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possessed a villain with nothing but a death flag RAW novel - Chapter 158
사망 플래그밖에 없는 악역에 빙의했다 158화
158
—그, 그건 유령이었습니다! 틀림없이 유령이었어!
—으아아아 유령이다! 유령이야!
—아니, 그건 평범한 유령 따위가 아니야! 말로만 듣던 설원의 사자가 내려온 거라고!
—종말이 다가온다!
—나, 나는 여기서 나가겠어!
피해 규모는 적지 않았다.
용병 일곱이 사망했고, 30여 명이 제정신이 아니었다.
서른 명이나 저리 떠들어대니, 그를 지켜보는 다른 이들의 얼굴에도 짙은 그림자가 드리운다.
“류리크 씨, 설원의 사자라면…….”
메이린이 우려의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본다.
우려하는 게 뭔지 이해했지만, 나는 단박에 그 가능성을 배제했다.
“그럴 일은 없다. 결코.”
이 세상에 절대가 없다는 것은 알지만, 영원의 벽 너머에 있는 사자(死者)는 이 세계의 파멸 기믹이다.
그만한 트리거가 여기서 작동할 리가 없고,
‘애초에 정말로 설원의 사자였다면…… 이렇게 끝나지도 않았을 테니까.’
메이린은 여전히 굳은 얼굴로 말한다.
“그러면 뭘까요. 대체…….”
그녀의 얼굴에 짙은 두려움이 묻어나 있다.
용병들이 죽고, ‘그것’을 본 이들마다 저런 꼴이니까.
하지만 나는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상황을 보진 않았다.
플레이어의 시선에서 보자면, 저건 상태 이상 ‘혼란’의 전형적인 반응이었으니까.
‘예컨대 헛소리라는 게지.’
다만 유령종이라는 건 맞는 듯했다.
실제 이런 식의 정신계열 상태 이상은 유령종들의 특기이기도 하니까.
“야, 너 유령사냥꾼 자격증 땄다면서? 이런 거 전문 아냐?”
류아라가 불쑥 다가와 말을 건넨다.
“자격증이 뭐냐, 자격증이.”
“아무튼! 너 유령사냥꾼이잖아. 그 몬스터가 유령이면, 네가 손쓸 수 있는 거잖아.”
물론 유령사냥꾼이 되면서 여러모로 이점이 생기긴 했다.
정신계열 상태 이상에 대한 내성이나 유령종을 상대할 때 조금 더 많은 피해를 입히는 그런 것들.
하지만,
“……상대는 이만한 규모의 일을 벌일 수 있는 유령종일 터다. 내가 어찌 손쓸 수 있는 수준이 아니란 말이지.
근본적으로 ‘류리크 아스트레이’라는 존재가 약하다.
단적으로 나는 지금 실비아와 정면승부를 해도 질 만한 수준이다.
잘 쳐줘 봐야 학교의 우등생 레벨이지, 실전에서 먹힐 만한 레벨이 아니란 말이다.
“그러면 어떡해?”
“일단 생각을 해봐야겠지.”
어쨌거나 대학살이 일어나거나 적이 용병들을 쫓아 여기까지 추격해온 것도 아니다.
생각할 여유 정도는 있을 테지.
“얘들아, 연장 챙겨라!”
……라고 생각하는 와중, 류아라가 예르파드의 단원들을 불러 모았다.
“류아라, 무턱대고 움직여서 될 문제가 아니다. 이건…….”
“잔대가리 잘 돌아가는 동생아. 니 대가리가 그렇게 매끄럽게 잘 돌아가면 이 누나의 입장도 고려해보련?”
의외로 그건, 단순히 근육 덩어리 뇌에서 발로(發露)한 헛소리가 아니었다.
“예르파드의 신규 단원을 뽑는 자리에서 유령이 발생했다고 지원자들이 죄다 내빼?”
류아라는 리아나 레베카처럼 심계(心界)가 깊진 않지만, 그렇게까지 멍청한 캐릭터도 아니다.
적어도 명예가 무엇인지, 어떻게 그것을 지킬 수 있는지는 알았다.
“심지어 우리 예르파드와 단장인 나까지도 그걸 어쩌지 못해서 망설였다고 하면…… 그건 신규 단원뿐 아니라, 우리의 얼굴에 먹칠하는 거야.”
그렇게까지 확대해석할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만.
‘그녀에겐 그녀 나름의 관점과 생각이 있을 테니…….’
류아라는 호쾌하게 말했다.
“썅. 뭘 복잡하게 생각해? 유령이든 뭐든 주먹으로 쳐 패버리면 되겠지.”
* * *
실비아는 메이린의 곁에 두었다.
어차피 나는 류아라와 함께 움직이니, 특별히 호위가 필요하진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다른 몬스터가 캠프에 접근할 수 있는 만큼, 이편이 맞았다.
그렇게 나와 예르파드는 용병들이 도망쳤다는 지역에 발을 들였다.
—휘이이이.
자작나무 숲.
그 안으로 발을 들이자, 스산한 한기가 밀려들었다.
뇌가 따끔거리는 듯한 감각이 바짝 긴장하게 만든다.
“여기가 맞긴 한가 보네. 발자국들 좀 봐.”
하얀 눈 위, 사방으로 흩어진 발자국들이 보인다.
난잡하게 흐트러진 그 걸음들에서 얼마나 정신없이 도망쳤는지 가늠이 된다.
“보통 녀석이 아닌 거 같긴 한데…….”
“아니, 근데. 유령이면 우리가 잡을 수 있는 거 같아?”
“몰라. 그냥 대장이 오라니까 온 거지.”
“설마 쫀 거냐, 얘들아?”
단원들의 동요에 선두에 서 있던 류아라가 도발적으로 사기를 북돋는다.
마치 놀리듯 장난기 어린 목소리에 예르파드의 단원들이 발끈했다.
“무, 무슨 소리야?! 우리가 이런 거에 겁먹을 줄 알고?!”
“이런 것쯤이야! 대장 따라서 미궁에 보름 동안 갇혔을 때와 비교하자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평범한 용병들이었다면 아까의 그 서른 명처럼 혼란에 빠져 제정신을 못 차렸을 터다.
허나 예르파드의 단원들은 조금 겁먹고 긴장했을지언정, 정신줄을 놓진 않았다.
“까짓거 유령 따위! 이 몸한테 걸리기만 하면 한 방감이지!
“그래! 오히려 그놈을 찾는 게 더 힘들겠는걸!”
“우리한테 겁먹어서 도망 다니고 있는 거 아냐?!”
허세는 결코 미덕이 아니나, 겁포(怯怖)에 휩싸여 아무것도 못 하는 것보단 나았다.
나는 한껏 허세 부리는 용병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유령 못 찾을 걱정은 안 해도 될 듯하군.”
—끼이이이이…….
하얀 설원의 저편.
이상하리만치 검은 무언가 있었다.
인간형.
160 중반 정도 되는 신장.
허리까지 내려오는 산발.
고개는 약간 숙인 채고, 얼굴은 머리카락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다.
처녀 귀신이라 하면 자연스레 떠올릴 법한 형상이었다.
“히끅! 저, 저게 유령인가!”
“이 추운 날씨에 소복에 맨발이라니…… 트, 틀림없는 유령이야!”
“다들 무기 들어!”
용병들이 하얗게 질린 채 비명 같은 소리를 내질렀다.
그리고,
“씨발, 너였구나! 귀여운 신입 단원 뽑는 자리에서 초를 친 게!”
“누이여, 잠깐…….”
“뒈져라아아아아아아!!”
류아라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돌진했다.
나는 자연스레 이마를 짚었다.
‘정신공격이든 뭐든, 유령 따위가 류아라를 어떻게 해코지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만…….’
그 반대 역시 성립할 터다.
유령종은 말 그대로 영체(靈體).
물리력이 통하지 않으며 마력에도 상당한 내성을 갖추고 있으니까.
베스트는 신성 마법, 못해도 은 검이나 성수 혹은 축복을 받은 무기를 써야 할 텐데.
“류아라! 괜히 힘 빼지 말고, 탐색전을 한다는 느낌으로 상대해라! 어차피 상대는 유령이라 물리 공격이 통하지 않…….”
—빠가아악!
경쾌하게 류아라의 주먹이 유령의 안면을 강타했다.
그리고 그건 허깨비와 같은 영체를 때려서 날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다.
“………?!”
순간 나는 어이를 잃었고, 흩날리는 머리카락 속 유령 역시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끼엑?!
아니, 왜 주먹이 아픈 거지?! 유령이 표정으로 그리 말했다.
“여, 역시 우리 대장이구만!”
“신성 마법은 무슨 신성 마법이야! 우리 대장 주먹이면 다 해결되지!”
“그런 말도 있잖아. 마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그거 뭔가 잘못된 거 같은데.
아무튼.
—빠각! 빠각! 빠가가각!
주먹으로 유령을 패는 살벌한 소리가 적막뿐이 없던 설원에 울려 퍼진다.
류아라는 기세를 탄 듯, 힘있게 유령을 후려 패기 시작했다.
“와자뵤옷! 씨발, 이 몸의 주먹 앞에선 모두가 평등하다!”
기가 막히군.
반신반의했다만, 이게 바로 뇌가 근육인 대신 전투력에 몰빵된 캐릭터의 힘인가.
“류아라, 적당히 패라. 어차피 제대로 공격이 먹히지는 않을…….”
“괜찮아.”
류아라가 씨익 웃으며 말한다.
“이런 거라면, 하루 종일도 할 수 있으니까.”
* * *
내가 예측한 대로, 유령은 고통과 타격은 입되 소멸하진 않는다.
유령에겐 물리력이 통하지 않는다는 상식과 류아라는 괴물이라는 설정이 배배 꼬인 결과였다.
류아라는 실신(?)한 유령의 멱살을 쥐어 올리며 말한다.
“……하, 이거 죽지를 않네.”
일방적으로 얻어맞으면서 비명을 질러대던 유령은 곧 정신을 잃는다는(?) 충격적인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다만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게 문제였다.
“이대로 신전까지 가져가서 성불시켜야 하나?”
류아라가 중얼거리듯 말한다.
그리고 그즈음, 면밀히 유령을 살피던 내 분석도 끝이 났다.
“아니, 그럴 필요는 없다.”
“오올. 그 표정, 뭔가 방법이 생각난 거 같은데.”
“그렇다고…… 볼 수도 있지.”
나는 주변을 둘러본다.
이곳은 설원의 한가운데이고, 자작나무들이 빼곡히 자라난 숲속이었다.
다만 여긴,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다.
류아라가 유령종을 때려 팬 것이 어언 30여 분가량 흘렀건만, 몬스터는커녕 짐승 한 마리 보이질 않았으니까.
“이상한 일이지 않나. 이 넓은 지역에 몬스터건 짐승이건 보이는 것이 없네.”
“유령이 무서워서 다들 도망간 거 아냐?”
“고작해야 한 마리다. 심지어 네 주먹에 꼼짝도 못 하는 녀석이지.”
물론 류아라 자체가 괴물이라는 점도 있다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유령종 하나의 영향이라고 하기엔…… 너무 넓은 지역이지 않은가.”
“………….”
“그리고 왜 하필, 유령종은 단 하나뿐인가.”
나는 내 시선은 바닥으로 향한다.
“……내 생각이 맞다면, 이 아래 무언가 있을 터다.”
“이 눈 밑에?”
“그래. 눈은…… 많은 것을 덮으니까.”
미개척지대.
우리는 그렇게 표현한다만, 과연 그곳이 ‘단 한 번도 개척되지 않은 곳’이었을까.
무수한 역사 속, 언젠가는 인간의 땅이었을 수 있다.
어떤 마을이나 도시가 있었을 수도 있다.
그러다가 몬스터에게 빼앗긴 것일 수도 있다.
하다못해 이 지역을 오갔던 상인이나 모험가들의 시체만 해도, 수백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켜켜이 쌓였을 터다.
유구의 역사 속에, 눈 속에 쌓이고 쌓인 무수한 죽음.
“아마도 이 아래 어딘가에 죽은 자들을 붙잡는 매개체가 있을 터다.”
“………….”
“파고 들어가면, 기나긴 역사 속 파묻혀 있던 유령들이 끝없이 나타나겠지.”
이곳에 발을 들이며 느꼈던 스산한 한기.
단순히 한 마리의 유령이 아니라, 그 군집이 이 아래서 원기를 뿜어대는 것이라면…… 이 적막도 어느 정도 말이 된다.
“그 수가 얼마일지 모른다.”
“………….”
“어쩌면 잘못 건드렸다가 재앙을 열게 될지도 모르지.”
나는 한없이 진지한 눈으로 그녀를 살폈다.
“류아라. 할 수 있겠나?”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이전처럼 뇌근육 바보처럼 다짜고짜 땅을 파거나 그러지도 않았다.
대신 예르파드의 단장은 단원들을 둘러보며 말한다.
“얘들아. 설명은 다들 들었을 거고, 각자 성수 있지?”
“………….”
“무기에 발라라. 유령이 얼마나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다 뿌리진 말고 적당히 아껴 써.”
“………….”
“아, 혹시라도 유령이 무섭다면 지금 말해라. 캠프에서 기다려도 괜찮으니까.”
그 차분한 목소리에 퍽 안심되는 구석이 있었다.
직감과 계산이 설 때는 과감하게.
확실하지 않을 때는 신중하게.
다만 결코 물러서는 일 없이.
그것이 예르파드이고, 류아라였다.
“대장, 뭔가 착각하는 게 있는 거 같은데 말이야. 유령 잡는 거, 딱히 처음인 것도 아니거든?”
“맞아! 사실 유령보다는 대련하자고 덤벼드는 대장이 더 무섭지!”
“크큭. 사람 팰 때, 대장 눈깔이 유령보다 더 소름 끼친다고!”
이 새끼들이 진짜. 류아라는 씨익, 시원한 웃음을 지으며 말한다.
“다들 삽 꺼내라. 오늘 유령 한번 제대로 잡아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