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possessed a villain with nothing but a death flag RAW novel - Chapter 66
사망 플래그밖에 없는 악역에 빙의했다 066화
066
중간고사의 아침이 밝았다.
떨리는 시험의 당일이 된 것이지만, 실비아의 마음은 도리어 어딘가 가벼웠다.
‘이제 류리크 씨의 미친 공부가 끝난다는 거잖아?’
두 달 있으면 기말고사고, 그 이전부터 공부로 들들 볶일 것이 뻔했지만… 지금의 실비아는 그저 공부에서 해방될 거란 사실이 기꺼웠다.
류리크는 그걸 보며 슬쩍 묻는다.
“실비아, 긴장되는가.”
“전혀요.”
“…뭔가 내가 생각하는 거랑 다른 의미의 대답 같다만, 어쨌건. 크게 걱정하지 마라. 늘 말했지만 네 실력은 능히 루나사 등위에 닿는다.”
류리크가 늘상 하던 말.
그리고 실비아 자신도 조금씩은 느끼고 있는 말.
“물론 섬세한 마력의 컨트롤은 아직 미흡하나, 그 역시 점점 나아지고 있지.”
“그렇지! 내가 좀 쩔긴 하지!”
“이론은 여전히 꽝이지만.”
“윽.”
류리크의 시선은 옆으로 돌아가 메이린을 향한다.
“메이린, 너는 계산이 빠르고 두뇌가 영특하다.”
“…으엣, 하. 으, 으아. 악. 시, 싫어. 공부. 흐… 싫, 어엇….”
“메이린? 왜 그러지.”
“시, 싫어… 싫어… 으… 으으… 에으으….”
메이린이 갑자기 주저앉으면서 저런 소리를 내뱉고, 실비아는 류리크에게 짜디짠 시선을 던진다.
“쯧쯧. 이게 다 류리크 씨가 공부를 빌미로 괴롭혀서 그런 거 아냐.”
“아니, 본인은….”
“류리크 씨! 이 불쌍한 메이린 씨의 모습을 보라고! 이걸 보고도 뻔뻔하게 자기를 변호할 셈이야?! 정말 그러면 인간도 아니야!”
“…흠. 불면제를 먹이고 밤샘을 시키는 건 좀 무리였는가.”
“엄청나게! 엄청나게 무리였거든?! 누가 봐도 그건 미친 짓이었거든?!”
다음부턴 그 점을 유념토록 하지, 류리크는 덤덤하게 말을 잇는다.
“아무튼 메이린. 네 자신의 마법 실력은 그리 나쁘진 않다. 고작해야 1학년의 시험에 발목 잡힐 정도는 아니지. 그동안 공부한 대로만 하면 이론 시험은….”
“흐에에에엑! 으, 엑! 에… 싫어… 싫어… 싫어….”
“뭐라 말도 못 하겠군.”
류리크는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으며 다른 방향으로 향했다.
“그런고로, 모두 힘내게. 무사히 중간고사를 마친다면, 다시 한번 프라레 구이스토를 대접하지.”
“…평소 같으면 좋아 죽었을 텐데, 이제는 전혀 기운이 안나.”
“………….”
—너무 혹사시킨 건가.
—이건 예상 밖이군.
류리크는 혼자 중얼거리면서, 저편으로 사라졌다.
메이린은 여전히 주저앉은 채 들리지 않는 말을 중얼거리고, 실비아는 물끄러미 류리크의 뒷모습을 끝까지 지켜본다.
그리고,
“메이린 씨. 류리크 씨 갔어.”
“…그래요?”
“응. 이제 눈에 보이지도 않아. 완전히 사라졌어.”
파하!
메이린이 숨을 크게 토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 따따따땃!”
허리를 살짝 뒤로 꺾으며 기지개를 켜자, 메이린의 입에서 독특한 의성어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실비아는 힘찬 파이팅 포즈를 취하며 말한다.
“메이린 씨, 이번에도 연기가 끝내줬어!”
“그래요? 후후. 다행이네요. 정말.”
“류리크 씨가 저렇게 맥도 못 추는 거, 진짜 보기 드문 일이거든.”
실비아의 감탄에 메이린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어라? 지금 말고도 류리크 씨가 맥을 못 추는 일이 있어요?”
“응. 저택에 괴물이 있거든.”
리아 님이라고, 류리크 씨와 쌍벽을 이루는 괴물이 있어. 실비아가 덧붙인다.
“아무튼 메이린 씨, 명품 연기 나이스!”
“헤헤. 상인으로서 당연한 덕목일 뿐이에요. 그런데… 다음에도 먹힐지는 모르겠네요.”
“다음이고 자시고, 나는 지금 이 순간만 넘길 수 있어도 최고라고 생각해!”
그때 메이린이 무언가 생각난 듯 말한다.
“아 참, 이러고 있을 시간이 아니네요. 시험이 곧 시작되잖아요.”
“맞네. 지~인짜, 시험은 류리크 씨랑 다른 곳에서 봐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후후후. 실비아 씨, 우리 힘내요! 이 시험이 끝나면 프라레 구이스토는 제가 대접할 테니까.”
“메이린 씨, 완~전 좋아!”
류리크가 곁에 없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해질 수 있다니.
잊을 만하면 떠오르는 행복에, 두 소녀는 웃는 얼굴로 시험장을 향했다.
* * *
샤프란 마법 대학의 1학년은 학과의 구분이 없고, 분반에 따라 80명씩 나뉜다. 그리고 모든 학생들이 똑같은 공통 과목을 듣는다.
마법사로서 필요한 기본적인 수학(受學) 능력을 쌓은 뒤, 전공을 배운다는 이유에서였다.
한편 모든 1학년생이 분반에 관계없이 같은 과목의 시험을 치러야 하는 만큼, 아래와 같은 규칙이 생겼다.
—모든 과목은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치른다.
—부정을 대비해 시험 기간엔, 기존의 분반에 관계없이 무작위로 인원을 재분배한다.
이때 실비아와 메이린은 류리크와 다른 군으로 시험장에 배치된 것이었다.
한편 1학년생의 중간고사 첫째 과목. ‘마법의 실사용’의 제3 고사장엔 이미 8할가량의 학생들이 들어와 있었다.
평소에 마주칠 일 없던 타 분반의 학생들이 이리저리 섞이자, 생각보다 고사장은 조용한 편이었다.
그런 가운데 실비아와 메이린이 들어선다.
—저게 실비아?
—이단의 반즈….
—쟤가 헤루인이라고?
원래 실비아와 같은 반이었던 이들은 별다른 반응 없이, 괜히 시선을 돌린다. 민머리 보이즈 중 한 명은 아예 사색이 되어 책상에 머리를 파묻는다.
하지만 실비아의 실력을 접해본 적 없는 이들은 대번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뿌리 깊은 이단에 대한 증오.
그리고 무가(武家)의 인간과 어울린다는 데서 오는 적대감.
—저 옆에는 뭐야? 쟤도 이단인가?
—아이율라잖아. 가문에서 버림받았다던….
—그러면 쟤도 류리크랑 어울리는 거야?
—하여튼 끼리끼리….
그리고 이들의 목소리는 당연 실비아와 메이린의 귀에도 닿는다.
“실비아 씨….”
“메이린 씨. 말했지. 나랑 어울리면 좋을 거 없다고.”
어딘가 씁쓸함이 묻어나는 표정.
메이린은 뭐라도 위로하고 싶었지만,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 가운데, 시험장 안으로 웨인즈 교수가 들어온다.
“다들 시험이 코앞인데 시끄럽다.”
탕탕.
그가 교탁을 두드리자 학생들이 입을 다물었다.
“중간고사의 내용은 이전에 말했던 대로다. 순번대로 앞으로 나와 도깨비불을 구현하면 된다.”
이미 공지했던 내용이기에 학생들은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다만 몇몇 이들은 긴장한 듯 마른침을 삼킨다.
“정밀도와 완성도, 유지력에 따라 평가한다. 1분 이내 구현하지 못할 경우 F를 부여한다.”
그러면 앞에서부터 나오도록, 교수의 말과 함께 시험이 시작되었다.
“시시하군. 다음.”
“교, 교수님. 한 번만 더 기회를…!”
“다음.”
웨인즈 교수는 짧게 평가했고, 단호하게 학생들에게 대처했다.
“좋아, 이 정도면…!”
“평범하군. 다음.”
“………….”
그 엄격함을 아는 학생들은 아쉬워하면서 제자리로 돌아왔다. 순식간에 순번이 지나가고, 마침내 실비아의 차례가 되었다.
실비아가 앞으로 나서자, 조용하던 시험장이 다시금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실비아 반즈네. 더러운 이단.
—도깨비불을 쓰라니까, 무슨 이상한 이단의 마법을 써버리는 거 아냐?
—그러니까 말야.
“거기 조용히 하지.”
쏟아지는 웅성거림에 웨인즈가 가볍게 제지한다. 한편 실비아는 전혀 개의치 않는 양, 차가운 눈으로 자신의 지팡이 끝을 바라볼 뿐이었다.
웨인즈 교수가 말한다.
“준비는 되었나.”
끄덕.
실비아는 지팡이를 위로 들었다.
—도깨비불.
그다지 어렵지 않은 난도의 중하급 마법. 꾸준히 수련한 벨테인이라면 꽤 완성도 있게 구현해 낼 수 있는 마법.
하지만 실비아의 수준은, 그런 벨테인에서 아득히 먼 다른 곳에 있었다.
—화륵.
하나의 불꽃이 피어나고.
—화륵.
두 개의 불꽃이 피어나고.
—화륵.
세 개의 불꽃이 피어나고….
“뭐, 뭐야. 저거….”
“말도 안 돼… 어떻게 저런….”
그 뒤를 이어 실비아의 지팡이 끝에서 수많은 불꽃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한다.
넷.
다섯.
여섯.
…
열.
스물.
서른….
순식간에 구현된 수십에 이르는 도깨비불들이 교실 위를 빼곡히 메운다. 그리고 그것들은 결코 가만히 있지 않고, 마치 군무(群舞)라도 추듯 끊임없이 움직인다.
“저, 저런 말도 안 되는…!”
“헤루인이라도 저런 거 못 한다고!”
실비아를 경시하던 학생들은 물론, 이제껏 실비아를 지켜봐 왔던 같은 분반의 학생들까지. 감히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한다.
그리고,
—쐐애애애애액!
교수마저 넋 놓고 보던 도깨비불들이, 일제히 사방으로 쏟아졌다.
정확히는… 류리크와 실비아에 대해 험담을 하던 학생들에게.
“으, 으아악!”
“살려줘!”
“아, 안 돼에에에!”
제각기 비명이 난무한 직후.
“실비아 반즈!”
—파창!
웨인즈 교수의 노호성과 함께 수많은 불꽃들이 일시에 사라졌다. 실비아는 여기까지 예상했다는 듯, 곧장 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무리를 했던 거 같습니다. 지팡이가… 미끄러졌네요.”
“…감점이다.”
웨인즈 교수의 표정은 잔뜩 일그러진 채였다. 그 얼굴을 본 순간, 다른 학생들이었다면 히익, 실없는 소리를 내면서 물러났을 터.
하지만 실비아는 도리어… 이제야 웃었다.
“그래도 쟤네보단 점수가 높겠죠?”
“뭐라고?”
“저런 어중이떠중이들과는… 차원이 다를 테니까.”
“…………!”
당연히 교육자로서 부정해야 할 말이었지만, 웨이즈 교수조차 순간적으로 판단하지 못했다. 실비아는 하나만 제대로 완성해도 A인 마법을, 수십 개나 구현해 냈다.
그건 누가 보더라도 헤루인 등위의 수준마저 뛰어넘은 실력이었으니까.
“감사합니다.”
뚜벅뚜벅.
실비아가 자리로 돌아오며 말한다. 누군가에게 말하는 듯. 꼭 좀 들으라는 것처럼.
“실력 없는 것들이 가문 따지고, 혈통 운운하는 건 어딜 가나 똑같더라.”
“…………!”
“가문이 잘나면, 자기 실력이 조금 더 올라가나? 아니면 마법을 써야 할 때 잘~나신 가문의 어른들이 와서 대신 써주나?”
실비아의 말에 부르르 떨던 학생 중 하나가 벌떡 일어선다.
“가, 감히 고귀의 13가문을 우롱하는가!”
“왜? 고귀의 13가문이라는 게 그렇게 대단하면, 시험장에도 너네 아빠 불러와서 대신 마법 써 달라고 하든가.”
“더러운 이…!”
그리고, 실비아의 지팡이 끝이 빛났다.
“야.”
정신을 차린 순간, 실비아의 지팡이 끝이 일어났던 학생의 목젖을 가볍게 누르고 있었다.
“흐윽!”
벨테인이나 헤루인은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전이(轉移) 마법.
그것을 여유롭게 구현해 낸 실비아가 말한다.
“너. 지금 지팡이 뽑으면 죽는다?”
* * *
중간고사의 첫날이 끝난 밤이었다.
아스트레이 소저택은 무척이나 고요했다. 근래에는 늦은 밤까지도 메이린과 실비아가 ‘공부 싫어어엇!’이라고 비명을 질러대는 통에 시끄러웠으나, 오늘만큼은 아니었다.
덕분에 소저택의 시종들은 모처럼 평안한 밤을 보낼 수 있었다.
물론, 시종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사정이 달랐다.
“덥군요.”
리아가 가볍게 손부채질을 하며 말한다. 그에 류리크 역시 창문을 열며 말한다.
“아직 봄철이건만… 오늘따라 유독 그렇군.”
“류리크 님, 더운 날에는 시원하고 달콤한 디저트… 음, 그렇군요. 빙수가 떠오르지 않습니까.”
“이 야심한 시각에 문을 열고 있을 가게는 없을 터이네만….”
그리고 둘의 박자가 맞아떨어지며, 동시에 말한다.
“실비아가 있군.”
“실비아 양이 있죠.”
그러자 입구 쪽에서 거대한 부채로 열심히 부채질하던 실비아가 울상을 지었다.
“지, 지금도 열심히 부채질하고 있잖아! 여기서 뭘 더 바라는 건데… 요?!”
류리크가 가볍게 탄식하듯 말한다.
“실비아. 지금 리아가 덥다고 하지 않았나. 이건 자네가 부채질을 대충했기 때문이지.”
“류리크 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실비아 양. 당신의 부채질이 약해져서 더위가 느껴졌고, 그것 때문에 빙수가 먹고 싶어졌습니다.”
“흐름이 이상하지 않아?!”
무언가 억울했던 실비아가 거대한 부채를 바닥에 내팽개치며 말했다.
“싫어! 싫어! 더는 싫다고!”
“………….”
“팔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고! 아무튼, 아무튼 싫다고오옷!”
울부짖듯 실비아가 따져 들자, 류리크가 애석한 눈으로 그를 바라본다.
“실비아….”
“아이씨! 너무하잖아! 게네들 나뿐만 아니라 류리크 씨도 무시하는 말 했었다고!”
“………….”
“하물며 메이린 씨한테도 뭐라 그러는데! 내가 어떻게 가만히 있어?!”
정말로 속이 상한 듯 실비아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그러자 류리크는 당최 이해할 수 없다는 투로 말한다.
“실비아.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혹시 지금 마법의 실사용 시험의 일로, 네가 혼나는 것이라 생각한 것이냐?”
“뭐, 뭔 소리야! 지금 그거 때문에 나한테 부채질시킨 거잖아!”
그거 말고 뭐가 있는데?! 실비아가 목소리를 높인다.
“실비아, 그 건이라면 나는 너를 타박할 생각이 없다.”
“어… 에…?”
“도리어 잘했다고 말해 주고 싶다.”
당신은 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죠? 실비아가 눈으로 물었다.
류리크는 푹, 한숨을 쉬며 말한다.
“과거, 이 학교에 입학할 무렵. 네게 이런 말을 했었지.”
—귀족들이 넘쳐나는 이 학교에서, 누군가의 호위라는 건 당사자 대신 괴롭히기 좋은 먹잇감이다. 특히나 망나니의 호위라면 더욱 심하겠지.
—여기선 오히려 네가 나를 편하게 대하면서, 나와 비슷한 수준임을 보일 필요가 있다.
그건 결코 허언이 아니었다, 류리크가 덧붙인다.
“너는 나의 호위이자, 나의 대리자다. 네가 곧 나, 류리크 바타체스 폰 드라스카 아스트레이의 얼굴이란 말이다.”
“………….”
“언제나 당당해라. 네가 당당해도 된다 여기는 상대라면, 그 누구 앞에서도 당당해라.”
그리고 류리크는 무척이나 자애로운 미소를 짓는다.
“네가 내 곁에 있는 한 바타체스라는 이름이, 아스트레이라는 이름이 너와 함께할 것이다.”
옆에서 듣고 있던 리아는 작게 잘라낸 케이크 조각을 입에 넣으며 ‘와’라고 아주 작은 감탄사를 내뱉는다.
동시에 그녀의 눈은 ‘저런 부끄러운 소리를 얼굴색 하나 안 변하고 잘도 말하는군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실비아는,
“저, 저기… 뭔가 감동적인 대사를 했다는 건 대충 알겠는데….”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그, 그러면 나는 왜 부채질을 하고 있는… 거… 야?”
“후우. 내가 어쩌다 이런 모지리를….”
류리크가 리아 쪽을 바라보며 말한다.
“리아.”
“예.”
눈짓을 받자마자 리아는 들고 있던 포크를 내려놓고, 품 안에서 수정 구슬을 꺼냈다. 그리고 그 안에 마력을 불어넣자, 어떤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메이린 씨. 류리크 씨 갔어.
— …그래요?
—응. 이제 눈에 보이지도 않아. 완전히 사라졌어.
익숙한 목소리에 실비아는 바닥에 주저앉아 딸꾹질을 한다.
“히윽.”
그리고 동영상은 멈추지 않고, 그 뒤의 내용을 드러낸다.
—메이린 씨, 이번에도 연기가 끝내줬어!
—그래요? 후후. 다행이네요. 정말.
—류리크 씨가 저렇게 맥도 못 추는 거, 진짜 보기 드문 일이거든.
—어라? 지금 말고도 류리크 씨가 맥을 못 추는 일이 있어요?
—응. 저택에 괴물이 있거든. 리아 님이라고, 류리크 씨와 쌍벽을 이루는 괴물이 있어.
픽.
리아가 마력을 끊으면서, 영상도 멈췄다.
“애석한 일이로다.”
“애석할 따름이죠.”
류리크가 어딘가 장난기 어린 눈으로 실비아를 바라본다.
“이제 알겠느냐. 네가 왜 이 야심한 밤에 부채질을 하고 있었는지.”
“아, 아, 아아… 아니, 저저저, 저걸 어떻… 게…?”
“실비아. 애초에 그걸로 네 죄를 물을 참이었다면, 메이린은 왜 ‘처벌’을 받고 있겠는가.”
류리크의 시선이 옆으로 돌아가며, 닫혀 있는 어느 방문으로 향한다.
그 방문에는 기다란 현판이 붙어 있었다.
[ 종이에 적힌 이론을 외우기 전까지 나올 수 없는 방 ]잘은 들리지 않지만, 귀를 기울여 보면… 저 안에서 희미한 비명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류리크 씨의 목소리… 녹음된 이론… 그만… 더 이상은… 으흐윽….
—살려줘… 살려줘… 더는 싫어… 싫어어어… 싫다고…
—류리크 씨의 목소리가… 으으으… 꿈에서도 나올 거 같아….
류리크가 말한다.
“실비아. 빙수를 만들기 싫다면, 메이린과 같이 ‘공부’해도 상관없다만.”
실비아가 곧장 기립했다.
“비, 빙수 만들어오겠습니다!”
“그래. 재료는 저택의 주방에 있으니, 얼음만 재주껏 구하거라.”
“그러면 얼음 마법으로 바로 만들…!”
“…마법으로 만든 물이나 얼음은 먹으면 몸에 해(害)가 된다.”
설마 그것도 몰랐던 거냐? 류리크가 짜게 식은 눈으로 덧붙인다.
“정 탈수로 죽기 직전이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마법으로 만든 건 무엇이든 섭취해선 아니 된다.”
“그, 그러면… 이 야심한 밤에 얼음을 어떻게 구해…?”
“얼음 가게가 있을 거다.”
“얼음 가게도 닫았겠지!”
“아니, 아직 열고 있을 터다.”
류리크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지금이 대목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