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possessed a villain with nothing but a death flag RAW novel - Chapter 70
사망 플래그밖에 없는 악역에 빙의했다 070화
070
5일 동안 진행되는 중간고사도 어느덧 절반이 지나갔다.
실비아와 메이린은 그럭저럭 시험을 잘 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은근히 ‘류리크 씨 덕분인 거 같아.’라고 살살, 약을 쳤다.
왜 저러는지 의도는 뻔히 보였다.
‘내 비위를 맞춰주면서, 오늘은 공부 안 하면 안 되냐… 라는 거겠지.’
그 마음을 모르진 않았다.
메이린은 연기가 아니라 진짜로 이론이라는 말에 헛구역질해 대는 수준이었고, 실비아도 중간고사 전후로 꽤나 초췌해졌으니까.
‘샤프란은 중간, 기말고사마다 순위를 발표하니, 시험을 잘 치렀는지는 그때 확인해봐야겠다만….’
어쨌건 그동안 혹사시킨 것도 있으니, 오늘만큼은 둘에게 자유 시간을 주기로 했다.
“적당히 놀고, 적당히 공부해라. 컨디션 관리도 중요하니까.”
나는 더없이 관대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그리 말했건만. 정작 말을 들은 두 당사자는 발작하듯 소리친다.
“적당히 공부우우?! 밤새도록 이론 녹음을 들려준 건 뭔데요?!”
“컨디션 관리이이?! 야밤에 빙수 만들라고 시킨 건 뭐고!”
참으로 애석한 일이었다. 이게 다, 타인의 호의를 둘리처럼 알아먹으니 생기는 일이었다.
나는 쯧쯧, 혀를 차며 말했다.
“방금까지 내 덕분에 시험 잘 본 것 같다고 하던 인간들은 어디로 갔는고.”
“아하, 하. 아~니이. 그게 그러니까….”
“물… 론! 류리크 씨의 도움은 알고 있죠!”
어색하게 수습하려는 둘을 보며, 나는 싱긋 악마의 미소를 보여주었다.
“뭐, 컨디션 관리가 싫다면 다시 이론 공부를 해도 좋다만.”
“우웨에에에엑!”
“메, 메이린 씨 정신 차려!”
실비아는 헛구역질하는 메이린을 들쳐 매더니, 후다닥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두, 두고 보자! 류리크 씨! 적당히 놀고, 적당히 공부한 다음 적당히 복수할 거니까아아앗…!”
적당한 복수라는 건 대체 무엇인가, 나는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가끔 보면 실비아가 20살이 맞긴 한지 모르겠다. 거기에 메이린도 실비아랑 어울리더니 똑같이 정신 연령이 낮아지는 거 같고.
‘설마 루나틱 난이도가 NPC들의 정신 연령을 낮춘 건가?’
그런 시답잖은 생각을 하고 있자니, 복도로 나갔던 실비아와 메이린이 저들끼리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여간 저 악덕 인간 같으니라고! 언젠가 꼭 천벌 받을 거야!
—으음, 그런데 류리크 씨가 천벌 받아서, 쫄딱 망하면 우리도 입장이 곤란해지는 거 아녜요?
—어, 어라? 그게 그렇게… 되는 건가?
저런 녀석들이 내 호위이고, 내 상회를 총괄하는 대리자라니. 없던 두통이 느껴진다.
“후우, 저들이 자네의 반만이라도 닮았다면 좋았을 텐데 말이지.”
“인간성이 느껴져서 좋지 않습니까.”
리아는 마치 그림자에서 솟아나듯,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걸어 나왔다.
“자네는 저 둘이 부러운가.”
“예, 무척이나요.”
류리크 님도 그러하시지 않습니까, 리아가 덧붙인다.
“종종 생각하시지 않습니까. 저들의 순수함이 언제까지고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글쎄, 본인은….”
“베샤스트를 찾아갈 적에, 호위인 실비아 양을 일부러 떨어뜨려 놓으셨지요. 위협이 도사리는 상황에서도, 구태여.”
역시 빈틈이 없다.
심지어 내 마음을 읽는 것까지, 완벽에 가깝다.
“잡담은 이 정도로 하지.”
바라신다면야, 리아가 말을 잇는다.
“허면 이제 결정하신 겁니까?”
“………….”
“요루아 로스월드를 어떻게 ‘처리’할지.”
* * *
메이린이 말한다.
“저기, 실비아 씨. 대체 둘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
“요루아가 지금도 실비아 씨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데요.”
실비아의 눈썹이 꿈틀거리면서 와작, 손에 쥐고 있던 필기 노트가 구겨졌다.
메이린이 ‘그거 류리크 씨가 만들어준 거잖아요!’라며 새된 비명을 질렀지만… 실비아의 정신은 온통 다른 데 있었다.
‘저 녀석, 저거… 어떡하지?’
실비아의 경고가 있고 난 뒤, 요루아는 전략을 바꿨다.
그녀에게 검은 창 얘기는 꺼내지도 않고, 가까이 접근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일정 거리를 두고 스토커처럼 졸졸 따라다니기 시작한 것이었다.
메이린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실비아에게 속삭인다.
“어떡하죠? 저희한테 위해를 가하는 건 아니지만, 계속 저러는 건 조금… 그런데….”
“………….”
“으음, 치안국에 스토커라고 신고라도 할까요?”
치안국.
그 말에 실비아의 눈이 번뜩였다.
“그, 그건 안 돼!”
그녀의 머릿속에 아스라이 어떤 미래가 펼쳐졌다.
—스토커 혐의로 치안국에 붙잡힌 요루아.
—왜 그랬냐고 물었더니, 검은 창을 한 번 더 보고 싶어서라고 설명.
—검은 창이 무엇인가, 의구심을 품은 치안국이 자신을 조사.
‘그, 그렇게 되면 파멸이라고!’
실비아는 완강하게 고개를 저었다. 메이린은 곤혹스러운 듯, 턱을 괴었다.
“어, 으음… 그러면 어떡하죠?”
“………….”
“요루아가 실비아 씨한테 뭔가 바라는 게 있는 거 같던데… 그걸 들어주는 건 어렵나요?”
“어… 그게 좀… 그래.”
나름 메이린과 친해지긴 했지만, 아직 그녀는 실비아가 진짜 금지 마법을 쓸 줄 아는 ‘이단’이라는 것을 모른다.
실비아는 가슴이 쿡쿡 찔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크, 크흠. 흠. 메이린 씨. 당분간은 신경 쓰이겠지만… 조금만 참아 보면 어떨까?”
“…쉽게 떨어져 나갈 거 같진 않은데….”
“애초에 류리크 씨가 해결해준다고 했거든.”
“네? 류리크 씨가요?”
실비아는 어제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녀는 그 목격자가 요루아라는 것을 알자마자 류리크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류리크 씨! 어제 레이크호에서 누굴 만났는지 알았어!
—요루아 로스월드지.
—에, 에? 그걸 어떻게 알았… 아, 그렇지. 리아 님이 있었지.
—저번에 말했다시피 네가 신경 쓸 건 없다.
신경 쓸 게 없다니.
실비아는 곧장 요루아가 자신에게 들러붙었다는 걸 설명했다.
—아무튼, 그거 때문에 지금 환장하겠어. 걔가 막 나한테 흑창을 써 달라면서 따라다니는데, 시험장도 같고 진짜….
—네가 걱정은 알겠다만, 이미 말했다시피 신경 쓸 건 없다. 녀석이 너를 대신전에 신고할 일은 없을 테니까.
실비아도 어렴풋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요루아가 자신을 증오하거나, 괴롭히려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으니까. 다만 그저 순수하게, 그녀의 마법을 한 번 더 보고 싶어 하는 것뿐.
—그 애 말이야, 아예 어둠 마법을 모르는 눈치던데, 그냥 한 번 써주면 안 될까?
—실비아.
—아, 알았어. 그냥 해 본 말이야.
그리고 시무룩해 하던 자신에게 류리크가 말했다.
—조금만 견뎌라. 이쪽에서 손을 써 보도록 할 테니.
다른 누구도 아닌 류리크가 손을 쓰겠다고 했으니, 해결이 되긴 할 터다.
“흐으음, 류리크 씨가 어떻게 해결해준다는 걸까요. 상상이 잘 안 되네요.”
“뭐, 나도 상상은 안 가는데… 말도 안 되는 걸, 되게 만드는 게 류리크 씨잖아!”
* * *
늘 그렇듯, 중간고사는 많은 학생들에게 절망을 안겨주었다.
공부를 열심히 했건 안 했건, 많은 이들이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샤프란은 중간, 기말고사의 석차를 공시(公示)하기에 어떻게 숨길 수도 없었으니까.
“…우리 이제 어떡하지?”
민머리 보이즈는 심란했다.
“저번에 실비아가 우리 가발을 벗겨서 대머리인 것도 들통났고.”
“신전에 가진 용돈을 다 쏟았는데, 결국 머리털은 자라지도 않았고.”
“시험장이건 강의실이건, 실비아가 무서워서 고개도 못 들겠고.”
거기서 끝인가 싶었지만, 한 명이 말을 덧붙인다.
“…거기에 중간고사도 망쳤지.”
무엇 하나 제대로 풀리는 것이 없다.
그 현실을 절감한 셋은, 동시에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고.
“””후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마치 실직했지만, 집에다 솔직히 말할 수 없어 놀이터로 출근하는 40대 가장과도 같은 한숨이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걸까.”
“왜겠어? 이게 다 류리크랑 실비아, 그 연놈들 때문…!”
“이, 입조심해. 어디서 실비아가 듣고 있을 수도 있잖아!”
히윽,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남은 두 사람이 놀란 소리를 내뱉는다.
그들의 머릿속엔 아직도 실비아에 대한 공포가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흐으… 공부라도 열심히 할걸.”
“공부가 됐겠어? 우리는 실비아가 무서워서 수업에 집중할 수가 없었잖아?”
“맞아. 맞아. 그러니까 이건 실비아 때문이라고!”
“그런데 교수님들한테 그렇게 말하면서 성적 이의 신청하면… 우리 죽지 않을까?”
말 그대로.
자신들이 생각해도 터무니없는 핑계였다.
결국, 도돌이표처럼 돌아오는 암담한 현실에 민머리 보이즈는 연거푸 한숨을 쉴 따름이었다.
“중간고사 성적이 공개되었을 때, 밑바닥이면… 나 본가로 돌아가야 할지도 몰라.”
“기, 기말고사까지는 보지 않을까?”
“그것도 모르는 일이야. 저번에 대머리 들통 난 것 때문에, 아버지가 이를 박박 갈고 있다고.”
우리 아버지는 아직 모르는데, 한 명이 가슴을 쓸어내린다.
“그게 문제가 아냐. 이대로 훈장이든 등위는 제대로 된 거 없이 돌아가면….”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랑 정략혼 확정이지.”
그것이 귀족의 현실이었다.
저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보통 귀족은 첩의 자식이 아닌 이상, 장자와 나머지를 가리지 않고 우수한 교육을 받는다.
다만 거기서 ‘가문의 눈높이’에 걸맞은 성과를 보이지 못하면… 남녀의 구분 없이, 그대로 정략혼을 위해 팔려 간다.
“나, 나는 안 돼! 어느 상단의 할머니한테 보낸다고 했단 말야!”
“나는 남부의 어느 백작… 나보다 30살 많더라.”
“갈 땐 가더라도… 아니, 정략혼으로 결혼하더라도 연애 한 번은 해 보고 싶었는데…!”
유감스럽게도 학교 공인의 민머리 & 바보들과 사귀어줄 마음 넓은 여자는 별로 없었다.
“얘들아. 우리 그런 참담한 미래보다 내일의 시험을 생각하자. 내일 우수한 성적을 받으면… 그래도 밑바닥은 면할 수 있을 거 아냐?”
“늦었어. 포기해. 차라리 탈출해서 타국으로 건너가는 게 가능성이 더 클걸.”
이미 중간고사는 절반이 지나갔고, 민머리 보이즈가 벼락치기로 될 인재였다면 이 상황까지 오지도 않았다.
“…한 과목, 정말 한 과목만 A나 A+맞아도 석차가 확 올라갈 텐데.”
“그런가?”
“밑바닥은 어차피 우리랑 비슷한, 정말 고만고만한 수준일 거 아냐. 게다가 석차는 학점 0.1점마다 열몇 명, 몇십 명씩 걸려 있을 거란 말이지?”
그 말대로. 샤프란의 재학생은 매 학년 수백 명에 이른다. 그리고 최소 벨테인 등위 이상의 학생들만 모았다지만, 이것이 꼭 우수한 인재만 모였다는 뜻은 아니다.
벨테인 등위는 마탑에 뇌물을 주어 얻을 수도 있고, 노력도 않는데 마력량이 많다든가 하는 재능으로 달성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물론 이제 와서 A 하나 생겨 봤자, 학점은 개판인 건 달라지지 않겠지만… 어차피 가문에서 보는 건 석차일 거 아냐?”
중간, 기말고사 이후 공시되는 석차.
가문의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학점보다 석차였다. 학점은 어차피 당사자만 알 수 있으니 입 다물면 장땡이고… 애초에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내 자식이 누구 자식보다 잘한다.’라는 것이었으니까.
나름대로 설득력 있는 의견이 나오자, 민머리 보이즈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그러면 남은 과목이 뭐가 있지?”
“약초학 입문, 기초 연성의 이해, 그리고 제령학도 있고….”
그때였다.
“맞다. 제령학 그 과목, 신성 마법으로 유령 퇴치하는 게 시험이었지?”
“어? 어. 봉인해 놓은 유령한테 마법을 써서 퇴치하는 실기 시험일걸?”
“기억난다. 그거 선배들이 말하는 최악으로 빡센 시험이잖아.”
제령학(制靈學) 실기 시험.
학생들 사이에서도 중간고사 최악으로 꼽히는 시험이었다. 항간의 소문에 따르면, 유령을 보고 지리지만 않아도 C는 맞는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갑자기 제령학은 왜?”
“그 시험, 유령만 퇴치하면 되는 거잖아? 슬쩍 아이템 하나 쓰면….”
“성수 쓰면 바로 들킬걸?”
“성수가 아냐. 내가 화장실의 낙서에서 봤었는데… 유령종을 단번에 물리칠 수 있는 비밀의 아티팩트가 있다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