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possessed a villain with nothing but a death flag RAW novel - Chapter 199
사망 플래그밖에 없는 악역에 빙의했다 199화
199
샤르미넨 바타체스 폰 멘체스터 레일라인.
제국의 4황녀이자, 위대한 임볼릭 등위의 마법사.
그리고,
‘알 사람은 다 알고 있는 흑마술의 권위자.’
심지어 그녀는 순수하게 마법을 익히는 것에 환장한 인간이라 거의 모든 종류의 마법을 익혔고 또 구사할 수 있다.
당연, 여기에는 타인의 감정을 조종하고 기억을 읽어내는 심령(心靈) 계열도 마찬가지.
내 계획은 여기서 시작된다.
‘그녀의 마법이라면, 내가 봤던 기억을 끄집어내 베디비어에게 보게 해주는 것도 가능하다.’
내가 본 것.
조금 넓은 시각에서 살피자면 한유진이 본 것도 가능할 터다.
‘그리고 플레이어 한유진은…… 이 세상의 종말을 본 적이 있다.
물론 그건 컴퓨터 화면 속의 일이지만, 나는 이 세계가 멸망하는 과정을 본 적이 있다.
그것도 요루아로 인해 멸망했던 베드엔딩의 세계를.
요루아가 죽은 뒤, 종언룡이 다른 몸에 빙의해 세계를 멸망시켰던 광경을.
‘내가 봤던 것을, 샤르미넨을 통해 베디비어에게 보이게 된다면…….’
베디비어를 설득할 수 있다.
요루아를 죽여선 안 된다고.
우리의 최선은 요루아를 지키며, 그가 각성하지 않도록 막는 것이라고.
‘요루아가 실비아와 의사소통이 가능한 걸 미루어보아,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만 하면 녀석의 폭주를 멈출 가능성이 높다.’
‘또 요루아가 꽤나 날뛰긴 했지만, 천년 제국의 결계 덕분에 큰 사상자는 발생하지 않았을 터다.’
‘여기서 베디비어만 납득시키면. 요루아를 죽이면 더 큰 재앙이 온다는 것을 믿게끔 할 수 있다면…….’
아직 수습할 수 있다.
아직은.
“리아. 샤르미넨은?”
“연락을 넣었습니다. 익명으로 류리크 님이 사망하기 직전이라 알렸으니, 머지않아 도착할 겁니다.”
샤르미넨은 샤프란의 지박령 같은 존재다.
방학이라고 어딜 떠나거나 하진 않았을 테고, 특히 개강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샤프란에 머물고 있을 터다.
내 소식만 전해 들었다면 한달음에 달려올 것이다.
‘류리크는 흔한 학생 1 같은 놈이 아니라, 제국의 황족이자 샤프란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한 인사다.’
레베카와 염문설을 퍼뜨리며 종강 파티의 연설까지 했으니까. 그리고 그런 내가 죽기라도 한다면…… 샤프란에도 적잖이 불편한 기류가 흐를 터.
그러니 샤르미넨은 온다. 반드시.
“리아, 요루아의 곁에서 모래시계를 풀어다오.”
“제가 필요하신지요.”
“아니, 자네는 여기서 기다리게. 앞으로도 저택의 집사로, 있어야 하지 않겠나.”
이 자리엔 수많은 눈이 있다.
리아까지 모래시계에서 나와 모습을 드러낸 채 나를 도우면 그녀의 존재가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될 터다.
‘그리되면 이후에 내 곁에 있기가 곤란하겠지.’
리아는 제 입장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했다. 그러니 이제는 내가 해결해야 한다.
“기다리겠습니다.”
“그래.”
이 상황을 마무리 짓기 위해.
이번에야말로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해.
나는 괴리된 공간에서 벗어나 대지에 발을 디뎠다.
“………….”
묘한 인기척을 느낀 걸까, 실비아가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실비아의 시선을 따라 절망으로 일그러져 있던 요루아의 고개도 이쪽을 향한다.
두 얼굴에 두 쌍의 눈에 이채가 서린다.
“류……리크 씨?”
“보스……?”
경이를 목도한 듯, 눈물이라도 흘릴 듯, 커져 버린 두 눈을 보며 나는 천천히 둘에게 다가갔다.
“류, 류리크 씨. 살아 있었…….”
—콩!
“실비아. 너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여길 온 거냐.”
“가, 갑자기 왜 머리를 쥐어박는데?!”
“맞을 짓을 하니까 맞는 거다. 바보 녀석.”
“누, 누가 바보라는 거야?! 나 바보 아니거든?!”
“그런 녀석이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찾아온 것이더냐. 네 목숨에 여벌이 있더냐.”
반은 농담으로 반은 진담으로 나무라자, 그녀가 푹 고개를 숙였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숙인 얼굴에서 눈물이 떨어지는 것만은 선명히 보였다.
“그치만…… 나는 류리크 씨의 호위니까.”
살짝 감동하긴 했다만 여자의 눈물에 흔들릴 내가 아니다.
난 고개를 돌려 모른척했다.
그리고 아직 인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요루아가 눈에 들어왔다.
“요루아.”
이미 절찬리에 주륵주륵 눈물을 흘리고 있던 요루아는 화들짝 놀라며 제 눈을 비볐다.
“보, 보스! 다가오지 마라. 나, 나도 이게 어떻게 된 건지…….”
녀석은 눈물을 훔치며 주춤주춤 두어 걸음 뒷걸음질 쳤다.
나는 네 걸음 앞으로 나아가며 녀석을 껴안았다.
“…………!”
와락, 요루아의 작은 몸이 내 품에 안겼다.
녀석의 몸은 아직 따뜻했다.
묵시룡이라는 괴물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인간의 온기만이 거기 담겨 있었다.
“괜찮다.”
“………….”
“네가 말하지 않았더냐. 내가 괜찮다면, 그건 괜찮은 거라고.”
요루아도 나도 분명 하고픈 말은 많다.
요루아는 제 삶이 저주받았다며 비관하고, 자신이 죽어야 모든 것이 끝날 거라고.
반면 나는 그렇지 않다고, 운명 따윈 존재하지 않으며 그 모든 건 직접 바꿀 수 있다고.
아마 그런 얘기들을 나눴을 거란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사실 이런 순간 가장 필요한 것은,
“그러니까 괜찮다.”
괜찮다는, 그 정말 작은 한 마디라는 것을.
* * *
내 한마디로 온 사방을 헤집던 요루아의 마력이 눈 녹듯 사라졌다.
하늘에서 떨어지던 마물들도, 베디비어와 레펠리오스들을 집요하게 공격하던 마력들도.
모든 것이 한번 꾸고 사라질 악몽이었던 것처럼.
허나 베디비어는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은 채 날카로운 기세를 유지한다.
그 약간의 틈 사이로 내가 먼저 선수를 치고 나간다.
“베디비어, 여기까지다.”
리아의 엘릭서 버프에 더해 위엄 A를 전력으로 발휘하자 살벌한 기세를 흩뿌리던 베디비어의 눈이 이쪽을 향한다.
다만, 그 시선이 내게 닿는 순간.
그의 눈에 깊은 불신이 어린다.
“류리크? 네놈은 방금…….”
“죽다 살아난 모습이 신기한가? 전장에서야 흔한 일 아니던…….”
사락.
볼의 살갗이 벌어지면서 피가 흘렀다.
베디비어의 검이 보이지 않는 속도로 내 얼굴을 옅게 벤 것이었다.
“한 번 살아났다면, 그 목숨을 귀히 여겨라.”
베디비어는 내 뒤편에 반쯤 몸을 가린 요루아를 보고 있었다.
그 짧은 순간, 내가 이 상황에서도 요루아를 보호하려 한다는 걸 눈치채곤 곧장 적의를 드러냈다.
―너를 죽여서라도, 그 괴물을 막을 거라고.
농담 한마디만 더하면 정말로 내 목이 달아날 기세였기에, 나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간다.
“이 소년을 죽이면, 그때야말로 제국에 종말이 도래할 터인데. 정말 괜찮겠나?”
“허튼소리!”
“세계의 종말. 자네도 기억할 터다. 지금도 황궁의 벽면에 조각되어 있지 않던가.”
억지로 끼워 맞추는 소리지만 시의적절한 소재였다.
조각 A랭크인 류리크는 과거, 세계의 종말이라는 거대한 조각을 만들어낸 적이 있다.
“그건 마치 진실로 이 세계의 종말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공포스럽고 또 장엄하다 했었지.”
“헛소리로 나를 농락할 생각이라면……!”
“베디비어, 나는 계시를 받았다.”
만약 현실에서 저런 소리를 했다면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겠지만, 이 세계에서 ‘계시’는 실존하는 현상이다.
물론 추기경급 이상의 사제나 성녀 정도 되는 인간들한테나 일어나는 거긴 하지만.
‘실존한다는 게 중요하지.’
“뭐……라고?”
“나는 요루아가 죽은 이후, 계시를 통해 이 세계가 멸망하는 것을 보았다.”
“헛소리! 그딴 말로 나를……!”
“말로서 자네를 현혹하지 않겠네. 내 본 것을 그대로, 자네에게 그대로 보여줄 테니까.”
이제 샤르미넨만 도착하면 된다.
계시는 거짓이지만, 내가 봤던 영상은 진짜다.
샤르미넨을 통해 내가 봤던 화면 속의 세계가 멸망하는 걸 보여주면…… 모든 게 끝난다.
“그걸 보고도 자네가 납득하지 못한다면, 내 두말 안 하고 비켜 서겠…….”
『그건 좀, 곤란하겠는데.』
머릿속에서 울리는 말이 아니었다.
내 바로 옆, 마치 귓가에서 속삭이듯 그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황한 나는 홱, 고개를 옆으로 돌렸지만 거기엔 아무것도 없었다.
허나 그럼에도 목소리는 이어진다.
『이렇게까지 일을 벌였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면 너무 시시하잖나.』
직감적으로 느꼈다.
이놈이 줄곧 가려져 있던 흑막(黑幕)이라고.
본래 납치 사건만 일으킬 예정이었던 죽음 교단이 준동하고, 신시아의 전이 마법을 틀어막고, 이 사태를 여기까지 몰아왔던.
감히 누구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던 누군가.
‘침착하게…… 침착하게 파악하자.’
이 정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NPC라면 분명, 내 데이터베이스 안에 있는 놈이다.
고령의 노인 목소리.
귀족의 느낌이 배어 있는 말투.
‘이런 식’으로 말을 걸 수 있는 스킬의 소유자.
『또 머리를 굴리는 건가. 너는 정말이지…… 지긋지긋하군 그래.』
‘또’라는 말. ‘지긋지긋’하다는 표현.
나를 아는 인물인가.
아니면 나를 오래도록 관찰한 인물인가.
대체 누구일까.
“뭐냐, 류리크. 왜 말을 하다가 말고…….”
베디비어가 이쪽의 태도에서 기시감을 느낌과 동시에 내 뒤편에서 이상한 기류가 느껴졌다.
[약속된 파멸이 당신을 응시합니다.]“아, 아아악! 머, 머리가…… 아악!”
요루아의 몸에서 무언가 검은 기운이 솟아나고 있었다.
마력이 아닌, 문자 그대로 알 수 없는 것이.
마치 여름날의 아지랑이처럼 시야를 왜곡하며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게 대체……!”
마력은 느껴지지 않았다.
무언가 나타난 것도 아니고 그저 노인의 목소리가 들린 것뿐인데.
돌연 요루아가 이상한 반응을 보였다.
『이 끝에 네가 어떤 결말을 끌어낼지, 즐겁게 지켜보도록 하지.』
요루아가 제 머리를 잡으며 비명을 질렀다.
“아, 아악! 으아아아아악!!”
폭주하듯, 요루아의 마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대체 그 목소리가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 모르지만, 그 노림수가 무엇인지는 파악했다.
—요루아의 각성.
다시말해, 묵시룡의 진체를 불러내는 것.
하지만 그 노림수를 알아차린 순간, 이미 일은 벌어진 뒤였다.
“레펠리오스!”
도미닉 치안국장이 절규하듯 소리쳤다.
그 찰나에 요루아에게서 뿜어져 나온 마력이 레펠리오스의 오른팔을 날려버린 것이었다.
그걸 인지한 순간, 진한 불안감이 몸을 덮쳤다.
“…………!”
아니, 그건 불안감이 아니었다.
“감히……!”
공포.
전율.
두려움.
요루아가 죽으면 제국이 멸망한다는 내 협박에 머뭇거렸던 베디비어가 이성을 잃은 듯 일그러진 분노로 그 자리에 있었다.
“감히 내가 지켜보는 앞에서……!!”
몸이 얼어붙었다.
마치 세계를 짓누를 듯한 압도적인 패기.
문자 그대로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었다.
절로 무릎이 굽어졌고, 한 호흡의 숨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그리고 말 한마디 껴 넣을 수 있는 틈도 없이 그 일은 벌어졌다.
[수호의 검이 대적(對敵)의 심장을 찌릅니다.]베디비어의 검이 요루아의 심장을 꿰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