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possessed a villain with nothing but a death flag RAW novel - Chapter 161
사망 플래그밖에 없는 악역에 빙의했다 161화
161
잊혀진 검성, 오팔을 토벌한 뒤 북부 몬스터 소탕은 순조롭게 끝났다.
처음에는 용병들이 오팔과 함께 소환된 유령 때문에 이곳에 오는 걸 꺼렸지만, 입단에 욕심을 내는 이들이 몇몇이 도전하면서 너도나도 몰려들었다.
—씨가 마른 곳에서 없는 몬스터 찾느니, 조금 위험하더라도 유령 있던 데에 가야지!
—어차피 류아라 단장이랑 예르파드가 싹 다 토벌했다면서? 무서울 건 없지!
—다들 예르파드에 입단하려고 여기 온 거 아냐? 진심으로 입단을 노린다면 모험을 해야지!
애당초 던전, 잊혀진 망국의 흔적 근처에는 별로 몬스터가 없었기에 용병들이 투입되자 말끔하게 정리되었다.
“몬스터 사체는 여기로 가져와 주세요! 즉석에서 매입해드립니다!”
“정산받은 돈으로 소주 한잔하고 가세요. 저쪽에서 술이랑 고기 팔고 있어요.”
“크으, 술맛 좋다! 여기 고기 2인분 추가!”
“젠장, 입단은 턱도 없는 거 같지만. 인생 뭐 있어? 이 술이랑 고기만 있으면 충분하지!”
나는 메이린을 앞세워 적당한 가격에 몬스터 사체를 매입하고, 용병들은 번 돈을 다시 술과 고기를 사는 데 쓴다.
그런 식의 선순환(?)이 이루어지면서 짭짤하게 수익을 올렸다.
한편 예르파드도 수습이지만 신규 단원을 세 명 뽑았다.
“……이상, 호명한 세 명! 너희는 오늘부로 예르파드의 견습 단원이다.”
“우와아아! 감사합니다!”
“예르파드의 명예에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훗. 이 몸이 뽑히는 거야, 당연한 결과지.”
좀 이상한 녀석도 하나 뽑힌 듯하다만, 어차피 그건 내 알 바 아니니 넘어가고.
“류리크 씨, 어찌저찌 성공했네요!”
메이린과 실비아가 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다가왔다.
나는 괜히 우쭐대기 싫어, 적당히 손사(遜辭)의 뜻을 담아 말한다.
“계산대로 된 것뿐이다.”
“그 묘하게 잘난 척하는 걸 보니, 상태가 괜찮아 보이네요.”
아니, 이건 내 나름 잘난 척 안 하려고 한 말인데?
메이린은 언제부터 세상 보는 눈이 비뚤어진 건지…….
마음속으로 혀를 차자니, 실비아가 말을 건다.
“그 던전에서 유령들이 엄청나게 쏟아져서 고생했다고 들었는데…… 몸은 좀 괜찮아?”
“……네가 진지하게 안부를 물으니, 기분이 이상한데.”
평소에 씩씩거리면서 이상한 소리만 하던 녀석이 묘하게 다정하게 구니 절로 얼굴이 구겨졌다.
그건 마치, 맨날 혐오의 눈빛을 던지던 여동생이 갑자기 착해진 걸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내, 내가 뭐?! 나는 걱정 좀 하면 안 돼?!”
“그건 아니다만…… 몸은 멀쩡하니 걱정 마라.”
“흥! 아니, 와! 기껏 걱정해줬더니 와! 와! 와아아!”
나는 흥분한 실비아의 잔에 가득 소주를 따라줬다.
녀석은 술로 분노를 푼다는 기세로 잔을 들이켰고, 머지않아 새근새근 곯아떨어졌다.
메이린도 거나하게 취한 듯, 어느새부턴가 조용해졌고.
그렇게 이쪽의 정리(?)를 끝낸 뒤, 나는 다른 쪽으로 몸을 돌렸다.
어쨌거나 이번 일은 내가 류아라를 이용한 것이었다.
그녀의 마음을 잘 달래놓아야 다음에도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을 터.
나는 단원들끼리 뭉쳐 으쌰으쌰, 술을 들이켜는 류아라에게 다가간다.
“누이여, 새로 뽑은 단원은 어떤가.”
“오, 왔냐! 우리 대가리 반짝반짝 동생!”
“……내 지능이 뛰어남을 표현하고 싶다면 달리 적절한 어휘가 있을 터이다만.”
“와! 역시 대가리가 반짝반짝해서인지, 똑같은 대륙 공용어 쓰는데도 못 알아듣겠네! 캬하하!”
무슨 얘기를 꺼내기도 전에 이미 이쪽도 살짝 맛이 간 모양이다.
‘네가 이렇게 나온다면, 나도 방법이 있지.’
나는 품 안에서 녹화 구슬을 하나 꺼냈다.
—류아일언중천금.
류아라는 가장 큰 정체성은 신의(信義).
결코, 스스로 내뱉은 말을 어기지도 무르지도 않는다.
‘설령 취한 상태에서 내뱉은 헛소리라 해도 말이지.’
나는 적당히 그녀의 비위를 맞춰주며 얘기를 끌어간다.
“이번 일은 여러모로 누이의 공이 컸다. 역시 예르파드다운 훌륭한 솜씨였다.”
“캬하하! 우리 동생! 머리만 반딱반딱한 줄 알았는데, 혓바닥도 반질반질하네!”
순간적으로 저 멍청해 보이는 얼굴에 주먹을 꽂고 싶었다만, 그랬다간 류아라의 ‘가벼운 반격’에 내가 죽어버릴 수 있어서 꾹 참았다.
“솔직히 네가 없었다면 이번 일은 어림도 없었을 거다.”
“그러취! 이제야 이 누님의? 어! 소중함을 알겠냐?! 아아앙?!”
그녀의 말에서 옅은 원망이 느껴졌다.
‘내가 그동안 막대하긴 했었나 보군.’
기왕 이렇게 된 거, 나는 그녀의 자존감을 높여주기 위해 설정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 솔직히 말해, 이전까진 너를 별로 대단히 생각하지 않았다. 가문을 등지고, 용병을 한다니 당최 이해할 수 없었지.”
“어, 야…… 씨발. 술맛 떨어지게 그딴 얘기를…….”
“허나 직접 두 눈으로 보니, 내가 완전히 틀렸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한없이 진지한 눈으로 류아라를 보며 말한다.
“류아라, 너는 누구보다 훌륭하게 성장했다.”
“………….”
돌아오는 답이 없었다.
그저 얼굴을 새빨갛게 붉힌 채, 류아라가 취기인지 울음인지 모를 것을 히끅거리고 있었다.
“………씨발. 아버지가 하는 말인 줄 알았잖아.”
으음. 이렇게 진지한 분위기를 만들 생각은 없었는데.
나는 뒤늦게 상황을 수습하고자 대충 말을 꺼냈다.
“정정하지. 너는 정말 멋진 여자다.”
“아니, 썅. 그게 친누나한테 할 소리…… 에이, 시팔 됐다. 얘들아, 여기 술 떨어졌다! 궤짝 채로 가져와!”
“아무튼, 이번 일로 너를 다시 보게 되었다.”
“당빠 그래야지!”
“그런 의미에서, 나중에 부탁 하나만 들어줄…….”
“술맛 떨어뜨리지 말고 꺼~ 져라? 반딱 대가리야!”
* * *
조사관 엘가도르가 말했다.
“정말 몬스터 한 마리 없이 깔끔하게 정리하셨군요.”
화이트밴 영지에서부터 제도의 중부의 끝자락까지.
리무진을 타고 쭉 살핀 끝에 엘가도르가 승인을 내렸다.
“놀랍군요. 저번에는 한 걸음만 나가도 짐승 소리가 들려왔는데…… 그야말로 격세지감(隔世之感)입니다.”
“자네, 동방의 표현을 아는군.”
“별거 아닙니다. 그저 직업 특성상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다 보니, 주워들은 게 몇 마디 있는 것뿐이죠.”
엘가도르는 리무진에서 내리며 말한다.
“류리크 님, 부지 적합성 평가는 합격으로 보고하겠습니다.”
“고맙네.”
“다만, 도로 정비는 신경 써야 할 것입니다.”
“부지 선정이 끝나면 최우선으로 해결할 터이니 걱정 말게.”
그리하여 의도치 않게 생겼던 큰 산을 넘었다.
“뭐, 그밖에는…… 북부에서 물류를 담당할 상회가 없다는 게 흠이긴 한데, 류리크 님이 때마침 상회를 꾸리신다니 잘 되었군요.”
아직 상회명조차 확정하지 않은 소규모 상회다만, 아이언포지와의 계약을 따낸다면 꽤나 크게 발돋움할 수 있을 터다.
“아, 물론 이 건에 대해서도 정당하게 입찰하셔야 합니다.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상회가 있다면 그쪽을 선택해야 하니까요.”
“이를 말인가.”
“그러면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고생 많았네, 엘가도르.”
사실, 대부분의 후보지는 조사가 끝난 상황이었다. 그런 와중에 엘가도르는 귀찮아하지 않고 공정하게 부지를 평가한 것이었다.
“회의가 열리는 날까지 강녕하시길.”
엘가도르는 고개를 꾸벅이며 사라졌다.
나는 아주 잠시, 멀어져가는 엘가도르의 뒤를 보다 이내 리무진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나저나…… 꽤나 먼 길을 운전했군.’
북부와 중앙의 끝과 끝이라고는 하나, 결코 짧은 거리가 아니다.
운전만 여섯 시간을 넘게 했으니 꽤나 피곤할 터.
나는 운전석 쪽의 창문으로 다가가 말한다.
“리아, 돌아가는 길 운전이 고단할 텐데, 식사라도 하고 가지.”
내 나름 배려의 마음을 담아 말한 것이었는데, 리아의 표정은 도리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반쯤 감긴 눈과 그 아래 드리운 다크 서클에서 짙은 피로감이 느껴졌다.
“……평소의 불만을 이런 식으로 복수하시는 겁니까?”
“복수라니. 내 자네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알잖나.”
“그러면……!”
“운전기사가 병가 낸 것을 어찌하겠나. 또 저택에서 운전할 줄 아는 이가 자네뿐이 없었으니.”
리아가 빠득, 이를 갈았다.
“소인은 이 일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 분해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만…… 나는 미소와 함께 그녀를 달랜다.
“괜찮은 식사를 대접할 테니, 화 좀 풀게.”
“그런 걸로 어물쩍 넘어갈…….”
“그러고 보니 이 근처에 테네로 본점이 있다지.”
“…………!”
테네로는 홍차 전문의 카페 체인이다.
‘그리고 리아는 홍차라면 사족을 못 쓰지.’
리아가 뭐 씹은 얼굴로 말했다.
“이번……만입니다.”
* * *
레기아 이실리엔은 못마땅한 얼굴로 자신의 동생을 바라보았다.
“이제 와 류리크의 뒤통수를 치라니? 슈펜, 네가 왜 그렇게 류리크를 싫어하는지는 모르겠다만…… 나는 이미 그와 약조했다.”
2황자파를 대표해 그는 류리크와 약조했다.
샤프란의 종강 파티에서 류리크가 레베카와 동맹임을 선언하지 않는 대가로 아이언포지를 그에게 넘기기로.
다만, 슈펜은 그게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것도 정말 어처구니없는 거래였어. 세상에, 형. 류리크와 레베카와 손잡지 않은 걸로 아이언포지를 넘겨주다니!”
“슈펜, 애초에 아이언포지는 우리 게 아니다. 얻으면 좋긴 하지만 귀찮은 상대에게 빼앗기면 곤란한 ‘양날의 검’ 같은 것이지.”
이쪽에서 쥘 수 있다면 좋겠지만, 빼앗겼을 때의 타격이 너무 컸다.
차라리 중립인 류리크에게 쥐여주면 정적에게 빼앗길 걱정을 덜뿐더러, 이를 조건으로 류리크가 레베카와 긴밀한 관계가 되는 것도 막을 수 있었다.
“류리크가 아이언포지를 꿀꺽하고 나서 레베카랑 붙어먹을 수도 있잖아?”
“내가 설마 그런 대비도 안 했겠냐. 나와 류리크는 대충 구두로 적당히 때운 게 아니라 정식으로 ‘계약’을 했다.”
제국의 법관을 공증인으로 두고 서로의 ‘맹세’를 건 정식 계약이었다.
이를 어긴다면 아이언포지를 잃는 것보다 더 큰 타격을 입을 수도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뒤통수를 칠 수 없다는 거다.”
“……그렇지만 뒤통수를 쳐야 할걸?”
슈펜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단순히 떼를 부리는 게 아니라 뭔가 진지하게 짐작이 가는 바가 있는 모양이었다.
레기아는 한숨을 쉬었다.
“후우, 3분 안에 내가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해라.”
“형. 이건 류리크를 어쩌고 하는 문제가 아니야. 오히려 우리가 신경 써야 할 건, 류오넬 대장군이지.”
“류오넬…… 대장군?”
슈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아버지와 같은 ‘바타체스’야.”
심지어 널리고 널린 황손(皇孫)이 아닌 황자(皇子).
사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황위계승전에 참여해도 이상하지 않은 몸이었다.
다만 레기아는 쉽게 납득하지 않았다.
“그는 이실리엔의 이름을 버렸다.”
“이실리엔의 이름을 버렸을 뿐, 사실 언제라도 돌아올 수 있지.”
그 말대로.
이실리엔의 이름을 버린 건, 황위계승전에서 물러나겠다는 의지의 표명일 뿐.
아예 권리를 포기한 건 아니다.
그의 이름에 ‘바타체스’가 존재하는 한, 그것은 벗어날 수 없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니까.
“형. 만약에라도 류오넬 대장군이 이 판에 뛰어들었을 때를 생각해봐.”
“………….”
“그는 북부라는 지역을 온전히 장악했고, 제국의 모든 장군과 인연이 있어.”
당장 그가 황위계승전에 참여하면 우리 편을 들던 장군들도 죄다 중립으로 몸을 뺄걸? 슈펜이 덧붙인다.
“솔직히 말해, 황태자파도 우리도 류오넬 대장군을 상대로 승리를 장담할 수 없잖아?”
북부는 모든 것이 열악하다.
경제는 처참하고, 정치적으로 고립되어 있다.
하지만 그런 모든 것을 부차(副次)로 여기게 할 강점이 있었다.
—압도적인 무력.
지금은 조용하지만, 제국의 전성기에 이름 날렸던 명장들은 죄다 북부에 몰려있고, 북방군은 제국 중군(中軍)에 견줄 만한 정병으로 이름 높다.
“아마 케드릭 형이라면 백번 천번 공감할 거야.”
“하지만 북방군의 기본적으로 영원의 벽을 지원한다는 임무가 있다. 대장군이 사사로이 군을 움직인다면, 트리스탄이 결코 좌시하지 않을 터다.”
“………….”
“또한, 베디비어 역시 그를 용납하지 않겠지.”
황위계승전은 말 그대로, 황위에 가장 걸맞은 인물을 뽑기 위한 경쟁이다.
헌데 그 경쟁을 위해 제국을 위기에 빠뜨린다면 그야말로 언어도단.
쉽게 논파할 수 없는 정론에 슈펜이 항복하듯 고개를 내저었다.
“……형은 역시 쉽게 설득되질 않네.”
“내가 너인 줄 아냐. 다 철저하게 계산해서 낸 결론이다. 네 사사로운 감정은 접어둬.”
음, 딱 3분 지났네.
레기아는 다시 고개를 돌려 서류 업무에 집중한다.
그런데 슈펜은 방을 나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뭐냐. 할 말 끝났으면 이만 나가지 그러냐.”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이제는 듣는 척도 안 하는 거냐, 레기아는 한숨을 쉬며 서류를 바라본다.
슈펜이 뭐라 떠들든 그도 무시로 일관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 그의 펜대가 멈췄다.
“이번 황위계승전이 아닌, 그다음 계승전 때를.”
슈펜 이실리엔이 말한다.
“북방군에 아이언포지까지 가진 류리크 아스트레이…… 감당할 수 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