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possessed a villain with nothing but a death flag RAW novel - Chapter 188
사망 플래그밖에 없는 악역에 빙의했다 188화
188
류오넬의 오두막에서 벗어난 뒤, 나는 퀵키 서비스를 한 명 더 요청해 오필리아를 할카데르로 보냈다.
그리고 나는 신시아와 함께 바르칸 분쟁지역에 도착했다.
“……일단 오라고 해서 왔는데, 너 제정신?”
“내 두뇌는 지극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네, 신시아.”
“다시 생각해봐도 제정신 아닌 거 같은데. 여기는 온갖 부랑자랑 정신 나간 망국의 미치광이들이 모여있는 곳이잖아!”
바르칸 분쟁지역.
현재는 지역 전체가 제국령이지만, 과거에는 다른 왕국들이 서로를 노려보던 국경이었다.
그에 따라 잔존한 왕국의 기사단이나 나라를 잃은 백성들이 얽히고설켜 사실상의 무법지대가 형성되었다.
물론 이 지역을 봉토로 하사받은 영주는 있지만, 사실상 방치하며 가끔 세금징수관만 보낼 뿐. 아무런 관리도 하지 않는다.
“참고로 퀵키는 호위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거 참 아쉽군.”
“내가 전이 마법만 써서 합법 마녀인 거지, 사람 죽이고 그러면 곧장 이단심문관들한테 쫓긴다고!”
그거야 뭐,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다.
“호위 서비스는 없지만, 여전히 전이는 가능하지 않나.”
“…………?”
“미치광이들이 오면 전이 마법으로 도망치는 것은 할 수 있을 테지.”
내가 바라는 건 그 정도다.
“뭐, 그거라면 가능은 한데…… 언제까지 도망치려고?”
“일단은 사람을 찾을 때까지.”
메이린에게 요루아를 데리고 도망치라고 했던 장소가 여기다.
여기라면 어느 정도 제국의 눈을 피할 수 있을 테니까.
“이런 곳에서는 위험수당이 붙는다.”
“그런 조항이 없는 건 알고 있다만, 뭐 흔쾌히 지불하도록 하지. 기왕 말 나온 김에 계약서에 추가하면 어떻겠나.”
“어? 어엉? 그렇게까지 해준다면야…… 나야 좋지!”
나는 신시아와 나눴던 계약서에 추가조항을 작성했다.
“다만 위험수당까지 주는 만큼, 도중에 본인을 내팽개치고 도망치는 일은 없어야 하네.”
“그거야 물론이지!”
“이 역시 계약서에 서면으로 기재하고자 하는데, 괜찮겠나?”
“응! 상관없지!”
돈 더 받는다는 것에 신시아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진 않았다.
본격적으로 분쟁지역에 발을 들이니, 여기저기 부랑자들이 보였다.
걸레짝이나 다름없는 갑옷에, 반쯤 부서진 투구를 손에 덜렁덜렁 들고 있는 기사. 부러진 군기(軍旗)를 지팡이 삼아 걸어 다니는 노인.
다들 퀘퀘한 눈으로 이쪽을 노려본다.
사실 그리 위협적인 놈은 없을 터다만, 신시아는 괜히 긴장되는지 살짝 굳은 표정으로 내 옷자락을 붙잡았다.
“근데 이 넓은 분쟁지역에서 사람은 어떻게 찾는데?”
“구체적으로 만나기로 한 장소가 있다. 아마 거기 가면 찾을 수 있을 테지.”
“누군진 몰라도 그쪽도 괜찮은 거 맞아? 여기가 좀 위험한 곳이어야지…….”
“괜찮을 거다. 녀석들도 나름 실력자니까.”
애초부터 실비아는 현역으로 뛰어도 될 용병 마법사 수준을 갖춘 상태였고, 지금은 더 진일보했다. 그 실력은 의심할 여지 없다.
거기에 요루아도 그레이머를 단독으로 때려잡은(?) 사례가 있으니, 여기서 그들에게 위험할 일은 없을 터.
“그나저나 신시아, 자네 일정은 문제없겠지?”
“어? 그야 뭐, 고객님 원하는 대로 비워두긴 했지. 물론 이거 마치고 돌아가는 대로 몇 탕 더 뛰어야겠지만.”
“그거라면 걱정 말게. 앞으로 며칠은 계속 나와 함께 있어야 할 테니까.”
“…………?”
신시아의 고개가 비스듬하게 기울었다.
“물론 요금은 제대로 지불할 테니 그런 눈으로 보지 않아도 된다네.”
“아니, 잠깐만. 며칠?”
“무슨 문제라도 있나.”
“이, 이거 뭔가 위험한 냄새가 나는데?!”
신시아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마녀이면서도 ‘합법’ 딱지를 달고 조심스럽게 사업을 하는 그녀이다 보니, 이런 것엔 민감할 수밖에.
“그냥 한번 어디에 데려다주는 게 아니라, 뭔가 수상쩍은 계획에 휘말린 거 아냐?!”
“그걸 이제 알았나?”
“야 이 나쁜 자식아아아!”
신시아가 퍽퍽, 내 정강이를 걷어찼다.
체구는 작은 주제에 꽤나 매서운 발길질이었다.
“너 이 자식! 대체 뭘 꾸미는 거야?!”
“그건 차차 설명할 테니, 일단은 계속 움직이도록 하지.”
“아, 아니! 잠깐! 나는 빠지겠어! 여기서 빠지겠다고! 이런 위험한 음모는 사양이야!”
참으로 귀여운 반항이다.
어떻게 연배는 샤르미넨이랑 비슷하면서, 하는 짓은 애 같은지.
“신시아, 방금 계약서에 추가했던 사항을 기억하게나.”
“어, 어응?”
“위험수당을 지불하는 대신, 자네는 본인을 내팽개치지 않기로 약조하지 않았나.”
“어, 어어…… 어어어어?!”
“계약 위반은 좋지 않지. 위약금도 물어야 하고, 자네 평판도 떨어질 테고, 자칫하면 소송까지도…….”
말끝을 흐리며, 슬쩍 신시아의 눈치를 살피자니.
“이 나쁜 놈아아아앙!!”
부랑자들마저 흠칫하면서 멀어질 만큼 신시아가 서럽게 울었다.
그리고 저 멀리 핼쑥한 얼굴로 손을 흔드는 메이린이 보였다.
* * *
메이린들과 만난 직후, 나는 곧장 할카데르로 보냈던 오필리아에게 통신구슬로 연락했다.
저택에서 빠져나온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으니, 아직 류네온과 류아라 둘 다 저택에 남아 있을 터였다.
—선배, 지금 저택에 도착했어.
“내 손님이라고 하면 출입은 바로 가능할 거다. 들어가고 나서는 곧장 류네온을 만나 통신 구슬을 전달하면 된다.”
직접 만나기엔 내가 직전에 쌓은 업보가 있어서 말이지.
그런 의미에서 일단 첫 번째 목표는 오필리아를 통해 류네온과 연락을 하는 것이다.
—근데, 이거 하고 나서 류네온 오라버니랑 수다 떨어도 되는 거지?
“류네온을 붙들고만 있다면 뭐든 상관없다만…… 언제부터 류네온이 네 오라버니가 된 거냐.”
—잘 생기면 오라버니지!
두 번째 목표는 류네온을 저택에 묶어두는 것이었다.
이 고지식하고 말 안 통하는 수호기사가 ‘활약’한다면 내 계획에 큰 차질이 빚어질 터.
오필리아에겐 재주껏 그를 저택에 묶어놓으라고 주문했는데.
‘왜 이렇게 불안한 거지…….’
—아, 그리고 선배! 이번 일의 보수는 선배네 아버지랑 저녁 먹는 거로 해줘!
“…………?”
—선배, 내 말 들었어?
듣기야 했다만. 순간 가볍게 뇌진탕에 걸린 거 같아서 말이지.
“내가 잘못 들은 거 같아 그렇다만, 다시 한번…….”
—이번 일의 보수는 선배네 아빠랑 밥 먹는 거로 해달라고!
“……아니, 어…… 그러니까…… 왜지?”
나는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어 그리 물었고, 오필리아는 만면의 미소를 꽃피우며 말한다.
—그야 잘~ 생겼으니까!
“………….”
—와, 정말! 아까 옆에서 선배네 아빠 보는데, 진짜 첫눈에 반해버렸잖아~!
농담. 이지?
아니, 제발. 농담이라고 해줘.
물론 류네온도 일부의 중년 마초 좋아하는 여성들에게 팬층이 있다는 건 알지만.
“오필리아. 너는 일단…… 미성년자이다만.”
—사랑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그리고 어차피 내년이면 성인이잖아?
“너랑 아버지는 나이 차이가…….”
—류네온 오라버니처럼~ 조각처럼 잘생긴 것도 좋지만, 역시 진국은 류오넬 대장군처럼 우락부락하고 멋진 마초랄까? 으헤헤…….
이젠 내 말을 듣지도 않는군.
—아~ 정말~ 나라는 이 죄 많은 여자! 대체 누구를 골라야 할…….
뚝.
차마 더 들을 수가 없어서 통신을 끊었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정신이 오염되는 기분이 들었다.
‘실연 때문인가? 자스민이 레베카한테 반하는 바람에 실연을 당해서 저러는 건가?’
그렇다면 납득 못 할 것도 아니긴 하다.
요망한 레베카(?)에게 홀랑 넘어간 자스민을 보자니, 제 또래의 남자는 더 이상 눈에 차지 않는 거겠지.
‘하지만 그렇다 쳐도…….’
후우. 생각할수록 머리만 더 아파 온다.
나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애써 두통을 모른 척한다.
그러던 중,
—선배! 갑자기 통신을 끊어버리면 어떡해?!
“류네온에게 통신구슬 전달할 게 아니면 연락하지 마라.”
—딱 그 이유 때문에 연락한 거거든?! 여기 류네온 오라버니!
흥, 바본가! 오필리아가 토라진 목소리를 내며 물러서자니 이내 류네온의 얼굴이 드러난다.
—류리크 너 지금 어디 있는 거니?
“오랜만……은 아니고, 다시 보니 반갑군. 형제여.”
일단 미소는 짓고 있지만, 상당히 화가 났다는 게 느껴진다.
오~라버니! 둘이서 편하게 얘기하세요. 오홍홍! 오필리아가 늙은 귀부인 같은 소리를 하며 사라지고, 류네온은 깊은 빡침이 느껴지는 표정으로 나를 채근한다.
—류리크, 내가 너 때문에 정말…….
“얼굴 멀쩡한 걸 보니, 별일은 없었나 보군.”
내가 시큰둥하게 반응하자 류네온의 이마가 꿈틀거렸다.
—네가 만든 오해 때문에, 늑골이 세대나 나갔단다.
“정말로 별일 없었군.”
그 성인군자와 같던 류네온의 몸이 움찔거렸지만, 그는 끝끝내 자신의 감정을 추스르며 한숨을 내쉴 따름이었다.
—후우, 동생아…… 대체 어쩌자고 이런 일을 벌인 거니.
“본인이 뭘 했다 그러는고.”
—지금이라도 할카데르로 돌아와라. 나는 화 나지 않았으니 아무것도 따지지 않을 거고, 기사단에도 내가 잘 설명해서…….
“형제여, 지금 무언가 심대한 착각을 하고 있는 듯 한다만…… 내가 죄인이던가?”
—으, 응?
“자네가 잘 설명하고 자시고 할 것이 있던가. 나는 그 어떤 죄도 짓지 않았거늘.”
—………….
“있다면 말해 보게. 내가 어떤 죄를 지었는지.”
늘 그래왔던 것처럼 적당한 궤변을 늘어놓으며 대화의 주도권을 잡는다.
“나는 그저, 자네가 위법하게 본인의 신병을 구속하려 들어 빠져나온 것뿐이라네.”
헛소리이긴 하나, 나름 그럴싸한 논리를 세웠는데…… 이번에는 류네온도 만만치 않았다.
—류리크, 네가 말을 잘하는 건 안다. 하지만 그거에 속아 넘어가 주는 건 한 번으로 족하단다.
“………….”
—너는 수호기사단에 쫓고 있는 요루아 로스월드를 빼돌렸어. 그게 죄가 아니라고는 말 못 할 거야.
역시 실비아처럼 바보는 아니라는 건가.
뭐, 농담 따먹기는 이 정도면 되겠지. 나는 물 흐르듯 자연스레 본론으로 들어간다.
“아, 그거에 대한 말이네만, 약간의 오해가 있었다네.”
—오해?
“내 사죄의 의미로 요루아 로스월드가 어디 있는지 알려주겠네.”
수호기사단이 쫓고, 내가 가로채며 숨겼던 요루아의 위치.
그걸 알려주겠다고 하자 류네온의 눈이 커진다.
—정말이니?
“단 조건이 있네.”
그리고 내가 준비한 설계가 천천히 무대를 꾸려가기 시작한다.
“베디비어에게 직접 밝힐 걸세.”
* * *
황실 내궁의 비밀 정원.
여름이 내려온 바깥과 다르게, 영원한 봄의 계절을 품은 초록(草綠)의 정원.
오래된 성곽의 흔적은 덩굴들이 자라나 있고, 그 규모는 황궁 안에 있다기엔 지나치게 거대하다.
그런 한가운데 유달리 풀이 자라지 않은 원형의 돌이 있고, 그 위에서 베디비어는 명상을 하고 있었다.
“………….”
반 호흡의 숨도 흐트러지지 않는 무동, 무결의 자세.
하지만 명상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무슨 일이냐.”
정원의 저편에서 다가오던 수호기사 단원이 있었다.
그는 자리에 멈춰 서며 고개를 꾸벅였다.
“보고드릴 사항이 있습니다.”
“요루아 로스월드에 대한 것이냐.”
“예. 류리크 아스트레이가 요루아의 소재를 밝히겠다고 했습니다.”
흐음. 베디비어가 가볍게 턱을 쓸었다.
바로 직전까지만 해도 로스월드의 저택에서 그를 빼내며 물을 먹이더니. 이제는 갑자기 그 소재를 밝히겠다고?
“녀석이 위치를 말했나.”
“아닙니다. 꼭 베디비어 님께 직접 말씀드리겠다고 해서…….”
“직접? 본인이 궐에 입궁했나.”
“아닙니다. 통신 구슬을 하나 보내왔습니다.”
그리 말한 단원은 품 안에서 통신 구슬 하나를 꺼냈다.
“근위대에서 검사해본 결과, 이상한 건 없었습니다.”
“흐음…….”
베디비어가 습관처럼 재차 턱을 쓸었다.
맞은편의 단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제 자리를 지켰다.
그런 묘한 적막이 얼마나 이어졌을까.
이내 베디비어가 입을 연다.
“구슬을 주게. 뭐가 되었든, 한번 얘기해보고픈 마음도 있었으니까.”
베디비어에게 구슬을 넘긴 단원은 그대로 그림자처럼 정원에서 사라졌다.
다시 홀로 남게 된 베디비어는, 가부좌를 틀며 통신구슬을 작동시켰다.
그러자 이미 저쪽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지, 곧바로 류리크의 얼굴이 나타났다.
“오랜만이구나. 류리크.”
폐인이 되기 전, 두어 번 본 얼굴이었다만 단박에 그가 류리크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구슬 속의 류리크 역시 마주 고개를 끄덕이며 답한다.
—오랜만일세, 베디비어.
분위기뿐 아니라 태도에서 자연스레 위엄과 기품이 배어 있다. 어딜 보아도 망나니라는 오명은 완전히 씻어내린 듯했다.
“못 본 사이, 많이 달라졌구나.”
—칭찬으로 듣겠네.
의미 없는 안부를 나눠봐야 시간만 아까울 터.
베디비어는 곧장 본론을 꺼내 들었다.
“그래, 요루아 로스월드의 소재를 제보하겠다고.”
—그전에 하고픈 말이 있네.
“네 요설에 관해선 익히 들었다. 요루아의 소재를 밝힐 생각이 없다면 통신은 이만 끊도록 하지.”
그의 곁으로 파견했던 류네온이 이미 한번 골탕 먹은 것으로 안다.
베디비어는 같은 과오를 범할 생각이 없었다.
—성질 급하기는. 그래, 요루아는 지금 바르칸 분쟁지역에 있다네.
“………….”
—왜, 본인이 거짓을 말하는 것 같은가.
“네가 요루아를 위해 지금까지 한 일들을 고려했을 땐, 꽤나 순순히 알려주는구나 싶어서 말이다.”
무언가 거래를 하려들 줄 알았는데, 곧장 저리 실토하니 경계하던 이쪽이 당혹스러울 지경이다.
베디비어는 설마, 하는 심정으로 말한다.
“거짓이라면 설령 바타체스의 황족이라 해도 처벌을 면치 못할 거다.”
—하하. 어느 안전이라고 내 거짓을 고하겠나?
짧게 웃은 류리크는 그 미소를 유지한 채, 말을 잇는다.
—다만 조언을 하나 하자면…… 서두르는 게 좋을 걸세.
“지금 당장 단원들을 파견할 거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그게 아니라, 알고 보니 바르칸 분쟁지역에 죽음 교단의 비밀 지부가 있더군.
“……뭐라고?”
베디비어는 제 귀를 의심했고, 류리크는 태연자약하게 말한다.
—예컨대, 요루아가 죽음 교단에 넘어가기 직전이다, 이 말일세.”
마치 그 상황을 자기가 설계라도 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