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possessed a villain with nothing but a death flag RAW novel - Chapter 168
사망 플래그밖에 없는 악역에 빙의했다 168화
168
레기아는 자신의 말을 지켰다.
결국, 대장인들의 표결에서 북부가 9표를 차지하면서 아이언포지는 북부 화이트밴 남작령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이…… 이……! 빌어먹을빌어먹을빌어먹을빌어먹을빌어먹을빌어먹으으으으을……!!
로하나의 멘탈이 붕괴하면서 한바탕 날뛰는 걸 끝으로, 이야기는 막을 내렸다.
나는 메이린과 실비아에게 일주일의 휴가를 주었다. 메이린의 심리 상태를 염려해서였다.
내게는 괜찮다며 태연한 척했지만, 어찌 동료에게 배신당한 마음이 온전할 수 있을까.
실비아는 그녀의 말벗을 겸에 옆에 붙였고.
혼자가 된 나는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소저택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의(?) 귀향이었다.
“다녀오셨습니까. 류리크 님.”
“며칠 사이, 신수가 훤해졌군. 리아.”
마치 닷새 동안 아내가 친정 갔을 때, 남편의 표정이 저러할까.
여전히 무표정 디폴트인 가운데서도 은은한 미소가 느껴졌다.
“소인의 객관적인 판단에 따르면 메이린 양과 함께 류리크 님도 일주일 정도 휴가를 보내시면 이후 효율적인 업무가 가능할 것이라 사료되옵니다만.”
“그리 오래 쉴 수는 없겠다만…… 오늘은 낮잠이라도 자야겠어. 요 며칠 수면이 부족해서 말이지.”
건강관리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무리했다면, 그 이후에 충분히 쉬고 회복해야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는 법이니까.
“휴가면 모를까, 낮잠이라면 조금 미루셔야 할 듯싶습니다.”
“응? 더 할 말이라도 있는가.”
“손님이 와계십니다.”
……손님?
설마 아이언포지 건이 끝나자마자, 또 다른 사건이 시작되는 건가.
나는 밀려드는 피로감을 억누르며 리아의 뒤를 따른다.
옷을 갈아입지도 않고, 곧장 접객실에 들어서자니 거기엔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누구인가 했더니, 너였나. 오필리아.”
짜게 식은 얼굴로 바라보자니, 그녀는 손을 번쩍 들며 기묘한 인사말을 던진다.
“욧호! 류리크! 이틀만인가.”
“그 기묘한 인사말과 반말은 둘째치고…… 왜 계속 변장을 하고 있는 거지?”
“왜긴 왜겠어? 내가 바로 이번 사건의 최고 공로자, 메리제인이라는 걸 어필하기 위해서지!”
“………….”
메리제인.
메이린의 옛 동료이자, 내가 했던 발언을 유출하면서 우리를 위기로 몰아넣었던 배신자.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류리크 님.
평민 출신 상인이라는 타이틀과 어울리지 않게 귀족적인 인사를 끝으로 사라졌던 녀석.
그녀의 정체는 사실 오필리아였다.
이전에 라렌시아로 위장했던 것처럼, 메리제인으로서 또 한 번 활약했던 것이다.
“그 모습으로 돌아다니다가 2황자파에 걸리기라도 하면 곤욕을 치를 터이다만.”
“설마 내가 꼬리라도 잡혔을까 봐?”
“그런 건 아니다만…….”
오필리아는 아무렇지 않게 가발을 벗으며 말한다.
“걱정 마. 너 좀 놀려주려고, 여기서 변장한 거니까. 녀석들은 아무것도 찾을 수 없어.”
“………….”
“네 정보가 맞다면, 애당초 메리제인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잖아?”
그 말대로.
메리제인은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다.
진짜 본인은 2년 전, 앓고 있던 지병으로 사망했으니까.
‘2황자파에서 진심으로 그 이름을 좇은들, 아무것도 나오지 않을 테지.’
이것이 레기아에게 말하지 않았던 영업 비밀이었다.
“처음에 정보 흘렸을 때는 쟤들도 반신반의했거든? 그런데 그게 먹혀서 9:4로 이기니까 그때부터 슬슬 믿는 눈치더라고.”
“………….”
“거기에 딱 너가 ‘워프게이트 안 만들 거다!’ 녹취까지 흘려주니까, 완벽히 자기들 편이라고 생각한 거지!”
—배신자는 결국 또 한 번 배신한다.
레기아도 그것을 모르진 않았을 테지만, 막대한 공로를 세운 메리제인을 박대할 수는 없었을 터.
결국, 메리제인은 철옹성 같은 2황자파의 틈바구니에서 꽤나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을 테고, 그렇게 해서 레기아-슈펜의 녹취를 얻어낸 것이다.
“생각할수록 넌 머리가 좋은데, 그만큼이나 나쁜 새끼인 거 같아.”
“………….”
“결국은 나를 첩자로 심어놓는 게 네 진짜 목적이었는데. 그것도 모르고 다들 열심히 자료 조사하고 회의하고…….”
“거기까지 하지.”
그 점은 나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메이린에게는 ‘아니’라고 했지만, 이게 진실이었다.
그녀가 느꼈을 배신감은 내가 만든 것이고, 그녀와 동료들의 노력은 모두 오필리아를 잠입시키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솔직히 말해, 메이린과 그 동료들의 능력으로 레기아에게 맞선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소리니까.’
나는 혹여나 오필리아가 말실수라도 할까, 함구를 당부한다.
“이전에도 말했지만, 이 일은 너와 나만의 비밀이다. 바라건대, 입을 가볍게 놀리지 마라.”
흐응, 오필리아는 콧소리를 내며 묘한 눈길로 이쪽을 바라본다.
“알았어. 그냥 기분 좋아서 자랑삼아 한번 말해본 거니까, 이번만 넘어가 줘~.”
“……그래서 용건은 그게 끝인가.”
“아니! 다음 일은 언제인가 싶어서!”
뭐지, 이 텐션은.
이유는 모르겠지만, 명절에 사촌 동생과 놀아주는 기분이 들었다.
“다음 일정은 없다. 당분간은…… 적어도 내일까진 푹 쉴 생각이고 말이지.”
“에엑, 재미없게.”
“너도 집으로 돌아가라.”
“그치만 집에 있어 봐야, 딱히 할 것도 없고 지루해 죽을 거 같단 말이야!”
“………….”
“그런데 다른 누군가로 변장해서 뭔가 비밀스러운 임무를 하고 있으면…… 뭔가 매 순간 진짜로 살아있는 기분이 든단 말이지?!”
요컨대 천직(天職)이라는 건가.
본래에는 주인공의 동료를 죽이고, ‘처리’당했어야 할 악역이거늘.
본인의 재능에 더불어, 거기서 자기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낀다면…… 이건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다만.
“떼 써봐야 네가 할 일은 없다. 정 심심하다면 자스민과 같이 놀기라도 하지 그러나. 어차피 녀석도 방학일 텐데.”
“아, 진짜. 걔 얘기는 꺼내지도 마.”
“…………?”
뭐지, 이 반응은?
저번에 둘이 화해하고 좋게좋게 끝났던 걸로 기억하는데.
“자스민 그 자식은, 그 뭐야. 레베카? 그 여자가 옆에 없으니까, 무슨 상사병 앓는 개새끼마냥 낑낑대는데…… 어휴, 진짜 적당히 꼴불견이어야지.”
“………….”
자스민 올벤왈도는 완벽하게 레베카 쪽의 인간이 되었다, 씁쓸한 정보를 하나 알아버렸군.
“여하간 여기서 네가 할 일은 없다. 그만 집에 돌아가도록.”
“싫어엇! 저택은 너무너무 재미없단 말이야! 하다못해 여기 있게 해주든가!”
“말이 되는 소리라고 생각하나. 시끄럽고 어서…….”
“니가 필요할 때만 부려 먹는 거라면, 나도 내 맘대로 할 거다?! 꼴리면 의뢰받고, 귀찮으면 무시하고?!”
“………….”
하아. 진짜 이래서 애새끼들은.
이번에 오필리아의 효용을 깨달은 참이기에 차마 저 말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노르먼 당주에게 허락은 받았나.”
“응! 너네 집에 놀러 간다니까, 흔쾌히 허락하던데?”
이봐요, 아저씨. 자신의 귀한 딸이 외간 남자 집에 놀러 간다는데 왜 흔쾌히 허락하는 겁니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만, 쉬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던 나는 손을 휘휘 내저으며 말한다.
“……그래. 당분간은 여기서 지내도 좋다. 단, 지켜야 할 게 하나 있다.”
“그게 뭔데?”
“그놈의 ‘너’라는 호칭은 그만두도록.”
오필리아는 해맑게 웃었다.
“응! 알았어, 선배!”
* * *
레기아 이실리엔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덕분에 제국 중부에서 북부로 이어지는 도로를 우리가 건설하게 되었어. 손해가 이만저만 아니지.”
“형, 미안.”
슈펜은 고개를 숙였다.
그를 보며 레기아는 차마 쓴소리를 이을 수 없었다.
“………….”
다만, 시험할 것이 남아있긴 했다.
그가 이번 일로 제정신을 차렸는지. 아니면, 겉으로만 미안해할 뿐 여전히 천지 분간 못 하는 머저리일지.
레기아는 의도적으로 슈펜의 역린을 건드렸다.
“내게 미안할 게 아니라, 류리크에게 감사해라.”
“………….”
“만일 그 녹취가 일반 대중에게 퍼졌다면…… 정말,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을 테니까.”
평소의 슈펜이었다면 아주 길길이 날뛰면서 목에 핏대를 세웠을 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는 흥분한 기색 없이 꽤나 차분한 목소리로 답한다.
“그게 감사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 굳이 감사할 게 있다면, 좀 다른 쪽으로 감사해야지.”
“무슨 말이냐.”
“덕분에 깨달았어. 녀석을 상대할 땐, 지독하리만치 철저해야 한다는 걸.”
슈펜은 자신이 깨달은 것을 풀어내듯, 천천히 말을 이어간다.
“애초부터 그건 류리크가 설계한 판이었어. 거기에 뒤늦게 뛰어드는 건데, 준비가 너무 부족했지.”
“………….”
“트리스탄만 봐도 그래. 그 양반은, 크롬바스처럼 정치에는 질색하는 타입이잖아.”
“………….”
“그런 인간이 노골적으로 북부 손을 들어줄 정도면…… 이미 예전부터 그쪽으로도 이미 손을 써놨다는 거 아니겠어?”
레기아는 굳어있던 표정을 풀었다.
“……네가 그런 소리 하는 걸 보니, 그나마 제정신을 차린 모양이네.”
형의 말에 슈펜은 조금 늦은 회한을 곱씹듯 입술을 뗀다.
“다시 한번 형한테는 미안하게 생각해. 꽤 비싼 수업료를 내게 생겼으니까.”
“미안해할 거 없다. 도로 건설 비용은 네 돈에서 빼갈 테니까.”
“윽.”
장난스레 앓는 소리를 내는 슈펜을 보며 레기아는 말한다.
“잊지 마라. 우리는 사자가 아니다. 설령 사자와 같은 힘을 지녔다 한들, 눈앞에 있는 사냥감을 보고 덥석 덤벼들어선 안 된다.”
“………….”
“우리는 영리한 사냥꾼처럼 움직여야 한다. 사냥감이 깨닫지 못하는 사각(死角)에서 화살을 날리고, 들켰을 땐 몰이를 하고 함정으로 유도하며 똑똑하게 굴어야 한다는 것이지.”
“응. 그 말, 절대 잊지 않을게.”
레기아는 생각한다.
이건 어쩌면 괜찮은 교환이었을지도 모른다고.
근래 류리크에 대한 일이라면 제정신을 못 차리던 슈펜이었다.
헌데 이번 일로 냉수 한번 뒤집어쓴 것처럼 침착해졌으니.
‘먼 훗날 크게 데였다면 곤란했겠지만…… 지금 이렇게 된 것은, 다행일 수도 있겠어.’
물론 수업료는 꽤 비쌌지만.
* * *
상련에 소속된 3엽 멤버, 모르셴코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게, 시방. 무슨 말이야? 왜 갑자기 거래처가 죄다 증발해버린 건데?”
성난 그의 얼굴에서 콧김이 뿜어지며 콧수염이 격하게 씰룩인다.
맞은편에 있던 부하직원은 치밀어오르는 웃음과 사회생활 사이에서 고통받으며 겨우겨우 대답한다.
“그, 그게…… 얼마 전에, 제도에서 폭탄 테러가 있었잖습니까.”
스텔라 루메논 호텔 테러 사건.
가르시아 공화국의 반동분자들이 제국을 향해 이빨을 들이밀었던 전대미문의 일이었다.
그 일 자체는 대중의 기억 뒤편으로 사라져가고 있지만, 거기서 비롯된 여파는 한 발자국 늦게 현실을 때리고 있었다.
“아, 아무래도 그것 때문에 일이 복잡해진 거 같습니다.”
“왜? 왜 하필 이제 와서?!”
“요번에 군에서 지침이 내려온 걸로…… 확인되었습니다.”
“군에서? 군인들이?”
아시다시피 걔네는 좀 반응이 늦지 않습니까, 부하가 덧붙인다.
모르셴코는 잔뜩 얼굴을 찌푸린 채 말한다.
“그거 어떻게 못 뒤집어? 위에 돈을 찔러주든 해서라도…….”
“공문 확인해 보니까, 서명에 레펠리오스의 직인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시방. 엿같이 굴러가네.”
제도방위군 사령관의 명령서다.
거기에 반하는 건 문자 그대로 목을 맨다는 것이나 진배없는 소리다.
“시방. 어떡하지? 이대로면…….”
“내친김에 이번에야말로 사업의 다각화를 노려보는 건 어떻습니까?”
“야 이 멍청한 종자야! 그게 가능했으면, 내가 이딴 짓을 하고 있었겠니?!”
속으로 천불이 끓는지 모르셴코의 콧수염이 격하게 떨렸다.
부하직원의 얼굴 역시 웃음을 참느라 시뻘겋게 물들었다.
“이미 제국에서 돈 나올 구멍은 죄다 상련에서 나눠 먹고 있는 판인데, 새로운 사업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기라도 하냐?! 앙?!”
“사, 상련의 다른 연합원들한테 도움을 받는다든가…….”
빠각!
참지 못한 모르셴코의 신발이 부하직원의 머리에 직격했다.
“이 뇌수 빠진 종자야! 우리는 사실상 서로 사업을 건드리지 않기로 합의한 게 전부야! 여기서 자기 사업체 잃으면, 그냥 도태되면서 끝장나는 거라고!”
거기서 이어질 미래가 눈앞에 선명한지 모르셴코가 으득, 이를 갈았다.
“오히려 내가 앓는 소리 내면 하이에나처럼 몰려들 놈들이야.”
“………….”
“내가 가진 모든 걸 빼앗으려고 눈에 불을 켜겠지.”
웃음을 잃어버린 부하직원은 머리에 난 혹을 만지작거리며 말한다.
“그러고 보니 요번에 북부가 아이언포지를 유치하지 않았습니까. 그걸 바탕으로 꽤 유망하게 성장할 거 같던데…… 그쪽과 접촉해보는 건 어떻습니까?”
“그건 지금 내부에서 한창 논의 중이야. 놈들이랑 거래를 틀지 아니면, 어떻게든 고사시킬지…… 음?”
그리고 모르셴코의 머리가 번뜩였다.
“잠깐만. 북부가…… 상업에 뛰어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