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possessed a villain with nothing but a death flag RAW novel - Chapter 14
사망 플래그밖에 없는 악역에 빙의했다 014화
014
아스트레이의 당주 대리, 류미엘은 서류를 집어던졌다. 그녀의 손에서 날아간 서류에는 ‘류리크 동향 보고서’라는 제목이 달려 있었다.
〔 …그리하여 류리크는 현재 위르겐하이의 별장을 비우고, 제도 뤼겐베르크의 소저택으로 향할 계획입니다. 〕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영원히 위르겐하이에 처박혀 있어야 했을 망나니가 후인의 반지를 얻어내더니, 진짜 마법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어차피 4년 동안 기숙사에만 있을 테니’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제도의… 소저택을… 자기 집처럼 쓰겠다고?”
사흘째 광산 인수 건으로 스트레스를 받던 류미엘은 결국 폭발해버렸다.
“거긴 전시를 대비해 건설한 요새다! 평시에 쓸 일이라고는 건국제, 혹은 황제 폐하의 탄신일 같은 날에 잠시 머무르기 위한 거처로 쓰일 뿐이다!”
“사실 류네온 님이 계속 사저로 쓰고 계시긴 했습니다만.”
“류네온 오라버니는 딱 방 하나에서 숙식만 해결하잖나!”
자칫하다간 업무 책상에 쌓인 서류가 찢어지는 참사가 벌어질 수도 있겠거니, 카엘이 그녀를 진정시키고자 열심히 입을 움직였다.
“류리크 님이 잘 몰라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모르면! 모르면 가질 말아야지! 애당초 별장에 있어야 할 그놈이 왜 밖을 나오냔 말이야!”
“법적 처분이 내려진 것도 아니고, 당주께서 ‘거기 처박혀 있어라.’라고 말씀하신 게 전부니까… 별장을 나선다고 뭐라 할 순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순간 류미엘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그래! 아버지께서 ‘거기 처박혀 있어라!’라고 명령하신 걸 어긴 거잖나? 아버지께서 분명….”
“사실 당주께선 요즘 류리크 님이 개과천선했다는 소식에 상당히 흡족해하신다고….”
류미엘이 자신의 풍성한 머리칼을 쥐어뜯기 시작했다.
“거기서! 왜! 흡족해! 하냔 말이다! 아버지가 그런 반응을 보이면, 또 멍청한 이들이 류리크를 차기 당주로 세워야 한다 어쩐다 떠들 게 뻔한데!”
“당주께선 황자의 자리마저 포기하실 만큼, 정쟁에 관심이 없으시니까요. 아마 별생각 없으실 겁니다.”
그건 여러모로 곤란했다. 아버지야 자식들을 다 똑같이 사랑하는 마음에 그러는 거겠지만, 이쪽은 어쩔 수 없이 피 말리는 후계 전쟁에 내몰린 상황이다.
“가서 류리크에게 전달하도록 하게. 소저택의 물건 중 하나라도 전당포에 넘어가면, 내 손으로 류리크를 죽여버리겠다고.”
엄포를 내놓았지만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광산 인수 건이 끝나는 대로, 그놈의 면상을 한번 봐야겠어.”
* * *
저택의 짐들은 모두 우정국(郵征局)에 넘겼다. 귀중품이란 귀중품은 류리크가 옛날에 전당포에 다 넘겨버렸기에, 그다지 신경 쓸 물건도 없었다.
그렇게 이삿짐의 옮기는 것을 떠넘기자, 시종들은 저들의 짐만 꾸린 채 별장을 서성였다. 급작스러운 이사 소식에 아직 열차를 예매하지 못한 것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최소한의 짐만 챙기도록 말한 뒤, 고급 차량을 빌려 태웠다.
―이, 이걸로 뤼겐베르크까지 간다고요?
―당연히 열차로 가는 줄 알고 예매하려고 했는데….
―나 자동차는 처음 타 봐….
―이거 심지어 고급 리무진이잖아?! 엄청 비쌀 텐데….
어제까지만 해도 눈물로 통곡의 바다를 이루던 시종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어느 시종은 감격의 눈물까지 흘리면서 꽤 훈훈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나는 그렇게 시종들을 떠나보내고, 리아와 함께 아스트레이가의 전용 리무진에 탔다.
“시종들을 위해 리무진을 대여하시다니, 조금 놀랐습니다.”
“평생토록 저리 둘 순 없는 노릇 아니겠나. 이제라도 천천히 마음을 풀게끔 해야지.”
적어도 내 방 앞에 쏟은 음식물 정돈 바로바로 치웠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선 어느 정도 호감도를 쌓을 필요가 있었다.
“시종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라면, 몇 푼이라도 돈을 쥐여주는 편이 빨랐을 것입니다.”
“돈 몇 푼으로 살 수 없는 경험을 주었으니, 그보다 오래 기억에 남겠지.”
“대신 류리크 님의 지갑은 텅 비었군요.”
경매장에서 얻었던 30만 리브라가 탕진되었다. 대부분은 류아라의 의뢰 대금으로 나갔고, 나머지가 우정국 직원들을 고용하고 리무진을 대여하는데 날아갔다.
그렇지만 후회는 없었다. 어차피 돈이야 필요할 때 벌어 쓰면 되는 거니까.
“모름지기 아랫사람에겐 돈을 쥐여주는 게 아니라 하였다.”
“………….”
리아는 별다른 말을 않았다. 대신 또렷한 눈으로 ‘정말 네가 그 의미를 아는 것이냐.’라고 묻는 듯했다.
나는 담담하게 답했다.
“돈은 모든 것을 가질 수 있기에, 차라리 더 돈을 들이더라도 술이든 휴양이든 다른 것을 주는 게 맞다.”
“자신이 일을 더 잘하면, 그것을 돈으로 받을 수 있다는 희망 고문이군요.”
“정확하다. 그러니 나도 네게 돈 대신 홍차를 주는 게지.”
일전에 주셨던 나브릭스 홍차는 동이 난 지 오래입니다. 이제 다른 홍차를 주시지요, 리아가 정중하게 눈으로 삥을 뜯었다.
나는 말없이 빙글빙글 웃어 보일 따름이었다.
후우, 리아가 한숨을 쉬었다.
“제가 류리크 님을 보필한 것이 이제 3년입니다. 그리고 그 3년과 최근의 2주는 무척 다른 시간이었지요.”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지?”
“그 이전의 류리크 님에 대해서는, 글로 적힌 것밖에 알지 못합니다만… 그것과도 사뭇 다르군요.”
리아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난다.
갑작스레 시작된 청문회 느낌.
올 것이 온 건가, 나는 놀란 마음을 애써 다독였다.
‘하긴 리아의 정보력과 통찰력을 고려해 봤을 때, 의심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물론 이런 상황을 가정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여긴 퍼즈도 로드&세이브도 없는 세계. 내게 벌어질 수 있는 대부분의 위협에 대해서는 이미 상정하고 최소한의 대책들을 세워 놓았다.
다만 이쪽에는 그다지 시간을 할애하지 못했는데.
‘플랜A, 잿빛수정의 부작용으로 인한 기억상실증을 핑계로 둘러대기… 먹힐까?’
조심스럽게 그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자니, 리아가 정말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혹시 제가 모르는 곳에서 넘어져 뇌진탕에라도 걸리셨습니까?”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가?”
“그것 말고는 류리크 님의 변화가 설명되지 않습니다.”
“아니, 그러니까 진심으로….”
아, 진심이다.
저 눈은 진짜 진심이다.
여기서 저 진심을 진지하게 답했다간 괜히 긁어 부스럼이 생길 것 같다. 나는 적당히 농담을 지껄이며 상황을 돌렸다.
“뭐, 그대가 원한다면 신전에서 정밀하게 진찰을 받은 뒤 치료 마법을 쏟아부어 원래대로 돌아갈 수도 있네만.”
“생각해 보니 계속 뇌진탕인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그런 시답잖은 잡담을 주고받자니 어느덧 제도에 도착했다.
차량에 걸려 있는 아스트레이의 문장 덕분에 이렇다 할 검문도 없이 그대로 통과할 수 있었다.
―4시부터 메이플 광장에서 음유시인 대회를 엽니다!
―방금 동대륙에서 떼온 물건들입니다! 제도가 아니면 어디서도 구경 못 할 것들입니다!
제도는 차를 타고 하루 종일 드라이브해도 좋을 만큼 볼거리가 풍성한 도시다. 덕분에 차창 밖으로 보이는 건축물, 축제 따위로 몇 마디를 떠들다 보니 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도착했습니다. 류리크 님.”
운전기사가 공손하게 말하며, 차량의 문을 열었다.
내려서 본 아스트레이 소저택은 그야말로 요새와 같은 웅장함을 자랑했다. 쇠창살이 달린 담은 5m에 육박해 성벽을 연상시켰고, 저택의 내부는 수십 겹의 방어 결계 탓에 잘 보이지도 않았다.
기억에 따르면 일회성이긴 하지만, 할카데르의 본가에 이 소저택과 이어진 워프게이트도 있을 터였다.
‘역시 전시용 피난처라는 것인가.’
소저택의 정문에 다다르자, 옆에 따르던 리아가 갑자기 이상한 질문을 던졌다.
“그나저나 괜찮겠습니까?”
“뭐가 말인가.”
“아니, 뭐… 그냥 여쭤봤습니다.”
“왜, 본인이 이제 와 류미엘을 두려워할까. 어차피 류미엘이 허락을 않을 테니 말없이 오긴 했다만, 선객이 있을 리도 없잖은가.”
“글쎄요.”
뭐지, 저 미소는. 귀여운데 기분이 나쁘다.
어디서 새침데기 물약이라도 마신 건지, 전혀 리아답지 않은 모습이다. 굳이 말하자면 평소의 나 같은, 약간 장난기가 섞인 모습이랄까.
‘설마 여기에 뭐가 있는 건가?’
그럴 리는 없었다. 내가 미래에서 확인하고 온 것은 아니지만, 갖고 있는 정보를 종합해 봤을 때 여긴 아무도 없을 터였다.
“류미엘이야 할카데르의 지박령 같은 존재고, 류아라도 예르파드의 승급 심사 때문에 떠났다. 류네온은 수호기사로 서임 받은 지 오래니 찾을래야 찾을 수도 없을 테고.”
“뭐, 그리 생각하신다면.”
무언가 있다.
그게 뭔지는 몰라도 리아의 표정에 이미 ‘천하의 류리크 님도 이건 모르셨군요.’라는 말이 대문짝만하게 쓰여 있다.
하지만,
“왜 그러십니까? 들어가시지 않고.”
“아, 참. 제도에 잠시 들를 곳이 있으니, 먼저 들어가 있게.
“유감스럽게도 소저택의 마공학 출입문엔 제 홍채 정보가 저장되어 있지 않습니다만.”
망할.
이 이상 말을 돌리면 뭔가 내가 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리아한테는 그런 사소한 것이라도 지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극렬하게 반대하진 않는 걸 보면, 내가 죽거나 크게 다칠 일은 없는 것 같단 말이지.’
결정적으로 『 악당의 말로 』에 반응이 없다. 내가 정말 죽을 위험에 처하면 보여야 할 그것이 조용하니 목숨이 위험할 정도는 아니리라.
나는 저택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출입자 : 류리크 바타체스 폰 드라스카 아스트레이 】
【 확인되었습니다. 】
―끼이익.
문이 저절로 열리고, 그 안으로 발을 내딛자니 소저택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정원의 한가운데 누군가가 서 있었다.
‘관리인이 있을 줄은 알았는데….’
유감스럽게도 그 누군가는 평범한 관리인이 아니었다.
“네가 여긴 어떻게….”
곱슬과 함께 치렁이는 단발, 조각같이 미려한 외모. 그 가운데 굳은 신념의 무게가 느껴지는 눈동자.
―류네온 바타체스 폰 카르펜 아스트레이
게임의 후반부까지 볼 일이 없을 거라 여긴 캐릭터가 눈앞에 있었다.
* * *
나는 떨떠름한 기분을 감추며 애써 평정을 가장한다.
“류네온… 아직 소저택에 있었군.”
“형한테 말버릇은 여전하네. 류리크.”
이상했다. 내가 파악하기로 류네온은 꽤 오래전에 수호기사로 서임을 받았을 터였다. 그 때문에 게임에서도 초반부에는 아예 찾을 수가 없는 NPC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가 왜 아직도 제도에 남아 있단 말인가.
“수호기사가 된 지 꽤 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동안은 견습이었고, 이제 정식으로 승격했으니 사라질 때가 된 거지. 오늘이 그 마지막인데, 절묘한 시기에 왔구나.”
견습. 그 부분을 간과하고 있었다. 수호기사는 견습의 기간을 거쳐 어느 날 정식으로 서임을 받고 돌연 사라지는 것이니까.
‘이 시점에서는 정식이 아닌 견습이었다니… 설정에 대해 간과했구나.’
류네온과의 만남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는 루시아사가 전체를 통틀어도 찾기 힘든 절대선 성향의 캐릭터.
그리고 나는 자타공인 악(惡) 성향의 캐릭터.
궁합이 가히 좋지 않았다. 물론 류네온이 류아라처럼 다짜고짜 살인 주먹부터 날릴 미친놈은 아니지만.
‘찝찝하단 말이지.’
나는 애써 긴장을 감추며 류네온을 바라보았다. 생각해 보면 갑자기 ‘불합리한 죽음이 당신을 주시합니다.’ 라는 메시지가 뜨면서 데드 엔딩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니까.
그런 걱정을 하던 중, 류네온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여기는 무슨 일로 온 거야?”
“샤프란에 입학하게 되었는데, 위르겐하이에서 통학하기엔 거리가 멀어서 말이지.”
“기사 대학이 아닌 마법 대학이라니, 의외인걸.”
“좀 더 맞는 쪽을 고른 것뿐이다.”
“하하. 많이 점잖아졌네. 들리던 소문이 사실인가 봐.”
예전에는 대체 어땠기에 이 대화의 맥락에서 점잖다는 말이 나오는 것인가. 조금 신경이 쓰였지만, 나는 적당히 대화를 이었다.
“너 역시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베디비어’가 될 거라 하던데.”
“이상하네. 나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어디까지나 소문이 그렇다는 거다만, 사실은 너도 생각은 하고 있을 테지. 알테온의 훈장을 받는 것이 어릴 적부터 소원이지 않았던가.”
기사로서 얻을 수 있는 가장 높은 등급의 훈장이자, 동시대 단 13인만 거머쥘 수 있는 백은무공 대훈장, 알테온.
13개의 알테온 훈장에는 각각 이름이 있고, 이는 일반적인 방법으로 얻을 수 없다.
국왕이나 황제가 수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훈장을 갖고 있는 선대(先代)에게서 ‘이름’과 함께 계승 받는 형태로만 얻어낼 수 있다.
“로마노프 황가의 ‘베디비어’가 은퇴할 거란 소문은 꽤 오래전부터 돌았지. 후인을 찾느라 혈안이라는 것도 그렇고.”
세계 각지에는 알테온의 훈장을 가진 13명의 기사가 존재한다. 칼라모르 기사 대학에는 ‘랜슬롯’이 총장으로 있고, 제국 북부의 영원(永遠)의 벽에는 ‘트리스탄’이 있다.
그리고 ‘베디비어’는 황실의 수호기사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변이 없는 한, 차기 베디비어는 류네온이 되지.’
관심 있어 할 만한 얘기를 꺼내자, 나를 보던 류네온의 시선이 조금 달라졌다.
“너는… 많이 달라졌구나.”
아마 류네온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을 터다.
―류리크는 위르겐하이에서 여전히 약물에 찌들어 살고 있을 거라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도피성으로 마법 대학에 들어가려는 거라고.
‘류네온의 입장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로는, 딱 그런 식의 추론이 가능하지.’
하지만 만나보면 다르다. 대화해보면 다르다.
나는 그 점을 파고들었다.
구태여 약물을 하지 않는다는 변명도 않고, 새사람이 되었다며 구차한 말을 늘어놓지 않는다. 그저 평범하게 대화를 하며, 생각을 나누는 것만으로도… 나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수 있을 터.
류네온의 눈동자가 내 깊은 어딘가를 바라보았다.
【 류네온 바타체스 폰 카르펜 아스트레이가 ‘선악의 천칭’을 발동합니다. 】
【 류네온 바타체스 폰 카르펜 아스트레이가 당신의 어둠 속에서 웅크린 빛을 발견합니다. 】
선악의 천칭은 문자 그대로 선악을 천칭의 양끝단에 세워 판단하는 스킬.
나는 당연히 악(惡)에 관한 무언가가 튀어나올 줄 알았는데, 예상 밖의 결과였다. 물론 나는 놀란 표정 대신 덤덤하게 대꾸했다.
“다들 그런 말을 자주 하더군.”
“모름지기 사람은 바뀌는 법이지. 너는 좋은 사람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그거 참 고마운 말이군.”
그때 류네온이 뒤편에 있던 상자를 뒤적거렸다. 그러더니 안에서 작은 브로치 하나를 꺼내 내게 건넸다.
“이거 받아.”
“이건…?”
어딘가 본 적이 있는 형태의 아이템.
나는 지그시 그를 살펴보았다.
―――― 『 밤장미의 가호 』 ――――
▶ 분류 : 아이템
▶ 등급 : 중상급
▶ 설명
: 밤장미의 요정이 축복을 내린 브로치.
▶ 효과
: 총 3회에 걸쳐 축복 ‘밤장미의 가호’를 부여할 수 있다.
: 밤장미의 가호를 3회 사용한 뒤엔 아이템이 파괴된다.
: 어둠 속에서 시야에 대한 보너스를 부여한다.
―――――
소모성 아이템이지만, 효과가 나쁘지 않았다.
밤장미의 가호는 어두운 밤에 상태 이상에 대한 내성을 높여주는 축복이다. 면역이 아닌 내성을 높여주는 정도지만 그 범위가 질병부터 정신계열까지 포함하니 그 활용도가 높았다.
“이걸, 내게 준다는 말인가?”
“나는 이제 수호기사로 서임을 받았으니,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나야 하잖아. 형이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해. 하하.”
나는 가볍게 의심을 던졌다.
“우리가 선물을 주고받을 만큼 친밀했던가.”
“나는 네가 나쁜 길에 물들었을 때를 알지만, 네가 멋지게 빛나던 모습도 기억하고 있단다. 그리고 앞으로는 그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될 거라고 믿어.”
그의 눈동자는 거짓을 고하지 않는다. 그건 틀림없는 진심이었다.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선악의 천칭에서 나를 판가름했기 때문인가.’
나는 덤덤하게 브로치를 가슴팍에 차며, 흘긋 상자 쪽을 바라보았다. 저쪽엔 아마 류네온이 짐을 정리하면서 넣어둔 다양한 아이템이 있을 터.
“거기 있는 다른 것들도 꽤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하하. 이것들을 줬다간 류미엘이 정말 화병으로 쓰러질지도 몰라. 하지만 이 브로치는 온전히 내 것이니 류미엘도 뭐라고 못하겠지.”
잠깐 본 것만 해도 엄청난 아이템들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당장 눈에 띄는 대태도 섬월만 해도, 내게 간절히 필요한 아이템이니까.
‘하지만 욕심내선 안 되겠지.’
우연한 기회로 밤장미의 브로치를 얻었고, 류네온의 신망도 어느 정도 회복한 것 같다.
오늘은 이걸로 만족해야 할 듯싶었다.
“류리크, 아마 다음에 우리가 만나게 되는 건 정말 나중이 될 거야.”
맞다.
이변이 없는 한, 엔딩이 다가올 무렵에나 그를 볼 수 있을 테지.
“알다시피 오늘 아침에 부름을 받고 떠나는 거라 너 말고는 제대로 인사를 한 사람이 없어. 류아라, 류미엘, 그리고 아버지에게 안부 좀 전해줘.”
“만나게 되면, 꼭 전하겠다.”
어느새 저 멀리 달이 떠올랐다.
류네온은 시종인에게 상자를 맡긴 뒤, 저택의 현관으로 향했다.
“한 가지… 더 부탁해도 될까.”
“들어보고 결정하지.”
너다운 대답이구나, 류네온이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언젠가 세상을 위해 싸워줘.”
그리고 나 역시 마주 보며 웃었다.
“정말 너다운 부탁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