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possessed a villain with nothing but a death flag RAW novel - Chapter 153
사망 플래그밖에 없는 악역에 빙의했다 153화
153
—……하여, 모두 즐겁게 연회를 즐겨주었으면 좋겠군.
류리크와 레베카의 공동 연설이 끝난 뒤였다.
시계탑에서 불꽃놀이를 보던 실비아와 메이린, 요루아는 모두 들뜬 마음으로 계단에서 내려왔다.
“그러면 이제부터 뭐 할까요?”
“역시 마셔야지!”
“좋다! 좋다!”
은근슬쩍 요루아가 끼어들자, 실비아는 눈매를 날카롭게 뜨며 말한다.
“꼬맹이는 안 되거든~.”
“꼬, 꼬맹이라니! 이 몸은 흑염룡의 주인이자, 엄연히 누님과 같은 대학생……!”
“네~ 네~ 꼬맹이는 저기서 꼬맹이답게 솜사탕이라도 먹으렴~.”
“소, 솜사탕은 분명 엄청나게 무진장 무진장 맛있지만! 그 말투는 너무하다!”
입술을 비죽이던 요루아였다만, 잠깐 조용하다 싶던 메이린이 어느새 솜사탕을 양손에 들고 오는 길이었다.
“자, 요루아~ 이거 먹고 얌전히 있으렴? 오늘 누나들은 달려야 하니까.”
“달린다? 운동장이라도 달릴 셈…… 우읍!”
솜사탕을 반강제로 쑤셔 넣다시피 하자 요루아의 입이 절로 다물어졌다.
메이린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실비아 씨, 가죠! 오늘이 지나면 또 지옥일 텐데, 최후의 만찬이라 생각하면서 마시자고요!”
“오오! 메이린 씨가 이렇게 적극적이라니! 좋은데! 좋은데! 아~ 주 좋은데!”
그녀들도 대충 직감은 하고 있었다.
그동안은 어쨌거나 학업 때문에 류리크가 부려 먹는 게 심하진 않았다.
하지만 방학이 되면 그 리미터가 해제되면서 정말 골수라도 뽑아먹을 기세로 일을 시킬 터.
그렇다면 즐길 수 있을 때 즐기는 게 나은 선택이다.
실비아와 메이린은 망설임 없이 샤프란의 주점으로 향했다.
플로라 축제 서비스에서 대여한 가건물 안에는 이미 수많은 학생들이 바글거리고 있었다.
특징이라면, 다들 남녀가 뒤섞여 청춘이라는 분위기를 내뿜고 있다는 점일까.
—마~셔라! 마셔라!
—우리 다음 학기에도 꼭 보는 거다?!
—당연하지!
—방학에 어디 놀러 갈까?
그 모습을 흘기듯 보던 실비아들은 구석진 곳에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여기, 소주 두 병이요!”
“메이린 씨, 부족하지 않겠어?”
“소주 네 병이요!”
주문과 거의 동시에 술이 나왔고, 둘은 안주도 없이 소주를 홀짝이기 시작했다.
—두 분이서 드시고 계십니까?
—아, 네…….
—괜찮다면 저희에게 레이디들과 함께할 수 있는 영광을 주시겠습니까?
—어머…… 좋아요.
테이블 저편에서는 저런 멘트를 날려대고, 저걸 또 좋다고 받는 풍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반면 실비아와 메이린의 테이블은 근처에 누가 얼씬거리지도 않았다.
“후우…… 우리는 남자가 꼬이지도 않네요.”
“요루아가 있으니까요.”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자 후움? 요루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누가 봐도 어린 동생처럼 보이는 요루아다.
그가 옆에 붙어있으니, 거의 남자 퇴치 부적 같은 효과를 내고 있었다.
메이린은 세차게 고개를 내저었다.
“에이, 뭐 그런 게 필요해요! 우리는 그냥 우리대로 열심히 살면 되는 거지.”
남자 따위.
실비아가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리며 메이린과 잔을 맞부딪친다.
“그래, 오늘은 생각 없이 마시자고 쨘!”
“쨘!”
그렇게 두어 잔을 더 주고받았을까, 주점 안으로 학생 하나가 들어오더니 전단지를 뿌려대기 시작했다.
“호외요! 호외! 샤프란 대학 신문에서 보내드리는 호외입니다!”
가게 안에서 그런 짓을 하자, 곧장 점원에게 제지당하면서 쫓겨났다.
이미 여기저기 뿌려진 전단지는 학생들의 손에 쥐어진 뒤였다.
—어머머! 이게 뭐야?
—와, 와…… 아니 와…….
—어떻게 이런 일이……!
내용을 확인한 학생마다 깜짝 놀란 반응을 보였다.
“으응? 뭐길래 저렇게 난리들인 거죠?”
메이린은 때마침 근처에 떨어져 있는 전단지를 하나 주웠다.
그리곤 무심한 표정으로 살피는데…….
“………….”
마치 저 혼자 시간이 멈춰버린 것처럼 메이린이 굳었다.
옆에 있던 실비아는 남아있던 잔을 비우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메이린 씨? 왜 그래?”
“………….”
불렀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실비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메이린의 옆으로 간다.
“아니, 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말끝을 흐리며 의아해하던 실비아였지만, 그녀 역시 내용을 확인한 순간 석화 마법에 걸린 것처럼 굳었다.
“………….”
“………….”
침묵하는 둘이 보고 있는 전단지에는 이런 문구가 크게 쓰여 있었다.
—샤프란이여, 뜨겁게 사랑하라!
그 글씨의 위엔 류리크와 레베카가 입맞춤하는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실려 있었다.
“………….”
“………….”
두 여자가 뭐라 말도 못 한 채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어린이용 드링크를 마시던 요루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둘 다 왜 그렇게 얼굴이 빨간 건가? 거기에 무슨 외설적인 사진이라도…….”
—벌떡!
갑자기 메이린과 실비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뭐냐! 둘 다! 왜 아무 말도 없이 갑자기 일어나고…… 표, 표정은 또 왜 그런 거냐. 둘 다 조금 무서운…….”
“실비아 씨. 방금 그건…….”
“다, 당황하지 마! 메이린 씨! 일단…… 일단 확인부터 하자!”
“하, 하지만 어떻게 확인을 하죠? 직접 가서 물어보기도 조금…….”
“리아 님! 리아 님이라면 뭐든 알고 있으니까…… ‘그것’도 확인할 수 있지 않겠어?!”
에? 그게 그렇게 되나?
“아, 아무리 리아 님이라도 알고 있을 리가…….”
* * *
—네, 사실입니다.
리아는 아주 담백하게 말했다.
거기에 아주 평온하게 오늘도 홍차는 달군요, 라고 중얼거리기까지 한다.
이 양반은 알고도 왜 이렇게 태연한 거지?
실비아와 메이린이 각각 그런 생각을 하며 재차 질문을 던진다.
“리, 리아 님은 아무렇지도 않아?!”
—네. 혹시 제가 놀라기라도 해야 하나요?
“그…… 런 건 아니지만?”
으음. 역시 리아 님은 류리크 씨한테 아무런 관심이 없는 건가.
실비아는 그리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용건은 그게 끝입니까? 더 할 말이 없다면 여기서 통신을 끊도록 하죠.
“……어, 어? 아니, 잠깐만!”
실비아는 잔뜩 초조해진 얼굴로 허둥거리며 말한다.
“내가 리아 님을?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
“이거 뭔가 이상하잖아!”
—………….
“둘은 어, 어? 진짜 사귀는 게 아니라, 계약연애인 거잖아! 그런데 왜 갑자기 키스야?!”
—………….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 레베카 씨랑 거리 둔다면서 어? 2황자파 인간들이랑 뺀질나게 만나더니!”
후우, 리아가 한숨을 쉬었다.
거기에 미약하게나마 ‘불쾌감’이 담겨있는 것을 눈치챈 실비아가 재빨리 입을 다물었다.
리아는 재차 한숨을 쉬며 말한다.
—자세한 속사정은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류리크 님이 혼절하셔서 그것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어…… 응? 혼절?”
—네. 류리크 님은 레베카 님과 키스를 한 직후, 혼절하셨습니다.
“……어, 내가 이상한 걸 수도 있는데, 키스하는 걸로 기절할 수도 있는 건가?”
거짓말이지? 실비아는 물었다.
그에 대해 리아는 약간의 장난기를 담아 답한다.
—글쎄요. 혼절할 만큼 좋았나 보죠.
* * *
테이블 위에 놓인 술병이 어느새 8병을 넘겼다.
둘 다 범인(凡人)의 기준에서는 그야말로 치사량 가까이 마신 셈이었는데…… 그럼에도 둘은 아직 살아있었다.
마치 죽지 못해 살아있는 절망의 화신처럼 테이블에 엎드려 있었다.
“……메이린 씨, 우리가 왜 이런 걸로 이렇게까지 우울해야 하는 거지?”
“그러게요.”
“오늘은 분명 즐거운 파티여야 하는데……!”
“심지어 방학 직전에 즐기는 최후의 만찬이기도 하죠…….”
후우, 누가 먼저랄 것 없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거 이상해…… 이런 거 이상하다고!”
“그러……게요.”
그때 실비아가 깨달음을 얻은 것처럼 고개를 팍 쳐들었다.
“메에린 씨! 기왕 이렇게 된 거, 우리도 남자 만나자!”
“……네?”
“우리도 남자 하나 잡아서, 류리크 씨한테서 벗어나자고!”
이건 갑자기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메이린은 여전히 감이 잡히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에, 에…… 네?”
“괜찮은 남자 하나 잡아서, 슈파팟 해버리자는 거지!”
“슈파팟……? 그게 무슨…….”
3초 정도. 슈파팟이 뭔지 생각하던 메이린은 가뜩이나 취기로 인해 붉던 얼굴을 한층 더 새빨갛게 물들인다.
“어, 어…… 어떻게 그런 걸 슈파팟 해버려요?!”
“안 될 건 뭐 있는데! 어차피 오늘은 파티고, 이놈이고 저놈이고 파트너 찾는다고 난리도 아니었잖아!”
“아, 아니…… 그게…….”
“여차여차하면 남자 하나쯤은 금방 구할 수 있지!”
그런가?
정말로 가능한 건가?
슈파팟의 가능성을 점치던 메이린은 실비아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맞닿은 둘의 시선 사이에서 미묘한 기류가 흘렀고…… 이내 둘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흐엑?! 뭐, 뭐냐! 왜 갑자기 나를 보는 거냐!”
얌전히 어린이용 드링크를 7병째 마시던 요루아가 몸을 움츠렸다.
메이린과 실비아는 동시에 고갤 끄덕였다.
“일단 얘부터 버리자.”
“응. 맞아요. 요루아부터 버려야 뭐든 되겠어요.”
“어, 어?! 아니! 저기! 누님! 누나! 갑자기 뭔데?! 어, 어딜 가는 거냐아아아!”
* * *
“……그래서 왜 나를 찾아온거냐뇽?”
페리사 아세라리온은 머리를 삐딱하게 기울였다.
그녀의 앞에는 지금, 누가 봐도 만취해 있는 두 여자가 있었다.
그중 분홍 머리의 여자가 술 냄새를 팍팍 풍기며 말했다.
“남자 좀 소개시켜 줘!”
“……너희들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냐뇽? 나는 정보상이다뇽.”
심지어 너희 나랑 친한 것도 아니고, 너희보다 선배다뇽.
페리사가 귀찮은 취객을 보는 눈으로 둘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런 시선에 굴할 실비아 들이 아니었다.
“다 소문 듣고 왔다고! 이번 종강 파티 전후로 해서 선배가 이런저런 만남을 주선했다면서!”
“……그건 또 어디서 들은 거냐뇽.”
“파트너를 만들고 싶은데, 못 만드는 쑥맥들을 위해 소개팅해줬다는 거 알아! 그러니까 우리도 해줘!”
“내가 왜 그런 짓을 하나뇽.”
어차피 다 알고 왔다! 실비아는 이글거리는 눈빛을 내비치며, 페리사의 앞에 쿵! 돈주머니를 내려놓았다.
“우리는 고객이니까!”
“고~객님 환영한다뇽! 페리사의 즉석만남 소개팅 서비스는 24시간, 연중무휴 남자든 여자든 척척 소개시켜준다뇽!”
사실 그런 서비스는 없지만, 돈을 준다는데 뭐든 못 해 줄까. 페리사는 살갑게 눈웃음을 쳤다.
한편 취기 오른 실비아는 괜히 그 아부 섞인 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코를 쓱 훔쳤다.
“흠! 이걸로 괜찮은 남자 좀 소개시켜 달라고!”
“으흥흥. 물론이다뇽! 그런데…….”
말끝을 흐리던 페리사가 조그마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추가 요금을 내면, 더 좋은 남자가 나온다뇽.”
“………….”
흥이 올라있던 실비아가 싹 얼굴을 굳혔다.
그러자 페리사가 아차차, 하면서 급하게 뒷수습을 시작했다.
“물론! 이 정도 돈으로도 충분히 괜찮은 남자는 나온다뇽! 그냥 적당히 즐기는 정도로는 썩 나쁘지 않을 거다뇽!”
“………….”
“하지만…… 정말 ‘괜찮은 남자’를 만나고 싶은 거라면? 조금 더 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라는 거다뇽!”
그림으로 그린 듯한 뻔한 상술이었다.
실비아와 마찬가지로 잔뜩 취해있던 메이린이지만, 상인으로서의 감각이 발동하면서 조금 이성을 되찾았다.
“실비아 씨, 우리 그냥 적당히 하죠?”
“그……런가?”
“어차피 샤프란의 학생일 거 아녜요. 누가 됐든 어느 정도 수준은 될 거란 말이죠.”
“음음. 그렇지. 그리고 이상한 오징어 자식 나오면, 카네라 선배랑 모모란 선배한테 부탁해서 저주 부적 써달라고 할 거니까.”
으음…… 그거 협박 아니냐뇽? 페리사의 얼굴이 미소 지은 채로 굳어졌다.
“맞아요. 그러니까 지금 낸 돈이면 충분할 거예요.”
“응. 알겠어!”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인 실비아는 품 안에서 다른 돈주머니를 꺼내 호쾌하게 내려놓았다.
—쿵!
“최고로 좋은 남자로!”
“믿고 맡겨만 달라뇽! 아주 그냥~ 끝내주는 남자들로 수배해주겠다뇽!”
“아니, 거기서 왜 더 지르는 건데요?! 저기요! 취, 취소요! 취소해줘요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