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possessed a villain with nothing but a death flag RAW novel - Chapter 22
사망 플래그밖에 없는 악역에 빙의했다 022화
022
맥컬런 엘베드 폰 라노 베스키르.
고귀의 13가문, 베르키르의 신예(新銳) 마술사. 엘베드 등위를 취득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샤프란에 들어온 것도 작년이 처음.
초청 교수로 이 자리에 있는 터라 아직 학과, 학파 간의 갈등에 얽매이지 않았다.
‘그래서 아직 공통과목을 가르치고 있는 거지.’
특정한 학과에 속해 있지 않은 자유로운 영혼이고, 여러 파벌들도 그의 역량을 가늠하며 간만 보는 상황이다.
‘나로서는 계속 초청 교수로만 남아주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지혜의 상아탑이라 불리는 샤프란이지만, 그 이면에는 복마전 같은 권력의 암투가 벌어지고 있다.
세상일이라는 게 늘 그렇듯 그런 순수, 선량 같은 것만으로 굴러가지 않기에.
세계 최고의 대학에서 교수라는 직함을 갖는 건, 마법만 잘 쓴다고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치열한 눈치 싸움과 정쟁의 수라장을 거쳐야 따낼 수 있는 것이다.
‘뭐… 맥컬런이 어느 파벌로 간다고 해도 적당히 이용해 먹겠지만.’
간단한 감상을 끝으로 맥컬런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자니, 본격적인 강의가 시작되었다.
교단에 선 맥컬런은 자신의 지팡이를 들어 허공에 반구 형태의 마력을 만들어 냈다. 어떤 술식도 가미되지 않은 순수한 형태의 마력.
그것을 가리키며 맥컬런이 입을 열었다.
“이 세상 모든 섭리와 이해, 천지 만물의 작용은 마력이라는 가장 순수한 힘에 그 근원을 두고 있다. 그 말인즉, 우리는 마법을 통해 세상 모든 이치와 작용을 구현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말이 끝나자 순수한 형질의 마력이 불로, 물로, 바람으로, 흙으로 연달아 변모한다.
“그렇기에 마력을 다룰 수 있는 마법사의 육신을 소우주라 하고, 우리가 품은 소우주는 이 거대한 대우주의 질서를 거울처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루시아사가의 세계관에서 아직 우주는 막연한 형태로 묘사된다. 다른 행성이라던가, 태양계 같은 개념은 없고 그저 하늘의 위에 우주가 있다는 인식 정도.
무협지에서 무공의 이치를 운운할 때 우주를 논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론상 무한한 마력이 있다면, 이 세상의 모든 섭리와 작용을 구현해낼 수 있다는 말이지.”
속성을 보여주었던 그의 마법은 곧이어 작은 폭발을 일으키며 파괴 계통을 보여주고, 조작 계통의 염동으로 연단 위에 있던 책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우리는 이 거대한 대우주에 속한 작은 피조물이며, 그 구성은 얄팍한 피륙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거대한 우주의 편린조차 담아내기 어렵다. 그저 우주의 섭리, 만물의 작용의 일부만을 해석해 계통, 계열, 속성으로 나누어 몇 가지 재주를 부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나 역시 주전은 조화 계통이고 파괴나 소환 계통은 영 꽝이지, 맥컬런은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이 수업에서 거의 모든 종류의 계통, 계열, 속성을 다룬다고 하였으나… 정말로 모든 것을 배우는 건 아니다. 이유를 아는 자 있는가.”
맥컬런이 처음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서너 명의 학생들이 번쩍 손을 들었다. 맥컬런은 그중 한 명을 지목했다.
학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말했다.
“금지 마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맞다. 흔히 흑마술이라 불리는 마법이 있다. 그 역시 분명한 우주의 일부이자, 섭리이며, 작용이지만… 그것들은 보편적인 윤리와 가치에 어긋난 것들이다.”
불쾌한 기억이라도 떠올린 듯, 교수가 작게 이맛살을 찌푸렸다.
“대표적인 것이 혼백 계통의 심령, 사령 계열이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빼앗아 그를 세뇌하고, 조종하는 심령. 그리고 죽은 이의 시체와 영혼을 억지로 움직이는 사령. 이 둘은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흑마술이다.”
“한 가지 더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 속성에서도 흑마술로 분류되는 것이 있다. 바로 어둠이지.”
어둠 마법이 언급되자 실비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슬쩍 보자니, 허벅지 위에 올려둔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움찔거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잘했다.’
나는 내뱉을 수 없는 칭찬을 삼키며, 다시 교단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둠 속성 마법은 심령술, 사령술과 마찬가지로 신전을 중심으로 예전부터 흑마술로 지정된 마법이다. 물론 남부 대륙에서는 새로운 연구와 논문들이 나오고 있다지만….”
더 말하면 좋지 않다는 걸 느낀 걸까, 맥컬런이 헛기침을 하며 말을 정리했다.
“어쨌든 어둠 마법은 명백한 금지 마법이자 흑마술. 호기심으로라도 해선 안 되는 것이다.”
그에 이어 맥컬런은 강의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을 했다. 앞서 했던 것과 비슷한 내용이었다.
흑마술을 제외한 계통, 계열, 속성의 기초를 가르치며 주전을 선택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물론 이렇게 생각하는 학생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이미 내가 쓰는 계통에 만족하고, 주전 마법을 바꿀 생각은 없는데 굳이 다른 걸 배워야 할까. 그런 너희들을 위해 간단한 테스트를 준비했다.”
테스트라는 말에 에에엑, 학생들이 작게 야유를 했다.
물론 맥컬런은 꿈쩍도 않고 미소를 지었다.
“어렵지 않은 테스트다. 여러분은 자신의 주전 마법을 밝힌 뒤, 그 계통, 계열의 마법으로만 과제를 해결하면 된다.”
그의 말이 끝나자 실비아가 어딘가 초조한 눈으로 내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류, 류리크 씨. 주전 마법이라니… 나 어떡하지? 다른 마법은 거의 못 쓰는데….”
얘는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아무래도 ‘학생’들과 실력을 비교해볼 기회가 없었으니 당황한 것이겠다만.
“…잊어버린 모양이다만, 네 실력은 능히 루나사 등위를 취득할 수준이다. 여기 있는 학생 모두가 덤벼들어도 네 털끝 하나 못 건드리지.”
“그, 그건 내 전공을 썼을 때고 다른 마법은….”
“그렇게 따져도 마찬가지다. 자신감을 가져라. 저번에 나와 마법 결투할 때 선보였던 화염 쏜살새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다.”
나름의 위로를 건넸지만, 실비아의 표정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하, 하지만 그것도 류리크 씨가 마력 간섭으로 그냥 파훼했잖아?”
“그건 내가 너무 유능해서 그런 거고.”
“그래도….”
실비아가 뭐라고 더 꿍얼거릴 기색을 보이자, 나는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긴장하지 말고, 평범하게 해라. 이 교실에서 네 실력은 두말할 것 없이 최고다. 그리고 저건 평범한 테스트다. 실패한다고 아무도 뭐라 그러지 않아.”
실제 이 맥컬런이 선보일 테스트는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그저 평범하게 마법사가 왜 ‘전천후’여야 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함이다.
‘자신의 계통만 믿고 뻗대는 학생들한테 역상성이 뭔지를 보여주려는 거지.’
이렇게 간단한 마법을 역상성 때문에 해결하지 못한다 or 이만큼이나 고생하는 거다, 라는 의미를 담은 테스트다.
난도는 벨테인 등위가 머리만 잘 굴리면 클리어할 수 있는 수준.
“제일 앞의 학생부터 앞으로 나오도록.”
그렇게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 * *
테스트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교수가 애당초 시간제한을 10여 초로 두었기에, 학생들은 용쓰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한 번에 해결하느냐, 못하느냐로 갈렸다.
그런 시간제한의 압박 때문일까, 많은 학생들이 간단한 테스트를 앞두고 좌절했다.
“저, 전혀 간단하지 않잖아….”
“분명 기초 마법인데 왜 내 마법이 통하질 않는 거야?”
“교, 교수님 시험 문제가 이상한데요!”
간단한 기초 마법을 파훼해 보라는 것이 테스트였는데, 역상성 때문에 많은 이들이 고전했다.
물론 성공하는 학생들도 적잖이 있었다.
“…바람 속성으로 산소를 제어하면, 불을 꺼뜨릴 수 있죠.”
“일정 수준을 뛰어넘은 고열은 철도 녹일 수 있습니다. 바위 역시 깨지기 마련입니다.”
“조금만 신경 쓰면 충분히 할 수 있네요.”
실비아 역시 어렵지 않게 해냈다.
“류, 류리크 씨! 나 성공했어!”
어렵지 않은 테스트에 가볍게 통과했음에도 실비아는 무척 기뻐했다. 그토록 꿈꾸던 마법 대학에 들어와 처음 뭔가를 이뤄낸 것일 테니, 썩 기분이 좋은 거겠지.
만면에 미소를 띄운 실비아가 제자리로 돌아오고, 이제 내 차례가 되었다.
교단으로 나아가자 타닥, 누군가 책상을 가볍게 두들기며 주의를 끌었다. 약간 각도가 뒤틀려 엉성한 가발을 쓴 마법사.
그는 이죽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위르겐하이의 망나니~ 폐인이 되면서 마력도 사라졌다는데, 테스트를 볼 수는 있겠어어?”
그가 운을 트자, 주변에 친구로 보이는 몇몇 이들이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헤루인이면서 후인의 반지로 대학에 들어왔다잖아? 뻔하지.”
“어이, 한번 그 잘난 헤루인의 실력 좀 보여 달라고!”
누군가하고 보니 입학식 날 밤에 봤던 4인조였다. 내게 시비를 걸려다가 샤르미넨에게 된통 당했던 멍청이들.
나는 작게 인상을 찌푸렸다.
녀석들의 야유가 불쾌한 것이 아니라,
‘…너무 하찮은 엑스트라, 진짜 뭐하는 놈들인지도 모르겠단 말이지.’
NPC 도감에도 나오지 않는 진짜 4류 엑스트라. 그래서 이름은커녕 대체 뭐하는 놈들인지도 정보가 없었고, 내가 파악할 수 없는 상대라는 점에서 불쾌감이 밀려들었다.
물론 4류 엑스트라이니만큼 조금만 조사해 봐도 밑천까지 싹싹 털 수 있겠다만.
“거기 조용하도록! 그 이상 떠들면 벌점을 부여하겠다.”
맥컬런이 중재에 나서자 4인조가 입을 다물었다.
저쪽의 야유가 잦아들자, 맥컬런이 나를 보며 말했다.
“학생의 주전은 뭐지?”
“조작 계통, 간섭 계열이다.”
물론 거짓말이다.
간섭 계열 마법은 디스펠 매직과 같은 ‘마법’을 의미한다. 하지만 내가 행하는 것은 그보다 원초적인 마력 간섭.
그래도 마력 간섭과 그나마 비슷해 보인 계열을 고른 것이었는데, 외야에서 재차 비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풉! 간섭 계여어얼? 그건 루나사 등위의 실전 마법사 정도는 되야 쓸 줄 아는 계열이라고! 헤루인… 아니, 에일레르도 안될 폐인 따위가 무슨….”
“거기 학생. 벌점 3점이다.”
“아, 아니! 교, 교수님…!”
당황하는 엑스트라를 뒤로, 맥컬런이 내게만 들리도록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런 말은 무시하게. 자네가 실력으로 증명하면 될 일이니까.”
내가 알았다는 의미로 작게 고개를 끄덕이자니, 맥컬런이 다시 이전과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학생이 간섭 계통을 주전으로 사용한다면, 테스트는 간단하겠군. 간섭은 어지간해서 무상성이니까.”
그 말을 끝으로, 맥컬런이 바람의 속성을 발현하며 ‘비바람의 구슬’을 펼쳐냈다.
축구공만 한 크기의 구에 비바람을 집약시킨 것으로, 대상에게 닿을 시 거대한 풍압을 유발하는 마법.
‘까다롭지만 할 만하다.’
애초에 교수가 의도한 듯, 마법의 구조가 탄탄하지 않았다.
나는 망설임 없이 마법의 틈새로 마력을 욱여넣었고, 구의 형태를 유지하게끔 하는 겉 부분만 살짝 건드렸다.
‘구의 형태만 망가뜨려도 테스트는 가볍게 통과일 터.’
그러자 마치 풍선에 구멍이라도 난 듯, 비바람의 구슬이 추진력을 얻은 미사일마냥 움직였다.
―슈와아아악!
통제력을 잃은 비바람의 구슬은 순식간에 강의실을 가로지르며 정확히 누군가의 얼굴에 적중했다.
교수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내게 야유를 보내던 놈이었다.
―푸확!
“으아아아악!”
구슬 안에 남아 있던 비와 바람이 일시에 터지면서, 녀석의 얼굴과 상의가 홀딱 젖고 발생한 풍압이 그의 머리카락을 쳐올렸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가 쓰고 있던 가발이 날아갔다.
“아, 아니… 아으아아악!!”
녀석이 허둥지둥 날아간 자신의 가발을 잡으려 했지만, 바닥이 젖어서인지 의자에서 일어나자마자 우당탕, 엎어지는 슬랩스틱 코미디를 연출했다.
‘…전혀 의도하지 않았건만, 어떻게 딱 저기에 날아간 거지?’
모쪼록 샘통이다.
나는 그런 4류 엑스트라를 보며, 적당히 위엄을 섞어 넣은 목소리로 말했다.
“무지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허나 무지를 자랑하는 무식은, 부끄럽게 여길 일이지.”
푸흡, 교실 안에서 누군가 참지 못한 비웃음을 흘렸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조소와 냉소가 뒤섞이며 작은 소란을 일으킨다.
그런 가운데 나는 새삼스레 코트의 주름을 펴며 자리로 돌아왔다.
“마, 말도 안 돼! 분명 모든 마력을 잃었다고…!”
뒤늦게 엑스트라가 절규하는 순간, 맥컬런이 그의 말을 자르며 박수를 쳤다.
“류리크 아스트레이, 훌륭한 솜씨였다. 통과!”
* * *
수업을 마친 맥컬런은 집무실에서 강의 자료들을 정리하며 출석부를 살펴보았다.
처음에는 이름만 부르면서 별달리 의식하지 않았지만, 이번 수업에 꽤나 눈에 띄는 학생들이 있었으니까.
‘류리크 바타체스 폰 드라스카 아스트레이… 왜 반말을 하는가 했더니, 황족이었던 건가.’
맥컬런은 가볍게 웃으며 다른 학생들의 서류 역시 살펴보았다.
그 밖에도 각자의 개성과 재능 있는 학생들이 있었다. 장차 샤프란과 마법계를 이끌어갈 인재들이었다.
그들만 편애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우등생을 눈여겨보아 나쁠 건 없으니까.
‘…다들 쟁쟁한 가문… 음, 이 친구는 의외인 걸.’
그렇게 학생 명부를 죽 훑고 난 뒤, 잠시 휴식이라도 취할 겸 카페테리아로 나왔다.
자리에는 이미 여러 교수들이 앉아, 커피를 홀짝이고 있었다.
그들은 맥컬런을 보자마자 손을 흔들며 그를 반겼다.
“맥컬런 교수, 정말 고생이 많았죠~!”
반갑다는 건지, 할 말이 있다는 건지, 말투에서 미묘한 어감이 묻어난다. 맥컬런은 카운터에서 에스프레소를 주문한 뒤 그들의 테이블에 앉았다.
“고생이라니요. 늘 하던 대로 수업했을 뿐인데요.”
“아니, 거기에 그 학생이 들어갔다면서요. 그 아스트레이의 망나니.”
맥컬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누굽니까?”
“아니, 아무리 연구실에서 연구만 한다고 해도 그렇지 세상 돌아가는 것도 듣고 그래야죠. 류리크 아스트레이. 아스트레이 가문의 유명한 망나니잖아요.”
류리크, 라는 이름을 듣자 이름이 다시 떠올랐다. 하지만 뒤에 망나니라는 건, 그가 잘 모르는 이야기였다.
“제가 봤을 땐… 괜찮은 학생이던데요?”
“에이, 첫 수업이니까 그 녀석도 눈치를 봤던 걸 겁니다. 그놈 말이죠, 아주 문제가 많아요. 이 샤프란에 들어온 것도….”
그 뒤로 교수들이 입을 모아 류리크의 험담을 시작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맥컬런은, 조금 어처구니가 없게 느껴졌다.
‘대학 교수나 되는 양반들이, 옹기종기 모여 학생의 뒷담화나 하고 있다니….’
물론 계속 얘기를 들으면서 류리크의 아스트레이가 ‘그 아스트레이’라는 걸 알게 되자, 대충 이해는 갔지만.
“…아무튼 대체 왜 샤프란에 왔는지도 모르겠다니까요? 약물에 빠져서 폐인으로 산다던 놈인데 말이죠.”
“맞아요. 맞아요. 마법은커녕 몸에 마력도 없다는 소문이 자자한데~.”
귀에 익은 내용에 맥컬런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분명… 수업 때 다른 학생들도 그런 말을 했었지. 마력을 잃어버렸다고….’
하지만 그렇다기엔 류리크는 너무 자연스럽게 마력을 운용했다.
그것도,
‘…일부러 얼기설기 구성한 마법이다만, 그건 디스펠이 아니라 마력 간섭이었다.’
마력 간섭은 흔한 조작-간섭 계열의 마법보다 아득히 어려운 난도를 자랑한다. 디스펠이 여러 증상에 대충 들어맞는 약이라면, 마력 간섭은 정확히 그 증상에 들어맞는 백신과도 같은 것이니까.
‘마력 간섭을 위해서는 상대방이 발현한 마법에 대한 완벽한 수준의 지식을 요구한다. 그 설계의 결점을 공략하는 방식이니까.’
여기가 이상한 부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비바람의 구슬은 재작년 아드리아의 논문 회의에서 나타난 조화의 마법… 평범한 학생은 아직 이 마법의 존재조차도 모를 텐데….’
아드리아의 그 녀석이 직접 가르쳤을 리도 없고, 아직 어떤 마도서에도 등재되지 않았을 터인데.
류리크는 비바람의 구슬을 알았다. 그것도 ‘마력 간섭’을 해낼 만큼 완벽하게.
거기서 발생하는 모순. 그리고 새로운 결론이 맥컬런의 머릿속에서 싹튼다.
‘마법을 알지 못해도 마력 간섭을 해낼 수 있다는 건… 설마 마법의 안티테제(Antithese)라도 된다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