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possessed a villain with nothing but a death flag RAW novel - Chapter 195
사망 플래그밖에 없는 악역에 빙의했다 195화
195
신시아가 비전 마법을 펼친 건, 애초부터 계산에 없던 일이었다.
그녀가 희생을 하면서까지 우리를 도울 이유가 없으니까.
“보스…… 여기는 어디냐……?”
허나 그 일은 벌어졌고, 우리는 전혀 알 수 없는 곳에 떨어졌다.
“……그러게 말이다.”
차가운 눈으로 주변을 훑는다.
일단은 산속이다. 식생(植生)의 종류와 분포를 보아, 남부나 북부는 아닌 듯했다.
무성한 잡초들 사이의 흙에는 사슴류로 보이는 것들의 발자국 따위가 보였다. 맹수 게 보이지 않았다만, 우리는 거의 맨몸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여기 떨어진 상황이다.
베디비어에게 쫓기던 때와는 다른 의미로 생존에 몰리게 된 것이었다.
“그나저나 우리 둘뿐인 건가?”
“……실비아 누님도, 메이린 누님도 보이질 않는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둘은 이 근처에 없을 가능성이 컸다.
—마녀 신시아가 ‘사라져 버린 세상의 어딘가’을 사용했습니다.
—이 세상의 어딘가로 전이됩니다.
시스템 메시지 설명처럼 그건 ‘어딘가’ 무작위 지역으로 보내버리는 기술이다. 당연히 두 명이나 세 명씩 묶어서 탈출시켜주는 형편 좋은 마법이 아니다.
대상이 몇 명이건, 그 각자 한 명 한 명을 무작위의 지역으로 날려버리는 기술이니까.
‘예컨대 요루아와 내가 같은 곳에서 눈을 뜬다는 것 자체가 확률상 말이 안 되는 것인데…….’
이것은 우연일까. 아니면…….
—꼬르륵.
요루아의 배에서 안쓰러운 소리가 났다.
“보, 보스…… 이, 이건 그런 게 아니라…….”
요루아가 새빨갛게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나는 상념을 뒤로 눈앞의 현실을 바라본다.
“일단 먹을 것부터 구해보도록 하지.”
* * *
산에 떨어진 것은 아주 다행스런 일이었다.
만일 사막이나 설원 한복판에 툭 떨어졌다면, 정말 여러모로 곤란했을 텐데.
“……정말 이것들이 다 먹어도 되는 건가?”
“그래.”
주변에서 채취한 나무 열매와 버섯, 이것들만 모아놔도 꽤나 그럴싸한 식사가 만들어졌다.
과거 고아였던 시절의 경험 때문일까, 요루아는 꽤 거리낌 없이 손을 뻗었다.
“아, 맞다. 보스 먼저 먹어라.”
“괜히 그런 격식 차릴 필요 없다.”
“그, 그치만 보스가 가져온 것들을 나 혼자 먹으면…….”
그런 걸 신경 쓰기도 하던 녀석이었던가.
나는 갸우뚱하면서도 열매를 한입 베어 물었다.
“이제 되었느냐.”
“응! 잘 먹겠습니다!”
요루아는 방긋 웃으며 버섯과 열매들을 먹기 시작했다.
어느덧 날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한 일이라고는 주변을 둘러보며 열매 따윌 주운 것이 전부인데 시간이 참 빨리 지나갔다.
‘슬슬 임시로나마 거처를 만들어야겠어.’
주위에 잠깐 몸을 숨길 만한 동굴 같은 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섬월로 나무와 덩굴을 잘라낸 뒤, 플랫폼을 하나 엮어내 나무 위에 얹었다.
그럭저럭 두 사람이 몸을 뉠 만한 거처가 만들어졌다.
뚝딱뚝딱, 거처를 만들고 나자 지켜보고 있던 요루아가 신기하다는 듯 이쪽을 바라본다.
“대단하다 보스! 대체 보스는 어떻게 그런 걸 다 아는 거냐?”
으음.
원래는 인터넷 동영상을 보며 배웠던 것이다만.
“내가 한때 도서관에서 살지 않았더냐. 책에 다 나와 있는 것들이다.”
나는 그럴싸하게 둘러댄다.
“오! 책이란 역시 대단한 거 같다. 그것만 많이 읽으면 숲에서 먹을 수 있는 것을 골라내고, 이렇게 척척 집도 만든단 말인가!”
“그래. 그러니까 독서를 게을리하지 말아라.”
“알았다! 앞으로 책 많이 읽겠다! 나도 보스처럼 뭐든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요루아가 눈을 반짝인다.
“언젠가는 실비아 누님이나 메이린 누님처럼, 나도 보스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다!”
“………….”
내심 그런 걸 신경 쓰고 있었던 건가.
사실 부려 먹히는 게 좋은 것은 아니다만.
“그래. 언젠가는 네 힘이 필요할 날이 분명 올 거다. 그러니 그때까지, 줄곧 정진하거라.”
“응!”
요루아가 밝게 웃었다. 다만 어린아이의 미숙함은 그 안에 숨겨진 그늘까지 가리진 못한다.
베디비어에게 목숨이 노려지며, 제 죽음을 입에 담은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제 딴에는 잘 숨겼겠지만.
그건 누가 봐도 위태로운 미소였다.
* * *
이른 새벽.
밤새 불침번을 섰다.
약간 피곤하긴 했다만, 철야는 익숙한지라 견딜 만했다.
‘그래도 폐인 특성을 지닌 것치고, 몸 상태가 나쁘진 않다.’
아마 그간 약초차니 뭐니 달여 마시면서 건강을 최대한 챙긴 덕분이리라.
곤히 잠들어있는 요루아를 한번 돌아본 뒤, 나무 아래로 내려왔다.
그리곤,
“리아.”
—부르셨습니까.
통신 구슬 너머의 리아는 1초의 딜레이도 없이 즉시 반응했다. 마치 통신 구슬 앞에서 내가 연락하기만을 기다린 것처럼 경이로운 반응속도였다.
“혹시 밤새 본인의 연락을 기다렸는가.”
—농담이 짓궂으십니다.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닌데.
—그보다도 지금 상황을 묻고자 연락하신 것 아닙니까.
“그래. 나는 요루아와 함께 있네만, 다른 이들은 어찌 되었는가.”
—실비아와 메이린 양이라면 무사합니다. 둘은 도시로 전이되었기에 워프게이트를 통해 할카데르에 도착했습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나는 가슴 깊이 그 사실에 감사했다.
“베디비어는?”
—조사를 위해 둘의 신병을 구속하고자 했으나, 류미엘 님이 힘을 써주셨습니다.
과연. 일이 그렇게 흘러갔군.
하기사 아스트레이의 본진인 할카데르에 갔다면 베디비어도 막무가내로 체포하긴 힘들 터다. 어쨌거나 그 둘의 혐의는 애매하니까.
“신시아는 어찌 되었는가.”
—베디비어에게 붙잡혀, 현재 황궁으로 압송된 상태입니다.
“저런…….”
—깊게 염려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샤르미넨 님께서 계신 한, 신변에 이상은 없을 겁니다.
“무슨 소리인가? 본인이 왜 신시아의 안위를 걱정하겠나.”
샤르미넨이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데, 베디비어가 그렇게 막무가내로 신시아에게 해코지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신시아를 죽여서 얻을 제국의 이득.
샤르미넨을 적대하면서 잃게 될 손해.
이 둘을 저울질하면 취해야 할 행동은 하나뿐이니까.
“본인이 염려한 것은 당장 그녀의 신병이 구속되었으니, 앞으로 써먹기 힘들겠다는 것이다만.”
—한결같이 쓰레기다운 발상…… 이런, 실례했습니다.
“너 지금 나 보고 쓰레기라고…….”
—그래서 지금 류리크 님은 지금 어디 계신지요.
“나도 모른다.”
—전문가를 불러 통신구슬의 좌표를 역추적해보겠습니다.
“그럴 필욘 없다.”
—………….
말을 않았지만, 리아의 눈빛에 물음표가 떠오른다.
나는 피로 섞인 한숨을 길게 내쉬며 답한다.
“당분간은 여기서 생각을 정리할 참이다.”
—그 숲속에서 말입니까?
“네가 좇지 못하는 곳이니, 베디비어도 어쩔 수 없지 않겠더냐.”
신시아가 쓴 마법의 장점 중 하나가 이것이다.
보통은 마력의 흐름을 따라 좌표를 추적할 수 있다만, 그 마법은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추적할 수 없다.
그러니 리아가 내 위치를 모르듯, 베디비어는 나를 쫓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지 않을 게 있더냐.”
—저택에서 류리크 님이 식사나 의복의 청결이나, 청소 상태 등 워낙 예민하셨던 터라…….
“그런 거라면 걱정할 필요 없다.”
—그게 아니라, 대체 요루아 공자를 얼마나 부려 먹으실지…….
얘가 진짜.
“너는 대체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내가 약간의 불만을 드러내자 리아는 도리어 미세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린다.
—기분은 좀 나아지셨는지요.
“………….”
참으로. 말문이 막히게 만드는 녀석이었다.
“본인을 놀려놓고, 기분을 풀게 해주려 농지거리를 던졌다고 할 참이더냐.”
—예. 그렇습니다만.
어이없었지만 그 말이 사실이긴 했다.
“……그래, 시답잖은 얘기를 하니 걱정이 조금 덜어지긴 하는구나.”
—실비아 양과 메이린 양은 내일부터 상회의 업무에 돌아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고맙네.”
의견을 주고받을 것도 없이 척하면 척.
리아는 정말, 소름 끼칠 만큼 내 생각을 정확하게 파악한다.
—특이사항이 있으면 먼저 보고드리겠습니다. 달리 필요한 것이 있다면 언제든 말씀하시지요.
“꽤나 나를 생각해주는 듯한데, 류미엘의 당부라도 있었는가.”
리아는 좀처럼 보기 드문 미소를 지었다.
—질문이 참으로 짓궂으십니다.
* * *
평소 내 일과는 끝없는 ‘생산성’의 연속이었다.
쉼 없이 무언가를 읽고, 익히고, 수련하고, 계략을 짜내고 계책을 짜내고. 상대의 심중을 파악하고, 상대의 행동을 의도하고. 일어나지 않은 저 멀리 있는 사건을 대비하고.
시간이라는 놈을 도저히 가만히 둘 수 없는 것처럼 쥐어 짜내고 또 쥐어짜 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하루의 일과가 극도로 단조로워지고, 무의미한 시간이 한없이 늘어졌다.
—이건 못 보던 열매인데.
—아라트의 열매라고, 단맛이 나지만 먹고 나면 머리가 어지러울…….
—우물우물.
—………….
—보, 보스으으. 머, 머리가 어지럽다. 세, 세상이 빙글빙글 돈다아아.
거처의 주변을 돌며 식수와 열매 따위를 주워 끼니를 때우면 하루의 일과가 모두 끝이 났다.
나는 그 넘쳐흐르는 시간을 아주 무의미하게 낭비했다.
어느 날은 안 가보던 곳까지 멀리 나아가다 계곡을 발견해 물장난을 쳤다.
—와하하! 보스! 받아라! 이게 바로 흑염룡의 힘이 깃든 물세례다!
—감히 이 몸에게 도전하는가.
—그, 그렇게 말하면 내가 겁먹을 줄 알고!
—나와라, 야를!
—이, 이 대 일은 반칙이다! 반칙! 어푸푸!
또 어느 날은 운 좋게 동물을 사냥해 구워 먹기도 했다.
—보스가 꼬리를 먹어라.
—너는 부드러운 다리를 집어 들고 할 말이더냐.
—동방에서는 어두육미(魚頭肉尾)라고, 동물은 꼬리가 별미라 했다. 그러니 좋은 건 보스에게 양보하는 거다!
—어디서 그런 걸 배운 거냐.
—……저번에 오필리아 누님이 그런 소릴 하면서 맛있는 고기를 다 먹었었다.
무의미한 하루가 지나고.
시답잖은 또 하루가 지난다.
나는 놀라우리만치 그 생활에 익숙해져, 어떤 의미로는 진실 되게 방학(放學)이라는 걸 즐겼다.
‘가끔은 이런 생활. 나쁘지 않을지도 모르겠군.’
저물어가는 노을을 보며 나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일주일.
그리고 한 달.
시간은 하염없이, 하염없이 흐르고 또 흘렀다.
정신 차리고 보니 영원할 것 같았던 여름방학이 모두 지난 뒤였다.
—내일 아침, 날이 밝는 대로 여기를 떠날 거다.
점심으로 생선구이를 먹으며 요루아에게 그리 말했다.
요루아의 표정이 살짝 굳었지만, 이내 무언가를 각오한 듯 미소를 지었다.
밤이 되었다.
유독 잠들지 않는 밤에 요루아가 하늘을 보며 물었다.
“보스는 왜 나를 버리지 않은 거냐.”
“뜬금없구나.”
“나 알고 있다. 로스월드 저택에서도 나를 도와줬던걸. 그 뒤로도 계속 신경 써줬던걸.”
“………….”
“나는 보스에게 아무것도 해준 게 없는데, 보스는 왜 나를 도와주고, 또 버리지 않는 거냐.”
“………….”
“나를 버리면, 모든 게 해결됐을 텐데.”
나는 잠시간 말을 않았다.
어쩌면 그건 당연한 의문이었고, 쉽게 답해선 안 되는 질문이었다.
—네가 메인 에피소드 ‘신들의 몰락’의 최종보스니까.
—장래에 성장 가능성이 있으니, 곁에 두고 키워서 써먹으려고.
솔직한 답은 이것이었다.
덧붙이거나 뺄 것도 없이, 이게 틀림없는 진실이었다.
하지만,
“내가 봤던 책에서 그런 말이 있었다.”
—아이의 선택지에 죽음 같은 게 있다면, 그건 분명 어른의 잘못이다.
“그게 무슨 말이냐? 뭔가…… 어렵다.”
“너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다는 거다.”
“그, 그런가?”
“벌은 죄지은 자가 받아야 하는 것이지 않더냐. 헌데 너는 아무 죄가 없으니…….”
그러고 보면 나는 이 얘기를 신시아에게도 했었다.
요루아를 돕는 이유라면서 거창하게 그런 소리를 했던 거다.
왜일까.
왜 굳이 그런 말까지 했던 걸까.
—모두…… 죽어버려……!
—저주한다! 나를 이렇게 만든 너희를! 나를 방관한 너희를!
—이 세상 모든 걸 죽이고, 나도 영원한 안식을…….
요루아를 보면서, 요루아에 대한 기억이 떠오른다.
그건 ‘요루아’이지만, 요루아가 아닌 다른 것에 대한 기억.
내가 손쓸 도리 없이, 플레이어가 어찌 간섭할 여지 없이.
이미 절대악(絕對惡)으로 거듭나버린 무언가.
“보스? 갑자기 말을 하다가 멈췄다.”
분명 화면 너머에서의 일일 텐데, 왠지 모르게 그 모습이 눈앞의 요루아와 겹쳐 보여서.
—나도 이제…… 편안해질 수…… 있겠어…….
—졸려…… 졸려…… 엄마…….
이 아이가 그렇게 되어버린다는 것이, 그 사실이…… 견딜 수 없이 끔찍해서.
“아무……것도 아니다.”
“시시하다, 보스!”
“그보다도 걱정되지 않는 거냐. 내일부터 어떻게 될지.”
요루아는 싱긋 웃었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든 괜찮다.”
“………….”
“보스가 괜찮다면, 나도 괜찮은 거다.”
정말로 순수하게, 녀석은 그렇게 웃어 보였다.
이전처럼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억지로 짓는 미소가 아니라, 어딘가 후련한 듯 웃고 있었다.
‘이런 녀석을 대체 어떻게 버리라는 거냐…….’
나는 말한다.
“여기서 나가면 내 아들이 되어라.”
—우당탕!
요루아가 화들짝 놀란 듯 발을 버둥거리며 나무판자에서 굴렀다.
“뭘 그리 놀라느냐.”
“아, 아들이라니?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냐! 나, 나는 로스월드의 아이인데…….”
“가르테고와 협상해 너를 입양할 거다.”
갑자기 내뱉는 말이 아니었다.
그건 한 달이 넘는 긴 시간. 오랜 숙고 끝에 내린 결론(結論)이었다.
“그리하면 너는 나의 아들이자, 아스트레이의 인간이 된다.”
“내가…… 아스트레이?”
“그래, 그럼 그 무서운 기사놈들도 함부로 내게 손대지 못할 거다.”
류오넬이 좋아하진 않겠지만, 임시방편으로나마 써먹을 수 있는 방법이다.
“그치만…… 그걸로 괜찮은 거냐?”
“아니, 이걸로는 부족하겠지. 허나 우리가 여기 있는 동안 방학이 거의 다 끝나지 않았더냐.”
“그게 무슨 상관이냐?”
“샤프란에 가면 다시 기숙사를 신청해라. 그러면 또 그 기사 놈들은 네게 손대지 못할 거다.”
샤프란 마법대학교.
제국의 황녀이자, 드높은 임볼릭의 대마도사 샤르미넨이 사랑하는 작은 정원.
그 안에서만큼은 베디비어라도 손쓸 수 없을 터다.
그러면 놈은 기다릴 수밖에 없게 된다.
다시 겨울방학이 되기를.
요루아가 그 정원에서 빠져나오기를.
“그 뒤에는 대신전에 부탁해 네게 축복을 내릴 거다.”
“…………?”
오스트람과 가울이라는 인맥을 발판 삼아 추기경의 축복을 받아낼 거다.
신전이 축복한 아이라고 하면 베디비어는 또 한 번 망설일 거다.
“그 뒤에는 네게 귀족의 작위와 함께 봉토를 내릴 거다.”
약발이 떨어질 즈음엔 류오넬과 협상해 북부에 요루아에게 작위를 내리고, 영지를 줄 거다. 물론 주민도 없는 미개척지겠지만.
봉토를 지닌 귀족을 죽이기란 쉽지 않을 터. 베디비어는 또 한 번 망설일 거다.
“그러고 나면…….”
황위계승전(皇位繼承戰).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이 세계의 거대한 흐름이 굴러가기 시작한다.
황태자와 2황자파가 대립하고, 선제후들이 움직이고, 국경 너머의 타국들마저 이 사태를 예의주시할 거다.
상황이 거기까지 가면, 베디비어는 도저히 요루아를 손댈 수 없게 된다.
‘그 민감한 시기에, 아스트레이 가문의 인간이자, 작위를 지닌 귀족을 죽일 순 없을 테니까.’
물론 나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북부의 중립, 그 지위를 지켜가며 황태자와 2황자가 베디비어에게 압박을 넣을 수 있도록 움직이게끔 할 테니까.
미친 소리 같지만 나라면 가능하다.
충분히 해낼 수 있다.
“잘은 모르겠지만, 보스가 그리 말한다면 나는 믿는다. 그러니까…… 괜찮다고 한마디만 해다오.”
“그 말이 중요하더냐.”
“보스가 괜찮다고 하면 괜찮은 거니까.”
“……그런가.”
나는 요루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다. 이제 괜찮다.”
설령 괜찮지 않더라도, 내가 그리 만들 것이다.
이 작고 어린 아이가 눈물 흘리지 않도록.
내가 그리 만들 것이다.
“그러니까…… 집으로 가자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