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possessed a villain with nothing but a death flag RAW novel - Chapter 134
사망 플래그밖에 없는 악역에 빙의했다 134화
134
쿠당탕!
튕겨 나온 아르민이 바닥을 굴렀다.
설마 레베카도 습격받은 것인가.
놀란 눈으로 그를 살피자니.
“………….”
아르민 혼자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온몸에 자상 가득한 ‘직원’과 아르민이 뒤엉켜 있었다.
순간, 둘이 처절한 사투를 벌인 건가 싶었다만.
“어, 어으… 어워… 어어…….”
몸에 상처가 있는 것은 직원뿐이었다.
녀석의 입은 흉측하게 잘려 피가 쏟아지고 있었다.
“아, 아으… 으… 으으…….”
놈은 말인지 비명인지 알 수 없던 소리를 내뱉었다.
—콰직!
아르민이 그 머리를 붙잡고 벽에 짓이기듯 박는다. 그제야 정신을 잃었는지 녀석의 몸이 미끄러지듯 바닥에 엎어진다.
“후우.”
아르민은 얼굴에 튄 피를 닦아내며 천천히 일어섰다.
“류리크 아스트레이. 네놈이 죽었으면 했는데, 불운하게도 살아남은 모양이네.”
“본인의 명줄이 꽤 긴 편이라 말이지. 그보다도…… 아예 입을 잘라 버렸군그래.”
“독단을 물고 있기에 입 채로 잘라버렸지.”
역시 그림자는 그림자인가.
저쪽도 기습당한 상황이었을 텐데.
입에 문 독단까지 간파해 아예 입 채로 베어버렸다는 게…… 참 경악스러웠다.
한편 부서진 객실의 안쪽에서 레베카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생각했던 대로 전혀 당황하지 않은, 평온 그 자체의 얼굴이었다.
“류리크, 무사해 보여 다행이군.”
“자네도 평온해 보여 다행이야.”
“그런데…… 그게 소문으로 듣던 심경의 기사인가?”
그러고 보니 아직도 소환한 채였군.
아고니아의 샘에서 수련한 덕분에 야를을 소환할 수 있는 시간이 꽤 늘어난 듯했다.
‘물론 레베카에게 계속 보여줄 필욘 없지.’
나는 야를을 역소환 하며 화제를 돌렸다.
“지금 그런 얘기를 할 때는 아닐 터다. 이 암살자들은 누구인지, 우리는 아직도 위협에 노출되어있는지……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레베카가 고개를 끄덕이며 아르민을 부른다.
“아르민.”
“예, 지금 즉시 상황을 파악…… 윽.”
“응? 왜 그러나.”
“통신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무래도 호텔 전체를 아우르는 결계가 쳐진 듯합니다.”
아주 잠깐, 머리가 망치에 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죽음을 각오한 독단.
호텔 전체를 아우르는 결계.
‘암살자들의 수준은 둘째 치더라도 준비한 것을 보면, 결코 이게 끝은 아닐 터다.’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생각보다 큰 규모의 사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악당의 말로.
여기엔 내가 죽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갑작스럽게 왜 이런 사건이 벌어진 것이지.’
‘암살자들의 목적은 무엇인가.’
‘레베카와 나를 노린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운 없게 다른 사건에 휘말린 것인가.’
‘암살자들의 정체는 대체….’
생각이 깊어지던 도중, 레베카가 상념에서 나를 일깨운다.
“류리크. 꽤나 복잡한 심정인 듯 보이네만, 여기 있기엔 다소 위험한 듯해서 말이지.”
“그렇군… 일단, 이 자리를 피해야겠어.”
읏챠, 아르민이 정신을 잃은 암살자를 들쳐멨다.
이 빌어먹을 상황에 그나마 위안이 있다면, 역시 저놈이 깨어난 뒤 심문할 수 있다는 점일까.
“그러면 어느 쪽으로 피해야….”
그 순간, 호텔 전체에 울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 긴급 상황입니다! 혀, 현재 호텔 내부에 테러리스트들이 침입하였습니다! 모두 안전한 곳으로 대피해주시고, 객실에 계신 손님들은… 크아아악!
* * *
호텔의 관리실.
직원과 경비로 보이는 이들이 피를 흘린 채 쓰러져 있고, 그 자리를 복면의 사내들이 대신 채우고 있다.
“올라갔던 둘이 당한 거 같습니다.”
“도중에 끊기는 했지만… 저희가 들어왔다는 방송도 나갔습니다.”
부하들의 보고에 공화국의 호위대장, 코샤르 이더리움은 짧게 시름 했다.
‘계획은 완벽하다고 생각했는데…….’
—레베카 이실리엔 암살.
일전에 폴트먼 재상, 의문의 남자와 회동한 직후부터 그들은 레베카를 죽이기 위한 계획을 준비해왔다.
그러다가 그 남자를 통해 레베카가 이곳 호텔에 머문다는 정보를 입수했고, 작전을 실행한 것이었는데…….
“갑자기 호텔의 경비원들이 우리를 콕 집어 불심검문을 한다니, 뭔가 이상하잖아.”
“들킨 채로 당할 수만은 없어서, 반격하다 보니 이렇게…….”
“제길. 다 들켰어. 원래는 조용히 처리하고 도망치는 게 계획이었는데!”
“우리 중에 배신자가 있는 건가?”
“아니면 혹시, 그 남자가 배신한 걸지도….”
부하들 사이에서 불만과 혼란의 목소리가 번져간다.
하지만 그들이 뭐라 하건, 이미 엎질러진 상황이다.
코샤르는 부하들의 불안을 일축했다.
“다들 진정해라. 레베카 이실리엔이 여기 머문다는 정보를 준 것도, 우리에게 아티팩트들도 지원해준 것도 그 남자다.”
“………….”
“우리의 실패를 바라고, 배신하려 들었다면… 애초에 이렇게 돕지도 않았겠지.”
다만 그리 말하면서도 코샤르 역시 일말의 불안감을 느끼긴 했다.
‘본래라면 올라갔던 둘이 암살을 끝내면, 조용하게 빠져나가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위로 올라간 둘은 실패했고, 자신들은 난데없는 불심검문에 걸려 이 사달이 났다.
마치 누군가 그들을 일부러 사지로 밀어 넣듯이, 일이 꼬여가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코샤르의 머릿속에 얼마 전에 들었던 남자의 말이 맴돌았다.
—당신뿐만 아니라, 이곳에 있는 공화파의 모든 동지는 죽을 거야.
—제국의 황족을 암살하는 일이잖아? 살아남는 게 도리어 이상하지.
‘설마…….’
아니다.
그럴 리 없다.
코샤르는 스멀거리는 걱정을 모른 척 외면했다. 그리고 다시금 각오를 되새겼다.
“동지들, 우리의 존재는 이미 발각되었고 시간은 일분일초를 다투고 있다. 그러니 짧게 설명하지.”
“………….”
“머지않아 제도방위국이 몰려올 거다. 어쩌면 제도방위군과 황궁의 기사단까지 움직일 수도 있지.”
“………….”
“그러니 놈들이 오기 전까지 작전대로 끝낸다.”
이건 제국의 황족을 죽이는 일.
한번 암살을 시도해 실패하는 걸로 끝날 작전이라면 세우지도 않았을 터.
그들에겐 아직 남은 작전이 있었다.
그에 앞서 필요한 것은 이들을 추동할 수 있는 결의.
“동지들. 우리는 패배자다.”
“………….”
“공화국을 수호하는 호위대로서, 통령 각하를 지켜야 했지만, 끝내 그분을 지켜드리지 못했다.”
모두가 침묵했다.
그들 각자, 어디선가 활약했고 공화국을 위해 헌신했지만. 결과적으로 반드시 지켰어야 할 통령이 죽었다.
그 가슴 아픈 기억은, 아직도 생생히 그들 가슴에 깊은 상흔으로 남아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한번 패배했다. 바로 갈론과 그 어린 동생들을 지켜내지 못했기에.”
“………….”
“우리는 이미 고국을 잃었고, 소중한 이들을 잃었다.”
코샤르가 꾸욱, 주먹을 쥐었다.
“그 패배자들에게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졌다. 나는 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기회를, 결코 실패로 끝내고 싶지 않다.”
“………….”
“………….”
모두가 같은 마음일 터였다.
약해졌던 공화파의 가슴 속에 개먹이로 던져졌다는 갈론과 불타 죽었다는 그 동생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스릉!
코샤르가 검을 뽑아 높이 들었다.
“제국의 검이 우리의 심장을 멈출 순 있어도, 고국을 위한 우리의 뜻과 의지는 멈추지 못할지니!”
그는 붉어진 눈시울을 훔치며 외쳤다.
“모든 것은 공화를 위하여…!”
그에 맞춰 가르시아의 마지막 남은 기사들이 검을 뽑아 들며 재창한다.
“모든 것은 공화를 위하여!”
“모든 것은 공화를 위하여!”
* * *
호텔의 청소 도구와 이불들이 잔뜩 쌓여있는 스태프룸.
레베카와 우리는 정신을 잃은 암살자를 데리고 이곳에 숨어들었다.
현재 호텔은 외부와 통신 등이 결계로 막히긴 했지만, 이곳의 이변이 밖에도 알려지는 것은 시간문제.
‘지금쯤이면 제도방위군이 부리나케 달려와 대치 중일 터.’
그러니 열심히 도망쳐다니는 것보다 적당히 숨어서 시간만 버티면 된다는 계산이었다.
물론 딱, 그 생각만 품고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르민, 이 녀석은 언제 깨어나는 거지?”
“치료도 제대로 해놨으니 곧 일어나긴 할 거다.”
손발이 묶인 채, 정신을 잃고 있는 암살자.
지금 주어진 단서는 이 녀석뿐이다.
“레베카. 심문하기에 앞서, 혹 의심 가는 바가 있는가.”
“글쎄. 자네가 적지 않은 이들에게서 증오받듯, 본녀 역시 꽤 많은 적이 있어서 말이지.”
하기사.
레베카 정도의 위치면 적이 한둘이 아닐 터.
‘혹시나 레베카의 후각으로 뭔가 건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때였다.
“흐, 흐어어억……!”
손발이 묶여 있는 암살자가 기함을 토하며 깨어났다.
놈은 일어 깨어나자마자 입을 연신 뻐끔거렸다. 아무래도 마지막에 입이 베어졌던 충격이 큰 모양이었다.
아르민이 굳어진 얼굴로 레베카를 바라본다. ‘처리해도 되겠습니까?’라는 의미를 담은 눈빛이었다.
레베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직후,
—콰직.
아르민이 가볍게(?) 녀석의 머리를 밟으며, 입을 틀어막았다.
“큰 소리를 내면 곤란합니다. 지금부터 발언에 따라 당신의 목숨이 결정될 겁니다. 잘 생각해서 대답하시길.”
“끄, 끄륵…… 끄으으……!”
“제가 원래는 길게 하는 편인데,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딱 한 번만 물어볼 겁니다. 되도록 협주해주면 좋겠습니다.”
아르민은 싱긋, 살벌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목소리에 묘한 압박감이 있었지만, 상대방도 만만한 인간이 아니었다.
입에 독단까지 준비하며 죽음을 각오한 바 있기에.
흉수는 도리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아르민을 흘겼다.
“닥…… 쳐, 라… 앗. 나는…….”
—쿠직.
아르민이 구둣발로 돌아갔던 머리를 교정하며 품에서 주사기 하나를 꺼냈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이거 한방이면 할 말 못 할 말 구분 없이 다 토해낼 테니까요.”
나는 살짝 눈을 찌푸렸다.
“레베카…… 저거 혹시, 자백제인가?”
“그렇다만 무슨 문제라도 있나.”
“………….”
제국법상 불법이기는 하다만.
뭐, 공공연하게(?) 쓰이는 거니까.
“필요하다면 하나 선물해주지.”
“사양하지 않겠네.”
—푹.
한편 주사기 꽂힌 암살자는 버둥거리더니, 그 기세가 점차 사그라졌다.
한 10초 정도 지났을까.
핏발 서 있던 녀석의 눈이 흐리멍덩해지더니 입에서 침을 흘리기 시작했다.
“어으, 에…… 에으, 으…….”
아르민이 물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나, 나나, 나나나나는…… 고고, 공화국의 기, 기기사…….”
공화국?
‘설마 벤트허에서 있었던 사건이 이렇게 번졌다고?’
이상하다.
공화국의 잔존 세력이라고 해봐야 별거 없을 터다.
게다가 이 시점이면 통령의 자식인 갈론과 그 동생들은 물론, 공화국의 정신적 지주로 꼽히던 폴트먼도 죽었을 텐데.
나는 물끄러미 레베카를 바라보았다.
‘설마 거기서 갈론을 죽이지 못한 건가?’
물론 그걸 물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나는 금방 시선을 돌렸다.
“당신 혼자서 암살을 기획한 겁니까?”
“아아아, 아니, 아니다.”
“몇 명이 온 거죠?”
“서서서, 서른 다서서섯…….”
“목적은?”
“레레, 레레베카 이이, 이실리엔을. 주주죽, 이는 것.”
이치에는 맞다.
레베카는 공화파의 마지막 남은 희망을 꺾었다. 그러니 공화파라면 그 복수를 위해 이런 미친 짓도 벌일 수 있겠다만.
‘레베카가 갈론을 죽였다는 정보는 어디서 났고, 또 이 호텔에는 무슨 수로 침입했단 말인가.’
한편, 아르민은 잠깐 내 얼굴을 흘긋 보더니, 질문을 이었다.
“보아하니 당신 동료가 류리크 아스트레이도 공격한 거 같은데. 그는 왜 공격한 거죠?”
“더, 더더덤으로…….”
“………….”
순간 살짝 맥이 빠지는 기분이 들었다.
황족을 암살하는 작전에 ‘덤’으로 뭔가를 더 하는 얼간이들이 이런 짓을 꾸몄다는 게…… 순수한 의미로 어처구니없게 느껴졌다.
“당신은 실패했는데, 다른 자들은 안 움직입니까?”
“나, 나나 나머지도 곧 오오오, 올라올 거다다.”
흐음.
공화파의 잔당이 그렇게나 모여있단 말이지.
“그게 끝입니까? 다 같이 와서, 기습하고 끝나는 겁니까?”
“아아아아, 아니다다다. 우우, 우리는. 호호호, 호텔에 포포, 폭탄, 폭탄…… 서서설치 했다…….”
풀린 눈으로 멍해 있던 놈이 백치(白癡)처럼 실실 웃었다.
“거거거, 건물 채로…… 너너너, 너희를 모모모, 모두 죽일 거다. 흐, 흐흐흐…….”
아니 잠깐만.
아니.
아니.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