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possessed a villain with nothing but a death flag RAW novel - Chapter 159
사망 플래그밖에 없는 악역에 빙의했다 159화
159
유령은 꼭 정리해야만 했다.
아니, 유령뿐 아니라 이 일대의 몬스터란 몬스터는 싹 씨를 말려야 했다.
그러고 난 뒤에 조사관 엘가도르에게,
—이 지역에는 몬스터도 없고, 추워서 산적질 하는 놈도 없다.
라는 식의 어필을 해야 하니까.
헌데 지역 내에 유령이 있고 용병들이 겁먹어 도망쳤다 하면…… 사실 예르파드의 명예 이전에 나에게도 큰 문제였다.
—그러니까 삽으로 땅 파면서 유령 새끼들이 나오는 족족 뚝배기를 깨면 된다는 거지?
—어휘가 왜곡되긴 했다만…… 대충 그런 계획이다.
—간단하네! 근데 유령은 괜찮은 거야?
—다행히 네 단원들이 구비한 성수도 있고…… 나는 예르파드를 믿는다.
‘정확히는 류아라 아스트레이를 믿는 거지만.’
류아라.
내가 이 세계에서 ‘괴물’이라 표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간.
그런 그녀의 스펙을 고려했을 때 썩 나쁜 계획은 아니었다.
다만,
“대장! 유령이 점점 많아지는데!”
“큭! 뚝배기 빨리 깨버리라고! 거기 밀리잖아!”
“중지! 중지!”
깊이 들어갈수록 유령들이 쏟아지는 양이 점점 많아졌다.
그러다 보니 계속해서 땅을 팔 수가 없었다.
“후우…… 일단 쉬었다 하지.”
“땅 파는 것도 힘든데, 두더지 잡기 하듯 유령까지 사냥하라니. 이거 좀 업무가 빡센데?”
“유령들이 점점 많아지는데, 성수가 넉넉할지 모르겠어.”
잠시 잊었다만, 이 게임의 난이도는 루나틱이었다.
루나틱이라는 난도에 따라 여러 가지 변화가 있겠지만, 가장 단순하게 몬스터의 숫자나 스펙이 상승했을 게 당연하다.
‘다행히 예르파드가 감당하지 못할 수준은 아닌듯하다만…….’
시간이 지체되고 있다.
생각 없이 땅을 계속 파면 유령의 수를 감당할 수가 없고, 애당초 단원들의 체력 문제도 있기에 무리하게 작업을 계속할 수가 없었다.
“동생아, 이거 괜찮은 거 맞냐?”
“………….”
“나야 이 짓거리를 일주일이든 열흘이든 할 수 있지만, 우리 단원들은 아냐.”
“그런 듯하군.”
일정이 빠듯하다.
몬스터 토벌 자체가 사흘밖에 없는 것도 있다만, 여기서 지금 당장 ‘끝장’내지 못하면…….
‘용병들이 두려워해, 이 근처에 오질 않겠지.’
지금 당장 유령 문제를 해결하면, ‘별거 아니었네~’ ‘그놈들은 겁쟁이였어!’라는 식으로 다른 용병들이 몬스터를 찾아 들어올 터다.
반면에 여기서 시간이 지체되면 ‘예르파드가 나섰는데도, 해결 못 한 거면 심각한 거 아냐?’라는 분위기가 조성될 터다.
“야, 뭐라고 말 좀 해봐.”
“……생각 중이다.”
당장에 끌어올 수 있는 인원이 없을까.
‘할카데르에 있는 아스트레이의 기사단을 데려오기엔 시간이 부족하다.’
‘두려워하는 용병들을 설득하려면…… 그것도 참, 골치가 아픈데.’
‘그나마 가능성이 있다면 화이트밴 영지에 있는 군인들일 텐데…….’
생각이 깊어지던 중, 툭 류아라가 내 어깨를 건드리며 말한다.
“야, 이 아래에 뭔가 있는 건 맞아?”
“확실하진 않다만…… 가능성은 크다.”
여기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북부의 광산이 매번 위치가 바뀌듯, 던전들 역시 비슷하다.
지리적으로 ‘설정’이 붙어 있는 주요한 던전들은 매번 고정적이다만.
‘지금처럼 땅속에 묻혀 있는 것들은 위치가 매번 다르지.’
그렇지만 확실한 것도 하나 있다.
—북부에 유령이 있는 던전 중, 류아라가 감당 못 할 만한 난도는 없다.
그런 계산이 있었기에 예르파드만 이끌고 이리 온 것인데.
“아, 썅! 여기 아래 뭔가 있으면, 더 깊게 생각할 거 있어?”
류아라가 팍, 성을 내며 앞으로 나선다.
“삽 줘봐! 다들 여기서 물러서고!”
“류아라, 뭘 하려는 거냐.”
“뭐하긴 뭘 해? 감질나게 땅 깨작깨작 파는 거 싫으니까, 그냥 아예 박살을 내려는 거지!”
저 인간 성격에 급발진하는 게 이상하진 않다만, 아무리 그래도 마구잡이로 헤집으면 곤란했다.
아직 이 던전이 어떤 것인지 불명확한 마당에 뭐가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일단 진정해라. 아무리 너라도 마구잡이로 유령들을 깨우면…….”
—쾅!
빌어먹을.
“아, 뭐래! 너처럼 악랄하게 머리 굴리는 놈이 위험하면 제 발로 여길 왔겠어?”
“너야 혼자 살아남을지 몰라도, 네 부하들과 나는 위험해질 수 있다.”
“정말로 위험했으면, 지금 나한테 잔소리할 게 아니라 꽁지 빠지게 도망쳤겠지! 여기 유령들 좀 때려잡는 거 보니까, 너도 만만하다는 거 깨달은 거 아냐?”
대충 맞는 말이었다.
땅을 팔 때마다 수가 많긴 하다만, 그리 치명적인 녀석은 없었다.
대충 성수 바른 삽으로 뚝배기 부수면 쉽게 깨지는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좀 침착하게…….”
유감스럽게도 내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눈앞에 보여선 안 될 무언가가 보였으니까.
[불합리한 죽음이 당신을 주시합니다.]그것은 마치.
어느 날 아침, 집 앞에 놓인 누군가의 시체처럼.
“…………!”
갑자기 내 앞에 나타났다.
* * *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만두라는 말도, 잠깐 멈춰보라는 말도.
그도 그럴 게, 그리 말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썅.”
본능적으로 직감이 발동했는지 류아라가 성난 멧돼지처럼 땅 부수는 것을 그만뒀다.
다만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스으으으…….
돌연 바라보는 풍광이 어두워진다.
마치 세계의 명도(明度)가 내려가기도 한 것처럼 이 설원의 새하얗던 눈이 마치 회색의 재처럼 느껴진다.
동시에 이 숲에 발을 들였을 때와는 비할 수 없는 압박감이 밀어닥쳤다.
“……이거 씨발, 잘못 건드린 거 같은데.”
「여기는…… 어디?」
거기엔 이상한 것이 있었다.
닳아빠진 투구.
언데드의 얼굴.
「아, 여기는…….」
류아라가 팍 인상을 쓰며 묻는다.
“넌 뭐냐?”
그 한마디가 벌어주는 시간 동안, 멀찌감치 있던 예르파드의 단원들은 정신을 다잡고 멀찌감치 떨어져 방진을 꾸렸다.
유령은 무언가 혼란스러운 듯 제 머리를 부여잡는다.
「나는…… 나는…….」
「나는…… 누구? 나…… 나는, 나는…….」
「나, 는…… 난? 책임을…… 임무를…….」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는지 휘청이면서, 어쩌면 무언가 혼란스러운 듯 비틀거리며 놈은 혼자 중얼거렸다.
그러다,
「아.」
놈의 눈이 희게 반전한다.
「궁금해?」
녀석이 미소 지었다.
「알려줄까?」
그리고 나는 그 미소를 알았다.
「응? 왜 말이 없어? 내 정체가 궁금하냐니까?」
광인(狂人)의 미소.
제정신이 아니다, 라는 것을 넘어 아예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단단히 미친 인간만이 지을 수 있는 미소.
“시팔…….”
류아라도 직감적으로 깨달은 듯 긴장한 기색을 흘린다.
「흐음. 이상하네. 자기가 물어놓고서…… 왜 궁금하다고 말을 안 하는 거지?」
류아라가 고개를 돌린다.
그녀는 혼란스런 눈빛으로 나를 살핀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묻는 듯했다.
「어딜 봐. 날 봐야지.」
―화악!
그것이 손을 뻗었다.
거기에 맞춰 류아라가 그를 쳐낸다.
「……너? 나를 쳐냈어? 어떻게?」
그것이 혼란스러워했다.
이를 보고 류아라의 표정이 한결 편해졌다.
무슨 사이코패스 살인 병기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띨한 면이 있어서 안심했다는…… 그런 느낌이었다.
류아라가 말한다.
“동생아. 이거 패 죽여도 되냐?”
그즈음 나도 상대에 대한 파악이 끝났다.
“……지금 당장 죽여야 해.”
* * *
「아, 프잖아!」
“그게 청춘이다, 이 새끼야! 더 처맞고 성불해라아아악!”
「이익! 젠장! 뭔데! 대체 뭐냐고! 내가 약해진 건가?!」
누가 봐도 유령종이 일방적으로 밀리며 수세에 몰린 듯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류아라의 검에는 성수가 발라져 있다.’
이전과 같이 물리력이 통하지 않고, 어쩌고 하는 상황이 아니란 말이다.
이는 다시 말해,
‘저 유령종이 다른 누구도 아닌 류아라를 상대로 버텨내고 있다는 것이지.’
이 지역에서 그걸 버텨낼 만한 존재는 그리 많지 않다.
—잊혀진 검성, 오팔.
어떤 역사적 사료(史料)조차 남지 않은 옛 왕국의 검성.
꺼무위키에서도 그 이름과 ‘잊혀진 검성’이라는 별호만 기재된 몬스터.
그럼에도 수많은 플레이어를 죽음으로 몰아갔던 설원의 악몽 중 하나.
‘문제는 내가 알기에 녀석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강해질 터다.’
족히 천 년 이상의 세월 동안 잠들어있던 망령이다. 당연히 깨어나자마자 정상적으로 활동하진 못한다.
대신 녀석에게 시간을 주면 줄수록 기하급수적으로 강해진다.
—검성(劍星)이라는 별호에 걸맞은 수준으로.
물론 류아라가 질 거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녀석은 내 사망 플래그로 이 자리에 찾아왔다.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닐 게 분명할뿐더러,
‘이 게임 자체의 난도가 루나틱이니 몬스터들은 내가 알던 것보다 훨씬 강하게 등장할 터다.’
그런 내 생각이 틀리지는 않았는지, 류아라가 인상을 찌푸렸다.
“썅! 타격감 존나 없네! 좀 뒈지면 안 되냐!”
「크윽! 정말로 아프다! 아파! 그런데…….」
반면에 오팔은 여유가 생겼는지 씨익 웃었다.
「맞다 보니 점점 괜찮아지는 거 같기도 하고?」
“이 씨발 새끼가! 아직 덜 처맞았구나!”
순간 류아라의 호흡이 흐트러졌다.
이번에 녀석은 류아라의 공격을 피해냈다.
「하핫! 뭐야? 이거이거! 보다 보니까 눈에 익어서 피하는 것도 쉽…… 크악!」
“이 새끼가 뭐라는 거야!”
「이봐, 예쁜이. 너 곧 있으면 나한테 질 거 같은데 지금 항복하면 조금 봐줄 수…… 아! 이게 진짜!」
짧은 순간, 류아라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그녀가 눈으로 물었다.
—씨발 이거 어떻게 잡아?!
“그대로 조금만 붙잡고 있어 봐!”
지금도 무려 류아라를 상대로 그럭저럭 버티고 있다만, 어쨌거나 아직 녀석은 약한 상태이다.
심지어 류아라에게 얻어맞은 것들도 꽤 있어 보기보다 타격이 있을 터다.
그렇기에,
‘지금이라면…… 가능하다!’
나는 지팡이를 들고 앞으로 나섰다.
“야, 이 미친 동생 새끼야! 계략을 짜라니까, 허약해 빠진 샌님이 왜 앞으로 나서?!”
“그대로 잘 붙들고 있어라.”
“야 이 자식들아! 방진 풀고 저 새끼 끌어내!”
애꿎은 예르파드 단원을 괴롭히지 말고, 유령종 붙잡는 데에나 집중해라.
‘류아라가 나를 못 믿는 건 이해한다만…… 나도 그동안 놀았던 것만은 아니다.’
—혈석(血石).
—꾸준히 해왔던 수련.
—라기온 반지 17호.
—모모란의 특제 단약.
—아드리아 샘에서의 특훈.
어느 순간에도, 제일 중요한 건 나 자신의 강함이라는 걸 잊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그 결과를 보여줄 때였다.
‘마력이라면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이뤘다. 그리고…….’
—유령 사냥꾼.
견습이지만 어쨌거나 신성을 발할 수 있는 자격 자체는 얻었다.
그리고 나는 보통의 인간들에게 금지된 고위 신성 마법 하나를 알고 있다.
「뭐, 뭐냐 그 힘은……!」
유령종, 오팔이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다.
내 지팡이 끝으로 신성을 품은 대마법이 구현되기 시작한다.
「아, 안돼! 그건……!」
“이 새끼가 어딜! 네 상대는 나라고!”
「제, 제길! 저건 위험해! 위험하다고!」
신성 계통.
심판 계열의 고위 신성 마법.
오스트람이 즐겨 쓰는 최강의 주력기 중 하나.
—신벌(神罰)
“끝이다.”
약체화된 검성의 영체 정도는 가볍게 날려버릴 수 있는 마법이, 지금 이 순간…….
[성향 악(惡)으로 인해 신성 마법의 사용이 취소됩니다.]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