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possessed a villain with nothing but a death flag RAW novel - Chapter 77
사망 플래그밖에 없는 악역에 빙의했다 077화
077
—어렵군.
—어렵군.
실시간으로 류리크&레베카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실비아가 염탐(廉探)용으로 개조된 망원경을 떨어뜨리며 말했다.
“저건… 미친 인간들인가?”
옆에 있던 메이린은 ‘아, 그거 비싼 건데.’라고 중얼거린 뒤, 마찬가지로 참담한 반응을 내비쳤다.
“저 두 사람은 정말… 말이 안… 나오네요.”
심지어 요루아까지도 이건 아니라는 듯,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데이트 전문가로서 말하는데, 저 인간들은 미친 인간들이다. 틀림없다.”
셋의 의견이 모처럼 일치한 상황.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이 합치(合致)에 들뜨지 않았다.
“그러니까 말이에요! 세상에 누가 데이트를 하면서 저딴 소리를 해요?!”
“후우, 류리크 씨가 원래부터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대체 어디서부터 지적해야 할지….”
“보스는 이상한 사람이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셋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와중에 메이린은 어딘가 해쓱해진 얼굴로 류리크를 변호했다.
“그래도 류리크 씨가 상대적으로는 정상이었네요. 공연, 밥, 카페… 데이트의 정석이잖아요?”
“인간, 요즘 누가 그런 데이트를 한단 말인가.”
“에? 이거 아냐?!”
요루아가 혀를 차며 말한다.
“쯧쯧. 자고로 데이트는 유원지에서 놀이기구를 타며, 솜사탕이나 막대사탕을 잔뜩 사 먹는 게 정석이다!”
“………….”
“특히 회전목마 직후에 먹는 솜사탕은 최고라고 볼 수 있지!”
그 당당한 외침을 들은 메이린은 풋, 가볍게 조소를 날렸다.
“꼬맹이는 꼬맹이구만….”
“뭐, 뭐라고?! 회전목마가 어때서 그런 거냐, 인간! 솜사탕! 막대사탕! 아주 훌륭한 간식이지 않나!”
“응. 그래. 이 누나가 사탕 사줄게~.”
“실비아 누님! 이 인간한테 뭐라고 좀 해주십쇼! 건방집니다! 이 인간!”
그야말로 견원지간처럼 둘은 틈만 나면 투닥거렸다. 하지만 그를 중재해야 할 실비아의 정신은 다른 데 팔려있었다.
“아씨, 불안해 죽겠네.”
“왜 그래요? 실비아 씨.”
“아니, 뭔가. 저 둘… 진짜 사고 칠 거 같단 말이지?”
사고요? 메이린이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러자 실비아는 다리를 달달달, 떨며 답한다.
“우리야, 저 둘이 뭔 소리를 하든 원래 저런 인간들이지~ 하고 넘기면 그만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어떻게 되겠어?”
“온 사방팔방으로 소문을 퍼뜨리겠… 죠?”
“그래! 류리크 씨, 그나마 요즘 이미지 쇄신하고 있었는데 이건 완전 다시 나락행이잖아!”
거기까지 사고가 미치자, 메이린의 표정이 심각해진다.
“…어쩌면 나락보다 더 낮은 어딘가 아닐까요?”
“그게… 무슨 말이야?”
“사실 망나니는 귀족 중에도 많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차라리 망나니라면 고개 끄덕일 수도 있겠지만 저런 별종은… 아, 좀 아니다 싶은 느낌이지 않나요.”
그리고 그들의 머릿속에 방금 들었던, 둘의 대화가 재생된다.
—키스는 우리가 연인임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혹여 우리의 관계를 미심쩍어하는 인간들도, 우리가 키스했다는 소식을 접하면 의심을 접을 터.
—과연. 허면 키스를 하기 전엔 나름의 계획을 세울 필요가 있겠군.
—언제, 어느 장소에서 키스를 해야, 소문이 잘 퍼질지, 가장 파급력이 클지. 이 부분을 고려하면 좋겠지.
“…새, 생각 이상으로 끔찍한데요.”
“혼돈, 파괴 망가아아악!”
한편. 류리크와 레베카. 그리고 실비아, 메이린, 요루아까지. 이 모두를 지켜보고 있는 또 다른 사람이 있었다.
—아르민 레포를토.
아침에 레베카가 말했던 충격적인 발언들을 들은 뒤, 불안을 못 이긴 그는 조심스럽게 레베카의 뒤를 밟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건 통상업무다. 통상업무다. 결코, 레베카 님을 의심해서가 아니라… 그림자로서. 그림자로서 당연히 신변보호를 위해 통상업무를 하는 것뿐이다.’
그러니까 이건 보고서로 작성할 필요 없다.
‘류리크가 정장을 좋아하니까 남성용 정장을 입고, 류리크가 도서관을 좋아하니까, 도서관에서 책 읽는 데이트한다는… 그런 건… 내 알 바가 아니다…!’
경국지색이라 불리며, 눈만 마주쳐도 반하게 된다는 마성의 여인 레베카.
심지어 누구보다 고귀한 바타체스의 황족이며,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문무겸비의 완벽주의자. 그런 그녀가 사실은 비뚤어진(?) 연애관을 가진 인간이라는 게 밝혀진다면.
‘끔찍… 하다.’
문제는 레베카뿐만 아니라, 류리크도 굉장히 기괴한(?) 연애관을 갖고 있다는 점이었다.
‘하다못해 류리크 아스트레이라도 정상적으로 레베카 님을 이끌어가지 않을까 싶었는데… 저것도 완전 미친놈이었고!’
그의 머릿속에 기분 나쁜 상상이 떠올랐다.
—로마노프 제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별종&괴짜 커플.
언뜻 장난스럽게도 들리지만, 만일 정말로 이런 소문이 퍼지거나 한다면.
‘아냐. 그럴 리가 없어. 이상한 상상하지 말자… 모든 건 억측에 불과하다.’
아르민은 길게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각오를 다졌다.
‘…침착하자. 나는 레베카 님의 그림자. 레베카 님의 그림자에서 그분에게 해가 될 모든 것을 통제, 배제하는 존재.’
‘이건 그저… 내가 본래 해야 했던 마땅한 일을 하게 된 것뿐이다.’
‘나 자신의 본분을 잊지 말자.’
* * *
오페라 극장, 카르사 콘트라테.
제도 안에서도 꽤 큰 규모를 자랑하며, 거의 모든 가수가 한 번쯤은 오르길 바라는 꿈의 무대 중 하나.
그곳에서 지금, 어떤 공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 피델로의 결혼 」
그리고 그 VIP석에 나와 레베카가 앉아있다.
“…자네는 오페라에는 조예가 있나?”
마공학 망원경으로 무대를 살피던 레베카가, 그를 내려놓으며 묻는다. 나는 가볍게 고개를 내저으며 답한다.
“소양으로서 익히기는 했나, 즐기기는 영.”
“본녀도 마찬가지라네. 교양이라는 이유로 익혔으나, 이건 당최 쓸 일이 없어.”
“없지는 않지. 공연을 즐기는 이와 품격 있는 대화를 위해, 필요하지 않겠나.”
레베카가 새로이 깨달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생각해보니 그렇군. 화제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오페라를 좋아하는 이와 상당한 호감을 갖고 대화를 이끌어갈 수 있겠군.”
이건 생각보다 중요한 포인트다.
상대방과 공유할 수 있는 화제의 유무는, 첫인상과 호감도 상승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니까.
뉴스, 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 소설, 예능, 음악….
현실세계에도 나는 상대방과의 대화를 위해, 저런 종류의 것들은 최신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레베카, 책은 세상의 이치와 만물을 담고 있으나 그것은 결코 세상 그 자체가 될 수는 없다네.”
“과연. 오페라를 조금 더 유심히 볼 필요는 있겠군. 여전히… 재미는 없지만 말일세.”
공연이 재미없다는 말.
그리고 그 발언자가 황족이라는 점.
무대의 가수들이 들었다면 기겁을 할 내용이지만, 우리의 사담(私談)은 모두 VIP석의 방음 결계에 막혀 새어나가지 않는다.
그리하여 공연은 아무런 이상 없이 계속 이어진다.
—쓸데없이 변명거리를 찾지 마라. 너의 얼굴 보고 알 수 있다. 너는 지금 나를 속이고 있다.
—속인다고요. 천만에요.
—쓸데없이 재주 부릴 필요 없어. 다 말해 버렸어. 백작도 다 알게 됐단 말야.
—대답하지 않겠나?
—할 말이 없습니다.
—장난은 끝나야 한다.
—연극이 마지막에 행복하게 끝나듯, 우리의 결혼이 마지막을 장식해야지요.
꽤나 오랜만에 보는 오페라였지만, 큰 감흥은 없었다.
오페라는 보통 마이크를 쓰지 않는다는 점에서 뮤지컬과 대비되곤 했는데, 이는 여기서도 마찬가지였다.
가수들은 확성마법을 쓰지 않은 채, 본연의 목소리로만 노래하고 또 연기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새삼스러울 것은 없었다만… ‘새삼스레’ 생각할 부분은 있었다. 그건 바로 이 공연의 이름.
‘피델로의 결혼은, 본래 피가로의 결혼을 이름만 바꾸었다고 알려진 공연. 게임 내에서는 이름만 존재하고, 구현되진 않았던 오페라인데….’
지금 이곳에서 절찬리에 공연이 펼쳐지고 있다. 그리고 그 내용은, 틀림없이 현실 세계에 존재하는 피가로의 결혼과 같았다.
여기가 흥미로운 점이었다.
‘현실 세계에 존재하던 이야기가, 이곳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그 말인즉, 이건 현실과 전혀 연관 없는 또 다른 실제 세계라기보다는… 아주 잘 구현된 게임 속, 창조된 세계일 가능성이 크다.’
나는 사색한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간다.
—폭죽을 터뜨리고 즐깁시다.
—즐거운 음악에 맞추어 우리 축제 올리세. 밤새도록!
종막에 다다른 공연은 박수와 함께 마무리가 된다.
객석에서 빠져나가는 관중을 보며, 우리 역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만 VIP석이니만큼, 밖으로 향하는 통로가 달라 저들과 마주칠 일은 없을 터.
통로를 지나던 중, 레베카가 말한다.
“류리크, 자네가 말했던 통상적인 데이트라면 이제 밥을 먹어야 할 것인데… 먹고 싶은 음식이 있나?”
“글쎄. 딱히 없군.”
“흐음. 그런가.”
기본적으로 나는 먹을 것 같은 사소한 것에 대해 결정 장애가 있다. 주면 주는 대로 잘 먹지만, 선뜻 고르라면 잘 못 먹는 타입이랄까.
그런 이유에서, 나는 레베카에게로 질문을 돌린다.
“자네는 없나? 본인은 음식에 그리 호불호가 있지 않아, 대체로 잘 먹는다네.”
“허면 프라레 구이스토는 어떤가.”
그야말로 The 무난한 선택지. 나는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군.”
* * *
레베카는 생각한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게 흘러가는 것 같다.’
처음, 도서관에서 쫓겨났을 땐 걱정이 앞섰다. 그녀의 주된 목표는 어디까지나 류리크가 자신을 추종하도록 만드는 것.
그런데 도서관이라는 유리한 고지를 빼앗긴 탓에, 꽤나 속이 탔었다. 하지만,
‘그럭저럭 류리크와 대화도 했고, 특별히 마찰 없이 이해관계도 잘 일치하고 있다.’
잘은 모르지만, 적어도 데이트를 망쳤다… 는 상황은 아닌 듯했다.
이런 식으로 평범한 연인 같은 데이트를 하다 보면 관계가 깊어지는 것이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류리크는 자신에게 반할 터.
‘이건 순조롭게 흘러가는 것이겠지?’
그즈음 VIP 통로의 끝이 보였고, 카르사 콘트라테의 로비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번 오페라는 어땠나?
—썩 나쁘지 않았네.
—역시 노래가 훌륭하단 말이지.
때마침 일반 통로를 이용한 대부분의 관중들이, 복작복작하게 몰려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VIP 통로에서 여유롭게 걸어 나오는 이쪽을 향한다.
—저건 이실리엔의 레베카 영애 아닌가.
—영애께서도 오페라를 관람하셨던 거군.
—그런데 저 옆에 남자는 누구지?
류리크는 어렸을 때나 유명했고, 사교계를 드나들었지, 근 수년 동안은 어디에서도 얼굴을 비춘 적이 없었다.
그런 이유로 아직 그 얼굴을 모르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어딘가 낯이 익은데… 아, 류리크 아스트레이로군.
—류리크라면… 그 영애와 연애를 하고 있다는?
—터무니없는 커플이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선남선녀의 조합이군그래.
—그런데 레베카 영애께서는 왜 남성용 정장을 입으신 거지?
—이 사람아, 아무렴 어떤가. 저리 잘 어울리는데. 그 왜, 그런 말도 있잖나. 패션의 완성은 결국 얼굴이라고.
레베카는 저도 모르게 가느다란 미소를 짓는다.
‘저 반응들을 보아하니, 역시 계획대로 잘 흘러가는 듯하군.’
아르민은 뭔가 마뜩잖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역시 자신은 완벽했다. 레베카는 약간의 자신감이 담긴 얼굴로 말한다.
“우리, 꽤 괜찮은 커플로 보이는 모양일세.”
“음. 그런 듯하군.”
류리크도 동의하는 꽤 그럴싸한 커플의 모습.
‘생각대로 됐다! 역시 정상적인 데이트!’
레베카는 쾌재를 부르며, 자연스럽게 류리크에게 제안한다.
“그러고 보니, 오늘 데이트에 손을 잡기로 했었는데… 마침 잘 되었군. 지금 손을 잡아 우리가 정상적인 연인이라는 어필을 하면 어떻겠나.”
“그렇지. 마침 보는 이들도 많….”
“왜 갑자기 말을 멈추는가?”
레베카는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리고 류리크는 무언가 상황이 잘못되어간다는 걸 깨달았다.
‘잠깐만. 지금 이거… 굉장히 위험한 거 아닌가?’
등줄기를 따라 식은땀이 흐르고, 머릿속으로는 위기 경보가 울린다. 그런 가운데, 잊고 있었던 어떤 특성이 떠오른다.
—레베카의 마성(魔性).
종전에 대화할 때는 자연스럽게 손을 잡느니, 키스하느니 그런 얘기들을 했다. 그게 연인으로서 당연한 것이니까.
하지만,
‘정말로 손을 잡거나 키스를 했을 때, 내 이성이 버틸 수 있는가.’
지금처럼 그냥 곁에 있는 건,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그렇지만 레베카와 빤히 눈을 마주치거나, 그녀를 오래 바라보면 몸이 멋대로 두근거림을 느낀다.
그 때문에 최대한 그녀에게 시선을 두지 않으면서, 어떻게 잘 버티고 있었다만.
‘…연애의 ABC, 진도를 나가는 순간. 류리크 아스트레이는 끝일 수 있다.’
애당초 NPC 류리크 아스트레이의 정신 상태와 스펙이면, 레베카와 눈을 마주친 시점에서 이미 그녀를 열렬하게 추종하고 있어야 한다.
그걸 지금 억지로 버텨내는 건 순전히, 한유진의 정신력이 그야말로 경악스러운 수준이기에 가능한 일.
‘위험하다. 지금은 위험하다. 적어도 보험으로 정신계 특성이나 버프를 두르지 않는 이상… 지금은 안 된다!’
한편 그런 류리크의 속내를 알 리 없는 레베카는 자연스럽게 웃음이 밴 얼굴로 말한다.
“류리크, 새삼스레 부끄럽기라도 한가?”
“아니, 본인은….”
“자, 어차피 첫 데이트에서 손은 잡아야 하네. 그러니….”
—샥.
류리크가 레베카의 손을 피해, 자신의 손을 허리 뒤로 숨겼다.
레베카가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뭐 하는 짓이지?”
“………….”
“우리는 연인 관계에 대해 계약했고, 직전에 손을 잡는 것까지도 합의했을 터다.”
“사실 계약을 체결했다고 보긴 어렵지. 구태여 말하자면 구두 합의… 라는 게 맞을 터다.”
“자네답지 않은 말장난인데.”
“………….”
레베카는 생각한다. 이 남자가 갑자기 왜 이럴까.
—류리크 아스트레이답지 않은 행동.
—고작 손을 잡는 것뿐인데, 이상하리만치 완강한 저항.
그리고 레베카의 머릿속에 어떤 가설이 세워진다.
‘이건 설마… 정말로 부끄러워하는 것인가?’
처음에는 그냥 던진 말이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류리크 아스트레이가 손잡는 것을 부끄러워한다면… 이 기묘한 상황이 설명된다.
‘하기사, 남성으로서 마성을 품고 있는 본녀를 연모하지 않을 수가 없지.’
‘지금까진 겉으로 태연한 척 굴었지만, 속으로는 어쩔 수 없는 거겠지.’
그리고 레베카의 머릿속으로 이런 공식이 세워진다.
—부끄러워하는 상대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 아무런 진전이 없다.
—부끄러워하는 상대에게, 내가 먼저 다가선다. ▶ 부끄러워하면서도 좋아한다.
‘그렇다면 결론은 간단하군.’
레베카는 어느샌가 세 걸음 정도 떨어진 류리크를 바라본다. 류리크는 반쯤 고개를 돌린 채였다.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부끄러워하는 것인가.’
어딘가 우쭐한 기분이 든 레베카는 자신감 있게 류리크에게 말한다.
“손을 내어라.”
“싫… 다.”
“흐음, 요컨대 자네의 행동은 ‘밀당’이라는 것이겠군.”
“전혀 그렇지 않다만.”
류리크는 정색하며 반론하지만, 이미 자신감이 차오른 레베카는 도리어 적극적으로 다가선다.
“자네가 당기겠다면, 내 기꺼이 끌려주도록 하지.”
“아, 아니! 본인은…!”
“류리크 아스트레이 순순히 손을 내놔라!”
“그, 그건… 곤란하다!”
한편, 그 광경을 흐뭇한 얼굴로 지켜보는 이들이 있었으니.
“저게 말로만 듣던 꽁냥꽁냥이라는 건가….”
“그 얼음장 같던 레베카 영애에게 저런 일면이 있었다니….”
“허허. 젊은 시절, 연애하던 때가 생각나는군요.”
이곳은 카르사 콘트라테의 로비.
오페라 관람을 마쳤던 귀족들은 돌아가려던 길도 잊은 채, 레베카와 류리크를 바라보고 있었다.
“청춘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