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possessed a villain with nothing but a death flag RAW novel - Chapter 189
사망 플래그밖에 없는 악역에 빙의했다 189화
189
베디비어에 대한 도발을 끝낸 뒤, 나는 한발 늦게 동료들과 해후했다.
—대체 뭐예요?! 무슨 일이 벌어진 건데요!
—류리크 씨, 제대로 설명해줬으면 하는데…….
뭔가 해후라기엔 기자회견 같은 느낌이 들긴 했다만, 나는 그 자리에서 요루아에 대한 얘기를 간단하게 설명했다.
물론, 당사자인 요루아 본인은 듣지 못하게끔 한 채로.
“이거, 요루아한테는 말 안 해줘도 되는 거예요?”
메이린이 수심 깊은 표정으로 물었다.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답한다.
“요루아는 아직 어린아이다. 이런 걸 감당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야.”
“그렇지만…… 눈치챘을 거예요. 무언가 잘못되었고, 그게 자기 때문이라는 걸.”
이해한다.
요루아는 어리지만, 그렇게 마냥 어린아이인 것만은 아니다.
아마 로스월드에서 도망쳤을 때부터 어느 정도 짐작은 하고 있을 터다.
허나,
“그럼에도…… 요루아는 아이다.”
씁쓸한 미소를 내비치자 메이린도, 실비아도 더 캐묻지 않았다.
나는 그 길로 몸을 돌려 요루아에게 다가간다.
주변에는 신시아가 펼친 인식 저해 결계가 있어서 부랑자들도 망국의 기사단들도 보이지 않았다.
늦어가는 밤에 피어난 모닥불의 근처.
요루아는 덤덤한 표정으로 불을 쬐고 있었다.
—우물우물.
입은 기계적으로 육포를 씹고 있었다.
“먹을 만한가.”
“……네.”
요루아는 나를 바라보지 않았다.
다만 육포를 내려놓으며 눈을 내리깔았다.
‘많이 불안한 모양이군.’
이해 못 할 것은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고, 강하다고 여겼을 가르테고가 수호기사단에게 위협을 받았을 터다.
자기뿐만 아니라 아버지마저 곤경에 처한, 그 상황을 목도 했을 테니…… 충격이 말이 아니겠지.
“보스. 나는 잘못된 건가.”
“무슨 말이냐.”
“나는…… 또 무슨 잘못을 저지른 건가.”
요루아의 목소리에 물기가 맺힌다.
“아니다. 너는…….”
“보스 덕분에 잘 통제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게, 흑염룡이 난리를 피운 것인가.”
“………….”
정말.
놀라우리만치 완벽하게 잘못 짚었다.
하기야 이 일에 요루아가 무슨 잘못을 했으며, 이 아이가 제 잘못을 반성한다며 떠올려봐야 무엇을 생각하겠나.
나는 좀처럼 내보이는 일 없는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요루아, 그런 게 아니다.”
“…………?”
“이건 그저, 작은 오해가 있어서 생긴 일이다.”
오해? 요루아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생각해 보거라. 네가 무슨 잘못을 했더냐.”
“딱히 떠오르는 건…… 없는데.”
“네가 생각해 봐도 그렇지 않더냐.”
사실이 그러하긴 했다.
이 일에 대체 요루아가 무슨 잘못을 했단 말인가.
성물을 심은 건 로스월드이고, 수호기사단은 단지 요루아가 위험할 거 같다는 이유로 죽이려 들고 있다.
여기에 요루아의 잘못이랄 게 과연 있던가.
“너는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소한 오해가 있어서 이렇게 된 것이고, 머지않아 내가 해결할 거다. 그러니 아무 걱정 말아라.”
“………….”
물론 이렇게 말한다고 갑자기 요루아가 방긋 웃거나 하진 않았다.
그렇지만,
‘지금은 이 정도면 되겠지.’
* * *
요루아는 금세 잠들었다.
아무래도 로스월드 저택에서부터 도망쳤던 길이 꽤나 고됐던 모양이었다.
열대야는 아니지만, 아무래도 여름밤이라 그런지 모닥불만 있어도 꽤 아늑한 모양이었다.
작게 몸을 말며 새근새근 작은 숨소리를 내는 것이 역시나 어린아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마법주머니에서 얇은 모포 하나를 꺼내 덮어주자니, 메이린과 실비아가 툭툭 내 어깨를 건드린다.
“아까 했던 그 얘기…… 자세히 설명해줘요.”
“설명이 조금 부족했던 모양이군.”
“대충 알아듣긴 했는데, 여전히 잘 모르겠어서요.”
이제 머지않아 수호기사단이 여기 들이닥칠 터다.
요루아뿐 아니라, 메이린이나 실비아도 휴식을 취했으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여기까지 휘말리게 해놓고 제대로 된 플랜조차 설명하지 않는 건, 억지나 다름없는 거니까.
“일단 현재 수호기사단이 요루아를 쫓는 이유부터 말하자면…… 요루아가 가진 힘이 죽음 교단과 관련 있기 때문이다.”
“요루아가 정말로…… 죽음 교단과 연관되어 있는 건가요?”
“그래. 다만 분명히 해두자면 요루아의 ‘힘’이 거기서 비롯되었다는 것이지. 본인은 죽음 교단과 어떤 상관도 없다.”
이것이 이번 사태의 맹점이자, 노림수이기도 하다.
죽음 교단의 성물을 품었되, 죽음 교단과 하등 관계없는 인물이라는 점.
“아마 베디비어가 염려하는 것은, 요루아로 말미암아 죽음 교단이 준동할 수 있는 점일 터다.”
“요루아가 가진 그 용……? 그게 죽음 교단에게 중요하다고 했었죠?”
“그래. 요루아가 품은 용은, 그 잠재성이 어마어마할뿐더러 죽음 교단에게 숭배받는 존재이기도 하다.”
실제, 그 때문에 요루아는 올해 안에 죽음 교단에 납치될 예정이기도 하다.
아마 교단으로 납치되면 여러 가지 세뇌를 당해, 머지않은 미래에 시나리오 보스로 각성하게 되는 것이고.
“사실은 죽음 교단에서 요루아를 잘 지켜내기만 하면 될 일이다만…… 베디비어는 보다 간단한 방법을 선택했지.”
“죽음 교단에 빼앗기기 전에, 없애겠다는 거군요.”
잔인하지만 가장 합리적인 방법.
하지만 이건 용의 기믹에 대해 잘 몰라서 하는 어리석은 실수다.
‘종언룡은 메인 시나리오의 최종 보스로 등장해야 할 몬스터다. 단순히 성물을 품은 사람을 죽인다고 용이 사라질 리가 없지.’
요루아가 죽으면 랜덤하게 이 세계의 누군가가 그것을 계승하게 된다.
성물 상태로 봉인되어 있던 것이 사람의 몸에 들어간 이상…… 이미 막을 수 없는 일이 되어버린 거다.
“물론 순순히 요루아를 내어줄 순 없지.”
그리하여 계획은 이미 시작되었다.
“나는 지금부터 요루아를 데리고, 죽음 교단의 지부들을 돌아다닐 거다. 그리고 각 지부에 도착하기 전, 그 위치를 수호기사단에게 알릴 거다.”
“아까 베디비어 님한테 말했던 것처럼…… 말이죠?”
“그래. 베디비어와 수호기사단은 부리나케 이곳으로 달려올 거고, 아주 우연찮게 죽음 교단의 지부를 발견하게 되겠지.”
여기에 죽음 교단의 지부가 있다고 힌트까지 주었으니, 일부러 무시하지 않는 이상 발견하지 못할 리가 없다.
“그렇게 되면…… 죽음 교단 지부를 공격할 수밖에 없겠네요.”
“그래. 그리고 나는 요루아와 함께 수호기사단에게 잡히기 전, 다른 지부로 도망치고…… 그 위치를 또다시 수호기사단에 알리는 거다.”
도망치는 건 전이 마법의 1인자, 신시아가 도와줄 거다.
그녀라면 베디비어 상대로도 쉽게 잡히지는 않을 테니까.
“그리고 그 일을 끝없이 반복하는 거다.”
“………….”
“계속해서 반복하다 보면 죽음 교단에서 참으로 기이한 소문이 돌게 될 거다. 요루아가 발을 디딘 곳마다 죽음 교단의 지부가 몰살당한다고.”
당연하지만 수호기사단은 철저히 자신들의 신분을 숨긴 채 암암리에 움직일 거다.
그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을 테고, 그 어떤 목격자도 남기지 않을 거다.
그러면 참으로 아름다운 전개가 완성된다.
—죽음 교단의 어느 지부에서 요루아를 발견했다는 보고를 올린다.
—그 직후 수호기사단이 난입해, 해당 지부를 깔끔하게 정리한다.
—죽음 교단의 본부에서는 지부의 연락이 끊겨 사람을 파견한다.
‘그러고 나면 어떤 흔적도 없이, 지부 하나가 말끔하게 사라진 광경을 보게 될 테지.’
그 일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거다.
끊임없이.
계속.
“그러면 어느 순간부터 죽음 교단은 의심을 품게 될 거다. 요루아가 죽음 교단의 지부를 공격하는 게 아닐까, 라고 말이지.”
물론 생각 있는 수뇌부들은 요루아에게 이만한 힘이 없을 거라 생각할 터다.
하지만 그렇다 쳐도 최소한……
—수호기사단과 함께 지부들을 공격하는 게 아닐까?
라는 의심까진 끌어낼 수 있다.
“그리되면 죽음 교단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리고, 결국에는…… 요루아를 자신들의 ‘적’으로 인식하게 될 테지.”
“그, 그렇게 되면 요루아의 목숨이 위험해지는 거잖아요?”
“대신 수호기사단은 요루아를 적대하지 않게 될 터다.”
쫓겨도 죽음 교단에 쫓기는 게 낫지. 수호기사단은 결코 적대해도 될 상대가 아니다.
“요루아가 죽음 교단의 적인데, 죽음 교단의 적을 수호기사단이 손수 제거한다는 건…… 참으로 이상한 일이니까.”
아마 여기서 내가 또 한바탕 기나긴 ‘설득’을 해야 할 터다.
이 모든 게 오해였다고 모두를 납득시키고, 사건을 조용히 묻을 수 있을 만한 명분도 만들어야 할 테고.
“근데 류리크 씨. 그 계획에서 뭔가 이상한 부분이 있는데요…….”
“이상한 부분?”
“네. 다른 건 알겠는데, 죽음 교단의 지부는 어떻게 알아내요? 저는 사실, 죽음 교단에 지부가 있다는 것도 몰랐었거든요.”
하기야 지금은 마녀보다도 깊숙이 숨어 있는 놈들이다.
큰 사고를 치지 않고 잠잠해, 많은 이들이 그 이름을 잊어버리기도 했고.
하지만,
‘나는 플레이어다.’
죽음 교단의 지부는 물론, 저들의 본거지까지도 모두 꿰고 있다.
뭐, 저들의 본거지는 지금으로서 접근할 방법이 아예 없지만.
“생각해 보니 그렇네. 류리크 씨의 계획은 좋은데, 결국 지부의 위치를 모르면…… 아무것도 못 하는 거잖아?”
하다하다 실비아까지 한 마디를 덧붙인다.
나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내가 설마 지부의 위치도 모른 채 이런 계획을 만들었겠나.”
“네? 하지만 그걸 어떻게…….”
으음. 이걸 뭐라고 설명한담.
고민하던 나는 찰나의 순간 번뜩이는 변명거리를 찾아냈다.
“리아가 알려줬다.”
“아, 그렇군요!”
“완전 납득했어!
어이가 없었지만, 내가 생각해 봐도 참 납득 되는 소리였다.
* * *
죽음 교단 바르칸 지부.
이곳에서 지부장을 맡고 있는 수도사제, 멤피스는 깜짝 놀라며 손을 부르르 떨었다.
“뭐, 뭐라고요?! 근처에서 요루아 로스월드를 발견했다고요?!”
“네. 헌금함을 들고 나갔던 교인 한 명이 수배령에 그려진 인물과 똑 닮은 소년을 목격했다고 합니다.”
“어디서! 어디서 발견했다고 했죠?”
“저희 은신처 근처입니다.”
멤피스는 다시 한번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요루아 로스월드.
그 이름 하나에 교단 전체가 발칵 뒤집힌 상황이었다.
오래도록 찾던 성물이 그 소년의 몸 안에 있다고 하질 않나, 갑자기 수호기사단이 그를 쫓고 있다고 하지 않나.
여러모로 많은 말들이 오갔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하나였다.
‘수호기사단에 빼앗기기 전에 반드시 우리가 찾아야 한다!’
모든 지부에 요루아 로스월드의 얼굴이 그려진 종이가 흩뿌려졌고, 교인들은 기도를 드리면서 그 얼굴을 눈에 새길 듯 확인했다.
그렇게 교단 전체가 혈안이 되어 그를 찾는 마당에, 갑자기 바르칸에서 요루아를 발견했다니.
‘이, 이렇게 공적을 세우면 바로 교구사제로 승격되는 거 아냐?!’
멤피스의 주먹에 이어 다리까지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신도님! 당장 모든 사제와 교도들에게 알리세요! 이 바르칸 근처에서 요루아 로스월드가 발견되었고, 지금 즉시! 그 소년을 찾아야 한다고!”
“하, 하지만 사제님. 갑자기 한꺼번에 활동하면 제국에서 저희 지부를 알아차릴 수도…….”
—쾅!
멤피스가 거칠게 책상을 두들겼다.
“지금 그런 걸 신경 쓸 때입니까! 우리 교단의 성물이 저 밖을 걸어 다니고 있단 말이에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되찾아야 한단 말입니다!”
“그,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저희 신도님이 본 게 요루아 로스월드가 아닐 수도…….”
“그런 건 상관없습니다! 일단 모든 교도를 동원해, 그 소년을 찾으세요! 그 소년이 요루아인지 아닌지는 그때 가서 판단할 일이죠!”
중앙에 보고하는 것도 잊지 말고! 빨리! 빨리! 멤피스가 재촉하자, 신도는 황급히 방을 빠져나갔다.
‘흐, 흐흐…… 요루아 로스월드를 발견하다니. 나는 운이 좋아! 어쩌면 아닐 수도 있지만…… 비슷하게 생겼으면 그래도 교단에서 상을 주지 않을까?’
마치 망상이 자가 증식이라도 하는 것처럼 커져 가는 가운데, 멤피스는 자신의 옷걸이에 걸려있던 검은 로브를 챙겼다.
자기도 빨리 밖으로 나가 수색을 돕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뭡니까. 신도님.”
“………….”
노크도 없이 신도 한 명이 자신의 방으로 들어왔다.
멤피스는 얼굴을 찌푸리며 말한다.
“빨리 요루아 로스월드를 찾으러 나가라니까 왜 돌아와…… 서……?”
그리고 그의 목소리는 거기서 끊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