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possessed a villain with nothing but a death flag RAW novel - Chapter 23
사망 플래그밖에 없는 악역에 빙의했다 023화
023
기초 마법학을 제외한 다른 과목들은 별다른 일이 없었다.
첫 수업이다 보니 모두 오리엔테이션이라며 수업 내용이나 강의 방식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이 있는 정도였다.
그렇게 모든 수업이 끝난 것이 3시 무렵, 아주 여유롭게 시간이 남아돌았다.
“하암! 힘들었다! 류리크 씨, 우리 이제 집에 돌아가는 거지?”
실비아가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하품까지 하는 걸 보면 꽤나 피곤한 모양이었다.
아침에 학교에 올 적에, 거의 한숨도 못 잔 얼굴이었으니까.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은 거냐?”
“응. 마음 같아서는 집으로 전이해서 그대로 침대에서 잠들… 어, 잠깐만.”
갑자기 주춤거리며 걸음을 멈춰선 실비아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생각해 보니까 우리 집은 천천히 가는 게 좋을 거 같아.”
저택이 스위트홈이 아니라는 걸 이제 떠올린 거냐.
나는 피식, 웃으면서 가볍게 답했다.
“리아와는 빨리 친해지는 게 좋을 거다.”
“류리크 씨! 우, 우리 조용한 곳에서 쉬다 갈까? 아예 푹 쉴 수 있게 괜찮은 여관이나 호텔을 잡아서….”
그건 이런 상황에서 쓸 말이 아니야, 나는 그녀의 정수리를 손날로 가볍게 때렸다.
“아직 저택으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 할 일이 남아 있거든.”
“으, 으응? 그렇지만 수업은 다 끝났잖아.”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꼭 수업만이 공부의 전부는 아니지.”
내가 당연한 소리를 하자, 실비아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마치 봐선 안 될 것을 본 듯한 얼굴이었다.
“…류리크 씨 설마… 아니지? 진짜, 진짜… 아니지?”
뭐냐, 그 표정은.
잘은 몰라도 이게 그렇게나 심각한 얘기인 건가.
“네가 뭘 아니라고 말하는 건지는 모르겠다만, 우리는 지금 도서관에 갈 것이다.”
“그, 그러어언! 망나니 류리크 씨가 학교가 끝났는데도 공부를 한다니!”
나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일전에도 말한 적 있을 터다. 나는 샤프란에 정말로 마법을 배우기 위해 온 것이라고.”
“아, 아니 그렇긴 하지만… 교수님들도 대충 때우는 첫날인데… 첫날부터… 너무 빡센 거 아닌가….”
실비아가 쿡쿡, 검지를 떼었다 맞대기를 반복하며 자그마한 목소리로 말한다.
“여, 역시 우리 여관이나 호텔 같은 조용한 곳에서 쉬다가 가는 게….”
“오늘 도서관에서 해야 할 중요한 용건이 있다.”
“중요한 용건이라니… 왜 하필 그게 하교할 때쯤 튀어나오는 건데!”
“이건 내가 후인의 반지를 얻을 무렵, 한 보름 전쯤부터 계획하던 일이다만.”
“아니, 류리크 씨! 세상에 어떤 변태가 입학하기 전부터 수업 첫날 계획을 짜?!”
보통 그렇게들 하지 않나?
애당초 나는 예습으로 미리 준비하지 못한 것도 부족하다고 느끼는 참이다.
“내가 그러하다만, 뭔가 불만이라도 있는가.”
“…치, 치사해! 치사하다고!”
뭐가 치사하다는 건지 전혀 모르겠다만.
다행스럽게도 실비아는 저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었다. 덕분에 나는 겨우 ‘목적’에 관한 얘기를 꺼낼 수 있었다.
“오웰름의 마석이라고 들어봤나?”
“오… 웰름? 어… 으음… 어디서 들어본 거 같은데….”
“자아(Ego)를 가진 마석 말이다만, 들어본 적 없는가?”
“아, 맞아! 그 말하는 돌덩어리?”
표현이 참 저렴하구나. 나름 전 세계에서 샤프란밖에 없는 명물인데.
“그렇다. 우리는 그 오웰름의 마석을 보러 갈 것이다.”
“으음, 그 말하는 돌덩어리는 갑자기 왜?”
“마석이 내 안에 잠들어 있는 수많은 재능 중, 가장 뛰어난 유형을 알려줄 테니까.”
오웰름의 마석이 하는 일이 바로 그거였다.
거기에 손을 대서 마력을 흘려보내면, 그 사람의 재능을 가늠해서 알려주는 거다. 어느 계통의, 어느 계열의, 어느 속성이 가장 잘 맞는지.
실비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의문을 표시했다.
“주전 마법을 선택하는 건, 기초 마법학에서 천천히 하는 거 아니었어?”
“기초 마법학은 재능보다 선호라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이것저것 다 해 보고 자신의 성격이나, 취향에 맞는 걸 고른다는 거지.”
실제 그게 중요하긴 하다. 요컨대 앞으로 자신이 평생 가져갈 ‘직업’을 고르는데, 선택할 수 있다면 당연히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기호를 따지기보단, 내 안에 어떤 재능이 있는지가 중요하다.’
내가 특별히 호불호가 있는 것도 아니거니와, 루나틱 난이도의 최우선순위는 최대한 빠른 성장이니까.
“…그건 이해했는데, 굳이 지금 가야 되는 거야? 첫날이니까 조금 유하게….”
“네가 말했다시피 오웰름의 마석은 자아가 있는 마석이다. 그러니… 계속 일하다 보면 지쳐서 대충하게 된다.”
마치 첫 출근한 신입사원과 3년 차 대리의 마음가짐이 다르듯이. 한 달만 늦게 가도 오웰름의 마석이 달라진다.
학기 말에 가면 정말 귀찮다는 듯, 말도 잘 듣지 않으니까.
그렇기에 신학기가 시작된 첫날. 지금 이때 가야, 가장 최상의 컨디션인 마석에게 적절한 진단을 받을 수 있다.
내가 이러한 설명을 죽 덧붙이고 나자, 실비아가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세상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알아보고 계획을 짠 거야?! 독해…! 류리크 씨 진짜로 독하다고!”
* * *
도서관 건물의 어느 별실.
20여평 되는 넓은 방. 정면으로는 아치형 창이 나 있고, 그 양옆에는 천장까지 닿을 듯 높은 서가가 죽 이어져 있다.
방의 구석에는 사다리가 놓여 있고, 바닥에도 마치 고서점의 그것처럼 책들이 켜켜이 쌓여 있다.
한가운데에는 2명이 나란히 앉으면 꼭 들어맞을 소파가 마주 보게끔 되어있고, 작은 탁상이 놓여 있다.
오웰름의 마석은 바로 그 위에 놓여 있었다.
―끌끌끌, 첫날부터 나를 찾는 학생이 있다니… 이거 참, 신기한걸?
마석에게서 목소리가 나오자, 실비아가 인상을 찌푸리며 내 뒤로 숨었다.
“소, 소름 끼쳐….”
―어이 거기 애송이! 지금 뭐라고 한 거냐!
나는 괜히 마석이 토라지기 전에, 본론을 꺼냈다.
“본인의 적성에 대해 알아보고자 왔다. 지금 바로 검사하고 싶다만, 컨디션은 괜찮은가.”
―에, 어흠흠. 방금 저 애송이 때문에 기분은 조금 별로지만… 방학 내내 푹 쉬어서 컨디션은 나쁘지 않지! 으흠!
쓸데없이 얘기해 봐야 시간만 아까울 것이기에 나는 그대로 마석에게 손을 가져다 댔다.
―으흠! 성격이 급한 학생이구나! 오랜만에 찾은 학생이니, 세상 돌아가는 얘기라든가….
“내 재능은 어떤 계통이지?”
―끄응. 재미없는 녀석. 그래 어디 한번 보… 자아…?
마석의 말끝이 기묘하게 늘어진다.
까다로운 재능이라도 나타난 걸까, 잠시 그런 생각을 하자니 마석이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거기 분홍 머리, 잠시 밖에 나가 있어라.
“에? 나? 나 보고 나가란 거야?”
―그래. 잠깐 나가 있어라. 원래 재능은 당사자에게만 말해주는 게 원칙이니까.
나는 마석에게 말했다.
“그녀는 내 동료다. 함께 들어도 상관없다.”
―아니. 나가줘야겠다. 그렇지 않다면 절대 말해줄 수 없어!
이상한 일이었다. 물론 마석에게 ‘결과를 타인에게 말해줄 수 없다.’는 금언(禁言) 마법이 걸려있긴 하다만, 당사자가 괜찮다고 하면 문제는 없을 터인데.
‘무언가 이상한 결과가 나온 건가.’
나는 일단 실비아에게 밖에 나가 있도록 했다. 그러자 오웰름의 마석이 딱딱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네 재능은 현존하는 계통에 존재하지 않는다.
“의외군.”
―그건… 아주 오래된 저주에 근원을 두고 있지.
“………….”
오래된 저주.
이 추상적인 표현에 빗댈 수 있는 것들은 많지만, 그게 ‘계통’이라고 한다면…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오웰름의 마석이 깊게 시름하듯 말한다.
― …라고도 하는데, 새파란 새내기가 들어는 봤을지 모르겠군.
“글쎄, 잘 모르겠는데.”
말은 그렇게 했지만, 당연히 알고 있었다.
게임에서도 써본 적은 없는 계통이지만, 지식으로는 접한 적이 있기에.
―그래. 모르면… 모르는 게 다행이지. 알려고도 하지 마라. 그거에 비하면 차라리 시체로 장난치는 네크로맨시가 훨씬 나을 지경이니까.
금지 마법이자 흑마술인 사령술이 차라리 낫다고 말할 마법. 당연히 그건 쓰면 안 되는 종류의 마법이다.
나 역시 재능이 어떻고와 관계없이, ‘그 마법’은 쓸 생각이 없기에.
“다른 재능도 있을 거 아닌가.”
―으음. 그렇지 다른 건… 어디 보자….
나는 마석에게 마력을 조금 더 불어넣었다. 그러자 마석의 빛이 조금 더 밝아지더니, 금세 답이 나왔다.
―소환 계통이 괜찮다. 정령 소환인지, 계약 소환인지는 모호하다만.
소환이라.
나쁘지 않았다.
―그밖에는 보조도 나쁘지 않다. 그리고… 특별히 못 써먹을 계통은 없군. 너, 꽤 괜찮은 놈이구나?
더욱 괜찮았다.
보조는 폐인 특성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계통이었으니까.
“고맙다. 덕분에 주전을 고르는데 썩 도움이 되겠어.”
―흥, 그보다도… 아까 내가 말했던 그 계통은 잊어라. 어디 가서 그 계통은 언급조차 하지 말고.
아무렴, 내가 그런 말을 떠들고 다닐까.
나는 오웰름의 마석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 뒤, 밖에 나가 있던 실비아를 불렀다.
“내 차례는 끝났다만, 너도 한번 검사를 받아보겠나?”
실비아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내 주전 마법은 예전부터 결정된 거나 다름없으니까.”
* * *
오웰름의 마석을 만난 직후, 도서관에서 보조 계통의 기초 마법 서적들을 읽었다. 도서관이라고 해 봐야 대부분 기초 마법 수준이고, 중위 수준의 마도서는 거의 없는 실정이지만.
보조 계통은 기초 마법만 해도 꽤 유용하게 쓸 수 있었다.
‘폐인 A를 극복할 첫 단계니까.’
그간 여러모로 골치 아팠던 폐인 특성. 그 문제에 대해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기로 했다.
폐인 특성을 일종의 디버프라 생각한다면, 버프를 통해 이를 극복하는 것이었다.
‘가속, 강화, 활력… 이미 존재하는 보조 마법들만으로도 거의 모든 종류의 신체적 결함을 메꿀 수 있다. 오히려 수준이 높아지면, 기사 못지않은 근접전을 구사할 수도 있지.’
실제 보조 계통, 축복 계열에 특화된 마법사들은 지팡이로 어지간한 기사들을 때려잡기도 한다.
인터넷에서 우스갯소리처럼 논하던 힘법사처럼 말이다.
【 ‘새싹의 활력’ 마법을 습득했습니다. 】
【 ‘가벼운 발걸음’ 마법을 습득했습니다. 】
정말 다행스럽게도 신동 A 특성 덕분에, 기초 마법은 그 자리에서 마도서를 읽는 것만으로도 습득할 수 있었다.
내가 책을 대충 읽고서 마법을 선보이자, 실비아는 그야말로 경악했다.
“류리크 씨는 미친놈인 거 같아. 아니, 이게 말이 돼? 아무리 기초 마법이라지만 어떻게 읽으면서 마법을 바로 습득하는 거야?!”
“대충 배울 건 배웠으니, 슬슬 밖에 나가도록 하지.”
“으응? 류리크 씨 재능이 소환이랑 보조라면서? 소환은 안 보는 거야?”
“소환은 지금 쓸 만한 것이 아니다.”
일단 정령 계열은 현재의 나로서는 사용할 수 없다. 오웰름의 마석은 몰랐겠지만, 나는 ‘악인’ 특성을 갖고 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정령은 성향이 악한 사람과 상극이다.
‘정령을 소환해봐야 내 말을 듣지도 않고, 고위 정령은 오히려 나를 공격하겠지.’
남는 것은 계약 계열이 되는데.
‘계약 소환은 매개체를 사용하는 것이 기본이니, 적절한 준비가 필요할 테고.’
아무런 준비 없이 대충 계약 소환을 하면, 정말로 ‘대충’ 같은 결과가 나온다. 아무짝에 쓸모없는데 마력을 낭비하는 셈이 된다는 소리다.
“뭐, 류리크 씨가 그렇다면 그런 거지.”
기초 마법을 바로 배운 것이 그렇게나 충격적인 걸까, 실비아는 별다른 말 없이 납득하는 모양새였다.
그렇게 우리는 저물어가는 하늘을 보며 샤프란을 나섰다.
늦은 저녁이기에 학생들은 대부분 기숙사로 돌아가거나 해서, 교정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특히 파도치는 소리가 들리는 외벽으로 나올 무렵엔 순찰대원을 빼곤 아무도 없었다.
덕분에 실비아도 나도 실컷 잡담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말이지, 내가 위르겐하이에서 10만 리브라를 땄다는 거 아냐!”
“문득 든 생각이다만, 주말에는 거기서 돈을 벌 생각이 없는가.”
“이봐요, 류리크 씨! 이젠 하다하다 나한테 앵벌이까지 시키려는….”
주변에 아무도 없었기에.
실비아와 시답잖은 얘기를 했기에.
나는 다가오는 불운을 너무 늦게 알아차렸다.
“학교생활은 즐거운가.”
입학처의 험난한 내리막길을 죽 내려오자, 바로 앞에 세련된 디자인의 리무진이 기다리고 있었다.
차체의 정면에는 익숙한 엠블렘이 달려 있었다.
―아스트레이를 상징하는 문양.
처음에는 운전기사의 마중이라고 생각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상황은 아니었다.
“본녀는 빌어먹을 광산 인수 건 때문에 며칠 밤잠을 설쳤는지도 모르겠는데, 자네는 참으로 속 편한 인생이야. 아니 그러한가?”
내 운전기사는 온데간데없고, 아스트레이의 시종장 ‘카엘’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원래는 피곤한 것도 있고 해서 저택에서 기다릴 생각이었다만, 시간이 지나도 오질 않더군. 그래서 혹시 도망치는 건 아닌가 싶어, 직접 찾아왔다네.”
류미엘 바타체스 폰 이피로스 아스트레이.
현재 아스트레이 가문의 당주 대리이자, 류리크의 사망 플래그 중 하나. 이미 이 세계에서도 나를 죽일 생각으로 류아라를 충동질했을 인물.
“빌어먹을 나의 오라비여.”
그녀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