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possessed a villain with nothing but a death flag RAW novel - Chapter 178
사망 플래그밖에 없는 악역에 빙의했다 178화
178
—뭐어? 내 채무자 중에 수호기사 없냐고?
—제정신으로 하는 소리야? 모르셴코?
—차라리 돈 빌린 드래곤은 없냐고 물어보지 그래?
—근데 수호기사는 왜?
아세라리온에서는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도리어 괜히 예네프의 의심병만 건드렸을 뿐.
—됐어. 아무것도 아냐.
모르셴코는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아세라리온의 저택을 나섰다.
‘이런 빌어먹을……!’
이미 자신의 밀수꾼 중 일부가 잡혔다.
그뿐만이 아니라, 이곳 아세라리온에 들리는 동안에도 실시간으로 더 붙잡히고 있었다.
당장에라도 밀수꾼들에게 몸을 숨기라고 경고하고 싶었다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꼬리’에 불과한 그들에게 마기스토그램이 주어진 것도 아니고, 정확히 어디 있는지도 모르니 전서구를 보낼 수도 없으니까.
“시방…… 어쩌다가 이런 일이…….”
모르셴코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아세라리온 앞에 대기 중이던 차량에 오른다.
“일단은 집으로 돌아가자.”
“예, 알겠습니다.”
그렇게 차량이 움직이자, 조수석 쪽에 있던 그레이머가 말을 건넨다.
“주인어른. 말씀하신 것 확인해봤습니다.”
그나마 믿을 만한 건 그레이머밖에 없군, 모르셴코는 피곤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상황은 어떻디?”
“지금까지 70명의 심부름꾼이 연락 두절 되었습니다.”
—꾸욱.
절로 주먹이 쥐어지는 숫자였다.
70명.
그 정도면 사실상 북부의 밀수 루트는 궤멸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빌어먹을, 한둘이면 모를까 70명이 한꺼번에 사라지면 사람 메꾸는 것도 일인데…….’
빠득, 이를 갈자니 그레이머가 말을 잇는다.
“밀수꾼들이 붙잡힌 것도 문제지만, 잃어버린 보석도 있습니다. 그걸 팔아야 다른 사업에도 자금을 융통할 수 있을 텐데…….”
그것도 그렇다.
물건을 팔아야 돈이 들어오고, 그래야 그 돈으로 다른 물건을 사서 파는 게 상업의 기본인데. 지금 갑자기 대량의 보석이 증발해버린 것이었다.
“일단 대부분 거래처는 어음으로 처리하긴 했는데, 다음부턴 얄짤 없을 거라고 합니다.”
“이런 씨발!”
—쾅!
분노의 발길질이 괜한 운전석 뒤편을 때린다.
깜짝 놀란 운전사가 핸들을 비틀며 차량도 잠시 흔들렸다.
다만 그럼에도 모르셴코의 분노의 발길질은 멈추지 않았다.
—쾅! 쾅! 쾅!
“대체! 왜!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건데!”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걸까.
모르셴코는 푸르르, 떨리는 콧수염을 쓸며 말한다.
“빌어먹을 수호기사! 그놈…… 그 자식…… 어떻게 묻어버릴 순 없어?!”
“………….”
그레이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제아무리 처형자라 불리는 그라고 한들, 별도리가 있을까. 상대는 제국 내에서도 최고의 실력자들만 선별하는 기사단의 일원인데.
설령 그 정체를 알아낸다 해도, 감히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돈 문제는 은행에 빌리든 아세라리온에게 빌리든 하면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어. 하지만 빌어먹을 밀수로 처벌받게 된다면……!”
그 뒤는 상상조차 싫었다.
이건 돈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익이나 손해의 문제가 아니라 목숨의 문제였다.
—밀수는 극형으로 다스린다.
지금까지는 그 리스크를 심부름꾼들만 감당했었다.
뇌물 먹였던 경비원들이 배신해도, 갑자기 치안국에서 수사를 시작해도. 당하는 건 늘 꼬리에 존재하는 심부름꾼들뿐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만약 수호기사가 집요하게 수사해 꼬리에 붙은 불길이 자신의 심장까지 타고 올라온다면…….
“악! 악! 아악! 으아아아아악! 씨바아아알!”
* * *
이대로면 밀수라는 죄목으로 즉결 처형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니 일단 준남작 지위라도 사서 재판까지는 끌고 가보자.
모르셴코는 진지하게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의외의 곳에서 정말 의외의 소식이 들려왔다.
“수호기사에게 연락이 닿기는 했네.”
“역시 그렇…… 예?”
류리크 아스트레이.
입 싹 닫고 모른 척하리라 생각했던 그 황족이 갑자기 굵은 동아줄을 던져준 것이었다.
“아, 아니. 예? 수호기사는…… 정체가 숨겨져 있는 존재 아닙니까?”
정말 기쁜 소식이었지만, 쉽게 믿을 순 없었다.
제국 너머 전 대륙에 채무자가 있는 아세라리온도 연줄이 없는데, 어찌 아직 황손에게 불과한 그가 수호기사와 연락이 닿는단 말인가.
모르셴코는 짙은 의심을 품으며 물었고, 류리크는 심각한 표정으로 답한다.
“역시 그렇지. 사실 본인도 의심하고 있다네.”
“……예?”
아니, 잠깐만.
당신이 연락이 닿았다고 말해놓고서 의심하는 건 또 무슨 소리야?
모르셴코는 목구멍까지 치밀은 말을 간신히 억누르며 언어를 순화한다.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본인이 직접 아는 인물이 아닐세. 어떻게 연줄을 타고 타서 닿은 것인데…… 솔직히 말해 확실친 않다는 말이지.”
“그렇다면…….”
“거짓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지.”
“………….”
모르셴코는 생각한다.
‘나름 솔직하게 말하는 걸 보니, 나를 속여먹으려는 것은 아닌 듯한데…….’
“류리크 님. 제가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다행인지 아닌지, 저쪽에서 먼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네.”
“그 말씀은…….”
“밀수꾼 한 명당 1만 리브라의 몸값을 달라고 했다더군.”
1명에 1만 리브라.
적은 금액은 아니다. 하지만 그 정도라면 충분히 지불할 수 있다.
“모르셴코. 일단 본인은 사기일 가능성이 꽤 크다고 생각하네.”
“그렇……습니까?”
“상대의 신원도 확실치 않을뿐더러, 황실을 위해 일한다는 수호기사가 먼저 이런 청탁을 요구한다는 게 믿기지 않거든.”
모르셴코도 딱 똑같은 부분을 의심하고 있었다.
그 정체불명의 집단이라는 수호기사와 생각보다 쉽게(?) 접촉했고, 부패한 관리처럼 뇌물을 먼저 요구하고 나섰으니까.
“일단 이쪽은 마지막 수단이라 생각하고, 아세라리온에서는 무언가 소득이 없었나? 혹은 자네의 개인적인 정보망으로라도…….”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허면…… 으음. 곤란하게 되었군.”
참 어려운 부분이었다.
류리크조차도 믿지 못하는 의문의 수호기사.
거짓일 가능성이 적지 않은데, 그밖에 선택지가 거의 없으니까.
이를 어찌할까 고민하던 중 류리크가 말한다.
“모르셴코. 혹시 이런 방법을 써보면 어떻겠나?”
“경청하겠습니다.”
“일단은 당장 돈이 없어 10만 리브라만 보낸다고 하는 걸세. 그렇게 10만 리브라로, 10명의 밀수꾼을 풀어준다면, 그는 진실로 수호기사인 것일 테지.”
응? 좋은 방법이긴 한데…… 그래도 되는 건가?
모르셴코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하지만 저쪽에서 70만 리브라를 한 번에 내라고 고집하면 어찌합니까.”
“그렇다면 고려할 필요도 없네. 놈은 필시 사기꾼일 테니까.”
“그런…… 겁니까?”
“정녕 그가 거래를 원한다면, 최대한 성사되는 방향으로 행동할 것이다. 헌데 무조건 70만 리브라를 고집한다면…… 애초에 이 거래를 할 생각이 없다는 것일 테지.”
생각해보니 그렇다.
저쪽이 우위를 점하고 있긴 하다만, 돈을 먹으려면 어쨌거나 이쪽과 협상을 해야 할 테니까.
‘정말 뒷돈 받아먹을 생각이라면, 신뢰의 증거로 10명 정도는 먼저 풀어주겠지.’
모르셴코는 일말의 희망을 담아 류리크를 바라본다.
“그러면…….”
“일단 10만 리브라만 준비해보게.”
* * *
“모르셴코 님. 저는 여전히 류리크가 의심됩니다.”
자초지종을 들은 그레이머는 굳은 얼굴로 말했다. 하지만 모르셴코는 고개를 내저으며 그를 부정했다.
“그레이머. 그가 날 배신할 이유가 없다.”
“그렇긴 합니다만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이상할 것도 없다.”
일단 류리크의 말대로 수호기사가 가문으로 돌아와 그들의 이익을 위해 일한다는 게 말이 되질 않는다.
“그리고…… 너도 그 자리에 있었다면 알 거다.”
“………….”
“그건 속이려는 인간의 화법이 아니었다.”
류리크는 짐짓 발을 빼는 듯하면서도, 나름 그를 진심으로 걱정했다.
아무렴 어떤 의미로는 같이 일하는 파트너가 된 셈이었으니까.
‘배신의 명분도 없고, 그는 정말 내 입장에서 고민하고 또 도움을 주었다.’
그러니 류리크는 틀림없이 결백하다.
“10만 리브라를 준비해라.”
“주인어른…….”
“어차피 큰돈도 아니다.”
“다른 밀수꾼들도 해방하려면 70만 리브라 아닙니까. 당장 보석들을 잃어버린 마당에 결코 적은 돈이 아닙니다.”
평소에는 말 잘 듣던 놈이 왜 이래?
모르셴코는 그레이머를 짧게 흘기며 말한다.
“이번 일을 그르치면 귀족 작위도 사야 하고, 법관도 매수해야 한다. 그에 비하자면 그야말로 푼돈이지.”
“……예, 알겠습니다. 주인어른.”
* * *
—사, 살았다!
—꼼짝없이 죽는 줄 알았는데, 왜 갑자기 풀어준 거지?
—일단 도망치자고! 혹시 마음 바뀔지 어떻게 알아!
풀려난 10명의 밀수꾼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부리나케 도망쳤다.
한참 떨어진 곳에서 그를 보고 있던 류네온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동생아. 나는 이게…… 맞는 건지 모르겠다. 죄인을 저리 그냥 놓아주다니.”
그의 양심이 꽤나 흔들리는 모양이다.
이번에 10명 풀어주는 거 설득한다고, 2시간을 들였는데. 그 약발은 10분도 가질 않는다니.
정말 통탄할 노릇이었다.
“형제여. 잘 생각해보게. 저 밀수꾼들 몇 잡아 처형한다고 무언가 달라지겠나.”
“………….”
“우리가 노려야 할 건, 저 뒤에서 밀수꾼들을 사주하는 거대한 흑막이라네.”
나는 몇 번이고 반복하며 했던 얘기를 또 꺼냈다.
—소악(小惡)보다 거악(巨惡)을 단죄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 것이라고.
하지만 류네온은 몇 번이고 반복하며 했던 대답을 또 내놓는다.
“동생아. 죄인이라는 사실 앞에 죄의 크고 작음은 상관이 없단다. 그리고 죄인은 반드시 그에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하지.”
“………….”
“그 흑막이라는 자도 말이다. 수사하면 잡아낼 수 있을 듯한데…….”
아아, 돌아버리겠다.
2시간에 걸쳐 설득했던 것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있다.
얼굴도 잘생기고 마음씨도 착한 절대선의 NPC라는 건 알겠는데.
이건 뭐 거의 벽보고 대화하는 수준이라고!
결국, 나는 지원군을 부르기로 했다.
—류미엘.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자 서류를 살펴보고 있던 류미엘이 얼굴을 찡그린다.
—뭐냐.
—도와라.
—내가 미쳤냐?
하아. 진짜…… 그 착하던 애가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이번 일만 잘되면, 네게 졌던 빚을 모두 갚겠다. 일시불로.
—필요 없다. 어차피 안 갚으면 죽여버릴 생각이었으니까.
—이자도 지불하지.
—……원금에 얹어서 500만 리브라.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그건 원금의 두 배도 넘는 돈이다!
—네 멋대로 저택을 담보 삼아 빌린 돈이 3,000만 리브라다! 이 멍청아!
—100만 리브라. 이게 내 최선이다.
—그래. 나는 최선을 다해 거절하지. 류네온 오빠 설득하는 건, 너 혼자서 해라.
어쭈.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괜찮겠나? 이번 일이 틀어지면, 빌렸던 300만을 갚을 길이 요원해질 텐데.
—이 쓰레기 자식이……!
—200만 리브라. 내 미안함을 담아 이자까지 쳐서 500만 리브라로 갚겠다.
—빌어먹을 자식. 길 가다 벼락이나 맞아라.
살벌한 저주(?)를 내린 류미엘은 서류를 책상 위에 덮어두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류네온 오빠~!”
생각해보면 설정상으로도 류네온은 착해빠져서 류미엘이 애교 부리면 무슨 부탁이든 들어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