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possessed a villain with nothing but a death flag RAW novel - Chapter 80
사망 플래그밖에 없는 악역에 빙의했다 080화
080
—어머. 남자친구가 대신 따주려나 봐.
—꼭 좀 땄으면 좋겠네. 아까부터 다트를 좀 많이 던졌어?
—힘들 거 같은데. 내가 저 가게를 3년 동안 봤는데, 오르골 딴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거든!
—어머, 어머. 어쩜 좋아.
레베카는 자신이 오르골을 따고 싶었는지 조금 미련이 남은 듯하지만, 갤러리가 저리 반응하니 잠자코 물러섰다.
나는 가게 주인을 보며 말한다.
“보아하니, 다트가 풍선에 닿기만 하면 터지는 것 같은데.”
“암요! 일반 다트를 쓰다 보면, 간~혹 가다 풍선에 맞추고도 튕기는 일이 있습니다. 그러면 손님들 입장에서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음, 그렇지.”
“그래서 다트의 끝부분에 마법적 처리를 해서, 풍선에 살짝만 닿아도 터지게끔 만들었지요!”
사실 그보다는 귀족이나 기사와 시비 붙으면 곤란하니, 자기 보호를 위해 저렇게 해놓은 것일 터다.
여차할 때, 방금과 같은 설명을 하면서 빠져나갈 테니까.
그걸 알면서도, 나는 괜히 말한다.
“자네는 무척 양심적인 장사꾼이군그래.”
“암요! 그렇습니다요!”
그때 뒤에 있던 레베카가, 슬며시 다가와 귓속말을 건넨다.
—류리크, 조금 전만 해도 비합리적인 내기이고, 뻔한 상술이라 하지 않았나.
가깝다. 가까워.
그녀의 숨결 탓에, 심장의 박동이 빨라진다.
나는 애써 호흡을 가다듬으며, 나지막이 속삭인다.
—지금은 관중이 있지 않나. 극적인 서사를 위해 밑밥을 까는 게지.
—밑밥?
—비합리적이고 뻔한 농간을 멋지게 깨트리는 것이 본인의 주특기지.
뭐, 지켜보게.
나는 그리 말하며 가게 주인에게 말한다.
“주인장, 다트 10발만 주게.”
“예? 하, 하지만 오르골을 따려면 최소 50발은….”
“일단 감각을 익혀 보려는 것이네. 일단은 10발로 시작하지.”
가게 주인은 떨떠름한 듯 고개를 끄덕인다.
“예, 예에….”
그렇게 내 앞에 다트 10발이 들어간, 바구니가 놓이고.
—스윽.
나는 다트 하나를 들었다.
‘외형은 평범한 다트. 그리고 촉 부분에는 닿는 순간 풍선을 터뜨리는 간단한 마법 처리가 되어 있지.’
사기 다트 게임의 구조라면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가게 주인이 사기꾼이라는 걸 파악한 순간부터, 레베카를 말린 것이기도 했고.
아무튼, 이게 지독한 상술이라는 걸 알면서도 내가 다트를 든 것은… 당연히 이 부조리를 역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뜻이다.
“안 던지십니까?”
“염려 말게. 순식간에 던져서 끝날 터이니.”
—슈욱.
나는 적당히 힘을 실어 다트를 던졌다. 기사 훈장을 가진, 레베카와 달리 나는 폐인A를 지닌 연약한 인간이라, 애초에 평범하게는 저걸 다 맞출 재간이 없다.
“………….”
다트가 날아가는 찰나, 흘긋 옆을 보자니 가게 주인이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다.
‘이 정도 힘으로는 절대 오르골을 딸 수 없다 여긴 것이겠지.’
그 예상은 아주 보기 좋게 빗나갈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퉁! 투퉁! 퉁!
날아간 다트는 풍선을 관통하며 터뜨리는 게 아니라, 튕겨져 나갔으니까.
그리고,
—펑! 퍼펑! 펑! 펑!
반 박자 늦게, 다트가 닿았었던 풍선들이 연달아 터진다.
“…………?”
가게 주인은 상황을 따라가지 못하는지, 멍한 표정으로 과녁을 바라본다.
한편, 연습 삼아 10개 던진다는 말에 시큰둥하던 갤러리의 분위기가 180도 달라진다.
—저, 저게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내, 내가 3년 동안 저 가겔 봤는데 저런 건 처음 봐!
—다트가 튕긴… 건가?
그리고 나는 곧바로 연이어 다트를 던졌다.
—펑! 퍼펑! 퍼퍼펑!
—퍼퍼펑! 펑펑! 퍼퍼펑!
풍선들이 정신없이 터져나가고, 가게 주인이 입을 쩍 벌렸다.
“에, 에에… 에에에에엑?!”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계속해서 다트를 던졌다. 10발뿐이 되지 않던 다트는 금세 동이 나고, 딱 두 개의 다트가 남았다.
그리고 표적으로 남은 풍선은 단 하나.
“후우.”
나는 일부러 숨을 골랐다. 그러자 넋이 나간 듯 멍해 있던 가게 주인이 화들짝, 놀라며 다트장 사이로 뛰어든다.
그리곤 바닥에 떨어진 다트를 주워, 그를 확인했다.
“자, 잠깐! 잠깐 기다리시지요, 나으리!”
“왜 그러나.”
내가 태평하게 답하자, 가게 주인은 그야말로 시뻘게진 얼굴로 버럭 소리쳤다.
“이, 이런 법이 어디 있습니까! 다트의 끝을 구부리다니요!”
“…그게 뭐 문제라도 있나?”
“에, 예?! 다, 당연히 문제가 있지요!”
그가 상식을 논하자, 갤러리도 가게 주인에게 동조하는 분위기를 띤다.
—다트 끝을 구부렸다고? 그래서 풍선에 부딪힌 뒤에 튕긴 거구나.
—근데 그래도 되는 거야?
—그건 좀 아닌 거 같은데….
어디까지나 ‘극적인’ 연출을 위해, 갤러리가 내게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도록 유도한다.
다만 이게 오래되면 부작용이 일어날 것이기에, 나는 곧장 얘기를 이어간다.
“이 게임은 다트를 던지는 게임이다. 풍선은 다트에 ‘닿으면’ 터지고, 풍선을 마법으로 터뜨리지만 않으면 된다는 게지.”
“아, 아니. 나으리!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끝이 뾰족하지 않은 다트를, 적당한 힘으로 던지면 그야 튕겨 나간다. 그리고 거기에 약간의 바람을 조작하면, 아주 효과적으로 풍선들을 터뜨릴 수가 있지.”
바람의 조작.
아주 노골적으로 부정(不正)을 언급하자, 가게 주인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나으리, 지금… 어떻게 사기를 쳤는지 제게 설명하시는… 겁니까?”
“정확히는 자네가 사람들에게 벌였던 사기를 설명하는 것이지.”
나는 남아있던 두 개의 다트 중 하나를, 다트장 구석을 향해 던졌다. 물론 명중률은 형편없을 테니, 적절하게 바람마법으로 그를 보조했다.
—슉!
날아간 다트가 다트장의 경품이 놓여 있던 나무 선반 아래를 꿰뚫는다.
그러자,
—펑!
아주 작게 폭발음이 일며, 선반 아래서 검은 연기가 스멀스멀 흘러나왔다.
“아, 아니… 가, 갑자기 무슨 짓이십니까?!”
“무슨 짓이긴, 내 말하지 않았나. 자네의 사기를 설명하겠다고.”
나는 그대로 선반을 향해 걸어가, 연기를 뿜어대는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선풍기… 자네는 이걸로 다트가 빗나가도록 조작하지 않았나.”
아주 간단하면서, 속이기 쉬운 트릭이었다.
마법사나, 수준 높은 기사는 어렵지 않게 마력을 감지할 수 있다. 당연히 마법으로 바람을 일으키면 곧장 들킨다.
하지만 떨어진 곳에서 미세한 마력으로 선풍기의 날을 돌리는 것은, 특별히 의심하지 않는다.
‘애당초 야시장을 밝히는 이 수많은 불빛부터가 미량의 마력을 뿜어대는 마공학의 산물이니까.’
한편 가게 주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한다.
“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저는 저런 물건 모릅니다! 저런 게 왜 저기 있었는지….”
“그건 치안국에 가서 열심히 설명해 보게.”
“치, 치안국?!”
이 상황에서 치안국이라 하면, 상인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일 터.
가게 주인은 극도의 스트레스가 몰려왔는지, 뒷목을 잡은 채 꺽꺽거린다. 나는 다시 다트장의 테이블 쪽으로 걸어가며 말한다.
“참고로 조언 하나 하자면, 풍선을 50개로 하든 100개로 하든, 값비싼 물건은 경품으로 내걸면 안 된다네. 지나가던 심심한 카바예르급 기사는 바람 따윈 무시하면서 다트로 과녁을 부숴버릴 테니 말일세.”
자리로 돌아온 나는, 마지막 남은 다트 하나를 들었고.
—펑!
마지막 남은 풍선을 터뜨리며, 50개의 과녁을 모두 맞혔다.
“오르골은 잘 받아 가겠네.”
“끄, 끄으윽….”
인간의 언어도 제대로 구사 못 하는 것인가.
나는 기괴한 소리를 내는 가게 주인에게서 오르골을 받아 챙겼다. 그리고 그 광경을 죽 바라보고 있던 레베카에게, 그것을 건네주었다.
“받게.”
“본녀에게… 주는 것인가?”
사실 마음 같아서는, 경매장에 팔아 치우고 싶은데… 지금은 어쩔 수 없다. 이 망할 오르골 때문에 빌어먹을 데이트가 끝나지를 않고 있었으니까.
‘지금은 한시라도 빨리 레베카의 마성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야 한다.’
나는 질끈, 눈을 감으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이걸 갖고 싶어 했던 것 아닌가.”
“아니, 본녀는….”
“갖게.”
나는 억지로 그녀의 손에 오르골을 쥐여주곤, 곧장 그녀에게서 떨어졌다.
“밤이 늦었네. 오늘은 이만 돌아가지.”
* * *
실비아는 아주 묘한 기분을 느꼈다.
—봤어? 봤어? 방금 저 시크하게 선물 줘버리는 거!
—저게 바로 그 ‘오다 주웠다.’의 변형인 것인가….
—그러면서도 샥, 고개를 돌리는 게… 크으. 그렇지. 저 때는 다 그렇지. 쿨한 척하지만 부끄러운 그런 거!
—맞아! 맞아! 내 보아하니, 류리크의 얼굴이 아주 홍시처럼 새빨갛더군.
—크으, 풋풋하구만. 풋풋해.
레베카와 류리크를 바라보던 갤러리들은 잔뜩 들떠, 저들끼리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망나니라기에 걱정했는데, 꽤 멋진 사내이지 않나.
—크, 사기꾼의 꿍꿍이를 간파하는 눈썰미도 꽤나 예리했지.
—그야말로 선남선녀의 커플이로군그래.
그들이 나누는 대화 하나하나가, 실비아의 심기를 거스르고 있었다.
“…애초에 사기 치는 걸 알았으면, 레베카 씨가 고생하기 전에 끝내도 됐던 거잖아.”
“누님,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내가 봤을 때, 류리크 씨는 레베카한테 크게 관심이 없거든? 그래서 아까도 상품을 따건, 돈을 날리건 그냥 방치한 거란 말야?”
요루아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제가 볼 때는 둘이 좋아죽는 커플이었는데….”
“야! 너는 저 둘이 정신 나간 대화 하던 것도 다 들었으면서 그럴래?!”
실비아의 불만은 계속해서 이어진다.
“아무튼, 저 오르골을 따준 것도 데이트 오래 하는 게 귀찮고 싫어서 대신 나선 게 분명하거든?”
“그런… 겁니까?”
“표정에 다 드러나 있었잖아. 아, 집에 가고 싶다. 그런데 왜 계속 데이트를 하는 거지. 귀찮다. 싫다. 그만하고 싶다.”
요루아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가 보기에는 그저 평소대로의, 류리크였기에.
한편 그런 시큰둥한 반응에, 실비아는 답답한 듯 가슴을 치며 메이린을 바라본다.
“메이린 씨, 상식적으로… 류리크 씨가 선물이랍시고 저 값비쌀 것 같은 오르골을 툭툭 줄 사람이야?”
“으음, 솔직히 저는 오르골을 따자마자 경매장에 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치? 그치? 메이린 씨도 그렇게 생각하지?!”
아무렴 단순한 오르골이라 하나, 베샤스트 라니예프의 작품이다. 심지어 멀리서 보았을 때도 그 빼어난 심미성을 느낄 수 있을 정도.
“지금 북부에 땅은 매입했는데, 개발할 자금이 부족하니… 그럴 거라 생각했… 지만, 결국은 레베카 양에게 선물로 주고 끝났네요.”
이건 잘된 거 아닌가요? 메이린이 묻는다.
“아니, 그야… 둘이 정신 나간 대화를 하던 괴짜 커플이라고 소문나는 것보다야 잘된 거긴 한데….”
실비아의 찜찜함은 그것이었다.
“둘이 나누는 대화나, 갖고 있는 생각이나 다 정신 나간 것들인데… 왜 남들 눈에는 아주 알콩달콩한 연인처럼 보이는 거냐고!”
그때 요루아가 눈치 없이 덧붙인다.
“하지만 보스, 꽤 멋있었다. 오르골을 확 따버리고, 상남자처럼 툭 선물을 주는 게….”
“넌 좀 조용히 하고!”
* * *
7월의 별관.
레베카는 기숙사로 돌아와 피아노 모양의 오르골을 유심히 살핀다.
그랜드 피아노 전체가 은하늘색 빛을 띠는 유리로 되어 있고, 오르골의 장치 부분이 마치 피아노의 현, 브릿지, 음향판처럼 들어가 아주 자연스럽게 형태를 완성한다.
특별한 기능은 없지만, 순수하게 미적 가치와 완성도만 고려했을 때도 훌륭한 오르골이었다.
‘과연 베샤스트 라니예프의 초기 작품… 이라는 것인가.’
아르민을 통해 알아보니, 그가 뛰어난 성능의 아티팩트들을 만들기 전에 간단하게 만들어 본 아티팩트라고 했다.
이 뒤에 만든 아티팩드들이 워낙 이름값이 커져서, 조용히 묻힌 비운의 작품이라고도 했다.
“그래도 한낱 노점상의 경품으로 걸릴 물건은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운이 좋았던 게지.”
레베카는 멋쩍은 미소를 짓는다.
“본래는 류리크에게 선물로 주려 했던 것인데, 도리어 받아버렸군그래.”
“………….”
자조 섞인 그 표정에 아르민의 표정이 그림자가 드리운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입을 열었다.
“레베카 님, 주제넘은 말일 수 있지만… 하나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무엇이 궁금한가.”
“왜 풍선을 맞추지 않으셨습니까?”
아주 잠깐, 레베카가 장난을 들킨 악동처럼 웃는다.
“티가 나던가?”
“예. 류리크 아스트레이는 모르는 눈치였지만, 속하의 눈에는 선명히 보이더군요.”
자네 눈은 못 속이겠군, 레베카가 손끝을 꼼지락거리며 말한다.
“그 다트라는 것이, 던지다 보니 계속 던지고 싶더군.”
“………….”
“다트를 던지기 시작하니 사람들이 모이더군. 그러면서 기대의 눈빛을 보내더니, 다트 하나하나에 아주 솔직하게 감정을 드러내더군.”
레베카의 눈이 당시의 풍광을 그리듯, 희게 흐려진다.
“빗나갈 때는 아쉬워하고, 맞출 때는 작게 탄성을 내지르고… 단순하지만, 아주 선명하고 거짓 없는 감정들이었지.”
“………….”
“고작 다트이기에. 질투할 것도 없고, 정략적으로 계산할 것도 없기에. 다들 그렇게 반응한 것이겠지만… 그게 썩 나쁘지 않았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레베카가 보고, 듣고, 겪어야만 했던 것들은 ‘평범’과 아득한 거리가 있었다.
그녀가 바라봐야 했던 세상은 모든 것을 이익과 가치로 판단해야만 했고, 살아 숨 쉬는 거의 모든 순간, 시기 질투, 원망과 분노를 받으며 자라야 했다.
심지어 마성을 통해 그녀가 받았다는 사랑조차도… 사실은 비틀린 집착과도 같았던 것들.
그런 레베카이기에 느낀다.
“류리크가 말했던 것이 무엇인지… 알 것만 같았다네.”
—가끔은… 사람들이 많고, 모두가 즐겁고, 왁자지껄한 게 썩 나쁘지 않았거든.
“사람들이 많고, 모두가 즐겁고, 왁자지껄한 것이… 썩 나쁘지 않더군.”
감상에 젖어 든 레베카의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가 드리운다.
레베카가 묻는다.
“아르민, 내 잘 몰라서 묻는 것이네만… 이런 게 즐거움이라는 것인가?”