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possessed a villain with nothing but a death flag RAW novel - Chapter 201
사망 플래그밖에 없는 악역에 빙의했다 201화
201
가끔 소설을 보면 그런 장면들이 나온다.
죽어버린 누군가를 되살리고자 발버둥치는 인간들의 모습 말이다.
죽은 자를 되살린다는, 불가능을 어떻게든 해보겠다며 별의별 미신을 믿어 버리고 마는…… 안타까운 이야기들.
악마에게 기도하거나.
시체를 보며 아직 죽은 게 아니라 믿거나.
유형은 조금씩 달라도 그런 이야기의 결말은 하나같이 똑같았다.
설령 소중한 이가 되살아난다 해도, 그건 결코 자신이 알던 사람이 아니라는 것.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죽은 자는…… 결코 돌아오지 않는다.
“감히 황실의 수호기사단장인 내 앞에서 사령술을 논하다니……. 정말 기가 막힌 소리다만, 일리는 있군.”
“………….”
“그나저나 샤르미넨이 사령술을 쓴다는 것을 네가 아는 것도 참 놀랍군. 그녀가 말해주던가.”
그 말대로.
나는 샤르미넨의 흑마술, 그 안에서도 금기 중의 금기인 사령술을 통해 요루아를 되살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종말을 고하는 묵시룡이 윤회를 시작합니다.
남은 시간은 하루뿐이 없다.
하루가 지나면 묵시룡은 다른 육체에 자리 잡을 테고, 이조차도 의미 없는 일이 되어버릴 거다.
“잡담할 시간 없다, 베디비어. 서둘러 준비를 해야…….”
“그전에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다.”
“…………?”
이 시급한 상황에서 돌연 베디비어가 진중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네가 솔직하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으니, 나 역시 솔직히 말하겠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꽤나 의외의 내용이었다.
“당연하지만 너 역시 바타체스의 이름을 가진 황족이고, 얼마든지 황위계승전에 뛰어들 수 있는 인물인 만큼…… 우리는 너를 지켜보고 있었다.”
어렴풋이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본인 앞에서 밝혀도 되나 싶은 그런 말들.
허나 베디비어는 꿋꿋이 말한다.
“그리고 긴 시간, 우리가 관찰한 너를 관찰한 뒤 내린 결론은…… 너는 결국에 인간의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이었다.”
뜬금없는 말이었다.
왜 갑자기 이 상황에서 이런 말을 하나 싶은 정말 난데없는 소리.
“바타체스 중에는 어려서부터 그림자와 같은 교육을 받는 부류가 있다. 언제나 이성과 합리에 따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감정을 제거하는 게지.”
그것을 황제의 덕목으로 여기는 이들도 상당히 많고 말이야, 베디비어가 덧붙인다.
“하지만 우리가 지켜봤던 너는 한없이 인간에 가까웠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고, 가슴 아파할 줄 아는…… 그런 종류의 인간 말이다.”
“………….”
“그리고 지금 네가 내뱉은 말은, 인간이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아니다.”
듣고 나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 얘기인가.’
죽은 자를 되살리는 일.
이렇게 말하면 대단한 의식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결국 내가 하는 일은 한 인간을…… 가엾은 일생을 살았던 아이를 언데드로 만들어버리는 일이다.
살아서 괴로움뿐이 없던 누군가의 죽음을 모욕하고, 그 영혼마저 더럽히는.
그야말로 ‘인간’이 해서는 안 되는 일.
“그럼에도 해야 하는 일이지 않던가. 베디비어.”
“………….”
“본인의 아비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황제의 자리 따위 관심 없어서 이곳으로 왔다. 하지만 나 역시 제국의 일원이라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나 역시 바타체스의 황족이란다. 아들아.
“나 역시 바타체스의 황족이라네.”
사실 바타체스 따윈 아무래도 좋았다.
다만 나는 플레이어로서, 그리고 이 세계의 엔딩을 봐야만 하는 자로서…… 멸망을 좌시할 수 없었다.
“그래. 그렇겠지. 허나 류리크. 너는 지금 네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아는가.”
“…………?”
“마치 오래전에 죽어버린 시체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언제부턴가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얼굴의 근육이, 감각이 이상해져서.
분명 리아와 같은 무표정을 짓고 있다 생각했는데. 나는…….
‘눈물……?’
볼을 타고 흐른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슬프지 않은데 울고 있었다.
마치 고장 나 버린 기계처럼, 그러고 있었다.
“나는 그런 얼굴을 한 자들을 숱하게 봐왔고…… 그 말로 역시 지켜보았다.”
“………….”
“괜찮냐고 묻지 않겠다. 후회하지 않겠냐고도 묻지 않겠다.”
베디비어는 말한다.
“다만…… 다시 한번 생각해라.”
* * *
결론은 이미 나와 있었다.
—류리크 님. 이성적으로 생각하시지요. 제도와 한 소년을 견줄 수는 없습니다.
이전에 리아가 말했던 대로…… 아니, 따지고 보면 그 이상의 일이었다.
이건 제도가 날아가는 문제가 아니라, 이 세계의 멸망과 직결되는 문제로 비화했으니까.
그러니…… 애초부터 고민이랄 것도 없었다.
“싫은데요오오오오~.”
그리고 지금, 다시 고민이 생겼다.
“사령술로 요루아 로스월드를 다시 살려내라니이이이…… 내가 왜 그런 짓을 해야 하죠오오오?”
샤르미넨 바타체스 폰 맨체스터 레일라인.
샤프란의 총장이자 흑마술의 권위자가 갑자기 삐딱선을 타면서 일이 이상해졌다.
“지금까지 계속 설명하지 않았나. 요루아의 안에 잠든 묵시룡이 곧 이 세계 누군가에게 전이 된다. 그리되면…….”
“아, 네에~ 네에~ 이 세계가 멸망하든가 하겠죠오오오.”
크흠, 베디비어가 헛기침하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낸다.
이쪽도 적잖이 당황한 눈치다.
“샤르미넨. 내 말을 못 믿겠다면, 심령 마법으로 내 기억을…….”
“류리크 학생. 아니 우리 조카님. 그거 사용하면 기억에 손상 일어나고, 운 나쁘면 백치 된다는 거…… 알고서 하는 소리인가요오오오?”
알다마다.
하지만 백치는 정말 희박한 확률이고, 기억 손상 정도는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
추억을 잃는다면 아쉽겠지만, 지식을 잃는 거면 얼마든지 다시 회복할 수 있으니까.
“멸망을 막을 수 있다면, 그 정도 위험은 감수할 수 있지.”
“그렇지만? 그래도 나는 싫은 걸요오오? 류오넬 오빠한테 미움받기는 더더욱 싫고요오오오.”
보다 못한 베디비어가 끼어들었다.
“황녀 저하. 저도 직전까지 류리크의 말을 믿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말은 충분히 신빙성이 있고…… 제가 인지하는 제국의 적은 아직 살아있습니다.”
“뭐, 그 말이 사실이라고 치죠. 하지만 그래서 뭔데요오오오?”
샤르미넨이 말한다.
“나는 제국 따위 아무래도 좋고, 이 세계는 더더욱…… 상관없는 걸요오오?”
그래.
생각해 보면 그것도 그렇다.
그녀에게 소중한 것은 샤프란이라는 작은 정원, 그리고 몇 명의 동료들뿐일 테니까.
“그리고 내가 만약 요루아를 되살린다면, 영원히 우리 조카님한테 증오받을 텐데…… 너무 손해가 막심하잖아요오오?”
시간이 결코 여유롭지 않았기에, 나는 거래를 꺼내 들었다.
“샤르미넨.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없는데요오오?”
“자네 눈앞에 있는 것은 베디비어다. 상당히 무리한 요구라도 해낼 수 있는 남자다. 흑마술에 대한 규제를 완화한다거나, 마녀들에 대한 정책을 바꾸는 것도 어느 정도는 가능할 터다.”
내 나름대로 샤르미넨이 원할 법한 말들을 꺼냈다.
하지만 그녀의 관심사는 전혀 다른 곳에 있었다.
“흐으응.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두 가지 조건이 있어요오오. 일단 첫째는 이거.”
웃챠, 샤르미넨이 제 가슴팍에 손을 넣더니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이건 찌른 사람을 언데드로 만드는 무시무시한 아티팩트랍니다아아.”
“………….”
“이걸로 요루아의 심장을 찌르는 거예요오오. 우리 조카님이. 직접.”
예컨대 그 말이었다.
앞서 말했던 증오받고 싶지 않다는 것.
자신이 요루아를 언데드로 만들면 내가 결국 그녀를 증오하게 될 테니…… 그걸 피하고 싶다는 거겠지.
“쓰고 버리는 소모품으로 언데드를 만드는 건 괜찮지만, 소중한 사람을 언데드로 만드는 건 전혀 다른 얘기거든요오오.”
샤르미넨이 눈으로 말했다.
—한 생명을 모욕하고, 그 영혼마저 더럽히는 죄악은, 그 업은…… 스스로 짊어져라.
“죽이는 순간도 괴롭지만, 그것이 언데드가 되어 살아난 순간.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모든 순간…… 아~ 그거 정말 사람이 할 짓이 아니란 말이죠오오오?”
“………….”
“마녀 중에 그런 짓 하는 애들 한두 명 본 게 아니라…… 아차, 베디비어. 이건 못 들은 걸로오오오.”
“알겠다. 두 번째 조건은 무엇인가.
“둘째는 이번 일을 보고 마음을 먹은 건데…….”
샤르미넨이 약간 말끝을 흐리며 이쪽을 곁눈질한다.
내 스스로 요루아를 언데드로 만드는 것보다 지독한 조건인 건가, 약간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졸업한 뒤에, 대학원생이 되요오오.”
“…………!”
“맥컬런이랑 베르테 학과장이 떠들 때는 헛소리로 치부했지만…… 이번 일을 겪으면서 확신이 생겼어요오오.”
샤르미넨의 손가락을 휘두르자 허공에 여러 가지 영상들이 떠오른다.
이번 사태로 무너진 폐허가 비춰졌고.
죽은 자들을 수습하는 모습이 비춰졌고.
아직 죽지 않은 마물들과 싸우는 모습이 비춰졌다.
“이 세계는 우리 상냥한 조카님이 감당하기엔 너무 위험해.”
샤르미넨이 제 특유의 말버릇을 사용하지 않았다.
모든 것을 장난스럽게 치부해버리는 말꼬리 늘어뜨리는 걸 그만둔 것이었다.
장난스러운 기색이 사라진 ‘샤르미넨’ 본인의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한다.
“사랑하는 조카님. 소중한 우리 조카님. 결국에 기댈 곳이 없어 내게 찾아온 조카님.”
샤르미넨이 다가온다.
레베카에게서나 느껴졌던 마성 같은 무언가가 물씬 풍겼다. 다만 그것은 사람을 유혹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불길하고 아주 위험한 것이었다.
“……애초부터 내 곁에 있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잖아?”
묘한 분위기에 베디비어가 움찔했지만, 샤르미넨이 손가락을 까닥이며 마력을 발하자 그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내 몸은 얼어붙는다.
이제껏 여러모로 그녀를 농락하듯 상대했지만, 현실은 그랬다.
임볼릭 중에서도 누구보다 이테아에 가깝다고 평가받는 대마법사.
그녀가 발하는 기운에 나는 몸 하나 까닥할 수 없이 그대로 굳어버리고, 샤르미넨의 손가락이 쿡 내 단전을 찔렀다.
“류오넬 오빠가 아니라 나를 먼저 찾아왔어야지. 뭐가 되었든 샤프란으로 도망쳤어야지. 그리고 나한테 기대고, 나한테 부탁했어야지.”
“………….”
“조카님도, 요루아도 샤프란에 있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 베디비어가 뭐라 한들. 설령 내 아버지, 황제 폐하께서 뭐라한들.”
닿았던 손가락이 천천히 위를 향한다.
천천히.
천천히.
가슴을 넘어, 내 턱 끝으로.
“나는 내 소중한 것들을 지켰을 테니까.”
눈앞의 샤르미넨은 더 이상 유녀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러니 류리크. 약조하렴.”
내 가슴을 넘어 목 정도까지 커져 버린 키.
얼굴은 샤르미넨이었지만, 앳된 모습은 사라져버린 원숙한 여인의 모습.
이것이 바로 샤르미넨의 진짜 모습.
“앞으로는 내 곁에 있겠다고. 그리고 졸업한 뒤에도 샤프란에 남겠다고.”
그녀의 감정에 반응한 마력이 넘실거리며 조금씩 내 몸을 건드린다.
“내 소중한 것이 되겠다고. 네 미래를 내게 주겠다고.”
그리고 그녀는 말한다.
“……내가 널 지켜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