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possessed a villain with nothing but a death flag RAW novel - Chapter 203
사망 플래그밖에 없는 악역에 빙의했다 203화
203
할카데르, 아스트레이 저택의 별채.
요루아의 사건 이후, 샤프란은 휴교를 선포했고…… 나는 이곳에서 시체처럼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눈이 뜨여 있는 순간은 하늘을 보고.
굶주림에 지쳐 몸이 견디지 못하면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면 하늘을 올려다볼 뿐인 삶.
하루가 하루로 귀결되지 않아, 시간의 흐름마저 모호해진 가운데…… 나는 그저 그러고 있었다.
—저러다 죽는 거 아냐?
—그래도 기절하면 리아 님이 뭔가 먹이시니까…….
—그만큼 충격이 크시다는 거겠지.
—나는 이해해. 죽음 교단이 소환한 몬스터 때문에 요루아 공자가 죽었다잖아.
시종들의 말소리가 들린다.
저들이 말하는 대로, 이번 사건은 여러 가지 은폐와 왜곡이 있었다.
진상을 알고 있는 건 로스월드 관계 일부, 수호기사단 그리고 몇몇 정보기관 정도.
대중에게는 저런 식으로 설명이 난 상황이었다.
—죽음 교단이 대규모 의식을 통해 몬스터들을 소환해 제도를 공격했다.
언론은 죽음 교단에 대한 집중포화를 시작했고, 대중의 민심도 급격히 나빠졌다.
치안국은 죽음 교단을 이 잡듯 찾아다니기 시작했고…….
잠잠하던 교단은 크게 세력을 잃으며 더 깊은 음지로 숨어들었다.
그 여파는 시스템 메시지로도 확인되었다.
[신들의 몰락 에피소드가 종료되었습니다.] [불완전한 완료로 인해 보상이 누락됩니다.] [업적 ‘이변을 일으키는 자’를 획득하였습니다.]아직 주교와 추기경급들은 건재하나 최종 보스로 활약해야 하는 요루아가 사라졌다.
그에 따라 본래 일어났어야 할 메인 시나리오 하나가 증발해버린 것이었다.
‘물론 죽음 교단의 주력은 여전한 만큼, 언젠가 다른 식으로 움직이겠지만…….’
똑똑.
생각이 깊어지던 중, 돌연 창문에 그림자가 드리운다.
노크 소리에 고개를 돌려 공허한 눈으로 물끄러미 바라본다.
—끼익.
상대방은 스스럼없이 창문을 열어젖히며 안으로 들어왔다.
“여전히 시체 같은 얼굴을 하고 있구나. 류리크 아스트레이.”
“……떠나는 건가. 베디비어.”
간단하게 아스트레이의 보안을 뚫고 들어온 베디비어는 어딘가 홀가분한 느낌이었다.
“이제는 필라르메라고 불러라. 나는 베디비어의 이름을 내려놓았으니까.”
“후임이 정해졌는가.”
“신변 정리를 하며 대충이나마 내정했다. 물론 선택은 폐하께서 하시겠지만.”
예상했던 대로의 일이라 그다지 새로울 건 없었다.
다만 이어가려는 물음의 직전, 나는 잠깐 머뭇거렸다. 마치 말문이 막힌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자 먼저 말을 베디비어, 아니 필라르메가 먼저 입을 열었다.
“뭐냐, 요루아에 관해 묻고 싶은 거 아니었나.”
“………….”
“요루아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 너와는 마주치지 않는 편이 나을 듯해서 말이지.”
그런 일을 숱하게 지켜봤던 듯, 필라르메가 깊은 눈동자로 말을 잇는다.
“죽은 자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네.”
“그런가…….”
“위안 되는 소리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힘을 내라. 네 곁엔 너를 사랑해주는 이들이 있지 않던가.”
사랑해주는 이들이라.
의외로 그 말에 떠오른 이름들은 여럿 있었다만, 거기엔 의외의 이름 하나가 있었다.
—샤르미넨.
마지막에 그녀는 다소 위험하리만치 내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거기서 드러난 일면(一面)은 당연, 내가 상정하지 못했던 무언가였다.
‘본래에는 위르겐하이에서 류리크가 죽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던 작자였다.’
‘하지만 내가 샤프란에 입학하고, 교류하게 되면서…… 그녀 안에 잠들어 있던 무언가를 끌어낸 것이겠지.’
그게 길할지 흉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어쨌든 그 사실을 기억해둔다면, 조금은 견딜 만할 거다. 류리크.”
“짐을 덜어주어 고맙네. 필라르메.”
내 말의 안쪽을 읽어낸 필라르메가 쓴웃음을 짓는다.
“요루아의 죽음에는 내 책임 역시 존재한다. 네 말에 조금 더 귀 기울였다면, 지금과 다른 결말이 있었을 테니까. 그러니 고마워할 필요 없다.”
“………….”
“또 요루아를 안전하게 지키는 것 또한 제국을 위한 일일 테니, 어떻게 보면 내 의무를 다하는 것뿐이지.”
필라르메는 ‘제국의 검’을 사용하며 수명과 힘을 잃었다. 허나 그렇다 해도 전직 베디비어였던 존재.
요루아를 지키기에는 충분할 터였다.
“그러니 류리크. 너도 그만 떨쳐내고 일어나라.”
“………….”
“죄책감에 대해 스스로 망가뜨리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결국은 딛고 일어나야 하지 않겠나.”
그래.
이제는 슬슬, 움직여야 할 테지.
***
폐인으로 있는 동안 많은 것을 돌아봤다.
새로운 것을 익히거나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저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죽 돌이켜보았다.
이런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한 후회이자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복기로.
‘나는 분명 이 게임의 고인물이다.’
한두 번이 아니라, 수백 번을 반복하며 이 세계의 엔딩을 봤고 불가능이라 여겨졌던 엔딩들까지도 성공해낸 바 있다.
당연 이 세계에 대한 지식으론 그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다.
지리, 문화, 역사와 같은 배경지식은 물론 여러 세력의 관계도나, NPC 개개인에 대한 신상까지…… 그야말로 치트 수준의 지식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매번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여기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대표적으로는,
—루나틱 난이도.
—악당의 말로.
그리고 이번에 드러난,
—의문의 노인 NPC.
이 셋이 주요하게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이것들이 문제인 이유는, 내가 예측하거나 가늠할 수 없는 무언가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단순히 몬스터가 강력해지거나 적이 많아지는 문제가 아니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건’을 일으킨다.
그러니 내게 필요한 것은 안전책의 마련과 변수를 제거하는 것이고. 그쪽을 생각하다 보니 문득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리아.
류미엘의 기사이자, 아스트레이 소저택의 집사.
지금은 나를 감시한다는 명목으로 내 곁에 있는 정체불명의 소녀.
그녀에 대해 의구심을 가진 지점은 여기였다.
—류리크 님은 소인을 무어라 생각하시는 겁니까.
—편리하게 요술을 부리는 지팡이 정도로 여기셨다면, 송구합니다만 힘이 되어드리기 어려울 듯합니다.
상련에서 밀수를 저지르는 이를 밝혀내는 과정에서 그녀는 이상하리만치 까칠하게 반응했다.
당시엔 그녀의 관할이 아니고, 상대가 상련이니 만큼 그럴 수도 있겠지 하며 넘겼다.
허나,
—탈출합니다, 류리크 님.
—제가 농담하자고 엘릭서를 부었겠습니까?
—당신은 정말로…… 이 일에 책임이 없으십니까?
이번 일에는 너무나도 깊이 개입했다.
상련이 껄끄럽다고 발을 뺐으면서 수호기사단의 일에는 너무나도 깊숙하게 개입했다.
심지어 내가 바란 것도 아니었다.
나는 리아의 입장을 이해하기에 애초부터 그녀에게 큰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었으니까.
‘그럼에도 그녀는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개입했고…… 말도 안 되는 아이템을 사용했지.’
—엘릭서.
그리고,
—아쉬오크의 모래시계.
현재는 소실되어버린 고대마법(古代魔法)의 힘이 담겨 있는 최상급 아티팩트로, 감히 황실 마법사들도 사사로이 쓸 수 없는 물건이다.
헌데 리아는 이 두 가지를 사용했고.
그 순간, 나는 애초부터 그녀에 대해 잘못 알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플레이어 한유진이 알고 있던 리아는 지금의 리아와 꽤나 다른 모습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몇 년이 지난 뒤에 보게 될 그녀의 모습.
연하늘색 머리카락.
푸른 눈동자.
그리고,
—제국의 0급 정보조직 ‘그림자’의 부대장이라는 직함.
내가 그녀에 대해 알고 있는 건 그게 전부였다. 기호품으로는 홍차를 좋아하는, 제국 최고의 첩보원이자 암살자라는 사실.
그 외의 것은 나조차도 알 수 없었다.
그만큼이나 베일에 가려진 존재이고, 접촉할 수조차 없는 인물이니까.
허나 그녀는 게임이 시작되기 수년 전부터 류리크의 곁에 있었다는 게 밝혀졌다.
그걸 파악한 시점에서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현재의 리아는 수많은 ‘그림자’ 중 한 명이다.
그렇다면 누구의 그림자인가?
—류미엘은 황자도 아니고, 이실리엔도 아니니까 제외.
—류오넬의 그림자는 다른 인물이니까 제외.
—샤르미넨에겐 그림자가 없으니까 제외.
자연스럽게 나는 황태자, 혹은 2황자 측의 누군가를 떠올렸다.
다가오는 황위계승전을 위해 류오넬을 견제한다는 의미에서 나름 타당한 추론이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리아가 황태자나 2황자측의 그림자였다면 레베카든 레기아든 보다 수월하게 나를 상대할 수 있었어야 한다.
허나 둘은 나를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래서 나는 생각을 달리했다.
‘누군가에게 배속된 그림자가 아니라, 그저 정보조직의 일원으로서 존재하는 그림자가 아닐까.’
한동안 내 생각은 여기에 정체해 있었다. 그저 수많은 그림자 중 탁월한 능력을 가진 그림자라고.
하지만 이번 일은 어딜 보더라도 선을 넘은 상황이었다.
수호기사단이 제국의 빛이라면 그림자는 말 그대로 제국의 어둠이다.
헌데 그림자 중에 한 명에 불과한 그녀가 수호기사단의 행사에 개입한다?
심지어 일개 단원이 ‘엘릭서’를 소지하고 ‘아쉬오크의 모래시계’를 사용한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납득하려면 리아가 이미 그림자의 부대장이어야 하는데…….’
그건 또 아니다.
현재 그림자의 부대장은 전혀 다른 인물이니까.
—그렇다면 대체 리아는 누구인가.
—애초에 그림자가 맞기는 한 건가.
—그녀는 정말 내가 알고 있는 리아이긴 한 건가.
‘………….’
나는 생각한다.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분명 무언가 있으리라 믿으며, 생각을 거듭했고.
그 끝에 무언가 위화감이 있음을 알아챘다.
분명 용의선상에 있어야 하는데, 어째서인지 애초부터 고려 안 했던 인물 하나 있었다.
‘………….’
제국의 황족이자, 고귀한 바타체스의 일원이며 그림자를 거느릴 수 있는 이실리엔인 인물.
그리고 그 안에서도 자신의 그림자에게 말도 안 되는 권한을 내어줄 수 있는 인물.
‘황제(皇帝)…….’
제국의 황제라면 그 모든 것이 가능하다.
리아가 황제의 그림자라면 이 모든 것이 설명된다.
—그녀가 엘릭서나 아쉬오크의 모래시계를 쓸 수 있는 이유.
—황위계승전 이후, 그녀가 그림자의 부대장에 오르는 이유.
다만.
그렇게 가정했을 때, 단 하나 설명되지 않는 것이 있다.
‘그녀는 대체 왜 내 곁에 있는 것인가.’
황제의 그림자가 대체 왜, 류리크 같은 망나니의 곁에 착 달라붙어 있는 것인가.
그리고 의문은 이어진다.
‘리아가 류리크에게 붙은 것은 류리크가 폐인이 된 직후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가 폐인이 된 계기인 ‘모종의 사건’이 벌어진 직후란 말이다.
‘그렇다면 그 사건은 대체 무엇인가.’
그곳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으며, 불세출의 기재였던 류리크 아스트레이는 왜 그 사건의 직후 망나니가 되었는가.
“………….”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러니,
“류리크 님. 이제 슬슬 밥 정도는 스스로 드시는 편이 어떨런지요.”
나는 입을 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