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possessed a villain with nothing but a death flag RAW novel - Chapter 156
사망 플래그밖에 없는 악역에 빙의했다 156화
156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살아남았다.
다만…….
“저택 꼴이 말이 아니군.”
류아라가 한바탕 날뛴 것만으로 접객실이 완전히 박살 났고, 저택의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
실로 끔찍한 일이었다.
“나름 전시(戰時)용으로 지어진 거라 가구 하나까지도 꽤 튼튼할 텐데…… 잘도 깨부쉈군그래.”
“으윽…….”
이 사달을 일으킨 장본인, 류아라 아스트레이가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수리비가 꽤 나올 듯한데. 감당할 수 있겠나?”
“자, 잠깐만! 수리비라니?! 그럴 돈은 없다고!”
없으면 깨 먹지를 말았어야지.
“엄살떨지 마라. 뢴트겔 백작가에서 다른 의뢰를 받지 않는 대가로 쏠쏠히 챙기고 있을 텐데?”
참고로 뢴트겔 백작은 2황자파에 속한 인물이다.
“그게 무슨 의뢰 성공 보수만큼인 줄 알아?! 그냥 적당히 노닥거릴 정도로 받는 거지!”
“그러면 뭐…… 이번 의뢰에서 지급할 예정이었던 보수에서 제하는 수밖에.”
류아라가 팍, 얼굴을 구겼다.
하지만 제가 부숴놓고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끄, 으…… 윽! 그래! 보수에서 까라! 얼마나 깔 건데?!”
그나저나 너는 니가 잘못해놓고 왜 도리어 화를 내는 거냐.
욱하는 성질이나 정신연령이나 진짜 요루아 수준이군.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전액이다.”
“뭐, 뭐엇?!”
“싫으면 제대로 수리해놓든가.”
“아, 닛! 그…… 그으으……!”
더 떠들어봐야 시간 낭비겠거니, 나는 몸을 돌렸다.
“얘기 끝났으면 동료들에게 전달하지 그러나. 지금쯤이면 식사도 끝났을 텐데.”
우갸아아아악!
괴성을 지르는 류아라를 뒤로, 나는 폐허가 된 접객실을 빠져나온다.
무너진 천장에서 쏟아지는 햇볕이 따가웠다.
조금 걷고 있자니, 소리 없이 뒤에 리아가 따라붙었다.
“실비아의 상태는 어떻지?”
“괜찮습니다. 다만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은 듯합니다.”
“뭘 그 정도 가지고.”
아고니아의 샘에서 멘탈 수련이라면 꽤 했을 텐데, 아직도 멀었군.
“……맨손으로 방어마법을 부수고 주먹 한 방으로 저택을 무너뜨리는 걸 보면, 누구라도 놀랄 겁니다.”
그런가?
짧게 생각했고, 이내 그 의문을 기억의 저편에 묻었다. 깊게 생각할 문제는 아니었으니까.
“헌데…… 무너진 저택의 수리는 어쩌실 셈입니까.”
음.
그러고 보니 그 문제가 있었군.
“별수 있나. 류미엘에게 부탁해야지.”
“거절하실 텐데요.”
하기사. 소저택의 숟가락 하나라도 팔면 당장 쫓아내겠다고 길길 대는 녀석이다.
심지어 아직 300만도 넘는 빚에서 한 푼도 갚질 않았으니…….
“물론 단순히 고쳐달라 요청하면 거절하겠지.”
“…………?”
“이건 류아라가 부순 것이니, 대금은 그쪽에 청구하라고 할 거다.”
리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류아라 님께는 류리크 님이 수리하신다고 의뢰 대금을 지급하지 않기로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래. 근데 그게 무슨 문제인가. 류미엘의 성격상 류아라한테 수리비 청구하지 않을 거 아닌가. 그렇다면 굳이 내가 나서서 짊어질 필요는 없지.”
“………….”
오래전에 집을 떠난 언니다. 또 집에 있을 적엔 나름 친밀한 관계였다.
대영지를 운영하는 류미엘이 용병단 하나 운영하는 류아라한테 매정하게 돈 내놓으라고는 못 할 터.
완벽한 설계이자 계산이었다.
리아가 한 스푼의 경멸을 담은 눈초리로 나를 바라본다.
“……류리크 님은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무서운 분이시군요.”
나는 만족스런 웃음을 지었다.
“리아, 그게 비즈니스다.”
* * *
예르파드에서 새로운 단원을 모집한다는 소식은 삽시간에 제국 전역으로 퍼졌다.
전부터 이런저런 소문이 돌며, 적어도 용병 업계에서만큼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한 명성을 자랑했으니까.
다만 목적지인 화이트밴 남작령까지 도착할 수 있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너도 들었지? 북부에서 예르파드의 신규 단원을 뽑는다는 거.
—응. 듣기는 했는데, 나는 안 가려고.
—왜? 있던 데도 전멸해서 용병단 해체했잖아. 어차피 갈 데 없으면, 이참에 한번 예르파드에 지원해보는 것도…….
—거기 지원하는 실력자들이 어디 한둘이겠어? 나 같은 놈은, 가봤자 턱도 없지.
—으음.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
—그리고 북부라니, 너무 멀잖아. 이틀 안에 거기까지 가려면 워프게이트를 이용해야 하는데, 내가 돈이 어디 있겠어?
일정이 촉박하게 잡혀 있다 보니, 거리상의 문제로 포기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걸 차치하고서라도…… 꽤 많이 모였군.’
화이트밴 남작령 외곽의 공터.
천여 명에 달하는 용병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었다.
제국 전체로 따졌을 땐, 사실 그리 대단한 숫자가 아니긴 하지만.
단순히 용병 단원을 뽑는 데 이만한 인파가 모였다는 건 꽤 고무적인 일이었다.
“예르파드의 명성이 대단하긴 하군.”
“쳇. 대단하기는 무슨. 꼴랑 천 명밖에 안 모였구만.”
류아라가 조금 토라진 어투로 말한다.
싫은 척하면서도 은근히 용병들이 얼마나 모일지 기대했던 모양이었다.
나는 무심하듯, 가볍게 그녀를 달랜다.
“용병단 소속은 애초에 논외이지 않던가. 이 숫자면 근방에서 모일 수 있는 용병들은 죄다 모인 것일 터다.”
“아니, 뭐 그렇긴 하겠지만…….”
“너와 예르파드의 이름만 듣고, 이 춥고 외진 북부에 모여든 거다. 이건 자랑스러워해도 좋은 일이다.”
대놓고 추켜세우자, 류아라가 묘하게 부끄러워했다.
“아니. 뭐…… 니가 그 정도까지 말하는 걸 보면, 나쁘지 않게 모인 거 같기도 하고.”
“어느 정도 마음을 다잡았으면, 이제 슬슬 시작하지.”
류아라가 질색했다.
“으윽. 근데…… 그거 꼭 내가 해야 하냐?”
말빨은 니가 더 좋잖아, 그녀가 되지도 않는 소리를 덧붙인다.
“다시 말하지만, 이곳에 모인 용병들은 모두 너와 예르파드의 이름 하나 보고 온 것이다. 당연히 네가 직접 설명해야 한다.”
“으, 씨발. 이런 거 별로 적성이 아닌데.”
너도 정말 더럽게 손이 많이 가는구나.
나는 목구멍까지 올라온 귀찮음을 억누르며 살살 그녀를 구슬린다.
“최근에 꽤나 심심했었다고 들었다.”
“……갑자기 또 뭔 소리야.”
“어차피 그냥 돌아가 봐야 일거리도 없이, 그저 무료한 시간을 보낼 테지.”
짚이는 구석이 있었는지 류아라가 눈썹을 찡그린다.
“하지만 새로운 단원이 들어오면 이리저리 굴려보는 재미가 쏠쏠할 터다.”
“끄응.”
“그리고 예르파드의 명성과 업적은 이미 업계에 널리 알려질 정도 아니던가. 이번 기회에 용병단 규모만 늘리면 떨어졌던 승급심사에 다시 도전해볼 법하지.”
용병단으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 백패(白牌).
류아라의 막연한 꿈이 거기 있는 한, 그녀는 이 말을 못 들은 척할 수 없다.
“끄으으응. 분명 신입이 들어오면 심심함도 덜어질 거고, 이게 또 북부에 도움 된다니까 좋긴 한데…….”
“한데?”
“네가 말하니까, 뭔가 속는 거 같아.”
“착각이라네. 누이여.”
시간이 없다.
더 뭉그적거리면 돌아가는 놈들이 나올 테지.
내가 약간의 경고성 멘트를 날리자 류아라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몸을 돌렸다.
터벅터벅.
그녀가 단상으로 올라가자 웅성거리던 용병들의 말소리가 잦아든다.
방종(放縱)이 천성 같은 용병들이 나름 예의를 갖춘 것이었다.
그런 가운데 류아라가 말한다.
“예르파드 용병단의 단장, 류아라다.”
마력을 담은 음성이 드넓은 설원에 퍼지며 천여 명의 귓가에 또렷이 새겨진다.
“나는 설명 이런 거에 소질 없고, 어차피 니들 다 공고 보고 온 거잖아?”
그녀는 솔직하고, 거침없는 화법으로 내가 준비했던 10분짜리 연설을 단 15초로 압축시켰다.
“씨발 많이 잡아라. 제일 많이 잡는 놈은 우리 용병단 견습이다.”
아니, 야.
그래도 너무 짧잖아.
나는 제대로 연설하라며 눈빛으로 그녀를 압박하는데…….
“우와아아아아!”
“류아라 님 최고다아아!”
“너무 아름다우십니다! 류아라니이이임!”
“저런 분이 단장이라면, 나는 무급으로 일해도 좋아아아!”
용병들이 열화와 같은 반응을 내보이며 소리를 질러댔다.
“헤, 헤헤…….”
한편 그런 칭찬이 쏟아지자 류아라는 애처럼 좋아했다.
에휴, 이래서 용병들이란.
* * *
아스트레의 주도 할카데르. 당주 집무실.
산더미 같던 서류작업을 끝낸 류미엘이 기지개를 켰다.
오늘도 스트레스와 피로에 찌든 하루였지만, 그래도 다른 날에 비해선 일이 일찍 끝난 편이었다.
덕분에 남은 시간은 ‘나에게 주는 상’으로써 고급 와인을 음미하며 시간을 보내려고 했는데…….
“……그러니까 류리크, 그 말종 자식이 류아라 언니한테는 의뢰비를 떼먹고, 저택 수리비는 나한테 뜯어낸다고…… 그딴 헛소리를 한 것인가.”
평소와 같은 정례 보고에서 충격적인 소식을 전달받았다.
통신 구슬 안의 리아는 늘 그렇듯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습니다.
“심지어 그걸 자네 앞에서 자랑스럽게 떠들었고?”
—자랑스럽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예, 그렇습니다.
뭐 그딴 새끼가 다 있지?
류미엘은 단전에서부터 끓어오르는 깊은 분노를 느꼈다.
한편 리아는 아무런 동요 없이 담담하게 말한다.
—아마 류리크 님께서 잠시 잊은 듯합니다. 제가 소저택의 집사이기 이전에 류미엘 님의 기사라는 것을.
그게 말이나 될 소리인가.
심지어 류리크는 리아의 정례 보고에 대해서도 이미 알고 있을 텐데.
‘그 사악하고, 머리 좋은 녀석이 그걸 잊을 리가 없는데…….’
그렇다면 혹시.
‘알면서도 엿 먹어봐라, 하는 심정으로…… 일부러?’
만약이긴 하지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류미엘은 가까스로 유지하던 이성의 끈이 툭,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주, 죽여버리겠어! 그 빌어먹을 개자식을! 당장! 죽여 버리겠……!”
“아가씨, 진정하십시오.”
집사인 카엘이 말렸지만 류미엘의 분노는 사그라지지 않는다.
“나한테 300만이나 빚을 던져놓고서, 이…… 아아아아악!”
“류미엘 님, 고정하십시오! 어, 어어! 그거 부수면 안 됩니다?!”
그렇게 한바탕 난리가 일어나고, 10분 뒤.
류미엘은 멋쩍은 듯, 얼굴을 붉히며 헛기침을 한다.
“못 볼 꼴을 보였군.”
—소인은 눈을 감고 있어, 아무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농담이라도 꽤 위안이 되는군, 류미엘이 중얼거리듯 말한다.
“그나저나 류리크가 자네에게 그런 말까지 하다니…… 꽤나 친밀해진 모양이야?”
묘하게 심중을 찌르는듯한 질문이었는데, 리아는 도리어 당당하게 수긍했다.
—예, 함께한 시간이 있다 보니 그리된 듯합니다.
리아가 류리크의 곁에 머문 것도 3년이 넘었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정이 생길 법한 시간이 흐른 것이다.
류미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여 녀석은 이번에도 돈 없이 사람 부리는 일을 하는 것이로군.”
—예.
“비겁한 잔대가리만큼은 따라갈 도리가 없군그래.”
분명 예전에는 안 그랬었는데.
후우, 류미엘이 한숨을 쉰다.
“그래서 몬스터 토벌이나 도로 개척은 잘 될 거 같은가.”
—예, 상당히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모인 용병들의 규모도 상당하니, 계획대로만 흘러간다면 큰 문제는 없을 듯합니다.
계획의 입안은 류리크였지만, 실행 가능성과 세부적인 사항에 대한 검토는 리아도 함께 했다.
그런 리아가 높게 평가하는 기획이다.
분명 그녀 말대로 계획 대로만 된다면 성공하겠지.
—다만…… 한 가지, 우려되는 점이 있습니다.
“그게 뭐지?”
—토벌의 대상이 된 지역 중, 대부분이 미개척지대입니다. 그리고 그곳은…… 언제나 예측할 수 없는 변수가 도사리고 있지요.
류미엘이 낮게 시름 했다.
“잠들어있는 괴물을 건드릴 수도 있다는 게로군.”
사람의 발길이 미치지 않은 미개척지대는 그야말로 신비와 모험으로 가득 차 있다.
다시 말해, 예기치 않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던전.
설원 어딘가에 숨죽이고 있을 강대한 몬스터.
어쩌면 그것들이 깨어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