”
여하튼 요망하고 이기적인 녀석이다.
“일단 첫째. 나는 보수를 받고 일하는 게 아니다. 멘토링이라는 봉사활동을 하는 거지.”
“뭔데 그게.”
“둘째. 구태여 따지자면 나도 자네가 그리 놀고 있는 게 마음에 들진 않는다네.”
“흐음. 그러면… 쌤쌤이네!”
“그런 셈이지.”
그리고 우리 둘은 각자의 하던 일을 계속한다.
나는 책을 읽고.
오필리아는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고.
벽에 기댄 채, 그 광경을 보고 있던 실비아가 한숨을 쉬었다.
“후우… 왜 류리크 씨 주변에는 이상한 애들만 꼬이는 건지…….”
* * *
수업(?)이 끝난 뒤.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복도를 걷던 중, 저 끝에서 노르먼이 나타났다.
아르메이어의 당주는 꽤나 걱정스러워하는 눈치였다.
“모, 몸은 괜찮은가.”
“보다시피.”
“이미 딸아이의 소문을 들은 듯해서 말은 않았네만… 그 아이가 장난이 짓궂은 편인데. 다행이야.”
바닥에서 불덩이가 날아오는데, 그게 어딜 봐서 짓궂은 편인 거냐! 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 화염구라고 해봐야 맞아도 화상 입을까 말까 한 정도고 다치지도 않았으니.’
나는 가볍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별일 없었네.”
“그렇군. 그래서… 수업은 어땠나?”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네.”
농땡이 쳤다고 말할 수는 없으니 적당히 둘러댔다.
“그런가….”
노르먼이 말끝을 흐렸다.
무언가 말하고 싶은 눈치였지만, 선뜻 입을 열기는 어려운 눈치였다.
‘방황하는 딸과 고심하는 아버지인가. 하기사 노르먼도 혼란스러울 테지.’
안에서 무슨 얘기를 했는지.
딸은 조금 더 나아질 수 있을지.
자기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없는지.
묻고 싶은 것도, 하고픈 말도 많겠지마는 아직은 아니었다.
‘나는 아직 일주일을 넘기지 못했으니까.’
그 누구도 넘기지 못했다던 마(魔)의 일주일.
그 일주일을 버티고, 그의 딸에게서 변화가 찾아온다면… 그때 이 흐려진 문답이 이어질 터다. 그러니 지금은,
“당주. 날이 늦었네. 할 말이 없다면 먼저 이만 가 봐도 되겠나.”
“아, 이런. 미안하네. 돌아가야 할 손님을 붙잡고 있었으니.”
“괜찮네. 내일 같은 시간에, 다시 방문토록 하겠네.”
“고맙네… 그리고 딸아이를… 잘 부탁하네.”
아니, 그 뉘앙스는 좀 이상하다니까.
나와 실비아는 그길로 아르메이어의 저택을 빠져나왔다.
드넓은 꽃밭의 저편, 시리게 떠오른 달이 보였다.
날이 늦었다.
우리는 꽃밭 너머에서 대기 중이던 리무진에 올랐고, 차량은 천천히 어두워진 밤길을 내달린다.
실비아가 물었다.
“류리크 씨, 이대로 괜찮은 거야?”
“오필리아 말인가.”
“걔 이름이 오필리아야?”
왠지 이름에 ‘리아’가 붙어서 거슬리네, 실비아가 투덜거렸다.
“아무튼 걔. 그대로 괜찮겠어?”
“괜찮지 않을 이유가 있던가.”
“류리크 씨의 목적은 화이트윙 뱃지를 얻는 거잖아. 그거 가점 얻으려면 멘티가 3위? 안에 들어야 한다면서.”
“………….”
“왜 말이 없어?”
나는 무언가 기이한 것을 본 것처럼 떨떠름하게 말했다.
“아니, 네가 그런 것까지 알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
“뭐, 뭔데! 그 반응! 뭔가 데자뷔도 느껴지고 기분도 나쁜데요!”
버럭, 소리친 실비아는 괜히 얼굴을 붉히며 헛기침을 한다.
“흠흠, 아무튼! 멘토링이라면서 아무것도 안 한 채, 저대로 둬도 괜찮은 거야?”
“아직은 뭐라 말하기가 애매하군.”
“다른 건 둘째 치더라도, 실력은 잘 모르겠던데. 함정으로 깔아놓은 화염구. 그거 보니까… 영 시원찮은 게 눈에 보이더라고.”
그건 오해다.
샤프란은 세계 최고의 마법 대학이고, 거기에 입학하기 위한 조건이 벨테인이다.
달리 말하자면, 오필리아의 스펙도 일단은 나쁘지는 않다는 거다.
‘물론 그 한계치가 벨테인이라는 점은 안타깝지만.’
나는 짧게 시름하다 입을 열었다.
“일단 바탕은 나쁘지 않다. 하지만 역시 본인의 의지가 문제겠지.”
“그러니까! 실력이 나쁘면, 열심히 하려는 마음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걔 말이야, 그 태도가 뭐냐고!”
문제라면 역시 실력이나 한계치보단 그쪽일 터다.
“일단은 마음을 여는 게 급선무겠지.”
“다음에 사탕이라도 사 올까?”
그런 걸로 해결되면 내가 이렇게 고민하지도 않겠지.
“아이의 마음은 단순하면서도 복잡하다. 그걸 헤아리는 것도, 풀어가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
“………….”
“일단 지켜보다 보면 답이 나올 터다. 그리고 걱정 마라. 일단… 생각해둔 바가 없지는 않으니.”
그리고 실비아가 말한다.
“저기. 류리크 씨. 가끔 보면 무슨 나이 50 먹은 할아버지처럼 말하는데, 류리크 씨는 나랑 동갑이고, 방금 오필… 뭐시기랑은 1살 차이거든?”
“………….”
“걔 키도 나랑 비슷하더만. 아이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 않… 악! 으갹! 꺄갹!”
* * *
일주일, 하고 조금 더 시간이 흘렀다.
아르메이어 가문의 장녀, 오필리아는 저택에서 떠드는 시녀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세상에, 아가씨를 상대로 일주일 넘게 버틴 가정교사가 있다니….
—실력이 좋은가 봐.
—얼굴도 잘생겼던데.
—맞아. 뭔가… 퇴폐적인 느낌이랄까?
—밤에는 짐승으로 변할 거 같은 느낌이지.
—맞아, 맞아!
—어머어머, 얘들이 못 하는 소리가 없어!
시녀들은 류리크가 마음에 드는 듯, 꺄르르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애초부터 외부와의 교류가 적어 오는 이도 가는 이도 없는 저택이기에 외부인이 오면 저리들 떠들어대는 것이었다.
‘흐응.’
어쨌거나 오필리아가 생각하기에도, 이번의 가정교사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태도는 조금 건방지지만.
—듣지 마라.
—나는 너를 가르칠 생각이 없으니까.
이해는 맞아떨어지니까.
‘예전에 가벼운 장난만 쳐도 쩔쩔매던 녀석들보단… 꽤 말도 잘 통하고?’
누군가는 무례하다고 질책하던 것을.
누군가는 대답도 못 한 채, 혼란스러워하던 것을.
그 남자는 꽤나 여유롭게 잘 받아쳤다.
이런 게 어른인가, 싶은 생각이 드는 사람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직 네 이름도 모르네. 너 이름이 뭐야?”
열흘이 되어서 처음, 그녀는 자신의 가정교사에게 이름을 물었다.
남자는 무심한 듯, 책장을 넘기며 답했다.
“류리크 아스트레이.”
“아스트레이? 뭔가 어디서 들어본 거 같은데….”
기억이 뿌옇다.
오필리아는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너 맨날 무슨 책 읽는 거야.”
“이것저것.”
“재미있어?”
“재미없다.”
“………….”
너도 단답이라 재미없어, 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마는. 어째서인지 오필리아는 이를 참았다.
대신, 그녀는 손가락으로 벽에 기대어 있는 여자를 가리켰다.
“쟤는 뭐야.”
“친구.”
“친구? 여기에 친구를 데려와도 되는 거야?”
“안 된다는 법은 없지.”
그건 그렇지.
“넌 나에 대해서 궁금하지 않아?”
“그다지.”
“정말? 아무것도?”
“그래.”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주말을 제하고 오늘 둘은 8일째 얼굴을 보고 있었다. 헌데 대화의 진척이랄까, 관계의 진전이 없었다.
연인이나 이성적인 게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서.
거기서부터 묘한 기분이 들었다.
‘얘는 왜 이렇게 반응이 없지.’
‘얘는 왜 무슨 말을 해도 이런 느낌이지.’
‘내가 무슨 말을 하면 얘가 놀라거나, 당황할까.’
오필리아가 말했다.
“나 예전부터 여기에 갇혀있어. 오늘로 한… 2년 정도?”
말이 뇌의 필터를 거치지 않은 결과였다.
순간, 오필리아 자신도 스스로가 내뱉은 말에 놀랐다.
하지만 놀라면서도 이미 열린 입은 멈추지 않았다.
“아카데미 퇴학당한 뒤로, 줄곧. 이 저택에 갇혀있어.”
“………….”
“밖에 나가면 사고 칠 거라면서, 잠깐 외출하는 것도 안 된다고 하더라.”
“………….”
“아버지 몰래 나가려 한 적도 있는데, 도저히 저 꽃밭을 넘을 수가 없었어. 어떻게 저택의 담은 넘어도, 꽃밭을 달리고 있으면 경비들이 쫓아오더라고.”
“………….”
“그렇게 2년째 넘게. 나는 여기 갇혀있어.”
“………….”
누군가에게 하소연하듯.
가슴에 매인 걸 쏟아내듯.
의도치 않게 마음에 담아두었던 말을 잔뜩 토해냈지만.
—사락.
가정교사, 류리크 아스트레이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저 무심(無心)하게 책장을 넘길 따름이었다.
‘뭐야, 이게… 시시하게.’
기대를 한 건 아니지만.
구체적으로 뭔가를 바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가엾게 여길 수는 있는 거 아닌가.
일말의 동정이라도 해줄 수 있는 거 아닌가.
헌데 이 남자는, 어떻게 이렇게까지 무심할 수가 있는 건가.
오필리아는 어딘가 울컥한 기분이 들었고, 어딘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물었다.
“야.”
“………….”
“너 나갈 때… 나도 같이 데려가 주면 안 돼?”
그리고.
남자는 대답한다.
“그러지.”
“………….”
오필리아는 생각했다.
이건 그저 의미 없이, 무의식적으로 대답한 것이라고.
깊게 생각하지 않고, 그녀의 입장을 헤아리지 않고 그냥 툭 내뱉듯 기계적으로 답한 것이라고.
그녀는 눈가에 맺힌 물기를 훔치며 말했다.
“칫. 재미없게.”
“네가 바란다면, 그러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면. 바깥으로 데려가 줄 수 있다.”
헛소리하기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도 그냥 해본 소리인데, 뭘 저렇게 말하는 거야.
“아, 이거 그거지? 내가 성실하게 공부해서 헤루인 등위가 되면 아버지가 밖에 보내준다는 거지? 그러니까 공부하자는 거고. 그딴 거 재미없어.”
“왜 그렇게 생각하지.”
“그게 아니면, 네가 어떻게 나를 밖으로 데려가 줄 건데?”
저택의 경계는 삼엄하다.
경비병도 많고, 담장도 높다.
무엇보다도 꽃밭. 그 꽃밭만은 지나갈 수가 없었다.
무슨 수를 써도.
도저히.
그것만은.
“혹 이런 말을 들어본 적 있지 않나.”
그리고 남자는 말한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마라.”
“………….”
그야 들어본 적은 있다.
소설인지, 교과서인지. 기억은 안 나지만.
“이 말은 진의는 무엇일까.”
그런 게 어디 있어.
그건 그냥 말 그대로의 의미잖아.
오필리아는 그리 생각했고, 류리크는 말한다.
“목적을 이루는데, 방법은 결코 하나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