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possessed a villain with nothing but a death flag RAW novel - Chapter 200
사망 플래그밖에 없는 악역에 빙의했다 200화
200
그곳은 이미 내가 손댈 수 있는 영역을 뛰어넘어버린 상태였다.
레펠리오스의 팔이 날아가는 순간, 베디비어 마음 안의 추가 기울어졌다.
지금까진 여기서 전력을 다하면 뤼겐베르크가 파괴될 거란 계산이 있었겠지만.
더는 아니었다.
제도가 어느 정도 파괴되는 것보다 요루아를 제거하는 게 제국을 위하는 것이라 계산이 끝난 순간…… 이미 멈출 수 없는 수레바퀴가 굴러간 것이었다.
「아, 아아아아아아……!!」
요루아가 자신을 잃은 채 소리쳤다.
[종언을 고하는 묵시룡(默示龍)이 눈을 크게 뜹니다.]—멸망의 문.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마물을 무한정 쏟아내는, 그야말로 지옥의 문이 다시 열렸다.
하늘에서 마물들이 쏟아지는 세기말의 광경이 다시금 재현되고, 베디비어는 각오를 다진 듯 기수식을 취한다.
[베디비어가 ‘제국의 검’을 발동합니다.]돌이킬 수 없는 결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그 미래를 헤아리며 이를 갈았다.
“이런 망할…….”
제국의 수호기사단장, 베디비어.
그에게는 인과와 사유를 초월해 ‘제국의 적’이라는 개념을 인식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제국의 적’을 죽이기 위한 필살의 기술이 존재한다.
—제국의 검.
자신의 생명과 힘 일부를 대가로 제국의 적에게 확정된 죽음을 선사할 수 있는 기술.
‘결국…… 시나리오대로 흘러가는 것인가.’
본래의 시나리오에서 플레이어가 묵시룡을 저지하지 못할 경우, 제도의 절반이 날아가고 수많은 희생이 뒤따르지만 결국은 베디비어가 그를 저지한다.
자신의 수명과 갖고 있는 힘, 특성, 마력 등의 영구적인 결손을 대가로 제국의 검을 사용해서 말이다.
‘그렇게 하면 묵시룡을 저지할 수 있지만……!’
“정신 차려! 류리크 씨!”
실비아가 눈과 입에서 피를 흘리며 외쳤다. 그리고는 내 몸을 껴안으며 전이 마법을 발동시켰다.
“너, 언제 이걸…….”
“됐고 지금은 일단!”
—콰콰콰콰콰!
전이한 순간, 방금까지 우리가 딛고 있던 대지가 비명을 토했다.
번개처럼 쏘아지던 요루아의 마력은 이제 모든 것을 갈아엎은 해일처럼 밀려왔다.
곧 베디비어의 검이 무수한 참격을 쏟아냈다.
해일 같은 마력 폭풍이 벽에 가로막히듯 깔끔하게 소멸한다.
“세상에, 저건 대체 무슨 마법이래?!”
마법이 아니다.
본래는 선(線)으로 베어내야 하는 참격이, 무수히 겹치고 겹친 끝에 면(面)을 소멸시키는 현상을 자아내는 것이었다.
「건방지구나, 인간!」
요루아의 일갈에 그 주위로 거대한 마법진이 그려진다.
이제는 단순히 마력을 휘두르는 게 아니라 마법을 구현하기 시작했다.
당연, 그 마법은 본래 요루아라 알 수 없는 저주받은 것들.
“드디어 베어 죽여도 찝찝하지 않겠어.”
베디비어는 도리어 홀가분한 표정으로 그리 말했다.
더는 흔들리지 않아도 되었다는 것처럼.
요루아의 마법이 베디비어의 검과 충돌한다.
둘 사이에 간격이란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베이비어는 나아갔고 요루아는 버텨 섰다.
—쿠콰콰콰콰콰!
이전과 다르게 강격을 뽐내자 요루아의 몸이 휘청거렸다.
베디비어는 더욱 몰아붙이듯 태산 같은 중검을 연이어 휘둘렀다.
전시용으로 설계되어 폭격마저 막아낼 수 있던 아스트레이 저택은 마치 폭풍 앞의 모래성처럼 갈려 나갔다.
“피해를 막아라!”
“주민들의 대피를!”
저 뒤편에서 수십의 마법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흰색 바탕에 금색 수실을 달고 있는 정복.
황실 마법사단이 움직인 것이었다.
다만 그들조차도 저 싸움에 끼어들 생각은 못 한 채, 여파를 막아내고 주민들을 피하는 데에만 몰두했다.
—스스스스스……!
대지를 물들였던 검은 마력이 점차 세를 잃고 있었다.
요루아는 오래 버텼다.
본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 심장이 꿰뚫렸음에도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것이었다.
그래.
요루아는 버티고 있었다.
「아, 아아아아악!」
이미 반쯤 이성을 잃었다.
저 자신도 모르는 마법을 쓰면서도. 싸우다가도 돌연 저 혼자 머리를 싸매며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요루아 로스월드가 묵시룡의 마력에 저항합니다!]본체의 강림만은 끝끝내 저지하고 있었다.
[종언을 고하는 묵시룡(默示龍)이 포효합니다.] [요루아 로스월드가 묵시룡의 마력에 저항합니다!]이 자리의 누구도 그 사실을 모를 테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나만이…… 그 사실을 알고, 또 바라보고 있었다.
「으, 으아아아아아악!」
안에서 묵시룡이 날뛸수록 요루아는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그러는 사이 멸망의 문은 점차 닫혀갔고, 닿지 않던 베디비어의 검이 그 몸에 상처를 남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순간, 앞으로 달려 나간 베디비어의 검이 다시 한번 요루아의 심장을 꿰뚫었다.
—푹.
그것으로 끝이었다.
제도를 휘감던 묵시룡의 마력이 증발하듯 사라졌다. 재차 열리며 위세를 뽐내던 멸망의 문은 닫혔다.
「아………….」
요루아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리고 나는,
“야를!”
심경의 기사를 소환하며 앞으로 달려 나갔다.
솔직히 죽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최소한 몸 어딘가가 잘려 나갈 거라 생각했다.
그럼에도 나는 앞으로 달려 나가 요루아의 앞을 가로막았다.
“류리크…… 네 놈……!”
쓰러진 요루아의 목을 베려던 베디비어가 멈칫하며 노기를 드러낸다.
“목숨을…… 귀히 여기라고…… 했을 터인데?”
“자네의 검은 이미 심장을 꿰뚫었어. 제국의 검이 제국의 적의 심장을 꿰뚫었단 말일세.”
그건 어떤 방법으로도 돌이킬 수 없는 확정된 죽음을 의미한다.
지금은 얕게 숨이 붙어있으나 머지않아 요루아는 죽는다.
반드시.
“그러니까…… 제발, 닥쳐.”
“뭐, 라고?”
어이없어하는 베디비어를 뒤로 나는 요루아를 내려다본다.
무릎을 굽히고 앉아, 쓰러진 녀석의 손을 잡는다.
의미 없는 관념적인 행위였다.
다만 그 촉감을 느낀 걸까, 의식을 잃었던 요루아의 눈이 아주 조금 뜨였다.
“보스……?”
“그래. 나다.”
“……난 이제 죽는…… 건가?”
그래, 죽는다. 틀림없이.
내가 알고 있는 그 어떤 방법을 동원해도 피할 수 없다.
다만 나는 아무 말을 않았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었다.
요루아가 힘없이 웃었다.
“사실은…… 괜찮지 않았다.”
“………….”
“보스가 괜찮다고 해도…… 무서웠다.”
“………….”
“많이…… 많이…… 무서웠다.”
그래. 죽음이 두렵지 않을 리가 없다.
아무리 괜찮은 척해도 한계는 있다.
억울하게 증오를 받는 것이, 그로 인해 목숨을 잃어야 한다는 게 괜찮을 리 없다.
“나…… 죽고 싶지 않다. 조금 더 살아서…… 보스와 함께…… 지내고 싶었다. 여름에…… 숲에서 지냈던 기억이…… 잊히지 않았다. 잠자리는 불편하고…… 먹을 건 별로였지만, 너무 행복해서…… 줄곧 그렇게…… 살고 싶었다.”
“………….”
“가을에는 누님들까지 해서…… 캠핑을 가고 싶었다. 겨울에는 눈싸움이라는 걸……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봄이 오면…….”
흐트러지는 목소리에 나는 몸을 떨었다.
“봄이…… 오면…….”
쓰다만 소설의 마지막처럼 길 잃은 말들이 허공을 이리저리 배회했다.
“………….”
요루아는 마침내 눈을 감았다.
* * *
[요루아 로스월드가 사망했습니다.] [종말을 고하는 묵시룡이 윤회를 시작합니다.]떠오르는 메시지를 뒤로, 나는 눈감은 요루아의 시체를 안아 들었다.
“내려놓아라. 류리크.”
들려오는 말에 심장이 내려앉았다.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주체할 수 없는 분노와 살의가 내 이성을 잡아먹을 듯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증오의 조각은 기어코 내 혀를 통해 흘러나왔다.
“알테온이라 치켜세워주니…… 네가 정녕 지고의 존재인 거 같더냐.”
약간은 연민을 담고 있던 베디비어의 얼굴이 구겨졌다.
“이성을 잃었나. 류리크 아스트레이.”
“네가 그리 위대하다면, 전 대륙에 있는 제국의 적들을 모조리 척살하지 그러나?”
“뭐라?”
“왜. 수왕의 목을 베는 건 두려운가. 아제스의 검은 두렵더냐? 영원의 벽 너머에 있는 사자들은 감당할 수 없겠더냐!”
“…………!”
베디비어의 눈이 크게 뜨여진다.
나는 말을 잇는다.
“내가 모를 거라 생각했더냐. 네가 제국의 적으로 인식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네놈이 어떻게…….”
“그럼에도 네놈은, 그 같잖은 생명과 안위를 고려하며 처리할 수 있을 제국의 적만을 척살한다는 것을…… 내 정녕 모를 것 같더냐!”
아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제국의 적에는 타국의 왕이나 뛰어난 장수, 기사들 역시 포함된다.
다만 그들을 함부로 죽이면 도리어 제국의 위기를 초래할 수 있기에 베디비어는 정치적인 판단 아래 죽이지 않는 것이다.
요루아를 죽이려 할 때, 내 말을 나름대로 고려한 것도 그 때문이다.
허나,
“죽음 교단과 연관된 듯한 어린아이. 참으로 별거 아닌 것으로 보였겠지.”
“………….”
“로스월드의 허가도 받았으니, 간단하게 처리해버릴 생각이었겠지.”
나는 그렇게 말해버린다.
쓸데없는 말을.
의미 없는 말을.
울분을 토해내듯.
화풀이하듯.
“류리크. 아니다. 나는…….”
“이번 일에서 너는 정녕 베디비어로서 최선을 다해 판단하고 결정을 내렸는가.”
“………….”
베디비어는 말을 잃는다.
아마 스스로도 판단이 어려울 거다.
어쨌거나 그 결말은 가히 참담했으니까.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요루아를 죽이면, 그때야말로 제국의 종말이 다가올 것이라고.”
“………….”
“너도 지금쯤이면 느끼고 있겠지. 네가 인식한 ‘제국의 적’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걸.”
요루아 로스월드는 죽었으나 묵시룡은 죽지 않았다.
“아직도 제국의 적이 살아있음을 아직도 느끼고 있겠지. 그러니 지금 이 시체마저 어찌해 보려고 드는 것이지 않더냐.”
“……계시를 받았다는 말이 정말이었던 거냐?”
내 말을 요설로 치부하던 녀석이 이제야 믿기 시작한다.
“그래. 머지않아 네가 상대했던 적은, 이 세계 어딘가에 다시 나타난다.”
어차피 베디비어 앞에서 계시를 운운해버린 상황이었기에 나는 알고 있던 모든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래야, 마지막 남은 수단을 쓸 수 있을 테니까.
“제국뿐이 모르는 네놈은 몰랐겠지만, 그것은 차라리 제국에 있기에 안전한 것이었다.”
“………….”
“만일 그것이 벽지의 소왕국 따위에 나타난다면…… 그를 막아내지 못한 왕국들이 멸망할 것이고, 마물들은 그야말로 끝없이 증식할 거다.”
나는 이미 한 번 보았던 광경이다.
화면 속의 일이지만, 그야말로 지평선을 뒤덮는 무수한 마물들이 대륙을 유린하는 광경을 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화면이 아닌 현실에서의 일처럼 머릿속에 떠오른다.
“제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가 멸망하고, 마물의 세계가 되어버린다면…… 그때야말로 제국의 종말이오, 세계의 멸망일 테지.”
왜냐면 내가 딛고 있는 이곳은…… 현실 그 자체였으니까.
“……대책을 마련해야겠군.”
“되겠더냐. 베디비어.”
“불가능하더라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그렇게 제국을 지켜내는 게 나의 소명이다. 류리크 아스트레이.”
“그래서 가능하겠더냐.”
“………….”
베디비어는 답하지 못했다.
아마 현실감이 떨어져 제대로 상황을 파악할 수 없는 것일 테지.
모든 게 끝났고 아직 세상은 이렇게나 멀쩡한데. 갑자기 머지않아 이 모든 것이 멸망해버린다니까.
“너는 방법이 있는가. 류리크.”
베디비어가 물었고, 나는 답을 망설였다.
주위를 둘러본다.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상념에 잠긴 듯, 그리 행동했다.
그리고 마침내 입을 열었다.
“단 하나, 방법이 있다.”
그건 아마도.
절대로 행해선 안 될, 금기 중의 금기.
“죽은 자를 되살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