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possessed a villain with nothing but a death flag RAW novel - Chapter 3
사망 플래그밖에 없는 악역에 빙의했다 003화
003
“제정신이십니까?”
그리 말하는 리아의 눈빛은 그야말로 기형학적인 것이었다. 무표정을 베이스로 하면서도 순수한 놀람과 경멸, 자신의 귀에 대한 의심과 함께 진실로 궁금해하는 호기심까지.
그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그야말로 기묘한 표정이 되었다.
나는 그 경이에 가까운 무언가를 보며 담담하게 대답했다.
“본인은 늘 그렇듯, 놀랍도록 냉정하고 이성적이라네.”
“기사 대학은 가지 못할망정, 마법 대학이라니… 부디 자신의 위치를 자각하십시오.”
“본인의 위치가 어때서 그런가?”
“아스트레이가(家)가 어떤 가문인지 정녕 모르신단 말씀이십니까?”
설마 그럴 리가.
아스트레이는 루시아사가에서도 아주 유명한 네임드 가문이다.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지.
나는 그저 너무 상식적인 것을 물어보기에, 정말 그걸 몰라서 묻는 건지 의심한 것뿐이다.
“모를 리가 있나. 현(現) 제국의 제 3황자이자 대장군(大將軍)인 류오넬 바타체스 폰 카롤링거 아스트레이가 일궈낸 가문 아닌가.”
류오넬은 후에 벌어질 황자의 난에서 비껴가기 위해 일찍이 황실에서 벗어나 북방의 군무에 투신했다. 그리고 아스트레이 가문을 세워, 현재는 북방의 맹주로 군림하고 있다.
‘북방에서만큼은 황제를 압도하는 영향력을 지니고 있지.’
어떤 루트에서, 누가 황제가 되든 북방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언젠가 정적이 될 거라 의심하며 형제들을 죽이고 죽이는 게 황좌의 원리라지만, 북방만큼은 예외였다.
그만큼 대단한 가문이 아스트레이였다.
“그걸 아시는 분이, 마법 대학에 진학하겠다 말씀하신 겁니까?”
당연 아스트레이는 절대적으로 무가(武家)다. 장남은 제국을 지키는 수호기사고, 장녀인 류아라도 용병단을 이끌고 있다. 그리고 이 세계관에서 기사와 마법사는 별로 사이가 좋지 않다.
마치 고려 시대 문신과 무신을 보듯 하는 느낌이랄까.
“당주께서 윤허하실 리가 없습니다.”
“허면 리아, 네가 생각하기에 나는 기사 학교에 가야 하는가?”
“그것은….”
미안하지만 나는 검치 A다. 기사 학교에 가 봐야 병신 취급받으면서, 비뚤어지기만 할 뿐이다. 원작의 류리크가 딱 그러했다.
“본인을 비웃고자 함이라면 거기서 멈추거라.”
“그런… 뜻이 아닙니다. 소인은 진실로 류리크 님을 걱정하는 것뿐이옵니다.”
“걱정할 것 없다.”
“…그것이 아니라, 류리크님은 검에 경이로울 만큼 재능이 없을뿐더러 마법에도 놀라울 만큼 재능이 없지 않습니까.”
뼈가 아프다.
사무치게 아프다.
“………….”
굳이 따지자면 검치 A는 재능을 깎아 먹는 페널티고, 마도 E-는 아주 개미만 한 수준이긴 하나 어엿한 재능이다!
…라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정말로 그렇게 말할 순 없었다.
‘나한테만 보일 특성을 어쩌고저쩌고 떠들었다만 미친놈 소리밖에 더 들을까.’
나야 ‘플레이어’로서 검치 A와 마도 E-의 가치를 구분할 수 있다지만, 그걸 모르는 제 3자의 입장에서는 ‘그거나 이거나 둘 다 못났지.’로밖에 보이질 않는 것이었다.
“정 뜻이 그러하시다면, 평민들만 입학한다는 녹스론 마법 대학은 가능할지도….”
리아가 진지하게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아서 무척 슬펐다.
“그대의 진심이 느껴져 마음이 아프다만, 본인은 샤프란 마법 대학에 갈 것이다.”
“…거긴 귀족가의 자제들 중에서도 최소 벨테인 등위를 얻은 이들만 갈 수 있는 최고의 마법 대학입니다만?”
“본인은 바타체스의 이름을 가진 황족이다. 그리고 제국의 모든 대학은 황족 특별 전형이 있지.”
당연히 그 특별 전형은 시험, 자격 요건, 심지어 과락조차 없는 문자 그대로 ‘신의 전형’이다. 그냥 입학 원서만 넣으면 100% 합격한다는 말이다.
“………….”
리아의 시선에서 경멸의 기색이 짙어졌다.
“어쨌건 류리크 님의 진로는 제 소관은 아니니 알아서 잘 하시리라 믿습니다만… 그래서 약물 중독과 입학 원서는 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 겁니까.”
나는 지금까지 꿀꿀했던 기분을 한 번에 날리듯 상큼하게 웃었다.
“그건 비밀이라네.”
* * *
약물 중독 랭크가 높을 경우, 그것이 치사에 이르는 이유는 금단 증세가 지독하기 때문이다. 개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것은 광증(狂症).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씩 약물의 쾌락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것을 참으려 하다가 그대로 미쳐버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광증이 나한테는 생기지 않았다.’
그밖에 갖은 상태 이상은 지금도 달고 있지만, 어찌 되었든 가장 치명적인 광증이 없다는 게 중요했다.
아직 명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대충 짐작 가는 바는 있었다.
―류리크가 아닌 한유진은 잿빛수정이라는 약물을 취하기는커녕, 본 적도 없다.
류리크의 몸이 약물에 절어 있을지 몰라도, 내 정신과 기억은 아주 맑고 순수한 한유진의 것이었다. 그렇기에 가장 치명적인 상태 이상인 광증이 없는 게 아닐까.
‘덕분에 시간을 꽤 벌 수 있었다.’
약물에 손대지 않는 일주일. 나는 여러 가지 실험을 하면서 알아낸 것이 있었다.
‘체내의 마력을 순환시키면서 몸 안에 깃든 약물의 기운을 배출하면 금단 증세를 완화시킬 수 있다.’
사실 ‘게임’ 루시아사가에서는 전혀 먹히지 않는 방법이었다. 그렇지만 이곳은 시스템이 아닌 현실(現實)의 법칙으로 움직이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게임 시스템상 마력 수련은 마력의 최대치를 늘이거나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효과밖에 없었다. 애초에 주된 목적도 그것이니까.’
하지만 현실에는 몸에 좋은 뭐가 있다고 하면, 별의별 세세한 부가 효과들이 존재한다. 이를테면 간에 좋은 음식을 먹으면, 간뿐만 아니라 별의별 질병에 도움 되는 것처럼.
마력 수련 역시 어떻게 마력을 움직이고, 운용하느냐에 따라 몸 안의 불순한 무언가를 배출할 수 있었다.
‘꾸준히 마력 수련을 하다 보면 언젠간 약물 중독 자체가 사라지겠지.’
의외로 간단한 해결책이 나와 버린 셈이었다. 물론 모든 게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류리크의 마도 특성이 E-에 불과하다. 그래서인지 마력 수련하는 시간 대비 효과가 너무 낮아….’
신동 A가 있음에도 효율이 바닥을 기는 수준이었다. 그런 현실에 대해 한탄을 하고 있자니, 리아가 짜게 식은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그래서 얼음물에서 마력을 수련하고 계신 겁니까?”
“그러… 하… 하다. 얼… 음물에서 수련… 하는 것은 정… 정신 집중에 도… 도움이 되… 되니까.”
“적어도 지금의 류리크 님께는 전혀 쓸모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춥다.
더럽게 춥다.
“지… 금은 이… 이렇게 하지만, 마법… 마법 대학에 들어가면… 괜… 괜찮을 거다.”
마법 대학은 시스템상으로 버프 효과가 있다. 재학하는 것만으로도 ‘마법 대학 학부생’이라는 직업이 주어지고, 그에 따라 마력 수련에 보너스를 준다.
이것도 대학의 수준에 따라 다른데,
“트… 특히… 샤… 샤프란 마법 대… 학이 최고….”
제국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는 샤프란은 모든 마법 대학을 통틀어 가장 높은 수련 보너스를 준다. 그렇기에 무조건 샤프란에 가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마법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매일매일 얼음물에서 마력 수련을 하시겠다… 이 말씀인거군요.”
“………….”
앞날이 조금 암울하게 느껴졌다.
* * *
아스트레이 공작령, 주도(主都) 할카데르에 특이한 소식이 도착했다. 다름 아닌 가문의 망나니가 개과천선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물론 대다수의 사람들은 전혀 믿지 않았다.
―헛소문이겠지. 그 또라이가 하루아침에 변하겠어?
―허! 그 망나니가? 어지간히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 믿지.
―변할 거였으면 진즉에 변했어야지!
―별장으로 쫓겨났으니 대충 그런 시늉만 하고 돌아올 셈인 게 분명해!
하지만 적어도 한 사람은 조금 다르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류리크가… 마법 대학에 진학할 셈이라고?”
류미엘은 이맛살이 저절로 찌푸려진다는 신비로운 체험을 하고 있었다. 그만큼 이번 소식은 충격적이었다.
그 앞에 선 그녀의 심복은 딱딱한 표정으로 자신이 들은 바를 전달했다.
“지금은 한창 마력 수련에 몰두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면 약물은? 저번에는 약물을 끊는다면서, 별 난리를 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 역시 계속 지키고 있다 합니다.”
류미엘이 저도 모르게 주먹을 말아 쥐었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았다.
“카엘. 잿빛수정에 빠진 중독을, 자력으로 끊은 사례가 있던가?”
“들어본 적은 없으나, 리아가 거짓을 고하는 것이 아니라면….”
리아의 충성심은 믿을 만했다. 그리고 그녀의 성격상 류리크 같은 망나니에게 붙어먹을 가능성은 전무(全無)하다고 봐도 무방했고.
“가문의 망나니가 망나니짓을 때려치우더니, 그만두는 게 불가능하다는 약물을 끊고, 이젠 대학까지 들어가겠다… 인가.”
언뜻 듣자면 무척 좋은 소식이다. 사고만 안 쳐도 감사한 망나니가 알아서 개과천선한다니. 이보다 더 좋은 소식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류미엘의 입장은 조금 달랐다.
“흐음….”
류미엘은 잠시 말끝을 흐린 뒤, 카엘에게 물었다.
“이게 과연 희소식일까?”
“………….”
“아니. 매우, 매우 유감스러운 소식이지.”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카엘이 표정으로 그리 말했지만 류미엘은 이미 깊은 회상에 빠진 상태였다.
“본녀는 아직까지도 그가 했던 미친 짓거리를 잊지 못한다네.”
그녀의 머릿속엔 어릴 적 류리크에게 당했던 기억들이 아직 생생했다. 그때 그녀는 수치심이 무엇인지를 알았고, 분노라는 감정을 이해했다.
“하. 하핫. 어처구니가 없군. 나는 아직도 그 자식 때문에….”
과거를 되새기던 류미엘의 눈동자에서 차가운 분노가 피어올랐다.
“그자는 결국 당주의 자리에 미련을 놓지 못한 모양이로고.”
장남은 오로지 황가와 제국을 위해 사는 수호기사가 되었다. 장녀는 경이로운 무위를 타고 태어났으나 출가한 뒤 용병단을 꾸렸다.
자연히 후계는 차남으로 내정되었으나, 그는 기대를 저버리고 폐인이 되었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와서 본녀의 자리를 빼앗고자….”
바라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만 했기에 어쩔 수 없는 운명이었다. 그렇게 당주가 되는 것에 모든 것을 바쳤건만.
진즉에 기권패로 도망쳤던 망나니가, 반칙처럼 링으로 돌아오려는 게 아닌가.
“류리크 님이 당주가 될 심산인지 아닌지는 아직 모르는 일입니다.”
“놈이 뜻이 없더라도, 주변이 그리 부추기겠지. 주류에 밀려난 놈들이 꼭 그렇게 할 터.”
친족 간의 치열한 혈투는 뭇 황위 계승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평민들도 작은 집 한 채를 누가 갖느냐고 피 터지게 싸우는 것이 이 세상이었다.
헌데 아스트레이 공작령은 소왕국에 비할 영토를 자랑하며, 그 권위와 영향력은 북부에 한해 황제마저 능가한다.
“류리크가 당주가 되겠다, 선언하는 순간 아스트레이 공작령은 반 토막 난다.”
그건 확정된 미래라고 봐도 무방했다.
현재 공작령의 내정은 당주 대리인 자신이 꽉 잡고 있다지만, 주류에서 밀려난 세력들이 단합하면 일이 복잡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사실 정당한 계승 서열을 논하자면, 막내인 자신보다 셋째인 류리크가 우위에 있기에.
그때 류미엘의 머릿속에 무언가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류아라 언니는 요즘 뭐 하고 지내지?”
“지금 예르파드의 승급 심사를 기다리는 중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 그래. 아버지의 입김 때문에 계속 미뤄지고 있다지?”
순간 류미엘의 눈이 반짝였다.
“오랜만에 언니에게 부탁을 좀 해야겠군.”
북방의 맹호(猛虎)라는 아버지의 성정을 가장 빼닮았다 불리는 장녀 류아라. 그녀라면 류리크 따윈 묵사발을 낼 수 있으리라.
‘최상은 눈 돌아간 언니가 류리크를 패 죽이는 것. 차상은 어디 하나 박살 내서 병신으로 만드는 것. 그리고 못해도….’
즐거운 상상이 떠오른 듯 류미엘이 미소 지었다.
“지레 겁먹고 제 분수를 깨닫겠지.”
류미엘이 마음속으로 간곡히 바랐다.
‘형제여, 부디 더 이상 세상에 해악을 끼치지 말고, 그 시궁창에서 영원히 살아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