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possessed a villain with nothing but a death flag RAW novel - Chapter 165
사망 플래그밖에 없는 악역에 빙의했다 165화
165
—메리제인, 이게 얼마 만이야?
—대체 그동안 어디서 뭘 했던 거야.
—그냥 좀 바쁜 일이 있었어. 헤헤.
—보로스도 와줬구나!
—이렇게들 모이니, 옛날 생각나고 좋네.
—우리 꼭 힘내서, 아이언포지를 북부에 유치시키자고!
—오우! 모두 지점장 되는 그날을 위해!
하루 새, 작게나마 변화가 생겼다.
뒤늦게 소식을 접한 메이린의 옛 동료들이 몇몇 회의에 힘을 보태러 온 것이었다.
새로운 인원이 충원되면서 분위기는 썩 나쁘지 않았다.
다만,
“……해서, 상련은 6명의 대장인 표를 확보했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벌써 상당한 수를 모았네요. 우리 측은 어떻죠?”
“어, 음…… 그게 메이린 아가씨. 저희 측은 크롬바스를 포함해 2표……입니다.”
존 메이슨은 말하는 것조차 죄스러운 기분이었는지 메이린의 눈도 마주치지 못했다.
6:2.
누가 봐도 처참한 열세였다.
유감스러운 현황에 화기애애하던 회의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아, 앞으로 남은 날은 4일밖에 없는데…….”
“자료 조사도 아직 완벽하지 않은데 어떡하지?”
“맙소사, 그러면 대체 몇 명을 더 설득해야 하는 건데!”
그나마 메이린은 멘탈을 잡아가며 최대한 덤덤한 어투로 말한다.
“……갈 길이 머네요.”
나는 메이린에게서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핀다.
멘붕에 빠진 얼간이가 여섯.
이렇다 할 반응 없이 입만 꾹 다물고 있는 게 일곱.
그나마 눈빛이 살아있는 게 셋.
거기까지 관찰을 마친 나는 그들에게 나름 희망적인 소식을 전해주었다.
“아니, 6:2가 아니라 6:4다.”
“네? 류리크 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우리 측에 두 표 추가되었단 말이지.”
“에…… 예?”
존 메이슨이 어리둥절한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나는 별거 아니라는 듯, 태연하게 말한다.
“어제 대장인 둘을 설득해, 지지를 약속받았다.”
“에, 에에? 대체 어떻게…….”
“어떻게 하기는. 어제 자네들에게 했던 그 불충분한 말로 설득한 것이지.”
설마 내가 얘들한테 전부 맡기고 손가락만 빨고 있었을까.
당연, 나는 나대로 열심히 발품 팔면서 표를 모으고 있었다.
저들이 자료 조사하는 동안, 내가 실질적인 성과를 내버리자 몇몇이 자극받은 듯 얼굴을 붉혔다.
“류리크 씨, 정말 대단하네요!”
“방심은 금물이다. 메이린. 그리고 대충 승부를 점쳐 볼 만한 수준이 되었다 정도일 뿐, 여전히 우리가 열세라는 사실에는 변함없다.”
“그건 그렇죠. 하하.”
어쨌든 처참하던 스코어가 6:4까지 올라오니, 회의실의 분위기가 다시 의욕적으로 타올랐다.
다만 언제나 방심은 금물이었다.
달아오른 분위기를 적당히 달래며 나는 말을 이었다.
“어제 너희에게 말한 게 있을 터다. 설마, 누가 적이고 우군인지만을 조사해온 것은 아닐 테지.”
꿀꺽,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린다.
—류리크 씨와 처음 보는 거라 기죽어서 그런 거지. 충분히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거예요.
나는 어제 메이린의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바라며 말을 꺼냈다.
“대장인의 약점, 공략할 만한 지점, 혹은 우리가 가진 설득의 재료. 누구든 좋고, 무엇이든 좋으니 나와 말하라.”
“저…… 설득할 수 있는 건수는 아닙니다만, 대장인들이 북부를 기피하는 이유는 알아냈습니다.”
“그게 무엇인가.”
“춥고 너무 외진 지역에 있다는 점입니다. 추운 걸 좋아하는 사람은 별로 없죠.”
음. 그건 -10점짜리 대답인데.
“그게 끝인가?”
“어, 그러니까 그게…….”
“류리크 님. 아이언포지가 이전할 경우, 대부분의 장인은 가족과 함께 움직입니다. 다시 말해, 가족들의 주거환경을 고려한다는 거죠.”
존의 말이었다.
그나마 가점을 더 해 15점 정도 줄 수 있는 대답이었다.
“해결책은 있나.”
“그건…….”
나는 좌중을 살폈다.
그럴싸한 답을 들고 있는 녀석은 없어 보였다.
얘들을 사람 구실 하게 만들려면, 앞으로 갈 길이 먼 듯했다.
“일단 첫째. 장인들은 고열의 용광로 근처에서 일한다. 일터가 춥다는 것은 그리 결점이 되지 않는다.”
“새, 생각해 보니 그것도 그렇네요.”
“애당초 아이언포지를 새로 짓는 일이니, 내부에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설비만 잘 깔아도 해결될 일이기도 하고.”
일터가 외지다는 것도 문제가 아니다.
애당초 저들은 잠룡이 있던 호륜 산맥에서 일했다.
거긴 외진 정도가 아니라, 아예 도시에서 한창 떨어진 산맥 어딘가이다.
“둘째. 가족들의 주거환경은 저들 바라는 대로 들어주면 된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예를 들어 크롬바스는, 차후 벌어질 황위계승전 탓에 가족들의 안전을 걱정했다. 그렇다면 아이언 포지 근처에 높은 보안성을 지닌 저택을 새로 지으라고 하면 그만일 테지.”
어차피 북부의 땅은 헐값이고, 대장인들은 돈이 썩어 넘치니까. 나는 그리 덧붙였다.
“다른 이들은 어떻게 합니까? 예를 들어 자녀 교육을 걱정해, 제도에 있어야 한다는 이들은…….”
“호륜 산맥에는 워프게이트가 있었다. 대부분의 장인들은 그걸로 출퇴근을 했지. 그와 똑같이 해주면 되지 않겠나.”
복잡할수록 단순하게 생각하라는 말도 있지 않던가.
“화이트밴 남작령에 워프게이트를 지을 것이라고 해라. 그리고 아이언포지 소속의 장인들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고 하면 될 테지.”
“저, 정말로 워프게이트를 지으실 겁니까? 비용이 엄청날 텐데.”
그야 물론 알고 있다.
워프게이트의 이용요금이 괜히 비싼 게 아니다.
건설하는데 천문학적인 재원이 들어가는 시설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
따지고 보면 상련이 북부에 눈독을 들이지 않는 것도, 거금 들여 북부에 워프게이트를 지었더니 ‘징발’로 빼앗겼기 때문이기도 하고.
“당연히 지을 생각은 없다.”
“………예?”
“아, 물론 언젠가는 짓겠지. 여유자금이 생기면 말이야. 하지만 그게 지금은 아닐 터다.”
나는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원래 국회의원 공약은 공수표니까.
* * *
슈펜 이실리엔은 의외라는 눈으로 테이블의 사내를 바라본다.
“형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도와줄 줄은 몰랐는데.”
이미 자신의 머리보다 높게 쌓인 서류를 뒤적거리던 레기아는 슈펜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으며 중얼거리듯 말한다.
“형이 동생을 돕는 게 이상한 일이냐.”
“어제까지만 해도 질색했잖아. 류리크를 배신하는 건, 결코 좋지 않다나 뭐라나……”
슈펜의 투정과도 같은 말에 레기아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흘러나왔다.
“후우, 그렇게 경고했는데도 일을 저질렀잖냐. 어쨌거나 발을 들인 이상, 제대로 성과를 내야지.”
“이걸 해내면, 결국 내 공로일 텐데?”
계속되는 슈펜의 말에 질렸는지, 레기아는 서류를 아예 엎어놓고 시선을 올렸다.
스트레스와 피로로 찌든 그의 살벌한 눈빛이 슈펜의 얼굴로 향한다.
“일단 첫째. 여기서 아이언포지를 상련에 넘겨준다 한들, 그건 아버지에게 평가되지 않는다. 공로이고 뭐고 따질 게 없다는 거지.”
“응? 아니, 그건…….”
“말했잖아. 이건 성공해봐야, 미래의 류리크 아스트레이를 견제하는 일밖에 안 된다고.”
“………….”
레기아는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처럼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현재 류리크 아스트레이는 어떻지?”
“……아스트레이의 당주가 될 게 확실하고, 머리도 엄청 잘 굴러가고…….”
“우리의 시선이 아닌, 아버지의 시선에서 지금 현재의 류리크 아스트레이를 보란 말이다.”
황손(皇孫)이 아닌, 황자(皇子)의 시선.
이제 막 세력을 일구는 신진(新進)이 아니라, 이미 이 세상을 좌우하는 권귀(權貴)의 시선에서.
거기서 내려다보는 류리크 아스트레이는 어떠한가.
“녀석은 그냥 망나니 딱지만 간신히 뗀, 대학교 1학년생이다.”
“………….”
“결국에 현재의 놈은 북방군은커녕 아스트레이 가문조차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애송이다.”
“………….”
“거기에 놈이 만든다는 상회는? 상련은커녕, 마셰우스에도 비할 수 없는 동네 구멍가게 같은 수준이지.”
레베카나 레기아, 혹은 슈펜처럼.
류리크 아스트레이를 직접 겪어봤고, 먼 미래에 그를 상대하게 될 입장에서는 두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제국의 황태자가, 그리고 2황자가 정녕 류리크 아스트레이라는 이름을 두려워할까.
“아버지는 제국의 정상을 바라보고 계시다. 아버지께서 신경 쓰시는 것은 선제후와 대귀족들의 의중이지, 류리크 따위가 아니다.”
부디 그걸 잊지 마라, 레기아가 말을 마무리 지었다.
다만 슈펜의 얼굴은 여전히 깊은 의문을 품고 있었다.
“……그러면 형은 왜 날 도와주는 건데? 형 말대로면, 나는 그냥 헛짓거리만 하는 거잖아.”
다시 펜대를 쥐었던 레기아는 아예 내려놓으며 답했다.
“좋든 싫든 넌 아버지의 아들이고, 내 동생이다. 네 실패는 곧 아버지의 이름에 먹칠하는 것이고, 너와 함께 있는 내게도 패자(敗者)의 낙인을 찍는 일이지.”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해서 도와준다는 거네.”
“그래서 불만이냐.”
빙긋, 슈펜은 웃었다.
“아니, 오히려 말끔해진 기분이야. 오히려 동생 사랑이니, 형제의 우애 같은 소리를 했으면, 조금 역할 뻔했거든.”
그 미소에 레기아의 사납던 눈빛도 어느 정도 누그러졌다.
“우리도 언젠간 황위를 걸고 다투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아니야.”
“그래서 그 자식을 때려잡을 방법은 생각났어?”
“물론, 이미 준비해놨다.”
* * *
상대는 가만히 있는 허수아비가 아니다.
그들은 쉼 없이 대장인들을 회유하고, 설득하려 들 터였다.
내가 몸이 두 개가 아닌 이상, 저들을 상대로 네 명의 장인을 모두 설득해내긴 어려웠다.
또 실비아에게 이런 종류의 일을 바랄 수도 없었기에, 결국 이 시점에서 믿을 건 메이린과 그 동료들뿐이었다.
“마그멜의 경우, 워프게이트를 설치하겠다는 말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파나하는 예전부터 명예욕이 높은 장인이었습니다. 상련과 연관되면서 명예가 실추된 예술가, 혹은 장인들의 경우를 조사해봤습니다.
“대장인 보터는 좀처럼 만나주질 않아서 곤란했는데, 내일 딸의 연주회가 있다고 합니다.”
“부모에게 자식 칭찬만큼 잘 먹히는 것도 없죠! 딸에 대한 이야깃거리를 조사하겠습니다!”
의외로.
정말 의외로 애들은 머리가 나름 돌아갔다.
그래도 나름 상인NPC라는 것인지, 저마다 나름 괜찮은 생각들을 내보였다.
또 개중에는,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도 있을 정도였다.
“마그멜, 파나하에게는 우리 쪽으로 확정할 만한 단서를 찾고…… 연주회는 오늘 저녁에 있습니다. 보터를 만날 기회는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습니다.”
“시간이 없네. 내가 빨리 알아볼게!”
“어쩌면 상련에 이미 넘어간 장인들도 설득할 수 있을지 모르니, 그쪽도 챙기긴 해야 할 거야.”
회의는 순조로웠다.
아직 추가로 설득된 대장인은 없었다만, 이미 3명에게 접촉했고 긍정적인 반응을 끌어냈다.
그런데,
—벌컥!
노크 한번 없이 회의실의 문이 열렸다.
다만 그를 나무랄 수도 없었다.
들어온 이의 얼굴은 아주 사색이 되어있었으니까.
“크, 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이야? 존! 밖에 누가 쳐들어오기라도 했어?!”
“설마 아이율라 가문에서 사람 보낸 거 아냐?”
“으악! 나 당주님께 퇴사한다고 말 안 하고 도망쳤었는데!”
직원들의 화제가 아이율라로 불거지자, 존은 빽 소리쳤다.
“그런 거 아니야, 이 바보들아! 이걸 보라고!”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신문을 펼쳐 보였다.
“방금 받아온 조간신문인데…….”
—어디에 유치될지 의문이었던 아이언포지의 향방, 드디어 결정되나!
“아직 의사표시를 안 했던 3명의 대장인 모두, 상련에 지지를 보내겠다고 밝혔단 말이야!”
4:9.
이미 과반을 넘겨버린 스코어가 우리 눈앞에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